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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첨단 디지털 도시로 산업지형 바뀌는 구미

삼성 SDS가 구미에 하이퍼 스케일급 AI데이터 센터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초기 투자 규모가 4273억원 정도며, 향후 서버 등 장비 반입까지 고려하면 조단위 투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특히 삼성의 이번 투자는 수도권 데이터 센터의 전력 포화문제를 해소하고 미래 AI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특별히 비수도권을 선택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구미시는 이번 AI센터 건립은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 구미 산업지형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미가 추진해온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 지정 이후 이번 투자는 최대 규모의 소프트웨어 인프라 성과며 구미의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 산업구조에서 AI연산과 데이터 기반 역량으로 결합하는중대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삼성의 60MW급 AI데이터 센터 구축을 구미의 AI혁명의 신호탄으로 본다. 구미 하이테크밸리에서는 이미 민간 컨소시엄인 퀀텀일레븐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립 중이어서 구미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대 데이터 거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특히 AI 인프라 확장은 구미의 주력산업인 방위산업과 전자산업에도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한화시스템 등 지역 기업들의 제조공정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산업 효과가 상당할 거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반도체 특화단지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청년에게 양질의 IT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재"로 평가했다. 지역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지방소멸의 주된 원인이다. 삼성의 AI센터 건립이 지역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인재를 지역에 남게 하는 전환점이 된다면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특히 불량제품을 불태우며 삼성의 애니콜 신화를 창조했던 구미공단에 AI센터가 들어서는 것은 구미 도시브랜드 가치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그간 구미시는 AI센터 유치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완공될 때까지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6-01-11

‘연자가’에서 읽는 부모와 자식 관계

얼마 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5언 30행 150자의 ‘연자가(鷰子歌)’를 읽고 생각이 제법 복잡해진다. ‘새끼 제비의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어느 집 서까래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네 마리 새끼를 애면글면 키워나가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부리와 발톱이 닳아 뭉개질 만큼 맹렬하게 ‘육추(育雛)’하는 어미 제비 부부. 한 달 내내 먹이 사냥과 언어 교육, 털 고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 제비. 그러던 어느 날 새끼 제비들에게 깃털이 돋아 그것들은 이소(離巢)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겨난다. 한 번 비상(飛翔)한 새끼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어미들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새끼들은 대답이 없다. 빈 둥지 깊은 곳에서 어미들은 밤새도록 슬피 운다. 이 장면에서 시인이 어미 제비들을 통렬하고도 신랄(辛辣)하게 꾸짖는다. ‘제비야, 제비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희는 마땅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라. 너희가 새끼였을 때, 어미를 등지고 높이 날아간 그때를 생각해보라. 당시 부모 마음을 너희는 오늘 응당(應當) 알지니.’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대개 부모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그런데 ‘연자가’에서 시인은 부모 제비를 엄중하게 꾸짖는다. 언젠가 너희도 어렸을 적 부모 마음을 전연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아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이제야 너희도 그때 부모 마음이 어땠을지 알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세대 갈등에 시달렸을 터.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구하고도 연면(連綿) 부절(不絶)하게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가 답답하다고 비난하고,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과학기술이 느릿하게 발달하던 시절에도 서로 괴로웠던 부모 자식들은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의대 갈 필요 없다, 3년 내에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란 일론 머스크의 일갈(一喝)에 얼마나 많은 한국 학부모들의 간담이 서늘했겠는가! 자식들의 취향이나 적성 혹은 미래기획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지금과 여기의 평판과 자신들의 기대치만 앞세우는 부모들의 탐욕! 그로 인해 국가는 과학기술 인재를 잃어버리고, 청춘은 막다른 골목을 서성대고!···. 요즘 같은 시절에 30년 한 세대 차이는 그야말로 석기시대와 대항해시대 차이만큼 거리가 멀다. 그다지 깊지도 다채롭지도 못한 세상 경험과 거론하기조차 쑥스러운 독서량, 빈곤한 상상력과 태부족한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부모 세대의 닦달에 청춘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러하되 내 자식 의대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철부지 부모들이라니! 21세기 20년대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배우고 다시 배우는 시간대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사물(事物) 인터넷이 일상화하는 시기에 부모들은 자식들 못잖게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1200년 전 밤새 슬피 울던 어미 제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1

외국인 노동자의 낮은 목소리

“세상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큰아이가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변함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한때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법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아이는 세상의 끝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었고, 자신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엄마인 나에게 교훈을 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사함과 함께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의회에서는 ‘포항 외국인 노동자 인권 개선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동대학교 아시아인권법학회 지도교수와 학회원, 포항시 관계 공무원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7월 숲 가꾸기 사업 현장에서 폭염으로 네팔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시정질문을 했고,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그 연장선에서 이번 간담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포항 외국인 선원 인권 보호’ 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실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구룡포 일대를 중심으로 외국인 선원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포항시는 경제노동과에서 외국인 근로자 상담센터 운영 현황을 공유했고,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해 외국인 노동자를 배려한 5개 국어 안전지침 안내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촌활력과에서는 E-10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선원 관리 실태를 설명했고, 녹지과는 네팔 노동자 사망 이후 산림사업 업무 대행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더욱 강화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 폭염 속 숲 가꾸기 사업 도중 사망한 네팔 노동자 사건과 관련해 시정질문을 준비할 당시, 포항시와 산림조합, 시공사가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 전반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지침과 매뉴얼은 존재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서류 속 매뉴얼’에 불과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한 장애인 단체가 재난 대피소 이용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피소에 개별 텐트가 설치되었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텐트 줄에 걸려 이동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말 가운데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은, 비장애인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재난 대피 시설뿐 아니라 일상 속 이동 환경과 안전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도 같은 맥락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망망대해에서 조업하는 일부터 농촌 비닐하우스 작업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은 아직 AI로 대체할 수 없는 필수 노동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세상의 낮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며, 따뜻한 환대로 이들을 맞이해야 한다. 포항이 그들을 더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도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바란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6-01-11

화려한 무대 뒤에 남겨진 질문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문화행사는 국가가 세계를 향해 내민 하나의 문화적 얼굴이었다. 완성도 높은 연출과 막대한 예산,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얻는 유명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장면들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국제 행사의 성격에 걸맞은 스케일과 이미지, ‘알리기 위한 문화’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해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는 지역의 시선은 단순한 감탄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같은 도시, 같은 시간 속에서 지역 예술가들은 여전히 ‘예산 부족’이라는 익숙한 문장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이 떠오른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의 아우라는 작품이 놓인 고유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삶의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규모가 확장될수록 예술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의 자리에서 분리될 위험도 커진다. 벤야민이 경고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삶과 분리된 예술은 결국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PEC 문화행사가 국제적 이미지로서의 아우라를 가졌다면, 지역 문화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생성되는 또 다른 종류의 아우라를 지닌다. 지역 문화의 힘은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밀도에 있다. 골목과 시장, 항구와 학교, 그리고 그 공간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는 대체 불가능한 문화 자산이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축적된 문화는 쉽게 복제할 수 없고, 외부에서 단기간에 이식할 수도 없다. 이를 외부의 화려한 콘텐츠로 덮어버리는 순간, 문화는 삶에서 떨어져 나가고 배경으로 전락한다. 벤야민이 말한 ‘전통의 단절’은 거창한 파괴가 아니라, 바로 이런 무심한 대체에서 시작된다. 오히려 저예산 문화행사가 지닌 가능성은 이 단절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장비와 기술, 홍보가 부족한 대신 기획은 필연적으로 삶에 가까워진다.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주체가 되고, 관객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될 때 문화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기억으로 남는다. 이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행위(praxis)’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아렌트에게 행위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가 시간 속에서 지속성을 획득하는 실천이었다. 지역 문화는 바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고 축적되는 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국가급 축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다. 해마다 반복되는 작고 꾸준한 문화 활동, 눈에 띄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는 실천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든다. 예산은 줄어들 수 있어도, 시간 속에서 쌓인 신뢰와 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APEC 문화행사가 국가의 얼굴이었다면, 지역 문화는 지역의 심장이다. 심장은 크지 않아도 된다. 다만 멈추지 않고 뛰어야 한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짜 아우라는 언제나 삶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지역 문화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생성되고 있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2026-01-11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리본과 화분이 약속한다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포옹한다 단골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혼인 신고를 마친 보르헤스 전집과 3단 책장 새로 산 우산이 겨울비를 맞는다 계단이 물 자국을 빨아들인다 투명한 창문에 입김을 불어 글씨를 쓴다 오래오래 잘 사세요 부러진 밥상과 스프링이 빠진 볼펜 사람은 고쳐 쓰지 말랬지만 사물은 몇 번이나 고쳐 쓸 수 있고 머리부터 집어넣는 티셔츠의 세계 몸통이 구멍인 빨대의 세계 뜨거워져야 움직이는 엔진의 세계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새해가 온다 바퀴가 동그라미를 따라 해서 자전거가 움직인다 컵과 얼음이 만나서 완성되는 여름 구멍 난 장갑이 눈사람의 차지가 되는 겨울 창문에 쓴 글자가 남아 있다 오래오래 ―임지은, ‘사물들’ 전문 (시집,‘이 시는 누워있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 민음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변덕을 가진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래오래”라는 주문과 함께 1월의 신세계를 열어젖힌다. 1월의 메타포는 ‘처음’과 다름 아니다. 가족의 처음이 혼인이라면 “단골손님과 주인으로 만나” “혼인 신고”를 마친 것으로, 공동체의 최소 단위는 시작된다. 보편적인 인식에서 보자면 “보르헤스 전집”과 “3단 책장”과의 혼인은 제법 어울리는 결합이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다. 임지은의 이 시에는 그러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을 재기발랄하게 은유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리본과 화분의 약속”이라니. 리본이니 화분이니 하는 사물의 이름은 아담의 언어로,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한 이름들이다. 무엇보다 이 시에는 어울릴 법한 사물과 사물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가령 “리본과 화분이” “약속”하고,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포옹”하고, “우산”이 “겨울비”를 맞고 “계단”이 “물자국”을 빨아들이는 식이다. 이들 관계성에는 이질감이나 이물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가 가진 언어의 질감이고, 마법이다. 하마터면 시인의 능청에 속을 뻔하지 않았는가. 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시의 제목 ‘사물들’이라는 무생물성에 있다. 여기에 열거된 사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의 사물들이다. 그런데 왜 관계성의 언어로 사물들을 선택했을까. 예컨대 화자는 “부러진 밥상과 스프링이 빠진 볼펜”을 불러 답한다. “사람은 고쳐 쓰지 말랬지만, 사물은 몇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다고 말이다. 언어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재료이면서, 반면 가장 불완전한 재료이다. 이 세계는 온통 쓸모로 가득하다. “몸통이 구멍인 빨대의 세계”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이 세계의 비인간성에 대해 시인은 “사물들”의 입지를 빌어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역설하고 있다. 결국 사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인가. 시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뜨거워져야 움직이는 엔진의 세계”처럼 둥글게 굴러가는 세계를 소망하는 것. 마치“바퀴가 동그라미를 따라 해서 자전거가 움직”이듯 말이다. 우리는 시인의 “오래오래”의 주문을 “달력이 1월을 사랑해서 새해가 온다”라는 믿음에 첫 마음을 얹어보는 것이다. “창문에 쓴 글자가 남아 있다, 오래오래” /이희정 시인

