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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동시구속 위기에 처한 부부

전직과 현직을 불문하고 대통령과 아내가 동시에 구속되는 일은 아직까진 없었다. 재직 시 저지른 비리나 권력 남용으로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 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던 대통령은 적지 않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그랬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다. 노무현은 검찰 조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흑역사로 기록될 부끄러운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아내가 구속된 사례는 아직까진 없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치욕스런 신기록(?)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이야기다. 윤석열 씨는 이미 뜬금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수감된 상태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만약 죄가 입증된다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가 불가피하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낮췄지만, 윤석열 씨의 부인 김건희 씨가 의심스런 행위를 통해 부정하게 주식을 거래하고, 각종 청탁과 함께 고가의 가방과 목걸이 등을 받았다고 의심하는 국민들이 그렇지 않은 국민보다 훨씬 많다. 이미 여러 정황이 김건희 씨의 범죄 혐의를 지목하고 있는 상황. 12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김건희 씨의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건 구속 사유 중 하나다. 김씨는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인용 직전 자신이 운영했던 사무실 컴퓨터를 포맷했다. 탄핵 이후엔 휴대폰을 바꿨다. 압수된 휴대폰의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떳떳한 삶을 살았다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다. 만약 김건희 씨가 구치소에 갇힌 남편을 따라 자신도 구치소로 가게 된다면 또 하나 한국 역사의 오점이 추가될 듯하다. 서글프고 개탄스런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1

청계천 문학기행

토요일 아침 열 시. 장소는 보신각 옆 할리스커피. 스물 남짓한 ‘창작교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였다. 날씨는 그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선선하다. 가끔 비도 뿌린다는 예보다. 오늘은 청계천 문학기행 날이다. 보신각이 기행의 출발점이다. 채만식 소설 ‘냉동어’에서 주인공 대영이 보신각을 가리켜 낡은 시대가 새로운 시대와 동거를 하고 있는 궁상스럽고 초라한 꼬락서니라 했다. 그러나 오늘 보신각은 한결 늠름하다. 종로 네거리 보신각 길 건너편에는 종로타워 33층짜리 빌딩이 높이 솟아 있다. 그곳이 옛날 ‘민족자본’ 화신백화점 자리다. 또 다른 길 건너편에는 전봉준이 두 팔을 묶인 채 앉아 있다. 죄인을 가두는 전옥서가 영풍문고 자리에 있었고 여기서 전봉준이 저형당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광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광교 건너편에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생가가 있었다. 다옥정 7번지, 그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지금은 청계천이 넓혀져 이 번지수는 청계천 속에 들었다. 구보는 한낮에 청계천변 다옥정 집에서 나와 광교 건너 보신각 있는 종로 네거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 광교에서 우리는 계단으로 천변 아래로 내려간다. 가는 비가 흩뿌리는 청계천은 한결 운치가 있다. 수표교 쪽에서 다시 천변 위로 올라서 다리를 건너자 오늘 순례의 주된 장소라 할 전태일 기념관이다. 청계천은 문학사적으로 세 개의 심상(이미지)을 갖는다. 먼저, 청계천은 특히 북악산 밑 백운동 계곡과 청풍계 쪽의 백운동천, 인왕산 아래 수성동 계곡에서 발원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이 청풍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계천은 청풍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학적 흐름과 관계가 깊다. 다음, 청계천은 작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나 장편소설 ‘천변풍경’을 통해 구축한 불결함과 가난, 그리고 이를 매개로 연결된 서민들의 ‘공동체’적 삶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청계천 이미지는 해방 후, 6·25 전쟁 후에까지 연결된다. 마지막 하나가 전태일의 청계천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서 성장한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에 ‘시다’로 취직하게 되면서 운명적인 길을 걷게 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4년은 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청계피복노조’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싸움을 가열차게 벌이던 때였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시위를 나갔다 전경에 쫓겨 고가도로 밑으로 뛰어내린 기억이 선명하다. 어렵고 어지러운 때면 이 전태일이라는 존재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어째서 그의 죽음은 여전히 숭고하게 느껴지는가? 희생을 ‘내세운’ 다른 흔한 죽음들과 달리. 이것이 나의 지속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나고 죽는 것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없다. 인간은 아직까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이므로,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전태일기념관을 나와 세운상가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고 버들다리(전태일다리)로 간다. 다리 위 전태일 반신상을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코스다. 세 시간 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다시 배우고 생각한 길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8-11

왜 ‘비상계엄당’이 되고 싶어 하나

컨벤션 효과라는 게 있다. 큰 행사를 하면 사람도 모이고, 돈도 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효과에 더 자주 인용된다. 전당대회를 하면 정당 지지율이 상승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맞불을 놓았을 때 효과를 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2021년 11월 여야 대통령 후보가 결정됐을 때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0%가량 지지율이 올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오히려 조금 떨어졌다. 양대 정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는 최근 여론 흐름도 그렇다. 민주당은 누구나 짐작할 만한 두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컨벤션 효과라면 국민의힘에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여론은 거꾸로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참여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4%, 국민의힘은 16%로 나타났다. 거의 세 배에 가깝다. 추세도 민주당은 오르고, 국민의힘은 떨어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도 긍정 65%, 부정 24%다. 이 조사만 특별한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에 심각한 경고 신호다. 전 연령대에서 민주당에 밀렸다. 심지어 70세 이상에서도 뒤처졌다. 지역적으로 전국에서 민주당 우세다. 국민의힘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경북(TK)마저 민주당에 내줬다.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이 흐름대로라면 국민의힘은 전멸이다. 국민의힘은 갑자기 비상계엄이라는 뚱딴지같은 일을 저질러 정권을 넘겨줬다. 국민이 맡겨준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웠다. 2024년 총선 때는 표 떨어질 일만 벌여 필리버스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입법·행정부도 모자라, 이제 지방 정부까지 몽땅 내줄 처지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이재명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패배 의식과 상실감 때문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탓, 국민 탓만 한다. 국민의힘 책임은 없다. 길이 안 보인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 청문회로 시끄러웠다. 이춘석 법사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차명주식을 거래한 의혹으로 출당됐다. 정부·여당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그런데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이게 국민 탓일까. 더 큰 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는 게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에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 부부, 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윤미향 전 의원 등을 사면한다고 한다. 송언석 위원장은 “최악의 정치사면”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뒤로는 야당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을 청탁했다. 전략도 없고, 결기도 없다. 말썽이 나자 뒤늦게 “어떠한 정치인 사면도 반대한다”라고 말했지만, 무슨 망신인가. 호재를 악재로 바꾸는 기막힌 재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고 한다.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둔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았다. 2004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과 탄핵 역풍으로 50석도 못 건진다고 전망할 때,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당사에서 121석을 건져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디도스 공격 의혹 등으로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당명과 로고를 바꾸고,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독점하던 ‘경제민주화’ 아젠다를 선점했다. 정권 심판론에 매달린 민주당을 ‘과거 회귀 세력’, 자신은 ‘미래 지향 세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 짜기에 성공했다. 박정희 지키기만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에 맞춰 변해야 한다. 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70%를 넘었다. 윤 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제 와 “계엄으로 누가 죽었나”라고 반문한다. 어쩌자는 건가. 미래를 팔아 과거를 뒤집자는 건가. 폭주를 막지 못한 자들의 면죄부로 쓰자는 건가. 그런 세력에 아부해 잔해더미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우려는 건가. 이런 자해 소동이나 벌이려면, 해체하는 게 옳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0

