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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의 노여움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은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대통령은 SNS를 통해 “역사적인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에 희생자들과 시민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이벤트를 벌이다니”라며 스타벅스 코리아를 질타했다. 해당 업체가 어떤 행위를 했기에 대통령이 이처럼 분노한 것일까? 스타벅스 코리아는 15일부터 오는 26일까지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하며 ‘탱크 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를 썼다. 상식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표현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1987년 국가기관의 고문에 의해 숨진 대학생 박종철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겼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몰상식한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랬기에 이 대통령은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이 대체 몇이고, 그로 인한 정의와 역사의 훼손이 얼마나 엄혹한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라 물으며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측은 부랴부랴 문제가 된 이벤트를 멈추고 손정현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했다. 하지만, 대통령만이 아닌 국민들의 실망과 지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은 우주 전체보다 귀한 것”이라 노래한 바 있다. 인간의 생명이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사라진 역사적 사건을 상술로 이용했던 스타벅스 코리아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게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20

고학력 여성과 저출산

세상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변화하면서 여성의 교육 기회가 늘어났고, 사회 참여 역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출발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 이는 동양과 서양이 크게 다를 바 없다. 여권 신장의 세계를 살고 있는 건 한국 여성들도 마찬가지. 현대사회의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은 언제 어디서건 고학력 여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아직 선입견과 오해도 없지 않다. “학력이 높고 고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꺼린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양에 비해 동양에 더 많은 게 사실. 그런데, 고학력 여성이 출산을 기피한다는 건 맞는 말일까? 최근 미국인구학회 학술지에 발표된 ‘일본에서 교육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인과적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이 이 물음에 답하고 있어 주목받았다. 위에 언급된 연구엔 일본 와세다대 교수뿐 아니라, 같은 동양 문화권의 싱가포르 대학 교수 등 4명이 참여해 광범위한 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고학력 여성들은 초혼과 초산을 다소 늦추긴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저학력 여성과의 차이는 사라졌다고 한다. ‘많이 배운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선입견이었던 것. 이에 논문 작성을 함께한 연구진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출산 감소를 이해하려면 교육보다는 제도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고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 도출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고학력 여성들을 탓할 게 아니라, 남성 육아휴직의 확대와 출산 후 경력 단절에 따른 불이익을 없애는 등 시스템 개선이 보다 절실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8

외로움부 장관

개인의 외로움도 국가서 관리한다? 외로움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만큼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1인 가구 급증, 양극화 및 불평등 심화 등으로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인구는 늘지만 정부 대처는 미흡하다. 외로움이 고독사로 이어지고 우울증이나 치매 등으로 발전하는 사회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은 국민건강에 해를 끼치는 외로움을 공적영역에서 다룬다. 외로움을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하며 관련 부서도 만든다. 영국은 성인 상당수가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고, 이것이 건강과 직접 연결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다. 영국 사례를 연구한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대책 담당장관을 신설했다. 일본사회의 고독사 문제 해결과 고독으로 인한 건강악화나 노동력 상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증가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도 외로움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2024년 한해만 3000명이 넘는 이가 고독사했다. 고독사란 가족과 단절된 생활을 하다 홀로 임종을 맞고 뒤늦게 시신이 발견된 경우다. 여론조사에서 국내 성인의 절반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거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으로 사는 사람이 는다는 것이다. 노인층뿐 아니다. 1인 가구 증가로 젊은층도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적 고립문제를 담당할 부서를 만들고 복지부 차관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외로움으로 죽을 수 있는 사회에 대처하는 우리나라 최초 시도다. 그 역할에 기대를 걸어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7