2026-01-11

AI는 마법이 아니다···인공지능이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

지난주,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준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주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AI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마법 같은 존재로 여기지만, 실상 AI는 명확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술이다. 그 원리를 이해하면 AI를 훨씬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포항 죽도시장의 작은 마법 예를 들어 죽도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 사장은 최근 ChatGPT를 활용해 매일 SNS 홍보 글을 작성한다고 하자. “오늘은 국내산 마른오징어 특가!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라는 문구부터 계절별 상품 소개까지, 이전에는 30분 이상 고민하던 일을 이제는 5분 만에 홍보 문구를 만들어 활용한다. 여기서 김 사장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이거 정말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는 건가요? 너무 신기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김 사장처럼 AI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여길 수 있다. 과연 그럴까? AI의 진짜 정체 - 패턴을 찾는 예측 기계 AI, 특히 ChatGPT 같은 생성형 AI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다음에 올 단어 예측하기’다. 예를 들어보자. “포항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부분 “철강”, “과메기”, “호미곶”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AI가 하는 일이다. AI는 인터넷에 있는 수천억 개의 문장을 학습하면서 “포항” 다음에는 “철강”이 자주 나온다는 패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패턴을 바탕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ChatGPT는 약 1조7000억 개의 매개변수(파라미터)를 가진 거대한 수학 모델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온다면, 포항시 전체 인구가 50만 명인데 그보다 340만 배나 많은 연결점을 가진 신경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AI는 통계와 확률로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답변이 나올 확률이 높다”는 계산을 초고속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ChatGPT의 등장이 바꿔놓은 결정적 차이 그렇다면 왜 2022년 ChatGPT 출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이렇게 다를까? 사실 AI 기술 자체는 1950년대부터 존재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도 AI였다. 그런데 ChatGPT는 무엇이 달랐을까? 우선 대화가 가능해졌다. 이전의 AI는 특정 작업만 수행했다. 알파고는 바둑만 뒀고, 음성인식 AI는 음성만 인식했다. 하지만 ChatGPT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질문하고, 보충 설명을 요청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달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옆에 똑똑한 비서가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둘째, 범용성이다. ChatGPT는 글쓰기, 번역, 코딩, 수학 문제 풀이, 요리 레시피 제안까지 수천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하나의 AI가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혁명적 변화였다. 셋째, 누구나 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이것이다. 이전의 AI는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었다. 복잡한 프로그래밍 지식이 필요했고,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ChatGPT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그냥 대화하듯 말을 걸면 된다. 학습 방식의 비밀 - 어떻게 똑똑해졌나? ChatGPT가 똑똑해진 과정은 세 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사전 학습 - 인터넷에 있는 책, 논문, 웹사이트, 대화 등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읽는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패턴, 세상의 지식, 추론 방법 등을 배운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부터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것과 비슷하다. 2단계: 지도 학습 - 사람들이 좋은 답변 예시를 보여준다.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는 게 좋아”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3단계: 강화 학습 - 여러 답변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사람이 평가한다. AI는 이 피드백을 받아 점점 더 나은 답변을 만들어낸다. AI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AI는 ‘패턴’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놓는다. 이를 ‘환각(Hallucinatio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는?”이라고 물으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카페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AI는 “가장 오래된 카페”라는 패턴에서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그럴듯한 답을 생성한 것이다. 그래서 AI를 활용할 때는 항상 중요한 정보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날짜, 숫자, 고유명사 같은 것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나?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두 가지가 명확해진다. 첫째, AI는 도구다.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도구일 뿐이다. 망치가 스스로 못을 박지 못하듯, AI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둘째,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 AI는 질문의 패턴을 보고 답한다. 막연한 질문에는 막연한 답이, 구체적인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이 나온다. “보고서 써줘” 보다는 “2025년 포항시 관광객 증가 추세를 분석한 500자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 해줘”라고 물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마법이 아닌, 과학을 이해하면 AI는 마법이 아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통계 계산을 수행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면, 마법처럼 느껴지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죽도시장 김 사장도 이제는 안다. ChatGPT가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수많은 홍보 문구의 패턴을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원리를 이해하니, 어떻게 질문해야 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음 주에는 프롬프트, 즉 AI에게 말 거는 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AI와의 대화에도 요령이 있다. 같은 도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니까.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1-11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국민의힘이 당명을 바꾼다고 한다. “당의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노선을 변경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정당의 생명은 노선이다. 같은 ‘가치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다. 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을 바꾸는 것은 당을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다. 기존 노선에 대한 처절한 반성, 새로운 방향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정말 절박하고, 이름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있는 걸까.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단이라면 묵은 때와 지저분한 속옷은 그대로 둔 채 외투만 바꿔 입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국의 정당은 수시로 이름을 바꾼다. 포퓰리스트 정부가 부채 탕감하듯, 이름표만 바꾸면 과거의 잘못이 모두 사라진다고 착각한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런 식의 이름 바꾸기가 많아졌다. 보수 정당을 보면, 13대 국회에서 ‘민주정의당’이 심판받았다. 전두환 전 대 통령이 국회로 소환되고, 백담사에 유폐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과거의 업보를 털어내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마저 지우며 ‘신한국당’이라고 다시 개명했다. 외환위기로 정권을 빼앗기자, 이회창 총재는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갈았고,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천막당사와 ‘새누리당’으로 변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당대표보다 비대위원장이 더 많은 혼란을 겪었다. 당 이름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계속 바뀌고 있다. 이름을 바꿔야 할 정도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정말 부끄러워하기는 하는 걸까.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측이 모두 10번 넘게 이름을 고쳤다. 5공화국의 신군부가 ‘2중대’로 만든 ‘민주한국당(민한당)’을 버리고, 양 김씨(김영삼· 김대중)는 ‘신한민주당(신민당)’으로 환골탈태했다. 또다시 당 지도부가 신군부 와 타협하려 하자, ‘통일민주당’을 만들어 나가 야권의 중심을 옮겼다. 김대중 총재가 만든 ‘평화민주당(평민당)’은 3당 합당 이후 제1 야당으로 남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실패한 뒤 정계 은퇴한 김 총재는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복귀했고, 집권 뒤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김대중당’을 ‘노무현당’으로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의 폐족 선언 뒤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 민주당으로 계속 바뀌었다. 권력자를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특히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이 당명을 바꾸 고, 당을 장악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지만,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큰 잘못을 저지른 뒤에는 간판을 바꿔 달아 유권자들의 기억이 헷갈리게 했다. 식중독이 발생한 식당이 간판을 바꿔 달고 영업하는 꼴이다. 그럴수록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쓴다. 민주, 자유, 공화, 국민, 미래, 통합, 한국···. 그러나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실천이 그 이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권력 투쟁을 ‘개혁’으로 포장하고, 이름으로 화장한다. 2024년 22대 총선 때 민주당은 ‘비명횡사’(이재명계가 아니면 공천 탈락)로 공천했다. 누가 봐도 고무줄 검증이고, 비명계 쳐내기다. 이제 국민의힘이 그 흉내를 낸다. 1985년 신한민주당은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제3당이 존립하기 어렵다는 신화를 깨부순 사례다. 민정당의 2중대였던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됐다. 이어서 한 번 더 탈당하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직선제 개헌 투쟁의 발판을 삼았다. 국민 여론과 함께했기에 성공했다. 민한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에서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2중대 탈피는커녕 지리멸렬하며, 민정당 일당 독재를 영구화했을 게 뻔하다. 제3당이 존립하기 어렵다. 유권자가 사표(死票)가 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과 함께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국민의 힘은 이름만 바꿔서 될 일 같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6-01-11

