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11월 1일)에 의하면 조국 사태로 반짝 반등했던 한국당 지지율은 장관 사퇴 이후 다시 급락하고 있다. 민주당 40%, 한국당 23%로서 17%의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한국당의 지지기반인 TK지역과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도층의 하락폭이 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혁신과 변화를 모르는 한국당은 조국 낙마에 취해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충수까지 두었다.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에 나선 국민들이 조국의 사퇴를 이끌어내었는데 당 지도부는 인사청문회 위원들에게 상품권·표창장을 나누어주면서 자축행사를 벌였으니 어이가 없다. 또한 자신들이 여당일 때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지키지 않은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섰다. 민심과는 거리가 먼 당 지도부의 ‘오만과 오판’의 결과이다.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당이 총선 승리를 말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니 국민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당이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환골탈태’의 각오로 다음과 같이 ‘혁명적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첫째, 한국당은 ‘영남’과 ‘극우’에 갇혀서는 안 된다. 영남지역과 극우 태극기부대에 의존하는 정치는 더 이상 ‘확장성’이 없다.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 나아가 젊은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영남안일주의’와 ‘보수 꼴통’의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 특히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TK지역 의원들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둘째, 당의 혁신을 위한 전면적 물갈이, 즉 ‘인적 쇄신’이다.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함으로써 ‘당 혁신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주의자들은 당의 혁신에 방해가 될 뿐이다. 당 지도부는 ‘엄격한 현역 평가’와 ‘혁신적 공천 룰’을 적용하여 낡은 인물들을 대폭 교체하고 ‘미래형 인재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셋째, 수권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대안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당의 힘, 즉 ‘수권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외교·안보 등 전반적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당의 지지율이 저조한 것은 대안정당·정책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챙기려는 정당은 희망이 없다.마지막으로 한국당은 보수 통합을 위하여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 아직도 탄핵책임을 두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은 당시 거리에 나섰던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최선의 총선전략은 ‘박근혜’와 ‘탄핵’을 넘어 ‘국민이 명령하는 당의 혁신과 보수 통합’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제 5개월 후 한국당이 받아 쥐게 될 총선 성적표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2019-11-12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총체적 위기이다. 북핵 중재외교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김정은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조롱만 돌아왔다. 한미동맹은 북한이 요구하는 ‘우리민족끼리’식의 외교를 추진하다보니 균열이 심화되어 동맹국 간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폐기로 정면충돌하면서 우리 경제와 안보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헤집고 다니고, 특히 러시아는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왜 이렇게 외교 참사가 끊이질 않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최고정책결정자의 외교환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대통령은 외교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하여 외교부 및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는다. 이 때 대통령의 ‘가치(value)지향성’이 강할수록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태도를 가지게 되며, ‘예스맨(yes man)’ 참모들은 대통령이 원하는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정책결정자의 사실(fact) 인식이 왜곡된다. 외교환경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image)라는 필터(filter)’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현 정부의 외교는 ‘목적과 수단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 외교정책은 설정된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외교는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중개(mediation)’이다.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도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player)”라고 중재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중재외교가 동맹국인 미국에 의혹을 사고 북한에는 불신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한일갈등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함으로써 경제적·안보적 위협이 증대되고 있다. ‘수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려 없이 목적의 정당성에만 의존하는 외교’는 실패를 자초할 뿐이다.더욱이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외교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남북대화는 북핵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여당의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반일감정이 강한 나라에서 ‘강경한 대일외교’ 역시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에서 분석한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대외비 보고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사실보다는 가치’, ‘수단보다는 목적’에 치중할 뿐만 아니라, 선거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총체적 위기를 자초하였다. 이러한 외교의 실패는 단지 한 정권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민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냉철한 현실인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9-10-28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정치꾼(politician)들이 권력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편, 네 편 나누어서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고 우기는 진영논리는 한국정치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었다.‘정치는 실종’되고 ‘정략(政略)만 난무’한다. ‘승자독식’의 정치풍토이니 대화와 타협은 없고 집권을 위한 투쟁만 있다. 진보진영이 50만 명 동원해서 시위하면 보수진영은 100만 명을 결집시켜 세(勢)를 과시한다. 정치가 실종되었으니 국민은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의 전장(戰場)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집권을 위한 대리전이다. ‘승자는 정치꾼’이고 ‘패자는 국민’일 뿐이다.거짓과 위선의 정치꾼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연꽃의 삶’을 배워야 한다.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 즉,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다.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며, 향기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다. 연꽃은 가장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군자의 꽃’이다. 연꽃은 정치꾼들에게 ‘자기 정화와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 준다.조국 사태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공정의 문제’임에도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정 이념의 왜곡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경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방만 탓한다. 반면에 ‘연꽃 같은 사람’은 자기 진영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비판한다.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도 청정심(淸淨心)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진보진영에도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참여연대의 김경율 집행위원장은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고 하면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인사들의 권력과의 밀착’을 맹비난하였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교수도 ‘진흙탕 싸움의 원인은 대통령의 조국장관 임명’에 있기 때문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조국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고언(苦言)하였다. 