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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트럼프와 신라 금관

선택된 한 인간이 왕이 되어 신(神)과 하늘을 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백성을 거느렸던 고대 왕국. 금관(金冠)은 바로 그 왕이 머리에 올린 집중된 권력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2000여 년 전 태동한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렸다. 금을 세공하는 기술이 당시 존재했던 지구 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났고,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 통치자에게 바칠 미학적으로 빼어난 금관을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서며 탐사·발굴을 통해 신라 왕들의 무덤에서 몇 개의 금관이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찾아낸 고대 왕국의 금관은 세계를 통틀어도 10여 개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절반이 신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금관이다. 희소성으로 인해 금은 수천 년 전부터 귀하게 여겨졌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금에 대한 욕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대를 지나 중세와 근대에 이르러선 금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전쟁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약소국을 점령한 제국주의 국가는 가장 먼저 식민지의 금을 제 나라로 실어 날랐다. 귀한 금으로 만들어진 얼마 되지 않는 고대 금관은 좋건 싫건 인류의 주요 문화유산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경주를 찾았다. 경주는 ‘황금왕국’ 신라의 옛 도읍이다. 한국 대통령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신라 금관 모형을 전달했고, 크게 기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업인 출신의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을 각종 황금 장식물로 꾸밀 만큼 금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모형이지만 신라 금관은 그에게 맞춤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30

‘안가관리법‘ 제정을 허(許)하라

12·3계엄 직후 안가에서 모임을 가진 이상민·박성재 전 장관과 이완규 전 법제처장, 김주현 전 민정수석 등 ‘4인방’은 최근 특검 수사로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대통령 아닌 국무위원들도 손쉽게 안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경호상 기밀사항이기도 하지만 안가가 몇 채나 되며 누구까지 이용이 허용되는지 국민들은 모른다. 미국 드라마에서 안가는 FBI나 마약단속국의 주요 증인이나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안가는 권력자와 재벌간 비밀회동을 통해 뇌물이나 특혜를 주고받는 자리, 또는 고관대작들이 비싼 양주, 귀한 요리와 함께 화류계 여인들과 술자리를 갖는 은밀한 곳으로 연상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잦은 술자리나 재벌 회장과 회동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부패가 이곳 안가에서 발생하고 행해진 까닭이다. 그만큼 한국의 안가는 떳떳하지 못한 모임을 할 때 이용되는 음습한 공간이다. 이제 사적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안가들은 없애고 경호상 꼭 필요한 안가들도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술이 당긴다고, 또는 친목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굳이 혈세를 낭비하며 안가를 이용할 이유는 없다. 저잣거리 식당과 술집은 널려있다. 그간 안가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춘향가에 나오는 못된 벼슬아치들처럼 ‘백성들의 고혈로 호사스런 술독의 맛있는 술과 옥쟁반 위 기름진 안주‘ 를 훔쳐 먹는 ‘세금 도둑질’을 얼마나 저질렀을지 모를 일이다. 그간 우리 국민들은 고위 공직자 등 권력자들의 특혜나 방종에 너무 관대했다. /류승완(중부본부장)

2025-10-28

오래 사는 게 불행인 나라

의료 기술의 발달과 예전에 비해 훨씬 위생적인 생활환경, 여기에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각종 건강 정보의 확산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세기처럼 나이 예순을 맞아 환갑잔치를 벌인다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 됐다. 노인 인구의 가파른 증가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의 모습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노인을 홀대하고 은연중에 무시하는 모습 또한 알게 모르게 분명히 존재한다. 헬스클럽에선 나이 많은 회원의 가입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일부 카페는 ‘노 키즈존’에 이어 ‘노 시니어존’ 팻말을 내걸고 영업을 한다. 어떤 골프장은 70세 이상 노인에겐 회원권을 판매하지 않는다. 사회적 푸대접과 배제만이 아니다. 노인들이 겪고 있는 개인적 현실 또한 평탄하지 않다.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38.2%)과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40.6명)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경제적 궁핍이 고령층 삶의 의지를 꺾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여기에 더해 지난 6월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도 위험 수준으로 읽힌다. 2024년 노인보호 전문기관 신고 등을 통해 노인학대로 인정된 사례는 모두 7167건. 10년 전인 2014년 3532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학대의 사례는 가정, 노인 생활시설, 병원, 공공장소를 막론하고 발견됐다. 젊은이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며, 가난한 환경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못한 채 정신적·육체적 학대까지 당한다면 오래 사는 게 축복일 수 있을까? 바뀐 시대 노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사회적·법적 제도의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7

