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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아지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강아지도 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수의학 학술지 ‘Journal of Veterinary Behavior’에 따르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불필요한 흥분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스코틀랜드 동물학대방지협회와 글래스고 대학은 다양한 장르 실험을 통해 클래식 음악이 개의 심박수를 가장 안정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반려견에게 클래식 음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스트레스 감소와 심박·호흡 안정에 효과적이다. 낯선 환경이나 소리로 인한 불안 상황에서 음악은 긴장을 완화하는 안정제 역할을 한다. 콜로라도 주립대의 2002년 연구에선 유기견 보호소에 클래식 음악을 틀자 짖음 빈도가 줄고 차분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일부 보호소는 특정 음악을 지속적으로 재생해 불안 행동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이러한 효과는 현장에서도 활용된다. 일부 동물 병원에서는 수술 후 회복 기간 동안 클래식 음악을 틀어 반려견의 불안을 줄이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장시간 혼자 집에 있어야 할 때, 병원 진료를 받을 때, 목욕과 같은 낯선 상황일 때 클래식 음악은 반려견의 불안감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반려견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음악을 들으면 엔도르핀이 분비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보호자와 함께 음악을 듣거나 음악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활동은 반려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동시에 주인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아지들이 어릴 때에는 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학습 능력도 개선될 수 있다. 훈련 중에 적절한 음악을 활용하면 반려견의 학습 속도가 높아지고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강아지가 쉽게 잠들지 못할 때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더 빠르게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특히 노령견의 경우, 밤 시간대에 나타나는 불안 행동을 완화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반려견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연구에 따르면 헤비 메탈이나 하드 록처럼 빠른 템포와 큰 볼륨의 음악, 불규칙한 리듬이나 고음이 많은 음악은 차분한 행동을 유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강아지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리듬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피아노와 현악기 중심의 음악이 반려견 스트레스 감소에 가장 효과적이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의 작품 중 다수는 안정적인 분위기 조성에 탁월하며 강아지를 위한 연주회에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쇼팽의 ‘강아지 왈츠’,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등을 포함시키면 좋다. 주의할 점은 모든 반려견이 동일한 방법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반려견의 성향과 불안의 원인에 따라 최적의 대응 방식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음악 감상과 보호자와의 놀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열에 아홉은 주인과의 시간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0-13

너희는 좋겠다

추석 즈음, 쓸쓸해지는 마음 넓게 펴든 토란잎 한 장에 도르르 말린 물방울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이 비치네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토란잎 아래 황토 흙 아래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영롱한 물방울 안에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토란탕이며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과 명절 텅 빈 뒤주에 달빛은 가득하나 달이 둥그러질수록 어디까지 왔니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 토란탕 국물 속에 뼈의 잔상이 한사코, 라는 말에 걸려 있다 ―김승희, ‘토란탕’ 전문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2021, 창작과비평) 그런 풍경이 있었다. 백석 시인의 ‘여우난곬족’ 여우고개 그즈음이 그랬을 것이다. “명절날 나는 어매 아배 따러 우리집 개는 나를 따러 진할머니 진 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풀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 찻떡의 내음새도 나고” 밤이 어둡도록 일가친척들이 모여 북적하니 놀던 때가 말이다. 한가위 연휴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말했다. “너희는 좋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실컷 놀잖아, 나는 맛있는 것들 많이 만들고 실컷 먹여야 해” 듣고 보니, 어딘가 뼈 있는 덕담이다. 여성의 명절 노동의 강도와 분량에서 보자면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 투정 속에는 애정 어린 뼈의 잔상이 걸려 있다. 가령 토란탕 “맑은 물방울을 깊이 들여다보면” “눈이 동그란 벌레들의 세상”이 보인다. “흙 속의 아들들” “고물거리는 것들이” “도르르 도르르” 달려있는 것이다. “영롱한 물방울”에는 한사코 “제 몸을 감고” 있는 쟁쟁한 마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젖과 꿀이 넘치는 땅” 고향의 명절은 그랬다. “도르르 말린 물방울” 토란이 주는 물성은 모성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다. ‘둥그런 달’과 ‘토란’에 걸린 ‘한사코’는 액화된 달빛으로 “젖과 꿀”이 내장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은은하고 쌉쌉한 토란의 아린 맛”이 “싱그러운 물방울에 파란색 속살 비치”듯 배어 나온다. 김승희 시인의 추석 즈음에 백석의 여우난곣의 풍경을 대입해 보면 “엄매는 엄매들 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우깐 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훙성거리는 부엌으론 새잇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 오도록” 아이들이 자는 풍경이 피어오른다. 이처럼 백석 시인의 함경도 방언 속에 “무이징게 국”내음처럼 ‘토란탕’ 맑은국의 기억이 “영롱한 물방울”과 겹치면서 현재의 자리는 대별된다. 이들의 “추석 즈음”의 풍경은 한 시인의 혹은 특정 시대의 삶의 풍경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유해온 공동의 뿌리가 녹아 있다. 여러 세대가 두루 모여 “송편이며 나물이며 잡채며 고기산적 같은 것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복작이던 풍경 말이다. “이제 마주 잡을 수 없는 어제의 손가락뼈 열 개// 액체의 달빛인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즈음 고향과 명절이라는 기표는 “텅 빈 뒤주”처럼 비어 “달빛”만 가득하다. “달이 둥그러질수록” “놋그릇처럼 쟁쟁한 마음”만 추석 보름달처럼 부풀고 있다. 때마침 명절 연휴에 읽을 셈이라며, 제인 오스틴류의 소설책을 한 아름 껴안고 그녀들이 오고 있다. “제 몸을 감고 한사코 스산해지는 마음” /이희정 시인

2025-10-12

야당이 못났다고, 여당을 무조건 용서하지 않는다

‘반동’이라고? 우리 현대사에서 이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하는 말일까. 동족상잔이라는 피와 한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단어다.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반동’이란 낙인을 찍었을까.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판하는 지귀연 판사를 겨냥해 “개혁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저격은 지난 5월 1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날이다. 이번 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정 대표는 ‘조희대의 난’이라고 주장한다. 표현이 적개심은 뚜렷하지만, 내용은 없다. 포장 기술만 비교 불가다. 처음에는 ‘4자 회동설’을 제기했다.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만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한다. 민주당도 이제 그 주장에서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아무 근거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제, ‘왜 그런 판결을 했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한다. 피고 측 패거리가 판사를 불러놓고, 재판을 따지겠다는 꼴이다. 언제부터 국회가 대법원 위의 제4심이 되었나.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언행은 2021년 10월 20일(“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요청했고, 응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과 12월 22일(“시장 재직 때는 김문기 처장 몰랐다”)에 발생했다. 이에 대한 고발은 같은 해 10월 27일과 12월 23일 이루어졌다. 공직선거법 270조는 ‘6-3-3 원칙’(1심을 6개월, 2심을 3개월, 상고심을 3개월 내 하라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법을 지키려면 2022년 말까지는 최종결론이 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1심 판결이 2024년 11월 15일(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났다. 법정기한의 6배다. 항소심 결심은 2025년 3월 26일(무죄 선고)로, 4개월 12일이 걸렸다. 대법원은 36일 만인 5월 1일 판결했다. 공직선거법에 이 원칙을 규정해 놓은 건, 재판 지연이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당선만 되면 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역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선거법에서 정한 재판 시한을 넘겼다. 최근 10년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확정판결까지 평균 397일이 걸렸다. 이 대통령 사건은 그보다 3배가 넘는 1282일이 걸렸다. 그런데 서두른다고, ‘반동’이라고 한다. 사퇴하라고 몰아세운다. 혐의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다. 왜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판결했느냐고 따진다. 정치보복이다. 더군다나 ‘반동’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상처를 헤집는 말이다. 그것이 특정 정당이 떠받드는 최고 권력자를 옹위하기 위한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수당의 힘을 이용한 일방 독주가 전체주의 국가의 일당 독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이런 무리수로 노리는 게 뭔가. 입법, 행정, 사법, 구석구석 친위세력을 포석해, 50년 집권의 기반이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정청래 대표는 수시로 국민의힘 해산까지 들먹인다. 정권이 무너지는 건, 정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모두 스스로 무덤을 팠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이 심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까. 합법을 가장하고, 야당을 모두 쓸어버리는 게 무슨 의미일까. 거기에 사법부까지 무릎 꿇게 만들면, 역사가 무어라 기록할까. 지금 국민의힘은 엉망진창이다. 계엄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버티는 건 정청래 대표가 잘해서가 아니다. 국민의힘 덕분이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엉망이라고, 민주당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건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2