이들 역시 진보주의자이지만 결코 정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꽃을 닮았다.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마약 같은 권력’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통합’과 ‘공정’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공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념과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오물 속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청정함을 잃지 않고 단아한 꽃을 피우기까지 겪는 연(蓮)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 연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오물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자기 정화의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올바른 정치인(statesman)’이 되고자 한다면 ‘연꽃 같은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9-10-14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우수(憂愁)의 계절, 가을이다.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에 공감이 가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음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니 말이다.정부·여당이 하는 짓을 보면 화가 나서 죽겠는데, 한국당도 변화와 혁신에 소홀하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진보에게 사기당하고, 보수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야 정당 모두가 싫다는 무당파(無黨派)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마음 둘 곳 없는 유권자들이 많다.부정과 비리가 보수·우파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보·좌파는 한 수 더 뜬다. 얼굴도 붉히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정의를 수호하는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민주당 대표는 “정권을 절대로 뺏기면 안 된다”고 벌써부터 내년 총선전략 마련에 분주하고, 한국당은 국민의 정부 비판이 한국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데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다. 여야 모두가 고달픈 민생에는 안중에 없고 총선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게다가 나라는 극심한 대결과 분열로 인해 내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물론이고 언론과 지식인들까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북대화에는 그렇게 적극적인 대통령이 왜 남남대화에는 소극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진영 프레임에 갇힌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이처럼 정치꾼(politician)들의 주된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권력’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공정·정의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정의이고 아니면 불의라는 궤변이다. 너를 청산해야 내가 권력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착각했던 것은 사익(私益)밖에 모르는 정치꾼을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참된 정치인(statesman)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따라서 이제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정치꾼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주권자로서 그들을 감시·감독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퇴출해야 한다. 국민의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만이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당파여! 내 마음 갈 곳 없다고 슬퍼하지 말라.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희망이다. 무당파는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힌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정의파’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있기에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이 나라가 두 동강 나지 않고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당신들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casting vote)’까지 쥐고 있으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당신들의 올바른 인식과 선택이야말로 ‘한국정치에서 희망의 촛불’임을 잊지 말자.
2019-09-30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온 나라가 진영논리의 광풍(狂風)에 휩싸여 있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언론인과 교육자도 진영논리에 갇혀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행태가 ‘조폭들의 집단 패싸움’을 닮아가고 있으니 나라가 걱정이다.문 대통령은 야당과 다수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교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국론분열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검찰은 검찰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 일을 하면 권력기관의 개혁이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변명은 너무나 궁색하다. 검찰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법무장관 아내는 기소되었고, 장관 자신도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데도 개혁의 적임자라는 말인가?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진보진영의 궤변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진보의 편’이었다. 검찰이 후보자 아내를 전격 기소하자 청와대 인사들은 “미쳐 날뛰는 늑대의 칼춤”이라고 거칠게 비난하였다. 이는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하게 임하라”고 당부했던 말과 완전히 모순된다.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검찰의 정당한 압수수색에 대해서 “사전에 협의 없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공격하였고, 유시민은 서울대 학생들의 순수한 촛불시위에 대해서 “한국당의 손길이 어른거린다.”고 폄훼하였다. 또한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후보자 딸이 의학전문학술지의 제1저자가 된 것이 문제 되자 “에세이를 제출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옹호하였다. 교육감이라는 사람이 에세이(essay)와 학술지 논문(treatise)을 구별하지 못하고 ‘내 편 살리기’에만 급급하였으니 참으로 한심하다.이처럼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 오류’를 범한다. 조국 사태의 본질이 부정·비리·도덕성 문제임에도 진영싸움으로 만들어 진실을 왜곡하였다. 강남좌파들이 사적 네트워크로 얽혀서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오죽하면 진보진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진보언론 ‘한겨레’의 일선기자 31명은 성명을 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정권에 따라 후보자의 검증 기준과 수위가 변하는 것이 한겨레의 논조인가”라고 비판하면서 편집국장단의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진보원로 최장집 교수도 “과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촛불시위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자임하는 정부가 보여주는 정치적 책임이라고 대통령이 말하는 것인가”라고 강력히 비판했다.따라서 이제 대통령은 진영논리를 버리고 국민통합을 약속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극심한 국론분열 상황에서 대통령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면 ‘내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대통령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9-09-16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폴리페서(polifessor)’가 ‘앙가주망(engagement)’을 강변(5F37辯)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성을 상실하고 정치권력의 시녀가 된 폴리페서가 ‘정의의 상징’인 법무부 장관을 맡게 된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조국 교수를 둘러싼 의혹들은 마치 ‘비리백화점’ 같다. 자녀의 입학관련 부정, 웅동학원의 불법과 탈법, 사모펀드 투자, 자녀의 논문게재 및 장학금 특혜 등 그 의혹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교수로서 마치 ‘정의의 사도’나 되는 것처럼 열을 올렸던 ‘도덕적 담론’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그가 격렬하게 비난했던 폴리페서는 알고 보니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특목고 출신은 원래의 설립 취지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해놓고서는 외고를 졸업한 딸은 이공계 대학을 거쳐서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논문의 편법 게재를 비판했으면서도 고2 학생이었던 딸은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제치고 의학전문 학술지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이처럼 그가 평소에 교수로서 했던 말들은 모두가 위선임이 드러났다. 서울대 학생들은 조국 교수를 ‘부끄러운 동문 1위’로 선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캠퍼스 촛불집회를 하면서 “서울대 학생으로서 조국 교수님이 부끄럽다. 