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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왕들의 피서법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한 여름 더위를 어떻게 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 가나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어 실내에 들어서만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1700년대 중국 청나라 황제들은 베이징에서 수백km 떨어진 허베이성 청더시에 여름 별장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피서 별장으로 불리는 청더시의 여름 별장은 황제가 머무는 동안 정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외국사절의 접견도 이곳에서 행해짐으로 이곳은 여름철이면 청나라의 제2수도가 된다. 여름 별장의 규모가 564만㎡에 이르니 현존하는 중국 최대 궁궐공원이라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중국과는 달리 아무리 더워도 궁궐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창덕궁 후원에서 더위를 피했다. 찬 계곡물에 발을 담가놓고 부채를 부치며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더위를 달랬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름철 더위가 크게 다를 바 없을 터인데 임금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고작 이것이 다다.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반(水飯)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반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22대 정조 임금은 더위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다고 만족할만한 곳이 있느냐 지금 있는 장소에서 만족하고 참고 견디면 여기가 서늘한 곳이라 말했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여름나기를 걱정한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옛 왕들보다 시원한 피서를 즐길 수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3

7월 3일, ‘록의 정신’이 죽은 날

50대 이상 한국의 중년, 그 가운데 록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짐 모리슨(Jim Morrison·1943~1971)은 인간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상징 기호’로 다가온다. 54년 전 오늘은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 날이다. 27년7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갔지만, 그가 전 세계 청년문화에 미친 영향은 ‘노래로 미국을 점령했다’고 이야기되는 영국밴드 ‘비틀즈’ 이상이었다.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이자, 시인,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그는 경직된 기독교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미국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밴드를 결성해 술과 마약에 취한 채 생의 허무함을 노래할 때, 또래 청년 수십만 명이 ‘일그러진 전쟁’이라 불러 마땅한 베트남전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본 그는 분노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초현실주의 문학에 심취했던 짐 모리슨의 초기 노랫말은 염세적이고 난해하다. 그러나, 국익이란 허울뿐인 미명 아래 미국과 베트남 젊은 군인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비극과 참상을 인식한 이후엔 그의 가사가 바뀐다. ‘반전(反戰)’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인본주의’의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한 것. 이는 잘못된 미국의 정책에 저항했다는 의미다. “하늘은 재주가 승한 자를 부러워해 그를 일찍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동양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통했나보다. 청년들 사이에서 드높았던 영향력을 이용해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핵심으로 우뚝 설 수도 있었던 짐 모리슨은 베트남전이 끝나기 4년 전 숨을 거둔다. 록의 기본 정신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 아닐지. 그러니, 1971년 7월 3일은 록의 정신이 사라진 날로 기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2

자율주행 자동차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교통수단의 발달은 인류 생활의 편의를 높이고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인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공간을 누리게 됨으로써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동물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에서부터 배, 기차, 자동차.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은 우주 공간까지 넘나들게 했다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로 신차 배송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다. 텍사스 공장을 출발해 고속도로를 거쳐 30분 거리의 차주에게 차량을 배송했다고 한다. 운전자 없이 고속도로에서 최고 116km 속도를 내고, 교통신호등을 완벽히 소화하며 차주 집 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차량 내부와 원격조작 모두 일절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행됐다”며 이런 경우는 업계 최초라 자랑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1970년대 후반부터 초보 수준의 연구가 진행됐으나 아직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각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운행 성공은 자율주행차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자율주행차가 본격 보급되면 운전자 부주의에 의해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확 줄어든다. 현재 교통사고의 95%가 운전자 부주의에 의한 사고다. 또 교통 정체가 감소하고 교통경찰과 자동차 보험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교통혁명은 늘 기술을 넘어 인류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안겨주었다 자율주행차 시대 역시 인류의 생활방식에 또 다른 변화를 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1