첨벙첨벙, 작약은 피고

첨벙첨벙 꽃이 피고 드디어 나무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꽃송이 속으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쏘다녔고 나는 물 장화를 신고 정원을 쏘다녔다 해당화 그늘 속으로 헤엄치는 날들이 많아졌고 여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나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몰라서 멈출 수 없는 놀이 매일매일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별의 일에 대하여 날마다 멀어지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에 대하여 잠든 것들의 모든 기척처럼 번지는 핏방울에 대하여 손을 숨길 주머니도 없이 벗어둔 물 장화 속에 물이 가득차서 배처럼 흔들리는 것을 모퉁이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와서라고 할 수 있을까 끝은 얼마나 아파야 제 끝을 다른 끝에게 내어줄까 쓰러져도 자꾸만 떠오르는 이 세계는 ―이승희, ‘물속 정원’ 전문(‘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2024, 문학동네) 시인은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하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 시는 온통 식물적 상상력으로 특징할 만하다. 시의 제목이자 배경인 ‘물속 정원’은 두 세계의 만남인 육지와 물, 생과 죽음, 현실과 환상을 암시하는 이중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정원은 생명의 공간이지만, 그것이 물속이라는 설정은 비현실적 장소로서 기억, 무의식, 상실의 공간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이승희 시인의 앞선 시집이 ‘맨드라미’나 ‘토마토’ 같은 식물의 이미지로 집중했다면, 이번 시집은 ‘작약’,‘물고기’ 잎이 없이 뼈로만 자라는 식물인 ‘포도’ 등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가 형상화한 이미지가 무엇이건 모두 ‘여름’이라는 계절로 수렴된다. 이를테면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연작을 비롯해 “여름의 우울”에서 “또 다른 여름”에 이르기까지 온통 여름이 인과가 된다. 이때 시인의 여름은 꽃과 함께 시적 자아의 결핍과 상처를 드러내는 주요한 식물적 상상력의 동인으로 복무하고 있다. 과연 “첨벙첨벙” 피는 꽃이란 있을까. “꽃송이 속으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쏘다녔고”에서 나무에 물고기가 산다는 기이한 상상은, 물이 정원의 세계를 범람하며 부유하듯 “모퉁이를 갖지 못한 채” 삶의 방향을 잃은 존재, 즉 정서적 중심이 없는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벗어둔 물 장화 속에 물이 가득차서 / 배처럼 흔들리는 것”에서 시적 자아의 내면이 정서의 물에 잠긴 상태를 보여주는 현실의 장화가 감정의 물성을 담고 흔들리는 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모네의 그림 ‘수련’이 보여주는 경계 없는 세계와 공명하며, 시인의 ‘고정된 시선 없이 흘러가는 존재의 물성’을 공유하는 듯하다. 언젠가 도쿄에서 찍어온 모네의 말년 연작 ‘수련’을 크게 인화해서 걸어두었다. 계속 들여다보자면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마는데 이는 수면 아래인지, 위인지, 수련인지 그림자인지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 불확실한 흔들림 속에서 ‘상실’의 풍경이 몽환적으로 피어나는데, 이는 화자가 장화를 신고 물속 정원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꽃 속에 물고기가 쏘다니고, 장화 속엔 물이 차오른다. “쓰러져도 자꾸만 떠오르는 이 세계는” 끝내 가라앉지 못한 감정, 다시 떠오르는 부재의 세계를 나타낸다. 가령 모네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도 수련을 그렸고, 시인은 여름이 지난 뒤에도 멈출 수 없는 놀이를 계속한다. 결국 삶의 고통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살아가게 되는 이유, 혹은 존재의 부력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몰라서 멈출 수 없는 놀이” /이희정 시인

2025-08-10

경주, APEC 2025로 평화·문화·경제의 중심에 서다

오는 10월 말,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21개국 정상과 주요 부처 장관, 글로벌 기업인, 언론인 등 약 2만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를 넘어, 경주와 대한민국의 위상을 새롭게 쓰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가 지금 경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지닌 복합적인 역량—‘평화의 기억, 문화의 정체성, 경제의 가능성’—때문이다. 경주는 단지 시간이 흐른 도시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세계와 소통해 온 도시이다.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의 품격과 비전이 공존한다.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였던 이곳은 일찍이 바다를 건너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며 국제적 감각과 포용의 가치를 키워왔다. 폐쇄가 아닌 개방, 갈등이 아닌 융합의 전통이 이 도시에 스며 있다.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으로 대표되는 유산은 단지 아름다운 문화재를 넘어, 수천 년 전부터 세계와 연결되어 온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경주는 그 역사적 깊이를 바탕으로 세계와 다시 대화하려 한다. 또한, APEC과 같은 회담이 열리기에 경주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도 흔치 않다. 경주는 전쟁이 아닌 문화로 경쟁하고, 무력이 아닌 예술과 기술로 국가를 성장시켜 온 전통을 간직한 도시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는 세계가 찾는 진정한 회의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번 APEC의 핵심 가치인 ‘지속 가능한 한 번영 역시, 그 뿌리를 경주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과 공존하며, 사람 중심의 철학을 실현해온 이 도시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모범이 된다. 문화의 정체성 역시 경주만의 뚜렷한 경쟁력이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살아 있는 예술의 공간이다. 과거의 유산이 지금도 시민들의 삶 속에서 호흡하며, 도시의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세계유산은 일상이 되었고, 시민의 삶 속에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거리와 골목, 축제와 공연까지—도시의 모든 요소가 세계인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한 문화 콘텐츠가 된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최신 시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경주의 정체성과 일상을 세계와 나누고자 한다. 경제적 잠재력 역시 주목받고 있다. 경주는 미래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SMR(소형모듈원자로) 산업단지, 수소·에너지 클러스터, 디지털 의료관광 기반 조성 등 차세대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미래 대한민국 산업을 선도할 핵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장기적 전략 아래 추진되고 있다. APEC 회의는 이 비전을 세계에 선보이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경주의 잠재력과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포항·울산과 함께하는 ‘해오름동맹’을 통해 산업·관광·문화가 어우러지는 광역 협력 모델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 지역 연합은 단순한 지역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 있다. ‘지나온 천 년’과 ‘다가올 백 년’이 공존하는 도시—그 중심에 바로 경주가 있다. 회의 준비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경주시와 경상북도, 외교부 등 관계 부처 실무진은 매일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표지판 하나, 의자 하나까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마친 호텔 객실에는 조명과 동선을 확인하는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각국 의전을 위한 리허설도 실시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시는 말이 없지만, 곳곳에서 수천 개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변화는 시민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원봉사 교육장에는 매일 시민들이 찾아오고, 손님맞이 친절 캠페인도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행사를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는 시민들의 참여야말로, 경주 APEC의 가장 큰 자산이다. 경주의 APEC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단 한 명의 실무자도, 단 한 사람의 자원봉사자도 무대 뒤에 숨지 않도록 하겠다. 모두가 하나 되어 만든 결과는 어떤 외교적 성과보다도 값질 것이다. 모든 준비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로, 평화를 기억하는 도시, 문화를 품은 일상, 미래산업이 살아 숨 쉬는 경주를 세계에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것. 그 진심이 닿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APEC은 단지 ‘경주에서 열린 회의’가 아니라, ‘경주가 세계로 도약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주낙영 경주시장

2025-08-10

쏘니, 덕분에 행복했던 10년

2014년 5월 14일, 한국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던 선수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것은 내 또래의 축구 팬들에게는 몹시 허탈한 소식이었다. 주말 밤마다 우리에게 치킨과 맥주를 준비하게 만들었고 가슴을 설렘으로 부풀게 만들었던 일상의 행복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어린 선수, 손흥민이 바로 다음 해에 프리미어리그의 또다른 명문구단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박지성이 입단했던 2005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구단이었다. 그러나 2015년의 토트넘 홋스퍼는 분명 명문구단이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나마 손흥민이 입단 하면서부터 등번호 7번을 받았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7번이 어떤 숫자인가.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라울 곤잘레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번호이며 팀의 키플레이어라는 상징이 아닌가. 한국 선수가 세계 최강의 구단에서 웨인 루니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의 핵심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비록 세계 최강을 넘보는 팀은 아니었을지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 한국 선수가 그야말로 주인공 역할을 하며 뛰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가슴을 벅차게 하기엔 충분했다. 손흥민은 몇 경기 만에 자신이 왜 토트넘 홋스퍼의 7번인지를 증명하며 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짜릿하고 행복한 주말 밤을 매주 선사해주였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모습과 왼발과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대포알처럼 꽂는 슈팅은 우리 세대에게는 한국인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생소한 모습이었고,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차범근의 활약을 떠올리게 하는 반가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주말 밤마다 머나먼 나라의 경기장을 보며 치킨과 맥주를 시켜두고 한 주 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특권을 자그마치 십 년이나 더 누릴 수 있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히 마법같았던 순간 몇 개가 떠오른다. 하나는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아름다웠던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을 그가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프리미어리그 번리 전에서 70미터를 질주하며 상대 선수 6명을 추풍낙엽처럼 제쳐내고 골망을 흔드는 장면은 잠시나마 그에게 축구의 신이라도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2년의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치며 리그 공동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될 수 있다니. 포효하는 그를 보며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장면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이었다. 지난 10년간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무관이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였다. 그러나 올해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침시키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인이 주장완장을 차고 유럽 메이저 대회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 역시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감동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의 허리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감겨 있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손흥민은 그에게 폭포 같은 박수가 쏟아지던 바로 그 시기에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언론들과 선수들은 지난 10년간 보여준 토트넘 홋스퍼에 대한 그의 헌신을 인정하고 전설에 걸맞는 예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LA. 새로이 떠오르는 리그에서 그는 또 다시 마법과 같은 플레이들을 보여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다음 월드컵의 개최지이다. 미리 적응해서 대한민국 대표님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라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국가대표님의 주장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환상적이었던 순간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토트넘 홋스퍼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력이 마무리 되었을 뿐이지 국가대표 손흥민, 축구선수 손흥민으로서는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얼마든지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동안 함께 웃고 울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는 말을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리그에서 또 다른 전설을 써내려가길 기대한다는 말 또한 적어본다. /강백수(시인)

2025-08-10

나 조금 귀여울지도?

