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최고의 오락이던 시절이 있었다. 화제를 모은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의 마지막에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그래도 영화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가와 정가의 2~3배 가격에 “암표를 사라”고 속삭이는 이들도 흔했다. 극장에서의 데이트도 20세기 연인들에겐 즐거움이었다. 청춘남녀가 팝콘과 콜라를 나눠 먹으며 캄캄한 객석에서 은근슬쩍 서로의 손을 잡던 기억들. 둘의 손바닥에 촉촉하게 배어 있던 땀. 그런데, 시대의 변화 탓인지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643만7886명. 한 해 전 같은 달의 관객 수 1169만7143명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운 45%가 줄었다. 당연지사 매출액 역시 반토막이 났고, 이를 걱정하는 극장 사업자의 한숨이 깊어졌다. ‘영화의 르네상스, 극장의 전성시대’가 끝나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라는 게 영화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극장의 위기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괄목할 만한 약진이 아닐지. 올해 1분기만 봐도 극장에 걸린 영화 중에는 눈에 띄는 대형 히트작이 드물지만, OTT가 내놓은 ‘폭싹 속았수다’ ‘오징어게임 시즌 2’ ‘중증외상센터’ 등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극장이 획기적인 회생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 영화 제작과 감상 시스템의 주도권을 OTT가 쥘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는 게 보편적인 시대가 곧 올 듯하다. 아니, 이미 왔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21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해양 기름 유출 사고는 2010년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다. 바다 속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취 탐사하던 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름이 유출된 사고다. 이 사고로 해양생물 피해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됐다. 내일(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70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1969년 캘리포니아주 해상에서 대규모 해상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지구의 날 제정을 주창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진 날이다. 1972년 스웨던 스톡홀름에서 113개국 대표가 모여 민간환경 선언을 했고, 1990년에 와서 세계적 규모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다르게 순수 민간운동으로 출발한 날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고 2009년부터 지구의 날 전후 일주일 간을 기후변화 주간으로 지정, 운영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생활실천을 위한 행사도 벌인다. 특히 환경부 주관으로 매년 4월 22일을 전국 소등의 날로 정해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행사를 권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과 자치단체에 따라서는 대형육교와 타워 등의 불도 잠시지만 꺼진다. 대기업들의 소등행사 참여도 늘고 있다. 지구의 날 선언문에는 “인간의 환경파괴와 자원낭비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의식을 일깨우고 지구의 날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소등행사다. 많은 이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0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포퓰리즘. 6·3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주 4.5일제 근무 도입을 두고 여야가 경쟁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주 4일제를 제안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주 4.5일제 근무를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 형편에 주 4.5일제가 적합한지 여부는 깊이 더 살펴볼 문제다. 국민 여론도 참작돼야 할 문제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로마멸망 원인의 하나로 포퓰리즘을 꼽는 이도 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을 안해도 빵을 주고 원형 경기장에서는 검투사 대결과 같은 축제를 연일 열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재정 낭비가 결국 로마멸망의 원인이 됐다는 이론이다. 남미의 쿠웨이트로 불리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였던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도 포퓰리즘 때문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국가 재정의 73%를 무상복지에 쏟아부어 2017년 이 나라는 국가부도를 맞는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옳고 그름을 외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앞의 사례처럼 국가부도로 종결된다. 무상급식과 같은 정당한 일부 정책이 정치 다툼으로 포퓰리즘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등장하는 포퓰리즘, 국민적 경계가 필요하다. 3년 걸렸던 군 복무 기간이 선거 몇 번 거치는 동안 18개월로 줄었다. 병장 월급 200만원 역시 포퓰리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미래의 불행을 막는다. 국가부채 1200조 원 만해도 감당하기 힘든 우리나라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7
금요일 오후에 퇴근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고, 월요일 출근하는 주 4.5일 근무제가 국민의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 4일 근무제를 주요 민생 의제로 선정해 공약화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일과 개인의 삶이 조화롭게 균형 잡히기를 원하는 21세기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진지하게 응답한 격이라 많은 이들이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주 5일제와 주 52시간 근로 규제는 시대의 흐름과 산업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제도라 생산성과 자율성 모두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 외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울산 중구청의 사례도 언급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검토하는 주 4일 근무제와 국민의힘이 공약으로 내놓은 주 4.5일 근무제 중 어떤 것이 노동자들의 워라밸을 높이는데 효과적일 것인지는 향후 제도 실행방안 등이 구체화되면 비교해 볼 수 있을 터.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한국의 노동자 대부분은 토요일 오전에도 일하는 주 5.5일 근무를 했고, 업종에 따라서는 일요일과 국경일 특근도 거부할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돌아보면 ‘노동자 잔혹시대’였다. 이제 ‘적절한 휴식이 일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좋은 변화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 방향은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지향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6
