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fandom) 정치’가 뉴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확증편향에 갇힌 강성 당원들이 공당(公黨)의 공론장을 지배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화 된 팬덤’의 독선이 문제다. 정치인들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팬덤을 이용하려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팬덤 정치는 왜 위험한가? 비이성적 팬덤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팬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도덕적 절대주의자’이다. 오직 자신만 ‘깨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성찰과 반성은 ‘도덕적 열정’의 방해물로 간주한다. 정의의 기준은 ‘이적(利敵)행위’ 여부에 있으며, 적을 이롭게 하면 악이고 적에게 타격을 주면 정의라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견(異見)은 허용되지 않으며, 견해를 달리하면 ‘배신자’ 낙인을 씌우거나 ‘좌표 찍기’를 하는 등 집단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 팬덤들은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증오와 혐오’를 먹고 산다. 팬덤의 속성인 도덕적 절대주의, 편 가르기, 성찰 없는 확증편향 등은 이성적 토론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정면충돌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게다가 소명의식을 망각한 정치인들은 팬덤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가 하면, 극단적 정치유튜버들은 악성 팬덤에 편승해서 돈벌이에 급급하고 있어서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정치’가 ‘개인적·영리적 목적의 전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팬덤 정치를 끝내려면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각성이 시급하다. 정치인들은 팬덤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당권, 공천 등)을 추구하다가 어느덧 팬덤의 노예가 되어버린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루소(Jean J. Rousseau)가 “좋은 정치는 좋은 시민을 만들고, 사나운 정치는 사나운 시민을 만든다.”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이 균형감각을 상실하면 공동체를 이끌어갈 판단력을 잃게 된다. 정치인은 팬덤의 극단적 선동정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하며, ‘팬심’(팬덤의 마음)이 아니라 ‘민심’(국민의 마음)을 받들어야 한다.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양 극단의 ‘시끄러운 팬덤’이 아니라 ‘조용한 중도층’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편 주권자인 국민의 각성도 절실하다.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깨어있는 시민’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은 ‘보편적 정의’와 ‘선택적 정의’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며, 편향적 진영논리나 양극화 정치의 유혹, 그리고 확증편향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 깨어있는 시민은 정치현상을 ‘감정적 편향’이 아니라 ‘이성적 균형’으로 판단해야 하며, 강성 팬덤들의 공격에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하고, 주권자는 주권자다워야 한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