스승의 날에 생각하는 속수례

전통 유교사회에서는 스승을 임금이나 부모님처럼 최고의 존경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썼다. 유교의 핵심 가치인 효(孝) 충(忠) 예(禮)란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임금에겐 충성을, 스승에게는 예를 갖춘다는 의미로 군사부일체가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조선시대에는 제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할 때 존경의 뜻을 담은 예물을 준비해 갔다. 이때 가르침에 대한 예물로 준비한 한 묶음의 육포를 속수라 하고, 예의를 지키는 절차를 속수례(束脩禮)라 불렀다. 성균관 입학식 등에서 엄격히 지켜져 왔던 그 시대 풍습이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 배우고자 감히 뵙기를 청합니다”라고 제자가 말하면 스승은 “내 학식이 부족하여 도움이 적을까 두렵다”는 식으로 대답을 한다. 이런 의식은 왕세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세자가 성균관에 나가 속수례를 한 내용이 소개된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에 대한 예절을 일깨우는 방법으로 전례의 예법인 속수례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를 벌이는 학교들도 간혹 있다. 스승에 대한 시대적 예우는 옛날 같지 않으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 의미의 행사여서 한편으로는 마음의 위안이 된다. 스승을 찾아가 속수례라는 절차를 밟던 그 시절 스승의 위상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 현실과는 격세지감이 있다. 특히 상당수 교사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교단을 떠난다는 소식은 우리시대 스승의 위기로 보아도 틀리지 않다. 교권 회복을 도울 범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 스승을 임금과 동일시하지는 않더라도 “선생님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4

로즈데이

사랑하는 이를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1년 내내 지속돼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때론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럴 땐 정성 담긴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매년 5월 14일은 로즈데이(Rose Day)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겐 생소하겠지만, 젊은 연인들은 이날 서로에게 장미를 선물하며 마음 속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색깔에 따라 장미의 꽃말은 다양하다. 붉은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 분홍 장미는 행복한 사랑, 하얀 장미는 순결한 사랑이라고 한다. 어느 것 할 것 없이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연인들의 미소를 부를 듯하다.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장미와 함께 향수나 립스틱을 건네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받는 사람의 기쁨이 더 커질 것이니. 실제로도 5월 14일엔 꽃가게에서 장미의 판매량이 반짝 상승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로즈데이에 얽힌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했던 시기엔 서로간의 접촉이 여의치 않았기에 장미가 덜 팔렸다는 것. 장미를 전하며 키스하는 것도 부담스럽던 몇 년이 있었다는 게 벌써 먼 옛날 기억 같다. 로즈데이를 상업적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 제조사가, 빼빼로데이는 과자 회사가 판매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로즈데이 역시 장미를 포함한 꽃을 유통하는 업자들의 마케팅 전략일까?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소박한 장미 한 송이를 전하며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사랑은 시대불문 귀하고 소중한 가치니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3

불장증시와 서민경제

증시를 해본 적도 없고 주식이라곤 한주도 가져보지 못한 증시 문외한이 보는 한국증시는 정상이 아니다. 증시란 실물경제의 성장이 밑바탕 되면서 장이 올라가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 실물경제를 보면 지금의 국내 증시는 분명 과열이다. 작년 초 2000 초반이던 코스피 지수가 불과 1년 반 만에 약 3.5배나 뛰었다. 작년 국내 주식은 76%가 급등,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달 11일 코스피 지수가 7800선을 훌쩍 넘어 8000선 고지를 코앞에 뒀다. 증권가에선 1만2000선 돌파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이다. 너도나도 빚내 증시에 덤벼들면서 신용융자 잔고가 사상 처음으로 36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신용융자 잔고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은 돈을 말한다. 파죽지세로 달려가는 국내 증시의 일등공신은 삼성증권과 SK하이닉스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전체 총액의 거의 절반인 47%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증권시장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900여 전체 종목 중 실제 오르는 종목은 200여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700여 개는 내리거나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폭등세에 가려 증시 전체가 마치 폭등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는 1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2.6% 올랐다. 주식시장 호황과는 별개로 시장경제는 고물가로 여전히 악화일로다. 장사가 안돼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도 여전하다. 증시와 실물경제 간에 놓인 괴리감을 메울 정책이 안 나오면 우리경제에 어떤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2

힘겨운 교사들

교사가 학부모에게 존경받고, 사회적으로도 보람 있는 직업으로 인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각종 생활지도, 거기에 과도한 잡무가 겹치는 것은 물론 까다로운 학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등 교사의 일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학부모 가운데는 교사를 자기 아이의 보모나 심부름꾼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교실에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학생들이 많아져 수업을 방해하거나, 학급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로 인한 교권 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교원교육학회엔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원의 사각지대 발생 구조와 개선 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거기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교 교사 248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지난 1년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와 교권 침해 빈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교사가 1306명이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한 것이다. 실제로 교실에선 수업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거나 교사와 학우들에게 폭력성을 보이는 학생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중·고교생보다는 초등학생에게서 이런 문제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학생들 탓에 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까지 없지 않다고 하니 정말이지 격세지감(隔世之感). 이젠 교사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닌 ‘힘겨운 직업’이 된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11

스님도 로봇으로?

