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을 인용하여 실용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2월 10일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탈이념·탈진영의 실용주의가 성장발전의 동력”이라면서 실용정치를 거듭 역설했다. 심지어 당의 이념 정체성까지도 ‘중도·보수’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왜 갑자기 ‘우(右)클릭’해서 실용주의자로 변신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지지율 정체로 인해 조기대선이 실시될 경우 승패를 결정짓는 중도층에 대한 외연확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용주의 정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진영정치가 판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용정치는 타협의 가능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재명의 실용주의에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말’과 ‘행동’이 달라서 ‘진정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우파 실용주의’를, 그리고 행동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하는데 누가 믿겠는가. 그가 주장하는 ‘국가주도 성장과 개혁’이라는 것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키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민주당에서도 왼쪽으로 분류되던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당 내부에서조차 ‘진보의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말로는 덩샤오핑을 표방하면서 행동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닮았으니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더욱이 그의 실용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경에 포함시켰고, 전향적 검토를 약속했던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허용’도 없던 일이 되었다.
‘진보적 기본사회’를 외치다가 갑자기 ‘보수적 성장론’으로 선회하고, 다시 반발이 나오면 이 둘을 적당히 버무려 붙인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불리하면 뒤집고,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한 그가 요즘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행태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는 중도확장전략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부도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위해 민주당의 정체성까지 ‘중도·보수’로 규정하고 있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다.
당의 이념 정체성도 통일하지 못하면서 보수의 성장담론을 추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실용주의가 거짓이 아니라면 민주당 강령부터 중도·보수로 바꾸는 동시에 실제 정책의 추진에서도 그 진정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이념으로 분열’된 나라는 ‘실용으로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집권에만 혈안이 된 이재명의 ‘정략적인 오락가락 실용주의’로서는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실각당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깊은 통찰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