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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에서 보름달 보는 한가위

21세기 들어서며 해마다 새로 세워지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도 예상대로 지난해 기록이 깨졌다. 2025년 추석 연휴는 길다. 하루쯤 연차를 낸다고 가정하면 최장 10일을 쉴 수 있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에 인천공항을 이용할 사람들은 245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2만3000명에 이른다. 그 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와 조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가려는 한국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복잡한 완행열차 속에서 6~7시간을 서있거나, 거대한 주차장이 돼버린 도로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고생하던 모습은 이제 지난 세기의 기억으로만 남을 듯하다. 추석과 설, 1년에 한두 번쯤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조상께 올릴 차례 음식을 함께 만들던 풍경은 이제 노인들이나 그리워할 뿐이다. 사람보다 핸드폰과 소통하는데 익숙한 Z세대는 어른들이 주는 용돈은 좋지만 잔소리는 싫고,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가(媤家)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명절증후군’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다들 멀리건 가깝게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하는 추석. 변화하는 세태를 몇 사람의 힘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허니, 내년 추석에도 공항 이용객 기록이 깨질 건 불을 보듯 뻔하고. 해외에서 보름달을 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저승에서 조상들이 울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01

명절의 꽃 秋夕

추석은 가을의 저녁이라는 말로 가을이 저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곡식 수확이 완료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기 직전으로 물심양면에서 가장 풍족을 느끼는 시기다. 음력 1월 1일 설날과 음력 5월 5일 단오날 그리고 추석을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손꼽는다. 조선 후기 학자 김매순이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를 보면 추석에 대한 당시 관념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민간에서는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고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고 써 있다. 어느 명절이든 기쁘지 않을 날이 있겠냐 만은 추석은 명절 중에 꽃이라 할만하다. 이름도 추석, 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특히 갓 생산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니 그 맛이 특별하다. 햅쌀로 빚은 밥과 송편은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맛이 좋다. 민속놀이를 하더라도 선선한 날씨 덕에 마음도 한층 여유롭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 속담은 추석처럼 풍요롭고 즐거운 상태가 일년 내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다. 추석은 그야말로 풍요와 행복의 상징이다. 명절을 지키는 전통 풍속이 예전만 못하나 그래도 명절에는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의 기쁨을 나눈다.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가족과의 만남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명절의 의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마다 웃음 꽃이 함빡 피었으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30

노후자금 6억과 죽은 아내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혼자서 죽는 날까지 돈 걱정 없이 사는 삶, 경제적으론 다소 불안정하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와 오순도순 늙어가는 것.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걸 택할 것인지.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소개된 사연 하나가 적지 않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사에 의하면 일본에 거주하는 67세 남성 O씨는 가난 탓에 중학생 때부터 식당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궁핍한 환경이 가져다준 절약하는 태도는 어른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O씨는 일생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고, 출퇴근 땐 그 흔한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에어컨과 난방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불문가지. 아내는 O씨를 이해하며 내조했다. 자식들 데리고 나들이도 한 번 가지 않은 팍팍한 삶이었지만. 이런 생활이 수십 년 이어졌고 결국 65세가 된 O씨는 저축과 연금, 퇴직금을 더해 한국 돈으로 6억1000만원의 돈을 모았다. 이른바 제법 ‘넉넉한 노후자금’을 가지게 된 것. 그러나, 돈이 준 행복감은 잠시였다. O씨가 퇴직한 직후 아내가 쓰러졌고 결국 사망했다. O씨는 홀로 남았다. 6억1000만원의 돈이 비어버린 아내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현재 O씨는 아내가 살았을 때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참으로 서글픈 만시지탄(晚時之歎)이 아닐 수 없다. 사람살이란 게 어슷비슷하니 한국에도 분명 O씨와 유사한 사례가 있을 터. 초가을 아침. 돈으론 살 수 없는 인간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30