장관은 물론이고 교수의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그를 둘러싼 비리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짬짜미한 ‘교수 카르텔’ 역시 우리나라 교수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조국 교수의 딸을 논문의 제1저자로 올려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인정한 단국대 장교수, 다른 사람에게는 장학금을 한 번씩 주고 ‘낙제생’에게는 격려 차원에서 6학기나 계속 줬다는 부산대 노교수, 대학생 이상 지원자격이 있는 ‘유엔인권인턴십’에 고교생이었던 두 자녀를 선정, 파견했던 서울대 정교수 등도 역시 폴리페서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조국 교수의 은사인 서울대 최대권 명예교수는 “트위터 날리며 청와대 수석 하느라 바빠 생긴 학문연구의 공백에도 어떻게 복직할 염치가 남았는지 딱하다”고 하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마음으로 법적 정의와 보편적 양심을 좇아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또한 그를 아끼던 선배이자 진보인사인 신평 교수도 “당신이 진보귀족으로서 지금까지 저질러 온 오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안겨준 상처들에 대해 깊은 자숙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꾸짖고 있다. 게다가 사태를 관망하던 검찰도 드디어 전방위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앙가주망’을 하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도덕성을 상실한 폴리페서는 ‘앙가주망’을 말할 자격이 없다. 정치지도자는 모름지기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한 후에 비로소 치국(治國)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로서 자신과 가족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람이 나라를 위해 정의로운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2019-09-02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반일과 친일, 항일과 극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서 이 논쟁에 정치공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하나같이 극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인식과 방법에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한일 경제전쟁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손자병법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이고 한국은 11위로서 GDP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인구규모·경제기반·부채 대 자산비율·첨단기술능력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것은 강대국인 일본과 중견국인 한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그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극일전략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공영방송인 KBS 앵커가 “이 볼펜은 일제가 아닙니다”라고 하자 KBS 노조가 “공영방송으로서 경솔하고 선동적이다. 방송국에 고가의 일본 장비가 많다고는 왜 밝히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서울 중구청이 1천100개의 ‘No Japan’이라는 반일 현수막을 걸자 시민들은 구청이 주도하는 감정적 반일운동의 부적절성을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바로 철거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극일은 말이나 선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반일의 가슴’은 뜨거워도 ‘극일의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극일’은 ‘과거의 시제(時制)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이다. 따라서 극일의 올바른 방향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전략의 모색이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이 자행한 과거사’를 문제삼은데 대해서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역사는 국제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언제나 미래를 먼저 준비했던 강대국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매우 비현실적인 환상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단숨에 일본을 이긴다는 발상은 놀라울 뿐이다. 정부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력을 배양함으로써 ‘아름다운 보복’을 준비해야 한다.극일의 성공여부는 선거와 권력만 생각하는 ‘선동적 정치꾼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시·감독하는 ‘이성적 시민들’에 달려 있다. 최근 성숙한 시민들의 극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치꾼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민주당의 ‘한일갈등이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접한 시민들은 경제전쟁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고 꾸짖고 있다.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발표하던 날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는다”고 격분하던 대통령이 이제 “감정적 대응은 안 된다”고 말을 바꾸게 된 것도 지식인의 비판과 유권자의 힘이다.정부가 경제문제를 정치이념으로 극복하려고 한다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경직된 이념’에 매몰되면 ‘살아서 움직이는 경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게도 해당되며, 대통령 자신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9-08-19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국 안보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복합적 안보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정부의 신형전투기 구입과 한미훈련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헤집고 다녔으며, 특히 러시아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이들의 위협행위가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한일갈등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타이밍이 절묘하다. 위협한 결과는 그들이 의도한대로 한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마저도 자신에게는 위협이 아니라고 뒷짐만지고 보고 있고, 일본은 독도에서 우리 공군의 대응을 자국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에 대한 불법행위라며 비난하였다. 나아가 일본 각의(閣議)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역사갈등이 마침내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 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정치적·국가적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우리의 안보상황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속성을 경시하면서 오직 북한에만 올인 하다시피 한 문재인 정부의 ‘이상주의적 안보관’이 자초한 결과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의 외교안보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수정·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 확고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와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월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면서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철리를 명심하라”고 하였다. 과연 누구의 안보관이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F. Vegetius)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였고,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침공을 앞둔 영국의 처칠(W. Churchill) 수상은 “평화를 구걸한다고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강조한 이유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쉽게 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힘과 국가이익을 최우선하는 현실주의적 안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 핵심은 대내적으로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자체 방위력을 제고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한일갈등의 적절한 관리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핵 없는 한국이 북한의 핵위협과 북·중·러 협력체제로부터 야기되는 중첩적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한일 경제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는 양국의 경제손실은 물론,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지만, 감정적 대결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관리하고 확전(擴戰)을 자제하면서 갈등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통합적 리더십이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내편 네편 가르는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애국적 비판자의 고언(苦言)도 경청하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통합의 정치’를 말한다. 지금은 대통령 참모들이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미칠 이해득실을 계산’하거나 ‘죽창가를 부르면서 감정적인 선동정치’를 할 때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찾아서 위기 극복의 지혜를 구할 때이다.