스스로에게 살갑고 다정하게 구는 게 언제부터 새삼스러웠더라.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을 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충만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유효기간이 짧으니 최대한 빨리 섭취해야 한다. 머리카락 방향, 셔츠 깃의 빳빳함 정도, 양말 끝이 바지 기장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까지 마음에 드는 그런 날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친구처럼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춘다. 한쪽 눈을 찡긋, 손가락을 탁 튕기면 위풍당당해 보이는 것을 넘어 사랑스러워 보이기에 이른다. 이런 호들갑도 잠시,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폭염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이 문제였을까. 어깨 위에 내려앉은 묵직한 습도에 결국 당하고 만 것인가. 상가 유리창에 비친 낯선 행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구보다 당당하게 거리를 가르고 있다고 믿었건만, 어깨는 구부정하고 입술은 굳은 채로 어색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제발, 아닐 거야….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역시 그렇다. 거울 앞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낯설고 불만족스러운 현실 속의 나만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써보려 했을 뿐. 이렇듯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 나 자신도 참 부끄럽다. 어째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을 이렇게 어려워하는 것일까. 어떤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기 신뢰가 있으면 좋겠건만, 그건 거울 속에서 완벽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특히 타인에게서 비난조의 말을 듣게 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실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기분이다. 내 딴엔 환하게 웃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비아냥처럼 보이고, 별생각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순간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스친다. 때때로 나는 내 안에 거울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나를 점검한다. 사진 속의 표정, 영상 속의 걸음걸이, 심지어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까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애쓰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러닝머신 위의 거리감과 비슷하달까. 내가 아는 나는 언제나 빛을 한 번 돌려받은 뒤의 형상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반사와 왜곡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빛이 표면에 부딪혀 돌아오는 순간, 경로를 통해 형태는 틀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발생하는 변형이 현실을 아름답게 보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적 사실 중 하나다. 오히려 숨기고 싶은 지점을 더욱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비추는 창이 항상 불편하게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어긋남 속에야말로 내가 모르는 나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을 확인하는 기회가 숨어 있다. 때로 어떤 틈새는 그 자체로 나를 지켜주는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낯설면서도 나를 확장하는 여백으로 존재하며 그 틈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 완벽한 스스로가 아니라, 변하고 비틀린 모습을 포함한 나 자신이다. 다른 측면의 나를 보는 일은 물론 괴롭겠지만, 내가 상상했던 내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채 흘린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바꿔놓을 수도 있고 툭 던진 작은 선의에 뜻밖의 인사를 받기도 한다. 세상이 비춰주는 나는 생각보다 종종 쓸 만하고 가끔은 내가 믿는 나보다 더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울 앞에 서는 일은 일상에 흩어진 나를 거두어 모아 정리하는 의식처럼 여겨진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나를 차곡차곡 주워 담는 일. 그렇게 펼쳐진 내 모습은 분명 완벽할 수 없겠지만, 가끔은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던 내 안의 심판관을 잠시 쉬게 해도 괜찮겠다. 어차피 왜곡된 형상을 봐야 한다면 내 편인 쪽이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유난히 어깨가 처지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날이면 셔츠 깃을 쓱 고쳐 세우며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나, 조금 귀여울지도? /문은강(소설가)

2025-08-10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여는 세상

국민 24%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다. 이제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 깊숙이 파고든다. 요즈음 인공지능과의 채팅과 영어 회화 공부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가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인공지능에 양자 컴퓨터가 연결되면 어떻게 될까. 양자는 소립자로 에너지를 운반하는 기본 입자이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가 가진 중첩, 얽힘, 양자 간섭 등 양자역학을 이용하여 만든 컴퓨터로 기존의 컴퓨터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짧은 시간에 계산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계산할 문제를 단 몇 분 만에 계산하는 양자컴퓨터가 결합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에 세상은 더 빨리 달라질 것이다. “미래를 이끌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의 결합이 될 것이다”라고 ‘IBM 리서치’ 취리히 연구소의 테오도로 라이노(Teodoro Laino) 박사는 말했다. 2030년에 상용화가 될 것이라는 양자컴퓨터는 미국, 캐나다, 중국, 스위스 등 각국의 치열한 개발 경쟁으로 그 시기를 대폭 당길 가능성도 크다. 국내에선 100 큐피드급의 IBM 퀀텀 시스템을 도입한 연세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IBM 퀀텀 시스템 원을 설치하여 연구 중인 나라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5번째이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의 결합은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연구개발에 선도적인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정부의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도 아직은 인공지능에만 머무르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과 경제적인 지원으로 우리나라가 양자컴퓨터 원천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원천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인류를 위한 제품 개발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활용하는 인공지능만 해도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만 한데 양자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로 새로운 정보를 공급하는 양자 컴퓨터가 합세한다면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인류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많고 지금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피해를 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힘을 모으면 질병 연구와 신약의 개발, 불치병에 대한 치료 기술, 삶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 환경 오염 문제 해결 등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사람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을 합칠 때 인류의 삶은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적대세력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지구는 매일 아프다고 말하고 질병으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우리는 인류가 함께 나아갈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더해진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없지 않을까. /김규인 수필가

2025-08-10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지난주 인지 건강 강의에서 공자의 즐거움을 소개했다. ‘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는 인지 건강에 중요 요소인 공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도 당연히 소개했다. 수업이 끝날 때 수강생들은 배우는 기쁨을 한껏 느꼈다면서 한문을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고도 하셨다. 공자만 소개하면 서운해서 맹자의 삼락도 덧붙였다. 칠십 대 이상인 분들도 있어서 ‘부모가 모두 생존하고 형제가 무탈한 첫 번째 즐거움’과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세 번째 즐거움’은 생략하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두 번째 즐거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수강생이 ‘이건 불가능해요.’라고 하신다.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하늘에 부끄러움 없기야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지만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기도 쉽지는 않다. 맹자는 물론, 제아무리 공자라도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게 떳떳했을까 의문이 든다. 설령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 없다고 자부했다면 그것이 더 수상쩍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잘못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너무나 떳떳하여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혹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즐거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일 게다. 지난 3월 7일 구속취소되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넉 달만인 7월 10일 재구속되었다. 구속취소 전에도 모든 조사를 거부했고, 재구속 이후의 조사도 다 거부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속옷만 입고 누워서 버텼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을 당황하게 하더니 7일에도 완강히 거부해서 부상을 우려한 특검팀이 결국 체포 집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설이 없다. 혹시나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시민 104명이 12·3 불법계엄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자 바로 항소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윤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이 ‘1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대통령을 양쪽에 팔을 끼고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차량에 탑승시키려 했다’면서 이것은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관계자들을 불법체포감금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성토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자신들이 무고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당당하게 나와서 조사받아야 할 텐데 일관성이 없다. 부끄럽지 않을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은 배워서 할 수 있다.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0

일하는 노인 천만명시대

통계청이 밝힌 5월 중 고령층 부가 조사에 의하면 55~79세 국내 고령층의 경제활동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고령층 전체 인구의 60.9%에 해당하는 것으로 10명의 노인 중 6명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청의 이 발표는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구조가 새로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통계로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우리 사회 노인들은 은퇴 후에 여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20년 전(500만명)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예외적 경우로 보지 않으며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는 국가적이든 개인적이든 긍정적인 면이 많다. 노동시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이것이 노년층의 생활 안정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늘어난 배경에는 수명이 늘면서 70대에도 활동이 가능한 건강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령자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생활비 조달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돼 노인들의 경제활동 증가에는 노인 빈곤 문제가 여전히 숨어 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노인 빈곤 문제부터 퇴치돼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0

두달여 앞둔 APEC 경주관광 붐업 나서야

경주는 국내외적으로 관광도시로 잘 알려진 도시다. 세계유산도시기구 회원도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도시로서 국제적으로 관광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오는 10월 말 개최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주에게는 도시발전의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세계 21개국 정상과 각료, 경제인 그리고 2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행사를 주관하는 도시로서 얻을 후방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APEC을 호기로 삼는 경주시의 특별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주는 앞서 말한 대로 관광문화 도시다. 신라 천년고도의 도시에다 도시가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문화재가 넘쳐나는 도시다. 관광지로서는 이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APEC을 계기로 관광도시로서 국제적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경주의 최대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가운데 정부가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해 한시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음달 29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다. 중국의 국경일과 연말연시 특수를 활용한다면 중국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외국 관광객의 28%를 차지하면서 가장 많았다. 중국 관광객 수는 코로나 19 이전 수준까지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서울과 부산을 관광하고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서울과 부산 관광업계는 벌써부터 중국 관광객 유치에 들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APEC을 앞둔 경주는 중국 단체관광객을 유치할 명분도 인프라도 충분하다. 경주시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무비자 입국 시기에 맞춰 경주관광을 끌어올릴 관광붐업 정책을 서둘러 펼쳐야 한다. 경북도와 경주시, 관광업계가 APEC 개최도시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도시 경주에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경주의 관광붐업은 APEC 경주의 성공 개최와도 연결이 된다. 정부도 APEC이 열리는 경주에 많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5-08-10