천년의 소리

APEC을 한 달 앞둔 지난주 경주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국보 29호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신종의 안전 여부를 조사하는 타종행사가 있었다. 771년 통일신라 혜공왕 7년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은 1254년의 역사를 가진 종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종으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 말한다. 높이 3.66m, 무게 18.9t이다. 신라 35대 성덕왕의 공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고자 아들인 경덕왕이 제작을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혜공왕 때 완성한 종이다. 범종이란 불교 용어다. 불경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면 불상은 부처님의 모습이고, 범종은 부처님의 목소리로 해석한다. 청정한 절에서 울리는 맑은 종소리는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우치라고 하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동 12만근이 소요되는 대형 종을 만들고자 갓은 시도를 다했으나 번번이 종이 깨지고 소리가 나지 않는 실패를 했다. 어린아이를 넣어야 소리가 난다는 말에 어린아이를 쇳물에 바치고 나니 완성됐다는 것이다.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라는 어린아이의 소리가 들려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92년까지 매년 재야의 종으로 타종 행사를 벌였으나 그 이후는 조사 목적 외에는 타종을 금했다. 지난주 실시한 조사목적의 타종행사에는 제작연도를 상징하는 771명을 초청해 타종식을 가졌다. 천년 전 신라인이 듣던 종소리를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이들이 직접 듣는 행사다. 천년을 거슬러 간 시간여행의 신비로움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8

치매가 유죄?

사례 1) 60대 여성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접근해 평생을 돌봐 주겠다고 속인 뒤 2억5000만원 상당의 상가 등기를 자신의 앞으로 이전한 사건. 경찰 조사에서 사기행각을 벌인 60대 여성은 법률상 남편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고의에 의한 사기로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례 2) 10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치매 노인과 위장 결혼한 60대 여성이 공범들과 짜고 재산을 강탈한 사건. 60대 여성은 재산 범죄에서 친족은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 환자 가족에게는 “그저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혼인 사실을 숨겨 왔다고 한다. 사례 3) 80대 치매 노인을 간병하던 간병인이 노인이 치매 환자인 것을 알고 그가 소유한 땅을 매도하려다 덜미가 잡힌 사건. 일본에서도 인지능력이 떨어진 고령자를 상대로 한 부동산 사기 사건이 빈발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임대 수입 보장이나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아주겠다고 속여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쓴다. 일본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40년이면 치매 환자가 무려 58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소유한 자산 규모만 197조엔 우리 돈으로 1900조원이 넘는다. 우리도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리비용도 천문학적 수치다. 게다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치매노인 상대 사기 범죄까지 극성을 부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사기 피해를 입은 치매 환자 중에는 사기 사실을 뒤늦게 알고 비통해하다 숨진 일도 있다고 한다. 치매 사기 범죄를 막을 특단 대책은 없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5

나경원과 추미애의 전쟁

국민의힘이 나경원 의원을 국회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간사로 보낼 때부터 불화는 이미 예고됐다. 왜냐? 법사위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위원장으로 앉아있었기 때문. 둘은 양당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다선의 여성 의원이다. 나경원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2002년 당시 이회창 대통령후보 여성특별보좌관으로 정치계에 들어와 원내대표까지 지낸 5선의 중진급 국회의원. 추미애 의원 역시 판사로 생활하다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6선인 추미애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최다선 국회의원이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세칭 ‘추-나 대전(추미애와 나경원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추 위원장이 주도하는 법사위에서 나 의원의 간사 선임은 불발됐고, 그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의 고성과 막말로 국회는 또 한 번 눈총을 받았다. 추 위원장과 나 의원의 불화는 이후로도 지속됐다. 지난 22일에도 위태위태하던 법사위에서 다시 한 번 폭탄이 터졌다. 국민의힘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막는 추 위원장에게 나 의원이 “야당 의원 입틀막 하는 게 국회인가”라고 쏘아붙이자, 추 위원장이 “왜 회의 진행을 방해하느냐. 이렇게 하는 게 윤석열 오빠에게 도움이 되느냐”라고 되받은 것. 그날 ‘추-나 대전’ 이후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은 추 위원장의 발언이 여성 모욕이라며 반발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럼 윤석열이 오빠지, 언니냐?”라며 추 위원장을 감쌌고. “법사위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현장이 돼버렸다”며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추 위원장과 나 의원, 여야 법사위원들은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24

식어가는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자유의 여신상이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이자 큰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신이 담긴 자유와 기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역사학자 애덤스가 1931년 출간한 ‘미국의 서사시’에서 처음 언급됐다. 그는 “미국인의 꿈은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고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많은 외국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 곧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민자들이 꿈꾸는 만큼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불평등, 인종차별, 이민자 소외, 계급의 고착화 등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탓이다. 최근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0%는 “성실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대해 부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이젠 옛말이 됐다는 미국 사회 분위기를 전하는 조사다. 트럼프 미국 정부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미국 전문직 취업 비자(H-1B) 수수료를 현행보다 100배를 올려 받기로 했다. “미국인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발 자국 우선주의가 아메리칸의 꿈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고 있는 모양으로 느껴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3

