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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민단체와 정치권력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시민단체의 목적은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이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는 다르며,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보장되지 못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다.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공익의 확대’가 시민단체의 주된 관심사이다.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시민단체의 권력화’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지난 정부에서도 유사한 문제들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의 경우와 같이 ‘특정 시민단체와 정치권력의 유착관계’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민의가 반영되는 선거정치이기 때문에 ‘조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시민단체’와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부’의 야합(野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더욱이 현 정부가 이른바 ‘촛불시민혁명’으로 집권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클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문재인 정부의 경우 시민단체의 권력화 논쟁의 중심에는 ‘참여연대’가 있다. 청와대에는 정책실장, 민정수석, 사회수석, 선임행정관 등 9명, 그리고 내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재정개혁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 여성가족부장관 등 53명이 참여연대 출신이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역시 참여연대의 창립멤버들이다. 이처럼 권력의 핵심부에 특정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를 ‘참여연대 정부’ 또는 ‘참여연대와의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시민단체와 정치권력의 유착은 양측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시민단체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훼손됨으로써 공정한 감시자의 역할이 어려워진다. 지난 정부의 댓글조작사건에는 경찰 15명을 고발하였던 참여연대가 현 정부의 댓글조작사건인 ‘드루킹 게이트’에는 침묵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출범 당시 ‘정치 지향적이지 않은 시민운동을 펼치겠다’고 하면서 ‘권력 파수꾼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권력을 갖게 되자 더이상 권력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권력과 유착하게 되면 특정 정당의 외곽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한편 정부의 경우에도 특정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면 공직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깨어질 뿐만 아니라 ‘집단사고’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박영선 의원은 서울시 조직을 ‘시피아(시민단체+마피아)’라고 하면서 박원순 시장이 시민단체 출신을 요직에 배치하는 등 시피아의 병폐가 심각하다고 비판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참여연대 출신의 조국 민정수석이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 즉 조대업 고용노동부장관, 안경환 법무부장관 내정자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등에 대한 인사검증에 모두 실패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만사형통(萬事兄通)’이 현 정부에서는 ‘만사참통(萬事參通)’으로 풍자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착관계의 당사자들은 모두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정치권력을 감시하겠다던 시민단체도 이제 감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권력과 유착해 권력화된 시민단체는 더이상 정치권력을 감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제 국민들은 권력을 감시하겠다던 시민단체까지도 감시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 교수가 정치권력과 유착하면 ‘정치교수(폴리페서)’가 되고, 언론이 정치권력과 유착하면 ‘외눈박이 언론’이 되듯이, 시민단체도 정치권력과 유착하면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수가 없다. ‘시피아’가 되어버린 시민단체의 관심은 ‘조직의 이익’이지 ‘공공의 이익’은 아니기 때문이다.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18-05-02

북핵 정상회담의 이상과 현실

▲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두 차례의 정상회담, 즉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이 두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평화정착의 계기가 마련되겠지만, 만약 회담이 실패할 경우에는 현재 보다 더욱 심각한 전쟁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과정은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낙관할 수 없다. 한반도문제의 이해 당사국들이 다수인데다가 상호불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핵문제의 인식과 그 해결방법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이용하여 난국을 돌파해 왔다는 사실은 정상회담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또한 미국은 단기간에 속전속결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비핵화의 단계마다 보상이 따르는 점진적 접근법을 선호하고 있다. 더욱이 북미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후 핵 폐기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문대통령이 “결과도 낙관하기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라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그렇다면 정부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주의적 인식과 전략’이다.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이상)’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수단과 전략(현실)’이 강구되어야 한다. 북핵 폐기는 올림픽단일팀이나 예술단의 교류와 같은 감성적 접근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인식과 능력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운전해야 할 길은 잘 닦인 고속도로가 아니며 장애물이 많고 복잡하다. 운전자가 의욕만 앞서면 과속하게 되고, 현실을 무시하면 사고를 낸다. 도처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험난한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정확한 현실 인식과 대처 능력이 목표 안착(安着)의 관건이다.이러한 안전운전을 위해서는 유능한 동반자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미국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보유국인 북한과의 회담에서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미공조가 필요하다. 게다가 비핵화 탐색전의 성격이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은 상호 연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한미공조는 우려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연기하겠다”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한국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 한미공조의 현실이다. 김정은이 협상력 제고를 위하여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공조도 다지고 있는 마당에 한미동맹의 균열은 우리의 대북협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열린 사고(open mind)’가 정상회담의 성과와 비핵화 과정에서의 안전운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상회담을 준비함에 있어서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조언들을 두루 경청해야 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외눈박이 사고’로서는 비핵화과정의 수많은 장애들을 돌파할 수가 없다. 국가안보는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실수는 곧 바로 국가존망의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진보적 이상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참모들의 조언뿐만 아니라, 보수적 현실주의 안보전문가들의 고언(苦言)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교정책에 있어서 이상주의는 비핵화라는 당위적 목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현실주의는 그러한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2018-04-18