지난 2월 일본 교토의 유서 깊은 한 사찰에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로봇스님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붓다 로이드. AI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이다. 불교 경전을 학습해 인생 상담이나 마음의 고민 같은 인간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만든 로봇스님이다. 취재에 나선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했더니 로봇스님이 답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자체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로봇스님 등장 배경으로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로 인한 인력난을 지적한다. 일본에 있는 많은 지방사찰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또 스님 한 명이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운영하는 곳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스님을 대신해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찬반 양론도 있다. 반대쪽은 종교란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로 교감을 이루는 특성이 있는데 AI가 대신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다. 한국 불교계가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의 로봇스님을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수계식에서 휴머노이드 G1 로봇스님은 ‘가비’라는 법명을 수여받고 불교 계율에 서약했다. 앞으로 부처님 오신날을 전후해 명예스님으로 활동할 예정이라 한다. 조계종은 “인간과 기술이 함께 공존해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란 말로 로봇스님 등장의 의미를 설명했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로봇 스님을 만나는 일이 멀지않아 있을 것 같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10

세한도(歲寒圖)

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달 7일부터 전시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인 ‘세한도’를 오는 10일까지 전시한 후 마감한다. 서울과 제주에서만 볼 수 있었던 ‘세한도’가 처음으로 대구에 와 전시된 후 이번 주말을 끝으로 마감된다고 하니 아직 구경 못 한 분들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보길 권한다. ‘세한도’는 가로 69.2cm, 세로 23cm 크기 작품으로 국보 180호다. 조선 문인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세한(歲寒)은 자신의 처지를 빗대 표현한 말이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고 푸르다”는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추운 겨울’이란 뜻의 세한에서 따온 말이다. 1844년 김정희는 50대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 9년간 긴 유배생활을 한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른바 위리안치형을 받아 그와 접촉하는 것조차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제자 이상적은 추사를 극진히 모시고 중국으로부터 구입한 책들을 가져다 준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추사가 선물로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초라한 집을 가운데 두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려진 모습은 자신과 자신에게 정성을 다한 이상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림 낙관에는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쓰여 있다. 이 그림은 일본인 추사 연구가 후지쓰카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후 보관하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연휴 기간이 세한도가 전하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 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아 선비의 절개가 담긴 그림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6-05-07

5월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이다. 가정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재론할 것 없이 가족. 부모와 자식, 거기서 영역을 확장하면 조부모와 손자녀를 가족이라 칭한다. 유교적 관점이 사회를 지배했던 과거 한국에선 혈연으로 얽힌 사람들만을 ‘가족’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가족의 개념도 확대되고 있다. 입양한 자녀 또는, 이복과 이부형제 역시 가족의 범주에 포함하는 게 이젠 자연스럽다. 이런 변화된 가족 형태를 웃음과 감동 속에 담아낸 영화가 있다. 개봉한 지는 꽤 됐지만 5월에 다시 본다면 그 의미가 작지 않은 작품이다. 송해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고령화 가족’은 혈통의 순수성을 절대적으로 생각해온 우리 사회에서 현대적 가족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물었다.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은 천명관이 썼다. 중년임에도 철없는 실수를 거듭하는 장남, 사회 부적응자인 차남,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막내딸, 가출과 비행을 거듭하는 손녀, 이들을 애정으로 감싸며 가족의 중심에 선 엄마이자 할머니. ‘고령화 가족’은 어째서 이 가족이 현재와 같은 입장에 처했는지, 그들이 지나온 길은 어떠했는지, 무슨 사연이 5명의 가족을 같은 공간에서 살게했는지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때론 웃고 때로는 울게 된다. 실수가 연속되고, 아픔이 반복되는 가난한 삶.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한국의 보통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실수와 아픔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게 ‘가족이 길’이 아닐까? 감독은 이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진다. 가정의 달 5월. ‘고령화 가족’을 본 후 이런 질문을 해본다.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5-06