매운 닭이 만든 ‘10조 라면’ 신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00 열풍’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K-팝’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한국 보이밴드와 걸그룹을 흉내 내며 춤추게 한다. 나라 이름조차 한국인들에겐 생소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한국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10대 소년들을 직접 본 기자는 그들의 ‘K-팝’ 사랑에 놀라기까지 했을 정도. 성장세가 다소 꺾이긴 했으나 ‘K-뷰티’의 인기도 태국과 베트남, 중국과 라오스 시장을 넘어서고 있다.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프랑스에서조차도 한국 화장품으로 한국 연예인의 화장법을 따라하는 소녀들이 생겼다고 한다. ‘K-푸드’에 주목하는 외국인은 이제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사실 한국 음식을 사랑한 해외 스타들은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1980년대 ‘팝의 황제’라 불렸던 마이클 잭슨은 비빔밥 마니아였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할리우드 최고 인기 배우 톰 크루즈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음식 기행’을 다니는 판이니.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음식의 맛이라고 한다. 수천 가지 재료와 수십 가지 조리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K-푸드’의 매력. 바로 이 매력이 한국의 한 식품기업 시가 총액을 10조 원으로 만들어줬다. 삼양식품이다. 얼마 전부터 그 회사 주식은 ‘황제주’로 불린다. 매운 닭볶음 양념에 면발을 비벼 먹는 스타일의 라면은 미국과 중국에선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다. ‘매운 닭이 신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30

여름더위 예고하는 열돔현상

도시지역의 온도가 주변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열섬현상이라 한다. 도심을 오가는 수많은 차량과 열을 잘 흡수하는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 등과 같은 도시 구조물이 원인이 돼 도시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열돔현상은 고기압이 뚜껑처럼 대기층을 덮어 뜨거운 공기가 하늘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지표면에 머무는 현상이다. 열섬현상과 열돔현상이 지구촌의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고 특히 여름철에는 폭염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열돔현상에 갇힌 지역은 대기 자체가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상고온과 폭염에 시달리고 밤이 돼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열대야가 연속된다. 뉴욕시 등 미국 동부지역이 6월 폭염으로 시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외신이다. 미 기상청은 지난 27일 미국 동부지역 주요 도시들의 낮기온이 37도를 넘어섰다고 밝히고 일부 지역에선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을 보였다고 발표했 다. 6월 폭염으로 미 동부지역에서는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등 인명피해도 잇따른다고 전했다. 미국 기상청은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열돔이 동부로 이동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며 당분간 무더위가 지속될 것 같다는 예측을 했다. 과학자들은 열돔현상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으로 지구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꼽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갈수록 열돔현상은 빈도가 더 잦아진다는 설명이다. 지난 주 대구와 경북 대부분 지역에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말이 폭염주의보지 올 여름 무더위를 예고하는 소식이라 반갑지가 않다. 올 여름 폭염과 열대야에 모두 단단한 각오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29

“장관이 뭐길래”

장관과 국회의원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이 시중에는 자주 회자된다. 대체로 “국회의원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다”는 대답이 주류다. 그 말은 국회의원은 국정감사 등의 권한이 있고, 법적으로 부여된 수많은 권한과 특혜가 있으니 일리 있는 대답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관은 행정부 최고 수반인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가의 중요 정책들을 논의한다. 이보다 막중한 자리가 있을 수 없다.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 국가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성공시켜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명예스럽고 보람도 있다. 두 자리는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국정 운영에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진다. 두 자리가 조화롭게 운영이 될 때 나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자리냐 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에서 유임이 되자 정치권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등을 농망법으로 반대했던 인물이 유임된 것에 대해 민주당 내 내부 반발은 물론 농민단체의 사퇴 요구도 거세다. 대통령실은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기회를 부여하고 성과와 실력으로 뽑은 인선이라 설명했으나 정치 철학이 맞지 않으면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송 장관의 유임은 기회주의"라고 말하고 개인 철학이나 소신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장관 오래하려면 송 장관처럼 하라”는 비아냥의 글도 올렸다. 여야 정치권 틈바구니서 장관직을 고수하려는 송 장관의 모습을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6-26

