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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도청 그리고 외교

등록일 2023-05-08 18:56 게재일 2023-05-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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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동맹국을 도청한 나라의 ‘국빈 자격’ 방문외교라는 ‘이 웃픈 현상’은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맹·도청·외교’의 공통점은 모두가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동맹’과 ‘외교’는 합법적이고 ‘도청’은 불법적이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외교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실효적 대응, 중국 및 러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한 한미공조, 반도체법과 인플레감축법(IRA)의 해결, 도청의 재발방지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 중대현안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국익이 충돌하고 힘의 우열이 존재하는 외교협상에서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오직 동맹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이다.

물론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핵협의그룹(NCG)’ 신설에 합의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인 것은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반도체법과 IRA는 해결하지 못했고, 미국에 밀착됨으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더욱 악화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전략적 문제점 및 협상결과에서 비롯되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그 대책을 면밀히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의 도청을 ‘외교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실책이었다.

NBC 앵커의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철통같은 신뢰를 흔들지 못한다”라고 답변함으로써 도청에 항의하는 대신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도청으로 민감한 국가기밀이 노출되었고 한·러 관계도 악화됐다. 그럼에도 주권국가로서 재발방지는 요구하지 않고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했다.

국익은 동맹국이 선의로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으로 내가 지키는 것이다.

한편 신설되는 NCG의 실효성 확보 역시 중요한 외교과제다. NCG 설립 자체가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NCG 출범으로 핵전력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의 차관보급 ‘확장억제협의체’보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핵사용 결정권은 전적으로 미국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발언권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향후 NCG의 구체적 운영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 제고에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동맹의 강화 및 확장에 따른 양면성’ 인식이 절실하다. 한미동맹은 강화되고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장됐다.

미국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우리외교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중국·러시아와의 이해관계 충돌은 한국외교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고난도 외교환경’이 ‘고난도 외교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와 보혁을 초월한 국가적 차원의 외교역량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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