울릉도의 미래를 위한 선택의 기로에서

울릉도는 지금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2025년을 맞아 울릉군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며, 이는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라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울릉도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외딴 섬’으로 불려왔다. 기상 악화로 인한 여객선 결항은 일상적이었고,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최소 7시간 이상 걸리는 물리적 거리감은 관광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의료·교육·경제 활동 전반을 제약했다.   울릉공항 개항은 이 구조적 한계를 뒤흔드는 ’상징적 변화’다. 서울~울릉 간 1시간 내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울릉도는 ’접근 불가능한 섬’에서 ’연결된 섬’으로 거듭난다. 관광객 유입은 급증할 것이며, 울릉군은 연간 100만 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 서울관광재단과의 협약 체결로 수도권 중심의 마케팅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접근성 개선만으로는 관광 산업의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공항과 주요 관광지를 잇는 교통망, 다양하고 질 높은 숙박, 지역 식문화 콘텐츠 개발, 응급 상황 대응 체계 구축 등 인프라 정비가 필수다.   더 나아가 공항 개항은 지역민에게도 ’삶의 질 향상’이라는 실질적 혜택을 제공한다. 의료 긴급 이송, 교육기회 확대, 물류 개선, 청년 창업 기회 등 다방면의 효과가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위한 변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방소멸, 청년 유입은 이벤트가 아니다. 울릉도의 인구는 약 9000 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고령화율은 30%를 넘어섰다. 이는 의료·복지·교육·노동력 등 사회 기능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울릉군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중심으로 외부 청년 유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면 현포리에 청년 거점 공간을 조성하고 50명 이상의 청년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청년 정책은 단순한 유입 이벤트가 아니라 ’머무르고 정착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 마련’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청년 창업 지원, 원격 근무 인프라 확충, 임대주택 공급, 빈집 리모델링, 주거비 지원, 청년 커뮤니티 공간 조성, 로컬 콘텐츠 제작 지원 등 종합적 지원책이 필요하다. ’청년이 만든 콘텐츠가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광 수익이 청년의 삶을 지탱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울릉도의 미래는 열린다.    울릉도는 청정 자연환경을 갖춘 섬으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가치와 가장 잘 맞닿아 있다. 동시에 고령화와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다.   울릉군은 전기자동차 보급률이 전국 평균을 상회하며 ’친환경 교통 정책 선도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캠코와 협약해 공공 유휴부지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며 관광객과 주민 모두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이동형 검진차량 운영’, ’원격진료 확대’, ’세대 통합형 복지 콘텐츠 개발’ 등 맞춤형 복지망 강화에 나서고 있다. 울릉도는 ’친환경 섬이자 고령사회 지역’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안고 있으며, 탄소중립과 복지망 확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최근 울릉도는 ’관광 신뢰 위기’에 직면했다. 일부 유튜브 영상과 언론 보도가 불친절·바가지 논란을 부각시키며 지역 이미지가 흔들렸다. 관광은 단순한 자연 감상이 아닌 ’경험 소비’다. 따라서 울릉도는 불신의 이미지를 ’환대의 이미지’로 바꾸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울릉군은 관광업 종사자 대상 교육을 확대하고, ’불편 신고 실시간 대응 체계’, ’관광업소 평가제’, ’SNS 기반 홍보 영상 제작’, ’고령 업주 대상 디지털 교육’ 등을 통해 체계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관광객 방문 전 울릉도의 현실적 한계를 투명하게 안내함으로써 ’양두구육 비판’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울릉도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항 개항, 청년 정책, 친환경 전략, 관광 신뢰 회복은 모두 단일 과제가 아니라 ’울릉도의 생존 전략’이다. 변화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하는 것이 될 때, 울릉도는 진정한 ’연결된 섬’, ’지속 가능한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 남한권 울릉군수

2025-10-12

트럼프 ‘노벨상 불발’과 철강 도시의 그림자

지난 10일 마침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지만, 그 명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없었다. 트럼프는 상을 못 받자 “미국 모욕”이라며 노르웨이 등에 관세 보복까지 시사하며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투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택하며 평화의 근본적 가치를 역설했다. 이 국제적 헤프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포항의 현실과 뼈아프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관세’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은 포항의 경제를 지탱하는 철강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포항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포항을 비롯한 국내 철강 업계에 수출 감소 등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이 2025년 6월 철강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한해 동안 미국에 내야 할 관세 추산액은 무려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 불발에 관세 보복을 위협하는 행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국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슈퍼파워의 자기중심적 민낯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슈퍼파워’의 변덕스러운 정책 하나가 철강 도시 포항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역경제 전체를 4000억 원의 관세 폭탄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개인이나 작은 나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관세라는 폭력적 수단을 꺼내 드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가 믿고 싶었던 ‘정의로운 슈퍼파워’의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베네수엘라의 민주투쟁에 상을 주며 인권과 평화의 원칙을 지켰듯이 국제사회는 강대국이 내세우는 힘의 논리가 아닌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포항 시민들은 이 노벨상 헤프닝을 보며 “국제사회의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변덕이 언제까지 우리지역 기업들과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과 관세 위협은 철강도시 포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남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12

단순한 복지, 빠른 복지

3주 전 일요일 어느 회사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졌다. 당시에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로 충격이 컸고 가장 먼저 바닥에 닿은 오른팔은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으나 행사 스태프들이 얼음주머니 등 발 빠른 응급조치를 해주어 통증이 금세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정형외과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상완골 골절이라면서 4주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고 후 일주일은 특별히 유의해서 움직임을 최소로 해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밀려왔다. 걸을 수도 있고 말하는 것도 문제는 없으니 강의는 할 수 있지만 손을 써야 하는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 음식 준비와 청소 등은 혼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인에게 부탁했다. 지인은 강의 자료 만드는 일에 손 빠르게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며칠간 먹을 식사까지 챙겨주면서 정말 절실한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돌봄 SOS라는 복지제도이다. 돌봄 SOS는 일시 재가 서비스로, 거주지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담당자가 방문하여 상태를 점검하고, 관련기관에 의뢰하여 요양보호사를 파견해 준다고 한다. 이 제도는 서울시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대 중이라고 한다. 전혀 몰랐던 정보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알고리즘으로 본 영상에서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수백 가지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닿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영상을 본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 다시 찾아보면서 복지정책 단순화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는 작년 10월 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이 있는데 ‘안심소득’으로 불렸던 ‘서울디딤돌소득’을 평가하는 자리였다. 이 정책은 복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때 발표한 쉐퍼 교수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최소 소득 하한선을 설정해 일정한 소득을 제공하면 복지 시스템이 단순해져 행정 비용도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8년 전 한 일간지의 집중취재에서는 이보다 더 과격한 주장이 실렸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류학)가 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제를 주장한 것이다. 기본소득제란 소득과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제는 원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가 지향하는 정책으로, 모든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실제 2012년 일본의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기본소득제든 선별 지원이든 복지정책의 단순화는 비용 절감과 복지 혜택의 접근성을 위해 필요하다. 복지제도가 단순해지면 긴급 돌봄이 필요할 때도 빠르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1인 가구라 외부 도움이 없으면 왼손만으로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데 돌봄 SOS 신청한 지 3주가 되도록 자격심사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번 돌봄 SOS 신청은 헛일이 될 것 같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12

포항시, 글로벌 AI 선도 도시로 비상하다

철강 경기 침체로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포항시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일, 포항시가 ‘챗GPT’를 만든 오픈 AI의 AI 데이터 센터 건립지로 최종 확정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대형 프로젝트지만 이번 결정이 포항의 산업구조와 도시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픈AI는 왜 한국, 그리고 왜 포항을 선택했을까? 첫째, 이재명 정부의 AI 강국 실현 의지와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출범 이후 ‘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며, 데이터·반도체 등 핵심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자,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생산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오픈 AI가 필요로 하는 AI 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둘째, 포항의 입지적 강점이다. 오픈AI는 삼성과 함께 바다 위에 세워지는 차세대 친환경 ‘플로팅(부유식) 데이터 센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포항은 해양 접근성이 뛰어나고, 포스코와 에코프로 등 국가 첨단 전략산업이 집적되어 있으며, 대규모 전력 확충이 가능하다. 또한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해 방사광가속기, 나노융합기술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 세계적인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포항시의 실력 있는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다. 오픈 AI의 투자가 지역경제와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AI 선도 도시로 가기 위한 체계적인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포항시의 전략적 역량이 핵심이다. 부지 선정과 인허가 절차, 인프라 구축, 기업 협력 등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인허가 패스트트랙 지원 TF팀’을 구성하고, 분야별 전문가로 이루어진 실무추진 TF팀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 둘째, 지역 산업과의 연계 및 인재 양성이다. AI 데이터 센터 유치는 단순한 시설 유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포스코, 에코프로, 포스텍, 한동대 등 지역 산업과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하는 ‘AI+철강’, ‘AI+이차전지’, ‘AI+대학’, ‘AI+창업’ 같은 융합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포항형 AI 아카데미’와 시민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 시민이 AI 시대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AI 선도 도시를 위한 차별화된 정주 환경 조성이다. AI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포항에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교육, 문화, 복지 인프라를 적극 확충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도시,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포항시가 AI 선도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아침의 기적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공무원들의 땀과 노력, 포항 시민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그 땀이 결실을 맺을 시간이다. 철강 산업으로 실력을 다진 포항시가 AI 선도 도시라는 새로운 결실을 시민의 삶 속으로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다시 한번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큰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0-12

