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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퍼즐의 끝에서

성탄의 불빛이 거리를 덮고 연말이라는 단어가 달력 위에 눌러앉을 즈음이면 사람들은 으레 설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계절의 변화가 무심해진다. 성탄이 와도 마음은 조용하고 연말이 되어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 축제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감흥은 해마다 한 겹씩 옅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기쁨에 둔감해진 것이 아니라 기쁨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 해가 이렇게 빨랐던가. 새해라는 말이 입에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간은 분명 같은 속도로 흘렀을 텐데, 체감은 해마다 더 가팔라진다. 빠르다는 감각은 결국 충만함의 다른 이름일까. 아니면 붙잡지 못한 날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그 질문 앞에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또 연말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한 해는 언제나 ‘완성’아니라 ‘과정’으로 존재했다. 시작할 때부터 계획했던 그림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삶은 늘 예고 없이 방향을 틀고 우리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 앞에서 임시방편의 선택을 내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쌓인다. 그 하루들이 모여 한 해가 되지만 그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언제나 마지막에 허락된다. 종종 한 해를 퍼즐에 비유해 본다. 수많은 조각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하고 흩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퍼즐의 완성된 그림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조각이 중요한지, 어떤 조각이 빠져도 되는지 처음에는 가늠할 수 없다.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의외의 자리에서 맞물리고 애써 붙잡고 있던 조각은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남기도 한다. 그 퍼즐을 맞추는 동안 수없이 망설이고 실수하고 떼어낸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 저 결정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그러나 퍼즐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조각을 내밀 뿐이다. 우리는 그 조각을 받아들고 또다시 하루하루를 맞추며 이어가다 보면 퍼즐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그 조각들은 무작위로 흩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해의 끝에 다다라서야 조금씩 알아 간다. 기쁨이라 믿었던 순간도, 실패라 여겼던 장면도 모두는 한 그림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나’라는 자아를 만들기 위해 이 일이 필요했구나. 시간이 지나가야 했구나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말이 되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삶이 더 복잡한 결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환희보다는 깊은 이해가 필요해진 나이. 번쩍이는 감정 대신 오래 남는 의미를 찾게 된 시간. 그래서 더 이상 크게 들뜨지 않고 잠잠히 돌아본다. 한 해 동안 내 손을 스쳐간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퍼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완성되기를 꿈꾼다. 모든 조각이 빛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전체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림이기를 바란다. 상처 난 조각은 그 나름의 결을 지니고 닳아버린 조각은 그 시간만큼의 깊이를 품은 채 제자리를 찾기를 소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내년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퍼즐 상자를 받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무 그림도 알 수 없는 퍼즐을 다시 조각을 맞추며 헤매고, 의심하고, 때로는 웃고 울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의 끝에서도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지난 시간을 바라볼 수 있기를 꿈꾼다. 연말은 평가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 어떤 조각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헤아려 본다. 하나하나를 헤아려 보면 자신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아무도 대신 맞춰주지 않은 퍼즐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완성해온 자신에게. 성탄의 불빛이, 연말의 소음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많은 조각을 품고 살아왔기에. 한 해의 끝에서 퍼즐을 내려다보며 더 환하게 웃는 얼굴의 퍼즐을 향해 다시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 /김경아 작가

2025-12-30

‘역사혁명’의 시대

역사서들을 편집한 한 책을 두고 논의가 분분했다. 논점인 즉슨 위서냐 진서냐 하는 것이었다. 비유가 좀 끔찍하지만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자.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먼저 시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그 책은 우리들 눈앞에 버젓이 놓여 있으므로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이제 범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범인도 실명까지 그대로 제시되어 있다. 이제 그가 진범인지를 밝히려면 범행도구와 범행방법, 범행동기까지 밝혀야 한다. 이 가운데 범행동기는 강력히 추정되는 게 있다. 강렬한 민족주의적 이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없는 역사를 지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동기가 범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밝혀내야 한다. 가짜 책을 어디서, 무슨 수를 써서 지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나는 이를 밝혀내면서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는 찾아보지 못했다. 역사학 전문가가 못 되어서 못 찾았는지 모른다. 옛날 책에 근대어가 씌어져 있다든가 하는 등의 주장이 있는데, 엊그제 어느 분의 유튜브 채널을 보니, 그 어휘들이 거의 모두, 하나만 빼고는 옛날 책들에 나온다고 책 이름들과 문장까지 밝혀주는 것이었다. 앉아서 썼느냐 서서 썼느냐를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들을 근거로 짜깁기를 한 것인지, 아예 없던 것을 발명을 한 것인지 증거든 추론이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범인이라고만 주장하면 우김성 센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쟁적인 글들을 보며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 문제와 관련된 역사학적 논구 방법이 좀 더 진취적이고 새로워졌으면 하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이분이 주장한 내용이 다 맞아서가 아니요, 그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새로웠기에 훌륭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식민사학의 우격다짐을 밀어낼 방법론, 그때까지 고려하지 않았던 북방민족의 역사서들까지 함께 읽어내는 방법이 새로웠던 것이다. 왜 지금이 ‘역사혁명’의 시대인가? 새롭고 창안적인 방법론이 다투어 제시되고, 그로써 기존 지식의 패러다임을 깨뜨리고 있기에, 바로 ‘역사 인지’의 혁명의 것이다. 컴퓨터 천문학(박창범), 유전자학,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록과 주장들의 엄밀한 검증,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다른 문명권(아랍어권, 라틴어권, 산스트리트어권)의 역사서들까지 읽어내고 참조하는 방법, 이와 관련되는, 문명론적 시각으로 인류의 삶을 이동성(mobility) 속에서 포착하는 방법, 여러 언어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 등이 새로운 역사 인지를 위해 지금 적극 활용되고 있다. 방법론의 창안과 혁신은 이번 세기에 들어와 가능해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은 것이다. 진위서의 판별과 고대 지리 인식 등에 이와 같은 방법들이 넓게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AI 시대는 이와 같은 변화를 더욱 빠르게 촉진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고루한 문헌 해석과 동북아에 갇힌 시야로 뭘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의 새로움에 한 표를 던진다. 오해는 금물, 그 내용이 다 맞다고 확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요점은 그 방법론에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2-29