가정의 달

5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어린이날을 비롯해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 가정과 관련한 행사가 많이 있는 달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1993년 UN은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했다.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강한 가정을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 참여를 하자는 취지로 만든 날이다. 이후 세계 각국은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하고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듬해부터 가정의날을 기념해오다 2004년부터는 법정 기념일로 정했다. 가정은 전통적으로 부부와 자녀 중심의 집단을 말하나 시대 흐름에 따라 현대 사회에 와서는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포괄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유교 문화권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가정의 교훈이다. 유교문화에서는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는 사회 질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출발점이 화목한 가정에 있다는 뜻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역시 가정의 화목이 바탕이 돼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뜻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덕목이다.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 몽테뉴는 “왕국을 통치하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했다. 가정의 화목이 기초가 된다는 동양권의 수신제가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성경에서도 “마른 빵 한조각을 먹으며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어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가정은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이지만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근본이다. 모든 가정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애가 충만하고 행복한 가정의 달이 되길 기원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05

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박탈감과 비슷한 말로는 질투를 들 수 있다. 질투가 개인적인 감정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상대적 박탈감은 질투를 유발케 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정치인이나 우리 사회 상류층이 저지르는 부정부패나 특혜를 보고 느끼는 분노, 불쾌감 등도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사전은 “다른 대상과 비교해 권리나 자격 등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라 설명한다.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대상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잃은 듯한 기분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고 한다. 서양 속담도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다”는 말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정서는 인간이기에 있을 수 있다. 최근 주식이 활황을 보이자 주식을 하지 않는 많은 국민이 소외감 내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2년 전 통계지만 국내 주식 보유자 중 상위 1%가 가진 주식이 전체 금액의 53%를 차지한다고 했다. 지금도 이런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스피 지수 6000을 넘어서자 한국증시 폭주에 환호를 보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주식 호황으로 혜택을 보는 국민은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내수시장이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활황은 일부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더 안겨줄 소지가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우리나라 적자가구는 네 명 중 한 명꼴로 조사됐다. 적자가구란 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은 가구다. 주식시장 활황이 과거 부동산 불패 신화가 낳은 상대적 박탈감의 재현은 되지 말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5-03

수난 겪는 외국인 노동자

한국 도처에 산재한 중소기업은 물론이거니와 크고 작은 도시의 식당과 주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단일 민족’이란 단어는 이제 사어(死語)에 가깝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세계는 인종과 종교,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간다. 누구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언어가 서툴러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다. 게다가 휴머니즘에 반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은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금속세척업체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산업용 에어건을 쏴 장기가 파열되는 상해를 입힌 것이다. 사업주는 “장난이었다”고 말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특정 부위에 입은 상처가 크고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아야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그 변명은 궁색하다. 사업주 나이가 60대라는데 그런 위험한 행위를 장난으로 봤다면 이른바 나잇값을 못한 것이다. 결국 사업주는 수원지법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됐다. 구속 사유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육체적 고통을 준 사람은 구속됐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받은 정신적 상처와 충격은 온전히 치유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연민과 긍휼을 가지지 않았다면 인간이라 부르기 어렵다. 우리 주위에도 수난과 억울한 일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을 돕는 게 인간의 도리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9

마라톤 왕국 케냐

케냐가 마라톤 러너의 성지라거나 마라톤 왕국이란 별명이 붙는 배경은 뭘까. 이에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케냐 선수들은 대개 해발2000~2500m 고지대에서 자라거나 생활해온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은 산소 농도가 낮아 자연스럽게 적혈구 수치와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 이는 산소를 몸 구석구석까지 운반하는데 큰 도움을 주며 평지에서 뛸 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산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케냐의 어린이는 어릴 때부터 하루 수십km를 맨발로 다닌다. 비포장 도로를 걷거나 달리면 하체근육의 지구력과 평형감각, 발바닥이 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 마라톤 하기에 신체가 구조적으로 최적화되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케냐에서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 개념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마라톤을 공동체의 생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알고 자란다. 세계적 마라토너가 되면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상금을 손에 쥐게되므로 세계적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 어릴 때부터 꿈이다. 케냐 선수는 신체 조건이나 환경, 훈련, 사회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계적 선수로 성장한다는 것이 케냐가 마라톤 강국이 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에 의하면 남자 마라톤 공인 기록의 100위 이내에 케냐 선수가 58명이 된다. 이 사실만으로 케냐는 분명 마라톤의 왕국이다. 인류가 절대 깰 수 없다던 마라톤 2시간대 벽이 깨졌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인류 최초의 신기록 수립도 케냐 선수가 해냈다. 사바스타인 사웨의 기록은 1시간59분30초. 마라톤의 신기록 도전이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8

