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은 흔히 ‘춘풍추상(春風秋霜·타인에게는 부드럽게, 나에게는 엄격하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행태를 보인다. ‘춘풍추상’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렵고, ‘내로남불’은 남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을 반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민주당의 경우 문재인정부가 약속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내로남불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이 비서들에게 선물한 ‘춘풍추상 액자’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지금도 대장동사건을 비롯한 각종 의혹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 돈 봉투 선거로 수사 중에 있는 송영길 전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 청년들을 기만한 김남국 의원의 ‘코인의혹사건’ 등 그 어디에서도 춘풍추상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내로남불을 타파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도 선택적이었다. 아·가·패(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패밀리)정부이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은 ‘인적 편향성’을 말해준다. 편향성은 공정성을 해치는 주범이다. 당대표를 제거하기 위해서 ‘체리따봉’ 문자를 보냈고, 당대표 선거에 개입하여 당내민주주의를 훼손했다. ‘민심’과 ‘당심’ 위에 군림한 ‘윤심’은 결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이처럼 여야의 정치행태는 모두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상대에게는 혹독하다. 의회권력을 가진 민주당은 입법독주를 하고, 집행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 책임은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니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위해 행사되어야함을 망각한 까닭이다.여야는 이분법적 흑백론을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흑백론이 아니라 회색론’이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중간적 존재’인데 서로가 ‘나는 천사고 당신은 악마’라고 우긴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그 누구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종이 도덕정치를 역설한 조광조에게 내린 죄목은 “뜻이 맞는 자들하고만 어울리고 맞지 않으면 배척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군자’, 반대파는 ‘소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으니 위선자로 본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 이중기준이 허용되는 것은 내로남불이 아니라 춘풍추상이다. 남에게 관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정적(政敵) 아이아스(Aias)의 명예를 회복해줌으로써 양분위기에 있던 그리스 군을 통합할 수 있었고, 엄격한 자기절제로 바다요정 칼립소(Calypso)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춘풍추상의 리더’를 만날 수 있을까?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