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정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우리는 천사, 저들은 악마”라는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로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여야가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는 한 ‘정치는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정치원로 유인태 전 의원이 “우리정치는 진영논리가 극심해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고 했겠는가.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이분법 정치에 빠져있는가? 그것은 잘못된 정치의식과 권력욕 때문이다. 이분법은 권력을 획득·유지·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현상을 극화한 ‘정치마케팅 전략’일 뿐, 객관적 사실(fact)과는 거리가 멀다. 이분법은 정치현상 이해의 편리함과 명확성을 제공하지만, 흑백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색을 외면하는 ‘아메바(amoeba)적 사고방식’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악(惡)의 동의어는 무사유(無思惟)이며, 그것은 곧 정신의 죽음”이라고 지적했듯이, 정치적 신념이 ‘다른 것’을 악과 연계하여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무지와 오만’이 이분법 정치의 주범이다. 정치란 흑백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다양한 회색의 스팩트럼(spectrum) 가운데 하나를 대화와 타협으로 결정해나가는 과정임에도 정치인들의 사유능력 부족과 잘못된 권력욕이 정치를 실종시킨 것이다.
이분법 정치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좀 더 많거나 적은 것(more or less)’을 두고 타협하는 열린사회의 정치사상이다. 반면에 절대주의는 인간의 한계와 상대성을 부정하는 닫힌사회의 흑백론이다. 독재정치에서는 관점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으며, 오직 독재자의 판단만이 선이요 정의라고 강요될 뿐이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역설하면서도 이분법 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에 필요한 사고의 유연성’은 없고 상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성찰에는 인색하다. ‘양비론(兩非論)’을 혐오하고, 중도층을 ‘회색분자’ 또는 ‘기회주의자’로 매도하는 이분법 정치는 사회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원화·복잡화·세계화된 오늘날에는 시대착오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조정과 타협으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회색논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분법 정치를 넘어서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법’은 선악을 구분하는 ‘흑백논리’이지만, ‘정치’는 이해갈등을 조정·타협하는 ‘회색논리’이다. 때문에 법조인 출신 대통령과 여야의 당 대표들은 ‘법’과 ‘정치’를 혼동하여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타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직된 이념의 정치’는 ‘유연한 실용의 정치’로 전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