산업재해 없는 나라

길을 걷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수많은 개미가 사람들의 발밑을 태평하게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은 운동화나 구두가 언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판국인데 개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간다. 이런 일은 어제도 한 달 전에도 10년 전에도 일어났으리라. 어떻게 개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유자적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일까?! 개미를 들여다보다 문득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 머리 위로 거대한 공룡 무리나 매머드 코끼리가 지나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혹은 사악한 악마나 잔인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덮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싶다. 개미와 인간, 인간과 초자연적이고 숙명적인 존재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인간은 문명을 일구었고, 그 결과 자연과 대립하는 담장을 만들었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담장 안의 안온한 사회와 담장 밖의 황막한 자연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자연에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이 진행되었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유소년과 노인 그리고 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와 실천방안이 마련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과 궤를 함께한 19세기의 악랄하고 병리적인 자본주의와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코난 도일(1859-1930)의 추리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런던의 끔찍한 스모그와 그 속에 방치된 시민들의 일상은 당대의 가혹한 사회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도록 한다. 최소한의 치안과 국방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한 사회·경제정책에 따른 폐해를 사람들은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에 두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국가가 나타난다. 이것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국민 개개인이 돈과 권력을 위한 일회용 소모품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대형사고의 그늘에 자리한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기억만이 또 다른 참사를 예방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대형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좀먹는 것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다. 해마다 반복되는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 중차대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최근 3년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2223명, 2023년 2016명, 2024년 2098명이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평균 5~6명의 귀한 생명이 노동 현장에서 덧없이 스러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주권 정부’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를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일이다.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 불감증을 산재 원인으로 보았던 언론도 사태의 핵심을 치밀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볼 때다. 광고 수주를 위해 재벌과 대기업 고용주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깊이 있는 접근과 인간적인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0

국힘 전당대회, TK현안은 언급도 안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8·22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8일 대구·경북(TK)에서 열린 첫 후보 합동연설회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나뉜 당원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며 난장판이 됐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책임당원 투표 80%, 국민 여론조사 20%로 선출되기 때문에 판세를 결정할 책임당원의 입김이 강하다. 당권주자 찬탄·반탄파 대결 구도는 2대 2다.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는 “당을 망치고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당원들을 향해 극우니 혁신의 대상이니 하면서 큰소리를 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김문수 후보는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당 내부가 아니라 극좌 부패 세력”이라고 했다. 반면, 찬탄파인 조경태 후보는 “우리 당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들을 몰아내지 못하면서 거의 해체 수준의 참혹한 순간을 맞고 있다”고 했고, 안철수 후보는 “극단주의자들이 대구·경북에 와서 표를 맡겨 놓은 것처럼 손을 벌리는 것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이날 장동혁·김문수 후보는 안 후보의 정견 발표를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고, 국사강사 전한길씨는 찬탄파 후보자들이 연설을 하면 청중석 앞으로 뛰쳐나가 ‘배신자’를 외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당원이 전씨에게 “무슨 자격으로 나서느냐”고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8월 1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지지율이 16%까지 떨어졌다. TK지지율도 23%로 10%대 추락을 겨우 면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민심회복에 총력을 쏟아야 할 전당대회를 ‘윤석열 논쟁’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니 지지율이 오를 리 없다. 특히 TK지역은 국민의힘 ‘산실’이 아닌가. 이 지역은 현재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든 현안(TK신공항 건설, 대구 취수원 이전, 영일만 대교건설 등)이 중단된 상태여서 정치권 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당권 주자들이 지역 전체의 민심을 외면한 채 강성 당원 표만 노리며 한물간 ‘배신자 논란’을 벌이고 있으니 정상이라 할 수 없다.

2025-08-10

잔인한 복수의 칼날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가 들렸다. 육십 대 초반의 한 남자는 자기 생일날 며느리와 손주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이혼한 아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아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아내에게 총을 쏘면 될 일인데 왜 자식에게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눈앞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어린 손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재기를 위해 처가의 돈을 많이 빌렸다. 하지만 계속된 사업 실패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장인의 돈 독촉은 연일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자는 모든 사업자 명의를 자신의 아내에게 다 돌려버리고 모든 빚을 그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방문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밤이 새도록 남편의 시체를 방문에 걸어 놓고 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는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는 남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꽤 되었지만, 아내는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장인을 향한 보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으로 끔찍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이야기 두 개를 뽑았을 뿐이지 비견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 사회에 부모라는 개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가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든 두 남자는 지네 부모에게 증오의 표출 방법으로 아주 잔혹하게 남을 짓밟는 것만 배웠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치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남이 다 잘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 사상관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잘못은 도외시 한 체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못 참고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충 넘어갈 성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존경받는 어른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어른이 없어지니 전부 어른 행세를 한다. 나이가 조금 먹었다 싶으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아무 날이나 걸림이 없다. 이러니 젊은이들조차 예의는 사라지고 몰염치만 남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종교 성직자들은 정치 놀이에 여념이 없고 납골당이나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정신 건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남을 보듬어주는 정(情)이 없어졌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보니 남에 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사라지고 복수의 칼날만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 갈수록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07

반려(伴侶)의 의미

우리 집 고양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첫째 ‘마루’는 어느 식당에 출몰한 쥐잡이용으로 용인5일장에서 삼천 원에 팔려 왔고, 둘째 ‘보리’는 꼬리가 잘려 피투성이가 된 채 길 한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셋째’ 용이는 내가 다니던 문학관 주변을 맴돌며 방문객들의 손길과 발길질을 번갈아 맞고 있었고, 넷째 ‘송이’는 구내염에 시달리며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막내 ‘핑코’는 자기가 골목대장인 줄 알았지만 산책 나온 개들에게 종종 쫓겨 다니곤 했다. 마루, 보리, 용이, 송이, 핑코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다. 나도 내가 고양이 다섯의 ‘집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가끔은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우연히 내게 찾아왔고, 각자를 마주한 순간들이 너무 절박했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첫째가 온 지 9년, 막내가 온 지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반려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됐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개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반려종 선언(2003)’을 제시한 바 있다. 대체로 “우리는 서로를 위태롭게 만들고 남의 살점으로 존재하며 서로 먹고 먹히고 소화불량에 걸리며 살다 죽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종이 서로 반려가 되어 살아가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발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반려종’은 당연히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려종이 존재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개의 종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반려종은 관계가 존재론의 최소 단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러웨이는 자신과 반려견 사이의 대화와 훈련 경험을 통해 소통과 조율을 오가며 ‘서로 만들어가는 존재’가 됐다고 말한다. 개와 인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자로 존재할 수 있는 윤리를 알게 됐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애정 관계가 아닌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사유되는 관계라고 말한다. 결국 ‘반려종 선언’은 인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를 재구성할 것을 요청하는 의제라 할 수 있다. ‘필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에서는 ‘생명 우선’이 아닌 ‘지속 우선’의 태도가 수립돼야 하며, 다른 종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 맺기 만이 기후 위기와 생태적 재난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여도 되는 종’을 끊임없이 지정해 왔다. 가령 ‘침략종’이 그렇다. 이들은 서식처나 생태 복원을 구실로 죽여도 되는 존재로 숨어 살게 된다. 이는 “특정 생명체를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생명체를 위한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리는 것은 아닌”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생명정치가 살 가치가 있는 종과 그 외부의 타자를 구분하는 사고에 기초한다면, 그리하여 그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나치의 ‘인종청소’가 시행된 것이라면, 특정한 국면에서는 우리 자신조차 ‘죽여도 되는 종’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반려란 지속가능한 생태를 함께 이루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해러웨이만큼이나 우리집 다섯 고양이가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8-07