강자의 `갑질`, 약자의 `미투`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강자의 `갑질`에 대항하는 약자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이 우리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힘이 없어서 말할 수 없었던 약자들이 이 운동을 계기로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투운동은 단순한 성범죄가 아니라 `권력형 갑질`에 대한 고발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투운동의 본질은 `성(gender)`이 아니라 `권력(power)`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갑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갑질 성폭력`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모두가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고위직 검사장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여검사를 성추행하는가 하면, 도정을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가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하고도 속죄와 반성은커녕 자신의 살길을 찾기에 급급하다. 노벨문학상 후보자, 세계적 영화감독, 연극계의 대부 등 우리 문화예술계의 거장들 역시 천사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다. 더욱이 약자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할 천주교 사제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참 삶의 길`을 가르쳐야 할 대학 교수마저도 갑질 성폭력의 주범이 되고 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들이 이 지경이니 우리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문화민족으로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 즉 `선비정신`을 숭상하였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동물의 세계`가 되었단 말인가? 강자의 성폭력에 약자들이 울부짖고 있는 오늘의 이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이 권력과 명예를 갖게 된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그렇다면 우리사회의 갑을관계(甲乙關係)에서 만연하고 있는 `갑질 성적폐(性積弊)`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미투의 원인이 가진 자의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반드시 인간교육이 필요하고, 성폭력을 처벌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니 그 보완이 시급하다.인간교육의 차원에서는 가진 자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이 절실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욕망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는 `잘사는 것 못지않게 바르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는데, 우리의 교육은 가정과 학교를 가릴 것 없이 오직 `나만 잘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공동체를 위한 도덕과 정의`는 설 자리가 없다. 바르게 사는데 필요한 가치관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갑질 성폭력의 위험성이 높은 성인의 경우에는 사회교육의 차원에서 지속적인 재교육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이와 함께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는 갑질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현재 성범죄자의 대부분은 벌금형 또는 합의에 의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실정이다. 따라서 형법, 성폭력특별법 등을 개정하여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갑질 성폭력에 대한 실형 부과,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등을 뒷받침하여야 한다. 특히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공직사회의 경우에는 갑질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징계, 예를 들어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미투운동은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통이다. 미투는 `본능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의 세계`로부터 `이성과 윤리가 작동하는 문명의 세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겪고 있는 약자들의 숨 막히는 고통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그들의 아픔과 함께(#With You)해야 할 것이며, 도덕적 불감증 속에서 흐트러진 우리들의 자세를 스스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2018-04-04

