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상징되는 ‘트럼피즘(Trumpism)’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에게도 엄청난 비용청구서를 내미는 트럼프 외교를 가치동맹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국익’을 중시하는 ‘비즈니스 외교’의 실체를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피즘은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이 판치는 정글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는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를 규정한다고 주장하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J. Sachs)가 “트럼프 외교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은 비즈니스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동맹국도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우선주의·거래주의·보호무역주의로 구성된 트럼피즘이 미국의 이익을 약탈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외교전략 변화가 필요한데, 기존의 ‘가치외교’를 트럼피즘에 대처할 수 있는 ‘실용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철저한 거래주의자에게 가치동맹국으로서 읍소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을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국익 증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요구하는 무역균형과 방위비 증액을 피할 수 없다면 협상을 통해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 그 구체적 카드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특히 향후 예상되는 북미협상에서 우리의 국익이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을 우려하지만, 우리의 위협요인은 단거리 핵전력이다. 만약 미국이 ICBM 제거를 대가로 북핵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거나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는 핵재처리 허용 및 자체핵무장 카드를 제시하는 한편, 한·중 및 한·EU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대미협상력을 제고해야 한다.
한편 대내적 차원에서는 자체방위력 강화가 시급하다. 트럼프는 “미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긴급유럽정상회의에서 자체 핵확산억제력 제공을 위한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제시했고, 차기 독일총리후보 메르츠(J. Merz)는 “독자적 유럽방위체제를 신속히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은 대서양동맹의 와해에 대비하여 재무장을 서두르는데,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가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가 트럼프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한미동맹의 미래도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 정글의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강력한 힘이다. 유럽이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성을 낮추고 자체방위력을 강화하듯이, 우리도 동맹의존도를 낮추고 자체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우방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