청와대시대 재개···민심과 멀어져선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긴 지 약 3년 7개월 만에 청와대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세종 대통령집무실 완공 목표 시점이 2030년인 만큼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임기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정부의 청와대 복귀는 불법계엄으로 조기 퇴진한 전 정권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최근 “청와대로 돌아오는 것은 대한민국을 리부팅(재시작)하는 정상화의 상징”이라고 말했었다. 대부분 국민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무리한 대통령실 이전으로 새 정부가 청와대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이재명 정부는 과거 청와대가 ‘구중궁궐’이자 권부(權府)의 중심지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는 점은 늘 상기해야 한다. 청와대 터는 25만 ㎡에 달해 과거 대통령들은 경내를 이동할 때도 차를 타야 할 정도였다. 청와대로의 복귀가 대통령이 민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이를 감안해 본관과 여민관에 설치된 집무실 중 여민관 집무실에서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한다. 핵심 참모인 3실장(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도 여민관에서 근무하도록 한 것도 잘한 결정이다. 쟁점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것은 권부의 불통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재명 정부 앞에는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미·중의 패권 경쟁과 북한의 위협 등 외교적 난제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데다, 고환율·고물가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은 극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청와대시대 개막’은 대한민국의 외교·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이 대통령이 새해에는 더욱 귀를 활짝 열고 민심을 챙기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2025-12-29

국제무대 나선 수성구의 공공캐릭터 ‘뚜비’

대구 수성구의 대표 캐릭터 뚜비가 글로벌 지식재산권(IP) 시장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뚜비는 20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홍콩 일러스트레이션 크리에이티브 쇼에 참가해 홍콩 현지 에이전시와 IP 수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자치단체 공공캐릭터로서 IP수출 협약은 드문 일로, 지자체 캐릭터의 해외시장 진출 전망을 밝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망월지 두꺼비를 모티브로 탄생한 뚜비는 공공 캐릭터시장에서 성공한 케이스로 소문나있다. 지난 9월 문화관광부 주최 대한민국 우수문화상품(K-RIBBON)에 최종 선정되는 쾌거를 얻었고, 공공분야에서 굿즈 판매 신기록도 세웠다. 공공캐릭터는 과거처럼 단순히 기관의 상징물로 인식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시민과 소통하고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브랜드 자산으로 커가야 한다. 일본 구마모토현의 캐릭터 구마몬의 사례가 이를 잘 입증한다. 구마몬은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공공캐릭터다. 구마모토현에는 역, 버스, 전차, 호텔 등 관광객이 갈만한 곳은 모두 구마몬이 붙어있다. 인형, 라면, 생수,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구마몬 캐릭터가 들어가 연간 관련 상품 매출만 1조원이 넘는다. 일본 브랜드 연구소는 구마몬의 성공 이후 구마모토현의 인지도가 전체 지자체 중 32위에서 18위로 급상승했다고 했다. 두꺼비를 소재로 한 뚜비는 친환경적 이미지와 연결돼 대중의 공감대가 큰 캐릭터다. 굿즈 출시 18개월만에 누적 매출액 2억1800만원을 기록해 일반 기초단체 캐릭터 평균 매출액을 훨씬 상회했다. 아직은 지방에 국한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홍콩쇼 참가를 계기로 전국적 이미지를 올리는 노력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상품화에 나서 경제적 가치 증대도 적극 유도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가 캐릭터를 제작, 홍보에 나서지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홍콩전시에서 받은 뚜비에 대한 시장 반응을 면밀히 분석해 해외진출의 발판으로 삼는 한편 과감한 영역 확장에 나서는 시도도 필요하다.