수능 기도

갓을 쓴 바위란 뜻의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예컨대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바위는 모양이 갓을 쓰고 있는 것과 닮아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갓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동네 이름도 여기서 유래돼 관암(冠巖) 마을이다. 목포시나 경기도 양주, 서울 우면동, 공주시, 보령시 등에도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바위가 있다. 그러나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의 인지도에 밀려 대부분의 갓바위들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팔공산 갓바위는 팔공산 봉우리의 하나인 관봉 정상부에 있는 높이 5.48m의 불상이다. 9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머리 위에 씌인 갓모양의 바위는 그 이후인 고려시대에 따로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1965년에 문화재 당국이 보물로 지정한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특별히 유명한 것은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불교 신도이든 그렇지 않든 소원을 빌러오는 사람들이 연중 끊이질 않는다. 한해 250만명이 찾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가도가 영험한 모양이다. 수능시험 100일을 맞은 이번 주에도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 많은 기도객이 몰렸다고 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산을 올라 기도하는 이들의 정성이 놀랍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고 했다. 각자가 바라는 소원은 다르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믿고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07

매년 반복되는 고수온 고기폐사 대책은 없나

올해는 폭염 등으로 고수온주의보가 작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발령됐다. 경북 동해안도 지난 1일 경주, 포항, 영덕, 울진 등에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돼 양식 어가들이 비상이다. 작년 여름은 경북 동해안에서만 300만 마리의 어류가 폐사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했다. 강도다리, 넙치 등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에서 주로 발생했고, 많이 발생한 날은 하루 20만 마리가 폐사한 사례도 있다. 피해액이 31억원에 다달았다. 포항에서는 육상양식장 40곳 가운데 32곳이 피해를 입었다. 고수온주의보는 수온 표층온도가 28도 이상 지속될 경우 경보단계로 격상되는데, 올해는 역대급 폭염이 예상돼 양식장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는 이런 양식 어가들의 사정을 고려,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어류폐사 피해 최소화를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식어가에 대한 방제장비나 물품 등을 지원하고 시설 현대화와 보험료도 지원한다. 포항시의 이같은 선제적 지원은 바람직하다. 사후 지원보다 예방적 효과로 거두는 실익이 크기 때문이다. 여름철만 되면 발생하는 동해안 고수온 피해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양식농가의 영세성과 비용 등이 뒤따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지만 대체로 단기적 처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고수온에 따른 물고기 피해는 기후변화 등으로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보다 근본적 대책을 세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육상 양식장을 운영하는 모 대표는 “장비보다 운영비가 더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냉각기와 산소공급 장치를 돌리려면 전기요금이 문제”라고 했다. 포항만 해도 액화 산소공급기 등 2000대 가까운 방제장비가 어가에 있으나 어가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농업처럼 어가에도 특례요금을 적용해주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한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고수온에 대응하는 양식기술 개발이나 대체 어종개발도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

2025-08-07

양육비를 받기 위한 방법

“나중에 양육비를 안 주면 어떡하죠, 변호사님?” 10년 넘게 이혼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필자가 의뢰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실제로도 힘들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이혼을 하고 나서도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생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이혼 소송의 의뢰인이 다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한 소송의 의뢰인이 되기도 한다. 민법 제913조에 의해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으므로 이혼하고 자녀를 키우지 않고 있는 부모에겐 양육비 지급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다. 양육비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주는 것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양육비를 3번 이상 안 보내면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 감치는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채무자를 교도소 등 장소에 구금시켜 놓는 것이다. 양육비 채무자가 정기적 급여를 받는 근로자인 경우 양육비 채권자가 다니는 회사에 직접 양육비를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회사가 채무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떼서 양육비 채권자에게 직접 보내준다. 이것이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제도이다. 양육비 미지급자에겐 출국금지 처분과 운전면허정지 처분도 내려질 수 있다. 나아가 양육비 채무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 주소 근무지 등을 공개하는 신상정보공개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고 양육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해야 하거나 법원에 양육비 지급을 담보하기 위한 일정 금액의 담보금을 공탁해야 할 수도 있다. 형사처벌도 된다.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감치 결정을 받고도 1년 동안 여전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양육비를 안 주다간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금전채무도 이런 많은 제재 수단을 가지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생계, 기본권과 관련된 양육비 채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강제 수단들이 있으므로 사실 정상적 경제활동을 하는 비양육자들은 양육비를 잘 보낸다. 문제는 자기 이름으로 받는 급여도,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사는 비양육자들이다. 그 자들에 대해서도 감치와 형사고소 등 위 수단들을 취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알아볼 시간과 노력, 또 법률 비용이 든다. 양육비를 못 받으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계를 꾸리는 데 바쁜 사람들이기에 양육비를 받기 위한 강제수단이 많다는 법률 정보를 정확히 알기 힘들거나 알아도 법률 비용을 쓸 여유가 없다. 몰라서 못하고 알아도 못한다. 정부와 법원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이다. 부모 명의 회사에 다니며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있는 남성에 대해 감치 결정을 받았지만 법원은 감치 집행에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특히 대상자의 소재가 불분명하면 감치 집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든 사회적 문제가 그렇겠지만 특히 양육비 이행 문제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양육비 이행을 위한 강제수단과 제도들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실무 집행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더해졌으면 한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07

건설업계 산재사고, ‘일벌백계’가 해법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들어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 건설)에 대해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 전 건설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연이은 산재사고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대통령 입에서 면허취소 발언까지 나오자 임직원과 그 가족, 하청업체, 주식투자자, 본사가 있는 포항시민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최고수위의 처벌을 언급한 것은 산재사고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실제 면허취소가 되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로 건설 면허가 취소된 전례는 없다. 지난 2022년 근로자 6명이 사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때에도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면허 취소 논란이 있었지만, 올 5월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받는 선에서 종결됐다. 포스코이앤씨는 국내외 주택·건설 공사와 포스코그룹의 주요 인프라 건설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만약 면허가 취소되면 사회·경제적인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6월 현재 재직하고 있는 직원이 6153명이고 협력사도 2000여 개다. 전국 아파트 건설 현장이 100여 곳에 달하고, 해외영업장도 다수여서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포스코이앤씨는 특히 포스코그룹의 명운이 걸린 포항제철소 LNG발전소와 수소환원제철 부지 조성 공사도 곧 시작해야 한다. 중대 산업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다만 우리 건설업계 전반에 상존하는 구조적인 현안을 무시하고 해당 기업만 일벌백계식 처벌을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건설업도 그렇지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국내 제조업체 대부분은 매일 산재 발생 위험성을 안고 가동된다. 이 모든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면허를 취소하거나 사장을 처벌하면, 어느 누가 기업을 운영하려 하겠는가.

2025-08-07

북천숲 700년 느티나무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필연적으로 죽어가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살아갈 많은 날들 매우 눈부셔요 당신의 나날은 더 아름다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성실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잘 살길 바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함이에요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만은 지금의 자살이에요 지금 당신 옆의 모든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을 맹세하면 어떨까 해요 지금 눈앞의 손해보다 양보가 큰 이득이었어요 물러섬이 나아감보다 좀 낫더라고요 나는 미처 몰랐어요, 앞 사람의 어깨를 보는 것. 좋더라고요 비빌 언덕의 환한 햇살, 너무 따스하지 않아요? 나 역시 중요하지만 남들도 모두 중요해요 남루한 어깨동무, 타박타박 걷는 길 그냥 가만히 가요 사람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북천숲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해요 발전적이지 않아 제자리 지키면 오히려 발전적이에요 누가 뭐래도 상관 없어요 나무와 숲이니, 모두가 두루뭉술하니, 손해 볼 일 없으니 그러한 가능성에의 지향적 삶이 궁극의 길일 거예요. …… 정말 모르고 살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임을. 몰랐다. 면피가 아니라 무지의 극점(極點)에서 세상의 부분을 설파하려 했다. 무모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죄질이 나쁜 교조적인 관념의 세계에 숨어, 무한의 삽질을 하며, 나무 한 그루 못 심었다는 것이다. 적당하게 살아야 했다. 깨달음 혹은 각성은 강요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불구하고, 구업(口業)의 악업을 일상으로 저질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적이며 세속적이라서, 습관화되어, 무감각하게, 덧칠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그러나 삶은 명랑하다. 그렇다고 믿고 나를 개조해야 한다. 북천숲의 나무들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걸음을 따르지 못한다.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8-06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초록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였다. 포항성모병원의 뒷마당에 조성된 ‘루이 델랑드 치유의 정원’을 거닐었다. 표지판에는 루이델랑드 신부님이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고아를 안고 계신 것만 같아 내 가슴이 감동으로 뭉클했다. 치유의 정원 안에서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형물 ‘기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조용히 하늘에 가 닿을 것 같았다. 그 따스한 분위기에 스며들어 나의 소망도 한 줄 기도문이 되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환한 빛이 몸에 깃든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소로 향했다. 이 땅에 뿌리 내린 한 영혼의 이야기를 더듬듯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걷는 언덕길은 성스러웠다. 신부님께서는 1895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람 많은 연안에서 태어나셨다. 그가 수평선 너머에 있는 머나먼 나라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건 1923년이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산에 도착하셨다. 조선은 식민지의 불안 속에 있었지만, 신부님께서 내딛은 소명의 발걸음은 분명했다. 그 후의 삶은 말보다 조용한 손길로 채워졌다. 다른 나라에서 종교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그 땅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1935년 여섯 명의 동정녀와 ‘삼덕당(三德堂)’이라 불리는 초가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소박한 집에서 싹튼 마음은 훗날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이름으로 꽃피웠다. 기도보다 더한 기도는 삶이었고, 강론보다 더한 복음은 나눔이었다. 신부님은 이듬해 할머니 두 분과 두 명의 고아를 맞아들여 새로운 삶의 식탁을 꾸리셨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고, 길 잃은 이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성모자애원’이 세워졌다. 오직 사람을 품는 마음만으로 시작된 보금자리였다. 삶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을 자애롭게 끌어안으셨다. 그리고 1950년 3월 포항으로 향하셨다. 보다 깊은 헌신을 향한 발걸음이셨다. 낯선 바닷바람 속에서 익숙한 사랑의 언어로 병든 이들을 어루만졌고,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며 걸으셨다.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고아들을 품으셨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울던 아이들, 신부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신부님은 끝내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묻혀 흙이 되셨다. 신부님의 삶은 영웅적인 장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은 반복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는 자세 속에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세상을 껴안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주셨다. 문득, 신부님께서 수십 년 전에 돌보았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눈빛, 노인의 주름진 손, 고요한 죽음 앞에서의 기도가 아직도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을 떠올려 보면,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영웅이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굶고 있는 자에게 한 끼를 나누는 일, 고통과 눈물 속에 머물러 있는 자에게 등을 두드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자존감이 낮은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 지역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신 이분의 행적이 더 넓게, 더 깊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 위로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어쩌면 신부님께서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묵념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종교를 증명하신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그 뿌리는 이 땅에 내려져 영원히 꽃이 되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8-06