대통령의 비극은 왜 반복되는가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대통령의 비극적 말로(末路)는 개인은 물론이고 그를 선택한 국민들의 불행이다. 비극의 헌정사를 보면 대통령이 해외망명 길을 떠났는가 하면, 측근에 의해 타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고, 구속수사를 받고 장기 수형자(受刑者)의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도소 수감상태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또 다시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수많은 범죄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이러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정치권력의 본질적 속성`에 기인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 비극의 중심에는 `대통령의 잘못된 권력관`과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다.인간은 권력을 끝없이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의 본질은 `권력의 획득과 유지 및 강화`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강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나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모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장기집권자의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된다`는 사실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공자는 `정치란 곧 올바름(政者正也)`이라고 하였다. 정치하는 사람이 올바르지 못하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여기에서부터 대통령의 비극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은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 가능성`을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참모들은 대통령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직언(直言)하는 충신이 되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상소(上疏)하는 충신들이 많았는데, 오늘날의 참모들은 모두가 `예스맨(yes man)`이 되어 권력자에게 아부만 하니 결국은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모두 `마약과 같은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니 함께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한편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의 비극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또 하나의 원인이다. 우리 헌법상 형식적으로는 3권이 분립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과 권력을 끝없이 확대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초법적이고 불법적인 권력행사로 나아가게 되고 결국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끝없는 권력욕을 가진 인간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정치제도는 위험천만하다. 대통령은 신이 아니며,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이 없는 자보다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은 반드시 분산되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견제와 감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간이 제도를 만드는 것이지만 만들어진 제도는 다시 인간의 행위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그 핵심은 `대통령 권력의 분산 및 감시의 제도화`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비극은 그를 선택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민주정치는 `국민에 의한 정치`이기 때문에 `국민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책임은 대통령 선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선출된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 감독을 해야 한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의 거리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뜨거운 정치적 관심, 이른바 `촛불민심`은 결국 불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권좌로부터 끌어내렸다. 이처럼 국민들이 항상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면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할 수가 없다.

2018-03-27

한국 안보, 이스라엘에 길을 묻다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면서 나치(Nazi)의 홀로코스트(Holocaust)와 같은 온갖 핍박과 박해를 받다가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비로소 나라를 갖게 되었다. 인구 800만 명의 작은 나라가 적대적인 20여 개의 이슬람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들의 안보환경이 한국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국가안보전략은 오늘날 심각한 안보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국가안보전략은 `평시에는 강력한 억제력(deterrence)`을 확보하고, `적이 도발할 경우에는 확실한 응징과 보복`을 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들은 `평화란 억제력의 산물`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핵무기와 최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또한 여성도 국방의무가 있는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전쟁에 동원될 수 있도록 항상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적이 도발하면 반드시 2~3배의 보복을 감행함으로써 전율과 공포를 느껴서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응징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안보전략은 우리에게 북한의 핵위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implication)를 던져주고 있다.첫째, 이스라엘의 국가안보전략은 철저히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힘이 없는 평화`는 지켜질 수 없으며, 적과의 대화도 힘이 바탕이 될 때 협상력이 제고된다고 믿는다.현실주의 안보전략의 핵심은 `국가안보에 있어서 자조(self-reliance)`이며, 이스라엘의 핵무장도 바로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북한과의 핵 비대칭성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둘째, 여야정치인과 국민들의 통일된 안보의식이다. 이스라엘에는 한국보다 더 많은 10여 개의 원내 정당들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격론을 벌이다가도 국가안보위협에 대해서는 일치된 대응을 한다. 나라 없이 유랑했던 그들에게 있어서 `안보는 곧 생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은 일제의 지배와 북한의 남침을 겪었으면서도 아직도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으로 날을 세고 있다.셋째, 이스라엘은 이적(利敵)세력들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엄격한 국가보안법과 같은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이적세력들이 상당히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이나 국정원이 최근에는 적폐청산의 영향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넷째, 강력한 자주국방능력이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600만 유대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자조에 의한 국가생존의 길을 추구해 왔는데 반해, 한국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함으로써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자체 방위능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국방안보전문가들의 북핵과 관련한 충고이다. 그들은 “불량국가인 북한이 핵을 가지면 한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북핵은 결코 회담이나 말로서는 포기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북핵은 동결이 아니라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며, 평화회담이 실패할 경우에는 무력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나아가 그들은 북핵이 폐기되지 않을 경우 한국도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확장억제력은 안보환경이나 정치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은 핵무장뿐이며, 중국에게 북핵 폐기의 진정성을 촉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스라엘 안보전문가들의 충고는 북핵 인질의 위험에 처해 있는 우리가 심각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18-03-07