2025-12-29

치킨집 3만9789개 시대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 치킨집이라도 차릴까?” 짧지 않은 경제 불황이 이어질 때면 정년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이 흔해진다. 희망퇴직이 됐건, 권고사직이 됐건 자의 반 타의 반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둔 이들이 퇴직금을 받으면 쉽게 하는 결정이 치킨집 개업이다. 그러나, 종일 끓는 기름 앞에서 닭을 튀기고, 바쁜 손길로 양념 묻힌 치킨을 포장해도 실상 손에 쥐는 돈은 쥐꼬리인 경우가 태반이다. 배달대행 업체에 주는 수수료와 적지 않은 세금, 거기에 개업할 때 목돈으로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까지를 감안해야 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벼랑 끝에 몰린 퇴직자 등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치킨집을 차린다. 한국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일까. 어느 곳 특정할 것 없이 동네마다 치킨집이 넘쳐난다. 그걸 수치로 증명하는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와 프랜차이즈 점포를 합하면 현재 이 나라에선 3만9789개의 치킨집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이미 포화 상태다. 가게들의 경쟁이 심한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치킨집 운영에서도 소수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걸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위험한 자영업자가 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018년 이후 매년 1000여개씩 늘어나는 추세다. 당연지사 몇 년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치킨집도 우후죽순이다. 생기는 만큼 없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 적은 월급 받으며 겨우겨우 먹고 사는 서민들이나, 샐러리맨의 옷을 벗고 치킨집 주인이 된 이들이나 너나없이 모두 춥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딱한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29

인구정책이 미래를 좌우한다

역사적으로도 웅주거목이었던 상주시는 1960년대 후반 인구수가 26만을 상회했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10만 벽이 허물어졌다. 급격한 산업화와 수도권 집중 등으로 50여 년 만에 인구수 약 2/3가 감소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까지의 감소 추세는 인구 유출이 주된 요인이었지만 앞으로는 자체 감소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인구 그래프의 가장 넓은 폭을 그리던 1954년 출발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이미 70세를 훌쩍 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소멸과 인구감소는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마주한 구조적 위기이며, 이제는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하느냐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게 됐다. 상주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2025년부터 인구정책실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인구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다. 단기적인 인구수 증가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 머물고 관계를 맺는 ‘사람 중심 정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 활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지방소멸대응기금 확보다.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한 투자계획 평가에서 상주시는 기본 배분액에 인센티브를 더해 기초기금 88억 원을 확보했다. 여기에 경북도 광역기금 33억 원을 포함해 총 121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했다. 이는 단순한 재정 확보를 넘어, 상주시 인구정책의 방향성과 실행력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청년 LIFE-ON 프로젝트’, ‘상주형 미래인재 교육 플랫폼’, ‘주민주도형 마을리빙랩’ 등 11개 핵심 사업을 추진하며 지역 맞춤형 인구 대응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인구 활력 증진을 위한 현장 중심 정책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이안 한복마을’을 포함한 4건의 경북도 공모사업이 선정돼 총 10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확보했고, 마을 단위 활성화 사업이 지역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주민주도형 마을리빙랩’은 행정안전부 주관 지방시대 엑스포 우수사례로 소개되며, 상주시 인구정책의 실험성과 확장성을 보여줬다. 저출생 대응 역시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미혼남녀 만남사업부터 통합아동돌봄센터 조성, 바구니 카시트 대여, 결혼장려금, 공공산후조리원 운영에 이르기까지 삶의 단계별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도시’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광역 단위 정책 평가에서도 점검 대상이 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청년 정책은 상주시 인구정책의 또 다른 축이다. 일자리와 주거, 커뮤니티를 연계한 청년 정착 플랫폼 구축을 통해 청년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 4월 확장 이전한 청년센터 ‘들락날락’은 취미 클래스와 공유 오피스 운영을 통해 월평균 500명 이상이 찾는 지역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단기 체류 청년을 위한 ‘청년 드림하우스 모락모락’은 11월 착공에 들어가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고향올래’ 공모사업을 통해 청년창업 지원센터 조성도 추진 중이다. 외국인 정책과 농업 인력 인프라 확충 역시 지역 현실을 반영한 중요한 과제다. 지역특화형 비자사업과 계절근로자 지원을 체계화하고, 대학 및 관계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우수 외국인재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하고 있다. ‘우수 외국인재 단기숙소’ 조성사업은 올해 12월 착공을 앞두고 있으며, 베트남 까마우성과의 협력으로 구축한 계절근로자 원스톱 지원체계는 농가의 인력난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공공형 계절근로자 기숙사 2개소 건립 추진은 소규모 농가까지 정책 효과를 확산시키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귀농귀촌과 생활인구 확대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초기 영농 정착을 위한 소형농기계 지원, 농지 임차료 지원, 주택 수리비 지원 등 실질적인 정주 여건 개선과 함께, 상주서울농장과 이안면 체험 프로그램 등 체류형 귀농귀촌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026년부터는 ‘상주온시민제도’를 도입해 생활인구 확대에 나선다. 지난 10월 관련 조례 제정을 마친 이 제도는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공공시설 이용 혜택과 시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지역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장기적인 인구 유입을 도모하는 새로운 시도다. 인구정책에는 정답이 없다. 분명한 것은, 지역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는 정책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상주시는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며,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적 선택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구를 지키는 일은 곧 지역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상주시의 도전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하나의 해답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2025-12-28

