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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열 후보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제1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정권교체 여론은 50%가 넘는데 윤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0∼40%선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윤 후보가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윤석열은 정치에 입문한지 이제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치신인이다. 살아 있는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저항정신은 높이 평가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아우성치는 국민의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윤 후보가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대권을 잡으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첫째, ‘권력불나방’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을 경계하면서 오직 ‘국민의 소리’만을 경청해야 한다. 선대위 출범이 늦었던 것도 윤 후보의 측근과 당대표 및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다툼 때문이었다. 미래 권력을 두고 벌이는 대선캠프에도 충신과 간신이 있다. 노회(老獪)한 정치꾼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에 혈안이 된 간신들의 요설(妖說)을 멀리하고 충신들의 고언을 경청해야 한다. 선대위 출범을 앞두고 내분이 극심했을 때 상임고문단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함으로써 가까스로 당이 화합할 수 있었다. 이제 윤 후보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혜안(慧眼)이다.둘째, ‘보수의 혁신’이 중도 확장의 첩경이자 대선 승리의 길임을 명심하라.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중도층과 2030’의 마음을 얻으려면 꼴통보수를 버리고 혁신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 윤 후보의 전두환과 5·18 관련 실언(失言)에서 입증되었듯이 극우세력에 휘둘리는 순간, 중도는 물론 다수 국민의 마음은 떠난다. 인재를 영입해서 ‘외적 이미지를 새롭게 포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수의 혁신을 통한 ‘내용의 실질적 변화’이다.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의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려면 보수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신인 윤석열’을 후보로 선택한 이유가 ‘보수혁신을 통한 정치혁신’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마지막으로 ‘국정의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정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기대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이미 죽은 권력이나 다름없는 ‘반(反)문재인’ 정서에 기대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윤 후보가 말하는 “국민을 위한 국가”,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공정한 세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윤 후보가 역설하는 정권심판론 보다 정권교체 이후의 새로운 삶에 더 관심이 크다. 김종인 위원장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실력 있는 정부가 국민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후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국민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 철학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2021-12-20

자원무기화 시대의 국가 전략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세계는 지금 자원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귀자원의 무기화는 경제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미·중 패권경쟁은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경쟁으로 확산됨으로써 자원무기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G2가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자원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일어난 요소수 파동은 우리가 강대국의 자원무기화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한국은 에너지의 96%, 광물자원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세계 4위의 자원 수입국이다. 특히 4차 산업의 핵심광물로 꼽히는 니켈·코발트·희토류 등을 거의 대부분(98%∼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원자재 수입을 시작으로 상품의 생산 및 수출로 이어지는 우리의 경제구조에서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국가전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우리의 자원안보전략은 국내 및 국제적 차원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자원강대국의 수출통제로 인한 전략품목의 공급망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를 구축해야 하며, 주요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 및 대체품 개발로 자급률을 시급히 제고시켜야 한다. 이번 요소수 사태에서 정부는 중국이 수출을 규제한지 3주가 지난 뒤에 비로소 대책회의를 열었을 정도로 자원안보에 둔감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원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생존과 직결된 안보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국제적 차원에서는 자원외교의 다변화와 해외자원개발이 절실하다. 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금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수입품목 1만2천586개 중 3천941 픔목(31.3%)이 중국·미국·일본 등 특정국가 의존도가 80%를 넘었으며, 이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이 1천850개로서 전체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실정이니 자원무기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일어난 중국의 요소수 수출통제는 한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의 일환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따라서 강대국의 자원무기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수입노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전략품목들은 가격경쟁력이라는 경제논리로만 다루어져서는 안 되며, 안전한 공급망의 확보라는 안보적 차원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해외자원 개발전략을 수립, 추진함으로써 필요한 자원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이 해외자원개발을 통해서 석유·가스·구리·아연 등의 자원 확보율을 크게 제고시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국제분업의 경제적 효율성만 추구한다면 자원 강국의 자원무기화로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으면서도 학습효과가 없었으니 2021년의 요소수 파동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역사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2021-12-06