유튜브, 지역 언론의 딜레마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역 밀착형 취재거리를 찾고, 꼼꼼하게 기획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면 뭐 합니까. 정작 많이 보는 건 영화제 레드카펫 위 여배우 드레스의 등이 얼마나 파여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인데요.” “우리 신문사 역시 디지털시대에 발맞춰 유튜브 강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콘텐츠의 질이 방문자 수 증가를 담보해주지는 않더군요. 최근에도 방문자들은 역사강사 전한길씨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을 가장 많이 봤어요.” 비단 지역에 위치한 신문·방송사만이 아니었다. 구독자 수가 65만 명이 넘는 서울 언론사도 고심이 깊어 보였다. “기자 3명과 PD 2명이 유튜브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꽤 긴 시간 투자만 했을 뿐이지 5명의 인건비도 건지지 못했어요. 2년 이상 꾸준히 제작하고 적지 않은 콘텐츠가 쌓이고 나서야 제작 인원의 인건비를 약간 상회하는 수익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지난 주말. 지방 언론사 기자 40여 명이 제주도를 찾았다. ‘지역 언론의 미래와 기자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 참석을 위해서였다. 위의 내용은 그날 세미나에서 오간 이야기를 복기한 것. 젊은 세대는 물론 80대 노인도 유튜브를 보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어느 지역 언론 할 것 없이 유튜브 콘텐츠 강화, AI 적극 활용 등의 언론 환경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관련 인력과 디지털부문 강화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 모두에서 서울 언론에 밀리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렇다고 눈앞으로 닥친 유튜브시대, AI시대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지역 언론의 딜레마(dilemma)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25

자살률 낮추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취임 후 처음 가진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느닷없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왜 이리 높나요”라고 질문을 던져 주목을 받았다. 의사단체와 집단 갈등을 빚는 현안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복지부 주변에서는 자살률을 화두로 삼은 대통령의 의도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고 한다. 정치권 등에서는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자살률을 언급한 것은 한국사회의 만성적 문제로 자리잡은 자살률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OECD 국가 중 줄곧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다. 2024년 기준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8.3명으로 OECD 평균 11.1명의 두배 이상이다. 연령별로 보면 최근 12년 사이 10대에서만 유일하게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부산에서는 고교생 3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결과,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고 친구 사이인 이들은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서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부담이 컸다는 내용이 담겨 동반 자살로 추정된다고 했다. 매우 충격적 사건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에 대해 복합적으로 해설한다. 실업난 등 경제적 이유, 개인주의 발달로 인한 가정 해체, 대화 부족, 그리고 성공 지향적 사회 분위기 등을 꼽는다. 특히 지나친 경쟁사회가 빚는 부작용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새 대통령이 던진 화두인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이제 정부가 답할 차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24

미국이 폭격한 이스파한은…

지난 21일. 미국은 핵 관련 시설이 있다고 의심되는 이란의 세 도시를 폭격했다. 땅 속 깊숙이 들어가 모든 걸 파괴하는 이른바 ‘벙커 버스터’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지닌 토마호크 미사일이 이란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괴롭히던 핵 위협을 제거했다”고 큰소리쳤지만, 과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란의 핵 시설 대부분은 아직 무사하다고 한다. 지구 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고성능 미사일을 쏟아 붓고도 목적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더 있다. 미군이 폭격한 도시 가운데 한 곳이 이스파한이다.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절반 이상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기에 표적으로 지목됐을 터. 이스파한은 수백 년간 부침을 지속한 사파비 왕조의 수도다. 이맘광장 주위로 화려하게 솟은 자메 모스크와 알리 카푸 궁전은 이슬람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앞으로도 보존돼야 마땅할. 그건 미국 것도 아니고, 이란 사람들만의 것도 아니다. 또한, 이스파한엔 ‘사람이 살고 있다’. 이스파한 주민의 절대다수는 난마(亂麻)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란-미국,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무관한 양민들. 제아무리 최첨단 미사일이라도 오폭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는 전쟁과는 무관한 여성과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11년 초여름. 오렌지색 불빛이 예쁜 이스파한 카주 다리 아래서 이란의 한 사내에게 구운 닭고기와 토마토를 얻어먹었다. 기자 앞에서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착하게 웃던 그의 딸과 아들이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비는 오늘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23

첫 열대야

대구와 경북에서 올 첫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기상청은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 사이 대구의 밤 기온이 25.7도를 기록해 열대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항(26.4도), 경산(25.9도) 구미(25.5도) 등 경북의 주요 도시에서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열대야는 밤 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무더위를 보일 때를 이르는 말로 올해는 전국적으로 작년보다 일주일 이상 빠르게 열대야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여름철이 되면 우리나라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주 강할 때는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고온다습한 무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게 된다. 밤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초열대야라고도 부른다. 보통 7~8월에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나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선 6월 중에 열대야가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열대야 일수도 점차 늘어나 작년 제주에선 연속 45일 열대야를 기록했다. 매년 기록이 경신될 정도로 무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은 올 여름도 무덥고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질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조사에 의하면 무더위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며 공격적으로 만들어 이 시기에 범죄 발생이 높아진다는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여름 열대야 극복을 위해 규칙적인 가벼운 운동을 하고, 과식이나 야식 등은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열대야로 이어질 무더운 여름이 이제 본격 시작된다. 각자가 건강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22

