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로키의 대자연과 마주하면 누구나 자연주의 철학자가 된다. 로키의 장엄한 연봉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파노라마 속에서 만나는 에메랄드빛 호수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빙하,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야생동물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영국의 산악인 웜퍼(E. Whymper)는 “스위스 알프스를 50개 모아놓은 것 같다”고 로키의 경이로움을 극찬했다. 필자 역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라는 230km의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s Parkway)’를 달리면서 신이 만든 로키의 조각품들에 감탄했고, 루이스·페이토·모래인·말린·에메랄드 등 수많은 옥빛 호수들에 넋을 잃었으며, 태고의 눈이 겹겹이 쌓여있는 콜롬비아 대빙원에 오른 것은 벅찬 감동이었다.
대자연 로키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오만을 깨닫게 해주는 ‘겸손’이다. 거대한 로키와 마주하면 인간은 한낱 점과 같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절대 거역할 수 없으니 겸손해야 한다. 대자연은 우리가 추구하는 돈·권력·명예 등이 과연 삶의 본질적 가치인가를 깊이 성찰하라고 가르쳐준다. ‘오만의 치료약은 겸손’임을 깨닫고, 삶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하여 자신의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게다가 원시자연을 간직한 로키는 ‘순수(純粹)’의 중요성을 깨우쳐준다. 로키에서 정신이 맑아지는 까닭은 청정한 대자연이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자 영혼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로키 최대의 빙하호인 말린(Maligne) 호수에 있는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가 캐나다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평화로운 것은 야생 로키가 살아있어서 그 치유력으로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키는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트래킹할 때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가르침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인들은 자연을 잠시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울창한 상록수림에서 만난 곰·엘크·산양·마멋 등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사람도 동물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캐나다 로키다. 자연주의 철학자 소로(Henry D. Thoreau)가 그의 저서 ‘월든’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자연 파괴로 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대자연 로키는 우리에게 ‘겸손·순수·공존’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령과 시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피로를 모르고 즐겁게 트래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대한 대자연 로키의 힘’이었다. 우리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말없는 가르침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