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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눈물이 부끄럽지 않아서

등록일 2026-06-07 17:30 게재일 2026-06-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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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시인

삼등 병실 티브이에서
‘87년 6월’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다시
한 아름다운 청년의 죽음 보았고
최루탄 자욱하던 거리에 흩어지던 학생들과
일제히 울리던 차량들 경적소리 들었으며
자신들의 도시락을 모아 담 너머 명동성당
시위대에 전해주던 여고생들의 사랑 보았으며
깨끗이 씻은 도시락에 잘 먹었다는 메모가 있었다는
아름다운 후일담을 들으며 희망 보았으며
전경들 가슴에 장미꽃 꽂아주던 시민들과
축제처럼 흩날려 내리던 휴지 뭉치들의 감동 보았으며
돌 던지던 넥타이부대와 아줌마의 열정 보았고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 거쳐 서울역 앞까지
거리에 가득하던 시민들의 하나됨과
이 땅 민주주의의 빛나던 승리
거기서 오랫동안 다시 보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도 슬프지 않았는데도
보는 도중 내내, 끊임없이, 하염없이
눈물 흘러나왔습니다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건 ‘첫경험’같은 것이었습니다
   
- 엄원태, ‘부끄럽지 않은 눈물’ 부분 (‘부끄럽지 않은 눈물’, 창작과비평)

다시, 6월이다. 대구지역의 엄원태(1959~) 시인은 1987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하는 시인이 병실 티브이에서 본 다큐멘터리는 공교롭게도 ‘1987년 6월’이다. ‘1987’이라는 뜨거운 소재 앞에서 두려워하지는 않되, 삼가는 마음으로 불러낼 수 있는 키워드는 많다. 가까운 소설에서는 김숨의 ‘L의 운동화’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을 단숨에 소환할 수 있다.

무릇 ‘1987’이라는 영화가 눈물을 이해하게 하고, 참여하게 한다면 엄원태 시인의 시 또한 다르지 않다. 가령 영화의 주요 배역 중 유일한 허구의 인물인 연희(김태리)가 주저하거나 회의하면서도 사건 깊숙이 개입하는 모습처럼 시인의 “부끄럽지 않았다”라는 고백은 증언이며 역사의 얼굴이 된다. 이것이 곧 시대의 마음이며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우뚝 선 배우의 표정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수많은 익명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유월은 무고한 사람의 참혹한 죽음에 접했던 자들 중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증언하게 한다. 악은 강한 서치라이트처럼 권력자를 집약해서 비추지만, 희망이 ‘작은 빛’의 연쇄에서 나오듯 역사의 물줄기도 그렇다. 마치 반딧불처럼 강렬한 빛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뿐 결코 명멸하지 않는다. 예컨대 선은 어둠 속 광장을 메운 작은 민중들의 미약한 빛들이 밝히는 세상이다. 한 세대를 사이에 두고 1987년과 오늘의 광장이 뜨겁게 공명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인용된 시를 보며, 이런 질문에 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부끄러운가’ 부끄러운 것들을 생각해 보자. 조르주 아감벤의 ‘아우슈비츠’를 함께 읽으며 위의 질문을 나누기도 했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의지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어떤 신체의 돌발적인 출몰이라면, 인간의 의식은 몸의 감각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보는 도중 내내, 끊임없이, 하염없이 눈물 흘러나왔다”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콧물이나 오줌 혹은 눈물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거나 흘러내리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눈물은 “첫 경험”처럼 숭고함 그 자체가 된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이 온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공유되었던 기억이 있었던가.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이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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