기후학자들은 지구 상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원인은 엘니뇨 현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엘니뇨 현상이란 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기후변화를 말한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 순환과 강수 패턴에 변화를 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우박이 떨어져 100여명이 다쳤다. 우박의 일반적 크기는 0.5~5cm 정도인데, 이날 떨어진 우박은 직경 7~8cm로 테니스공만 했다. 한여름 강물에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지구 상의 이상기후는 전 세계적 뉴스다. 엘니뇨는 남아메리카 서해안에서는 홍수와 폭우, 동남아시아에서는 심각한 가뭄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북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폭설과 한파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런 기후변화는 농업과 수산업 등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기후변화에서 예외는 아니다. 평균기온 상승과 더불어 아열대 기후로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이상기후 발생 빈도도 잦아 기후변화 대응에 민감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는 기상청 관측이래 처음으로 4월 중순에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 현상이 빚어졌다. 전국에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오면서 기온마저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장롱에 넣어두었던 겨울 점퍼를 다시 꺼내 입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기후변화가 단순한 변덕만으로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5
홍성식(기획특집부장) 봄과 가을 2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0~80년대 초등학생들은 소풍 가는 날을 너나없이 기다렸다. 김밥과 사이다 한 병, 평소엔 엄마가 잘 사주지 않던 과자까지 몇 봉지 조그만 가방에 넣고 학급 전체가 1시간쯤 걸어 유원지나 동물원을 향했다. 아이들답게 목적지로 가는 내내 친구끼리 장난을 치고, 별 것 아닌 이야기에 크게 웃었던 소풍. 도착하면 노래와 춤으로 흥겨운 장기자랑과 공책이나 연필을 선물로 주는 보물찾기라는 재밌는 놀이가 이어졌다. 그보다 한 세대 전에는 멀리 걸어가 야외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다는 뜻으로 소풍을 원족(遠足)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아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동시에 일상을 벗어난 짧은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했던 소풍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현장 체험학습(소풍)을 나갔던 초등학생이 사망한 사고에 교사의 형사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학교 측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의 안전사고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쉽지 않으니. 거기에 더해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의 무거운 책임감과 업무 부담도 소풍을 꺼리는 세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학생들 역시 과거와 달리 매번 비슷비슷한 행사 패턴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단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러 학교가 현장 체험학습을 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안전’에 대한 가치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소풍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학생들의 안전과 학창 시절의 추억. 2가지 모두를 포기하지 않고 소풍을 즐길 묘책은 없는 걸까? 어려운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14
우정구 논설위원 산업단지 노후화 문제는 우리보다 산업화가 먼저 일어났던 서구에서는 오래된 과제였다. 노후산단으로 산업이 쇠퇴기를 맞고 청년들이 떠나면서 도시의 몰락을 경험한 도시들은 해외에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도시 가운데 노후산단의 부흥을 통해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거나 관광산업 등을 진작하면서 도시의 재기에 성공한 경우도 또한 적지 않다. 빌바오 효과로 유명한 스페인의 빌바오시는 철강산업이 무너진 위기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관광산업도시로서 유명해졌다. 영국 맨체스타 트레퍼드파크 산업단지는 1890년대 조성된 세계 최초 산업단지다. 그러나 영국의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추진한 재생사업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지금은 전성기 이상의 활황 경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전국 최초로 국가지정 1호 문화산단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1호 국가산단이 1호 문화산단으로 지정되면서 갖는 역사적 의미도 있거니와 문화산단으로 변신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문화산단이란 노후산단을 혁신해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미래형 융합산단을 이르는 말이다. 구미시는 이번을 계기로 1조9000억원을 투자해 구미산단 전체를 문화산업 복합형 미래산단으로 확 바꿀 계획이라 한다. 일본의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신도시를 모델로 삼겠다고 한다. 미나토미라이는 1980년대 동력을 상실한 조선 중심의 도시를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을 유치하고 일본 3대 미항으로 변신한 곳이다. 