스윙보터의 표심:공정과 실용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스윙보터(swing voter)’는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영논리에 갇힌 꼴통진보나 꼴통보수와는 달리,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분석, 평가함으로써 합리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다.내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스윙보터, 즉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어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여당의 이재명은 대장동게이트, 야당의 윤석열은 고발사주 의혹을 받고 있으며, 사생활 문제와 가족의 비리 등으로 지도자로서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 문화일보 보도(11월 2일)에 따르면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똑같이 60%를 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50%를 초과할 정도로 역대급이다.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스윙보터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념적으로 볼 때 ‘중도층’이며, 연령별로는 ‘2030세대’가 그 중심에 있다. 중도층과 2030의 표심이 같을수록 더욱 강력한 캐스팅 보트가 된다. 좌우의 극단층은 자기 진영의 후보를 선택한 후에 그 정당성을 합리화하지만, 중도층은 후보의 인품과 정책을 비교분석한 후에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특히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2030세대는 진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제든지 표심을 바꿀 수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생각 없는 극단층은 목소리가 커서 지지성향이 드러나지만, 침묵하는 부동층의 마음은 투표일까지 안개속이다. 정국을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면 스윙보터들의 표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과 ‘실용’, 즉 ‘공정한 과정’과 ‘실용적 결과’에 있다. 정의는 진영논리에 갇힌 ‘선택적 정의’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공정과 정의’를 선택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국민과의 약속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대장동게이트’이건 ‘고발사주의혹’이건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는 특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이나 공수처의 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한편 이들이 추구하는 ‘실용’은 특정 이념에 구속되지 않고 실질적 이익을 쫓는 정치행태를 말한다. 2030세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입시비리나 부동산 폭등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을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면 보수 또는 진보라는 정치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실용적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4·7 재보선의 승리를 통해서 실용적 투표가 갖는 위력을 확인한 바 있다.내년 대선은 ‘집토끼’보다 ‘산토끼’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경쟁구도이다. 때문에 스윙보터들, 즉 ‘2030세대와 중도층에 대한 확장성’ 여부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물론 승자는 이들이 추구하는 ‘공정’과 ‘실용’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메시지와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다.

2021-11-22

대장동게이트, 특검을 해야 하는 이유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제왕적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대선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이나 심판이 불공정하면 부정선거가 된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발화된 ‘대장동게이트’는 인화성이 높아서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때문에 권력게임에 참가하는 선수(후보)와 심판(검찰·법원)은 물론,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국민)의 관심이 뜨겁다.대장동게이트를 둘러싼 정치게임에서 후보와 국민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담보할 수 있는 심판, 즉 ‘특검’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장동게이트는 여당의 대선후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최종 결재권자로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시녀가 된 현재의 검찰로서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야당과 대다수 국민의 판단이기 때문이다.검찰에 대한 불신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수사책임을 맡고 있는 검찰총장 김오수는 임명되기 전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음이 밝혀졌고,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최종심을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개발 추진사업체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으며, 구속된 유동규는 이재명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법조계와 정치계 등 다수의 전·현직 권력들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범죄의 본거지인 성남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사 착수 22일 만에 이루어졌으니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준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이 졸속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니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부끄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권력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한 검찰의 편향성에다가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총장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으니 어떻게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권력 해바라기 검찰이 대선을 의식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이 이재명캠프의 서초동 지부라는 말을 듣게 생겼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최근 여론조사들은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리아정보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김오수 검찰의 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67.1%)이 신뢰(13.3%)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이재명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54.2%)이 ‘국힘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33.3%)보다 훨씬 많다. 때문에 특검의 수사에 대해서는 캐이스탯리서치(찬성 73%, 반대 21%), PNR(찬성 61,3%, 반대 28.9%), 한국리서치(찬성 63.9%, 반대 26.8%) 등 모든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2배∼3배 이상 많다.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과 국민의 여론인데, 이를 무시하고 대선을 강행하면 공정성이 문제된다.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재명 후보도 특검을 수용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만약 특검을 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면 대선에서 국민이 직접 후보자를 심판할 수밖에 없다.

2021-11-08

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독일의 위대한 정치지도자, 앙겔라 메르켈(Angela D. Merkel)은 최초의 여성·동독·과학자 출신 총리이자, 최연소(51세)·최장수(16년) 총리이며, 스스로 물러나는 최초의 총리다. 독일은 물론 각국의 언론·학자·정치인들이 “세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지도자”, “폭풍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정신적 지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등 그녀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이러한 존경과 박수는 어디에서 오는가? 메르켈이 독일과 유럽 그리고 세계에 커다란 업적과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독일경제의 회생과 정치적 양극화의 극복,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중재외교를 통한 EU의 안정화, 시리아 난민문제의 해결 등 내정과 외교의 성공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이른바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티 리더십의 실체를 분석해보면 ‘합리·실용·신중·중재·포용·통합·행동’ 등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메르켈의 신중함은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이끌어낸 힘의 원천이었다. 과학자로서 합리주의는 이슈를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다루고, 그 대책을 합리적으로 모색케 했다. 독일 보건장관 슈판(J. Spahn)은 “메르켈이 과학자처럼 일한다.”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선입견을 갖지 않음을 말한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신뢰, 열린 토론, 예측가능성은 과학자로서의 ‘합리적 규범’이 정치에 투영된 것이었다.무티 리더십은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며, 개혁과 통합의 열린 정치를 추구한다. 메르켈은 중재와 협력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대연정(大聯政)을 세 차례나 성공시킨 ‘협치(協治)의 달인’으로서,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였던 독일정치를 혁신하였다. 이를 두고 영국의 포트러프(M. Qvortrup) 교수는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 정책 토론장으로 바꾸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말보다는 결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 메르켈의 실용적 리더십이 가져온 결과였다.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는 매우 크다. 베버(M. Weber)는 “민주주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라고 했다.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에 철저했던 메르켈수상’과 자신의 ‘신념윤리에 매몰되었던 문 대통령’의 행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야당과의 관계에서 메르켈은 ‘정책토론’으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공방’으로 허송세월했다. 메르켈은 포용력을 발휘하여 ‘행동으로 협치’를 증명하였으나 문 대통령은 ‘말로만 협치’를 외쳤을 뿐이다. 독일은 메르켈의 합리적·실용적·포용적 리더십으로 국론분열이 가장 적은 민주국가로 발전한 반면, 우리는 대통령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리더십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무지와 편협의 장벽을 허물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메르켈의 설파는 외눈박이 진영정치에 갇힌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2021-10-25