명성황후와 김건희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해 3월 경복궁 곤녕합을 비공식 방문했다. 곤녕합은 중전 침소로 1895년 일본 자객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참혹하게 살해된 을미사변의 종착점이다.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 부부는 10분간 오롯이 둘이서만 ‘모종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윤 대통령 측은 “문화유산 홍보를 위한 현장 사전 점검”이라는 명분을 세웠다. 하지만 명성황후 원혼이 가득 서렸을 법한 곤녕합에서, 배석자를 모두 물리치고 둘이서만 문화유산 홍보 고민을 했으리라고 믿을 국민은 없다. 더욱이 무속과 주술의 그림자가 덧씌워진 이들 부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한때 곤녕합의 주인이었던 비운의 명성황후도 그러했다. 명성황후는 일개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벼슬까지 내리고, 무속에 심취해 수많은 국고를 탕진했다. 곤녕합에 깔려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48마리 분량의 표범 카펫은 명성황후의 사치 행적을 비판하는 소재로 종종 회자된다. 명성황후의 무속 심취·사치 취향은 윤 대통령 부부의 행적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김건희씨는 풍수전문가 백재권, 도사 천공, 건진법사와 수시로 소통해왔다. 또 서희건설의 1억1000여만원 어치의 목걸이 브로치 귀걸이, 사업가 김모씨의 3500만원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통일교 6200만원 그라프 목걸이 등 김씨가 받은 뇌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쯤이면 명성황후의 표범카펫 취향을 훨씬 뛰어넘는다. 무속과 사치, 사적권한 남용에 집착하면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러시아제국 비선 실세 라스푸친이 그러했고, 3000켤레 구두를 소장했다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가 그러했고,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가 그러했다. /류승완(중부본부장)

2025-10-26

지구촌 Z세대의 반항

지구촌 곳곳에서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Z세대의 대규모 시위가 연쇄적으로 벌어져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네팔과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Z세대의 반정부 시위로 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추방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달 네팔정부가 유튜브, 페이스북 등 26개 소셜미디어 접촉을 차단하면서 일어난 Z세대에 의한 시위는 실상은 수십 년간 누적된 정치권의 부정 부패에 대한 Z세대의 항거로 해석이 된다. 1인당 GDP 500달러를 45년째 유지하는 마다가스카르는 최근 실업률이 40%로 올라서자 청년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대통령 교체를 넘어 지금은 그들의 요구가 반영된 체제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네팔과 마다가스카르의 Z세대 시위가 성공을 거두자 모로코, 케냐, 이란, 인도네시아 등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Z세대의 반정부 시위가 번지면서 Z세대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Z세대란 1990년 후반에서 2010년 후반에 태어난 세대로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휴대폰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인류 최초의 디지털 세대다. 나라마다 조금 다르지만 혁신과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세대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관행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 갈 미래세대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떤 정파에 치우치기보다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는 유동적 사고를 가진 세대다. 경제적 불평등이나 부정부패에 매우 부정적인 특징이 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가 기성세대에 대한 Z세대의 일시적 도전일까. 아니면 세대교체란 큰 흐름으로 이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3

축의금의 크기와 축하의 크기

사회 전 분야에서의 가파른 물가 상승이 서민의 삶을 갈수록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결혼식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하객에게 대접하는 식사와 신부 드레스, 메이크업 등 결혼식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평균 2160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경우엔 그 비용이 3509만원이었다. 고비용 결혼식이 일상화되면서 친척이나 친구의 결혼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는 2025년 8월 현재 결혼식 하객 식대의 중간 가격이 6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 5만원짜리 한 장을 봉투에 넣으려면 어쩐지 낯이 뜨거워진다. 내가 먹은 밥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 사회 초년생의 푸념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마다 축의금 고민이 커진다는 중년 남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축하 메시지와 축의금만 보내고 결혼식엔 가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얼굴을 마주하고 제2의 삶을 설계할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주려면 두둑한 축의금부터 마련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결혼식 기사를 보면 수백만 원을 넘어 수천만 원, 심지어 억대의 축의금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무슨 미담인양 담겨 있다. 이런 기사는 5만원의 축의금도 준비하기 힘든 이들을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든다. 축의금의 크기가 축하의 마음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어쨌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청첩장이 무서울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2