2019-08-05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정치인(statesman)’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정치를 시작하였으며 무엇을 위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가? 당신들의 정치철학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보기 흉한 진흙탕 싸움만 계속하고 있는가? 혹시 당신은 정치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권력이라는 마약’에 도취되어 권력 자체가 목적인 ‘정치꾼(politician)’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미 100년 전에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저서를 통하여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는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의 자질로서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각’을 들었다. 열정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대의(大義)에 대한 헌신을 말하는 것이고, 책임의식은 위험할 수 있는 권력의 통제와 조절에 필요하며, 균형감각은 열정과 책임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주는 능력을 의미한다.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권력에 취하여 책임감과 균형감을 상실하게 되면 정치적 타락이 발생하기 때문이다.나아가 베버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윤리, 즉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정치와는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신념윤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추구하는 태도이고, 책임윤리는 행위로부터 예견되는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윤리를 겸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만약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책임윤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보다는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함으로써 국민을 위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한국정치에서 만연하고 있는 ‘내로남불’의 적폐는 베버가 강조하였던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책임성과 객관성을 상실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정치인들은 보수나 진보가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정치적 쟁점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함으로써 합리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더욱이 우리의 정당정치에서는 각 정파들이 신념윤리를 앞세우고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전개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 신념윤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지만, 책임윤리는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이 결여되면 구현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는 책임윤리가 더욱 중요하다. 정치인의 소명은 개인의 신념윤리를 구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윤리로서 공동체의 대의에 헌신하는데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베버가 지적한 두 가지의 치명적 죄악, 즉 ‘객관성의 결여와 책임성의 결여’라는 폐단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권력투쟁이 격화됨으로써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만 급급하는 현상은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정치철학의 결핍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정치인들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자문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소명의식을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이러한 정치인들의 소명의식에는 그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쥐고 있는 유권자들의 책임이 무겁다. ‘정치인’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충실하지만, ‘정치꾼’은 오직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다. 누가 정치인이고 누가 정치꾼인지를 식별할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2019-07-22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국제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미중 무역전쟁(trade war)은 단순한 관세문제가 아니라 세계정치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강대국 간 패권전쟁(hegemonic war)의 일환이다. G2의 무역전쟁은 오직 경제논리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하고 있다. 패권전쟁에서 패권국의 지위를 받치고 있는 것은 경제력이고, 패권의 승부를 가리는 것은 정치력과 군사력인데, 미중 무역전쟁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술 굴기’를 통해 2050년까지 미국을 추월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고자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기술 굴기는 단순히 첨단산업에 대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자신과의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인식된다. 미국은 2015년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중국제조 2025’는 단순히 2025년까지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는 산업정책 슬로건이 아니라 경제력을 패권국 부상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 전략이라고 본다.최근 미국의 펜스(M. Pence) 부통령이 “중국이 정부차원에서 미국 안에 영향력을 심어 중국 이익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치적·경제적·군사적 그리고 선전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미중 무역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의 경우 미국은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를 선택하면 장기적인 리스크가 크며, 안보 면에서는 사용자 정보가 수집되어 중국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해리스(Harry B. Harris) 주한 미국대사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서 직접적으로 안보위협을 거론하였다.반면에 중국도 “미국이 바라니까 동참할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야 한다”면서 반화웨이 전선에 동참할 경우 한국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이처럼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정치적·안보적 요인들도 개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동맹국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패권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패권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양국의 경제성장과 교역에 수반하는 갈등의 부침과정을 겪으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샌드위치가 되어 있는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중 패권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는 외교 전략을 수립, 추진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양 강대국이 서로 자기편에 서라는 압력과 협박이 격화된다면 한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축소되어 더 이상 ‘줄타기외교’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따라서 패권전쟁의 다양한 상황전개에 따라 그때마다 임시방편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국익의 관점에서 원칙 있는 외교를 모색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안보위협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미국에 협조하고,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순수한 경제적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러한 원칙 있는 대응전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사이에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힘의 열세에 있는 한국이 강대국들의 패권전쟁에 대처하는 어려운 전략적 선택이므로 더욱 더 국민적 중지를 모아야 한다.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19-07-08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국의 외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미동맹은 균열되어 있고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북·중·러 협조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한·미·일 공조체제는 와해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빌미로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서로 자신의 편에 줄을 서라고 협박하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거의 올인 하다시피 한 북핵 중재외교도 난관에 봉착하면서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게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참사(慘死)는 ‘정치적 이념에 토대를 둔 장밋빛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교는 ‘정치적 이념(ideology)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fact)’에 바탕을 두고 그 전략을 모색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 전략의 수립 및 집행에서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첫째, 우리의 외교환경은 세계를 움직이는 미·일·중·러 등 4강에 포위되어 있으며 ‘국제정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이다. 