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실정법까지 위반하며 무허가 영업 반값 목욕탕-수영장 덤핑요금에 민간업체 폐업 표심 노린 포퓰리즘 행정, 시장 질서 붕괴 초래
포항시가 주민 복지 증진과 보상을 명분으로 운영 중인 공공 목욕 시설 및 체육 시설들이 심각한 행정 결함과 시장 교란을 야기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자체가 실정법까지 위반하며 무허가 영업을 지속하는가 하면 민간의 경영 실패로 인한 적자 시설을 면밀한 검토 없이 인수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등 ‘선심성 행정’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법을 지키며 세금을 내온 영세 자영업자들은 지자체의 거대 자본과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본지는 4편 <2월 2·3일자 5면·5일자 2면·11일자 3면 보도>에 걸친 취재 내용을 종합해 포항시 공공시설 운영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 시청이 어긴 공중위생법, 13년간 이어진 ‘무허가’ 목욕탕
포항시 남구 청림동에 있는 ‘청림문화복지회관’ 내 목욕 시설은 지자체 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본지 취재 결과, 이 시설은 2012년 준공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무려 13년 동안 정식 영업 신고조차 없는 ‘무허가’ 상태로 운영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르면 목욕장업을 하려는 자는 적절한 시설을 갖추고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인허가 주체인 포항시는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설을 법적 근거 없이 운영했다.
당초 건축물대장상 용도는 ‘마을회관 내 샤워실’이었으나 쓰레기 소각장 건립에 따른 주민 보상 요구로 시는 5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 목욕탕으로 설계를 변경하고 영업을 강행했다.
더 큰 문제는 안전 관리의 공백이다. 업종 신고 없이 ‘마을회관’으로만 분류된 탓에 일반 목욕탕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정기 수질 검사나 위생 점검 등 법적 안전 관리 대상에서 13년이나 비켜나 있었다.
포항시는 “소방 점검은 별도 용역을 통해 받아왔다”고 해명했으나 목욕탕 위생의 핵심인 수질 관리 누락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혈세 살포’로 유지되는 4000원의 역설과 회계 부정 의혹
불법 시설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막대한 시민 혈세가 있다. 청림 목욕탕의 요금은 대인 기준 4000원으로 시중 사설 업소(약 9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값 공세’에 이용객이 몰렸으나 정작 운영 성적표는 ‘만성 적자’였다.
취재 결과, 월평균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려도 인건비와 수도세 등 고정비를 감당하지 못해 연간 적자가 1억 5000만 원에 달했다. 포항시는 매년 2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이 적자를 보전해 왔다. 사실상 시민의 세금으로 민간 상권의 손님을 뺏어오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든 셈이다.
회계 운영 역시 ‘깜깜이’였다. 지방재정법에 따라 모든 수입은 시 금고로 입금돼야 함에도 포항시는 수익금을 별도의 센터 명의 통장에 예치한 뒤 인건비 등으로 직접 지출하는 ‘직지출’ 방식을 택했다.
이는 예산총계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공금 유용이나 관리 부실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 카드 단말기조차 갖추지 않고 오직 현금 결제와 계좌이체만 유도해 현금영수증 발행조차 불가능한 ‘후진적 행정’의 면모를 보였다.
◇ 민간 경영 실패까지 떠안은 ‘상권 살생부’
포항시의 무리한 사업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구 호미곶면의 ‘호미곶 해수탕’은 지자체가 민간의 부실까지 세금으로 떠안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여 년간 어촌계가 운영하다 적자가 쌓이자 시는 지난해 4월 이를 ‘기부채납’ 형식으로 인수했다. 수억 원의 예산이 수반되는 결정임에도 기본적인 타당성 조사조차 생략됐다.
시는 운영권을 넘겨받자마자 8000원이었던 요금을 4000원으로 낮췄다. 매년 인건비와 유지비로 1억 3000만 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기에 가능한 가격이었다. 이로 인해 인근 구룡포 일대의 민간 목욕탕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 업계 관계자는 “지자체가 세금으로 적자를 메꿔주며 가격을 반값으로 인하하는데 자영업자가 무슨 수로 당해내느냐”며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영세 상인을 사지로 모는 살생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495억 원을 들여 개관한 오천읍 ‘다원복합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센터 내 수영장의 성인 일일 입장료는 3000원으로 민간(1만 1000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결국 인근에서 수십 년간 운영되던 한 민간 수영장은 이용객 급감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폐업했다. 공공의 서비스가 민간 생태계를 파괴하는 ‘포식자’가 된 것이다.
◇ 시의회 A 의원 “표심 노린 포퓰리즘 행정, 시장 질서 붕괴 초래”
익명을 요구한 포항시의회 A 의원은 이번 사태를 “지자체가 행정 편의주의와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에 매몰돼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든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A 의원은 특히 지자체의 적극적 시장 개입이 가져올 파국을 경고했다.
그는 “복지는 민간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소극적’으로 접근해야 함에도 지금처럼 시장에 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반드시 민간과 충돌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지 주민들을 위해 소규모 시설을 지원하는 것은 ‘복지’라고 볼 수 있으나 지금처럼 대규모 시설을 지어 시중가의 3분의 1 가격으로 운영하는 것은 소상공인들에게는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A 의원은 시의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시장 한마디에 모든 게 진행되고 주민들이 원한다는 핑계로 무턱대고 시설을 차려주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특히 호미곶 해수탕처럼 매년 수억 원의 수리비가 들어가는 부실 시설을 인수한 것은 앞으로 시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땜빵식’ 행정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A 의원은 “이런 선례가 남으면 앞으로 모든 동네에서 공공 목욕탕을 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텐데 그때는 시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며 거시적인 행정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 행정 전문가 제언 “민간 침해는 포퓰리즘⋯‘3자 윈-윈’ 상생 모델로 전환해야”
행정 전문가들은 포항시의 직접 운영 방식이 지역 경제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주민 복지라는 명분이 민간 영역을 침해하고 위축시키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하혜수 교수는 “민간이 이미 수행 중인 영역을 시립으로 만들어 침해하는 것은 진정한 복지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 교수는 시가 직접 시설을 건립하는 대신 민간과 연계하는 ‘3자 윈-윈(Win-Win-Win)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민간 목욕탕이 일정한 시설 기준을 충족할 경우 시에서 보조금을 지원해 주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업자는 운영난을 해소하고 주민은 편리하게 이용하며 시는 막대한 건립비와 관리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계명대학교 행정학과 성영태 교수 역시 “무분별한 저가 직접 공급은 민간 고사와 세금 부담 가중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공공시설의 이용 대상을 취약 계층이나 특정 연령층으로 한정해 일반 시장의 범위를 보장해야 한다”며 “직접 운영 대신 주민들에게 민간 시설 이용권을 제공하는 ‘바우처 제도’ 도입 등 정교한 행정 설계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포항시는 본지 보도 이후 뒤늦게 청림 목욕탕의 정식 등록을 마치고 카드 결제 도입과 요금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미 붕괴된 민간 상권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민 복지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자영업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포식 행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한 시점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