한해의 마무리

제야(除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 밤이란 뜻이다. 불교에서는 섣달 그믐에 108번의 종을 치는 종교 의식이 있다. 108가지 인간 번뇌를 소멸시키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다. 인간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한해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마무리하는 종교적 수행 방법의 하나다. 1년의 마지막 무렵이다. 늘 오는 이때지만 누구나 한해를 되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가진다. 미련이 남거나 후회되는 일, 그리고 감사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가슴을 새삼 요동치게 한다. 올해도 예년과 다르지 않게 다사다난(多事多難)했구나 싶다. 나라뿐 아니라 직장과 한 사람의 개인도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 등으로 얼룩진 한해다. 매년 보내는 해지만 한해 끝자락이 되면 늘 아쉬움이 남는 게 세모(歲暮)의 감정이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처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능히 끝을 얻은 사람이 적다”고 했다. 마무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유종의 미와 비슷하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교훈이 아닐까 한다. 끝과 시작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마지막과 시작은 서로 연결돼 한 끝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 과거와 미래로 갈라지는 시점일 뿐이다. 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시작이란 원인이 있었기에 끝이 있는 법이다. 자연의 순리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는 유명인의 말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비록 모자라고 만족스럽지 않아 보이는 한해가 지나가지만 시작의 새해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심기일전(心機一轉)의 시간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12-28

포항시 무탄소 에너지 선도도시 길 열었다

정부가 지산지소형 분산에너지 시스템의 활성화를 위해 첫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에 경북에서는 유일하게 포항시가 선정됐다. 정부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한 지역은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지역내 생산된 전력을 인근의 전기 사용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다. 포항의 주력산업인 이차전지와 철강 등 전력 수요가 많은 기업의 전력비 절감과 함께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획기적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대가 크다. 포항시가 기후부에 제시한 모델은 무탄소 에너지 공급시스템이다. 영일만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그린 암모니아 기반의 수소엔진 발전소를 통해 무탄소 분산전원을 상용화해 청정전력을 지역 수용 기업에 직접 공급한다는 것. 암모니아에서 청정수소를 추출한 뒤 수소엔진 발전기를 통해 전력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탄소배출이 전혀 발생 않는다. 이 사업의 컨소시엄 업체로는 GS건설과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아모지, HD현대인프라코어 등이다. 무엇보다 기업이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통해 값싼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특구의 장점은 고비용 전기료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이차전지 및 철강산업에 큰 힘이 된다. 유럽은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라 무탄소 제품을 우대한다. 무탄소 에너지 공급은 국제적으로 탄소중립에 따른 무역장벽이 높아지는데 대한 대응책이다. 특히 이차전지와 철강 등 해외수출 기업이 많은 포항으로선 꼭 필요한 제도다. 포항시는 인근의 원전과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의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분산형 에너지 공급의 거점을 기반으로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 자원을 활용하는 전략에도 집중해야한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전력 자급자족 모델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분산에너지 특구가 지정됨에 따라 전력료가 싼 포항으로 기업을 옮기고자 하는 업체도 늘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으로 포항은 철강도시를 넘어 에너지 자립형 첨단산업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포항시와 지역경제계의 분발이 필요한 때다.

2025-12-28

외연확장 목소리에 여전히 귀 닫는 장동혁

지난 26일에는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즉시 이를 부인하면서 무산됐다. 장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구체적인 연대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보수세력 연대보다는 당원결집을 우선시하는 장 대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세 사람의 연대 얘기가 갑자기 나온 배경은 장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면서 손을 잡은 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칭찬하면서 비롯됐다. 세 사람의 연대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선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여전히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으므로 ‘윤 어게인 노선’을 걷고 있는 장 대표로선 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장 대표와 이 대표의 경우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 확장이 필요한데다, 개혁신당은 단독으로 전국 선거를 치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측이 연대할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계엄이나 탄핵에 대한 관점이 달라 각각의 지지층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대부분 2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5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구·경북에서 19%까지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는 따져봐야 알겠지만, 최근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원 게시판 등을 둘러싼 당 내분이 격화하고 있는 게 주원인이다. 현재 국민의힘 내에서는 장 대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계엄 1주년 때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던 의원 20여 명은 30일 다시 모임을 열 계획이다. 중도층 외연 확장 없이는 국민의힘 앞날이 위태롭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장 대표는 이러한 목소리에 아예 귀를 닫고 있으니 안타깝다.

2025-12-28

끝과 시작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딱 사흘 남았다. 아, 하는 사이에 핑하니 1년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시간은 나이 먹은 빠르기로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살 먹은 사람에겐 시속 100km로, 20살 청춘에게는 시속 20km로 시간이 흐른다는 얘기다. 양자역학자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주장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불과 360일 전에 시작한 을사년 초입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탁상용 달력을 보면, 거기 기록한 일정에 의지해 무언가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즉각 떠오르는 사건이나 관계는 없다. 그것은 그만큼 무탈하고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는 증거이리라. 2025년 을사년이 스러지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막을 올린다. 과연 무슨 인연과 사안이 나를 기다릴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것이든, 무생물이든 시작은 반드시 끝과 결합한다. 생로병사가 전자(前者)를 가장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12월 31일과 1월 1일의 대면은 후자(後者)를 증명한다. 그런 까닭에 시작과 끝은 항상 서로 맞물려 있다. 청년 시인 윤동주가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라고 쓴 것은 까닭이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전후상수(前後相隨)’를 말한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말이다. 학생으로 비유하면, 초등학교 6년 졸업하면, 중학교 신입생이 되고, 중학교 졸업반은 고교 신입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것은 생의 시작부터 종점까지 수미일관 적용이 가능하다. 최고령자라 할지라도 사자(死者)들의 북망산에 가면 신입 회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나 동주의 가르침에서 새겨둘 만한 게 하나 있다. 끝과 시작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는 관계와 인연을 신중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매개로 맺는 관계와 그것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성립하는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業)의 실타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 이르다 보니 모골송연(毛骨悚然)하다. 1년 12달 365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진정으로 말하고 행동했는지, 도통 자신이 없다. 나이 든다는 일이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했거나, 허투루 대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사과하고 바로 잡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년의 사유와 인식은 큰 허물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어린 시절부터 과감하게 사과하고, 그 행실을 고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자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라고 가르쳤다.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허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오류를 고치고 사과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근거 없는 자존심만 높아가고, 유연성과 관대함은 날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을사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세상사와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잠시 돌아본다. 나로 인해 혹여 괴로웠을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러하되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병오년이 여러분과 만나면 참 좋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8