남북 분단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한 강대국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예리하게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상대적으로 힘의 열세에 있는 한국 외교가 감당해야 할 제약요인이다. 둘째, 미·중 패권전쟁(hegemonic war)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현재의 세계정치질서에서 패권국은 미국이며, 그에 대한 도전국은 중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과 전략적 협력관계에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확전(擴戰)시키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은 세계적 패권전쟁의 일환이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외교는 양국 모두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패권전쟁이 격화되어서 양국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국익에 유리한 전략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이며, 핵보유국(북한)과 비핵국가(한국) 간의 1 대 1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핵 공격을 받았던 일본은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만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한국을 겨냥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비핵국가인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인 동시에, 한미동맹의 현실적 중요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삶의 질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보이익이 경제이익보다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외교 전략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사실은 안보는 미국에, 그리고 경제는 중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만약 양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주고 있다.이처럼 힘과 국익이 지배하고 있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한국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을 두고 실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용외교는 정치적 이념에 집착하는 아마추어 외교관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외교관들에 의해서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전문외교관들로 구성된 외교부의 역할은 약화된 반면,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한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교 참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성공하는 외교는 현실을 직시하지만 실패하는 외교는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2019-06-24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취임 당일 각 당의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야당과도 빈번하게 대화하고 협력, 타협하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협치(協治) 의지를 거듭 밝혔다.이처럼 통합과 협치를 국민 앞에서 엄숙히 약속했던 우리의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날로 격화되고 있고 민생을 챙겨야 할 국회도 파업상태인데,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은 대화와 협치에 매우 인색하다. 최근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적폐청산이 이뤄진 다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그 때가 언제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큰 적폐청산을 이유로 국민통합과 협치를 미룬다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국민적 갈등과 적대감은 치유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대통령은 왜 통합과 협치를 약속한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고 있는가? 파스칼(B. Pascal)은 “독선과 아집은 대상(사물이나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편향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이것은 바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은 결과’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예스맨(yes man)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확증편향은 더욱 심해진다. 대통령이 이러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한 국민통합이나 야당과의 협치는 불가능하다.그렇다면 통합과 협치를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민주적 정치정향(political orientation)’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대화와 타협이다. 이것은 대통령도 인간 능력의 유한성 때문에 정치적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매우 비민주적인 정치정향이다.문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항상 경계하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민주주의체제에서 대통령은 갈등과 분열의 논리를 배격하고 협력과 통합의 가치를 적극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 불행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이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선의와 약속만 믿고 그가 독선을 버리고 협치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으로 인한 정치적 오류를 끊임없이 감시·감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때 특히 여론형성자(opinion maker)로서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정의와 국민통합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언론과 지식인들은 권력과 야합하는 ‘외눈박이 언론’이나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되며,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에 대한 비판자’이자 ‘통합과 협치를 위한 촉진자’로서 올바른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2019-06-10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최고의 지식인집단이라고 하는 교수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식을 팔아서 권력을 사려는 ‘정치교수(polifessor)’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연구비 수주에 혈안이 된 교수들은 ‘비즈니스맨(businessman)’을 뺨치는 영업활동을 하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제자들에게 치졸한 갑질을 자행하는가 하면, 잊힐 만하면 또다시 성희롱과 성폭력이 불거지고 있다. 연구비를 해외 부실학회 출장비로 남용했으면서도 무엇이 잘못이냐고 되레 항의하는 교수들도 있고, 심지어 연구력도 없는 미성년 자녀를 대학입학에 유리하도록 공동연구자로 넣는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이처럼 대학교수들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다음 달부터 3개월 간 전국 15개 대학에서 특별감사를 실시하기로 하였고,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갑질 신고센터’를 개설했다.또한 대학원생들은 자구적 차원에서 교수들의 갑질을 근절하기 위하여 ‘대학원생 119’를 출범시켰다. 더욱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이라는 서울대 학생들은 며칠 전 스승의 날을 맞아 ‘반복되는 교수 갑질과 성폭력사건으로 학생인권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면서 ‘진짜 교육은 죽었다’고 ‘교육영결식’을 열었다. 스승의 날에 버젓이 살아 있는 교수들을 향해 ‘스승은 죽었다’고 울고 있는 제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교수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여러 대학에서 적지 않은 교수들이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받거나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는 이 빗나간 교수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 교수들에 국한된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식인사회의 일탈(逸脫)이다. 지식인을 대표하는 교수사회가 부도덕하고 돈과 권력에 유착되어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당위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명예를 먹고 살아가야 할 교수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돈과 권력을 쫓아다닌다면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국어학자 고(故) 이희승 교수는 그의 작품 ‘딸깍발이’에서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가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현대인은 전체를 위해서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 자기본위로만 약다”고 하면서 청빈(淸貧)한 남산골샌님(별명 딸깍발이)의 ‘의기(義氣)와 강직(强直)’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공동체의 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어떤 사람은 교수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교수들에게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시대착오(時代錯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교수들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수의 품격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본업인 교육·연구·봉사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교수에게 요구되는 ‘딸깍발이 선비정신’을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남산골샌님의 고지식함과 절개는 교육자로서 교수가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이다.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공정해야 할 교수들이 돈과 권력의 유혹에 무너진다면 사회정의는 누가 지킬 수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마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을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딸깍발이 선비정신’이다.