허위신고엔 더 무거운 처벌을

학교나 백화점처럼 다중이 밀집된 곳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허위 신고를 하거나, 특정한 공간에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공간에 게재하는 행위는 용서 받기 힘든 범죄다. 이런 악의적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공권력의 낭비를 부른다. 앞서 언급한 허위 신고나 거짓 게시글이 문제가 될 때면 사회 안전과 민생 치안에 집중해야 할 경찰 인력이 적지 않게 동원돼 수색과 검문에 나서야 한다. 아무 소득 없는 헛수고에 국민들의 귀한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반복되는 허위 신고와 인터넷 거짓 게시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화풀이나 재미로 한 행동이 폐가망신을 부를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 것. 최근 여러 사람이 반길만한 판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23년 신림역에서 여성들을 살해하겠다고 허위 살인 예고 글을 올린 최모(31)씨에게 ‘4300만원을 정부에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이번 소송은 법무부가 다중 살인사건 대비를 위해 투입된 인적·물적 손해에 대해 최씨의 책임을 물으며 시작됐다. 최씨가 사람을 죽이겠다는 글을 올린 후 체포될 때까지 703명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낭비된 시간과 인력을 감안하면 4300만원도 큰 배상액이라 보기 어렵다. 이번 사례는 정부가 살인 예고 글을 올린 범죄자를 상대로 민사 책임을 물은 소송에서 나온 첫 번째 판결이다. 이제 판례가 생겼으니 향후 열릴 유사 사건에 대한 재판도 이 판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국민은 허위 신고와 악의적 거짓 게시글엔 더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이런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22

사법도시 대구

대구가 사법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이후 영남권의 사법,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대구가 한 것이다. 1895년 대구재판소가 설치됐고, 일제 강점기에는 서울과 평양을 제외하면 지금의 고등법원 격인 복심법원이 대구에 유일하게 설치됐다. 광주시에 고법이 신설된 1952년까지 지방에는 고등법원이 있는 곳은 대구가 유일했다. 더불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에 반발하는 대법원을 향해 대법원을 대구로 옮기자는 제안을 해 제안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법개혁 추진 과정에서 대법원과 충돌하면서 나온 제안이라지만 김 의원은 작년 국가균형발전 명목으로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어 그의 대법원 이전이 그냥 한 말로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민주당은 5년 전에도 대구시당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법원은 대구로, 헌법재판소는 광주로 이전하자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홍준표 전대구시장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 외에 사법 수도를 두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대법원의 대구 이전설 자체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 의원의 대법원 이전 제안이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압박용이라는 설과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민주당의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구 이전설이 그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현실화 되지 못할 것도 없다. 대법원의 이전은 지역발전 측면에서 메가톤급 구상이다. 김 의원의 제안이 대법원 이전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지 지켜 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1

늘어나는 학교폭력

교육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25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대답한 학생의 비율이 2.5%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0.4% 포인트가 높아졌고, 교육부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과 예방 노력에도 학교폭력은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폭력의 유형도 과거 신체적 폭력이나 금품 갈취 등의 유형에서 언어폭력, 집단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 정서·관계적 폭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는 학생들 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학생의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의 원인에 대해 대체로 3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개인적 요인이다. 분노 조절의 문제나 공격적 성향 등 개인의 기질에 의한 문제다. 둘째는 가정환경으로, 부모의 무관심, 학대. 애정 결핍 등이 학교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학교환경이다. 경쟁 중심의 교육, 집단 내 소외감, 교사의 방관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밖에도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교육은 학문과 지식의 습득 외도 인성을 바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국가적으로는 국가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키우는 과정이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입장에서 학폭이 늘고 있다는데 걱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학폭 예방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올해부터 대학입시에 학폭 전력을 의무 반영토록 했으나 되레 부작용으로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한 다툼에도 변호사를 내세우고 다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 학교의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18