[기자수첩] 완성되지 못한 경주의 시간, 경주, 또 한 번의 갈림길

지방자치 30년의 시간 속에서 경주는 수차례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경주는 늘 큰 계획을 세워왔다. 그러나 그 계획을 끝까지 완성한 기억은 많지 않다. 역대 경주시장 대부분은 재선의 문턱은 넘었지만, 3선의 벽 앞에서 멈췄다. 그때마다 시정의 방향은 바뀌었고, 중장기 정책은 완결되지 못한 채 표류했다. 야심 차게 추진됐던 산업 정책과 도시 재편, 관광 전략은 ‘진행 중’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 뿐, 끝까지 매듭지어진 사례는 드물다. 행정의 연속성이 깨질 때마다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됐다. 새 시장의 공약에 밀려 기존 사업은 재검토 대상이 됐고, 방향은 바뀌거나 속도가 늦춰졌다. 계획은 있었지만, 축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반복되어온 이유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니라 ‘경험’이다. 다선 정치인이 가진 강점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법과 제도의 흐름, 행정 절차의 맥락, 중앙과 지방의 힘의 구조를 이미 겪어본 경험은 중장기 과제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는 개인의 정치적 성과를 넘어 지역 전체의 효율성과 직결된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간의 관계다. 지역 발전은 어느 한 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앙 정치와 지방 행정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정책은 속도를 얻고, 예산은 현실이 된다. 전략적 협력이 구축될수록 지역의 미래 설계는 구체성을 띤다. 현재 경주가 마주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산업 구조 개편은 이제 막 궤도에 올랐고,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가 어떤 도시로 남을 것인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제 행사의 성공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지, 도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향후 시정 운영에 달려 있다. 이 모든 과제는 한 임기 안에 매듭지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물론 3선이 자동으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부담과 우려 역시 존재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가 권력의 연장이나 단순한 인물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시작된 정책에 연속성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전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정치는 늘 변화와 견제를 말한다. 그러나 행정은 축적과 책임이 필요하다. 경주는 그 균형을 찾지 못해 번번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다시 ‘연속성’이라는 단어가 거론되는 이유다. 결국 판단은 시민의 몫이다. 도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어떤 선택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정의 연속성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그 연속성을 허락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이자, 동시에 답이 될 것이다. hsh@kbmaeil.com

2026-01-11

[역사 인문학] 왜군 목을 베어오면 노비 면천(免賤)을 허 하노라

임진왜란의 승리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이순신의 제해(制海)권 장악, 의병의 봉기, 명(明)의 참전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전쟁을 버텨낸 또 하나의 중요한 동력은 조선 사회 내부에서 작동한 ‘전시(戰時) 신분 유연화’, 즉 천민·노비에게까지 전공(戰功)을 기준으로 보상을 약속한 면천 제도였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군사 체계는 사실상 붕괴 상태였다. 군역(軍役)은 형식적으로 유지됐지만 군포(軍布) 대납과 군역 회피로 상비군의 실전 능력은 크게 약화돼 있었다. 양반층은 전투를 기피했고, 왜군은 조총과 기동전술로 기존 전투 질서를 무너뜨렸다.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군은 있으되 싸울 자가 없고, 법은 있으되 지킬 자가 없다”고 탄식한 이유다. 이 위기 속에서 조선이 택한 현실적 선택이 바로 ‘신분보다 전과(戰果)’라는 전시 논리였다. ‘선조실록’ 권51, 선조 27년 5월조에는 군공(軍功)을 평가하는 ‘군공사목’(軍功事目)이 정비되며 “적 한 명의 목을 베면 면천하도록 규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수급을 둘 이상 올리면 무관직을 제수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이는 단순한 포상이 아니라, 노비와 천민에게 법적 자유와 자손의 신분 변화까지 약속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조선 사회에서 노비 신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습되는 굴레였다.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는 물론, 혼인과 자녀의 신분까지 제한받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면천은 일시적 보상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선택이었다. “살아남으면 자유를 얻고, 싸워 이기면 신분을 바꿀 수 있다”는 약속은 천민층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동했다. 이 제도의 효과는 특히 의병과 보조 전력에서 두드러졌다. 임진왜란의 전과 상당수는 대규모 전투보다 기습·매복·후방 교란에서 나왔다. 정규군의 통제가 느슨한 이 공간에서 천민·노비·백정 출신 병사들이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왜군의 낙오병을 습격해 수급을 확보하고,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는 전투 방식은 면천 보상과 구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수군에서도 간접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 수군의 노군(櫓軍), 포수, 노(櫓)잡이 가운데 상당수는 천민·노비층이었다. 이들에게 전공에 따른 신분 상승 가능성은 전투 지속력을 높이는 사기 요인이 됐다. 더 나아가 임진왜란 당시에는 공사천을 대상으로 무재(武才)를 시험해 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면천(免賤)을 허가하는 ‘공사천 무과’까지 한시적으로 실시됐다. 무술 연마 자체가 면천의 지름길이 된 셈이다. 물론 유성룡은 이 제도를 무조건 찬양하지 않았다. ‘징비록’에는 전공 심사의 자의성, 수급 위조, 전후에 약속된 면천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문제들이 함께 기록돼 있다. 전시에는 신분의 문을 열었지만, 평시 질서로 돌아오자 그 문을 다시 닫아버린 조선 사회의 모순을 그는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조선 후기 면천의 주된 수단은 군공이 아니라 ‘납속면책’이었고, 군공면천은 보조적 수단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1662년 납속 속량가는 쌀 50석) 이는 군공면천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채,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만 작동한 임시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결국 면천·서훈 제도는 임진왜란 승리의 결정타라기보다, 붕괴 직전의 국가가 선택한 비상용 동원 장치였다. 이순신의 바다, 명나라의 원군, 일본군의 보급선 붕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 제도는 조선의 전투력을 바닥에서부터 떠받친 숨은 축(軸)이었다. 전쟁은 이겼지만, 전쟁이 드러낸 신분제의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유성룡의 성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6-01-10

‘한파 적응 능력’

요즘 아침마다 확인하는 기상 예보에는 ‘전국 한파 특보’, ‘체감온도 영하 20도’와 같은 살벌한 단어들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실제로 최근 북극 온난화로 인해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가둬져 있어야 할 북극의 찬 공기가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후의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체온증 사망 사고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급격히 커졌으며, 특히 우리 지역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령층과 만성 질환자의 건강에 비상벨이 켜졌다. 이제 한파는 잠시 참고 견디면 지나가는 계절 현상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심화함에 따라 매년 더 극심하고 예측 불가능한 추위가 닥칠 것이기에, 우리는 사회 전체의 ‘한파 적응 능력’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한파 적응 능력’이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내복을 입거나 보일러를 세게 트는 개인 차원을 넘어, 기후 재난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후 탄력성’을 의미한다. 이에 맞춰 정부는 이미 제3차 및 제4차 국가 기후 위기 적응 대책을 통해 과거의 수동적 방어에서 벗어나, 과학적 예측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능동적 적응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있다. 해외의 다음 사례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 뉴욕의 ‘코드 블루’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노숙인 보호소 문턱을 없애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며, 캐나다 토론토의 ‘워밍 센터’는 반려동물까지 동반할 수 있는 포용적 쉼터를 제공한다. 일본은 지붕 적설량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알려주는 ‘유키오로시 시그널’로 고령층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 위기 적응 대책을 주류화하여 정부, 지자체, 그리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적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이미 대구는 버스정류장 온열 의자 설치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90% 이상의 높은 만족도를 얻으며 ‘교통 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 AI 기반의 ‘폭염·한파 위험지도’를 고도화하고, 노후 주택의 단열을 개선하는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경북은 ICT 기술을 활용한 마을 단위의 정밀한 한파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주민이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마을 제설 봉사단’과 같은 공동체 거버넌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파 적응 능력’은 대구·경북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열쇠이다. 우리는 단순히 추위를 막는 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더 안전하고 포용적으로 재설계하는 ‘창조적 혁신’의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 범위를 현실화하고, AI와 IoT를 활용한 비대면 건강 관리 시스템을 상시화해야 한다. 또한, 신축 건축물이나 도시 재개발 시 북유럽 수준의 고단열 기준과 효율적인 지역 난방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파 대응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대구·경북이 기후 위기 속에서도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내는 글로벌 기후 탄력성 리더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6-01-08