구미시의 문화산단 지정과 이에 따른 사업 구상이 일본 미나토미라이를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문화산단 성공 사례로 남길 기대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3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어디까지 뻗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9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상호관세를 84%로 높이는 행정명령에 또다시 서명했다.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이제 중국에 모두 104%의 관세를 부과하게 된 셈이다. 이러자 10일 중국도 미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또다시 8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두 나라 간 관세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는 두 나라의 관세 전쟁을 핵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 자동차 게임이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는 게임으로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양쪽 다 크게 다치는 게임이다. 1950년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을 한창 벌일 때, 세계는 두 나라의 경쟁을 치킨게임이라 불렀다. 역사상 국제사회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치킨게임을 벌인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전쟁에 휘말린 경우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힘센 강자들 싸움에 아무 관계없는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를 표현한 말이다. 미중의 관세전쟁에 지금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증시도 9일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은 두 나라의 치킨게임 영향력 안에 있는 나라다. 중소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을 벌써부터 걱정한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우리 처지 아닐까. 나라든 기업이든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0
홍성식(기획특집부장)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주목받는 병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치매’다. 대뇌 신경세포의 손상이 지능, 의지, 기억 따위를 상실시키는 치매는 대부분 노인들에게서 발병한다. 증상에 따라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여섯 살 철부지 아이처럼 행동하며, 심지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는 치매는 세상 누구도 걸리고 싶지 않은 병이 아닐까. 이와 관련,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 하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팀은 2만4107명을 대상으로 결혼 여부와 인지 장애의 연관성을 오랜 기간 조사했다. 인지 상태에 대한 신경 심리학적 검사와 임상의의 평가가 겸해진 18년 동안의 추적·관찰에 의하면 사별·이혼·미혼인 사람들이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보다 치매 발병 위험성이 40%가량 낮았다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 친구, 이웃과 사회적 교류가 활발했고 보다 자립적이었다. 이런 게 인지 능력 유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연구팀의 부연.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사멸을 불러와 치매 위험성을 높인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결혼이란 관계를 불화 없이 유지시키기 위해선 적지 않은 스트레스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혼을 꺼리는 세태에 더해 과학적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니 앞으론 “나는 치매에 걸리기 싫으니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을 듯하다. 이래저래 결혼이 홀대받는 시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9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혼인 건수는 모두 7986건이다. 전년도 보다 53.2%가 증가했다. 증가폭만 보면 전국 평균치(14.8%)의 3.6배나 된다.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계산한 혼인율도 남성이 12.6건, 여성이 12.4건으로 전년보다 모두 4.3건씩 증가했다. 전국 시·도 가운데 혼인 건수와 혼인율 모두 당연히 1위다. 1990년 혼인관련 통계 작성 후 혼인율 1위는 대기업이 많은 서울과 경기, 울산이었다. 이후 행정수도가 이전해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이 9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는 대전이 세종시를 꺾고 1위에 등극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인구추이 속에 대전의 혼인율 증가는 뜻밖의 소식이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방도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살펴볼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대와 30대 청년층 유입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SK온이나 글로벌 바이오기업 머크사 등이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청년층이 늘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지역유치가 관건인 셈이다. 지금 대전은 대기업 자회사와 상징기업 등이 늘면서 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것도 젊은이가 오는 중요 포인트다. 대전시는 신혼부부에게 일시에 5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도 은행과 협력해 돕는다. 그밖에 임산부 배려문화 조성 등도 혼인 증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젊은이가 빠져나가 소멸 위기를 느끼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본받을 내용이다. 좋은 기업이 있고 살기좋은 환경만 되면 서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8