환율을 지켜야

원·달러 환율이 1481원을 기록했다. 외환 당국의 환율 안정을 위한 노력에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상승으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심리적 저항선인 1480원을 넘어 다음 주에는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커 국민의 불안감은 크다. 환율 급등에 따라 나타나는 부작용도 크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라 국민의 생활비 부담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수입이 많은 기업의 수익성은 나빠지고 경영 불확실성은 높아진다. 우리 주식이나 채권시장에 뛰어든 외국의 투자가들도 늘어나는 환차손을 견디지 못하고 팔고 떠나게 된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국내에 투자한 기업들에 의한 자본유출 현상은 심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은 불안정해지고 신인도 하락으로 해외자본 유입은 더욱 힘들어진다. 나라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가만히 앉아서 국민의 수입이 줄어들어 생활이 피폐해진다. 고환율의 원인은 많다.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들의 해외 채권이나 주식 투자로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투자하지 않더라도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달러로 환전하여 보유하려는 수요도 많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출한 기업들은 벌어들인 외화를 해외투자나 환차손을 막기 위해 원화로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영향으로 외환보유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달러 유출은 더 심화한다. 해외에서 온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들이 떠나고 외화는 모자라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인도는 떨어지고, 최악의 경우 한국은 다시 IMF 금융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한국은행은 해외투자를 위한 국민연금과 서학개미 등의 채권 및 주식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가 원·달러 환율을 올리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발표로 명쾌하게 이해되었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달러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미국에 연간 200억 달러를 투자해야만 하고 불안정한 글로벌 경제 상황으로 사람들이 달러를 더 선호하는 심리적 요인이 더 큰 것 같다. 정부나 기업체는 원료 수입국과 판매국을 다변화하여 환율 충격을 분산하고, 원가구조를 다시 점검하여 대체 원자재를 개발하여 원가를 낮추는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유동성과 안전자산 공급과 장기적으로 수출국을 다변화해야 한다. 정부는 빚을 내어 국민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돈은 꼭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빚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큰 부담으로 우리를 힘들게 함을 알아야 한다. 고환율의 공포를 벗어나야만 한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외환보유고와 정책이 안전한 나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투명한 외환 정책과 소통으로 과도한 심리적 공황을 막아야 한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로 과도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개개인이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남은 외화가 있으면 은행에 입금하여 외환보유고를 높이는 일에 적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한 것은 항상 국민이었다. 그러기에 고환율도 이겨낼 수 있다. 환율이 널뛰기 하는 상황에서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임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12-28

한자, 한문, 문해력

갑자기 한자 교육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지난 12일 교육부 대상 업무 보고 자리에서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이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엉터리 국어 사용의 문제를 언급하자 그 원인이 한자 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꾸준히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두 사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조갑제 대표는 엘리트 교육을 위해, 김언종 원장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 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두 교과 과정에 한자 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한자 병용이나 제도 도입에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예로 들면서 한자 학습 자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SNS에서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한자 교육을 하지 않아도 문해력 교육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그래도 한자 교육을 하는 것이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통령이 언급한 국어 사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대인배에서 배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한자를 알지 못해도 배울 수 있고, ‘저희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는 것 역시 한자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자를 알면 어휘력이 좋아지는 것은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논란이 커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한자 교육과 한문 교육은 다르다. 현재 교과 과정에서 배우는 한문 수업은 한자 교육이 아니다. 한문은 한자로만 이루어진 글, 또는 중국 고전의 문장이라고 어학 사전에 나온다. 실제로 교과서 이름도 한문이고 내용도 한시나 산문 같은 문학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중국 고전을 읽으면서 한자 교육을 하는 것은 엘리트 양성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해력 향상을 위한 한자 교육론과는 거리가 있다. 단어의 난이도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로 판가름되는데 일상에서 자주 쓰지 않는 단어 중에 한자어가 많고, 한자어는 음이 같아도 뜻이 다른 경우가 많다. 고유어 ‘배’에는 먹는 배, 타는 배, 사람 배 등 뜻이 많지만 맥락을 알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인명재천’ 같은 사자성어는 한자 하나하나를 익히더라도 한문은 우리말과 어순이 달라 해석하기 어렵고 국어 문해력 향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1천 자나 1천 8백 자 낱글자로 한자를 익히는 것도 효과는 없다. 단어는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뜻을 모르는 어휘를 검색해보면, 한자어든 고유어든 단어마다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문해력을 향상시키려면 사전에서 문장의 맥락과 관계있는 의미를 찾아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자어에 동음이의어가 많아 한자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은 한자, 아니 한문까지도 배우면 된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28