점집 대목 시즌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붉은 말의 해’라면서 새해의 염원을 담고 있다. 붉은 말은 설날 이후에나 오는 것을 알면서도 설날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일단 먼저 즐기자는 마음이 강한 모양이다. 주작(붉은 참새)을 가리키는 남쪽 방위의 색이라 붉은 말이라고 하는지, 천간이 ‘병(丙)’이어서 화(火)에 속하기 때문에 붉은색이라고 하는지, 찾아보지 않고 쉽게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쉽게 설명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걸 꼭 들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청색이라면 청색’ ‘붉은색이라면 붉은색’인가 하고 고개만 끄덕여 준다. 천간과 지지에 의해 ‘붉은 말띠의 해’라고 하니 그런가 하고 이해하지만, 천간과 지지는 음력 기준이라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 해가 바뀌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집이 대목을 탄다. 종교를 가지고 안 가지고 별반 차이가 없다. 교회 다니면서도 점집 찾고 절에 불공드린다고 부지런히 법당을 드나들면서도 버젓이 점집을 찾는다. 이런 상황이니 신부님이나 목사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찾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꾸짖으면 되지만 신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림을 사는 절의 궁색한 사정으로는 스님이 명리를 공부해 대충이라도 신자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을 수 없다. 옥황상제나 용왕을 모시거나 관우 장군을 모시는 무당들도 버거운데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명리학이니 뭐니 해서 사주팔자로 사람들을 현혹하니 주지 스님 머리가 자못 복잡하다. 사기 치는 집단들,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사람의 아픈 구석을 집요하게 후벼파거나 자식이나 건강을 빌미로 협박한다. 병으로 죽거나 자식이 잘못된다는데 ‘이깟 돈이 뭔 대수냐’라는 생각에 한순간 자신의 지조를 무너뜨리고 만다. 무당의 특징이 과거는 잘 맞추는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귀신을 통한 영매도 귀신이 알려주는 과거는 족집게처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신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선 대충 어벙벙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제대로 된다면 달셋방에 대나무 꼽아놓고 손님 기다리는 무당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에 관한 궁금증 때문에 과거를 잘 맞춘다는 무당을 찾아 구렁이 알 같은 돈을 아낌없이 주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답답한 일이다. 국정을 점쟁이들 손에 맡겨 운영하려 했던 대통령도 있었는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있다. 한 심포지엄에서 패널로 나온 출중하시고 고명하신 선생님들의 발표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역사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였다. 요지는 언제부터 우리는 어려운 역경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헤쳐 낸 과거 몇몇 선배들의 희생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것으로 결론 내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래서 향후 10년 뒤를 전망해 주십시오.” 미래에 대한 대안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개선 방안이라도 내놓았으면 좋으련만 패널분들은 흘러간 과거 노래만 하고 있었다. 용한 무당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하라는 나도 미친놈이지만. /노병철 수필가

2026-01-08

대구시는 ‘AX선도 도시’에 사활 걸어야

우리는 DX(디지털 전환)시대에서 AX(인공지능 전환)시대로 가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환경 속에 AX 전환은 산업경쟁력 확보와 미래 성장의 핵심축이란 측면에서 이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 이 시대 우리 앞에 놓여진 가장 큰 도전이다. 정부는 지난해 1000여 개 기업이 참여하는 AI 대전환(M.AX)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가진 바 있다. AI 제조혁신 대장정을 선언한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이 AX 전환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 일본이 제조현장의 AI 전환을 국가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어 우리도 뒤지지 않기 위해선 지속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박람회의 올해 키워드는 ‘피지컬 AI’다.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한 기술들이 물리적 환경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시대가 바로 눈앞에 온 것이다. 세계가 AI를 이용한 혁신적 기술 개발에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시가 제조업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대대적인 산업 대전환에 나선다고 한다. AX 선도도시를 목표로 대구형 M.AX 생태계 조성, 미래산업 특화형 AX 가속화, 산학연관 AX 원팀 구축 등 4대 전략도 발표했다. 또 개별기업을 넘어 산업단지 전체를 AI로 연결하는 AX 실증산단 공모에도 적극 나선다고 한다. 대구지역 산업은 섬유중심 제조업에서 미래산업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AX 대전환은 필수다. 특히 대구는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가 있고, 수성알파시티에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포진해 AX를 선도하기 적합한 도시다. 대구시가 목표로 하는 글로벌 AX 선도도시를 위해선 인재와 기업이 찾아올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제2의 알파시티 조성이나 지역대학과의 연대도 중요하다. 기술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지역대학에서 과학자를 양산해 지역에 투입시켜야 한다. 대구시는 AX 전환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반드시 전국 최고의 AX 선도도시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지역경제도 희망이 보인다.

2026-01-08

전통시장 활성화, 지역경제 지키는 역할한다

경북도내 39개 전통시장이 새해 정부가 공모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35억원의 국비를 확보했다.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비를 따냈다고 한다. 포항 연일시장과 구미 선산봉황·영주 선비골·청송 진보·성주 시장은 특성화 사업 분야에, 포항 영일대북부·경주 안강·안동 구·신시장은 안전관리패키지 공모사업 등에 선정됐다. 상당수가 5일장인 이들 전통시장에는 시설현대화와 특성화 사업, 그리고 해당지역 문화와 관광자원을 연계한 사업이 추진된다. 경북도는 이들 외에도 올해 도내 전역의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3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시장 현대화와 특성화(문화관광·디지털 전환) 사업 등을 펼친다. 그리고 상권 공동화를 막기 위해 ‘빈점포 상생거래소’ 사업도 처음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경북도가 인구 소멸로 활력을 잃은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대부분 5일장에 대한 다양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각 시·군마다 읍면소재지에서 5일만에 열리는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것 외에도 공동체의 따뜻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들고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서면서 농촌이나 도시할 것 없이 모든 장터나 골목상권이 빈사(瀕死)상태에 놓이게 됐다. 대기업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막힘없이 동네상권에 진출을 하고 있으니 자본력이 약한 상인들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최대명절인 설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이번 설에는 대형 유통업체 대신 시골 5일장이나 골목상권에서 대목장을 봤으면 한다. 똑같은 돈을 5일장이나 골목상권에서 쓰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백화점 또는 대형마트에서 쓰면 그 돈은 즉시 본사가 있는 서울로 가 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시장이나 동네가게는 공동체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한다. 도시농촌 할 것 없이 동네가게들이 장사가 안 돼 하나 둘 문을 닫으면 그 지역 전체의 경제활동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

2026-01-08

가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역사의 뒤안길로

필자의 아들은 어디 던져놔도 잘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다. 좋게 표현했을 때의 말이다. 한창 자유로움이 기세를 떨치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엔 용돈이 떨어지자 집에서 안 쓰는 휴대폰 충전기, 작아진 패딩조끼 따위를 몰래 당근에 내다 팔다 걸렸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너 이것도 도둑질이야. 경찰서에 전화할까?”라고 혼냈지만 사실 속으로는 다른 말을 했다. ‘어차피 친족상도례 때문에 넌 엄마 물건을 훔쳐도 처벌이 안 되지’라고. 그렇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나의 명품백을 훔친다고 해도 친족상도례 제도 때문에 처벌 자체가 불가능했다. 친족상도례란 친족 간의 재산범죄를 형을 면제하거나 친고죄로 취급하는 제도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부모·자식 간에는 절도하거나 횡령, 사기를 해도 처벌되지 않는다. 사실 한 집에서 사는 부부나 미성년 자녀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서로 쓰는 물건이 섞여 있고, 냉장고의 음식도 함께 먹으며 자녀의 물건들은 부모가 사준 것이기도 하니 서로 물건을 가져갔다고 재산범죄로 취급하는 것이 불합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한참 된 아버지가 어느 날 시집가 살고 있는 딸네 집에 나타나 딸의 귀중품을 모두 들고 갔다면 어떨까. 평생을 바쳐 모은 노부부의 노후자금을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모두 들고 튀었다면 이런 것까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맞는가? 지금까지 우리 친족상도례 제도에 따르면 이런 경우 모두 처벌할 수 없었다. 심지어 부모·자식과 같은 직계혈족을 넘어서 그 직계혈족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과 그 배우자까지 친족상도례의 범위를 넓히고 있었기에 불처벌의 범위가 넓어도 너무 넓었다. 이는 가족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보고 가족 간 재산분쟁을 국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보는 전근대적 시각에서 유래한 제도였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2024. 6. 27. 친족상도례를 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고 적용을 중지시켰다. 개그맨 박수홍 씨 사건을 들여다보자. 박수홍 씨의 형과 형수는 박수홍 씨의 출연료 등 수십억 원을 횡령했고, 박수홍 씨는 횡령죄로 둘을 고소했다. 형과 형수는 친족과 그 배우자이기 때문에 친족상도례의 범위에 들어간다. 다만 함께 사는 동거친족은 아니었기에 무조건적인 형 면제 사유가 아닌 친고죄에 해당했고, 피해자인 박수홍 씨의 고소가 있었기에 처벌할 수 있었다. 지난 12월 박수홍 씨의 형과 형수에게는 횡령 혐의가 모두 인정되어 징역형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만약 박수홍 씨가 형과 한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친족이었다면 친족상도례 때문에 아예 처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박수홍 씨의 아버지가 큰아들이 횡령한 것이 아니고 모두 자신이 횡령한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피해자의 부친, 즉 직계혈족은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형 면제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2025년 12월 30일 국회에서 형면제의 친족상도례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친족 간의 재산범죄는 친고죄가 되어 고소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산범죄를 저질러도 형을 면제해 주던 친족상도례 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6-01-08