금테크 경계령

방송인 김구라씨의 금테크가 화제다. 그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5년 전 “금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1억원 정도를 샀는데 지금은 3억 5000만원이 됐다며 금테크 과정을 자랑스럽게 말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금테크가 공개되면서 한국은행이 김구라보다 금테크를 못했다는 국정감사에서의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금을 사들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최근들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는 것과 비교해 한국은행이 금테크에 소홀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세계 10위권에 있으면서도 금 보유량은 38위에 머물러 있는 현실 사정을 국회가 지적한 것. 올들어 금값은 연초보다 50% 넘게 급등했다. 미국의 금리인하 전망과 달러화 약세, 지정학적 긴장감 등이 작용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가치가 급부상한데 따른 영향이다. 김구라씨 보다 앞서 영화배우 전원주씨의 금테크도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전씨는 2022년 당시 한 방송에서 ‘아껴서 부자된 스타’ 1위에 등극되면서 주식 30억원, 금 10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소개됐다. 당시 금값이 30만원 하던 때여서 지금 시세로 따지면 그녀는 금값만 약 27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최근 시중에는 금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국내 금값이 국제시세보다 13.2%나 높게 형성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인다”며 일물일가 원칙에 따른 단기 급등 후 조정을 경계하라 했다. 금테크도 좋으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 교훈도 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1

바람피우면 단명한다?

‘건강하게’라는 전제 조건만 붙는다면 오래 살고 싶은 건 대다수 인간의 부정할 수 없는 욕망이다. 그렇기에 병에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는 오랜 기간 지속돼온 과학계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건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은 80.6세. 여성은 이보다 5.8년이 더 긴 86.4세였다. 실제로도 우리 주변을 보면 장수하는 여성을 오래 사는 남성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외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이성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가 과도한 것이 한 가지 이유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독일의 한 진화인류학 연구소는 포유류와 조류 1176종의 데이터를 분석해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 중엔 다음과 같은 추정이 담겼다. ‘짝짓기 경쟁은 동물의 수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포유류일수록 수컷의 수명이 눈에 띄게 짧다.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한 필사적 경쟁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번식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그 대가로 자신의 수명을 깎아 먹는 셈이다.’ 위는 고릴라 등 영장류의 사례를 분석한 것이지만, 인간이라고 크게 다를까?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적·정신적 에너지는 다른 어떤 것 보다 크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장수하려면 일부일처제를 성실하게 따르라’는 조언이 나올 것도 같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1

의사 과학자

의사 과학자란 의사면허를 가지고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직 의사를 뜻한다. 과학과 공학, 의학을 융합해 혁신적 치료법을 발굴하고, 신약 개발을 통해 의료기술을 향상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맡는다. 우리나라 의사 양성과정은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 양성에만 집중돼 있다. 국내서 배출되는 연간 의대졸업생 3000여 명 가운데 기초과학을 진로로 선택하는 졸업생은 전체 1% 미만이다. 연구비 지원이나 연구기회 부족, 임상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보수 등 제도적 미비로 의사 과학자 양성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의료기술과 서비스 수준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다만 의학발전을 뒷받침할 의료과학 분야에서의 인재 양성이 등한시되고 있는 게 문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출에서 이런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한국은 매년 전국 최고의 인재가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라면 노벨 의학상 수상자 탄생은 기대 난망이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제도를 가진 일본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이미 여러 번 배출했다. 올해도 의사과학자이자 교수인 사카구치 시몬씨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미국과 공동수상을 받았으나 생리의학 분야에서 벌써 6번째다. 덧붙인다면 일본은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만 27번 나왔다. 포항의 포스텍이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요구한 지 꽤 오래됐다. 2022년에는 포항시민의 열렬한 응원 속에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위한 비전 선포식도 가진 바 있다. 지금 그 열기는 어디 간 것일까. 일본의 노벨 의학상 수상을 보면서 포스텍의 분발이 생각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0

