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의대 광풍의 그림자

등록일 2023-07-10 19:18 게재일 2023-07-11 19면
스크랩버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의대 광풍(狂風)이 거세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작된 ‘초등생 의대 진학반’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을 이끌어야 할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휴학·자퇴·재수를 서슴지 않는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의 재학생 중 매년 200여 명이 자퇴 후 상당수가 의대에 가고 있다.

이러한 ‘의대 블랙홀’은 심각한 문제이며 원인 분석과 대책이 시급하다. 의대 광풍의 원인은 무엇보다 고소득·안정성에 있다. 공대는 SKY대라도 취업이 쉽지 않지만, 의대는 지방대라도 취업 걱정은 없다. 공대는 고소득자가 되려면 석·박사가 필수지만, 의대는 비인기전공이라도 고소득이 보장된다. 특혜나 다름없는 의사면허증이 사회의 공정성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의대 광풍에도 의사가 없다”는 아우성은 ‘불편한 진실’이다. 의사들이 힘들고 위험한 필수진료과(외과·내과·소아과·산부인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피부과·성형외과·이비인후과)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 한 종합병원은 연봉 10억을 제시했는데도 심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신입생 증원,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 등을 반대하고 있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인질로 삼아 파업도 불사함으로써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물론 존경받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봉사하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장기려 박사, 94세 임종하는 그 순간까지 소외된 환자들을 보살폈던 한원주 원장과 같은 ‘한국의 슈바이처들’이 지금도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덕분에 의사들이 존경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의사들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우리는 의대 광풍에서 ‘빛’이 되어야 할 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의사가 존경받으려면 돈과 명예가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는 성직자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필수진료과를 기피하고 돈이 되는 전공에 몰리는 의사들의 행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의대 광풍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정부는 의사들의 파업에 굴복하여 18년째 동결된 정원(3천58명)을 대폭 확충하여 붕괴된 필수의료체제를 조속히 복구해야 한다. 기득권이 강화되어 특권층이 되어버린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사는 생명을 맡긴 환자의 믿음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는 전문성 못지않게 소명의식이 중요한 이유다.

의사의 행복과 소명의식은 적성과 자질에서 나온다. 고소득과 명예에 현혹되어 의대 광풍에 휘둘리는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불행을 초래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권유로 2015년 명문 Y대 의대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 올해 초 자퇴하고 다시 J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B군의 사례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보는 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