얀테의 법칙

덴마크 출신의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의 소설에서 유래된 ‘얀테의 법칙’은 북유럽 국가 주민들의 정서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상이다. “너나 나나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이다. 당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말라는 법칙이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이런 정신이 어릴 때부터 교육으로 전파된다. 노르웨이가 여성 징병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정신적 배경에 ‘얀테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얀테의 법칙이 국민들 마음에 잘 스며든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만족도는 세계 최고다. UN이 매년 발표하는 인류 행복지수 상위권 국가에는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국가의 복지정책과 교육 시스템에서 국민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행복의 근저에는 ‘얀테의 법칙’이 버팀목을 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얀테의 법칙에는 10개의 규칙이 있다.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 말라,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도 말라 등 겸손을 가르치는 말이다. 얀테의 법칙과 유사한 말을 동양권에서 찾으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들 수 있다. “지나침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이 말에는 겸손과 절제, 타인에 대한 배려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요 인격의 거울이라 했다. 직위가 높을수록 말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모든 도덕의 기본이다.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된 이혜훈 전 의원의 과거 언어가 공개되면서 논란이다. 그가 구사한 폭언만으로 장관 자격은 이미 상실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많은 정치인에게 반면교사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1-08

[기자수첩] 학산천의 전철 밟을까 우려되는 양학천 생태복원

학산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대로 ‘자연형 하천 복원’이라는 거창한 구호와 달리 그 실효성이 의문투성이로 남았다. 콘크리트를 걷어냈다며 홍보했지만 시민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다시 다른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공 시설물로 채워졌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연 무엇이 복원이고 무엇이 자연인지 되묻게 되는 대목이다. 상류 오폐수 문제도 없고 수질 부담 요인이 크지 않은 하천임에도 생태성과 홍수 대응이라는 본질적 목적보다 ‘모양새’에 치우친 설계가 우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기대한 ‘자연스러운 하천’이 아니라 ‘조경설계가 덧입혀진 전시 공간’에 가까운 인상이 강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산천은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자연 유량이 부족해 수 킬로미터 떨어진 형산강 인근에서 물을 끌어와 인공적으로 흐르게 하고 있다. 이른바 ‘유지수 공급’ 시스템이다. 자연하천 복원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외부에서 물을 공급해야 유지되는 인공 수로가 된 셈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기와 펌프가 멈추면 하천도 멈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학산천 하류는 바다와 맞닿아 있어 조수간만의 차가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만조 시기에는 하천 산책로가 물에 잠기면서 보행이 어려워지고 일부 구간은 통행이 사실상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시민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설계였는지 궁금해진다. 더 큰 위험 요소는 홍수 리스크다. 과거 상류 아치골에서 흘러내리던 계곡수는 논과 밭을 거치며 일시적으로 머무른 뒤 하천으로 유입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대규모 포장 면적이 확대되면서 빗물이 일정 시간 머무르지 않고 순식간에 하천으로 몰려들 것이 뻔하다. 이는 단순히 강수량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달시간이 급격히 짧아졌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이런 우려가 상존함에도 통수단면 확대와 강제배수 시설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낙관이 유지되고 있다. 하천변 인공 산책 구조물과 조경석 설치 역시 급류나 월류 상황에서 과연 지탱될 수 있을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등의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생태복원을 표방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사람과 시설물 중심의 공간으로 변질된 학산천 사업의 문제점이 충분히 마련되기도 전에 포항시는 다시 양학천 생태하천복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의 ‘복원’이라면 이는 자연의 회복이 아니라 행정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환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임에도 실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 ‘사업 추진’ 자체가 목표가 된 듯 해보여 좀더 냉정해졌으면 한다. 특히 이 사업이 선출직 정치인들의 치적으로 포장돼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행정에 정치가 깊숙이 개입하면 어느 새 선심성 사업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세금 낭비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생태복원은 보여주기 식 시설로 채울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안전, 자연의 회복, 시민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다. 이제는 전시행정의 유혹을 넘어 냉정한 설계와 검증, 그리고 책임 행정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학천 역시 학산천의 전철을 밟을 뿐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lch8601@kbmaeil.com

2026-01-08

경주 관광의 허브로 뜬 국립경주박물관

최근 들어 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 누적 관람객 수 600만명을 돌파해 개관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국민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한류 문화 확산에 따른 해외관광객의 관람 증가 때문이란 분석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바티칸박물관, 영국박물관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객 수로 세계 4위에 올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14개 박물관 중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이자 신라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 박물관이다. 수만 점의 신라시대 유물이 전시돼 천년왕국 신라의 압축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라 금관을 비롯해 천마총 장신구, 성덕대왕신종 등 국보급 유물들도 많이 있다. 경주 여행에 앞서 박물관부터 먼저 방문하면 천년고도 경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지난해 경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200만명(정확히 198만명)에 육박했다.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효과와 더불어 신라금관 특별전 등과 같은 기획력이 관람객 증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경주는 APEC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로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많이 높아졌다. 지금은 APEC 성공 개최를 발판으로 포스트 APEC 준비에 바쁘다. 이른바 글로벌 문화관광도시 경주를 향해 모든 역량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주포럼을 통해 세계유산도시 간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APEC 문화전당 조성과 보문단지의 리노베이션 등을 통해 글로벌 관광도시로서 경주 위상을 확실히 다지고자 노력 중이다. 국립경주박물관 관람객 증가가 신라금관 특별전의 영향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APEC 효과에 따른 관광수요 증가도 한몫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관람객 증가를 단순히 수치 증가로 보지 말고 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위상 변화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주에 가면 국립경주박물관부터 찾는 경주 관광의 허브가 되게 박물관도 수요 증가에 맞는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

2026-01-07

‘한동훈 징계’ 앞두고 폭풍 속에 휘말린 국힘

국민의힘 지도부가 당 윤리위원회 구성 잡음에도 불구하고, 한동훈 전 대표 징계를 강행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 6일 윤민우 가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를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윤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당시 비상계엄에 연루됐던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을 지냈고, 지난 2023년 언론기고에서 “개딸의 이재명 사랑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질투와 연동되어 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를 두고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김건희 용비어천가를 부른 분이 윤리위원장이 될 수 있는 건가”라고 반발했다. 그는 ‘당론에 어긋나는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당무감사위로부터 ‘당원권 정지 2년’의 중징계 권고를 받아 윤리위에 넘겨진 상태다. 윤 위원장이 8일 열리는 당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정식 임명되면 바로 한 전 대표가 연루된 ‘당원 게시판 사건’ 징계 수위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한 전 대표 가족들이 당원게시판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판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현재 친한계에서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쓰지 않은 글이 조사 결과에 포함됐다며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당 일각에서는 위원장뿐만 아니라 위원 인선 내용도 문제가 많다며 강한 반발이 나왔었다. 이 때문에 윤리위원 7명 가운데 3명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당 지도부는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6일 현재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윤 위원장을 포함해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당원 징계 권한을 가진 윤리위가 가동되면, ‘당원게시판 사태’를 둘러싼 징계 안건이 가장 먼저 다뤄질 것이다. 하지만 윤리위원장과 위원 선임에 대한 당내 반발이 커 윤리위 결정에 대한 승복문제로 국민의힘은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지지세가 쪼그라들고 있는 국민의힘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장동혁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이 자멸의 길로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2026-01-07