‘책을 펼치자 십자가들이 쏟아졌다’

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 으깨어진 꽃잎을 한 줌 가득 쥐고서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 재처럼 흩날리리라 참회조차 사라진 고백이 검붉은 불티를 내 눈에 흩뿌렸으니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 ―이토록, ‘책을 펼치자 십자가들이 쏟아졌다’ 전문 (‘이후의 세계’ , 가히) 제목에서부터 결구까지 시종일관 강렬하다. 이 시의 십자가가 표상하는 핵심 이미지는 몇 가지의 상징적 층위를 거느리고 있다. 우선 ‘책’을 중심으로 책의 ‘안’과 ‘바깥’에 관해 사유해 본다면, 여기서 책은 기록으로서의 율법인 정전의 공간일 텐데, 문제의 초점은 이 책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절로 말이 약해진다. 내 신념이 보잘것없어서이기도 하고, 거기에 대고 강하게 말했다가는 튕겨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되지 못한 것은 ‘말’이기에 말로 할 수 있는 건 책의 공간으로부터 추방된 번제의 자리가 될 것이다. 종교적 상징을 떠나서 십자가가 표상하는 바는 무엇보다 죄의 대속이며 구원의 약속과 다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 지점에서 구원의 진실은 책의 안과 밖의 공간에서 선명하게 대별된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책의 ‘바깥’이라는 화자의 위치에 있다. “이 책의 문장은 번제보다 참혹하다”라는 언표에서 알 수 있듯 십자가는 구원의 약속이 아니라 폭력과 잔혹함으로 전도되어 있다. 그 어떤 희생이나 번제보다 말과 문장이 더 잔인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이 시는 참회의 방식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가 “우리는 기록될 수 없는 사랑에 불탔으므로”라고 했을 때, 과연 기록으로 남는 것과 기록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화자가 고백하는 사랑은 죄이자, 신성모독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진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화자는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십자가는 구원의 표식이 아니라 몸 밖으로 쏟아지는 상처가 된다. 그렇다면 “불”“재”“검붉은 불티”가 표상하는 것은 결국 정화가 아니라 훼손으로 인해 잔존 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사랑은 타오르지만, 남는 것은 구원도 속죄도 아닌 상처일 것이기에.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와 연계하여 읽어보자면, 이 시는 개인적 고백을 넘어 구원 서사의 붕괴 이후에 남은 잔해의 독백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가령 “두건을 쓴 양들이 통성기도를 올릴 때”라는 언술은 ‘사탄탱고’의 마을 사람들과 겹친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목소리를 합창함으로써 책임을 지우는 존재들이다. “시뻘건 십자가들이 몸 밖으로 쏟아졌다”라고 했을 때, 집단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통성기도는 사랑이 아니라 소음이고 군중 심리의 대리라고 볼 수 있다. 집단은 기도하고 고백하지만, 진짜 상처를 짊어진 자는 기록되지 못한 바깥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도입부 “이 책의 바깥에서 네가 오길 기다렸다”라는 고백은 끝끝내 독백이 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 해도, 비록 기록되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이 세계의 바깥에서부터 ‘네’가 올 것이라는 소망에 연약한 기도를 얹어보는 것이다. “이 책의 바깥에서 엎드린 자 나뿐이다” /이희정 시인

2025-12-28

‘더하기 빼기 하듯’···AI교육 생활화한다

정부는 지난 24일 일반 국민의 AI 기본교육을 위해 전국에 ‘AI디지털배움터’ 32곳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취약계층으로까지 교육 대상을 넓혀 AI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새해 들어 구체적인 운영 방향을 발표하고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구는 수성구 파동우체국과 동구 강동노인복지관이, 경북은 구미시 평생학습원과 안동시 복합문화센터가 AI디지털배움터로 새로 지정됐다. 우체국과 행정·문화시설 등 지역 생활SOC(사회기반시설)를 중심으로 선정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부터는 기존 ‘상설 디지털배움터’ 37곳도 AI디지털배움터로 전환한다. 앞으로 읍·면·동 단위로 촘촘하게 AI 교육을 시행하겠다는 게 정부 의지다. 상설 디지털배움터는 현재 대구에 2곳, 경북에 3곳이 운영중이다. 이곳에서는 금융 피싱 예방, 본인 및 공공인증, 온라인콘텐츠 제작 등 실생활에 유용한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체험존에서는 키오스크나 멀티테이블, 디지털 혈압측정기 등을 통해 실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직접 다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수학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는 것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AI교육을 시작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과기부가 발표한 올해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서비스 경험률(최근 1개월 이내 1회이상 이용)은 2021년 32.4%에서 지난해 60.3%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 10명 중 4명은 AI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태다. AI교육은 확산 초기에 기회를 놓치면 배우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교육열이 높고 교육 네트워크도 비교적 잘돼 있다. 노트북 같은 디바이스 보급률도 아주 높다. 이처럼 교육 여건이 좋아서 AI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앞으로 AI디지털배움터가 널리 홍보돼서 전 국민 AI 기본교육의 거점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2025-12-25

