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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뛰는 시처럼, 말 달리는

등록일 2026-02-08 16:41 게재일 2026-02-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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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책만 한 함선은 없다

우리를 먼 땅으로 데려다주는

시 한 편처럼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 여행은 가장 가난한 자도 통행세 없이 갈 수 있도다

얼마나 검소한 마차인가

인간 영혼을 실어 나르는

이 전차여.

There is no Frigate like a Book

To take us Lands away,

Nor any Coursers like a Page

Of prancing Poetry ╾

This Travel may the poorest take

Without offence of Toll ╾

How frugal is the Chariot

That bears the Human soul.

―Emily Dickinson, ‘There Is No Frigat Like a Book’ 전문 (ALLIE ESIRI, A POEM FOR EVERY DAY OF THE YEAR)

 

1455년 2월 23일은 구텐베르크 성경의 첫 인쇄일로 여겨진다. 대량 생산된 최초의 책으로 약 180부가 인쇄되었다. 따라서 이날은 책의 탄생일이다. 인쇄기를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세상을 바꾼 날이기도 하다. 스스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 그것은 중세 성직자의 왜곡으로부터 본질을 회복하는 혁명의 서막이었다. 미국의 위대한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책과 문학을 기리며 이 짧은 시를 썼다. 비록 그녀 생전에는 단 일곱 편의 시밖에 발표하지 못했을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책은 우리를, 우리의 영혼을 먼 세계로 실어 나르는 함선이라고 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는 한 소년을 향해 좀 더 먼 곳으로 말을 달려보자. 곧 초현실주의 스페인의 국민 시인으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를 만날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고 종종 꿈결 같은 이미지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 초기에 정치적 견해 차이로 암살을 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반지로 만들어 그가 내 침묵을 새끼손가락에 끼게 하리라. 물 한 방울 속에서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포로가 된 목소리는 멀리서 귀뚜라미 옷을 입었다.

“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king of the cricktes had it.)/ I do not want itn for speaking with; I Will make a ring of it/ so that he may wear my silence/ on his little finger/In a drop of water he little boy was looking for his voice. The captive voice, far away, put on a cricket’s clothes. (‘The Little Mute Boy, Federico Garcia Lorca, translated by w.s. Merwin’)”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혹은 우리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비극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로르카에게 있어서는 침묵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마저 중요했을 것이다.

먼 데 시인 아니어도 가까운 동네 프리미엄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시인 김수영이 순경을 보자마자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라며 절을 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문제는 시인이 술이 깬 다음 날 불안했다고 하는 고백에 있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불신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때 느끼는 공포를 실감할 수 있으리라.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혁명은 가르시아 로르카와 김수영을 경유해 이곳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떤 권력의 장이든 다르지 않다. 최근 항일운동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박열’에서 하네코 후미코의 마지막 변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이 대사는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환기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아는 한 시인은 “우리가 나눈 모든 것들이 우리를 증명한다”라고 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암투하는 비본질이 본질을 흐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날뛰는 시처럼 달릴 수 있는 말도 없으니”

/이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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