의료 불평등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한 비용이 연간 4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보고서는 지역민 가운데 수도권과 지역 간의 의료격차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81.2%에 달했다. 새롭다고 할 통계 자료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울과 지방간의 의료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실망스럽다.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나라 안에서 서울과 지방간의 심각한 의료격차와 이로 인한 비용 발생이 수조 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국가정책의 부재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고질적 병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조사 결과는 있었다. 서울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암환자 3명 중 1명은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했고, 특히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서울로 향하는 환자 비율이 높다고 했다. 또 지방에 거주하는 암환자가 서울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내는 비용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준다는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지방과 서울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빈익빈 부익부가 극으로 치닫는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가난해지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비단 경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거와 교육, 의료, 문화 전 분야에서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언제 개선이 될까. 정부는 이런 통계를 보고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9

질문은 기자의 존재 이유

각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기자란 ‘묻는 사람’이다. 배우는 연기를 함으로써,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찰은 도둑을 잡아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럼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증명 방식이다. 그게 무시무시한 권력자건 파렴치한 범죄자건 취재 대상 앞에서 묻는 걸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잘 묻고, 상대로부터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끌어냈던 여성 기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인도의 간디, 중국의 등소평, 리비아의 카다피,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이 그녀의 질문 앞에서 쩔쩔맸던 사람들. 한 명 예외 없이 세계적 거물임에도 팔라치의 질문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물으면 혹시 그들이 화내지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없었다면 팔라치가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도 ‘기자의 한 전범(典範)’으로 기억될 까닭이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의 과거와 관련된 껄끄러운 질문을 한 기자가 김민석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인신공격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기자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자란 묻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니. 대장장이가 칼을 만든다고 “그 칼에 의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칼을 만드냐”고 질타하는 건 얼마나 무지한 짓인가. 기자에게 “왜 묻느냐”고 난리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18

과잉 관광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불리는 과잉 관광이 유럽 남부지역 등지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약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도심 고급 상점가에서 바르셀로나를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고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바르셀로나는 인구 160만명의 도시이나 지난해 경우 26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현지 주민들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것이 시위 이유다.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물가가 오르고 교통 혼잡이나 주차난 등 현지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다른 관광지 그라나다와 이탈리아 나폴리, 베네치아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마다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도시 인프라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문화유산 훼손이나 상업화 경향 등 사회 문제가 곧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항구에 입항하는 크루즈선을 현재 190척에서 내년까지 100척으로 줄이기로 했다. 무분별한 관광객 유입에 따른 해양 오염을 막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 한다.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배부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과잉으로 유입된 관광객이 유발하는 각종 공해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와 서울 북촌한옥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 일부 지역에서 과잉 관광의 부작용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러나 관광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삼으려는 우리나라에선 아직은 과잉 관광은 낯선 풍경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7

일본의 쌀값 폭등이 던진 화두

1918년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쌀 소동’이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 말기 전시(戰時)동원 체제에서 군량미 수매를 시작한 후 쌀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농민·시민이 대규모 폭동에 가담해 약 6만 건의 시위가 발생하고 2만5천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은 당시 내각 수반인 테라우치가 사퇴하면서 겨우 일단락 됐다. 1세기가 지난 현재 일본에서 다시 쌀값 폭등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도심 쇼핑몰에서 쌀을 사기위해 오픈-런을 하는 장면은 자체로 충격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서 일어난 이런 유통 왜곡 현상은 우리의 평안한 일상이 언제든지 거두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흉작, 지나친 감산(減産)정책, 관광객 증가로 인한 쌀 소비 급증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전문가들은 유통 구조 왜곡과 도매상들의 사재기를 이유로 들고 있다. 쌀 과잉생산, 정책·보조금·직불금 확대에 농촌 고령화까지 우리 농업현실이 일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제 우리도 쌀값 폭등 같은 유통 대란이 일어날지 모르고,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은 우리 지형에서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 ‘In the East rice is more than just food.’ 격언처럼 동양에서 쌀은 식품 이상의 대상이다. 쌀은 자체로 인문학적 ‘양식’인데다 쓰기에 따라 안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사태를 계기로 한국 역시 농정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농민을 규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식량 안보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밥상에 올라오는 한 공기 밥을 단순한 ‘식품’이 아닌 ‘국가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 일본 쌀값 소동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한상갑(경북부 에디터)