세상의 충격과 우리의 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법을 근거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간 사건은, 오늘의 국제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강대국이 자국법을 앞세워 타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용인되는 순간, 국제법은 규범이 아니라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은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와 중국 같은 강대국들에게 이는 불편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유혹이 된다. ‘미국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언제나 국제질서를 무너뜨린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단지 지정학적 분쟁지가 아니라, 규칙의 기반질서가 유지되는지 시험하는 최전선이 된다.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국 정상의 신병이 다자국제적 합의가 아닌 일방의 법 해석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체제생존의 보증수표로 더욱 굳게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비핵화 담론을 다시 한번 공허한 수사로 밀어낼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실체화되고 구조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의 외교는 점점 더 좁은 외줄 위를 걷게 된다. 미국은 동맹국에 ‘가치적 연대’를 요구하고 중국은 각국에 ‘전략적 자율’을 압박한다.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한쪽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순간, 한국은 외교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중국 방문의 성패는 정상회담의 의전이나 공동성명 문구에 있지 않다. 핵심은 한국이 국제규범과 주권존중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든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침묵하면서 중국의 힘의 외교만 경계한다면, 우리의 외교는 설득력을 잃는다. 중국의 수사에 동의하면서 미국의 압박을 무시해도 우리의 외교는 설 자리를 놓칠 수 있다.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성장해 갈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원칙과 규범이 필요하다. 법과 절차, 다자주의는 약소국의 이상이나 소망이 아니라 존재확인이자 생존전략이다.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질서는 힘이 아니라 상생과 공영의 원칙 위에 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일관성과 상호신뢰의 출발점을 확고하게 설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에 우호적으로 반응하면서, 동시에 다자외교가 빚어내는 상생과 협력의 틀에 주목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원칙과 규범의 울타리가 작동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어느 편을 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에 서느냐의 문제다. 원칙이 무너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나라는 언제나 우리처럼 경계에 선 나라들이었다. 한국은 지난 수백 년 경험을 통하여 그 운명과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1-07

근육을 키워 통증을 예방하자

우리는 디스크가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무릎 연골이 닳으면 통증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검사 결과에 디스크나 퇴행성 변화가 보이면 그 순간부터 몸을 더 쓰지 않으려 하고 운동을 피하며 아픈 부위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다 보면 이 생각이 반드시 맞지는 않다는 사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같은 디스크 소견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고 어떤 사람은 통증으로 고생한다. 무릎 관절이 꽤 닳아 있어도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미한 소견에도 통증을 크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근육이다. 근육이 충분히 발달해 있으면 디스크나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분산된다. 허리 주변의 코어 근육과 둔근 다리 근육은 척추와 관절을 직접적으로 지탱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조적으로 약해진 부분이 있더라도 근육이 그 부담을 대신 받아주면 통증이 훨씬 줄어든다. 실제로 허리 통증이나 무릎 통증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도 영상 소견 자체보다 근력과 기능 상태가 통증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근육이 단순히 힘만 담당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육이 잘 작동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염증 물질이 빠르게 제거되며 손상된 조직의 회복도 개선된다. 근육이 약해지면 움직임이 줄어들고 관절은 더 경직되며 통증에 대한 민감도도 높아진다. 가만히 쉬기만 하면 통증이 나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무릎 관절염 환자에게서 허벅지 근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벅지 근육이 약하면 보행 시 무릎 관절에 직접적인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통증이 쉽게 발생한다. 반대로 근력이 충분하면 관절이 닳아 있어도 움직임이 안정되고 통증은 덜 느껴진다. 디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다는 사실보다 그 디스크를 둘러싼 근육과 신경이 어떤 상태인지가 통증을 좌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영양 특히 단백질이다. 근육은 운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육은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쉽게 줄어든다. 특히 중년 이후나 만성 통증을 겪는 사람들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근육량이 빠르게 감소하는데 이때 단백질 섭취까지 부족하면 통증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접근은 단순히 아픈 부위를 치료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디스크나 관절의 구조적 문제를 관리하는 것과 함께 몸을 지탱하는 근육을 회복시키고 유지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절한 근력운동과 충분한 단백질 섭취는 통증 치료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치료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통증은 단순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기능 상태를 반영하는 신호다. 디스크가 있고 무릎이 닳아도 근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통증은 덜할 수 있다. 통증을 관리한다는 것은 몸을 더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제대로 쓸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1-07

개인의 결핍에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

며칠 전 SNS에서 흥미 있는 글을 보았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때 학부모 동반을 아예 금지하거나 부르더라도 딱 한 명만 오라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편부모 가정, 특히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항의가 빗발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학교를 무균실로 만들어 아이들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성토하면서 심지어는 아동 학대이자 교육 기관의 직무 유기라고 비판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아야 할 권리 따위는 없으니 상처를 딛고 일어설 의무를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을 보자니,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 일이 생각났다. 강의하러 가야 해서 이웃 엄마에게 교과서를 챙겨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큰애는 두고두고 그 일을 되새기며 원망을 쏟았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와서 교과서를 받아 갔는데 자기만 엄마가 안 왔다는 것이다. 큰애는 다른 엄마들은 다 왔다고 하지만 못 온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보니, 아이들 운동회가 내 강의 시간과 겹쳐서 내가 참석을 못 한다면 큰애의 설움은 극에 달했을 것 같고, 그래서 나 역시 운동회에 학부모 참석을 제한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니 SNS에서 글쓴이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운동회가 가정과 학교가 함께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라는 주장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하루 같이 뛴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다져질 수도 없고, 실제 현실에서는 운동회 참여를 둘러싸고 많은 학부모 임원들이 수고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과 알력은 행사가 끝나도 이어지는 일이 태반이다. 물론 학교가 교육 공동체로서 더 적극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다만, 소수의 결핍과 상처를 덜 느끼게 할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결핍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학부모를 설득하자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결핍에 상처받는 사람의 아픔을 극복하는 일을 개인의 의지에만 전가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초등학교 1학년 그 작은 아이들이 하교할 때 교과서 여러 권을 한꺼번에 들려 보내지 말고, 입학 직전이든 입학 직후든 별도로 교과서를 받아 가는 시간을 마련해줬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배려해도 결핍을 다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핍을 덜 느끼게 할 방법이 있다면 그런 배려를 하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운동회가 진정한 공동체 활동이 되게 하려면 부모가 학부모 참여를 아예 금지하자고 항의하는 사람을 악성 민원이라고 치부하거나 결핍을 느낄 아이들에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부모가 못 오는 아이들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에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끼리만 화합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결핍을 덜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광장을 만드는 것, 이런 일에 좀 더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1-07

두마*, 별을 만지작이는 마을

이런 큰 마을이 있다니, 높이로는 칠 백 미터, 대관령 평창보다 정선 육백마지기 못하지 않다 앵초와 잡풀, 쑥부쟁이 근처의 천문대가 무슨 소용이니 하지만 생활 밖에서도 더 나은 바른 생활이 있다 우리가 미처 따르지 못했지만, 두마, 사람의 큰 마을이 있네 스페이스가 아니라 유니버스의 충분한 공간 참 친절한 맹랑한 공간에서, 별을 보고 돈을 지불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늘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나 별의 감촉은 어떨까, 하늘은 과연 둥글까,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가득한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그리워할 뿐, *포항 북구 죽장면에 있는 마을 ….. 위치가 높다고 사람이 높은 것은 아니다. 빛나는 것은 스스로 빛나지 누가 부추겨 빛나는 것은 아니다. 역할에 충실해야지 그것을 누리면 안 된다. 말이 좋아 별을 만진다는 것이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그 마을은 보기에 적당했다. 내가 명시하는 적당하다는 말은 뛰어남을 능가한다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얻을 수 없다는 서투른 표현이다. 이 의미를 확대재생산을 한다면 회생불가능의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거시는 미시에서 완성이 된다. 적절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1-07

해는 믿음으로 떠오른다

새해 첫날, 겨울바다를 찾는다. 해는 수평선 앞에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바다가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중인지 사위가 검푸른 탓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아득하다. 차가운 바람이 모질게 불어와도 돋을볕에 둘러싸인 해를 보겠다는 설렘으로 잠연히 기다린다. 해는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해가 입체적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서 있다. 돌이켜보면 새해 첫 해돋이는 항상 기다림으로 시작되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끝내 도착할 빛을 믿으며 서 있어야 하는 순간이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회사라는 일정한 틀도, 조직도 없이, 오롯이 내 능력과 운에 기대어 하루를 엮는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강의가 없어지면 생활의 뿌리가 하릴없이 흔들린다. 직장이라는 굳건한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았다면지금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얼마 전, 오랫동안 맡아온 강의를 그만두었다. 내 마음이 무게중심을 잃고 요동쳤다. 그 수업은 단지 수입원일 뿐만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던 일상의 한 줄기였다. 쉽사리 꺾이지 않을 줄 알았던줄기가 뚝 끊기자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무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햇살은 고요했으나 내 안의 그늘은 작은 먼지에도 일렁였고, 바람 하나 없는 날의 갈대처럼 사소한 일에도 속절없이 흔들렸다. 내가 현재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올바른지, 무시로 나를 향해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에서 감정의 파고가 높고 거셌다. 그러는 사이에나는 내 안의 생기를 조금씩 지워갔다. 그렇게 한동안을 앓고 나서야 문득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자책의 울타리를 키우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강의를 맡게 될 날을 기다리자고 마음먹었다. 내 삶의 많은 순간이 해가 뜨기 전의 새벽과 닮았다. 애써 나아가고는 있지만 정말로 빛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간단없이 갈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젠가는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장마 뒤에는 하늘이 갠다는 자연의 섭리를 들먹이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중한 믿음이었다.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해돋이를 보기 위한 기다림의 층위를 체감한다. 밤새워 기다린 사람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 사이의 기다림이 뒤섞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각자 안고 온 사연은 다르다. 어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어떤 이는 아직 오직 않는 용기를 스스로 다독이며, 또 다른 이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를 품고 저마다의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드디어 해가 장엄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한다. 해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기다렸더니 감동의 여운이 짙다. 나는 해돋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해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떠오른다. /글·사진=정미영 수필가

