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게 겨울이 얼린 얼음처럼
지켜진 것 같은 세계
언 늪이 녹으면
부서지는 유리 열쇠들
미래의 텅 빈 정원에서
누가 지문이 아닌 열쇠를 쓰는지
늪 속으로 사라지는 열쇠들
잠기는 비밀들
한없이 가라앉는 비밀은
오랜 빛이 되는데
누가 얼굴이 아닌 열쇠로
이 여린 비밀을 숨겨두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아무도 모르는 빛처럼
세계를 묻어둔 사람
먼 늪 속의 빛으로
깊이 지켜질 것 같은 약속은
투명한 열쇠가 스치면
열리는 바닥이 있다는 것
―안미린, ‘폐정원’ 전문 (문학과사회, 153호)
안미린의 연작이기도 한 ‘폐정원’은 차갑고도 투명한 겨울처럼 단단하게 잠겨 있다. 누가 이 세계를 잠근 것인가. 그렇다면 누가 열 것인가. 화자의 이 세계는 ‘유리 열쇠’라는 도구로만 열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언 늪이 녹으면 열쇠도 부서진다”니. 이 세계가 얼마나 불신과 연약한 약속 위에 서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누가 열쇠를 쓰는지, 누가 비밀을 숨기는지는 중요하지 않거나 모호하다. 대신 ‘얼음’, ‘늪’, ‘유리 열쇠’, ‘지문’, ‘얼굴’, ‘빛’이라는 물질들이 서로 스치고, 부서지고, 가라앉으며 사건을 주도한다.
화자는 왜 선명한 지문이나 얼굴 대신 불안하기 그지없는 유리 열쇠라는 사물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이는 개인적 욕망이기보다 이 세계를 여닫는 행위와 질서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리 열쇠는 인간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가라앉고 스러지며 늪과 섞이는 생동하는 물질처럼 인식된다. 예컨대 인간의 지문이 지워진 자리에 사물의 열쇠가 놓이는 것처럼 사라진 정원에서 물질들이 스스로 맺는 약속과 그들만이 생동하는 감각이 있다.
제인 베넷(Jane Bennett)이나 카렌 바라드(Karen Barad)는 물질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고체인 ‘얼음’이 액체인 ‘녹는 늪’이 되듯 ‘부서지는 열쇠’는 결국 파편이 되어 종내에는 빛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물질은 마치 살아 있는 객체로 표상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화자가 말하는 비밀이 언제까지 고정되어 있지 않을 것임을 희망할 수도 있겠다. 예컨대, ‘늪’이라는 물질 속으로 침잠하며 ‘빛’이라는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물질로 현현한다. 사물은 인간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사건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 “투명한 열쇠가 스치면 열리는 바닥”처럼 바닥을 여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열쇠와 바닥이라는 두 물질 사이의 접촉이라는 물리적 사건일 테니까.
“그들은 거울을 사용한다(They Do it with Mirrors).” 이 문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의 한 제목이다. 결국, 세계의 진실은 인간이 파헤치지 않아도 언젠가 ‘투명한 열쇠’를 만나기만 한다면 열릴 것이다. 스스로가 제 몸을 열어 보이는 주문처럼 말이다.
“투명한 열쇠가 스치면 열리는 바닥”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