권력의 가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권력의 가을’은 ‘자연의 가을’을 닮았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 제왕적 권력도 힘을 잃는 시기다. 현직 대통령의 말보다 차기 대권주자의 말에 더 큰 힘이 실린다. ‘레임 덕(lame duck)’현상은 권력에 가을이 왔다는 증표다. ‘가을이 온 권력’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을 준비해야 한다.박근혜 정부에게 “이게 나라냐”고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건 또 나라냐”고 비판받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마약 같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사요 당신은 악마’라는 오만과 독선이 실정(失政)을 자초했다. 죽은 권력을 적폐로 몰아 청산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은 더 심각한 신 적폐를 양산했다.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권력을 자신의 관점에서 심판했기 때문이다.권력에도 가을이 오면 곧 닥칠 겨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망명·피살·자살·수감 등은 권력의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말해준다. 겨울을 대비해서 어떤 대통령은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강구했고, 또 다른 대통령은 측근을 여러 요직에 심어두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권력은 하산(下山)과 동시에 그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죽은 권력의 잘못을 묵인하는 것은 권력정치의 속성상 불가능하다.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하산 길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상에 오를 때 도와주던 측근들이 하산 길에는 이미 유력 주자의 대선캠프로 떠났다. 정권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었던 ‘문빠’와 ‘대깨문’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국민에게 약속한 수많은 공약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국론분열과 부동산 폭등 속에서 혼자 하산해야 한다. 임기제 권력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외롭고 힘든 하산 길이다.이제 권력에도 가을이 왔으니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소멸의 쓸쓸함을 깨달음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떨어진 낙엽이 후세를 위한 밑거름이 되듯이, 권력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 문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운동권정치의 진영논리와 내로남불, 갈라치기와 흑백논리를 버리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에 협조하고 협치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권력은 살아있을 때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면 권좌에서 내려온 후에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권력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기 성찰에 기초해야 한다. 권력에 취하고 고루한 신념에 갇혀서 생각을 안 하면 성찰이 없고, 성찰이 없으면 체면과 부끄러움을 모른다. 대통령이 행사한 권력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권력을 위한 것이다. 지금 ‘권력의 봄’을 향해 끝없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 ‘철부지 대선주자들’에게 ‘권력의 가을’도 생각하면서 겸손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어야 한다.

2021-09-27

아프간의 비극이 한국에 주는 교훈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아프간의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됐다. 시민들은 패닉에 빠져 공항으로 달려갔고, 아수라장이 된 군중 속에서 두 살 아기는 압사하고,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던 청년들은 모두 추락사했다. “아기라도 살려 달라”고 철조망 위로 자식을 건네는 엄마의 모습이 눈물겹다. 게다가 IS의 자폭테러로 수백 명이 사상했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된 카불의 비극이다.누구를 탓하랴.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허울뿐인 30만 정부군이 6만 탈레반에게 백기 투항했다. 결사 항전하겠다던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참모들과 함께 해외로 도주했고, 그의 동생은 탈레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대통령부터 콩가루 집안인데 누가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는가?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정부가 미래를 결정할 기회를 줬는데도 그들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 이유다.아프간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현실주의 안보전략이다. 국제정치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안보의 최선은 ‘자신의 힘’이며, 차선은 ‘동맹의 힘’이다. 하지만 동맹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줄 뿐이다. 바이든은 “아프간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고 하면서 “국익이 없는 곳에 계속 머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록 동맹이라도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거나, 동맹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한미동맹도 ‘미국우선주의’와 충돌되지 않도록 잘 관리되어야 한다.나아가 정치지도자에게는 ‘솔선수범’의 교훈을 준다. 전시에 영국은 지도층이 제일 먼저 전장으로 달려갔지만, 아프간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도망갔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어떤가?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내로남불’과 ‘흑백논리’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망국의 길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되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지도자 자격이 있는가? 여당의 전 대표가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한 궤변을 보면 ‘솔선수범’이 무엇인지를 알 리가 없다.국민에게 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민주공화국의 흥망은 권력 주체인 국민에게 달려있다. 도산 안창호는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바로 나 자신”이라고 했다. 확고한 주인의식의 발로다. 국민이 항상 깨어 있어야 아프간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은 자유의 향유에 수반하는 국민의 책임과 희생을 일깨워 준다.아프간의 비극은 1975년 베트남 비극과 판박이다. 두 나라는 똑 같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미군이 철수하자 붕괴했다. 6·25때 흥남철수와 카불의 난민철수도 다르지 않다.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평화협정과 미군철수의 의도가 이제 명백해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오늘의 비극은 어제의 역사를 망각한 대가다. 우리의 내일을 위해 아프간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21-09-06