똘똘한 괴물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이달 15일 주택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똘똘한 한 채에 집중 몰리는 투자 수요를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똘똘한 한 채는 입지와 가치, 실수요 등이 뛰어난 주택을 이르는 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단순히 고가주택을 이르는 표현이 아니고 내재 가치가 뛰어난 주택을 뜻한다. 서울에서는 강남과 용산, 마포, 성동구 등지의 도심 역세권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본래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강화와 대출규제 등을 피하는 방법으로 여러 채보다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투자 전략에서 나온 말이다. 시세 차익보다 장기 보유 시 절세 효과가 높고 자산상품 가치가 기대되는 주택이다. 그러나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자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크게 치솟으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오히려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고 지방에서도 똘똘한 한 채를 사기 위한 자금이 서울로 쏠리면서 똘똘한 한 채는 똘똘한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후 수도권 일대 부동산 시장이 대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25억 초과 고급주택은 주택담보 대출이 2억까지만 허용되고 반면 15억 이하 주택은 기존 한도인 6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담보가치가 역전된 현상이 생겼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력한 규제책으로 똘똘한 한 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6

지참금 4000만원과 신랑의 죽음

젊은 세대의 혼인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문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등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의 처녀·총각들도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중국은 최근 10년 사이 혼인율이 절반으로 꺾였다고 한다. 한국 역시 지난해 결혼 건수가 22만2422건으로 2023년에 이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21세기 청년들의 결혼 포비아(phobia)’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왜일까? 어째서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보통의 월급쟁이가 10~20년을 저축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궁여지책으로 결혼할 두 사람이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려 해도 마찬가지. 집값 상승은 필연적으로 전세 가격도 올린다. 여기에 중국은 아직도 악습으로 남아있는 ‘지참금’ 문제가 더해진다. 최근 외신은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던 29세 남성이 결혼식 당일 지참금 문제로 신부와 다투다가 강물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참금 400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니다. 적다”며 신랑과 신부가 웨딩카 안에서까지 싸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약속된 결혼이 중간에서 깨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돈 문제로 인한 다툼이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결혼을 앞둔 신랑 혹은, 신부가 “돈보다 중요한 건 둘의 사랑”이라 말하면 “넌 결혼이라는 현실을 모른다”고 조롱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씁쓸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5

수명 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가리키는 말의 뜻을 가진 빈부격차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데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빈곤이 심화되면 사회 전체의 불행이 커진다는 의미다. 10여 년 전 한 조사에서 전국 200여 시군구에서 소득 하위 20% 집단의 기대수명이 소득 상위 20% 집단보다 짧다는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72.6세(2023년)다. 남성 69.1세 여성 73.8세며 선진국인 일본, 스위스, 호주 등은 80세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가의 평균수명은 60세 미만이다. 아프리카의 차드는 52.7세, 나이지리아는 54.6세다.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나라에 따라 약 20년 가까이 더 오래 살고 더 빨리 죽는다는 뜻이다. 외국의 사례로 짚어 본 결과여서 실감이 덜 나겠지만 국내서도 이런 수명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의료격차가 수명 격차로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기대수명은 90.11세로 나타난 반면 경북 영덕군은 77.12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 수의 절대 부족과 대형병원 등 의료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이 원인이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수명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4

한국 청년 무덤 된 캄보디아

‘통장을 개설해 가져가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8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며 1인1실 호텔 숙소를 제공한다’.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청년들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 침체와 각종 스펙을 갖춰도 넘기 힘든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가 적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학업을 마치면 직업을 찾아 독립하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 처한 20대에게 외국생활도 체험하고 거기서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이 온다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인터넷 공고와 지인의 권유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국 청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떠나기 전 그렸던 희망적인 미래는 캄보디아에 도착하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 고액 임금과 쾌적한 숙소, 큰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통장은 미끼였다. 현실은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가담하라는 강요와 협박, 이를 거부하는 순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최근 예천 출신의 대학생이 위와 같은 과정 속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단 이 청년만이 아니다. 보도에 의하면 2000여 명 안팎의 한국 청년들이 캄보디아 곳곳에 독버섯처럼 들어선 ‘범죄공장’에 감금된 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종 불법행위를 강요받고 있다. 늦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현황 파악과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니, 경찰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물론 관련된 국가기관이 모두 나서 위기에 빠진 청년들을 구해내야 한다. 그건 방기해선 안 될 국가의 책무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14

노벨상에 거는 기대

알프레드 노벨은 화학자, 공학자이자 발명가이다.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인물로 그가 소유한 발명품만 355개나 된다. 발명품으로 평생 모은 돈을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국립은행이 노벨상을 제정했다. 원래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였으나 이후 경제학 분야가 추가됐다. 1901년부터 2024년까지 6개 분야에서 총 627번을 수상했으며 개인 및 기관 수상자가 1012명에 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정치적, 외교적 압력없이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인류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주는 상이다. 단순한 업적 평가를 넘어 인류의 이익과 평화, 과학적 성취를 상징하는 상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미국이 411명으로 단연 1등이다. 다음 영국 137명 순이며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2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벨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는 정치적 의도가 섞였다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있었으나 상의 권위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내가 노벨평화상 수상 적임자”로 라고 주장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차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악관의 비난 논평도 있었지만 상의 권위가 폄훼돼선 안 된다. 한사람의 천재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그 시대 인류가 바라는 희망이 되어야 할 상이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2