피격 당한 미국 대통령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지난 25일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만찬. 행사장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구는 트럼프를 겨냥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날 트럼프 대통령과 아내인 멜라니아, JD 밴스 부통령 등이 자리한 헤드테이블 지척에서 산탄총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 총격범 콜 토머스 앨런이 대통령 경호국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만찬장에 있던 수백 명의 기자와 주요 참석자들은 총성에 크게 놀랐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총에 맞은 경호 요원도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 화를 피했다. 당시 트럼프는 재빨리 행사장 뒤편으로 피신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피격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 후보로 펜실베이니아 유세장에 등장했던 2024년 7월엔 총탄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사건을 겪었고, 그로부터 2개월 뒤에는 플로리다 골프장에 숨어 트럼프에게 총을 쏠 기회를 노리던 용의자가 체포되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통령 피격 사건’은 미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 1865년엔 에이브러햄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가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피격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유명하다. 1981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 레이건은 이때 생명이 오가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권력자에겐 친구도 많지만 적 또한 적지 않다. 지향하는 이념과 추진하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이 마냥 좋은 직업만은 아닌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7

황금알 낳는 반도체

도덕과 처세훈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숍우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가난한 농부 농장에 거위가 들어오자 농부는 그 거위를 요리해 먹을 생각에 집 기둥에 묶는다. 다음날 거위한테 가보니 황금알을 낳았더라는 것이다. 거위 덕분에 농부는 큰 부자가 된다. 어느날 욕심이 생긴 농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훨씬 많은 황금알이 나올 것 같아 거위의 배를 가르나 배 속은 보통 거위와 다를 바 없어 거위만 잃고 만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의 이 우화는 다른 버전으로도 양산돼 유행한다. 버전1)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소유한 아주머니는 모이를 많이 주면 더 많은 황금알이 나올거 같아 잔뜩 먹이를 주었더니 거위가 살이 너무 쩌 알을 낳지 못하게 됐다. 버전2) 돈을 토해내는 거위 이야기다. 거위 주인은 거위가 빨리 돈을 토해 내도록 하고파 욕심을 부리다가 거위가 그만 질식사하고 만다는 내용. 버전3) 긍정 버전이다. 거위가 매일 황금알을 낳아 부자가 된 한 농부는 어느날 수척해진 거위를 발견하고 거위를 숲속으로 보내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거위가 알을 놓기 시작하는데, 종전보다 더 크고 순도가 높은 알을 낳더라는 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 우화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가공돼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고음을 준다. 삼성전자 노조의 역대급 성과급 요구를 바라보는 다수의 국민 눈에는 노조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할까 걱정을 한다. 내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업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소탐대실의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7

거지방과 거지맵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3고시대를 맞아 젊은 세대들 사이에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려하는 절약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온라인 상의 ‘거지방’과 ‘거지맵’이다. 거지처럼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온라인 상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내용들은 매우 건전하며 유익하다. 거지방은 카카오톡이나 오픈채팅 등에서 운영되는 절약 공유 커뮤니티다. 절약과 관련한 생활습관이나 정보로 가득하다. 기발한 절약방법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격려와 칭찬도 주고 받는다. 거지맵은 최대한 돈을 아끼면서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지도에 표시해 놓는 사이트다.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용자가 경험한 저가식당과 메뉴들을 소개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메뉴 가격은 대체로 1만원 미만이다. 두 사람이 같이 먹어도 1만원 정도 되는 수준이다. 중국집 메뉴인 자장면은 3000원, 찜뽕은 4000원 하는 곳이 더러 눈에 띈다. 서울을 비롯해 대구와 부산에서도 거지맵이 등장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거지맵의 하루 방문자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하니 고물가 시대에 대응하는 MZ세대의 생존전략이 유난히 독특해 보이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예전에는 1만 원이면 한 끼 식사비로 충분했다. 하지만 요즘은 1만 원으로는 변변한 밥 한끼 먹기가 쉽지 않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국내 물가가 또 한 번 거센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시점이다. 당국의 물가안정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물가는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굳이 거지라는 표현을 쓰면서 고물가와 싸우는 젊은 세대의 고육책의 배경에는 우리 경제의 어두운 단면이 숨어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3