대선 주자들, ‘부동산 블루’에 응답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부동산공화국에 살고 있는 서민들은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되었다. 손 놓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영끌’과 ‘빚투’로 집을 샀지만, ‘빚 폭탄’을 안고 있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청춘들은 평생 빚 갚다가 인생 끝나게 되었으니 ‘이생망’이라고 한탄한다. ‘부동산 블루(우울증)’가 덮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나라꼴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무능한 정권의 오판과 오기가 주범이다. 집값 잡는다고 26차례나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모두가 ‘사람 잡는 실책들’이었다. 인간본성과 시장논리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처방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정권이 저질러놓은 잘못은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대출상환의 부담 때문에 출산까지 미루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가상화폐와 같은 투전판에 뛰어들어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 매입문제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까지 벌어졌다.온 나라가 부동산 블루를 앓고 있으니 대선의 최대 이슈는 집값 안정이다. 하지만 후보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고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가 문제라고 진단하는 후보는 공급확대와 세금완화를 주장하고, 투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후보는 투기규제와 세금강화를 역설한다. 이는 프리드먼(M. Friedman)이 지적한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현상이다. 부동산 정책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급격하게 냉·온탕(규제와 공급)을 반복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이제는 정치지도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부동산을 많이 가진 것이 고통이 되게 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부동산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이념문제가 아니다. 후보들은 각자의 대책을 제시하고 상호검증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특히 집값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이슈, 즉 ‘공급확대’와 ‘투기규제’ 그리고 ‘지방발전’이 정책경쟁의 핵심이다.공급확대와 투기규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공급확대는 부지확보와 재원조달방안이 핵심이며, 투기규제는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후보들은 투기규제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보유세 인상’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한다. 또한 공급확대는 지방발전과 연계되어 있으며,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주택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 서울공화국을 해체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을 지방 거점도시로 분산시켜야 한다. 대선 주자들이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하여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을 회피하면서 부동산 블루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부동산공화국은 ‘존재가치’가 아니라 ‘소유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다. ‘꿈’을 쫓는 사람은 어리석고 ‘돈’을 쫓는 사람이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이 부동산 광풍(狂風)의 나라에 정말로 희망은 없는가?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이 엄중한 물음에 반드시 분명한 응답이 있어야 한다.

2021-08-23

과학방역인가, 정치방역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방역은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다. 정치가 과학을 지배, 통제하면 방역은 실패한다. 인간은 정치권력을 두려워하지만 바이러스는 영국 수상도 감염시켰다. 과학이 말해주는 방역에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물론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중요하다. 외교를 통해서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여 조기에 집단면역을 달성하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델타 변이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집합금지와 제한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성공적인 방역은 정치와 과학의 유기적 협력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 과학을 지원하는 과학방역’인가, 아니면 ‘정치가 과학을 통제, 악용하는 정치방역’인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은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감염의 위험이 크고 바이러스 변이가 거듭될수록 정치적 판단을 삼가고 과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와 의료인들의 변이바이러스 확산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역을 완화함으로써 4차 대유행을 촉발시켰다. 당황한 정부는 방역을 최고단계로 높이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된 정치적 판단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 전형적인 정치방역이었다.방역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방역기획관에 코드 인사를 강행함으로써 정치방역의 의혹은 더욱 커졌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국립암센터의 기모란 교수(암관리학)를 임명한 것은 코로나 방역이 아니라 청와대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기 교수는 청와대 입성 전부터 정부가 의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역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방어했던 정치교수(polifessor)였다. 컨트롤타워가 정치성이 강하면 ‘사실(fact)’에 입각한 과학방역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최선의 방역은 신뢰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차별적 영업제한이나 형평성을 상실한 방역조치는 신뢰를 떨어뜨린다. 보수단체의 집회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진보단체에 대해서는 소극적 대응을 하는 것은 정치방역이다. 시민들의 인내와 희생으로 이루어낸 K방역의 성과를 정권홍보에 이용하는 정치방역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문 대통령이 교회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대통령 자신도 “방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좌우하는 방역만큼은 정치논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정치가 방역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백신확보와 민생지원이다. 이스라엘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여 이미 ‘부스터 샷(3차 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1, 2차 접종도 지지부진하다. 국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는데 국정을 책임진 정권이 대선 승리에 혈안이 되어 정치방역을 해서야 되겠는가?