‘소비쿠폰’ 효과 있지만, 물가관리가 걱정

지난달 21일 신청이 시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영향이 지역 상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업종은 소비쿠폰 효과로 매출이 늘어났지만, 소비쿠폰이 지류(종이) 상품권 없이 카드 형태로만 지급되면서 노점상이나 골목상권 등에서는 특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소비쿠폰은 국민의 93.6%인 4736만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신용데이터(KCD)가 소비쿠폰 배포가 시작된 한 주(7월 21∼27일) 동안 전국 소상공인 38만여 개 사업장의 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안경원 업종 매출이 전 주 대비 56.8%나 상승하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패션·의류업 매출도 28.4% 늘었으며, 면 요리 전문점(25.5%), 외국어학원(24.2%), 피자(23.7%), 초밥·롤 전문점(22.4%), 미용업(21.2%), 스포츠·레저용품(19.9%) 등도 매출액 증가 폭이 컸다. 본지 기자가 포항지역 전통시장을 취재했더니, 정육점·건어물점 등의 매출이 특히 상승했다고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2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소비쿠폰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지원금으로 고기를 사는 손님이 꽤 늘었다”고 했다. 반면 생활·편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지역은 읍면 소재지까지 이동하기가 어렵고 마땅한 사용처도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지역에서는 소비쿠폰 지급률도 낮다고 한다. 정부는 농가가 주로 이용하는 농자재 업체나 주유소에서도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 소비쿠폰 지급이 소상공인 매출에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다행이다. KCD는 특히 서비스업 매출의 경우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폭이 컸다고 분석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다양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들이 비수도권 지역을 우선 고려해 추진되면 효과를 극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소비쿠폰 지급이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25-08-06

수난시대 자초한 장관들

고려나 조선처럼 왕이 통치하던 때가 시대적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를 가끔 본다. 전제 군주제에서의 왕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위상이 달랐다. 선거가 아닌 혈통을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된 왕은 그 자체가 곧 국가였으니. 왕의 뜻에 반한다거나 칙령을 거부하며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반드시 ‘바른 말’을 하며 왕에게 저항하는 신하가 한둘은 있기 마련. 대체로 보아 그런 자가 충신인 경우가 흔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왕은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인간사 전체를 매번 합리적으로 꿰뚫는 존재가 아니다. 그도 때론 실수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이성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왕에겐 간언(諫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신하가 필요한 법. 현대사회로의 변화는 지난날 왕이 가졌던 힘의 대부분을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의 총리에게 이양시켰다. 대통령 역시 왕처럼 실수와 오판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 오판과 실수를 재고하거나 고치라고 충언할 수 있는 장관과 차관이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전 국방장관 김용현과 전 행안부장관 이상민은 구속됐고, 또 다른 전 국방장관 이종섭은 ‘호주로 도망친 사람’이란 오명 속에 있다. 전 법무장관 박성재와 전 외교장관 조태열 역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딱한 처지다. 그들의 오늘이 이 지경인 건 권력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간언하지 않았던 게 이유가 아닐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가 없다면 장관직은 사양했어야 옳다. 허니, 장관들의 수난시대는 자업자득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06

영화, 독립영화, 인디플러스

극장가에 ‘다양성’이 사라졌다. 이름난 배우, 검증된 감독, 흥행 공식에 충실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독점한다. 대작 영화 한 편이 개봉하면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잠식하는 ‘스크린 독과점’은 낯익은 풍경이다. 저예산 영화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 다양성을 지우는 통에 영화산업 전체의 창의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가 생겨버렸다. 경직된 산업구조 한복판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있다. 독립영화. 대규모 자본, 물량공세 마케팅과 화려한 스타시스템과는 한참 먼 자리에서 독립영화는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삶의 숨결과 세상의 맥박을 포착한다. 노년과 어린이, 장애인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환경 이슈 등 비주류 목소리와 소외되던 이야기가 들린다. 자본논리로는 성립되지 않을 실험과 시도들이 영화라는 그릇 안에서 호흡한다. 독립영화가 모두를 구원하겠나.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상영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다. 홍보력도 미흡하고 유통망도 답답하다.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런 자리에 영화 본연의 정신, 곧 사회와 인간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예술로서의 독립영화가 살아 숨 쉰다. 독립영화는 ‘가능성’의 씨앗이다. 낯선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다. 봉준호, 박찬욱, 김보라, 윤단비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이들 역시 독립영화현장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갈고닦았다. 독립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의 최전선이자 미래를 담보하는 인큐베이터다. 상영작 리스트를 살피면, 상업영화관의 그것에 못 따라갈 까닭이 없다.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전국에 흩어진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실마리가 아닐까. 포항에도 소중한 공간이 있다. ‘인디플러스포항’. 수도권 집중 문화 지형에서 포항은 소외된 도시다. 영화산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인디플러스포항’은 도시에 문화적 숨통을 던진다. 놀랄만큼 낮은 관람료 삼천오백원은 가격정책을 넘어, 넓게 열린 문화공간을 지역에 선사하겠다는 선언이다. 상영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속깊은 생각거리와 오래 남을 여운을 남긴다. 극장일 뿐 아니라 영화를 매개로 지역문화 생태계를 새롭게 짜겠다는 움직임이다. 어려움도 크다. 관객 기반이 취약하고 운영수지는 바닥이다. 전국의 독립영화관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상황에서 ‘인디플러스포항’이 걸어가는 길이 험난하다. 그런 판에 이 극장의 존재가치는 오히려 높다. 개별 독립영화가 만드는 파장이 소박하지만, 다른 시선, 다른 감각,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힌다. 예술의 역할이며 영화의 본질이 아닐까. 산업은 성장을 목표로 수익을 겨냥한다.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어야 하고 공감을 나누고 연민을 실어야 한다. 독립영화는 영화의 본질을 되새기며 최선을 다한다. 상영관 인디플러스는 영화의 다짐과 기억을 지역에서 살아있게 한다. 상업영화만큼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 삶의 여러 가닥과 높낮이를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매력과 스토리의 벅찬 감동이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할리우드의 영광이 저물어 간다는 소식도 있다. 독립영화가 영화로의 관심을 불러 모을지 누가 알겠나. 우리가 그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06