포항~영덕 고속도 개통, 영일만 대교만 남았다

포항에서 영덕을 잇는 포항~영덕 고속도로가 다음달 개통한다. 2016년 착공을 시작한 지 9년만이다. 총연장 41.3km로, 사업비 1조6000억원이 투입됐다. 이곳 도로가 개통되면 포항 영일만항에서 영덕 강구항까지 자동차로 42분 걸리던 시간이 19분으로 단축된다. 동해 7호선 교통량의 절반 가까이가 줄어들고, 영덕~대구 간 이동시간도 1시간대로 단축된다. 수도권과 충청권, 강원권과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돼 동해안 일대는 물류와 관광산업이 활력을 찾으면서 경제의 시너지 효과가 확대 생산될 것으로 전망이 된다. 특히 올해 초 개통한 동해선과 함께 이번 고속도로의 개통은 주민편의 확대는 물론 경제적 가치를 확대 생산하는 측면에서 지역민의 기대감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포항~영덕 간 고속도 개통으로 연간 사회적 편익이 420억~43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포항을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의 교통인프라 확대는 동해안 경제벨트 형성을 촉진시키게 된다. 가까이는 포항, 경주, 울산의 해오름 동맹의 경제적 결속력이 강화되고 크게는 서해안권, 남해안권과 연결되면서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영덕~포항 간 고속도로와 맞닿는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은 옥의 티다. 영일만대교는 2008년 광역경제권발전 30대 선도프로젝트에 선정되었지만 17년이 지난 현재까지 방향을 못잡고 있다. 올해 추경에서 설계비 등 1821억원의 예산이 모두 삭감돼 사업 자체가 흔들리는 분위기다. 정부는 과도한 예산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반면 경북도와 포항시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는 의견으로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대교의 건설은 당장 투입되는 예산만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특히 영일만대교는 동해안을 하나로 묶는 국가 간선도로망의 핵심 축이다.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 측면의 결정이 필요하다. 북극항로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도 대교 건설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대교 건설은 U자형 국가 교통망의 완성이자 동해안 고속도로의 완성이다. 포항-영덕 고속도로 다음에는 대교 건설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2025-10-12

‘TK 백년대계’ 걸린 내년 6·3지방선거

추석 연휴 민심파악에 분주했던 여야 정치권이 지방선거 채비에 나섰다. 내년 6·3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중간 평가 성격이 짙은 만큼,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의 명운을 건 승부전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양당 모두 공천과정에서 ‘현역 프리미엄’은 없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은 이번 달 말까지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 룰과 가산점 반영 방식 등을 포함한 공천 규정을 확정하기로 했다. 공천 준비의 핵심은 컷오프(부적격) 예외 심사 기준, 경선 진행 방식, 여성·청년·장애인 가산점 기준이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광역·기초의원 공천의 경우 앞으로 당원 결정권을 훨씬 많이 주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도 지난주말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을 출범시켰다. 위원장을 맡은 나경원 의원은 “닫힌 정당이 아니라 열린 정당이 돼 인재가 구름같이 모일 수 있는 공천 시스템의 대강을 만들겠다”고 했다. 여야 모두 지방선거 준비에 나서면서 초반 기싸움도 시작됐다. 현재 야당 시·도지사가 현역인 서울·부산·인천·강원의 경우 박빙 판세가 예측되면서 양당이 프레임 선점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단절하지 않고 민심을 얻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내년 지방선거를 이재명 정권 심판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대구·경북(TK)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시·도지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후보들이 거론되고 있다. 유권자들이 꼭 명심해야 될 부분은 이번 지방선거가 TK지역의 ‘백년대계’를 결정할 만큼 중대하다는 점이다. TK신공항 건설과 행정통합 같은 어려운 현안을 해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정치력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과거처럼 내년 지방선거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식’으로 희화화 되면 결국 피해는 지역민에게로 돌아간다. 국민의힘 나경원 위원장이 언급했다시피, 여야 모두 ‘인재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천 시스템’을 만들어 유권자들이 직접 TK 미래비전을 잣대로 정당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5-10-12

노벨상에 거는 기대

알프레드 노벨은 화학자, 공학자이자 발명가이다.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인물로 그가 소유한 발명품만 355개나 된다. 발명품으로 평생 모은 돈을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국립은행이 노벨상을 제정했다. 원래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였으나 이후 경제학 분야가 추가됐다. 1901년부터 2024년까지 6개 분야에서 총 627번을 수상했으며 개인 및 기관 수상자가 1012명에 달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정치적, 외교적 압력없이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정된다. 인류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주는 상이다. 단순한 업적 평가를 넘어 인류의 이익과 평화, 과학적 성취를 상징하는 상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미국이 411명으로 단연 1등이다. 다음 영국 137명 순이며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2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벨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두고는 정치적 의도가 섞였다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있었으나 상의 권위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내가 노벨평화상 수상 적임자”로 라고 주장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차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악관의 비난 논평도 있었지만 상의 권위가 폄훼돼선 안 된다. 한사람의 천재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그 시대 인류가 바라는 희망이 되어야 할 상이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12

페테르부르크의 추억

사람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말하면서 살아간다. 각자에게 유리한 사실만 기억하면서 나름의 정의와 진실을 마음속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독하게 꼬집은 소설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1922)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1950’으로 영화화했다. 반면에 노신(魯迅)은 ‘아큐정전’(1922)에서 이것을 ‘정신승리법’으로 규정하면서 신랄하게 공격한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예외 없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기에 100%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다. 지난 8월 하순 페테르부르크에서 체류한 사흘 일정은 나에게 22년 전 추억을 소환한다. 2003년 7월 하순에 사흘 머물면서 페테르부르크 곳곳을 누볐던 추억보다 그곳에 공부하러 나와 있던 경북대 학생들과 모교 졸업생들과 함께한 기억이 훨씬 강렬하게 남아있다. 보리스 옐친의 무기력한 통치가 종결되고 패기 넘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 1기가 펼쳐지던 시기의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불안하고 가난했다. 70년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각인됨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간 암울했던 러시아. ‘유럽으로 열린 창’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시민들의 삶은 곤고(困苦)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학생들과 밤마다 보드카 폭탄을 돌리곤 했다. 맥주잔에 40도짜리 독주 보드카를 일정 정도 따르고, 나머지를 맥주로 채워 단번에 마시는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는 새벽 3시 무렵 희뿌옇게 밤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가 30분쯤 지나면 환한 얼굴로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보드카와 맥주병이 커다란 식탁에 날마다 3~40병 쌓이곤 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창천의 일등성(一等星)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의 나는 2!30대 청춘들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가?! 유학생들이 러시아에서 겪어야 했을 허다한 모험담과 기행(奇行), 온갖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시절의 소환 같은 것이었을 터다. 10여 명이 무리 지어서 페테르부르크를 누비고 다니면서 러시아 역사와 예술의 향연을 한껏 들이마신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이번에는 국립 러시아 박물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푸시킨이 다녔던 귀족학교 리체이를 차분하고 여유롭게 돌아본다. ‘피의 사원’과 ‘네프스키 대로(大路)’, 페테르부르크 운하와 네바강, 카잔 성당도 빼놓지 않는다. 박물관에서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오스트로프스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문사들의 흉상이나 초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러시아 문학, 특히 러시아 희곡을 향한 열망을 온몸으로 구현한 대가들 앞에서 지난 시절을 반추해봄은 해볼 만한 일이다.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길을 찾아 걸어보려 했던 치기(稚氣) 어린 20대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40대에 찾았던 페테르부르크를 60대에 다시 대면하노라니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져버린, 불멸해야 했을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갔는가?! 마치 ‘세 자매’의 어리석은 주인공 안드레이의 한스러운 내적 독백을 되뇌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날들을 여름감기와 함께하면서 상념에 젖었던 페테르부르크의 추억이여!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12