안동의 사위

주한 영국대사관 콜린 크룩스 대사가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3일 안동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안동의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크룩스 대사는 평소에도 자신을 안동의 사위라고 자주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안동 명예시민증을 받게 된 배경에는 그의 특이한 안동과의 인연이 숨어있다. 부인이 안동 출신이어서 그가 안동의 사위라고 한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영국 최고의 지한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그는 2018~2021년까지 주북한 영국대사를 지낸 경력이 있다. 과거 알랙산드르 러시아 대사가 한국과 북한대사를 모두 지낸 적이 있으나 우리나라 주재 현직 대사 중 한국과 북한 양쪽의 대사를 경험한 대사로는 크룩스 대사가 유일하다. 안동과의 또 다른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한국 방문에서 시작된다. 1999년 여왕의 한국 방문이 결정되자 그는 서울의 북촌이나 한옥마을 등을 방문할 곳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왕이 “거리가 멀더라도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옴에 따라 안동 하회마을을 최종 방문지로 선정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는 당시 주한 영국대사 1등 서기관으로 있으면서 안동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여왕의 안동 방문 전반을 기획하고 총괄한 인물이다. 때마침 여왕의 73세 생일이 방문일과 겹치면서 여왕의 안동 방문은 더 뜻깊은 날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 영국이 수교를 시작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현직 영국대사를 안동의 명예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이번 행사는 안동과 영국 간의 거리를 좁히는 의미와 더불어 한영수교의 의미도 더 깊게 한 이벤트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09

해외에서 보름달 보는 한가위

21세기 들어서며 해마다 새로 세워지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도 예상대로 지난해 기록이 깨졌다. 2025년 추석 연휴는 길다. 하루쯤 연차를 낸다고 가정하면 최장 10일을 쉴 수 있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에 인천공항을 이용할 사람들은 245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2만3000명에 이른다. 그 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와 조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가려는 한국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복잡한 완행열차 속에서 6~7시간을 서있거나, 거대한 주차장이 돼버린 도로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고생하던 모습은 이제 지난 세기의 기억으로만 남을 듯하다. 추석과 설, 1년에 한두 번쯤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조상께 올릴 차례 음식을 함께 만들던 풍경은 이제 노인들이나 그리워할 뿐이다. 사람보다 핸드폰과 소통하는데 익숙한 Z세대는 어른들이 주는 용돈은 좋지만 잔소리는 싫고,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가(媤家)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명절증후군’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다들 멀리건 가깝게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하는 추석. 변화하는 세태를 몇 사람의 힘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허니, 내년 추석에도 공항 이용객 기록이 깨질 건 불을 보듯 뻔하고. 해외에서 보름달을 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저승에서 조상들이 울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01

명절의 꽃 秋夕

추석은 가을의 저녁이라는 말로 가을이 저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곡식 수확이 완료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한해 농사를 수확하기 직전으로 물심양면에서 가장 풍족을 느끼는 시기다. 음력 1월 1일 설날과 음력 5월 5일 단오날 그리고 추석을 우리나라 3대 명절로 손꼽는다. 조선 후기 학자 김매순이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를 보면 추석에 대한 당시 관념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다. “민간에서는 이 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고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고 했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고 써 있다. 어느 명절이든 기쁘지 않을 날이 있겠냐 만은 추석은 명절 중에 꽃이라 할만하다. 이름도 추석, 한가위, 중추절, 중추가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특히 갓 생산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니 그 맛이 특별하다. 햅쌀로 빚은 밥과 송편은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맛이 좋다. 민속놀이를 하더라도 선선한 날씨 덕에 마음도 한층 여유롭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 속담은 추석처럼 풍요롭고 즐거운 상태가 일년 내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다. 추석은 그야말로 풍요와 행복의 상징이다. 명절을 지키는 전통 풍속이 예전만 못하나 그래도 명절에는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의 기쁨을 나눈다.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가족과의 만남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명절의 의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마다 웃음 꽃이 함빡 피었으면 좋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30

