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세계 최고의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정치수준은 낙제점이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고효율의 정치’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극심한 정쟁을 하면서도 자기들 이익을 위해 야합하는 표리부동한 정치행태를 보라. 특권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국민의 공복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은 특권 폐지의 당위성을 말해준다.
국회의원 특권의 무엇이,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첫째, 특권·특혜가 너무 많아서 권력이 봉사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불체포특권·면책특권에다가 연봉 1억6000만원, 명절휴가비 850만원, 입법·특별활동비, 유류비·차량유지비, KTX 특실과 비행기 비즈니스석 제공, 연 2회 해외시찰, 9명의 보좌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180여 가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한국보다 부유한 프랑스·독일·스웨덴·일본 등 정치선진국들보다도 특혜가 더 많으니 어이가 없다.
정치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정치를 ‘봉사와 희생의 직업’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직업’으로 인식하느냐에 있다. 전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보좌관 없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후자는 보좌관이나 비서에게 시켜놓고 전용승용차로 경조사 다니면서 폼을 잡는다. 정치선진국은 의원 보수를 외부 독립기관에서 결정(영국·스웨덴·캐나다)하거나, 경제지수와 공무원 보수액에 연동해서 결정(미국·독일·프랑스)하는데 반해, 한국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아닌가.
둘째, 특권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한국정치가 정상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권 자체가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특권·특혜가 많을수록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민의 공복이 되기 어렵다. 특권을 잡기 위해 정상배(政商輩)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고, 권력에 줄서는 정실주의 정치가 만연한다.
특권을 폐지해야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치꾼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정치인들이 정도정치를 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카르텔을 해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한국정치발전의 길이다.
셋째, 국회의원들이 특권 폐지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그들에게 특권 폐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2023년 국회의원들에게 등기우편으로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총 300명 중 6명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모두 응답을 거부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선거 때만 특권 폐지를 약속하는 그들에게 맡겨두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니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민이 특권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특권에 취한 그들은 절대로 깨어나지 않는다. 주인(국민)이 언제까지 머슴(국회의원)에게 농락당하고 살 것인가. 주인이 현명해야 머슴을 잘 부릴 수 있다.
202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