포항도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제철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이끈 대표 산업이라는 데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제철을 산업의 쌀로 부르는 것도 제철산업이 가진 산업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제철은 자동차, 조선, 전자제품, 건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성장과 경쟁력을 견인했다. 포항은 포스코와 함께 성장한 철강도시다. 세계 최고 철강기업인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수많은 철강 관련 기업들이 포진해 포항의 경제를 리드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서 철강업 중심의 포항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기업의 공장 일부가 가동을 멈추고, 포항철강공단 내 기업의 가동률도 70%대로 떨어졌다. 이런 여파로 지역 상가에도 찬바람이 불어 상가 공실률이 4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50% 관세와 중국의 저가공세로 위기에 몰린 철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 국회가 철강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특별법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의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위기에 빠진 포항지역 철강산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강산업은 미국의 고관세 등 어려워진 글로벌 시장 환경문제뿐 아니라 안으로는 탈탄소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도 주력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대전환을 위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지속 가능한 제철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다. 지난 5일에는 산업부 관계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민관합동실사단이 포항을 찾았다. 실사단은 지역경제의 종합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선제지역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산업부는 지난 5월 석유화학산업단지가 있는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여수시는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의 위기 타개를 위해 포항도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2025-08-06

몸이 차가우면 감정도 차가워진다

‘마음이 시리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 같지만 실제 몸이 차가워지면 감정도 함께 차가워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고 식습관이 불규칙하며 냉음료를 자주 먹는 환경에서는 속까지 냉해진 사람들이 꽤 많다. 겉은 멀쩡한데 손발이 차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중 많은 경우가 바로 몸이 차고 혈액순환이 안되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단순히 몸이 찬 체질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오장육부가 약해지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몸의 중심과 에너지를 담당하는 장부가 허약해지고 냉해졌을 때 기혈이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몸의 오장육부에서 말초 혈관까지 순환이 떨어지고 몸의 대사가 전체적으로 느려진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몸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유지되고 자율신경계는 점점 균형을 잃게 된다. 결국 교감신경은 계속 흥분돼 있고 부교감신경은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이게 바로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서 감정 기복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다. 현대의학에서도 이런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체온이 낮으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기분 조절 물질의 생성이 줄어든다. 또 위장 운동이 느려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몸이 많이 차가운 사람들은 소화도 잘 안 되고 장도 예민하고 항상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고 몸살이 온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감정이 자꾸 가라앉고 불안해지기 쉽다. 실제로 몸이 차갑고 가슴이 답답한 여성 환자들 중에는 불면· 불안장애·공황장애까지 겪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럴 때는 단순히 마음을 다스리는 상담이나 정신과 약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은 육체가 좋아지면 안정된다. 즉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감정도 안정된다. 한방에서는 속을 데우는 약재들과 함께 기혈 순환을 돕는 치료를 병행한다. 예를 들면 건강, 육계, 황기 같은 따뜻한 성질의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몸의 활력이 살아나고 기분도 같이 살아난다. 여기에 복부 찜질, 좌훈, 뜸 같은 물리적인 자극을 함께 하면 더 효과가 좋다. 몸이 많이 찬 사람일수록 치료는 일정 기간 꾸준히 받아야 하고 생활 습관도 함께 교정해줘야 한다. 음식도 매우 중요하다. 몸이 찬데도 찬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자주 복용하고 찬 샐러드나 생과일을 자주 먹는 식습관은 냉증을 더 심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따뜻한 생강차나 계피차를 커피 대신 마시고 익힌 채소와 따끈한 국물 요리처럼 몸을 데워주는 음식 위주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식사량은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단백질 위주로 먹는 것이 좋고 식후 간단하게 30분 정도의 동네 산책과 함께 잠을 자는 시간은 규칙적으로 맞춰야 한다. 감정이 흔들릴 때 무조건 ‘내 멘탈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기 전에 몸 상태를 먼저 점검해보는 게 좋다. 몸이 아프고 찬 상태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시들해지고 감정 기복도 심해진다.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돌보고 순환을 살려주면 마음도 다시 온기를 되찾는다.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돌보는 게 곧 감정을 돌보는 길이고 내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06

심폐소생술 교육

7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도 교련 교육을 받았다. 남학생들은 얼룩무늬의 특별히 제작된 복장이 따로 있었으나 우리 여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교련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식 제식훈련을 하고 열병식 같은 것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흰 바지에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적십자가 새겨진 흰 응급가방을 메고 열병식을 했다. 총검술을 배우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의 경우 응급처치·붕대법·간호법 등을 배웠다. 유사시에 여학생을 간호인력으로 지원한다는 가정이었을 것이나 학생으로서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곤욕이었다. 불평만큼이나 당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비례적으로 컸다. 응급처치법은 몇몇 학생들을 뽑아 시범적으로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인공호흡법을 시범하면서 질색했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난 겉옷을 벗어 두 개의 막대에 걸어 응급용 들것을 만든 시범을 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때 배운 붕대매듭법만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긴 한다. 교련은 일제강점기에도, 광복 후에도 실시하였다고 하며, 1950년대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60년대 말부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엄연한 필수 교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의 학생 대상 군사교육이었던 셈인데, 더러 개그 프로에서 그 시절을 풍자하거나 추억하는 소재로 소비되는 걸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나 공익적으로도 요긴한 응급처치법 중에 심폐소생술에 관심을 가졌다. 40여 년 전 교련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대학 재직 중에 이따금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이 몇 번 있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배울 기회를 놓쳤다.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요즘, 심폐소생술은 필수적으로 배워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대구 팔공산 기슭에 안전테마파크가 있어 손주들과 가끔 놀기 삼아 가는데, 그곳에서 대구시응급의료지원단을 찾아보라고 들었다. 홈페이지 상단에 심폐소생술 교육 신청을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잘 보이게 있었다. 팝업창에는 대구 심정지 환자 수,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를 가르쳐주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어 경각심을 준다. 2023년 기준 심정지 환자 수가 1113명,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 중 가장 많은 곳이 집(68.3%)이라고 하니,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워 두어야 할 심폐소생술이었다. 첫 번째 신청 시에는 집 가까운 수성보건소 교육은 신청 마감이었다. 나와 같은 교육 희망자가 많은가 보았다. 매월 한 달 전에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걸 알고, 미리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가 6월 첫날 신청하고, 지난 7월 23일, 수성보건소에서 2시간의 기본 교육을 받았다. 20명 가까운 교육신청자 중엔 유치원 교사나 아파트 관리원 같은 필수 교육이수자도 있었다.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실습했다. 내친김에 7월 1일엔 8월의 심화1과정을 신청해 두었고, 8월 첫 주엔 9월의 심화2과정을 신청할 작정이다. 과정의 차이 유무는 모르겠으나 일단 배워두면 스스로 든든할 것 같아서이다. 손주에게 자랑했더니 수영 시간에 모두 배웠다면서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손주와 종종 복습하며 몸에 익힐 생각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06

파지

휴가철, 짧은 여행을 다녀오자는 말에 가족들과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에 지쳐갈 때쯤 창밖으로 복숭아밭이 펼쳐졌다. 장호원, 예전부터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 아이들이 어릴 때 일부러 복숭아를 사기 위해 몇 번이나 들렀던 곳이다. 들판 끝에 자리한 직판장 간판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췄다. 햇볕 아래 노랗고 붉게 익은 복숭아들이 상자에 담겨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파지 복숭아’라고 적힌 상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비닐에 잘 덮여 있는 상품 복숭아와는 달리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눌린 자국에 거뭇한 흔적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품으로는 팔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껍질 아래 단맛이 풍겨져 나왔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진 복숭아가 아니라 어쩌면 풍성하게 익어 스스로 무게를 못 이긴 열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볼품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겉은 좀 그래도 속은 멀쩡해요.” 상인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파지복숭아 다섯 상자를 사서 차에 올랐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상처투성이였다. 표면은 부드럽기보다는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연한 황도빛 위에 붉은 기운이 번졌지만 군데군데 멍이 들고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떤 건 껍질이 살짝 벌어져 속살이 보이기도 했고 어떤 건 꼭지 주변이 눌려 검게 변해 있었다. 송진처럼 굳은 진물이 마른 채 매달려 있기도 했다. 손에 쥐자 복숭아 특유의 솜털이 손끝에 부드럽게 스쳤다. 눈으로는 상처가 먼저 보였지만 코끝에는 단내가 먼저 스며들었다. 숙소로 와 파지 복숭아를 조심스레 깎았다. 칼이 껍질을 따라 들어가자 표면의 상처 아래서 뜻밖에도 말갛고 단단한 속살이 드러났다. 붉은 빛이 번진 살결은 탱탱했고 칼끝에 단물이 묻어났다. 상처 난 껍질을 벗겨내자 복숭아 특유의 맑은 향이 방 안에 퍼졌다. 벌레 먹은 부분이나 검게 변한 자리를 도려내고 나니 그 안은 상처 하나 없던 것처럼 투명하고 순했다. 첫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깜짝 놀랐다. 달고, 시고, 향긋하고, 입 안 가득 과즙이 흘렀다. 겉모습만 보고 맛을 짐작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속내였다. 복숭아는 여전히 제 계절의 한복판에 있었다. 복숭아 하나를 앞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득 사람도 이 복숭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누구나 겉모습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고 빛이 바래진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만큼 그 속은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향기롭게 익어간다. 언뜻 보기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의 바람에 겉껍질은 거칠어졌을지 몰라도, 그 껍질 아래에는 계절을 견디며 은근히 익어온 속내가 있다. 손끝으로 조심히 벗겨낼 줄 아는 이에게만 드러나는 말간 진심과 묵직한 내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껍질 너머로도 빛을 머금는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요즘은 거울 보기가 싫어. 피부도 푸석하고 눈가에 잔주름이 너무 많아.”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주름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었겠니. 아이 키우며 울고 웃은 날들, 남편과 싸우고 화해한 날들, 일하고 지치고 다시 일어난 날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나는 파지복숭아를 먹으며 내 삶의 파지들을 떠올렸다. 실수로 넘어졌던 날들, 오해받고 상처 입었던 시간들, 몸과 마음이 지쳐 도망치고 싶었던 밤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단맛이었음을 다시 되새김한다. 내 안에 스며든 날것의 시간들, 그것이 나를 ‘속이 꽉 찬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상처를 껍질 삼아 속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면을 지키기 위해 감당한 바람과 비, 기꺼이 받은 햇살이 내 삶을 익혀간다. 하지만 조금 시들어도 괜찮다. 조금 눌리고 찢겨도 괜찮다. 그 속이 얼마나 깊고 넉넉한지를 알기에. 복숭아를 깎으며 나는 나를 깎았다. 단단한 씨를 피해 조심스레 칼질을 하다 보니 내 안에도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도려내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남았다는 것을. 익어간다는 것, 그것은 단맛을 품는 일이다. 삶의 모든 계절을 통과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파지 복숭아에 담긴 인생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달콤했다. /김경아 작가