이젠 안녕, 로버트 레드포드

지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1970년대 영화팬들에겐 로버트 레드포드란 이름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찰랑이는 금빛 머리칼에 훤칠한 키, 매력적인 눈웃음의 미남자로 또래 소녀들을 매혹한 그는 빼어난 연기력까지 갖춘 걸출한 배우였다. 한국에서도 개봉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에선 또 다른 미남배우 폴 뉴먼(2008년 사망)과 호흡을 맞춰 영화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의 최대치를 관객들에게 선물한 로버트 레드포드. 그가 죽었다.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자신의 집에서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욕타임스’ 등의 외신을 통해 알려졌고, 연이어 한국 언론도 앞다퉈 이를 보도하고 있다. MZ세대에겐 낯선 이름이겠지만 전성기 때 로버트 레드포드의 인기는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배우로 불리는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를 훌쩍 넘어섰다.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과 제작자로서도 높은 성취를 이뤄낸 로버트 레드포드는 자신의 진보적 정치 성향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반전·평화운동과 환경운동에도 나섰고, 거기서 이뤄낸 성과로 세계가 권위를 인정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비교적 순탄하고 행복한 삶이었으나, 지울 수 없는 슬픈 그림자도 있었다. 5년 전 아들인 제임스 레드포드가 병을 앓다가 먼저 사망한 것. ‘죽은 자식은 땅이 아닌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미국이라고 다를까? 만약 ‘저세상’이란 게 있다면 젊은 날처럼 백만 달러짜리 환한 웃음 지으며 그리워했던 아들을 다시 만나 안아보기를. 전 세계 영화팬들과 함께 그의 명복을 빈다. 이젠 안녕, 로버트 레드포드.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17

유튜브 권력

1998년 미국에서 상영된 왝더독은 정치인의 권모술수를 주제로 다룬 영화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진다. 초비상 상태에 빠진 백악관 참모들이 모의, 궁리 끝에 국민에게는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몰아 전쟁 위기로 끌고가는 내용이다. 왝더독(Wag the Dog)은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정치에서는 권력자가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부른다. 왝더독을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적당하다. “주인과 손님이 바뀐다”는 뜻인데, 본말이 전도됐을 때 쓰는 표현이다. 공부해야 할 학생이 놀이에만 정신을 팔았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물건 값보다 배송비가 더 비싸면 이것도 주객이 전도된 경우다. 원래 왝더독은 주식시장에서 선물이 현물시장보다 커졌을 때 이르는 용어다. 선물은 현물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개설한 것인데 주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주객전도가 자주 일어난다면 잘못된 현상이다. 주인이 주인답고 고객은 고객다워야 한다.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는 각자가 제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옳다. 민주당의 한 의원이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유튜브 방송을 비판해 정치권 안팎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유튜브의 눈치 보는 잘못된 정치풍토를 비판한 발언으로 일각에선 신선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정당의 정치가 당당하지 못하고 강성 층에 밀리고 유튜브 등의 눈치만 본다면 그거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9-16

전한길 vs 구글코리아

한 과대망상자의 피해의식인가? 그게 아니면, 민감한 문제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겠다는 업체의 정상적 조치인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전 역사강사 전한길 씨가 최근 “구글코리아가 내 유튜브 채널에 수익 창출 정지 통보를 했다”며 “이는 분명한 언론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트루스포럼에 초청연사로 참석한 전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전한길 뉴스’가 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며, 이는 민감한 문제 탓에 수익 정지를 시켰다는 구글코리아의 설명과 달리,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덧붙여 한국의 구글코리아를 좌파가 장악했기에 보수 유튜버를 탄압하는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구글 본사에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 측에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살펴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구글코리아 측의 공식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구글코리아의 결정은 미국 구글 본사에서 승인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 이는 전씨의 유튜브 채널에 대한 수익 창출 정지를 구글 본사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바뀐 정권과 불화를 지속해온 전한길 씨는 이날 신변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말했다. 자신은 출국금지와 구속의 위험성 탓에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갑작스런 피격을 막기 위해 150만 원을 주고 방탄복까지 구입했다는 것. 전씨가 쏟아내는 말에는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을까? 주관적 주장이 신뢰성을 얻으려면 객관적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 전한길 씨는 구글코리아에 증거를 내놓을 수 있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15

그냥 쉬었음 인구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일할 의사도 없는 ‘그냥 쉬었음’이라고 하는 인구통계가 있다. ‘쉬었음’ 인구통계는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사람의 수를 말한다. 쉬었음 인구는 실업자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실업자는 구직 활동을 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은 상태의 사람이다. 그래서 구직의사 없이 쉬는 사람은 실업률에 포함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냥 쉬는 인구의 상당수가 노동력이 가능한 연령대지만 취업난이나 불경기 등으로 취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도 없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사람의 수가 264만명(8월 기준)에 이른다. 연령층별로 보면 15~29세 청년층이 43만명, 30대는 32만명이다. 그중 가장 왕성하게 일할 연령대인 30대는 올 8월 중 그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20~30대 연령층에서 쉬었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난달 청년층의 고용률이 16개월째 하락 행진 중인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한 경제단체 조사에 의히면 청년 인구가 줄고, 그냥 쉰 청년이 늘면서 우리나라는 연간 9조원 가량의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고 했다.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 증가는 우리 경제의 건전성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반증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가 계속 침체되고 미국의 고관세 정책 등으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쉬었음 청년을 구제할 일자리 창출만큼 다급한 과제는 없어 보인다. 정치가 정쟁(政爭)으로 소모할 때가 아닌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14