홍성식(기획특집부장) 4월 4일 오전 11시 22분부로 윤석열 씨는 이름 앞에 ‘전 대통령’이란 단어를 붙이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후 최고 권력자에서 필부(匹夫)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것.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을 거쳐 검사가 되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으며, 영화를 방불케 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그는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하고 권좌에서 밀려났다. 지난해 12월 3일 밤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국회의 탄핵 의결, 탄핵 찬성과 반대를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국민들, 그리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 어느 때보다 긴장감 넘치는 숨 가쁜 시간이었다. 적지 않은 미래 계획과 발전 정책을 세우고 시작된 윤석열 정부가 허망하게 무너진 이유는 뭘까? 국민들로선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을 터.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의 통치가 ‘귀’가 아닌 ‘입’으로 행해졌다는 게 아닐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한 자세로 듣고 거기서 배울 것을 찾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의 기본이다. 그래서다.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백성의 고충을 듣는 귀를 가지는 것이 권력자의 최고 덕목”이라 설파했다. 명령하는 ‘입’이 아닌 듣는 ‘귀’를 가지기 위해선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현명한 왕도, 좋은 대통령도 될 수 없는 법. 아집과 독선만으론 타인을 설득할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치하문의 태도’를 가졌던가? 돌아보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7
우정구 논설위원 탄핵 정국이 막을 내렸지만 한국 경제가 걱정이다. 한국 경제의 비관적인 전망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OECD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수정 발표했다. 이는 작년 12월 발표한 전망치 2.1%보다 0.6%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그럼에도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은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1.2%에서 0.9%로 낮추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경제 전문기관의 경기 전망치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8%로 제시한 바 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이 선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5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발 관세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국을 상대로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세계가 비상이다.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가 0.49%나 떨어질 거란 예측도 나왔다. 한국 경제계도 초비상이다. 한국은 GDP의 40%를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다. 미국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무역흑자만 557억 달러가 발생한 나라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의 무역마찰 수준을 넘어 한국경제에 충격적 타격을 준다는 면에서 긴장감이 높다. 정치적 혼란을 겪는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경제계는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달라”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특히 소상공인단체는 내수부진으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소상공인을 도와 달라고 했다. 국민에게 민생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보다 경제가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6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민족에게는 바쁜 농사철에는 일을 서로 나눠 하는 좋은 전통 관습이 있다.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조직한 두레나 품앗이 등이 그것이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필요할 때 부르고 달려가 도와주는 상부상조 정신의 협동조직이다. 농업이 주된 기반인 농촌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마을 단위의 협력조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사회가 형성되면서 어려울 때 남을 돕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다. 이런 상부상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본심이 선량하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으면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보태면 한 사람을 돕기가 쉽다는 말이다. 역시 상부상조 정신과 통하는 표현이다. 영남지역 산불의 피해복구와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0억 원을 쾌척한 기업이 있어 화제다. 다단계 기업인 애터미(주)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00억 원을 전달했는데, 지금까지 모금회에 전달된 성금 중 역대 최고라 한다. 원래는 애터미 직원들의 자조 모임에서 산불 피해 회원을 돕기위해 시작한 것이 회사가 참여하면서 100억 원대로 커진 것이라 한다. 경북 산불피해가 알려지면서 각계의 성금들이 줄을 잇고 있다. 포스코 그룹이 20억 원, 포항의 삼일가족이 1억 원을 기부했으며 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기관, 연예인, 개인 등 성금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국채보상운동의 본거지인 대구와 경북의 상부상조 정신이 경북 산불 피해주민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성금이 피해주민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길 기원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3