야누스와의 대화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야누스(Janus)는 머리 앞뒤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神)이다. 신화적 존재인 야누스가 오늘날에는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이중적이고 가증스런 사람`을 빗대어 사용되고 있다. 김정은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앞쪽의 얼굴은 웃으면서 남북대화를 말하고 있지만, 뒤쪽의 얼굴은 핵무기로 한국을 지배하겠다는 독기(毒氣)가 서린다. 핵전쟁을 위협하다가 갑자기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고 특사를 파견해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하는가 하면, 대규모 예술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미인계(美人計)`를 펼치면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벌이고 있는 미소(微笑)외교에 넋을 잃고 구경하다가 보면 그것이 북한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공개 처형하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한 패륜아(悖倫兒)의 모습은 감추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핵단추가 내 책상위에 있다`고 겁박하던 김정은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평화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야누스의 전형적인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이다.그럼에도 우리는 북핵을 폐기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야누스와의 대화는 그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화(禍)를 불러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있었던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이다.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잘못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면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그렇다면 야누스와의 대화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현재 정부가 남북대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한미갈등`과 `남남갈등`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개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향후 남북대화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한미동맹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여 우리에게 핵 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의 초석이다. 야누스의 미소로 접근해오는 북한의 화전양면전술에 기만당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한미동맹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남북대화에 목말라하던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는 하나` 또는 `우리민족끼리`에 현혹되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강행하게 된다면 한미동맹이 와해될 수 있다. 나아가 한미동맹이 깨진 후에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선제 타격할 경우에 한국안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협의하기 위한 대북특사의 파견에 앞서서 대미특사를 먼저 보내서 한미 간 이견을 조율하고 대북공조를 강화하는 것이 순서이다. 김정은의 노림수가 한미동맹의 균열에 있기 때문에 한미공조가 없는 한국의 일방적인 남북대화는 이적(利敵)행위가 될 수 있다. 또한 한미동맹이 뒷받침되지 않은 남북대화는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의 갑을관계(甲乙關係)`로 전락하기 때문에 우리는 북핵의 노예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이와 함께 정부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우리 내부에서 점차 심화되고 있는 남남갈등의 해소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남북대화에서 정부의 대북협상력이 제고되기 위해서는 국내적 지지기반의 확보, 즉 국론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여야정당들이 남북대화를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할 경우에는 남남갈등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여당은 `선거의 승리라는 정파이익`이 아니라 `북핵의 폐기라는 국가이익`을 위해서 야당과 협의하는 등 국론통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18-02-21

평창올림픽, 평양열병식 그리고 남북대화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평창올림픽을 계기로 2년 만에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대화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남북대화와 평화올림픽은 당연히 환영하지만, 북한의 올림픽 참가의도와 정부의 대화방식에 적지 않은 의문과 우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유엔의 계속되는 대북제재와 미국의 강화되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한편, 이 기회를 이용해 핵보유국으로서 평화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한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가 20여 명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예술단은 140명, 응원단은 230명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은 올림픽 전야제가 열리는 8일에 `건군절`을 명분으로 핵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향후 개최하기로 합의한 남북고위급 및 군사당국회담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그럼에도 현재 정부가 남북대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식과 태도는 상당히 우려된다. 우리가 남북대화를 하는 궁극적 목적은 전쟁이 아닌 평화적 협상을 통하여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것이지, 북한의 올림픽 참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남북대화는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어서 향후 북미협상을 통하여 북핵 폐기로 연결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물론 전쟁위기 속에서 가까스로 시작된 남북대화가 단기간에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과의 대화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 남북대화와 한미동맹 그리고 북미협상은 한반도 비핵화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해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대화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북한의 핵 폐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대화의 목적이 `북핵의 동결인가` 아니면 `북핵의 폐기인가`에 따라서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전략은 크게 달라진다. 만약 대화의 목적이 북핵의 동결을 전제로 한 현상유지적 평화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것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의 목적과 정면으로 충돌할 뿐만 아니라, `한국이 북한의 핵 인질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남북대화는 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통한봉미(通韓封美)` 전략을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이번 남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문제는 남북당사자가 해결한다`라는 사항을 이유로 향후 북한은 한미동맹의 균열을 목적으로 양국을 이간질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위협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확산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과의 철저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따라서 남북대화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는 `평화를 구걸하는 저자세`가 아니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은 금강산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전날에 대규모 열병식을 강행하려고 한다. 이처럼 계속되는 북한의 `갑(甲)질`에도 정부는 대화중단을 우려하여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다.그러면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남북대화를 지키는데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저자세와 대통령의 하소연은 대북협상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대통령은 감성적으로 남북대화의 지지를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이성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당당한 대화자세로 치밀한 협상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먼저이다.