고향 등지는 청년들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기와 소년 시절을 보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보편적 바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건 이루기 힘든 꿈에 가깝다. ‘20~30대 청년이 직장을 찾아서 부모 곁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온 것일 터. 지방엔 청년세대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수치 역시 청년들의 ‘지방 이탈-수도권 진입’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서글프다. 2023년 12월에 발표된 통계청 고용동향은 수도권 청년 취업자 비중이 51.6%라고 적시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직업을 찾는 청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향하고 있는 것. 무사히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았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서울 포함 수도권 지역 전월세와 매년 월급보다 많이 오르는 물가, 여기에 홀로 지내는 외로움까지 떠안아야 하는 게 타향살이다. 경험자들은 잘 알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의 지적처럼 지역 소멸 문제는 일자리 부족과 직결된다. 일할 곳이 없는 도시라면 머물기가 어려운 게 당연지사. 여기에 더해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도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다. 어린이집 등 돌봄기관의 부족은 한국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도, 믿을만한 보육기관도 부족하니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는 청년들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2

문해력은 대화에서

중고등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대학생까지도 문해력이 약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문해력(文解力)을 다른 말로 하면 독해력(讀解力)이다.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각종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의 학생이 문해력이 떨어졌다면 학습 효과가 그만큼 떨어진다.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시급하다. 고교 수업 중 일화다. 선생님이 ‘사생대회’의 뜻을 물었더니 학생이 “죽기살기 대회”냐고 묻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학생이 있나 하면 ‘두발 자유화’의 ‘두발’을 ‘두 발’로 알고 있는 학생도 있다. 또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생각하는 학생이 있나 하면 선생님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했더니 “선생님이 욕 한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원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 인식조사를 벌였더니 교사 10명 중 9명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대답을 했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등 학생의 심층적 이해력 점수가 10년 전보다 20% 이상 하락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학생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의 과사용이 원인이라는 대답을 주로 한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긴 글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는 독해훈련이 줄어든 탓이란 뜻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정에서의 대화 부족을 이유로 드는 이도 적지 않다. 특정한 단어를 모른다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정에서 대화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문해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4-21

심각한 전철 부정 승차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거나 깨진 세상은 무질서와 혼란을 부른다. 그런 사회는 규범이 지켜지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다수가 합의해 만들어진 제도와 법은 준수돼야 마땅하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건 앞서 언급한 사회적 약속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너는 지불해라. 나는 공짜로 타겠다”고 코웃음 치며 이를 어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은 최근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올 3월까지 4년 3개월 동안 승차권 없이 전철을 이용하거나, 할인 교통카드 등을 발급 취지에서 벗어나 사용한 사례가 1만4681건에 이른다. 단속된 건수가 1만5000여 회에 가깝다면 코레일 직원의 제지 없이 부정 승차를 거듭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추정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분명 도덕적 해이다. 이 자료는 승차권 없이 이용한 사례 7699건, 경로·장애인·유공자 무임 교통카드 부정 사용 사례 4744건, 성인이 어린이·청소년용 할인 교통카드를 쓴 사례 2238건이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담고 있다. 부정 승차가 발각되면 운임의 최대 30배를 물어야 한다. 2025년 부정 승차 부과금은 2억9600만원. 2024년에 비해 51.8%p나 가파르게 증가했다. 600만원이 넘는 부과금 처분을 받은 사람도 있다. 양심을 집에 두고 전철에 오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신호로 읽힌다. 높은 부과금만이 해결책은 아닐 듯하다. 사회적 약속을 지키겠다는 개개인의 의지가 없다면 앞으로도 전철 부정 승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