2019-05-27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가 원로와의 대화를 앞두고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던 것처럼, 이번 간담회는 국내외의 어려운 국정현안들에 대한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인식과 태도는 청와대의 간담회 목적을 의심케 한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원로들의 고언(苦言)은 매우 중요한 국정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통합·적폐청산·소득주도성장·한일관계 등에 집중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과 수용가능성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국민통합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국민들 간에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우식 전 부총리가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면서 ‘탕평과 통합’을 강조하였고,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국회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국을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충언(忠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하고 있다.“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윤여준)는 지적에 대해서 대통령은 “살아 움직이는 적폐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된다.”고 답변하였다. 과연 그럴까? 적폐청산을 이유로 검찰과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던 사람이 누구인가. 청와대의 지시로 각 부처에 ‘적폐청산TF’가 만들어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적폐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다.”고 하니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송호근 포스텍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대해서 “이 정책은 효과가 없으니 고용주도성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으나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송 교수가 지적한 “노조가 이익집단화 됨으로써 촛불민심이 왜곡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은 간담회 내용을 소개한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발표문에서 제외됨으로써 그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최악의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이종찬 전 국정원장)는 조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불행한 문제들(위안부·징용문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일본 못지않게 현 정부도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임을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이처럼 원로들의 고언에 대해서 대통령은 변명에 급급하거나 답변을 회피하였으며, 일부 날카로운 충고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아예 삭제되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한 원로는 “대통령이 중요한 문제는 바꾸지 않겠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용하지도 않을 원로와의 대화는 무엇 때문에 하였는가? 청와대는 비판적 의견들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쇼’를 할 필요성이 있었는가?원로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상당히 우려된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데도 자신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그것이 바로 문제이다. 사회원로들이 고언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대통령이며, 그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책임도 대통령에게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 부디 원로들의 고언을 국정운영에 잘 반영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019-05-1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북·러 정상회담은 ‘힘(power)’과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2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양국이 상호협력을 통하여 대미협상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힘의 열세에서 초래되는 북·미 협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후원도 절실하다. 북·러 협력의 강화는 북한의 대미협상력을 제고시켜줄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방식을 지지해 왔다는 점에서 북·중·러 3국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유엔제재로 인한 북한의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만 여 명의 외화벌이 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이 연말에 만료됨으로써 초래되는 추방위기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한편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의 방문은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러시아는 북·미 중심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중국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북·러 정상회담의 개최를 지속적으로 타진해 왔다. 북한이 중국에 지나치게 편향되는 것은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항하여 러시아의 국익을 확대하기 위하여 북한 및 북·미 협상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한 ‘6자(남·북·미·중·일·러)회담’과 같은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이처럼 북·러 정상회담은 ‘힘’과 ‘국가이익’이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한 앞으로도 북·미 비핵화협상의 과정에서 양자 간 협력은 물론이고, 북·중·러 3국의 공조도 계속될 것이다.그런데 우리 정부의 외교는 어떠한가? 북한의 비핵화 협상전략을 둘러싸고 한·미 동맹은 균열되고 있고,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 공조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현 정부가 집권이후 남북협력에 거의 올인 하다시피 했는데 김정은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는 비판이었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외교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힘과 국가이익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적 속성을 경시하고 ‘무지개’를 쫓아다닌 결과이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이상(理想)은 냉혹하고 변화무쌍한 국제정치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토대를 둔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고 만다.따라서 이제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역사는 어떤 외교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이해 당사국들은 모두가 현실주의 외교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오직 우리 정부만 이상주의에 집착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9-04-29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청와대의 모든 비서관실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춘풍추상’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의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에서 나온 말로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지키는 데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이 액자를 선물한 이유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청와대 공직자들이 업무수행에 있어서 그러한 자세를 가지자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그런데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주문한 ‘춘풍추상’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는 물론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한 후 다시 월세로 살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낙마하게 되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는 자녀유학자금 문제, 인턴채용 비리, 연구비 부정사용, 부동산 투기 등이 문제되어 역시 낙마하게 되었다. 게다가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는 판사는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식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문제되자 “남편이 한 일로서 나는 몰랐으며, 재판관에 임명되면 매각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본인과 남편 명의의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義)가 아니라 이(利)’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공직에 취임한다고 해서 ‘춘풍추상’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더욱이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저질 발언과 막말 욕설을 일삼았던 사실이 드러나자 청문회를 통과할 목적으로 “깊이 반성한다.…해당자에게 사과한다.…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이 지경이니 강단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삼천리다. 야당이 자질부족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하였다. 전형적인 코드정치이자 불통정치의 사례이다.