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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밖에는 버릴 게 없는

등록일 2026-03-08 15:22 게재일 2026-03-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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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소는 하품밖에는 버릴 게 없다(고 한다)

 

버려진 소의 하품은 어디로 가는가

정처 없이 헤매다 우연히 내 입으로 들어와 나의 하품이 된다

내 뼈다귀를 소 뼈다귀로 만들고

내가 하루종일 쳐다보는 컴퓨터 모니터를 소가 일구는 밭으로 만든다

 

멍에 메고 일하면 기분 더럽지만

멍에라도 없으면 하루는 또 너무 길어

오늘 하루도 또 뭐라도 하며 보내야만 하고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을 일구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문득

하품밖에는 할 게 없어지고

하품 말고는 다 버려도 좋을 만한 존재가 되어

하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이나 한번 해본다

하품이라도 내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결국 내 안에 갇혀 뼈빠지게 일하다 죽게 될 삶

하품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어서

 

―황유원, ‘하품’ 전문 (시집, ‘일요일의 예술가’ , 난다)

 

이 세상 숨 쉬는 모든 것들은, 생을 마칠 때까지 잠시 머물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오래 남는 시 한 줄이나 영화 대사는 감동이나 교훈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독백으로 대화를 만들어 낸다. 황유원의 시집 ‘일요일의 예술가’에는 ‘방학’ ‘연중무휴’ ‘평상’‘하품’ 등 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곤비한 삶에 대한 사유와 쉼 없는 존재의 역설로 쉴 틈이 없다

“하품밖에 버릴 게 없”는 소의 거대한 멍에는 소의 것인가, 나의 것인가. “하루종일 쳐다보는 컴퓨터 모니터”는 소가 일구는 밭과 다름이 아니다. 이건 ‘소’라는 키워드를 통해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려는 시인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진지한 시도인 셈이다.

하지만 화자는 지향점을 야심 차게 제시하거나 노골적으로 돌파해가지 않는다. 눈에 비친 삶의 인상들을 소리나 이미지를 안배해 과장 없는 일상의 독백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미 시인의 전작들에서 음악이나 그림을 통해 보여온 것들이 매번 새롭게 인식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건 그가 좋아하는 것들 악기든 공연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그리고 국립국어원을 경유한 사물과 언어의 감각에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넘나들며 혼융하는 장르의 흐름은 멈춘 듯 새삼 이어지며 팽팽한 어법이 된다.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작품들이 대부분 역설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간과 존재가 하나의 대상에 동시에 작용하는 그의 작업은 인용되지 않은 시 ‘연중무휴’의 “존재와 비존재에 초근접한 순간에도 잠시도 쉴 수 없는 게 존재의 운명이라는 듯” 삶의 순간 쉼의 순간에 처하는 불가해한 감정이랄 수 있겠다.

“일 년째 비어 있는 카페 창문에는/연중무휴라는 네 글자가 남아 있었다/일 년 동안 쉬었으면서 연중무휴라니//비어 있는 동안에도 쉴 틈은 없다는 듯(···.) 소낙눈 내리는 삼월 아침/혀 없는 입처럼 텅 비었어도/열린 창으로 존재를 시리도록 환기시키며/카페는 오늘도 삶 숨쉼, 삶 숨쉼, 연중무휴로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시인의 탁월한 삶과 존재에 대한 은유적 감수성에 감탄하며 몰입할수록 시인이라는, 삶이라는 예술가는 하나의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일요일의 화가(Sunday painter)’란 평일에는 주업에 종사하다가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 흔히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이를 ‘일요일의 예술가’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이 표현이 마음에 들어 앙리 루소의 그림에서 풍기는 일요일의 정서까지 사랑하게 되었다는 시인의 고백은 곧 삶이라는 아이러니가 된다. “결국 내 안에 갇혀 뼈빠지게 일하다 죽게 될 삶” 죽을 때까지 노동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멍에를 잠시나마 내려놓은 순간일 터이다.

그러니까, 소의 하품을 그려내는 이 신랄한 블랙 코미디를 통해 모든 반복 중에서 가장 극심한 반복이란 ‘일’과 같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긴 겨울 방학이 끄트머리에 걸려 있는 풍경은 삼월로 이행하는 이월과 같다. 이때 한순간이나마 방학을 방학으로, 쉼을 쉼으로, 잠깐이나마 ‘하품’처럼 머물러 볼 수는 없을까.

“하아아암, 하품이라도 내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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