2025-06-16

서울 집값 상승과 지방 민심

서울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찮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전주 대비 0.26% 증가하는 등 19주 연속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첫 주의 상승 폭은 올 최고를 기록했으며, 서울 전 지역에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매도자가 물건을 회수하거나 가격을 올려 다시 내놓는 사례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대구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81주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전세가격은 86주째 떨어져 서울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서울지역 집값이 오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리인하 전망, 추경예산 살포에 따른 유동성 증가, 진보 정부에서는 집값이 오른다는 속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왜 지방에는 적용되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집값은 기본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구처럼 81주째 하락하는 것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서울의 집값은 상승하는데 지방의 집값 폭락은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점에서 서울과 지방간 또 다른 역차별이다. 집값의 변동은 개인의 재산이 늘고 줄고 하는 문제라 이보다 더 민감한 사안이 없다. 서울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수억 원을 버는데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재산을 까먹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방의 민심이 좋을 리 없다. 지금 추세라면 과거에도 그랬지만 모든 투자가 서울로 쏠려 수도권 블랙홀은 더 심화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말하는 지역균형발전도 사실상 공염불이 된다. 서울 집값은 안정시키고 지방 집값은 정상화시키는 균형잡힌 정책이 나와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5

軍에 군기가 없다면

군인이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부대조직의 일원으로 이들은 전투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갖추고 항상 전쟁에 대비하는 집단이다.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침과대적(枕戈待敵)은 군인들이 창을 베개 삼아 자면서 적과 대처하는 모습을 표현한 한자 말이다. 밤낮없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군인이다. 이처럼 군은 언제 어느 때나 경계 태세를 게을리 할 수 없고, 전쟁이 나면 목숨도 기꺼이 바쳐야 군인답다 할 것이다. 백제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쟁은 전투에서 승리한 나당연합군의 위력보다는 나라의 존망을 걸고 끝까지 목숨으로 항전한 계백과 그의 부하들의 얘기가 훨씬 감동적이다. 군인정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 요소임으로 군에서는 군인정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군인 복무 규율에도 군인정신은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 쓴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이라 한다. 군대의 명령은 태산과 같이 무겁다는 말은 군인정신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군의 기강을 이르는 군기(軍紀)는 상명하복의 지휘체제를 유지하는 규율이다. 지금은 군부대도 민주화 바람의 영향을 받아 과거 같은 살벌한 군기는 없겠지만 그래도 군은 군기의 엄격함이 있어야 기강이 서는 법이다. 대구 50사단에서 황당한 총기 분실 사고가 발생했다. 신병이 소총을 렌터카에 두고 내린 사실이 사흘 뒤에 알려지고 그제서야 총기가 회수되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군의 기강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군에 군기가 없으면 오합지졸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2

글로벌 우경화와 ‘나쁜 남자들’

불안정한 시대, 인류는 ‘나쁜 지도자’를 찾는다? 침팬지, 고릴라는 위기나 외부 위협이 있을 때, 무리는 더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알파 수컷(Alpha Male)을 따른다고 한다.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글로벌 공급망 붕괴, 기후 위기까지 겹친 지금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보수로 이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보수, 우경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극우정당 AFD가 제2당으로 부상했고, 영국 지방선거에서는 영국 개혁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는 아예 무솔리니의 후예로 불릴 정도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스트롱맨 리더십’이다. 혼돈의 시대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보다는, 근육질의 ‘나쁜 남자’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푸틴은 걸핏하면 밀리터리룩을 입고 나온다.(언제나 일전을 불사할 것처럼) 튀르키예 에르도안은 오스만 제국 의장대 의전(儀典)을 가장 즐긴다고 한다. 트럼프의 막말, 아베의 대규모 군비 증강도 모두 스트롱맨의 전형이다. ‘사상의 편향은 역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격언처럼 이런 사조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 흐름을 낳은 시대의 불안을 무시한 채, 도덕에 안주할 수도 없다. 이제 한국도 6·3대선을 치르면서 새 지도자가 선출되었다. 한미일 동맹이 한반도 외교, 안보의 가장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겠지만 베트남, 인도,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그들의 정치, 경제적 동향도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큰 관심사다. ‘나쁜 남자’. ‘스트롱맨’이 되어 주변 강국들과 까칠한 외교를 펼칠 지, 합리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균형, 실리(實利) 리더십을 펼칠 지. /한상갑 경북부 에디터 arira6@kbmaeil.com