2025-08-05

예술의 황홀, 역사의 무게

6월 10일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목적지는 교토국립박물관이지만, 그 전에 기요미즈데라와 주변의 골목길인 샨넨자카와 니넨쟈카를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샨넨자카 돌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야사카 오층탑을 좋아합니다. 6세기 말 쇼토쿠 태자가 만든 후에, 1440년에 재건되었다는 이 목탑을 바라볼 때면, ‘정말로 내가 교토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고는 합니다. 이날은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로 인해 무척이나 붐볐지만, 오래된 집들과 탑의 검은 빛만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샨넨자카를 내려와 1.3km 정도 떨어진 교토국립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구급맵을 켜자 근처에 귀무덤(코무덤)이라는 지명이 나타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 무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임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요. 코무덤(귀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인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일대30만 평은 과거 도요토미의 ‘성역’이었다고 하네요. 죽어서 신이 되고자 한 도요토미는 산정에 특별한 방식의 무덤을 만들고, 그 산기슭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도요쿠니 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높이 19미터의 대불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일본에서 크기로 유명한 도다이지 대불이 15미터이고 가마쿠라 대불이 11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 대불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라는 ‘타자’가 생생하게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무거워진 심신을 추스르며, ‘일본, 미의 도가니:이문화 교류의 궤적’이라는 전시가 열리는 교토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여, ‘문화 교류’라는 키워드로 일본 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였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의 회화, 조각, 묵적, 공예품 등 200점의 문화재를 엄선하여 일본 미술의 빼어남을 전세계인에게 발신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포인트는 수백 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이문화와의 교류로 창조된 것이며, 일본 미술의 고유성이란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화를 녹여낸 ‘도가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 ‘제1부 동아시아 속 일본의 미술’, ‘제 2부 세계와 만난 일본의 미술’, ‘에필로그:문화의 벽을 넘는 것은 누구인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이었는데요. 일본은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1900년의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일본의 첫 번째 미술사 책을 프랑스어로 화려하게 만들어 전시했는데요. 이듬해인 1901년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간행되었고, 이후 일본의 공식적인 미술사로 자리잡아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 미술사는 근대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은 한국, 중국, 유럽 등의 ‘다른 문화’와 교류하며 형성된 것임을 수백점의 예술품들은 실물로서 증명해 보이고 있었는데요. 특히 한국과의 교류는 6세기 중반 무렵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것,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의 도자기 기술이 서일본 각지에 뿌리내린 것, 에도시대(1615-1868)에 조선통신사와의 교류로 수많은 시와 회화 등이 탄생한 것 등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키워드가 ‘이문화 교류’여서인지, 관람객 중에도 외국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란 결국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꽃피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창조)의 본질이 새로움에 있다면, 그 새로움은 분명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교토 국립박물관을 나오며,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떠올라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다음날인 6월 11일에는 나라국립박물관에 갔는데요. 이곳에서는 개관 130주년을 맞아 ‘초국보:기도의 휘황함’이라는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이때의 ‘초(超)국보’라는 의미는 ‘매우 뛰어난 보물’이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를 넘어(超)’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마음과 그 마음을 계승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객이 어찌나 많은지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는데요. 출렁거리는 인파에 몸을 싣고 수백 점의 ‘초국보’를 관람했습니다. 고대의 수수께끼를 온전히 품고 있는 ‘칠지도’를 실물로 보고, 작년 호류지에서 저를 눈물짓게 했던 ‘백제관음’을 유리창 없이 직접 바라보며 커다란 감흥에 젖어든 시간이었습니다. 6월 12일에는 오사카시립미술관의 ‘일본국보전:일본의 국보, 오사카에서 빛나다’를 보러 갔는데요. 평일임에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입장까지 무려 1시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35점의 국보를 소개하는 이 전시회에서는, 특히 오사카와 관련된 국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파리만국박람회 등에 출품된 쇼조칸 소장의 작품을 따로 전시하여 만국박람회와 국보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간사이에서 보낸 3박 4일은 일본인들이 수천년에 걸쳐 낳은 최고의 보물에 둘러싸여 보낸 황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돌아오는 도쿄행 신칸센에서까지 코무덤(귀무덤)이 환기시킨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8-05

이열치열 해양환경지킴이 봉사활동

갈수록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밤새 집중호우가 남부지역에 많은 양의 비를 뿌리면서 바짝 달궈진 대지가 좀 식혀지는가 싶었는데, 비가 그치기 무섭게 염천에 폭서로 작렬하니 과연 여름날의 기세가 예외없이 등등하기만 하다. 더욱이 일부 지역에서는 폭우 피해가 속출해서 안타깝기만 한데, 고온다습으로 눅눅하고 꿉꿉한 무더위에 불쾌지수마저 올라갈 정도니,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더위를 참고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더위를 피하거나 묵묵히 참으며 여름나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위에 정면으로 맞서서 오히려 더위를 즐기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여름날을 보내면 어떨까? 이를테면 열(熱)은 열(熱)로써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측면에서, 더위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땀을 흠뻑 흘린다든지, 아니면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차를 마시며 담담히 더위를 재운다든지 하는 등의 방식으로 더위를 떨치며 물리친다면 한결 개운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필자는 후자의 방식을 선호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더위를 무릅쓰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포항철길숲과 도심을 가로 질러 영일대해수욕장을 거쳐서 한걸음에 다다른 곳이 포항시 북구 여남항이었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챙이 넓은 파란색 모자를 쓰거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곧장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과 비닐봉지를 나눠 들고는 삼삼오오 동료, 가족들과 함께 바다 옆으로 난 둘레길로 이동해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여남 해안에서 죽천으로 이어지는 영일만 북파랑길(호랑이 등오름길) 2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니라 포항 해상 스카이워크를 지나가면서 관광객이나 시민들에게 해양환경의 중요성과 일회용품 줄이기, 플라스틱 사용 감축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는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바다와 인접된 해안둘레길과 방파제 주변 곳곳에 파도로 떠밀려온 폐어구나 해양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활동까지 실시하며 ‘바다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펼치는 이들은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단원들과 가족들이다. 지난 2022년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한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은 포항의 천혜의 절경을 갖춘 204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환경정화와 해양환경 보호, 바다사랑 캠페인 활동 등으로 꾸준한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18년만에 지난 7월 재개장한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비롯 영일대해수욕장과 월포ㆍ화진ㆍ도구ㆍ구룡포 등 6개 지정 해수욕장이 있는 포항은 한 해 평균 400만 명의 전국 피서객이 몰리는 ‘국민 휴양지’인데, 그에 걸맞게 해양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봉사단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포항의 영일만관광특구 일원이 최근 해양수산부로부터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사업 대상지로 선정, 동해안 해양관광의 새 시대를 열 기반이 마련돼 그 어느 때보다도 해양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젖는 찜통더위에도 이열치열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꾸고 지켜가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의 작은 손길이 전국 관광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