2018-02-07

신남방정책의 성공을 위한 제언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아세안(ASEAN)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그동안 우리의 외교는 아세안이 한국의 정치경제 및 외교에서 차지하는 커다란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관심과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고 하겠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아세안과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제적으로 볼 때 아세안은 인구 6억4천만 명, GDP 2조8천억 달러의 거대한 시장으로서 중국 다음으로 제2의 무역파트너이며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이다. 안보적 측면에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아세안확대외상회의(ASEAN-PMC)는 한반도평화를 위한 협력안보(cooperative security)의 유용한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또한 외교적 차원에서는 아세안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3(APT) 등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지역협력에 있어서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을 과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구축에 있어서도 한국과 중견국(middle power) 연대를 할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이다.따라서 정부가 아세안외교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일단 정책방향을 바르게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남방정책이 대통령의 선언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부가 집권초기에 제시하였던 유사한 외교정책선언들이 대부분 실패하였던 이유는 `외교가 내정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은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는`포퓰리즘(populism)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적 선전효과`에 급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하며,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실효성 있는 외교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첫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남아국가들의 국제협력방식, 즉 이른바 `아세안 방식(ASEAN way)`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구체적 협력전략들이 수립, 추진되어야 한다. 아세안방식은 주권존중, 공동협의를 통한 합의제, 비공식적 접근,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점진주의(incrementalism)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구적 협력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둘째, 집단적 차원의 아세안외교와 개별적 차원의 동남아 각국외교는 그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정치체제와 경제수준의 격차 및 사회문화적 이질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아세안이라는 집단적 차원의 외교와 이질적 구성원들에 대한 개별적 차원의 외교는 결코 동일할 수 없으며, 회원국에 대한 외교는 국가별 맞춤형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셋째, 신남방정책의 구체적 추진을 위하여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아세안정책자문위원회`나 외교부 산하에 `신남방정책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는 등 전문적으로 정책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외교정책선언이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제도화에 토대를 둔 지속적인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아세안을 대북정책에 활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세안은 회원국들 모두가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서 치열한 외교경쟁의 무대가 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아세안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 협력하려는 국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세안외교에서도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8-01-24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파스칼은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야수도 아니다.…. 불행한 것은 천사의 흉내를 내려는 자가 야수의 흉내를 내곤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천사와 악마의 중간적 존재`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정치와 사회는 `나는 천사요 당신은 악마`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체제의 강점인 다양한 사고의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한다.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회색들은 모두 `지조 없는 양다리 또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 결과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는 크지만 중도(中道)는 설자리가 없다.이분법적 사고는 복잡한 정치현상에 개입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단지 둘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유치한 수준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서는 다원성과 복합성이 특징인 민주정치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을 좋아하기 때문에 흑백논리는 상당히 유혹적인 인식방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정치인들은 상대방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흑백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분법은 정치현상을 극화(劇化)시킴으로써 그 본질이 왜곡될 수 있지만 대중을 선동하여 지지를 유도하는 데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상대방을 부정하는 흑백논리는 비민주적 사고방식으로서 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다소 많거나 적은 것(more or less)`을 추구한다. 흑백논리는 `천사와 악마의 투쟁논리`이지 `중간자인 인간세계의 타협논리`는 아니다.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체제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불가능하며 복종이 아니면 죽음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또한 권력자에 대한 절대복종을 위하여 `인간을 신격화(神格化)`하는 것이 독제체제의 특징이다.흑백논리가 만연하면 국론분열이 심화되어 국가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견해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 극심한 대결로 치닫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모래알처럼 산산조각이 난 국가는 외부침략에 취약하여 파멸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흑백논리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나는 절대자인 신이 아니라 상대적 존재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도 역시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국가발전의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할 `정치이념이 극단화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우상화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를 뿐이고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서로의 단점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배우려는 지혜가 필요하다.모든 잘못의 원인을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으로 돌리면 그 치유가 불가능해진다.진보는 `보수의 경륜과 안정성`을 배울 것이요, 보수는 `진보의 혁신과 진취성`을 배울 일이다.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이다. 여당은 야당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있을 때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적 견해를 듣고, 진보주의자는 보수적 견해를 경청할 때 비로소 편향된 외눈박이 사고를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동시에 민주주의자가 지녀야 할 가치관이요 국민통합의 길이다.