이처럼 청와대는 법적·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된 사람들을 장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하여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놓고도 인사검증에 실패한 수석의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현 정부에서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들은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다주택은 기본조건’이라는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을 청와대는 왜 계속 외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대통령은 ‘춘풍추상’이라는 액자를 비서관실에 장식용으로 선물하였다는 말인가? 청와대 사람들은 ‘춘풍추상’을 걸어놓고 행동은 거꾸로 ‘대인추상(待人秋霜) 지기춘풍(持己春風)’, 즉 요즈음 표현으로 말한다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청와대의 이율배반이 반복되고 있으니 지난 정부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아도 ‘역대급’이다.‘대통령의 입’이라고 하는 청와대의 김의겸 전 대변인은 고가부동산 투기의혹으로 결국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기자 시절 “재개발은 가난한 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는데, 청와대에 들어와 권력을 가지면서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다. 그는 야당이 “당신의 흑석지구 건물구입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는 착한 재개발이었기 때문이었는가?”라는 비난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의 행위는 ‘내가 하면 정상 매입’이고 ‘남이 하면 부동산 투기’라는 ‘내로남불’의 전형이었다.보통사람들도 언행이 불일치되면 신뢰를 잃게 되는데 하물며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그러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내로남불’이 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지도자에게 특히 요구되는 덕목은 바로 법적·도덕적 정당성의 토대가 되는‘춘풍추상에 대한 언행일치(言行一致)’이다.
2019-04-15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북미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행위자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라는 상이한 두 개의 외교정책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 이 두 개의 외교정책은 모순되거나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가?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의문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외교에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면과제들이다.지난 2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외교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정상회담의 결렬 후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은 “한국은 워싱턴의 동맹으로서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전면 철수했다가 3일 만에 일부 복귀한 것도 북미협상을 둘러싼 우리의 중재 역할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동시에, 향후 북미협상의 과정에서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라는 압력이었다.미국 역시 우리 정부의 대북인식과 비핵화 접근방식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무시하고 한국이 북한에 기울어져서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완화를 주장하면서 남북경협을 가속화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 보여주는 문대통령의 행태가 한미동맹의 당사국으로서 자신과 공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처럼 정부의 중재외교는 북미 양측으로부터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목적으로 결성된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미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중재외교와 동맹외교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향후 비핵화 외교전략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중재외교는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고 북미협상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려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협상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중재외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재외교가 동맹외교보다 결코 우선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미동맹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안보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현재의 국가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이라면, ‘중재외교는 미래의 한반도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의 평화구축을 위한 중재외교가 현재의 국가안보를 위한 동맹외교를 위태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서 중재외교를 추진할 때 비로소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대미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공조외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협상의 현실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균열은 오히려 우리의 중재외교 역량을 약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토대로 중재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대북협상 목표가 상충되지 않도록 긴밀한 협의를 통하여 정책조율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국제협상에서 ‘중재가 실패할 경우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동맹밖에 없다’는 사실은 냉혹한 세계외교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다.
2019-04-01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0일부터 일주일 동안 브루나이·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3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순방외교는 2017년 11월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로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신남방정책은 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사람(People)·평화(Peace)·번영(Prosperity) 등 이른바 ‘3P’를 중심으로 인도 및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정치적·경제적·전략적 협력관계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을 천명한 외교정책 선언이다. 이 정책은 그동안 강대국에 편중된 한국외교의 다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하여 강대국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한국의 자율성과 발언권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번 순방은 신남방정책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구체적 실행외교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유사한 정책선언들이 있었으나 지속적인 후속조치들이 미흡했던 반면에,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을 밝힌 후 또 다시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하여 협력강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또한 올해는 우리가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지 30주년을 맞이하여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아세안측 대화조정국인 브루나이를 직접 방문하여 사전에 협의하였다는 점도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그럼에도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남방정책이 ‘일회성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와 전문가그룹의 역할이다. 이미 신남방정책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이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50, 60대는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에 가라”는 막말파문으로 경질됨으로써 한 동안 신남방정책의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대통령의 정책선언이나 일회성 순방외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회담, 즉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각료회의, 고위관료회의 등 실무적 차원의 외교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측이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가면서 상생과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그룹의 자문도 절실하다. 게다가 실용성과 중립성이 강한 아세안 국가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이념적·정치적 색채가 강한 사람들보다는 실용주의적 전문가들이 문제해결에 유리하다. 이 점은 이념적 성향이 강한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특히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나아가 향후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신남방정책은 그 구체적 미래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이 보다 명확한 지향점을 설정하고 상호관계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한·아세안 관계는 지난 30년 동안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것이 질적 심화로 연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식과 접근방법이 그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국제협력은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 즉 주권존중, 협의를 통한 합의(consensus),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비공식적 접근 등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신남방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자세는 성공의 기본이다.