기절초풍의 똘똘한 한 채

KB부동산이 밝힌 9월 중 통계에 의하면 전용면적 84㎡ 아파트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ㄹ아파트다. 지난 6월 거래된 가격이 72억원이다. 반면에 비슷한 규모로서 전국에서 가장 낮게 거래된 아파트는 경북 김천시의 ㅅ아파트다. 지난 5월 거래 가격이 7000만원이다. 이 아파트 102채와 서울 ㄹ아파트 한 채가 맞먹는 가격이다. 서울 인기 아파트단지의 똘똘한 한 채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통계다. 똘똘한 한 채란 시세상승 가능성이 높고 환금성이 좋으며 실 거주와 투자 가치가 모두 뛰어난 부동산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서울 강남·서초 일대의 인기 아파트단지로서 교통, 학군, 생활 인프라 등이 뛰어난 알짜배기 부동산이다. 똘똘한 한 채가 투자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정부의 세금규제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여러 채를 구입하는 것보다 확실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투자가 집중됐다. 세금 부담도 피하고 자산의 안정적 가치상승도 기대할 수 있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일거양득 효과를 본 것이다. 지방의 아파트 102채를 팔아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살 수 있다는 가정에 기절초풍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 아파트 값만으로 본다면 지방의 아파트는 처참할 지경이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를 보는 젊은층이 지방에 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이같은 양극화 현상이 결국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데, 과거의 정부 정책은 늘 헛발질만 한 것 아닌가. 지방에서는 똘똘한 한 채보다 똘똘한 정책을 바라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11

자녀 특채, 노조의 해괴한 요구

취직이 어려운 시대다. 대학을 졸업하고, 검증된 영어 실력을 갖추고, 거기에 학점까지 높아도 일자리를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들의 가장 큰 희망 가운데 하나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고군분투 중이다. 학교 다닐 땐 전공과 외국어 공부에 매달리고, 졸업 이전에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인턴활동과 사회봉사에도 열심이다. 그래도 취직은 쉽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얻는 과정에서 특별한 혜택을 받는다면? 이건 ‘공정의 붕괴’라 불러 마땅한 심각한 문제다. 지난 9일 이와 관련된 사안이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언급됐다. 이날 이 대통령은 “최근 노동조합원 자녀에게 우선 채용권을 부여하자는 것과 관련된 논란을 보도를 통해 봤다”며 “취업시장은 어느 분야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필수”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KG모빌리티 노동조합이 퇴직 희망자 자녀를 특별채용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했고, 회사가 이를 추진하다가 논란 끝에 재검토한다는 뉴스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봉건시대엔 아버지가 높은 벼슬에 있으면 그의 자녀를 선발과정 생략하고 관리로 발탁해 쓰는 제도가 실재했다. 세칭 음서(蔭敍)다. 능력과 무관하게 부모가 가진 지위나 권력에 의해 자식의 미래가 결정되는 이 제도는 불합리성 탓에 오래전 폐지됐다.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신분제가 사라진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음서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 자식에게 일자리를 대물림하겠다는 노조는 대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10

정치인의 악수

악수란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인사 방법이다. 나라마다 문화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반가움이나 친근, 화해 등을 드러내는 인사법이다. 이런 악수에는 예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윗사람이 먼저 청할 때 악수를 해야 한다. 악수를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바로 쳐다보아야 한다거나 왼손잡이도 오른쪽 손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등등이다. 2013년 미국의 빌게이츠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의 일화다. 빌게이츠는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공개되자 미국의 한 언론은 그의 무례함을 비판한 적이 있다. 비록 사소한 악수일지라도 장소와 사람에 따라 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정치인은 악수를 특별하게 해석할 때가 많다. 정치인이 사람을 만나 악수하는 것은 정치적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차 중국을 다녀왔던 우원식 국회의장은 귀국 후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를 했다”고 자랑하며 악수한 그 자체가 성과라고 말해 어리둥절케 했다. 그의 악수를 두고 남북 관계의 복원 가능성이나 한반도 정세에 작은 변화 가능성을 주었다는 정치적 해석을 따로 붙인 것이다. 김 위원장과 아주 잠깐 악수를 한 것에 불과한데 해석치고는 너무 거대해 보였다. “악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과는 죽어도 악수않을 것 같았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악수를 하자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이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나기조차 꺼렸던 양 대표의 첫 악수가 성사된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화해일 수도 있고 대화의 시작일 수 있는 두 정치인의 악수 이후가 어떨지 기대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9

