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라는 시간을 오려
하루의 시간을 오려
하늘 한 번 보는 일
당신이 재촉하는 겨울 문턱을 넘다가
잠깐은 어디까진가 멈추고 선 날이다
기차를 기다릴 때
밥물이 끓고 있을 때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라진 간이역처럼
먼 데서 오는 것들*
한눈팔기 좋아하고 제멋대로 꿈을 꾼다
돌아와 생각하면 놓치는 일이 태반인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으로 가 보는 일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는 두고 간다
누군가 다녀가는 잠깐이라는 산책에선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
그마저도 소름이다.
―김진숙, ‘잠깐이라는 산책’ 전문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 , 걷는사람)
인공지능이 산업구조를 바꾸는 시대를 살고 있다. 김진숙의 이 시는 현대인들이 놓치기 쉬운 마음의 궤적을 섬세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잠깐”이라는 시어로 휴지를 걸며 시간이라는 관념을 시각적인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고 온 모니터 속 눈동자”는 숫자를 쫓고 성과를 계산하는 데 능하다. 화자는 그 눈동자를 두고 잠시 떠나 볼 것을 권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밥물 끓는 소리”, “지우지 못한 번호를 망설이는 마음” 등 사실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은 효율적이고 빠른 이동이 아니라, 그 사이의 머무름과 그리움에 있지 않을까.
아즈마 히로키에 의하면 “사회는 계속해서 규칙이 바뀌어 가는 게임이지만, 이 역동성을 지탱하는 것은 정정하는 힘이며, 인공지능은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간의 ‘정정하는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순간들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순간, 즉 무언가 기다리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떨림이나 결과가 나오기 직전의 긴장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인공지능의 “빠른 채근”과 달리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은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신체 감각의 영역이다. 현대사회는 이 “뜸을 들이는” 시간을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간과하기 쉽지만, 시인은 이것을 “소름” 돋는 힘의 순간, 즉 정정하는 힘으로 인식한다.
화자를 따라 알고리즘 밖의 “한눈팔기”를 통해 정해진 궤도인 알고리즘을 벗어나 길을 잃어보는 것은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기억 속으로 이동하게 한다. 우리가 좋아할 법한 것만 골라주며 시야를 좁게 가둔 생산성이라는 비본질에 매몰되지 않는 것, ‘나’라는 존재의 내면 감정들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본질을 찾는 과정일 테니.
이때 바쁜 일상 속 “시간을 오려”낸다는 것은 정작 소중한 것들은 시선의 옆자리나 멈춰 선 찰나에 있다는 각성을 불러온다. “기차를 기다리”거나 “밥물이 끓는 시간”은 무언가를 위한 대기의 시간이니 말이다. 화자는 이 효율적이지 않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하늘을 보고, 한눈을 파는 사이 꿈을 꾼다. 이는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틈새가 보여주는 출구가 된다.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의 막막함과 “사라진 간이역”처럼 지나가 버렸거나 사라진 것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이정표처럼 남아 있는 기억들이 그 “잠깐의 산책” 동안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
산책의 끝에서, 혹은 밥물이 다 끓은 뒤 불을 끄고 기다리는 그 “뜸”의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기 직전의 마음 한구석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생길 것만 같지 않은가.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