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헌법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자유와 경쟁의 정신, 그리고 공화주의의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함께 존중해야한다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화’에 치중한 나머지 ‘공화주의’ 가치를 경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공화정신이 없는 민주공화국은 허울뿐이다. 정치는 전쟁이 되었고,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대립이 극심하다. 다수의 횡포가 벌어지는 민주주의는 소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공성을 중시하는 공화주의와 함께해야 한다. 공화주의가 요구하는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즉 ‘관용과 절제의 정신’이 다수결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현실을 보라. 공화정신의 실종으로 나라는 온통 싸움판이다. 국가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은 야당을 외면하고,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다수의 폭정’을 서슴지 않는다. ‘나’와 ‘내편’은 있으나 ‘우리’가 없는 증오·배제·독선의 정치는 민주공화정에 대한 배신이다.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한 법치·공공성·시민적 덕성과 같은 공화정신은 없고 이념·진영·지역·세대·성별 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
이러한 공동체 위기가 다시 공화주의를 불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야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공화정신이다. ‘더불어’는 없고 ‘친명’만 있는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국민’은 안중에 없고 ‘용산’ 눈치만 보는 국민의힘은 모두 환골탈태해야 한다. 공동선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할 권력이 개인적·정파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고 있다. 공공성을 잃은 권력의 독선은 공화국의 적이다. 따라서 여야는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협력자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가지고 소통·공존·통합의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
한편 주권자인 시민의 책임도 무겁다. 공화국의 시민은 권력의 ‘수동적 통치대상으로서 친애하는 국민’ 아니라 정치의 ‘능동적 주체로서의 동료 시민’이다. 진영정치에 예속된 신민(臣民)은 자유의지를 가진 공화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 시민이 진영정치의 볼모가 되면 민주공화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는 ‘시민의 덕성’과 ‘신뢰의 윤리’가 없으면 공화국은 위기에 처한다고 했다. 시민의 자유의지와 덕성, 책임감과 균형감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천박한 ‘중우정치(mobocracy)’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화를 넘어 공존·공생·공영을 위한 ‘공화의 길’을 가야 한다. ‘너와 내가 함께하여 우리가 되는 공화정신’이 있어야 죽어가는 나라를 살릴 수 있다.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좌우 극단주의자들의 선동을 배격하고 합리적 중도주의자들의 지적·도덕적·정치적 노력에 성원을 보내야 한다. ‘민주’와 ‘공화’가 동행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