가을 바람의 안부

아침에 창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이 거실에 내려앉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잔열이 남아 도로 위를 달궈 놓았던 바람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뚜렷하게 결이 바뀐 공기 속에서 나는 하던 일들을 잠시 멈췄다. 길가의 가로수가 어느새 하나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주위 들풀도 붉은빛을 품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은 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삶의 큰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람이 좋아 모자만 쓰고 아파트 둘레길을 걸었다. 바람은 낯선 악보처럼 내 마음에 선율을 그려 넣었다. 가을의 향을 품고 내게 감긴 그 바람이 좋아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가을바람은 단순히 계절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던 학창시절도 떠올랐고 바람을 타고 교문을 달려 나가던 여러 장면들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살아온 세월은 바람의 방향처럼 끊임없이 변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가을바람은 다급히 흘러가는 발걸음을 붙들어 세운다. 잠시 멈추어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고개를 들어 구름의 흐름을 바라보라고, 바람은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산책길 옆 작은 벤치에 앉았다. 낯익은 풍경이었지만 바람은 그것을 전혀 다른 그림처럼 바꾸어 놓았다. 느티나무 잎새가 흔들리는 소리는 오래된 편지의 활자처럼 내 귀에 새겨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어느 집에선가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묵은 감정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가을바람은 안부처럼 다가온다. 무더운 여름을 잘 지냈는지, 마음은 무겁지 않은지, 스스로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바람의 물음 앞에서 나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느라. 일에 쫓겨 사소한 근심에 사로잡히느라,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한 날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계절의 바람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장 솔직한 거울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바람이 내 어깨에 가만히 내려 앉았다. 위로처럼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오면서 잘 버텨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위로는 멀리 있지 않았다. 화려한 말이나 거창한 행동이 아니어도 계절의 바람 한 줄기면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 카페 앞 노란 국화가 눈에 들어왔다. 향기가 풍겼다. 바람은 향기를 데리고 다닌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도 어쩌면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을지 모른다. 오래 머물지는 않지만 그 순간의 향기와 빛깔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사랑도, 추억도, 슬픔도 모두 바람처럼 다녀가지만, 다녀간 자리에 남는 흔적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집 앞에 다다르자 오후의 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햇살은 정오의 날카로움을 거두고 서쪽 하늘로 기울며 누런 금빛을 흘러내렸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마다 바람이 흔들어놓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을바람은 여전히 곁을 맴돌며 내 결음을 가볍게 했다. 그 바람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바람은 흘러갔다. 흘러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몸짓일 것이다. 오늘의 바람이 내일의 구름을 움직이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불러오듯이.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 더 귀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마음에 오래 남는다. 바람은 흘러가지만 그 곁에 스친 향기와 서늘함은 내 안에서 겹겹의 결을 이루며 쌓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다. 오래 머물지 못할지라도 잠시 머무는 순간에 따뜻한 기운을 건네준다. 가을바람은 오늘도 그렇게 덧없음 속에서 충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비로소 나는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너는 잘 지냈느냐.”그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아 작가

2025-10-12

폭력으로 얼룩진 세르비아 명가 ①블랙조지와 밀로쉬

19세기 초, 세르비아는 이때부터 블랙조지 가문과 밀로쉬 가문으로 나눠지면서 새로운 폭력 양상을 띠게 된다. 1815년 유럽 세계 역시 변화의 급류에 휘말렸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서 실패한 후 몰락하고 엘바섬에 유폐된 뒤, 섬을 탈출해 프랑스를 재점령하면서 100일 천하를 이루었다. 하지만 워털루에서 웰링턴 공작에게 패해 대서양 세인트헬레나에 재차 유폐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1815년 11월, 세르비아민족회의는 최고지도자에 밀로쉬를 추대한다. 1817년 초 오스만은 골치만 아픈 세르비아에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착하게 말 잘 듣는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세르비아공국 왕좌(공작)에 앉혀 한숨을 돌렸다. 이때를 기회로 러시아 차르는 부동항의 확보를 위해 재차 발칸반도로 진출하자 이에 놀란 것은 터키뿐만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들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오스만터키 술탄은 넓은 제국을 안간힘으로 지켜내느라 동서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틈을 노린 러시아는 이란의 카자르조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면서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얻어 기세를 올린다. 영국과 프랑스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오스만터키로부터 신뢰를 한 몸에 받던 밀로쉬는 문제가 많았다. 1814년 9월 블랙조지, 즉 카라조르지예 추종세력들이 새로운 혁명봉기를 위해 모임을 결성하고 밀로쉬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금지원은커녕 오스만터키에게 이를 고해바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외운송 독점권에 이어 운송장비까지 독점했다. 이후 블랙조지를 따르는 해외파와 밀로쉬를 추종하는 국내파로 세르비아는 툭하면 싸움판이 깔린다. 이슬람에 몸을 비벼 자치권만 획득한 밀로쉬에 세르비아인 불만이 증폭된다. 세르비아인들은 밀로쉬와 카라조르지예(블랙조지)를 비교하며 블랙조지에 대한 향수를 못 잊어 했다. 그러자 밀로쉬로서는 블랙조지가 세상에 없어져야 온전한 자기의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생각을 굳힌다. 1817년 7월 블랙조지가 해외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리스 혁명지도자들과 연합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밀로쉬는 암살자를 보내 머리를 잘라 술탄에게 선물로 바친다. 밀로쉬는 정적 제거는 물론 술탄에게 충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무한 신뢰를 얻는다. 블랙조지를 추종하던 세력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르비아 하층민에게 있었다. 가난과 핍박 등 혼란한 정국 속, 이전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세르비아농민의 불만은 증폭되어 갔다. 그러나 왕권을 유지하려는 밀로쉬는 농민을 달래기는커녕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가두곤 했다. 이전의 에니체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러시아는 이를 간파했다. 1821년 3월 6일 그리스 독립투쟁이 본격화되고, 러시아가 오스만 턱밑에 대포를 포진하면서 세르비아 완전한 자치권을 요구했다. 이에 오스만은 세르비아인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1828년 러시아는 오스만터키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듬해 8월 러시아군대가 아드니아노플을 점령한 후 불가리아로 진격했다. 오스만제국은 그제야 두 손을 들었다. 아드리아노플조약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뒤이어 1830년 2월 6일 밀로쉬는 세르비아 중부도시 크라구예바츠에서 세르비아자치를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선포한다. 오스만제국이 만든 왕이자, 세르비아 자치국 왕위를 획득한 밀로쉬는 날개를 다는 듯했다. 여세를 몰아 밀로쉬가 강력한 중앙집권형 권력을 추진하자 군사반란을 불러왔다. 밀로쉬가 간과하는 게 있었다. 예부터 세르비아는 지방 고유 자치권이 강했다. 이때 세르비아인들이 밀로쉬 민낯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이는 곧 통치권 약화로 이어졌고, 블랙조지 추종세력들은 밀로쉬 제거를 목표로 삼았다. 그 와중에 경제정책 실패로 세르비아 경제적 뿌리인 농업정책마저 바닥을 쳤다. 배가 기울면 쥐들이 가장 먼저 뛰어내리는 법, 세르비아 귀족들이 밀로쉬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내정간섭을 이어가던 러시아는 물론, 오스만터키 역시 밀로쉬 독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러시아는 밀로쉬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마치 요즘의 국회처럼 위원회를 만들어 왕권을 견제했다. 결국 1839년 6월 위기를 느낀 밀로시는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루마니아의 왈라키아로 망명길을 떠났다. 그의 폭정은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그 맛에 취하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아주 잘 보여준 예라 할 것이다. 토마 부취치를 중심으로 세르비아의 17인으로 구성된 귀족위원회가 본격 가동하면서 이들은 열아홉 살인 밀로쉬 아들 밀란 오브레노비치를 왕위에 올렸다. 그런데 귀족위원회의 입장에서 보면 고맙게도 왕위에 오른 지 채 한 달도 못 되 죽어버렸다. 말 그대로 세르비아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정이든 나라든 속에서 곪아 터진 뒤에 외부의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작가

2025-10-12

긴 연휴의 명암… 포항 도심 상권에 닥친 ‘역내수 쓰나미’

최대 9일에 달했던 긴 추석 연휴는 포항 지역 경제에 기대했던 ‘대목’ 대신 싸늘한 ‘역내수 효과’를 낳았다.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등 주요 관광지는 잠시 활기를 띠었으나, 도심의 중심상권까지 확산하지 못했다. 포항 도심의 핵심인 중앙상가는 연휴 내내 거대한 ‘경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황량했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연휴 전 일시적인 ‘제수용품 특수’를 누렸을 뿐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소비 절벽에 직면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장기 휴가를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났고, 지역 내에서 선순환돼야 할 소비자금은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다. 긴 연휴가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소비 유출을 가속화했다. 중앙상가 상인회 A 대표는 “이 긴 연휴는 ‘황금연휴’가 아니라 ‘보릿고개’가 된 셈이다”며 “관광객이 늘어도 도심까지 와서 돈을 쓰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기도 소비 급감에 한 몫을 했다. 포항은 지금 핵심 산업인 철강 산업이 장기간 위축되면서 지역민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어 실질적인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긴 연휴였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았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예년보다 냉랭했던 죽도시장 등 재래시장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명절차례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문화여서 사실상 한가위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여건을 뚫고 경제력이 힘든 서민층의 시민들이 나서 역내 내수를 떠받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역 내 소비 기반이 취약해진 국면에서 맞은 추석의 긴 연휴는 ‘휴식과 소비의 양극화’라는 포항 경제의 민낯을 여과없이 속속 드러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이러한 소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지역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마냥 경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항시와 역내 경제인, 그리고 지역 정치인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포항시의원은 “긴 연휴가 지역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인들은 혁신적인 지역 투자와 고용 창출에 나서야 하고, 시와 정치권은 소득 증대와 가계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비 침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포항의 모든 주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09