2018-01-10

애국의 길, 노블레스 오블리주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부(富)나 권력 또는 명성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진 자가 솔선수범할 때 사회통합은 가능해지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국력을 증강시키는 애국의 길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1945년 당시 19세의 공주 신분으로서 여군장교로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앤드루 왕자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영국 최고의 명문이자 귀족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의 본관 벽면에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이 학교 출신 2천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튼인(Etonian)들이 전통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은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슬로건이다. 바로 이것이 영국의 힘이요, 왕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이다.미국도 역시 가진 자가 솔선수범하는 명예로운 전통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정치인과 군 장성의 자녀들은 142명이나 되었으며, 이 가운데 35명은 전사했다.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주식 99%를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와 투자의 천재 워렌 버핏은 전 재산의 절반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서약(giving pledge)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2016년 뉴욕의 상위 1%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과 우당 이회영, 300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의 미담이나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 등 이른바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한 최근에는 기부문화가 확산되면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가진 자의 책임의식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도처에서 `갑질`이 난무하고 있다. 대기업 회장의 쇠파이프 보복폭행사건, 항공사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그리고 심지어 사회정의를 선도해야 할 일부 판검사·언론인·대학교수들까지도 다양한 형태의 갑질과 범법행위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이는 모두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대척점에 있는 사례들로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따라서 이제 우리사회의 지도자들도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도덕적 재무장이 필요하다. 영국의 이튼에서는 매년 `이튼 액션(Eton action)`이라는 행사를 통하여 사회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육을 한다.어느 해 교장은 졸업사를 통해 “우리학교는 자기가 출세하거나 자기만 잘되기 원하는 사람은 원치 않습니다.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줄 알고 주변을 위하는 사람을 원합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선진국의 상류사회에서는 미래세대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잘사는 것보다도 바르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자녀의 출세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출세한 후에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도 함께 가르치고 있는가.그리고 이러한 자녀교육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있는가. 미래 세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은 현 세대의 책임이다.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더욱 춥고 힘들어하는 연말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있다면 그들의 아픔을 모르는 척하지 말자.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애국의 길이다.

2017-12-27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외교의 진로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우리의 생존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안보`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경제`는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는 우리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둘이 항상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의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경제보복에서 알 수 있듯이,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는 당사국 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변수는 `북한`과 `미중관계`이다.북한은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북한의 체제붕괴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에 바로 위협을 주게 된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지속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엔제재에 상당히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환영할 수도 없지만 북한체제의 붕괴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또한 미중관계 역시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미중관계가 협력적일 때는 한중관계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양 강대국이 북한의 핵문제나 지역패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 어려워진다. 중국의 북핵에 대한 입장은 원론적 수준의 반대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핵과 ICBM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용인할 수가 없다.더욱이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50년까지 종합국력과 국제영향력에서 세계최고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천명했다. 반면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세력팽창을 견제하기 위하여 중국과 갈등관계에 있는 인도를 끌어들여 `인도-태평양 라인`으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라인`을 전략적으로 수정했다.이는 향후 미중간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를 둘러싼 패권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이처럼 우리의 외교환경은 G2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는 변수까지 개입되고 있어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략환경에서 우리의 생존을 확보하고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국들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그렇다면 한국외교의 진로는 무엇인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강대국이 지배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는 그러한 전략 목표가 반드시 우리의 의도대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중 패권경쟁시대의 한국외교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상을 추구하되 단기적으로는 현실의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단기적으로 볼 때 한국외교의 최대 당면과제는 북한의 핵위협에 실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중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함으로써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이러한 전략환경에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안보)가 `잘사느냐 못사느냐의 문제`(경제)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과의 동맹외교`가 `중국과의 전략외교`보다 우선돼야 한다.또한 장기적 차원에서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외교환경, 즉 한반도 평화와 안정적인 미중관계를 위하여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서 우리는 미중갈등을 완화하고 협력이 증진될 수 있도록 `중개외교(bridging diplomacy)`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현재 일부 학자와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담론(談論)의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는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평화의 제도화`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2017-12-20

