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상공을 가로지르는
날개가 큰, 까치 같고 여치 같은
검은 새 한 마리
대구은행 옥상에나
동아백화점의 맨 끝 층 계단에
앉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것들 위에 새의 그림자가 찍히고
그때 빌딩들은 뼈마디 쑤시는 소리를 낸다.
창에는 사람 그림자들이 어른거리고.
나의 길은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지만
저 새의 길은 숲에서 숲으로 이어진다.
하늘이 조금 비친 빌딩의 위쪽으로는
파란색이 창백하게 그물에 걸린 새처럼
퍼덕이고, 그쪽으로 누군가가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물론, 내게도 가슴에
새가 지나간 자국이 만져진다.
―이하석, ‘상처1’ 전문 (‘우리 낯선 사람들’, 문학동네)
지역과 지방 사이, 언제부터인가 온라인상에서는 “고담 대구”처럼 도시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밈이 유행처럼 번졌다. 지역을 비하한다는 의견과 흥미롭다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하석의 이 시는 ‘대구’라는 시공간에 대한 인식 없이 화자의 통증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구는 중층적인 역사와 사회적 상처를 안고 있는 공간이다. 이 지역 시인들에게 장소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억압된 기억이 분출하고 애도와 저항이 교차하는 공간일 테니까.
시는 “대구라는 상공을 가로지르는” 날개가 크고 검은 새로 시작해 결국 거스를 수 없는 저류를 만들어내며 시간을 이동하는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대구은행 옥상”이나 “동아백화점의 맨 끝 층 계단”에 내려앉은 “까치 같고 여치” 같은 이 새는 외계로부터 침윤된 사건이며 대상이다.
제한된 공간 속 “새의 그림자가 찍히”는 이미지와 “빌딩들은 뼈마디 쑤시는 소리를 내”는 언술의 배치는 숨겨진 맥락이나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그런데 불안과 통증은 거기서만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딘가에서 재현되지 못한 채 빌딩 창에 “그림자들이 어른 거리”며 걸려있다. 이때 “그물에 걸린 새처럼 퍼덕이는” 파란 하늘의 “창백”함이란 계속해서 복제되는 그림자이다.
‘기억과 서사’에서 오카 마리는 “리얼리즘의 욕망”이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 그 때문에 재현 불가능한 현실이나 사건의 잉여, 타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와 결부되어 있다”라고 했다. 희망은 작은 기억의 연쇄에서 시작된다. 역사의 줄기도 그럴 것이다. 이 시인에게 대구라는 장소는 곧 그 사람이며 몸이 될 테니까.
이미지는 기억과 고통을 사이에 두고 나와 새의 길은 아프게 공명하며, 길은 나뉜다. “도시에서 도시로” “숲에서 숲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 노출된 도시인과 새의 시선은 의무를 나눠 가지며 공동체성을 환기한다. “누군가 가슴의 통증”은 이하석 시인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가창댐”을 비롯해 그동안 유사하게 소비해 온 역사적 트라우마가 누적된 감정일 것이다.
이 시의 전반부가 불편한 고통을 바라보게 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이 고통에 참여하게 한다. 간결한 이미지와 언술의 배치만으로도 깊숙이 개입하는 화자의 심정은 곧 시대의 고통이고,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동하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수많은 익명의 마음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온전하게 제 길을 향하는 시인과 새가 남긴 지나간 자국을 또렷하게 기억으로 남긴다.
“물론 내 가슴에 새가 지나간 자국이 만져진다”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