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폭주하는 영혼 있어
아껴 쓰고 있다
자기만의 짐승 하나
밝은 곳에 웅크리고 있듯이
젊어 터져 쇄도하는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닳아빠지는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슬퍼지려 해도
이염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건 네 마음의 문제라고
소리친 영혼과는 급히 헤어졌다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서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들을 사랑해왔다
최근엔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했다
택배박스 말고 소포상자라 써보는 마음이랄까
―임주아, ‘시옷이 사라졌다’ 전문 (‘창작과비평’, 2026 봄호)
재치 있고 발랄한 조크 같기도 하고 비의가 담긴 ‘시’ 같기도 하다. 임주아의 시 ‘시옷이 사라졌다’는 모던국악 프로젝트 차오름의 공연 제목에서 빌려왔다. 제목을 따라 한글 자음 ‘ㅅ’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기도 전에 우리는 ‘세상’도 ‘상상’도 사라져 버린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언어와 소통과 이해의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낸 창극과 달리 시는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가령 “내 안의 폭주하는 영혼”을 보자면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런저런 관계 사이에 위치하는 훈민정음 자음이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그것이 ‘사이시옷’이라면 어떤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잇소리’는 ‘두 개의 형태소 또는 단어가 어울려 합성 명사를 이룰 때 그 사이에 덧생기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짐승 하나 웅크리고 있듯” 사잇소리 현상을 규정한 표준어 규정 어디에도 사이시옷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게다가 나란히 붙는 단어에 따라 “젊어 터져 쇄도하는” 감정처럼 된소리로 발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과연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처럼 시작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 있을 테고, ‘슬픔’처럼 “소리친 영혼”처럼 “급히 헤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나 ‘생명’이라면 마냥 가벼운 위트나 감성으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는 잠시 상상으로나마 일상의 한 단면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순간마다 시옷을 넣어보거나 빼보게 한다.
우리는 시옷이라는 자음이 때때로 서로 다른 감정적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시인은 “대체로 흐린 날씨 속에도 시옷으로 시작하는 것을 사랑해 왔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시인은 시옷을 빌려서 이렇게 답해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이든 솔직이든 모두 시옷의 문법이지 않은가.
화자는 서로 다른 가면들을 능숙하게 바꾸어 쓰는 데 능하다. 각각의 시옷을 무기삼아 정반대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시옷을 소화해 낸다. 더구나 시인은 “시금치를 사러 가려고 슬리퍼를 주문”하듯 시옷의 양쪽에서 무심한 듯 안온한 일상을 마련한다. 이건 시옷의 슬픔을 말하는 여자가 시옷의 사랑을 말하는 남자를 만나서 시옷을 통해 마침내 사랑과 슬픔을 포개는 방식인 걸까, 삭제하는 방식인 걸까. 설령 “없어지고 닳아빠진 기분”이었다고 해도 모든 사이의 순간은 사소한 ‘시옷’에 있을 것이다.
“택배상자 말고 소포상자라고 써보는 마음이랄까”
/이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