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서는 굶주린 시민들이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위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고, 그리스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나라에 빚을 구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들이 집권을 위해 포퓰리즘(populism)을 악용했고, 국민들은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키는 마약인지도 모르고 받아먹었다는 사실이다.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포퓰리즘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포퓰리즘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은 없고, 당장의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이 포퓰리즘 마약을 국민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 막장으로 가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선거를 겨냥한 정치 포퓰리즘은 매표(買票)행위다. 여당이 포퓰리즘 선거로 재미를 보자, 이제는 야당도 포퓰리즘 공약을 서슴지 않는다. 부산시장 보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덕도 앞바다 선상(船上)에서 조속한 입법을 주문하자 민주당은 즉시 ‘가덕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가덕 신공항은 물론이고, 부산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건설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코로나를 명분으로 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도 치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퓰리스트(populist)의 전형적 특성인 편가르기·후견주의·내로남불 등으로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하고 있고, 이낙연 전 민주당대표는 아동수당 확대와 상병수당까지 도입하자고 한다. 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현금살포를 견제해야 할 야당의 수장마저 유권자들을 의식해 포퓰리즘을 부추기고 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정치꾼 눈에는 권력’만 보이는 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국민에게 마약도 주사하는 것이 그들이다. 결국 국가재정은 거덜 나고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H. Ch<00E1>vez), 아르헨티나 페론(J. D. Per<00F3>n)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근면·성실했던 한국인들도 일단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폐인이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는 살지만 자녀는 죽는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 정치의 비극이다.
그렇다면 누가 포퓰리즘을 막을 것인가? 권력의 심판자인 국민이다. 스위스 국민은 모든 성인에게 매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안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켰다. 반대 이유는 “일하지 않으면 스위스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서울·부산시장 보선과 20대 대선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추락하느냐 아니면 스위스처럼 비상하느냐는 포퓰리즘에 대한 우리의 각성 여하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