홍성식(기획특집부장) 경북 일대를 초토화시킨 산불의 상흔이 크고도 깊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재난의 복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유사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단단한 채비도 갖춰야 마땅하다. 한국인 대부분은 정이 넘치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화마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국민성금이 불과 며칠 사이에 800억원 가까이 모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살고 있던 집과 정성껏 키우던 농작물을 사나운 불길에 빼앗긴 이재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다독여줄 손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을 터. ‘더불어 사는 공동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재해로 인한 수난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미얀마에서도 1948년 나라가 독립한 이후 가장 큰 지진이 발생해 3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아직 무너진 건물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의 구조가 진행 중이라 사망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뉴스도 들려온다. 군사독재와 내전(內戰)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더해 지진으로 인한 생지옥까지 펼쳐지고 있으니 미얀마의 사정이 딱하고 측은하다. 연민과 동정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다. 이 땅 옛 어른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의 수난과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가르쳤다. 다행히 땅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져 비탄에 빠져 있는 미얀마 국민들을 위한 구호의 움직임이 늦지 않게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산불 이재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정’을 미얀마에도 기꺼이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2
우정구 논설위원 올해는 우리나라가 식목일을 지정한 지 80년 되는 해다. 식목일은 지정 3년만에 국가 공휴일로 다시 변경됐다. 해방 무렵만 해도 우리나라 산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식목일 제정은 범국가적 행사를 통해 황폐화된 우리 국토를 푸르게 가꾸어 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기념일이다. 식목일 날짜는 조선시대 임금이 참석하는 친경(親耕) 행사에서 유래했다. 매년 음력 3월 임금이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농단에 나가 농사를 직접 짓던 날을 식목일의 기념일로 잡은 것이다. 식목일이 정해진 후 과거 수십 년 동안 이날이 되면 관공서는 물론이요 학생, 직장인 등 모든 국민이 나무심기에 총동원됐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식목일 행사가 진행되면서 1960년대 들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산림녹화의 모범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발표했다. 국토의 63%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지금 전국 방방곡곡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해방 이후 온 국민이 산림녹화에 노력한 결과다. 잘 가꾸어진 산림에서 국민이 받는 혜택과 가치는 무진장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나라를 풍성하게 하며 국민들에게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경제성장에 주력하던 어느날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따라 2006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그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경북에서 발생한 산불로 서울시 면적에 가까울 만큼 산림이 타버렸다. 이번 식목일은 자랑스러운 우리 산림녹화의 역사와 산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1
지난 한 주. 산불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북 북부 일대의 산림과 주택을 잿더미로 만든 화재는 국가적 재난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그 외 경남, 경기, 호남 일부 지역에서도 각기 규모가 다른 산불이 발생했다. 불길이 숲과 나무를 태우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당연지사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진화 수단과 최대치의 인력을 동원해 불을 끄는데 집중하게 돼있다. 그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인 동시에 재난 앞에 선 소방 인력의 의무니까. 하지만, 사람의 힘과 계획만으론 속수무책인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번 ‘전국 동시다발 산불’도 수많은 소방관과 관계 기관 공무원 등이 화마의 위협 속에서도 피땀을 쏟았고, 현대화된 진화 장비가 적지 않게 동원됐지만 일주일 가까이 완전한 불끄기에 이르지 못했다. 산불이라는 거대 재난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주불 잡기와 잔불 정리, 재발화 가능성 차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짧은 시간이지만 굵게 쏟아져줬던 ‘비’였다. 이를 ‘하늘의 힘과 계획이 곤궁에 처한 인간을 도운 격’이라고 말해도 타박할 이들은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선현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지천계 불여 천지일계(人之千計 不如 天之一計)”. 인간은 천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그건 하늘이 예비한 하나의 계획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일 터. 다행히 이번엔 천계(天計)가 인재(人災)를 막아줬다. 하지만, 언제까지 ‘하늘의 힘과 계획’에만 기댈 것인가? 재난에 맞설 철저한 준비는 결국 인간의 몫이 아닌가. 이젠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31
우정구 논설위원 의성산불이 7일째 계속되던 날. 한 소방관이 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은 야외 주차장 땅바닥에 얼굴을 감싼채 누워있는 소방관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의 사진은 아스팔트 바닥에 지쳐 누워있는 또 다른 소방관 모습이다. 계속된 화마와의 사투에 지쳐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몸을 바로 눕힌 듯한 소방관들의 모습이다. 사진은 70만 건 조회를 기록했고 누리꾼들은 “몸조심 하시라”는 등 소방관의 안전을 걱정하는 댓글들을 올렸다.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의성산불 진화의 주인공은 역시 소방관이다. 괴물처럼 신출귀몰하는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의 헌신적 노력은 직업정신을 논하기 전 그들의 숭고한 희생봉사정신에서 모두가 감동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그들이 있기에 국민의 안전이 지켜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면 한해 5명꼴로 소방관들이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번 산불 진압과정에서도 소방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소방업무는 늘 사고를 곁에 두고 있다. 한 소방관의 말처럼 “죽을 뻔했다”는 말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체험으로 느끼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소방을 전담하는 금화도감이 있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이를 금화군으로 불렀고, 이후에는 불을 멸한다는 뜻에서 멸화군으로 불렸다. 비록 이름은 달라졌지만 화재와 재난에 대응하는 소방관들의 소임은 지금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위험에서 달아나지만 누군가는 위험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는 말이 생각 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30