2021-08-09

진흙탕 대선레이스, 국민이 두 눈 부릅떠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의 고질병이 재발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건전한 후보검증이 아니라 폭로와 인신공격, 중상모략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 대선레이스가 ‘아사리판’이다.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정책경쟁은 하지 않고, 자극적이며 천박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여당후보는 유력한 야권후보 부인이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이른바 ‘쥴리’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어떤 후보는 국민이 지켜보는 토론회에서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한다. 혐오스런 저질 흥신소의 수준이 바로 지금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대통령하겠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게다가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포퓰리즘(populism)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권자들을 속였다.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한 그가 바로 두 얼굴을 가진 악마였다.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한 정권의 말을 믿었던 서민들은 ‘벼락거지’가 되고 말았다. 오직 대권을 잡기 위한 ‘권력에의 의지’만 있을 뿐, 국민의 힘든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합리적 대책은 없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표리부동한 정치꾼들의 이중성이다.이처럼 대통령에게 줄곧 속고 살아 왔으니 이번에는 또 누구에게, 어떤 거짓말에 속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후보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다. 교활한 정치꾼들의 행태에 실망해서 정치적 관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정치의 반동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의 선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렇다면 대선레이스를 펼치는 후보들의 무엇을, 어떻게 체크할 것인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한 비전, 소통능력, 위기관리능력, 현명한 인사정책, 고결한 인품’ 등이다. 대통령은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처하면서 당면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정수행능력이 있어야 하며, 국가원수로서 품격도 갖추어야 한다. 유권자들은 ‘입만 살아 있는 무능한 후보’나 ‘천박한 저질 후보’는 반드시 탈락시켜야 한다. 국가미래연구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2021 대한민국 시대정신’은 ‘공정·정의·안전’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레이스를 통하여 기회와 노력에 대한 공정, 범죄·비리에 엄정, 질병·범죄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정신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이를 위해 우리는 대선레이스의 예선 및 본선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주권자의 힘과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각 정당은 후보경선에 당원여론(당심)과 국민여론(민심)을 함께 반영한다. 예선에서 왜곡된 당심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민심일 뿐만 아니라, 본선에서의 최종 승자도 역시 민심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현명하고 올바른 판단력이다. ‘국민의 질이 정부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2021-07-26

대통령 후보들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후보들이 출마의 변에서 말하는 공정과 정의, 화합과 통합, 자유와 민주 등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였다.대통령이 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변하니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었다. 정의는 대통령 입맛에 맞는 ‘선택적 정의’였고, 민주는 ‘다수의 독재’로 변질되었으며, 통합은 내편의 결집에만 관심을 두었으니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 그러니 국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에게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전임자들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수행 능력’과 ‘높은 도덕성’인데,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첫째, 국정철학과 시대정신이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후보들은 집값·청년실업·불공정 등과 같은 당면과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시대가 바뀌었음을 깨닫고 미래 가치를 위해 변화와 혁신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산업화·민주화시대에 갇혀있는 후보는 이미 흘러간 옛 노래만 부른다.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국민을 지도하지 못하면 반대로 국민이 대통령을 지도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둘째, 권력의 오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이 대통령을 망친다.”는 ‘권력의 역설(power paradox)’을 명심하라. 권력은 마약과 같다. 권력에 취하면 자기통제와 자기감시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의 주변에는 목숨 걸고 직언하는 충신은 없고 권력을 쫓아다니는 불나방들만 우굴 거린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통령의 독선을 바로잡아 줄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절실하다. 후보들은 그의 비판적 역할을 법적·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셋째,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라.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표리부동(表裏不同)과 언행불일치 때문이었다. 정치지도자의 생명은 ‘신뢰’다.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국민을 속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신뢰를 잃은 권력은 국정의 동력을 잃게 된다. 후보들은 당선을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대통령은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 내로남불과 아전인수(我田引水)는 당신들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특정 이념에 갇혀 진영논리를 펴는 사람이 어떻게 ‘대화와 타협이 원칙인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지역·이념·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한 우리의 경우, 대통령의 확증편향은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균형·통합의 정치철학’이 확고히 내면화되어 있어야 한다.