2026-01-07

흑백요리사, 일상을 플레이팅하는 방식

현재 가장 핫한 예능을 꼽으라면 넷플릭스에서 독점 스트리밍 중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가 아닐까. 시즌 1에 더없이 몰입했던 나이기에 시즌 2 또한 공개 당일부터 기대감을 갖고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요리 계급 전쟁’이므로 백수저와 흑수저의 대립 구도가 큰 테마라고 할 수 있다. 20명의 백수저와 80명의 흑수저가 참가하는데, 1라운드에는 이 20명의 백수저와 2라운드에서 붙을 20명의 흑수저를 선정한다. 80명의 셰프들이 동시에 요리를 시작하며 펼쳐지는 광경은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화려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백수저들은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반면 흑수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닉네임을 써야 한다. 오직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에만 흑수저인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 나폴리 맛피아, 장사천재 조사장, 요리하는 돌아이, 중식 여신, 급식 대가, 고기 깡패 등 닉네임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셰프들이 첫 시즌부터 넘쳐났다. 닉네임이 찰떡같고 재밌기도 해서인지 모든 셰프들의 이름이 알려진 지금에도 권성준 셰프는 “나폴리 맛피자”(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맛피아’를 잘못 부른 것)라고 심심찮게 불리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권성준이라는 석 자만으로는 연결하기 어려웠을 “나폴리”라는 지명이 쉽게 연결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명명(命名)의 힘이다. 시즌 2에도 눈길을 끄는 흑수저의 닉네임이 많다. 뉴욕에 간 돼지곰탕, 바비큐연구소장, 아기 맹수, 중식 마녀, 요리괴물, 술 빚는 윤주모 등 닉네임만으로도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그중 칼마카세라는 일식 셰프가 있다. 요리하는데 쓰는 “칼”과 코스의 재료, 종류, 요리 방식을 모두 셰프에게 일임하는 일을 뜻하는 “오마카세”를 합친 닉네임처럼, 그는 칼을 유려하게 잘 다룬다. 주어진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 주특기를 활용해 ‘칼맛 나는 오마카세 코스 4품’을 만들었다. 무를 얇게 썰어 오이를 만 오이매실마키, 마를 아주 얇게 썰어 겉보기엔 소면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마소면, 금태구이, 금태 찹쌀밥 이렇게 네 가지 요리를 멋지게 완성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에게 칼마카세는 맛보는 순서를 설명했다. 금태구이를 먼저 먹고, 금태 찹쌀밥, 오이매실마키, 마소면 순서로 맛보기를 권했다. 처음에 간이 세고 식사가 되는 금태로 먼저 주고, 입가심을 한 뒤에 마지막에 마소면으로 끝내는 것이 그의 구성이자 구상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가진 바를 최대한 강하게 보여줘야 하는 경합인 만큼, 임팩트를 먼저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식사 순서가 강한 것부터 이뤄지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의 음식들이 묻히는 효과를 주고 만 것 같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순서에 대한 의문을 표하며 보류를 주었다. 뒤이어 찾아온 백종원 심사위원 또한 왜 처음부터 기름진 것으로 시작하는지 물어보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여기 쓰지 않겠으나, 그의 첫 심사 결과가 보류인 것은 결코 맛 때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며 나는 밴드 공연 전에 친구들과 고민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여섯 곡인데, 순서를 어떻게 하지? 첫 곡은 무조건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멤버의 공통된 의견이었으나, 디테일한 순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첫 곡부터 세 번째 곡까지 빠르고 빵빵 터지는 곡이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군가 아니다, 그럼 여섯 번째 곡이 나올 때쯤엔 너무 축축 처지게 된다, 강한 곡들 사이에 미디엄 템포나 발라드를 넣어서 완급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눴지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지. 다 해보자! 우리는 여섯 곡으로 배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 안에서 합주하고, 또 합주했다. 그러다 공연 직전에야 중간중간에 완급 조절하는 곡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공연은 무사히 잘 끝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순서가 정답이었는지 모른다. 더 나은 순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묘한 씁쓸함만 입속을 맴돌 뿐이다. 순서에 옳음과 그름이 있진 않겠으나 순서와 배치에 따라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는 있을 테니까. 결과와 무관하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모든 요리사를 응원하고 있다. 새롭게 명명되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신비롭고 멋지다.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화면 너머의 요리를 맛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 또한 나의 하루를 책임지는 요리사로서 허투루 ‘플레이팅’하지 않겠다 마음먹게 된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이 결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다만 나의 최선이 중요한 것이므로. /구현우(시인)

2026-01-07

리듬을 찾아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일시 정지 해두었던 노래를 다시금 튼다. 곧이어 새해를 알리는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새해 복’ 노래가 방 안에 울려 펴진다. 밝고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A4용지를 반으로 나누어 선을 긋는다. 왼쪽 칸엔 2025년도에 이룬 일들, 오른쪽 칸엔 2026년도에 이룰 일을 하나씩 적는다. 작년보다 더 목표는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써내려간다. 종이 위 활자를 손으로 쓸어 보며 인간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러한 물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는 답을 던져 준다. ‘소울’ 속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꿈을 이루려는 순간 사고로 죽게 되어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선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구역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인 ‘22’번을 만나게 된다. 태어나기 전 세상 구역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영혼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자신의 멘토에게 성격과 기질, 흥미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채우게 되면 비로소 지구로 향해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멘토는 조 가드너가 맡게 되고 22번의 스파크를 발견해야 하는 일종의 강제 임무를 맡게 된다. 22번은 수 천 년 동안 영혼의 세계를 방황하며 지구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 지구로 향하기 위해선 ‘스파크’를 발견해 내야만 했는데, 어떠한 재능이나 목적이 있어야 스파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2번은 자신에게 재능과 특별한 목적이 없음을 깨닫고 아주 오랜기간 태어나길 거부하며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불신에 갇히고 만다. 동시에 그의 멘토인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표 하나로 22번에게 상처주고 소외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구로 향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무대에 서게 된다. 결국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순간, 그는 일순간 허탈감에 빠진다. 그가 사랑하는 재즈는 인생의 정답이자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라 믿었건만, 생각 외로 그가 이룬 꿈은 자신의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가슴이 뛰질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인간의 발버둥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듯,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한 뒤 예상치 못한 텅 빈 공허함을 건넬 때가 있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듯한 기쁨과 보람은 아주 찰나일 뿐, 해냈다는 안도와 동시에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벌거벗긴 채로 내쫓긴 아이처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며 ‘그래서 이젠 어쩌지?’ 묻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 그것을 이루려는 꿈은 결코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 가드너 역시 성공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적 하나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해온 것은 무대 위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순간, 뉴욕의 소음과 햇빛 그리고 가을 낙엽 같은 사소한 삶의 풍경들이었음을. 그렇게 자신이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게 될 때에 비로소 삶은 하나의 목적을 넘어,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2번은 스파크를 발견해서 지구로 향하게 될까? 그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적진 않지만, ‘소울’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삶의 가치는 목적 달성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삶은 반드시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명확한 꿈이 있어야만 살아갈 자격이 생기는 무대가 아닌, 그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감각과 순간들’을 누리며 하루하루 소중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눈길이 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무던해진다면 좋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은 점점 무던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포착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건조한 삶일는지. 그렇다면 새해엔 닫힌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레 때로는 대담하게 내가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나로서 살아가려는 감각을 찾을수록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로운 리듬을 갖게 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1-07