우정구 논설위원 기우제는 가뭄이 오래가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비는 국가나 마을 단위의 제례 의식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왕이 몸소 기우제를 올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나 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음력 매년 4월에서 7월 사이에 기우제를 거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에는 기우제가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여겨졌다. 기우제 기간에는 국왕과 백관들은 근신을 했다. 국왕은 정전이 아닌 바깥에서 정무를 보고, 임금의 수라상 반찬 가짓수도 줄였다고 한다. 도룡뇽 기우제라는 게 있었다. 도룡뇽을 비바람을 일으키는 용의 일종으로 보고 그를 향해 기도 드리는 방식이다. 단지에 도룡뇽을 담아놓고 아이들에게 “비를 내리게 해주면 풀어준다”는 식의 주문을 하게 하는 의식이다. 벼농사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는 기우제를 어떤 제례의식보다 중시했다. 그 종류도 많고 제사 대상의 신도 많다. 묘파기, 디딜방아 훔치기, 물병 거꾸로 달기 등이 기우제에 동원된 풍속물이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는데 쓰는 농기구지만 사람의 힘이 가장 많이 축적된 기구란 뜻에서 의식의 도구로 잘 활용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훔친 디딜방아를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두고 악귀와 질병을 쫓았다고 한다. 미국 인디언들이 지내는 기우제는 반드시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게 아니고 기우제를 한번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하기 때문이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 북동부 산간 농촌마을을 초토화 시켰다. 비가 와야 불길을 잡을 것 같은데 온 국민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형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7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사실 관계를 다루는 신문 사회면 기사는 어지간해선 은유나 상징, 비유의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 게 묵시적인 불문율이다. 그럼에도 발생한 사고나 사건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하게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엔 간혹 그 약속이 깨지기도 한다. 5일 넘게 경상북도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의성 산불’은 산림 파괴와 주택 소실이라는 재산 피해와 함께 적지 않은 인명 피해까지 낳았다. 인간의 목숨은 무엇보다 귀한 가치다. 화마에 희생된 사람의 가족들 심정을 떠올리면 참담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의성에서 시작돼 인근 안동시와 청송군, 거기에 영양군과 영덕군까지 위협한 이번 산불을 신문과 방송에선 ‘괴물’ ‘악마’ ‘좀비’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기자들이 의인화(擬人化·사람이 아닌 걸 사람에 빗대 표현하는 것)된 문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상황이 짧지 않은 시간 계속됐다. 불이 난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어려움 속에서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과 공무원을 무시로 겁박하고 있었으니 경북 일대를 공포와 공황 속에 빠뜨린 이번 산불을 좀비, 악마, 괴물로 부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화재로 인한 매캐한 연기와 살인적인 열기는 피어나는 화사한 꽃들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설계해야 할 경북민들의 봄까지 빼앗아갔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는 법. 조속한 진화와 철저한 재발 방지책의 수립으로 다시는 이런 절망과 피폐의 시간이 오지 않길 바라는 게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26
우정구 논설위원 올 1월 7일 미국 LA에서 발생한 산불은 같은 달 31일까지 불길이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산불로 기록된 화재다. LA 카운티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산불은 긴 시간만큼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불탄 면적이 샌프란시스코 면적을 능가할 정도였고, 불탄 자리는 핵폭탄을 맞은 히로시마에 비견되기도 했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재민만 20만명이 넘었다. 미국의 한 미디어그룹은 피해 규모를 2750억 달러(한화 40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산불로 LA 전역은 심각한 대기오염이 유발됐으며 예정된 스포츠 경기 등은 모두 연기됐다. 산불을 틈타 빈집털이가 성행해 경찰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산불이 몰고 온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며 복잡했다. LA뿐 아니라 지금은 북미와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산불이 자주 일어나 나라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2023년 하와이에서는 산불 발생으로 100명이 숨지고 1300명이 실종되는 일도 벌어졌다. 산불 발생의 직접적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일어나지만 발화한 산불이 급속도로 커지는 데는 기후변화라는 숨은 이유가 존재한다. 지구 온난화 후 일어나는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사실상 산불 발생의 주범이다. 가뭄에 말라버린 식물은 불쏘시개가 되고 강력한 강풍은 화마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우게 된다.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군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며칠째 불길이 잡히지 않은 것도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 때문이다. 지구환경에 순응하는 인간의 진실된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감당키 어려운 재앙에 직면할지 모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