경북도 여성공무원 인재 활용시대 열어가야

경북도는 내년 상반기 실 국장, 부단체장, 4급 이상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승진 규모는 2급 1명, 3급 12명, 4급 22명 등 모두 35명이다. 특히 승진자 35명 중 14명을 여성으로 발탁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승진한 여성 공무원 중 일부는 시군의 부단체장으로 나갈 예정이어서 경북의 여성 부단체장은 역대 최다인 14명으로 늘게 된다. 이번 인사 단행으로 경북도의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수는 2022년 민선 7기 때 10명의 4배인 41명으로 늘어났다. 경북도는 “이번 인사는 성별이나 연공 서열보다 성과와 전문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여성 간부 공무원 비율이 하위권이다. 행안부에 의하면 작년 기준 경북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중은 24.1%다.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며, 전국 평균 26.7%에도 못 미친다. 대구시 41.5%와 비교하면 큰 격차가 있다. 한국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빠르게 늘면서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 평균보다는 다소 낮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늘어나 현재 50%를 상회하고 있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의 참여가 늘면서 교직의 경우 남성이 오히려 여성보다 수적으로 적어 양성평등 기준을 못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중 여성 비중이 2023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추월했다. 다만 간부급 이상 공무원의 여성 비중은 아직 20%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북도 간부 인사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남녀 간의 비율을 떠나 바람직한 변화다. 남녀 구별 없이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고 이것이 업무성과에 반영되는 것이 바로 양성평등 사회로 가는 길이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여성 인재의 활용은 필수”라 했다. 경북도의 능력에 의한 여성 발탁인사는 시군 인사에 미치는 효과도 적지 않다. 동시에 여성공무원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준다. 경북도가 앞장서 여성 인재 활용시대를 열어가길 바란다.

2025-12-25

목조름 범죄

방송인 김주하 씨가 토크쇼에서 과거 자신이 당한 가정폭력을 고백했다. 전 남편은 9년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하며 김주하 씨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후 점점 심해져 간 가정폭력은 살해 위협으로까지 이어졌고, 어린 자녀들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처럼 목조름 폭력은 단순한 폭행과 다르다. 살인 등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전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목조름 행위를 가정폭력범죄의 유형으로 추가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발의안은 기존 가정폭력범죄의 유형에 ‘목조름 행위’를 추가하였다. 목조름 행위를 별도 유형으로 추가한 것은 가해자의 살해 고의나 상해 발생에 대한 입증 없이도 피해자가 목이 졸린 사실만으로 빠르게 공적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개정법안에 따르면 목조름 행위가 있었음이 확인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격리되고, 응급조치나 접근금지 등의 긴급조치도 바로 시행될 수 있다. 목조름 폭력은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의 한 형태로 빈번히 발생한다. 여러 해외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 비치명적 목조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 피해자에 비해 살해당할 위험이 훨씬 높았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비치명적 목조름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그렇지 않은 피해자에 비해 살인미수 위험이 6.7배, 살인 위험이 7.5배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 중 30%가 목조름 피해를 겪은 바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가정폭력을 넘어 중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군이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다. 목조름 행위를 살인 위험을 내재한 중대한 범죄행위로 인식하지 않으면 단순 폭행으로 처벌되는 데 그치고 만다. 특히 정당방위의 요건을 엄격히 보는 우리 법 해석에 따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목조름에 대항한 피해자가 가해자와 함께 처벌되는 일도 발생한다. 2023년에는 동거하던 남자친구에게 목을 졸리던 여성이 가까스로 상황에서 벗어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자를 주방용품으로 가격했는데, 가해자와 같은 형량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폭력의 유형으로 목조름 행위를 고위험군 행위로 별도 규정한 이번 법 개정안의 발의는 중대 범죄의 발생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폭력의 범주에 한정되어 있어 경미한 수준의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고, 가정폭력만큼 빈번한 데이트 폭력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북아일랜드 등에서는 목조름 행위를 아예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북아일랜드는 비치명적 목조름 행위를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는 별도의 독립 범죄로 규정했고, 영국은 목조름을 중범죄로 처벌함은 물론 목조름 행위를 담은 포르노의 소지와 유포까지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경찰에 수차례 신고하고도 결국 살해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 역시, 살인의 강력한 전조로 작용하는 목조름 폭행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25

호날두식 수면법

옛 속담에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활동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된다. 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긴 시간을 잠으로 채워야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수면과 신체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수면이 신체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수면학회는 성인의 경우,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7~9시간 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6시간 미만 수면자는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증 위험이 높아지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치매 위험까지 높인다고 한다. 인간은 잠을 충분히 잠으로써 낮에 활동하며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고 어린이들의 성장을 돕고 뇌에 축적된 노폐물을 청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충분한 수면을 바탕으로 한 최상의 컨디션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잠을 자며 휴식할 수 있는 수면캡슐이나 수면공간을 사무실에 마련했다고 한다. 불혹의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전설의 축구선수 호날두의 최고 건강비법으로 다상수면(多相睡眠)이 화제다. 분할수면이라고도 부르는 이 수면은 90분씩 짧게 나누어 하루에 5번 정도 잠을 자는 방식이다. 규칙적 생활을 하는 직장인과 일반인이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또 이 방법이 일반수면법보다 낫다는 의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다. 몸 관리의 끝판왕이란 별명처럼 호날두의 건강은 수면보다 그의 끊임없는 체력 관리의 결과물 아닐까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5

