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맹의 불신과 균열이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이슈(issue)에 따른 단순한 이해관계나 견해차이가 아니라 동맹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근본적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는 최대의 위기다.
동맹의 생명인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미동맹에 사활이 걸려 있는 한국의 안이한 인식과 비현실적 외교가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판문점선언 및 군사합의가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미국과 사전협의가 없었고, 중국을 의식한 균형외교는 동맹국인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불신을 자초하였다. 또한 냉전적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전환하자는 이인영 통일부장관의 주장은 한미동맹의 성격과 목적을 완전히 왜곡하였다.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억지력(deterrence)’이 그 핵심인데,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확산억지력’ 밖에 없음을 왜 모르는가? 게다가 동맹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이수혁 주미대사는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동맹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였다.
물론 동맹국인 미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는 동맹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해왔다는 ‘편협한 동맹관’에 입각하여 무리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주한미군이 가져다주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안보증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일방적으로 반중(反中) 쿼드(Quad) 및 5G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나아가 에스퍼(M. T. Esper) 국방장관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동맹국들에게 아시아판 NATO를 제시함으로써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양국의 동상이몽(同床異夢)도 심각하다. 한국은 선(先) 종전선언 후(後) 비핵화이지만,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전환을 주장하나 미국은 조건충족이 먼저라고 본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중 균형외교 및 북·미 중재외교는 한·미 동맹외교와 충돌하고 있다. 방위비협상이 길어질수록 동맹의 불신만 깊어질 것이며, 미·중 패권경쟁에서 동맹의 편에 서라는 미국의 요구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갈등으로 최근의 한미안보협의회(SCM)는 예정된 공동기자회견마저 취소되었다.
이처럼 현재의 한미동맹은 중병에 걸려 있다. 치료를 서두르면 동맹이 회생될 것이지만 방관하면 동맹이 와해될 수도 있다. 동맹의 치유는 양국의 신뢰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맹은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신뢰관계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친중탈미(親中脫美)’나 ‘친북탈미(親北脫美)’는 동맹에 대한 배신이다. 동맹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와 이익의 공유’를 위한 전략소통과 정책조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