노후자금 6억과 죽은 아내

인간의 행복과 만족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혼자서 죽는 날까지 돈 걱정 없이 사는 삶, 경제적으론 다소 불안정하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와 오순도순 늙어가는 것.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걸 택할 것인지.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소개된 사연 하나가 적지 않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사에 의하면 일본에 거주하는 67세 남성 O씨는 가난 탓에 중학생 때부터 식당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궁핍한 환경이 가져다준 절약하는 태도는 어른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O씨는 일생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고, 출퇴근 땐 그 흔한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에어컨과 난방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불문가지. 아내는 O씨를 이해하며 내조했다. 자식들 데리고 나들이도 한 번 가지 않은 팍팍한 삶이었지만. 이런 생활이 수십 년 이어졌고 결국 65세가 된 O씨는 저축과 연금, 퇴직금을 더해 한국 돈으로 6억1000만원의 돈을 모았다. 이른바 제법 ‘넉넉한 노후자금’을 가지게 된 것. 그러나, 돈이 준 행복감은 잠시였다. O씨가 퇴직한 직후 아내가 쓰러졌고 결국 사망했다. O씨는 홀로 남았다. 6억1000만원의 돈이 비어버린 아내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현재 O씨는 아내가 살았을 때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참으로 서글픈 만시지탄(晚時之歎)이 아닐 수 없다. 사람살이란 게 어슷비슷하니 한국에도 분명 O씨와 유사한 사례가 있을 터. 초가을 아침. 돈으론 살 수 없는 인간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30

천년의 소리

APEC을 한 달 앞둔 지난주 경주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국보 29호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신종의 안전 여부를 조사하는 타종행사가 있었다. 771년 통일신라 혜공왕 7년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은 1254년의 역사를 가진 종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종으로선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 말한다. 높이 3.66m, 무게 18.9t이다. 신라 35대 성덕왕의 공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고자 아들인 경덕왕이 제작을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혜공왕 때 완성한 종이다. 범종이란 불교 용어다. 불경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면 불상은 부처님의 모습이고, 범종은 부처님의 목소리로 해석한다. 청정한 절에서 울리는 맑은 종소리는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우치라고 하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동 12만근이 소요되는 대형 종을 만들고자 갓은 시도를 다했으나 번번이 종이 깨지고 소리가 나지 않는 실패를 했다. 어린아이를 넣어야 소리가 난다는 말에 어린아이를 쇳물에 바치고 나니 완성됐다는 것이다.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라는 어린아이의 소리가 들려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92년까지 매년 재야의 종으로 타종 행사를 벌였으나 그 이후는 조사 목적 외에는 타종을 금했다. 지난주 실시한 조사목적의 타종행사에는 제작연도를 상징하는 771명을 초청해 타종식을 가졌다. 천년 전 신라인이 듣던 종소리를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이들이 직접 듣는 행사다. 천년을 거슬러 간 시간여행의 신비로움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8

치매가 유죄?

사례 1) 60대 여성이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접근해 평생을 돌봐 주겠다고 속인 뒤 2억5000만원 상당의 상가 등기를 자신의 앞으로 이전한 사건. 경찰 조사에서 사기행각을 벌인 60대 여성은 법률상 남편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고의에 의한 사기로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례 2) 10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치매 노인과 위장 결혼한 60대 여성이 공범들과 짜고 재산을 강탈한 사건. 60대 여성은 재산 범죄에서 친족은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 위장결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 환자 가족에게는 “그저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혼인 사실을 숨겨 왔다고 한다. 사례 3) 80대 치매 노인을 간병하던 간병인이 노인이 치매 환자인 것을 알고 그가 소유한 땅을 매도하려다 덜미가 잡힌 사건. 일본에서도 인지능력이 떨어진 고령자를 상대로 한 부동산 사기 사건이 빈발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임대 수입 보장이나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아주겠다고 속여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쓴다. 일본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040년이면 치매 환자가 무려 58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소유한 자산 규모만 197조엔 우리 돈으로 1900조원이 넘는다. 우리도 노인인구 증가와 더불어 치매 환자 1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리비용도 천문학적 수치다. 게다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치매노인 상대 사기 범죄까지 극성을 부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사기 피해를 입은 치매 환자 중에는 사기 사실을 뒤늦게 알고 비통해하다 숨진 일도 있다고 한다. 치매 사기 범죄를 막을 특단 대책은 없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