해킹과 개인정보

바야흐로 해킹의 시대이다. 통신사와 카드사는 물론 국가 기관조차 해킹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듯싶다. 기술의 진보에는 사고가 수반되기 마련이라지만 해킹은 개인정보를 노리는 의도적인 범죄 행위이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보화 사회의 그늘’쯤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해킹 피해 관련 보도는 쏟아지면서도 정작 누가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글로벌한 해커 집단이 지목되기도 하지만 쉽게 특정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만큼 가해의 회로가 복잡하기 때문일까? 해킹의 구조와 해커에 대해서도 더 대중적인 앎과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해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개인정보의 빅데이터화에 대해서는 짚어둘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여러 플랫폼 사이트를 통해 개인 메일이나 클라우드 서버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구글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에서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개인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정보화되고 그러한 정보의 독과점에 모두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 자의와 타의를 구분키 어려운 지점에서 개인정보의 빅데이터화는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드릭 뒤랑은 오늘날 디지털 생산의 기초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해 독점적인 통제를 행사하는 구조가 있고, 여기에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의존케 되는지를 논하면서 ‘기술봉건주의’라는 시대 규정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대형 디지털 서비스는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영지’이고, 하위 주체에겐 그러한 ‘디지털 토지’에의 ‘의탁’이 강제되어 있다. 지배 세력이 경제 잉여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하기에,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의존성과 잉여의 통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포식의 모델’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본 수익의 극대화는 생산의 극대화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통제의 극대화에 의존하게 되었다. 기술봉건주의 시대의 문제는 개인의 주체성이 말소된다는 데 있다. 플랫폼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제공하는 개인정보는 ‘위치 정보’와 ‘검색 이력’ 정도이기에 개별 단위로 보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정보가 수천만, 수억 개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수히 모인 정보들, 즉 ‘행동 잉여’가 이용자의 행동 예측을 광고주에게 팔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 예측 상품 생산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의 입장에서 이용자 개인은 고객이 아니다. 그들에겐 광고주가 고객이고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원재료를 제공한 다음 몰수되는 물건에 불과하다. 즉 개인은 생산자(노동자)도 소비자(고객)도 아니고, 제공하는 개인정보조차 개별 단위로는 너무 사사로워 ‘상품’조차 되지 못한다. 이런 기술봉건주의의 현실에서 개인의 주체적 위치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가장 긴급한 현대사회의 과제가 여기 있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0-09

환절기 면역 관리

가을이 되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낮엔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우리 몸은 큰 일교차에 적응해야 한다. 이렇게 기온 차가 크고 습도가 달라지는 시기엔 면역력이 약해지기 쉬워 감기나 기관지염 알레르기 비염 같은 호흡기 질환이 잦아지고 만성 피로나 잔병치레가 늘어난다. 한의학에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몸의 기운도 달라진다고 본다. 특히 환절기에는 신체의 리듬이 날씨 변화에 적응을 못해 자율신경이 불안정해지고 면역 체계가 약화되면서 평소보다 더 쉽게 호흡기 질환에 걸리고 면역력이 떨어져 피로도 심해진다. 우리 몸의 면역력은 단순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와 혈이 잘 돌고 장부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을 때 몸은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환절기에는 먼저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운이 약한 사람은 쉽게 피로를 느끼고 혈이 부족하거나 정체된 사람은 두통이나 손발 차가움 근육통 등을 자주 겪게 된다. 운동을 통해 기본적인 기혈 순환을 돕는 것이 첫 번째다. 가벼운 걷기를 매 식사 후 하면 좋고 욕심이 나면 조금 더 힘든 근력운동 혹은 사이클을 타도 좋고 혹은 근육 운동을 해줘도 좋다. 그리고 환절기에는 호흡기 관리가 많이 중요하다. 건조한 공기와 찬 바람에 노출되면 폐의 기운이 약해지고 그로 인해 기침, 가래, 인후통, 비염에 걸리거나 악화된다. 한방에서는 폐가 허약해지면 외부의 사기가 쉽게 침입한다고 보며 이를 막기 위해 폐의 기운을 보하고 체내 수분을 고르게 하는 치료를 한다. 도라지, 맥문동, 오미자 같은 약재는 호흡기 점막을 촉촉하게 하고 면역 반응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나 비염이 심해지는 환자들에게는 이런 한약과 함께 면역을 높이는 자율신경약침을 병행해주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생활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환절기에는 수면의 질이 떨어지거나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자율신경이 흔들리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면역력은 더 빠르게 떨어진다. 늦게까지 전자기기를 사용하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들이고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좋다. 또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땀을 적당히 내어주는 것이 기혈순환과 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이다. 특히 아침저녁 기온이 낮으니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과 발목을 따뜻하게 하고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은 한층 강화된다. 결국 가을철 환절기의 건강 관리는 몸의 면역을 올리고 기혈 순환을 강화 시키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바로 잡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단순히 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몸이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작은 감기나 피로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남들보다 건강하게 환절기를 지나갈 수 있다. 한방 치료와 더불어 올바른 생활 습관을 지켜나간다면 가을철의 큰 일교차도 두려움이 아닌 활력을 주는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09

EU 관세 인상, K스틸법 국회서 잠자고 있나

미국의 철강업에 대한 관세 인상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철강재에 대한 무역장벽을 높이는 조치를 발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유럽 철강업계 보호를 위한 규정안을 발표하고 앞으로 모든 수입 철강제품의 연간 무관세 할당량(수입쿼터)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수입쿼터는 2024년 수입쿼터 3053만t보다 47%가 줄어든 1830만t으로 제한한다는 것. 이는 글로벌 공급과잉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3년 철강 수입량 수준이다. 쿼터 총량이 본격 줄게 되면 한국 등 주요 수출 국가들의 쿼터 삭감도 불가피하다. 특히 수입쿼터를 초과한 물량에 대해서는 기존 25%에서 50%로 관세율을 두 배 인상해 수출기업의 부담은 더 가중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 철강업계는 EU의 관세인상 조치 발표로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국보다 수출량이 더 많은 EU시장마저 관세장벽에 둘러싸이면서 시장상황이 매우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시장의 관세 인상으로 수출에 타격을 입은 한국 철강업계는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공세와 이번 EU 관세 인상으로 사면초가에 갇힌 셈이 됐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시작된 무역 갈등이 바야흐로 자국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관세장벽을 높이는 보호주의 정책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유럽의 관세인상도 그 배경에는 보호주의가 자리를 틀고 있다. 자체 관세를 높일 게 없는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세계로 확산되는 보호주의 무역 흐름에 가장 취약하다. 철강이 주력산업인 포항은 철강 관세폭탄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돈다. 철강산업 강화를 위한 정부의 발빠른 지원정책이 절박하다. 이런 상황에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여야 100여 명 의원이 합의 발의한 K-스틸법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산업의 위기와 기업의 존망이 달린 법안 처리보다 더 급한 민생은 없지 않은가. K-스틸법의 조속한 통과에 여야가 집중하길 바란다.

2025-10-09

APEC 당일, 의장을 국감장에 오라는 국회

기업인을 국정감사장에 불러놓고 호통을 치며 망신을 주는 고질병이 올해도 되풀이될 전망이다.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200여 명에 달한다.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159명을 이미 넘어섰다. 여당 지도부가 “야당 때처럼 기업인들을 국감증인으로 마구잡이 채택하는 것을 자제하자”고 했다는데 빈말 된 것이다. 당장 13일 열리는 국토부 국감에는 현대건설·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GS건설·DL그룹·롯데건설·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이앤씨 등 국내 10대 건설사 회장이나 사장 대부분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명분은 건설사고 관련 질의를 위해서라지만, 호통치며 망신을 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오는 28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의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행사 개막 당일 정무위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 계열사 부당 지원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이유다. 최 회장은 이날 CEO 서밋 공식행사인 ‘퓨처테크포럼 AI’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 회장은 최근 CEO 서밋에 ‘글로벌 빅샷(거물)’을 초청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참석이 거의 확정적이며,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팀 쿡 애플 CEO의 참석 가능성도 높다. 젠슨 황 CEO 방한 때는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별도 회동을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감장에 기업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는 있지만, 분초를 아끼며 경주 APEC 성공개최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최 회장을 꼭 CEO 서밋 개막 당일 출석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 국감장을 보면 기업인들을 증인석에 장시간 앉혀놓고 훈시를 하거나 망신을 주는 행태가 반복돼 왔다. 아마 올해도 이러한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이는 국감 취지에도 맞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는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을 국감장에 부르는 행위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2025-10-09

안동의 사위

주한 영국대사관 콜린 크룩스 대사가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3일 안동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안동의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크룩스 대사는 평소에도 자신을 안동의 사위라고 자주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안동 명예시민증을 받게 된 배경에는 그의 특이한 안동과의 인연이 숨어있다. 부인이 안동 출신이어서 그가 안동의 사위라고 한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영국 최고의 지한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그는 2018~2021년까지 주북한 영국대사를 지낸 경력이 있다. 과거 알랙산드르 러시아 대사가 한국과 북한대사를 모두 지낸 적이 있으나 우리나라 주재 현직 대사 중 한국과 북한 양쪽의 대사를 경험한 대사로는 크룩스 대사가 유일하다. 안동과의 또 다른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한국 방문에서 시작된다. 1999년 여왕의 한국 방문이 결정되자 그는 서울의 북촌이나 한옥마을 등을 방문할 곳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왕이 “거리가 멀더라도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옴에 따라 안동 하회마을을 최종 방문지로 선정하게 된 것이라 한다. 그는 당시 주한 영국대사 1등 서기관으로 있으면서 안동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여왕의 안동 방문 전반을 기획하고 총괄한 인물이다. 때마침 여왕의 73세 생일이 방문일과 겹치면서 여왕의 안동 방문은 더 뜻깊은 날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 영국이 수교를 시작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현직 영국대사를 안동의 명예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이번 행사는 안동과 영국 간의 거리를 좁히는 의미와 더불어 한영수교의 의미도 더 깊게 한 이벤트였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09

