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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독선 그리고 민주주의

등록일 2025-02-03 20:00 게재일 2025-0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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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를 흔히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고 한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잘 갖추어졌으나 다수 국민의 ‘이기적·극단적 정치의식’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 붕괴와 히틀러(A. Hitler)의 국가사회주의 출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가? 정치인과 국민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민주주의 보루인 언론과 사법부는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불행하게도 진영정치와 여야의 극한 대결, 증오와 적대의 광장정치, 언론의 진영화, 사법의 정치화, 시위대의 법원 난동 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독선에 빠진 신념의 양극화’이다. 보수와 진보는 정치사회문제를 인식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진영정치에 매몰된 극단주의자들은 사이비종교의 광신도처럼 행동한다. ‘정치의 종교화’는 ‘정치적 신앙인’을 낳고 맹신(盲信)을 부추긴다. 고야(F. Goya)가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고 했듯이, ‘광신’이 ‘이성’을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신념’과 ‘독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간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신념의 절대화’가 독선이다. 나에게는 신념이지만 남에게는 독선이 될 수 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은 배타적 흑백론이다. 나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의 신념을 배척하는 것이 바로 독선이다. ‘생각의 차이’를 통일하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주의는 서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랫(D. Ziblatt)은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라고 하면서 ‘나는 선, 너는 악’이라는 ‘감정의 양극화’, 즉 독선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고 했다.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규범인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위해서는 신념이 극단화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늘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타인의 견해를 존중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신적 유연성’과 ‘균형감’이 중요한 까닭이다.

‘극단’과 ‘광기’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반지성주의를 선동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독선의 광풍’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독선에 빠진 ‘광신과 광신의 충돌’이다. 문재인 정권도, 그리고 윤석열 정권도 ‘독선에 빠진 신념정치’로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두 정권은 똑같이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는 ‘나의 신념’을 강변하기 전에 먼저 ‘나의 독선’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흑백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색의 농도’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흑백의 순수성’을 고집하지 않고 ‘회색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꽃피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민주공화국’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공화(共和)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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