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
으깨어진 꽃잎을 한 줌 가득 쥐고서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
재처럼 흩날리리라
참회조차 사라진
고백이
검붉은 불티를 내 눈에 흩뿌렸으니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
―이토록, ‘책을 펼치자 십자가들이 쏟아졌다’ 전문 (‘이후의 세계’ , 가히)
제목에서부터 결구까지 시종일관 강렬하다. 이 시의 십자가가 표상하는 핵심 이미지는 몇 가지의 상징적 층위를 거느리고 있다. 우선 ‘책’을 중심으로 책의 ‘안’과 ‘바깥’에 관해 사유해 본다면, 여기서 책은 기록으로서의 율법인 정전의 공간일 텐데, 문제의 초점은 이 책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절로 말이 약해진다. 내 신념이 보잘것없어서이기도 하고, 거기에 대고 강하게 말했다가는 튕겨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되지 못한 것은 ‘말’이기에 말로 할 수 있는 건 책의 공간으로부터 추방된 번제의 자리가 될 것이다. 종교적 상징을 떠나서 십자가가 표상하는 바는 무엇보다 죄의 대속이며 구원의 약속과 다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 지점에서 구원의 진실은 책의 안과 밖의 공간에서 선명하게 대별된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책의 ‘바깥’이라는 화자의 위치에 있다.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라는 언표에서 알 수 있듯 십자가는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폭력과 잔혹함으로 전도되어 있다. 그 어떤 희생이나 번제보다 말과 문장이 더 잔인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이 시는 참회의 방식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라고 했을 때, 과연 기록으로 남는 것과 기록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화자가 고백하는 사랑은 죄이자, 신성모독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진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화자는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십자가는 구원의 표식이 아니라 몸 밖으로 쏟아지는 상처가 된다. 그렇다면 “불”“재”“검붉은 불티”가 표상하는 것은 결국 정화가 아니라 훼손으로 인해 잔존 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사랑은 타오르지만, 남는 것은 구원도 속죄도 아닌 상처일 것이기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와 연계하여 읽어보자면, 이 시는 개인적 고백을 넘어 구원 서사의 붕괴 이후에 남은 잔해의 독백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가령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라는 언술은 ‘사탄탱고’의 마을 사람들과 겹친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목소리를 합창함으로써 책임을 지우는 존재들이다.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라고 했을 때, 집단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통성기도는 사랑이 아니라 소음이고 군중 심리의 대리라고 볼 수 있다. 집단은 기도하고 고백하지만, 진짜 상처를 짊어진 자는 기록되지 못한 바깥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도입부 “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라는 고백은 끝끝내 독백이 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 해도, 비록 기록되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이 세계의 바깥에서부터 ‘네’가 올 것이라는 소망에 연약한 기도를 얹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