2019-03-18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대학교수 38년을 마무리하고 며칠 전 정년퇴임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교수의 3대 책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연구·봉사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지만 능력과 덕(德)이 부족하다보니 회한(悔恨) 또한 적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는 후배 교수들의 ‘행복하고 가치 있는 교수생활’을 위하여 선험자로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 즉 학령인구의 급감, 대학의 구조개혁, 교수연봉제 시행, 기업마인드(mind) 요구, 가중되는 행정업무, 돈과 권력에 대한 유혹 등 교수들의 신분과 품위를 위협하고 있는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교수로서 당연히 걸어가야 할 정도(正道)로부터 일탈(逸脫)의 위험에 직면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 존재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교수를 둘러싼 교내외적 환경이 악화될수록 자칫 본연의 책무를 잊어버리기 쉽다. 교수는 ‘생업(career)으로서의 교수’가 아니라 ‘천직(vocation)으로서의 교수’가 될 때 비로소 연구·교육·봉사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교수는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과 명예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삶의 소중한 가치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즉 ‘가치와 당위의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올바른 교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둘째, ‘정치권력과 일정한 거리두기’, 즉 교수는 권력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해야 한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언제나 철새처럼 권력자를 쫓아다니는 폴리페서(polifessor)들, 즉 정치교수들에게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마찬가지로 대학의 총장선거에 개입하거나 각종 보직을 탐하는 ‘캠퍼스 폴리틱스(campus politics)’에도 초연해야 한다. 캠퍼스 밖의 권력이나 캠퍼스 안의 권력이나 ‘권력의 속성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셋째, 교수의 사회봉사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과 정의구현이라는 공동체의 대의(大義)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교수가 대외적 봉사활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객관성을 상실하고 개인적 이익을 고려하거나 특정의 정치성향을 앞세우는 것은 봉사자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교수는 사회봉사에 있어서 언제나 ‘공정한 심판자’이자 ‘적극적 관찰자’의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넷째,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픈 청춘들’, 즉 우리 제자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명의(名醫)’가 되어야 한다.‘아프면 환자이지 뭐가 청춘이냐’라고 항의하는 제자들에게 청춘의 고통은 인생에서 당연히 겪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위로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나아가 교수는 아픈 청춘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과 같은 ‘진통제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정확히 진단, 처방해주는 ‘명의’가 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교수는 가진 자로서 당연히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교수에게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지식인으로서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선비정신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행복한 교수’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노래 ‘마이 웨이(my way)’처럼 교수는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당당하게 ‘교수의 길을 교수답게’ 걸어가야 한다.
2019-03-04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한국당 의원들이 벌이고 있는 ‘정치코미디’는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도 한국당이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하여 당대표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친박이 아니라고 옥중정치를 통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한국당의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은 한국당을 ‘정신이상자 집단’으로 만들고 있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유로 당대표 경선 연기를 주장했던 후보자들과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충돌은 현재 한국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한국당의 ‘자해(自害)소동과 정치코미디’에는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국민과 당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당이 누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정말로 모른다는 말인가? 옥중정치로 당대표 경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국가원수였던 정치지도자로서 그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참담한 심경(心境)을 생각한다면 옥중에서라도 최소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한편 대법원은 이미 5·18에 대해서 ‘전두환 일당의 국헌문란의 내란 행위’라고 최종 판단을 내린 바 있는데, 공당(公黨)인 한국당 의원들이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18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으로 폄하함으로써 당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제명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국민적 비판에 부딪치자 뒤 늦게 당 지도부가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은 한국당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자해적 행위는 한국당에 대한 ‘보수꼴통’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최근 상승세를 보이던 당 지지율을 다시 떨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당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자들과 당 선관위의 갈등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후보자들의 선거 연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선관위의 설명도 명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선거를 보이콧하는 후보자들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이처럼 한국당 내부에는‘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잠재된 폭탄들’이 많다. 그 이유는 한국당에는 ‘보수’라는 정치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개혁가 클라크(James F. Clark)는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시대의 일을 생각하지만,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하였고,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G. Pompidou)는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하였다. 한국당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득세하고 있는 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재기는 불가능하다.따라서 이제 한국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처방은 ‘죽어서 다시 사는 길’이다. 진정한 보수에게는 성실함과 겸손함이 있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국민은 보수에게 걸맞은 품격과 책임지는 정도(正道)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부터 죽겠다’는 각오가 절실한데 모두가 ‘나만은 살겠다’고 아우성이니 한국당의 미래가 암담하다. 누구를 위해서 옥중정치를 하고, 누구를 위해서 5·18을 폄훼하며, 누구를 위해서 당권투쟁을 하는가. 이기적인 정치꾼들이 권력을 가지려고 발악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정치생명은 더욱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한국당 의원들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잊어버리고 언젠가부터 ‘정치꾼’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