망국의 치욕을 벌써 잊었는가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역사이며,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는 문명은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된다`고 했다. 우리가 임진왜란의 참화(慘禍)를 겪었으면서도 또 다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치적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일본은 북핵을 명분으로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또한 안으로는 대통령 탄핵 이후 새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탄핵정국에서의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이 지금은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동서고금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국가멸망의 교훈은 `외침이 있기 이전에 이미 내부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구한말 수구파와 개화파, 친러·친중·친일파의 대립은 결국 일제의 지배를 자초하였고, 해방 후 분단된 한국은 수많은 정파의 난립과 좌우의 이념대립 속에서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2년도 체 되지 않아서 북한의 남침을 초래하였다.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겪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갈등과 대립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대통령 탄핵으로 집권한 새 정부는 `적폐를 청산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보수야당은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반드시 성공해야 할 부정부패의 척결이 진영논리에 묻혀서 그 의도를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수 또는 진보의 프레임에 갇혀있는 `외눈박이 언론들`까지 가세하여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이념적·지역적 편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누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의 국민통합에 대한 의지와 실천적 노력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고 했고,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서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국민의 화합과 통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당연하고도 올바른 인식이다.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러한 인식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국민화합과 통합을 강조했는데,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설치하였으나 결과는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켰다. 그것은 대통령 자신이 진영논리에 갇혀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합의 지도자는 `듣고 싶은 말`보다는 `듣기 싫은 말`에 귀를 더욱 기울이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다면 야당이 `국회를 무시한다`고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다.말로는 `협치(協治)`를 내세우면서도 행동은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한다면 민주정치의 대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불가능하다.물론 대통령은 야당의 부당한 요구와 비협조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치를 통해서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쪽은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다.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갑질`하는 폐단은 비판하면서도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작은 권력을 가진 야당` 때문에 협치가 안 된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강자(强者)가 솔선수범(率先垂範)해야 한다는`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이 요구되는 것은 정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17-11-29

국가안보전략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힘의 정치`와 `국가이익 중심주의`가 냉혹한 국제관계의 본질적 속성임을 강조한다. 모든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이며, 이것을 지키는 수단이 바로 국가의 힘, 즉 `국력`이라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정의가 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은 `힘이 있어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반박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나는 힘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힘의 시대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강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철저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또한 그는 도쿄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도 힘에 바탕을 둔 대북압박을 최대한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는데, 일본의 아베 수상도 역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일본의 대미외교가 굴욕적이었다고 비난 받을 정도로 아베는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이다.이에 반해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의 내용은 그동안 우려되어 왔던 북핵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견해 차이를 봉합하고 한미결속을 재확인한 것이었는데, 미일공동회견에 비하면 대북압박의 강도는 약했다.물론 이러한 결과는 일본과 한국의 전략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도자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트럼프와 아베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문 대통령은 이상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의 정치지도자가 북핵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는 대북제재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국가적 추구가치와 개인적 추구가치가 충돌될 때 자신의 정치성향과는 관계없이 국가적 가치를 우선해야 함은 물론이다.이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균형외교` 역시 이상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북한의 핵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집권초기에 추진하다가 포기한 `동북아균형자론`을 연상케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강화도 필요하지만, 이로 인해 한미동맹관계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외교가 결코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의 모호한 외교노선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불신을 키울 수 있는 불필요한 외교적 수사는 우리의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더욱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이른바 3불(三不) 발언, 즉 `사드(THAAD)의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등 그 어느 것도 추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중국만을 의식한 외교적 단견이며,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향후 우리의 국익 추구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명한 외교관은 경우에 따라서는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전략을 구사하여 향후 선택의 가능성을 남겨놓음으로써 협상력을 제고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의 사드압박에 굴복하여 동맹국인 미국과는 사전 조율도 없이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를 스스로 던져버리고 있으니 `아마추어 외교`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이처럼 국가안보전략으로서 이상주의는 바람직한 미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재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에 악용되거나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안보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핵무장과 이로 인한 북핵 인질이 될 위험성이다.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확고한 현실주의적 안보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2017-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