2021-07-12

이준석의 혁신정치가 성공하려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보수’가 ‘혁신보수’의 역동적 이미지로 변신했다. 여야 구태정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당에서 먼저 폭발했기 때문이다. 36세의 정치신예, 이준석의 당선은 변화를 열망하는 민심(民心)이 당심(黨心)을 추동한 정치혁명이었다. 졸지에 ‘꼰대진보’로 내몰린 여당은 야당에 뒤질세라 ‘혁신경쟁’에 나서고 있다.이준석의 혁신정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는 대표수락연설에서 “공존·공정·혁신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문제해결중심의 국민정당으로 발전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성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한 것이다. 당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변화와 자강(自强)’을 주문했다. 지하철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모습은 탈권위, 실용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가 당선된 이후 당원 가입이 평소보다 10배나 상승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말해주는 것이다.반면에 이준석 대표의 경험부족과 젊은 혈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가 제시한 반페미니즘은 남녀 갈라치기라는 공격을 받고, 능력지상주의는 보수가치의 퇴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후보 인선에 적용하겠다는 자격시험이나 토론배틀은 정치적 흥행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 체질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 노회(老獪)한 보수꼴통들의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허물고 당을 혁신할 수 있는 리더십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당의 ‘혁신과 통합’이라는 상충되는 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신보수와 꼰대보수의 분열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이준석의 혁신정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대표의 올바른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당선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세대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당을 혁신하는 한편, 당 밖의 유력 대권주자들을 영입하고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야권후보 지지율 선두에 있는 윤석열의 영입에 실패할 경우, 당은 균열될 것이고 이준석체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당 안팎의 비판과 고언(苦言)을 경청하고 자기성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혁신정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당 중진들의 역할과 책임도 무겁다. 중진들은 경륜과 지혜로서 젊은 대표의 강점은 밀어주고 약점은 보완해주어야 한다. 권력의 이해관계로 혁신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중진들이 먼저 낡은 사고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열망, 특히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2030세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혁신에 부응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라.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중진들이 2030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2021-06-28

문재인 정권,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촛불의 이름으로 공정과 정의를 역설했고, 통합과 협치를 선언했으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공정과 정의는 무너졌고, 나라는 완전히 두 동강 났으며, 국민은 ‘이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다.이처럼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권이 ‘집단사고(groupthink)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집단사고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다양한 의견들을 억압하여 획일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말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현 정권은 ‘코드인사’로 일관했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관급만 33명이나 임명을 강행했다. 동종교배(同種交配)적 인사는 필연적으로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한다.여당 내에서 정부정책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즉시 ‘문빠’와 ‘대깨문’의 집중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공천에서 탈락시킨다. ‘민주 없는 민주당’에서 당내민주주의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예스맨(yes man)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집단사고의 오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정책결정과정에서 집단사고의 응집력은 ‘양날의 칼’이다. 응집력이 강하면 집단 내부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만,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독단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먼저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권력을 통제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책결정과정에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는 것이다. 그는 항상 반대편에 서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여 토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비판자 역할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집단사고의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 기능을 살릴 수도 있고 형해화(形骸化)시킬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권력의 집중과 집단사고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원천’이었음을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가 증명하고 있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집단사고의 늪에 빠지는 순간, 대통령은 독재의 길을 가게 되고, 그 길의 끝에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집단의 도덕성과 완전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한편, 집단 밖의 의미 있는 비판들을 경청하는 것이 민주적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확증편향과 진영논리에 갇히면 집단사고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21-06-14

꼰대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꼰대공화국에서 ‘왕 꼰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참가 자격은 ‘꼰대력 테스트’에서 최고 수준인 5등급을 통과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늙은 꼰대와 젊은 꼰대, 보수 꼰대와 진보 꼰대, 남성 꼰대와 여성 꼰대 등 각양각색이다. ‘꼴통꼰대’들의 치열한 경연이다 보니 영국 BBC가 보도할 정도다. 한국의 꼰대가 세계로 수출(?)되었으니 참 가관이다.꼰대란 어떤 사람인가? 국립국어원은 “늙은이를 이르는 은어”라고 했지만, 이제는 ‘젊은 꼰대’의 등장으로 “권위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고루한 사람”을 통칭하고 있다. BBC에서는 ‘꼰대(Kkondae)’를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연장자”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꼰대는 ‘구태의연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타인에게 강요, 즉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다.꼰대공화국은 ‘말로만 민주주의체제’다. 유교문화·군사정권·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서열을 중시하는 집단주의가 견고해졌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주의 의식은 ‘나’의 존재를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확장과 함께 성장한 개인주의 세대는 그 울타리를 탈출함으로써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주의와 ‘나’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다.토크빌(A. Tocqueville)이 “개인주의는 민주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민주주의 정신의 바탕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다.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도 개인이 진다는 것이다. ‘꼰대질’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다. 꼰대공화국에서는 대화와 토론은 없고 지시와 강요만 있을 뿐이다. 꼰대는 흑백논리에 입각해서 아군과 적군, 우파와 좌파로 양분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은 ‘선’이고 그 외는 ‘악’으로 간주한다. 꼰대들의 상투적 표현인 “나 때는 말이야….”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심과 우월의식이 상대방의 의견·능력·존재를 모두 부정한다. 개인주의는 타자(他者)를 수용하지만, 이기주의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을 격화시킨다.꼰대는 시대에 뒤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의 작은 경험을 일반화해서 그것만이 옳다는 ‘병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오만과 독선, 내로남불이 꼰대의 특성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시대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당은 ‘꼰대정당’이 된다. 대통령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꼰대야당’은 선거에서 4전 4패했고, 권력에 취해 민심을 읽지 못하고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한 ‘꼰대여당’은 4·7보선에서 참패했다.꼰대공화국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 각자가 ‘꼰대성’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꼰대가 되면 독재를 하게 되고, 국민들이 꼰대가 되면 ‘한 나라 두 국민’으로 분열된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입은 다물고 귀를 열어라.