법이 제 역할을 찾을 때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보장적 기능과 보호적 기능이다. 보장적 기능은 법이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지만 그에 저촉하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다. 보호적 기능은 법이 개인의 권리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법이 보장적 기능도, 보호적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영역이 있었다.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보아 의료인 아닌 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필자가 만난 의뢰인 중에 포항 남구에서 미용샵을 운영하던 싱글맘이 있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술은 눈썹 문신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중엔 의사도 있었다. 어느 날 시술을 받고 간 손님 한 명이 부작용이 생겼다며 환불과 치료비를 요구했다. 들어보니 시술 후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염증이 발생한 것이었다. 요구하는 치료비 액수도 터무니 없었다. 환불과 치료비 지급을 거절하자 이 손님은 샵 원장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결국 이 원장에겐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전과자가 됐으니 다음에 또 이런 손님이 나타나 고발을 하면 이젠 징역형으로 처벌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의사들도 눈썹 문신을 받으러 오던 이 미용샵의 사장은 의사가 아닌데 눈썹 문신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범죄자가 되었다. 1992년에 대법원이 문신을 의료행위라고 판단한 이후 30년 넘게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발생해 왔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타투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명성의 타투이스트 김도윤씨도 전과자가 된 지 오래다. 다른 잘못은 한 것이 없다. 그러나 타투 시술이 범죄로 취급되는 유일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선 누군가 신고하면 세계적 타투이스트라도 전과자가 되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현실에선 완전히 보편화 된 문신시술을 법과 법원은 의료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처벌하기만 하니 문신 시술업은 위축되었다. 이 업을 하며 생계를 꾸릴 수는 있었지만 신고하겠다는 고객들이 무서워 돈을 뜯기고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겼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시술 과정에서 성범죄를 당해도 신고가 두려워 고소를 할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한 법익침해가 없는데도 법은 문신 시술업자들의 활동을 보장하기는커녕 억압하고 위축시켰다. 법이 보장적 기능을 손 놓은 것이었다.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있었다. 문신을 그저 범죄행위로만 보니 시술 과정에서의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마련할 리 없었다. 무조건적인 불법화는 음성화를 부추길 뿐이었고 결국 법은 문신을 받는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보호적 기능도 하지 못했다. 보장적 기능도 보호적 기능도 하지 못하던 법의 역할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됐다. 지난 9월 25일 비의료인의 문신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문신사법은 앞으로 2년 후 본격 시행된다. 그러면 이제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고, 국가시험에 합격해 면허를 취득한 문신사라면 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시술 과정에서의 위생 및 안전관리 지침과 의무사항도 마련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신 시술을 하는 사람들도, 받는 사람들도 법에 의해 보장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10-09

"포항시, 그래핀 산업 육성 조례 전국 최초 제정···철강 이후 미래 전략산업으로 도약"

포항시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그래핀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9월 포항시의회를 통과한 이 조례는 그래핀 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계획 수립, 기업 지원, 연구개발 거점화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철강산업 이후 포항의 산업 정체성을 바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2차원 물질로,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는 ‘꿈의 신소재’다. 투명하고 유연하며 열 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배터리, 전자소자, 복합소재, 센서 등 거의 모든 첨단산업에 적용 가능하다. 세계 각국이 그래핀의 상용화를 미래산업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대규모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포항은 이 흐름 속에서 선제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시는 ‘그래핀산업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산·학·연 협력체계를 마련해 기업 유치와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포스텍과 한동대, 포항테크노파크가 중심이 되어 연구개발과 인력양성, 시험평가 인프라를 연계하는 구조다. 시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그래핀 산업 생태계 매출 1조원, 관련 일자리 3000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은 이미 소재산업의 기반이 탄탄하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생태계와 블루밸리국가산단의 2차전지·양극재 기업 집적지가 맞물려 있다. 여기에 그래핀이 결합하면 기존 금속·화학소재와의 융복합이 가능해진다. 철강이 도시의 산업근대를 상징했다면, 그래핀은 미래 지능 소재 도시로 가는 디지털 산업의 교두보다. 기술적 진전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 연구진은 3D 그래핀 폼, 주름 그래핀 등 구조 변형을 통한 전도성 향상 기술을 확보했고, 국내 기업들도 대량생산과 품질균일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포항테크노파크는 그래핀 소재 실증기반 구축사업을 통해 연구소 수준의 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와 평가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 실험실의 기술을 기업 현장으로 끌어내는 ‘실증 허브 도시’로의 진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와 함께 시는 중소기업이 그래핀을 접목한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공동장비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철강·기계업체들이 그래핀 복합소재로 전환할 경우, 단순 제조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 지역 중소기업 대표는 “그래핀을 활용하면 경량화·고내열 부품 개발이 가능해 수출 시장의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그래핀은 물성이 우수하지만 생산 단가가 높고, 품질 제어가 어려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조례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장비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지원, 기술이전 촉진, 전문인력 양성 등 실질적 지원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이 단순한 신소재가 아니라 도시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산업 플랫폼 기술’로 본다. 포항공대 김 모 교수는 “그래핀은 반도체, 배터리, 수소산업 등 다양한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기반 소재”라며 “포항이 이를 제도적으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향후 기술 실증과 기업 집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주목된다. 포항시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래핀 산업이 본격화될 경우, 직접고용 3천 명, 간접고용 1만 명 이상의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관련 장비·화학소재·전자부품 산업으로의 기술 확산이 가능하다. 특히 청년층 연구인력의 지역 정착과 창업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핀 산업의 잠재력은 아직 완전한 궤도에 오르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확실하다. 포항의 그래핀 육성조례는 그 가능성을 제도화한 첫 사례로서 지역이 기술혁신의 실험장이자 산업전환의 선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철강으로 도시의 근대화를 이뤘던 포항이 이제는 그래핀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과거의 ‘단단한 강철’이 포항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미래의 ‘투명한 그래핀’은 그 위에 혁신의 신경망을 세울 것이다. 산업의 전환은 결국 준비된 도시에서 일어난다. 포항의 도전은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다. 임창희선임기자/lch8601@kbmaeil.com

2025-10-07

추석장(전통시장) VS 대형유통 - ‘정(情)’과 ‘편리함’ 사이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포항 죽도시장. 대형 장바구니를 든 시민들이 오가지만 예년처럼 활기가 넘치진 않는다. 상인들의 표정에는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서 문어 한 마리가 1kg당 9만 원을 훌쩍 넘자,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지금은 손님이 와도 살지 말지 고민만 하다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시장에서 30년째 장사하는 김모(63)씨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상인 박모(58)씨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으니 명절 특수도 옛말입니다. 장사하는 우리 마음만 바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특히 차례상 간소화와 제사문화 변화가 전통시장 매출에 또 다른 타격을 줬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평균 8~12% 상승했지만, ‘간소하게 차린다’ 혹은 ‘차례를 생략한다’는 응답이 40%를 넘어섰다. 제사음식 재료를 사러 오는 손님이 줄자, 상인들은 “명절이 점점 평일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좁은 골목과 불편한 주차, 현금 중심의 결제 시스템은 현대 소비자에게 불편하다. 반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은 ‘한 번의 결제, 빠른 배송’이라는 편리함으로 지역 소비를 빨아들이고 있다. 포항의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연휴 내내 주차장이 만차였고, 온라인몰에서는 선물세트와 간편식 주문이 폭주했다. 소비자 박모(47)씨는 “시장 물건이 싱싱한 건 알지만, 마트는 결제 한 번에 끝나고 배송까지 되니 선택이 쉬워요.”라며 현실적인 이유를 밝혔다. 포항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지역 중소상인 68%가 매출 감소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 경기 둔화, 소비 패턴의 변화가 한꺼번에 전통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항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만 50억 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온누리상품권 10% 할인 지원(약 12억원), 공영주차장 무료 개방(12개 시장 1100면), 시장 환경정비·가스·위생관리 지원(7억원), 시장 환경개선 및 간판 정비 사업(5억원) 등이 있다. 또한 전통시장 내 스마트 결제 시스템 도입(3 원)과 디지털 홍보·예약 포장 서비스 지원(2억원)을 추진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죽도시장 일부 점포에서는 간편결제(QR)와 예약 포장제를 도입했고, 떡집은 송편 예약제를 운영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부 수산물 상가는 시식·체험 공간을 마련해 시장 특유의 체험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회 김모 회장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만의 재미, 사람 냄새 같은 ‘정(情)’이 살아야 손님이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이벤트보다 시장 체질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해경제연구소 A 연구위원은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얼굴이자 생활문화의 현장이다. 디지털 결제, 체험·문화 콘텐츠, 예약·포장 서비스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올해 추석을 맞아 12개 전통시장에 대해 안전·가스·위생 점검, 문화공연 지원, 상인회 자율정비사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체감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과 편리함이 공존해야 한다. 시장만의 고유 가치와 현대적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할 때, 전통시장은 명절 특수를 넘어 연중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전통시장의 생존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지역경제와의 상생이 새로운 돌파구다. 디지털 결제, 예약·체험 프로그램, 문화 이벤트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전통시장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온기와 경제적 활력을 잇는 생활형 명절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전통시장의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대목에 힘을 실어본다. /lch8601@kbmaeil.com