이혜훈의 죄? 국민의 죄?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씨가 인생 최고의 위기에 몰려있다. 그 위기의 이유가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닌, 그간 살아오며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동정하기는 어렵다. 8년 전. 이 후보자가 자신의 의정활동을 돕던 인턴직원에게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못 알아먹는다”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막말을 던지고, 심지어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전근대적인 폭압의 행태가 분명하다. 임신 중인 사람을 괴롭혔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국민의힘 소속 손주하 중구의원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 초기 시절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유산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손씨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으로 지목한 이는 이혜훈 후보자. 갑을관계에 있는 이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것 외에도 적지 않은 흠결이 거의 매일 폭로되는 형국이다. 175억6952만원이란 이혜훈 씨의 재산이 공개되자 부동산 투기와 국회의원 재직 시절 특혜 관련 논란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이씨 세 아들의 재산이 47억원에 이른다는 보도에 “직장 없는 자식들이 증여세를 어떻게 낸 것인가”를 묻는 이들도 많다. 장관을 포함해 총리와 부총리 등 고위직 공무원 후보자가 발표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도덕성, 재산 형성 과정, 자녀에 얽힌 의혹 등이 예외 없이 잇따르는 걸 우리는 이미 수십, 수백 차례 봐왔다. 그때마다 허탈한 실소를 머금고 공분에 시달려야 하는 게 한국 국민들의 어쩔 수 없는 팔자인가? 모범적으로 살지 못한 이혜훈 후보자의 곤혹이야 자승자박이겠으나, 국민은 대체 무슨 죄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1-07

짝퉁

플리마켓의 공기는 느슨하다.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고 가격은 흥정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며 사람들은 잠시 일상의 위계를 내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은 부스 앞에서 나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발견했다. 익숙한 무늬,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문양. 누가 보아도 명품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물건이었다. 영세한 업체였다. 과장된 설명도, 번듯한 배너도 없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웠다. 가격은 삼천 원.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싸고 질겨 보였다. 차키를 넣어도 좋고 카드 몇 장을 넣기에도 알맞은 크기였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가진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기지 않는 흉내, 감추지 않는 닮음. 나는 열 개를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물건을 만든 이들의 시간을 조금 보상해주고 싶었다.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가벼웠다. “우와 명품이네?”웃음 섞인 농담이 오갔고 모두 그 물건이 가진 유머를 이해했다. 그것은 명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명품을 소재로 한 농담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웃었고 그 웃음은 그날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유독 한 사람의 말이 날카로웠다. 같은 회사의 진품을 들고 있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파우치를 받아 들고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짝퉁은 안 해.” 마치 선언처럼 말한 뒤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진품도 짝퉁으로 알겠네.” 그 말은 물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 같았다. 순간 공기가 식었다. 농담은 자리를 잃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분명히 말했지만 내 눈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나는 명품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단순히 영세 업체를 도와주고자 산 파우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어였고, 태도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결이었다. 그가 내뱉은 말속에는 고급스러움도, 품위도 없었다. 오히려 과시와 방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그의 말과 태도는 짝퉁을 넘어 하(下)품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흉내, 새로울 것 없는 허세같은. 우리는 왜 진품과 짝퉁을 나누는 데 집착할까. 정말 보이고 싶은 것은 물건의 진위일까, 아니면 그 물건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나의 위치일까. 진품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의 언어가 되었는지. 마치 짝퉁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고귀함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연 진품일까. 매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가.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관계에 따라 언어를 조절하며 때로는 나 자신조차 속이며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고 사회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모습 중에서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내면이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가 필요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고통이 필요하다. 값비싼 물건을 사는 일보다 인내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내면의 진품은 카드로 결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가 없다. 삼천 원짜리 파우치는 솔직했다. 흉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웃음의 자리도 알았다. 그 파우치를 만든 사람들 역시 명품을 팔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정직하게 가격으로 붙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 어떤 진품을 만들고 있는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짝퉁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어떤 언어를 쓰고 사람들에게 어떤 온도를 남기는지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삼천 원이었지만 파우치는 나에게 가장 값비싼 질문을 남겼다. /김경아 작가

2026-01-07

‘6월 통합단체장’ 출범 정말 가능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대전·충남에 이어 광주·전남 행정 통합까지 공론화하며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지자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 하자”고 했다. 시·도 행정통합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 단체장을 뽑자는 제안이다. 누가 들어도 지방선거용 이슈다. 행정통합에 수년을 끌다 결국 실패한 대구·경북(TK)으로선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이 대통령의 속도전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부터 국가 균형발전 전략으로 ‘5극(수도권·동남권·대구경북권·중부권·호남권) 3특(제주·전북·강원)’이라는 초광역권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인구 500만명 수준의 대도시를 여럿 만들어 지방 경쟁력을 키우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어서 시·도 통합 취지와도 일치한다. 지자체의 광역 단위 통합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아마 비수도권 지자체에서는 행정통합 취지에 반대하는 곳이 없을 것이다. 현재 대전·충남은 이달 중 특별법을 발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도 아마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인구와 자본, 일자리, 교육 기회를 블랙홀처럼 집어 삼키는 수도권 일극주의로 인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만약 시·도 통합이 성사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통합 지방정부는 국책 사업이나 대규모 투자 유치에서 협상력이 커지고, 연구개발 역량과 산업기반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남도의 경우 통합론이 나오자 벌써 “조세특례와 대규모 국책사업 우선권이 특별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이 쉬운 게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전시와 충남도가 밝힌 것처럼 이달 중 두 지방정부가 특별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법안에는 통합 청사의 위치, 지자체 명칭, 하위 시·군·구 간의 권한 배분, 자치입법권의 강화, 재정 자율성 강화 등의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야 하고, 시·도의회 동의 또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주민 갈등이 수반된다. 특히 2월 3일 시작되는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때까지 특별법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각 시·도 단체장 공천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야당에서 이 대통령이 통합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게 지방선거용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시·도 통합에 정파적 계산이 개입하면 정상적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대전·충남 통합 단체장 후보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론되고 있다. 강 실장은 충남 아산을 지역구로 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광주·전남의 경우에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남지사 출마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이재명 정부가 행정통합에 성공하려면 청와대가 특정인을 통합단체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시·도 통합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행정통합은 결국은 시·도의회 동의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해서 통합 과정에 정치적 논란이 발생하면 성사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1-06

TK지방선거 과열···현안 공론화 기회 되길

지난 연말 추경호(달성군) 의원에 이어, 5일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최은석(대구 동구군위군갑) 의원이 6·3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북도지사와 대구시장에 도전한다고 공식 선언해 국민의힘 TK지역 공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당 지지율이 저조해 ‘인물난’을 겪는 다른 지역과는 대조된다. 일각에선 TK 중견 의원들의 출마 러시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 지도부의 공천을 받는데 급급해 ‘보신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 가는 지적이다. 안 그래도 정치권에서는 TK 의원들이 장동혁 대표의 ‘강성 드라이브’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추경호·최은석 의원 말고도 대구시장 선거에는 조만간 국민의힘 현역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를 전망이다. 6선인 주호영(수성구갑) 국회부의장과 4선의 윤재옥(달서구을) 의원이 출마를 서두르고 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했던 유영하(달서구갑) 의원도 2월 들어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전·현직 구청장 중엔 이미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도 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쟁이 과열 양상을 빚는 것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북도지사 선거에는 이강덕 포항시장에 앞서 이미 이철우 지사가 ‘3선 도전’을 공식화한 상태다. 경북 북부권에서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전 국회의원도 이달 중 출마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대구시당도 5일 신년 단배식을 열고 본격적인 지방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현재 PK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여당 지지세가 TK로 확산하면 의외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안동이 고향인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인재풀을 가동할 경우 TK지역 선거 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 TK지역에는 현재 신공항 건설과 행정통합, 2차 공공기관 유치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러한 지방의제가 공론화하는 장(場)이 됐으면 한다.

2026-01-06

늘어난 고령자 운전사고, 정밀한 대책 나와야

급속한 고령화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이 내는 교통사고도 증가한다. 2023년 기준 고령 운전자 사고 발생 비중은 전체 교통사고의 15.7%다. 사고 사망자 사고는 24.3%로 조사됐다. 경북 포항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최근 3년간 매년 500건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50%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운전사고는 비고령자보다 65%나 높게 발생하며 치사율도 높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가피한 현상이나 이에 대한 보다 정밀한 대책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고령층의 교통안전을 목적으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제도를 시행하나 전국적으로 자진 반납 비율은 저조하다. 특히 농촌지역이 많은 경북 등은 면허 자진 반납률이 1%대에 머물러 실효성이 거의 없다. 면허 자진 반납률을 보면 서울 2.6%, 부산 3.2%, 대구 2.8%인데 반해 농촌지역인 경북은 1.7%, 충북은 1.1%다. 농촌지역 반납률이 이같이 떨어지는 이유는 도시보다 불편한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도시처럼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아 면허를 반납하는 순간부터 갇힌 신세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령 운전자 사고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제도 관점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고령자에게 운전을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구축을 통해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는 이런 제도 개선을 통해 시민의 안전도 지키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면허관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나이 기준보다 실제 운전능력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적성검사 주기 단축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차량에 첨단 안전장치를 보급해 고령 운전자의 신체적 한계를 기술로 보완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예방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관심이 높아져야 사고도 줄일 수 있다.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