2021-05-31

2030세대의 반란에 응답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그것은 반란이었다. 정부 여당의 무능과 실정, 오만과 위선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2030세대의 분노가 4·7 보선에서 무섭게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멘붕’이 된 문재인 정권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청년들의 ‘이유 있는 반란’에 대해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030세대가 가장 큰 비토(veto)그룹으로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집값은 폭등했고, 부의 양극화를 구조화시킴으로써 ‘미래세대의 미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딸은 ‘용’을 만들기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재·개구리·붕어’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위선에 참을 수가 없었다. 3포·5포·7포로 좌절된 청춘들을 위해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돈 몇 푼 던져주고 결혼과 출산을 지원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미래에 희망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것이 아닌가?이처럼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고위험·고수익’의 주식과 가상화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춘들이 ‘폭탄 돌리기’와 같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투기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도박판에 ‘빚투’하는 이중적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위험한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계층 사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항변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군 병영에서도 주식·코인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니 상황이 심각하다.정치권은 2030세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들은 상황과 이슈에 따라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하는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다. 정권이 잘못하면 돌아서는 속도가 부모세대보다 훨씬 빠르다.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사고는 매우 유연할 뿐만 아니라 정치성향도 다양해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회초리를 들 수 있다.따라서 노회(老獪)한 기득권의 시선으로 이들을 가르치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역사 변화의 추동력은 맑고 깨끗한 청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이제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특히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진솔하게 응답해야 한다. 그 전제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다. 이번에도 ‘영혼 없는 반성’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는 정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투전판에 뛰어든 청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미래가 있는 삶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2030은 취업·주거·결혼·육아·교육 등의 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정신과 병원을 찾은 2030이 6배나 급증했다. 이 심각한 고통에 ‘포퓰리즘 진통제’ 처방을 해서는 안 되며,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정교한 수술법이 시급히 개발, 적용되어야 한다.

2021-05-17

2022 대선의 필승 키워드 ‘혁신’과 ‘중도’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했던가? 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었다. 4연승 후 서울·부산 보선에 참패한 여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당황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한 야당의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2022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어서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혁신(革新)’과 ‘중도(中道)’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는 중도정신으로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서 중도의 마음을 얻는 정당이 승리한다. 공정과 통합을 위한 혁신과 중도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혁신이란 무엇인가? 나를 바꾸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를 내려놓고, 보수는 보수를 내려놓아야 혁신할 수 있다.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논리’와 ‘내로남불’은 진영정치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념에 갇힌 좌우 꼴통들의 수구적 행태로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가 비판을 수용하여 혁신하지 못했으니 참패한 것이다. 권력도 술처럼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중간(中間)이 아니라 근본(根本)바탕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이다. 중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하며, 극단적 견해를 삼가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신이다. 정치적 중도층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정의·실용을 지향하는 심판관이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권자들의 성향은 대체로 중도 48%, 보수 25%, 진보 27% 내외로 분석되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제3지대 인물들도 일제히 대선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민심을 얻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나? 혁신과 중도다. 이 두 개념은 제3지대 인물, 예를 들어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1위인 윤석열과의 연대도 가능하게 해주는 필승의 키워드이다. 어느 진영이든 혁신을 부정하면 중도가 이탈함으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다.나라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정치인(statesman)들의 정당은 제대로 혁신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라를 이용하려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정당은 속임수를 쓰려고 할 것이다. 중도를 우습게보고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념에 구속되지 않는 합리적인 중도는 ‘누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실정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임을 깨달아서 과감히 혁신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중도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대권을 잡게 될 것이다.

