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는데, 마음은 봄 같지가 않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던 시인의 아픔처럼, 우울한 소식들이 내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봄은 희망의 계절인데 절망의 탄식들뿐이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 취업해서 결혼을 앞둔 제자는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집값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구입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전세조차 역부족이니 절망이라고 한다. 평생을 벌어 저축해도 소형아파트 한 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청춘의 탄식에 스승은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다고 LH직원들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는데….”라면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봄, 대학 캠퍼스에도 활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대거 미충원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실패로 대학이 위기에 내몰리자 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까지 신입생 유치에 동원되고 있다. 폐교의 위기에 직면한 교수들은 감봉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 전직(轉職)까지 고민하는 상황이니 밤잠도 설치게 된다고 한다. 후배 K교수는 “지금 대학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입니다. 대학의 미래에 희망이 없으니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라고 탄식이다. 캠퍼스에 피어나는 봄꽃들의 경연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학인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판은 봄이 오기는커녕 아직도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권력에 취한 정치꾼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논리’, 내가 하면 정의요, 당신이 하면 불의라는 ‘내로남불’의 궤변과 억지로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권력에 취한 ‘표리부동’한 정권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중독성 강한 마약’을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2021년 한국의 봄이다. 이상화 시인이 “들을 빼앗겨서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한탄했듯이, 우리도 지금 빼앗긴 ‘마음의 봄’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봄을 빼앗아 간 범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 오만과 독선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향유해야 할 마음의 봄을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꽃들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소(J. J. Roussea)는 “자연 상태가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에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 기막힌 역설(逆說)’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