2025-06-11

사라지는 남아선호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부모들이 여아를 축복으로 여기는 시대가 열린다”는 보도를 했다. 선진국일수록 남아보다 여아 선호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인류사에서 처음 있는 변화라는 해석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코노미스트는 여아 선호의 대표적 사례로 한국을 꼽았다. 1990년대 한국은 여아 100명당 남아 116명이 태어난 것으로 조사됐으며, 특히 셋째 자녀부터는 여아 100명당 남아 200~2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자연 출생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 정도라고 볼 때 성비 불균형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여아 100당 남아 105.1명으로 자연 성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국과 인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사회인식의 변화, 여성 지위 향상, 문화적 반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했다. 우리 속담에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남아 선호 사상의 사회 분위기에서 생겨난 말이다. 딸을 낳은 여성이나 가정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이코노미스트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남아선호 사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사조다. 한 결혼정보회사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절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낳겠다고 답했고, 만약 가린다면 남아보다 여아를 선호하는 비율이 5배나 높았다고 하니 놀라운 대답이다. 여아선호가 높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노후에 부모를 부양할 가능성이 높은 때문으로 풀이도 하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남아선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06-10

초여름 떠올린 백석의 시 1편

이제 겨우 6월 중순에 들어섰을 뿐이지만, 기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벌써 여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끔찍했던 폭염과 게릴라성 폭우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2024년 더위는 무시무시했다. 올해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초여름. 후텁지근한 도시를 벗어나 그늘 드리운 산과 시원한 바람을 만나러 교외를 향했다.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시골 풍경이 자연스럽게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했다. ‘하답’(夏沓)이다. ‘짝새가 발부리에서 날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먹었다/게구멍을 쑤시다 물큰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가웠다/돌다리에 앉아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논두렁과 개울에서 헤엄치고 뛰노는 모습을 정겨운 풍경화처럼 노래한 시. 인간에게 과거란 대부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백석은 1950년 이전에 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시인이다. 그러니, 이 시는 아마도 1930~1940년대쯤 쓰인 것일 터. 그로부터 100년이 채 못 되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경상북도 어떤 시골마을에 가도 아이들을 보는 게 쉽지 않아졌다. 백발의 노인들만이 마을 입구 당산나무처럼 쓸쓸한 표정으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비단 경북만이 아니다. 전라도와 충청도, 경기도와 강원도의 대부분 농촌이 대동소이한 풍경이 돼버렸다. 사람은 줄고 빈집은 늘어간다. 어떤 특단의 처방을 써야 초여름 더위에 윗옷을 벗고 깔깔대며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뾰족한 방법이 없을 듯해 더 서글프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09

병가지상사의 교훈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란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나라 헌종이 반란군을 제압하러 간 진압군 장수가 패하고 돌아오자 “병가에서는 지고 이기는 일이 흔한 일”이라며 위로하고 다시 진압을 명했다. 이후 다시 출전한 장수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왔다는 것이 고사의 내용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병가지상사는 실패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잘 쓰인다. 정치도 대통령이라는 핵심 권력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 전쟁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한번 진 싸움에서 5년간 권력을 넘겨줘야 하는 패자 정당에게 병가지상사가 위로의 말이 될지는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두 개의 큰 축은 여당과 야당이다. 여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책을 생산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역할을 한다. 야당은 여당의 정책을 살피고 잘못이 있다면 엄하게 비판하며 제동을 건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존재 가치로 인정받을 때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21대 대선에서 패한 국민의힘에 대해 “잘 싸웠다”는 말보다 ‘뼈속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하는 비판 목소리가 더 컸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많은 지지자들의 눈에는 그들의 정치가 무능했고 나약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병가지상사가 위로를 뜻하는 의미도 있지만 본 뜻은 분발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교훈을 갖고 있다. 환골탈태 또한 그런 의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