2021-05-03

제주올레, 그 길에서 길을 묻다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제주올레! 그 이름만 들어도 옥빛 바다, 정겨운 돌담길, 아름다운 오름이 눈에 선하다. 나는 10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올레 길을 걸었다. 제주올레 26개 코스 425km를 3회 완주하였고, 지금 또 다시 그 길 위에 서 있다.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는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끌려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이순(耳順)’을 지나 ‘종심(從心)’의 나이에도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니, 이 길을 걸으면서 황혼의 인생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올레꾼들의 65%가 ‘나 홀로 여행자’라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걷는 이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인생길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 소유의 길과 존재의 길, 잘 사는 길과 바르게 사는 길, 이기적인 길과 이타적인 길 등과 마주하게 된다. 올레 길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리본이라도 달려있으면 좋겠지만, 인생길에는 그 어떤 표지판도 없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길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걷는 것이다.길을 걷기에 앞서 자연과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길을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자연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올레 길에서 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제주의 해안·오름·돌담길을 걸었고, 유채·동백·벚꽃·수선화와 만났다. 이념의 광풍(狂風)이 불었던 제주4·3의 비극적 현장도 보았고, 홀로 걷는 석양 길에는 ‘산담’이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봄 꽃길, 가을 단풍 길도 걸었고, 삼복(三伏) 무더위와 혹한(酷寒)의 제주바람에 맞서기도 했다.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이 길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인간 존재와 이성의 유한성을 깨닫고 겸손을 배웠다. 인간은 영겁(永劫)의 시간 속에서 찰나(刹那)에 사는 존재이고, 인간의 능력 또한 매우 제한적이니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모든 것이 한 때일 뿐이니 잘났다고 목에 힘줄 일도 아니고, 못났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인간의 ‘오만과 독선’은 근본적으로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다. LH사태로 정부여당이 궁지에 몰리자 이해찬 전 대표가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니 민심은 폭발하고 선거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진흙탕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은 수시로 자연과 마주해야 한다. 초심을 잃어버린 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자멸의 길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자연의 질서는 공존과 협력 속에 유지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중병을 앓고 있는 외눈박이 정치인들이 ‘위대한 스승, 대자연’의 교화(敎化)로 치유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1-04-19

2021 한국의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마음은 봄 같지가 않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던 시인의 아픔처럼, 우울한 소식들이 내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봄은 희망의 계절인데 절망의 탄식들뿐이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 취업해서 결혼을 앞둔 제자는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집값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구입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전세조차 역부족이니 절망이라고 한다. 평생을 벌어 저축해도 소형아파트 한 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청춘의 탄식에 스승은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다고 LH직원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는데….”라면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새 학기를 시작하는 봄, 대학 캠퍼스에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대거 미충원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실패로 대학이 위기에 내몰리자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까지 신입생 유치에 동원되고 있다. 폐교의 위기에 직면한 교수들은 감봉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 전직(轉職)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니 밤잠도 설치게 된다고 한다. 후배 K교수는 “지금 대학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대학의 미래에 희망이 없으니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라고 탄식이다. 캠퍼스에 피어나는 봄꽃들의 경연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학인들의 모습이 처연하다.어디 그뿐인가. 정치판은 봄이 오기는커녕 아직도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권력에 취한 정치꾼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논리’, 내가 하면 정의요, 당신이 하면 불의라는 ‘내로남불’의 궤변과 억지로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권력에 취한 ‘표리부동’한 정권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2021년 한국의 봄이다. 이상화 시인이 “들을 빼앗겨서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한탄했듯이, 우리도 지금 빼앗긴 ‘마음의 봄’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봄을 빼앗아 간 범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 오만과 독선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향유해야 할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꽃들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J. J. Roussea)는 “자연 상태가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에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 기막힌 역설(逆說)’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봄이다.

2021-04-05

망국으로 가는 포퓰리즘 경쟁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베네수엘라에서는 굶주린 시민들이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위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고, 그리스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나라에 빚을 구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들이 집권을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을 악용했고, 국민들은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키는 마약인지도 모르고 받아먹었다는 사실이다.“죽어봐야 저승 맛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포퓰리즘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포퓰리즘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은 없고, 당장의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이 포퓰리즘 마약을 국민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 막장으로 가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선거를 겨냥한 정치 포퓰리즘은 매표(買票)행위다. 여당이 포퓰리즘 선거로 재미를 보자, 이제는 야당도 포퓰리즘 공약을 서슴지 않는다. 부산시장 보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덕도 앞바다 선상(船上)에서 조속한 입법을 주문하자 민주당은 즉시 ‘가덕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가덕 신공항은 물론이고, 부산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건설까지 제안하고 나섰다.코로나를 명분으로 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도 치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퓰리스트(populist)의 전형적 특성인 편가르기·후견주의·내로남불 등으로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하고 있고, 이낙연 전 민주당대표는 아동수당 확대와 상병수당까지 도입하자고 한다. 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현금살포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수장마저 유권자들을 의식해 포퓰리즘을 부추기고 있다.‘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정치꾼 눈에는 권력’만 보이는 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국민에게 마약도 주사하는 것이 그들이다. 결국 국가재정은 거덜 나고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H. Ch00E1vez), 아르헨티나 페론(J. D. Per00F3n)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근면·성실했던 한국인들도 일단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폐인이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는 살지만 자녀는 죽는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 정치의 비극이다.그렇다면 누가 포퓰리즘을 막을 것인가? 권력의 심판자인 국민이다. 스위스 국민은 모든 성인에게 매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켰다. 반대 이유는 “일하지 않으면 스위스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20대 대선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추락하느냐 아니면 스위스처럼 비상하느냐는 포퓰리즘에 대한 우리의 각성 여하에 달려있다.

2021-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