2025-10-06

일본의 新정권 출범과 韓日 경제 협력 방향

일본 자민당이 창당 70년 만에 첫 여성 총재를 배출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장관이 결선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장관을 누르고 제29대 총재로 선출됐다. 오는 15일 임시국회에서 제104대 총리로 지명되면 일본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다. 상징성은 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민당은 양원 모두 과반을 상실한 소수여당이다. 확장재정을 공언한 만큼 재정건전성 논란도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다카이치 체제의 핵심 기조는 ‘현실주의’다.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되, 정세 변화에 맞춰 실리를 택하는 현실보수 노선을 지향한다. 한일관계에도 새로운 균형을 찾는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다카이치는 헌법 개정과 안보 강화, 자조(自助) 경제를 중시하는 전형적 보수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는 야스쿠니 참배 등 과거사 이슈 재점화 우려가 제기되지만, 소수여당이라는 정치 현실이 강경 일변도 정책을 제약할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발언은 보수, 정책은 현실조율”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일관계 또한 대립보다는 실리적 협력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경제정책은 ‘책임 있는 적극재정’이 핵심이다. 인프라·디지털·AI·반도체·방위산업 등 전략 분야에 재정이 투입되면,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열린다. 내수·공공투자 확대는 한국의 부품·소재·장비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다카이치는 경제안보 담당장관 출신으로, 공급망 안정과 기술자립을 중시해왔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일본이 한국·대만과 ‘경제안보 연대’를 재정비할 가능성이 크다. 한일 간 반도체·AI·탄소중립 협력은 실현 가능한 실리 과제다. 시장에선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감지된다. 확장재정과 완화 기조가 맞물리며 엔저 압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웃돌면 원·엔 환율은 900원대 중후반까지 상승할 수 있다. 자동차·기계·전자 등 중복산업은 가격경쟁이 심화되지만, 엔저는 일본 내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재·식품·K콘텐츠 등 한국산 제품 수요를 자극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쟁압박, 중기적으로는 수요확대가 공존하는 구조다.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대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 속에서 역내 다자협력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 모두 RCEP, IPEF, APEC의 핵심 축으로, 공급망·기술표준·탈탄소 정책 연계가 요구된다. 10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 방일 일정은 변수다. 이 시기 APEC을 전후로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경제·기술·안보를 아우르는 포괄협력이 논의될 수 있다.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실리협력의 창이 열리고 있다. 일본의 신 체제 출범에 따른 대일 경제협력 등에서는 감정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실리·실용적 접근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우경화 이미지 뒤에는 ‘경제 실용주의’가 자리한다. 엔저 리스크에 대비한 환율정책 조율, 반도체·첨단소재 공동연구, RCEP·IPEF 내 정책 협업 등 제도적 협력 프레임을 적극 가동해야 한다. 정치적 견제와 산업적 공조가 병존하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확장재정은 기회, 엔저는 경계, 현실보수는 협력의 여지다. 더구나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정리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한국경제의 향방도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한 세심한 대응전략을 구사해야할 시점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0-05

“포항, 글로벌 AI 혁신 전진기지로 우뚝 설까”

포항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철강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포항에, 이제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으려 한다. 대통령실이 지난 2일 밝힌 오픈AI-삼성 협력에 따른 데이터센터 유치 소식은 단순한 개발 뉴스가 아니다. 지역 산업 지형을 바꿀, 어쩌면 포항의 미래 좌표를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다. 데이터센터 규모부터 눈길을 끈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1만3000평 부지에 세워질 이 시설은 초기 20MW에서 최대 200MW까지 확장 가능한 초대형급이다. 초기 투자만 3조~4조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스타게이트’라는 700조원 규모의 세계적 인프라 사업의 일환이니, 포항이 단순 분산지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삼성SDI가 시행을 맡고,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와 메모리 역량을 증명할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술적·산업적 상징성도 크다. SK가 전남에서 같은 구조로 협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은 삼성이, 전남은 SK가 각각 책임지는 양축 구도다. 이 자체가 이미 국가 균형발전 차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지역 전략산업과 AI 융합이다. 철강과 2차전지, 그래핀 산업까지-이들 산업은 방대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고도화된 AI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공정 혁신,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직결된다. 둘째, 지역 생태계 활성화다. 대학·연구소·스타트업이 밀집한 포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그 자체로 혁신 클러스터의 허브가 된다. 지역경제 연구원 관계자의 말처럼, “튼튼한 산업 기반에 AI라는 신경망이 더해지면 체질 개선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포항시 역시 이를 ‘AI 철강도시’, ‘스마트 배터리 밸리’라는 전략 브랜드로 연결하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다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용수·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200MW 규모라면 소규모 원전 하나에 가까운 전력을 소모한다. 과연 포항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출 수 있을지, 지역 환경에 미칠 파장은 없을지, 앞으로 치열한 검증과 논의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세계 모범적 AI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며 포항을 글로벌 혁신 전진기지로 강조했다. 올트먼 CEO 역시 “삼성과의 협력은 특별하다”며 포항을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선언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지역의 산업, 대학, 행정, 시민사회가 이 기회를 어떻게 흡수하고 소화하느냐가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다. 포항은 이미 철강에서 배터리로, 다시 AI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함께 찾아오는 지금, ‘AI 허브 포항’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빛을 발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준비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03

울릉공항, ‘조류 충돌 위험’ 사실과 달라…진짜 위험은 1200m 활주로

최근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여파는 곧장 다른 신공항 건설 사업으로 번졌다. 울릉도 공항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조류 충돌 위험’을 들며 울릉공항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알고 있는 울릉도 주민의 눈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적이다. 과연 울릉도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우려 지역일까? 울릉도에 살면서 공항 예정지와 주변 환경을 직접 지켜봤다. 울릉도는 바다 한가운데 솟아난 섬으로 철새도래지와는 거리가 멀다. 과거 독수리와 깍새(슴새), 흑비둘기 등이 무리를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흑비둘기는 사동 일대에서 가끔 한두 마리 보일 정도다. 새로 늘어난 조류는 꿩인데, 이들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지도 않는다. 항공기 충돌 위험과는 거리가 있다. 울릉도에서 조류 충돌 가능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종은 괭이갈매기다. 그러나 이 또한 공항 부지와는 무관하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 습성이 강하다. 실제로 유람선을 타고 관음도 주변을 돌아보면 관광객들이 새우깡으로 괭이갈매기를 불러 모은다. 하지만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만큼 영역성이 뚜렷한 새라는 이야기다. 울릉공항 예정지는 울릉도 남서쪽 사동리에,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북면 관음도 인근에 있다. 직선거리로도 멀고, 산을 사이에 둔 ‘다른 세계’다. 결국 울릉공항을 두고 조류 충돌을 걱정하는 것은 울릉도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공항 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는 위험을 있는 것처럼 부풀려 개항 전부터 ‘위험 공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지역사회에도, 국민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오히려 울릉공항의 진짜 과제는 다른 데 있다. 활주로 길이와 안전 설계다. 현재 1200m로 계획된 활주로는 소형항공기 기준이다. 하지만 향후 80인승 항공기 운항을 고려하면 최소 300m 이상 연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종단안전구역(RESA)은 180m인데, 울릉공항은 절반인 90m로 설계됐다. 기상이 급변하는 울릉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추진위원회가 전국적인 서명운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지역 이익 챙기기가 아니다. ‘국민 이동권 보장, 생명과 안전 확보’라는 명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공항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울릉도는 철새도래지도, 조류 충돌 위험지역도 아니다. 잘못된 정보로 공항 안전 논란을 키우기보다, 활주로 연장과 안전설계 보완이라는 진짜 과제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때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10-02

‘저수지의 개들’

자신의 발바닥과 뼈다귀를 핥다 지쳐 개들이 저수지로 온다 세상의 가뭄이라, 바닥이다 보라, 잡풀들과 억새들은 그런대로 잘 산다 그들의 생애가 푸르고 찬란하다 개들은 없는 밑천마저 탕진한 주제에 국물도 없다고 빈정거리며 드러눕는다 그 몰골로 먼 산을 본다 부끄러워 짖는다 모자라고 덜떨어진 존재들이라고 상대를 탓하며 파리채로도 사용 못 할 혓바닥으로 변명의 웅변을 가열차게 구사한다 치부를 가리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다고, 국밥 먹여 동원한 졸개들만 듣고 있다 밤이 되면 좀비가 되어 온갖 양념을 상상하며 빠는 손가락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도취된 결핍의, 그 편향의 마약을 끊어야 할 시간 제발 반역이랄 것도 없는 껍데기 혁명에 몰두할 일이 아니라 쪼그려 앉아 새싹이 돋는 법을 관찰하는 것이 차라리 도약의 자세이다. ….. ‘발푸르기스의 밤’은 마녀와 악령들이 산에 모여 춤을 추고 악마와 교류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축제, ‘저수지의 개들’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모를까? 다만 역량을 비축하여 훗날을 도모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냥 짖을 일이 아니다. 시대정신은 대의(代議)라는 말로 치환된다. 이기는 것이 장땡이다. 승리자에게 모든 것을, 그것이 현실이다. 개는 사람을 물지만 사람이 개를 물 수는 없다. 누가 개이고 사람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연금술사와 변검(變臉)의 나날이다. 사랑할 날들이 많지 않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0-01