성희롱 수렁에 빠진 조국혁신당

이걸 내홍(內訌)이라 불러야 할까,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 해야 할까? 조국혁신당이 ‘성비위’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지난 4일 그 당 강미정 대변인이 당내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의 처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심각한 사안이 제기됐음에도 이규원 사무부총장은 “성희롱은, 언어폭력은 범죄는 아니다”라는 상황 파악 못한 발언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적 파장과 논란이 커지자 7일 황현선 사무총장이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도 물러났다. 이로써 조국혁신당은 자의 반 타의 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국혁신당에서 시작된 불길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교육연수원장에게까지 옮겨 붙었다. 성희롱을 당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최 원장의 발언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최 원장도 스스로 자리를 버렸다. 그럼에도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왜냐? 그 당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고, 실질적인 소유주라 할 수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켜봐야 하는 게 남았기 때문. 이른바 진보 진영의 성희롱과 성폭력 스캔들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고질적인 악재 가운데 하나다. 현재도 보수 진영은 ‘때는 지금’이라는 듯 목소리 높여 조국혁신당에 돌을 던지고 있다. 그 돌팔매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책을 홍보하고, 향후 다가올 선거를 위한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앞서 조국혁신당 내부 문제부터 명쾌하게 해결해야 마땅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08

왜 지하댐인가

지하댐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표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몇몇 군데서 운용되고 있는 저수 시설이다. 일본은 1964년 한 학자의 주장으로 제기돼 현재 전국에 18개의 지하댐이 건설돼 있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지하수자원평가센터 자료에 의하면 현재 세계 50여 개국에서 1200개가 지하댐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막에 지하댐을 만들어 도시로 용수를 공급한다. 지하댐이란 땅속 깊이 물막이 벽을 설치해 지하수를 모아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어촌공사가 극심한 가뭄에 대응하고자 1984년 경북 상주에 지하댐을 만든 것이 최초다. 그러나 댐의 활용 면에서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땅속 깊이에 지하수를 모아둠으로써 증발이 되지 않아 손실이 적고 기존의 댐보다 건설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강릉의 가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대안으로 지하댐 건설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 속초시는 강릉과 비슷한 기후조건에 놓인 도시이면서 물 부족난을 지하댐 건설로 해결해 극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속초시는 1998년 주요 취수원 하천인 쌍천 일대에 지하댐을 건설해 취수원 용량의 절반을 해결했다. 이후 2021년 두 번째 쌍천 지하댐을 건설해 수십만t의 지하수를 저장하는 물 부자도시로 변모했다. 지난 7월에는 물 축제까지 벌일 정도였다. 강릉시는 생활용수의 80% 정도를 오봉저수지에 의존하고 있다. 저수지 물이 마르면 대안이 없다. 무더운 여름에 제한급수로 주민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8분의 1 수준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책의 하나로 지하댐도 검토해볼만 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7

교육 수장의 덕목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아주 고결하고 특별한 것일까. 새 정부 들어 교육부 장관 후보에 처음 올랐던 이진숙 후보자가 중도에 낙마하고 난 뒤, 한 언론사는 교육계의 중지를 모아 바람직한 교육부 장관의 덕목을 정리해 보도한 적이 있다.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한가지는 교육가로서 전문성 그리고 도덕성, 다른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잘 알다시피 전문성은 다양한 교육경험에서 나오는 탁월한 식견과 교육적 안목을 뜻한다. 도덕성은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청렴성과 정직성 등이다. 소통 능력이란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소통하고 갈등을 다스리는 교육 리더로서의 능력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로 유명하다.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치맛바람을 일으킬 만큼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구상 최고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도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로서는 부적절한 과거 행적과 언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음주운전 이력이나 논문표절 의혹, 정치적 편향성, 부적절한 언사 등이 장관직 수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다수당인 여당이 수용않으면 장관은 여당 뜻대로 간다. 여당은 여당 뜻대로 하더라도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한 번쯤 살펴보면 좋겠다. 자식의 교육을 국가에 맡기는 부모의 안목이 교육에 관한 한 정치보다 더 높다는 사실도 직관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