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이중권력 충돌은 결국 비상계엄 발동, 대통령 탄핵소추 및 파면으로 끝났다. 정치의 이상은 권력투쟁의 현실 앞에 무력하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권교체’보다 ‘정치교체’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정치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문가·언론·시민사회의 의견이 대체로 수렴되고 있다. 기존의 ‘공급자(정치인)중심 정치’를 ‘소비자(국민)중심 정치’로,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는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또는 4년 중임제로, 그리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사표(死票)를 줄이고 승자독식 정치문화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양당제는 협치를 제약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제3지대 정당의 참여기회를 확대하자는 데에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개혁이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개혁을 주도해야할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고,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정치인들이 개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약속했던 개혁을 시늉만 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다. 말로는 민심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당파적·개인적 이익에 혈안이었다. ‘개혁 주체’가 되어야 할 정치인들이 ‘개혁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정치제도의 개혁’은 ‘정치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투철한 민주주의 가치관, 도덕성, 그리고 정치적 소명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인들의 언행불일치와 표리부동, 전쟁 같은 적대정치,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 행태 등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이기 때문에 올곧은 정신이 없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탐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야는 서로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개혁주체’이고 ‘상대는 개혁대상’이라고 코미디를 연출한다. 자신은 바뀌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오만과 독선이다. 적대적 공존관계 속에서 정치적 이익을 챙겨온 그들에게 성찰과 반성,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채찍을 들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 지식인·언론·시민사회가 여야에 대한 공정한 심판자로서 정치개혁 추동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식인과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통해서, 그리고 시민사회는 정치혁신운동을 통해서 정치인들이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강력한 비판과 압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치의 질이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