배웅하는 길

몇 년 만에 온 지인의 문자다. 잘 지낸다는 것도 잘 지내느냐는 말도 아닌 단체에게 보낸 부고장이다. 나는 시아버지상이라는 글자를 다시 보았다. 그녀의 남편 얼굴도 모르는데 그 남편의 아버지라니.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아버지의 그날을 떠올렸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문밖출입을 꺼려하던 때였다. 설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를 배웅할 친구는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해도 소식을 전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부고장을 보낼 친척들과 형제들의 지인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코로나를 핑계 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해 할 몇몇 친척들에게만 연락했다. 그날, 아이들에게는 설 명절을 앞당긴 것 같았다. 외사촌 이종사촌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둘러앉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냈던 날들을 되새김질 했다. 맞아 맞아 그때 그랬어. 사진으로 남은 어린 시절 이야기가 웃음소리와 함께 퍼졌다. 나는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조문객도 없는 장례식장이 낯설었다. 오든 안 오든, 부고장이라도 다 보낼걸. 그동안 이리저리 낸 부조금이 얼만데. 이십 여 년 전 여름, 엄마의 장례식장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복도에는 꽃들이 줄을 서고, 조문객은 남편의 업무와 연관된 거래처부터 친구들까지 연줄에 연이 걸리듯 했다. 우리는 손님 맞이 하느라 엄마의 영정사진 한번 제대로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 쓰러지곤 했다. 봉분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보냈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그땐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자 연락하지 않아도 올 사람은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반갑고 고마웠다. 아버지를 배웅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코로나보다 더 먼저인 것처럼 보였다. 형제들은 찾아온 조문객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나는 그들을 온 마음으로 눈에 담았다. 저녁 늦은 시간, 뒷정리를 하는데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낯선 얼굴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던 남동생이 그녀를 보자 당황해 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너, 우리 아버지 한 번도 뵌 적 없잖아”라고 한다. 얼굴도 모르면서 왜 왔느냐고 다그치듯 해서, 나는 얼른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자, 동생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했다. 듣는 내가 무안해 얼른 올케를 불렀다. 나는 쓰레기를 정리하며 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흘낏 보았다. 내 뒤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깜짝 놀라 상갓집이라는 사실을 잊었냐고 주의를 주었다. 맥주잔을 소리 없이 부딪친 아이들은 자주 만나려면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아직은 어린 막냇동생의 휴대폰에 게임머니를 보내주는 선심을 쓰고 있었다. 남동생 내외가 그녀를 배웅하고 들어왔다. 나는 동생의 등을 치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야단쳤다. 너는 얼굴 아는 사람만 문상하느냐고 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조문이라는 게 돌아가시는 분을 배웅하는 것도 있지만, 상주를 위문하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되받아쳤다. 동생이 되물었다. 오랜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위문 받아야 할 만큼 우리가 슬플까? 갑작스런 사고도 아닌, 그렇다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도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잘 아는 사람은 부고장이 안 와도 기꺼이 찾아가 마지막 길 잘 가시라고 인사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잊었다. 옆에 섰던 올케가 변명하듯이 거들었다. 제자인 그녀가 이 늦은 시간에 진주에서 경주까지 혼자 운전해 와서 놀랐을 거라고 했다. 동생은 자리를 피해 슬며시 조카들 얘기 속에 끼어들었다. 마른세수를 한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동생의 말처럼 나는 위문을 받아야 할 만큼 슬플까. 고개가 저어졌다. 언젠가부터 이제 편안하게 가시길 기도하지 않았던가.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의 옛 이야기에 같이 웃지 않았을까. 곡은 제 설움에 한다는데, 형제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 곡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아버지를 편히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배웅일지도 모른다. /윤명희 수필가

2025-10-01

해외에서 보름달 보는 한가위

21세기 들어서며 해마다 새로 세워지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그 가운데 하나다. 올해도 예상대로 지난해 기록이 깨졌다. 2025년 추석 연휴는 길다. 하루쯤 연차를 낸다고 가정하면 최장 10일을 쉴 수 있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에 인천공항을 이용할 사람들은 245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22만3000명에 이른다. 그 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와 조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가려는 한국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복잡한 완행열차 속에서 6~7시간을 서있거나, 거대한 주차장이 돼버린 도로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고생하던 모습은 이제 지난 세기의 기억으로만 남을 듯하다. 추석과 설, 1년에 한두 번쯤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으며, 조상께 올릴 차례 음식을 함께 만들던 풍경은 이제 노인들이나 그리워할 뿐이다. 사람보다 핸드폰과 소통하는데 익숙한 Z세대는 어른들이 주는 용돈은 좋지만 잔소리는 싫고, 신세대 며느리들은 시가(媤家)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명절증후군’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다들 멀리건 가깝게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원하는 추석. 변화하는 세태를 몇 사람의 힘으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허니, 내년 추석에도 공항 이용객 기록이 깨질 건 불을 보듯 뻔하고. 해외에서 보름달을 보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저승에서 조상들이 울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01

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관세와 투자 압박을 연일 가하고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요구하더니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불’로 내놓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겉으로는 안보 동맹을 흔들고 방위비 분담을 무기로 흔드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발언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짊어진 국가부채 규모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렀고 해마다 갚아야 하는 이자만 1조달러를 넘어선다.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미국 정부가 동맹국을 상대로 현금확보를 노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직면한 어려움은 재정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째, 미국은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쉽게 철수할 수 없다. 겉으로는 철수 가능성을 흘리며 압박 수단으로 삼지만,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을 포기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미군 주둔은 협상카드가 아니라 안보 필수 조건이다. 둘째, 미국의 산업기반은 소위 ‘공업공동화’현상을 겪어왔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탈산업화 흐름 속에서 미국이 생산능력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지아주에서 최근 벌어진 비자 사태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전기차, 배터리, 조선, 반도체 등 미래산업의 전략적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 입장에서, 기술력과 생산망을 확보한 한국기업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협력의 언어가 아니라 압박의 언사를 구사한다면, 내부의 정치적, 재정적 곤경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거절’과 ‘수용’ 가운데 양자택일로 접근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한국도 안보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해왔고, 수출시장과 금융질서 또한 미국 중심의 구조 속에 들어있다. 동시에 이번 사태는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트럼프의 ‘선불 요구’ 발언이 나온 지도 여러 날이 흘렀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뚜렷한 후속 조치나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전략적 구상보다는 즉흥적이며 단기적인 재정압박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임을 방증한다. 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한국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있다. 한국은 동맹의 가치를 인정하되 일방적 요구에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과 기술, 금융질서를 다변화하여 ‘미국 없이는 설 수 없다’는 구조적 취약함을 줄여가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압박이 반복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터이다. 트럼프식 협상술은 익숙한 패턴이다. 큰 소리를 치며 상대를 위협하면서 일부라도 얻어내는 방식이었다. 이번만큼은 한국이 조급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에게 전략적 자산이자 파트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과 위치를 자각할 때, 비로소 선불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주권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01

경주 APEC 성공예감, 행사준비에 만전을

오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최대 외교 이벤트인 한미·한중·미중 정상회담이 2박 3일동안 경주에서 잇달아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경주 APEC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로선 한미·한중·미중 정상회담이 경주에서 개최될 확률이 높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양자 회담은 한창 조율 중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서울에 체류하지 않고 경주에서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지난 2009년 12월 부주석 때 경주 반월성과 불국사를 찾았으며, 당시 김관용 경북도지사·백상승 경주시장과 만찬을 같이 한 추억이 있다. 중국 측은 지난달 서울 신라호텔에 APEC 정상회의 기간 대관을 문의했지만, 지난주 관련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호텔 측에 연락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2박 3일 동안 경주에 체류하며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과 연쇄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정상 만찬에도 참석해 내년 APEC 의장직을 인수하고 차기 개최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한편으론 중국 측이 신라호텔 예약을 취소한 지난달 27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갑자기 중국을 방문해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정상회담 등에 대한 상황 공유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경주 APEC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CEO 서밋’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빅테크 거물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어서 경주의 도시브랜드를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세계 주요국 정상들과 빅테크 거물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실질적인 정치·경제적 성과들이 나오면 경주는 한순간에 국제 외교 무대의 ‘스타도시’로 부상할 수 있다. 정부와 경북도, 경주시는 ‘포스트 APEC’을 감안하면서 행사준비에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