‘강변여과수’

지난 12월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구 상수도의 핵심 취수 대안으로 ‘강변여과수’와 ‘복류수’ 활용안이 제안되었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해평취수장 공동 활용이나 안동댐 원수 확보를 둘러싸고 지속된 지자체 간의 극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물은 생명줄이자 지자체 간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간 합의의 길은 매우 험난했다. 이제 시민들은 이 대안이 과연 우리 가족이 마실 물의 수질과 수량을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지, 그리고 조속히 대구의 새로운 취수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강변여과수’는 하천 인근의 모래와 자갈층인 대수층을 통해 하천수가 자연적으로 여과된 물을 채수하는 방식이다. 강물이 수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르는 지층을 통과하는 동안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 정화 과정을 거치며 탁도와 병원성 미생물, 유기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제거된다. 이 방식은 사고 발생 시 오염 물질의 도달을 늦추는 완충 능력이 탁월하고 연중 일정한 수온을 유지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취수 시 주변 농경지의 지하수위 저하나 환원 상태의 대수층에서 철과 망간이 용출될 수 있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대구 취수원으로서의 도입 가능성을 타당성 있게 검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질적 불확실성과 환경적 영향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변여과수’는 독일 라인강이나 미국 루이빌 등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이며, 국내에서도 창원과 김해시가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수질 개선과 정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대구에 이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타당성만큼이나 ‘유역 공동체 상생’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강변여과수’가 만능 해결책이 아니기에, 대구 상류 지역인 경상북도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원수인 낙동강 본류 수질이 개선되어야 여과수의 안전성도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 산업단지의 폐수 관리 강화와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 경북의 선제적 환경 정책이 병행되어야만 대구와 경북이 함께 맑은 물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취수 지역 주민들의 지하수 고갈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시범 플랜트를 통한 충분한 사전 검증과 투명한 데이터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낙동강 ‘강변여과수’ 도입은 대구 시민에게는 안전한 식수를, 취수 지역 주민에게는 상생 발전을 제공하는 ‘유역 공동체 모델’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특별법’과 ‘상생 발전 기금 조성’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지자체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우리는 2026년 예정된 시범 사업부터 철저한 기술적 보완과 정밀 조사를 거쳐 도입 가능성을 확고히 검증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상호 신뢰 속에 낙동강 본류 수질 개선에 힘을 모으고 ‘강변여과수’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낙동강은 마침내 갈등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2-25

검사에 이상 없다는 말이 왜 환자를 더 아프게 만들까

검사를 다 해봤는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안도하기보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분명히 아프고 불편한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통증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증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원인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의료 검사는 매우 정교하다. MRI, CT, X-ray는 뼈와 디스크, 인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 디스크가 튀어나왔는지 골절이나 종양이 있는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의 모든 원인이 구조적인 이상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검사상 정상 판정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한다. 이런 경우 통증의 원인은 구조가 아니라 기능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신경이 미세하게 압박을 받고 있거나 근육과 근막이 비정상적으로 긴장되어 있거나 혈류 순환이 떨어져 조직 회복이 지연된 상태일 수 있다.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져 통증 신호가 과도하게 증폭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은 환자에게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일반적인 영상 검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만성 통증 환자에게서 이런 양상이 흔하다. 처음에는 가벼운 통증이었지만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이 반복되면서 통증이 고착화된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근육은 긴장된 상태로 굳어가며 몸은 통증을 하나의 패턴으로 기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검사에 이상이 없어도 통증은 계속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몸 전체의 흐름과 균형의 문제로 본다. 통증 부위 하나만이 아니라 그 부위로 이어지는 신경과 근육, 혈류, 자율신경의 조절 상태를 함께 살핀다. 통증은 결과이지 항상 원인 그 자체는 아니다. 어깨 통증이 반드시 어깨 관절만의 문제는 아니고 허리 통증 역시 허리뼈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초음파로 살펴보면 MRI에서는 보이지 않던 미세 염증이나 신경 주변 압박 근육층 사이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관찰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작고 미묘해 놓치기 쉽지만 통증과는 매우 밀접하다. 약을 먹고 쉬면 잠시 나아지는 듯해도 기능 이상이 남아 있으면 다시 아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율신경의 역할도 중요한데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몸은 회복 모드로 전환되지 못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통증은 더 쉽게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검사에서는 정상인데 통증이 계속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상태를 함께 가지고 있다. 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말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단지 구조적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몸은 구조물의 집합이 아니라 신경과 혈류 긴장과 이완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통증은 다른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같은 부위가 계속 아픈지 왜 쉬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지를 차분히 풀어봐야 한다. 통증은 결코 상상이 아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에 실재하는 통증까지 지워질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문제는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25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

동지가 다가온다. 해가 가장 짧아지는 날, 어둠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순간을 앞두고 나는 엄마의 팥죽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팥죽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었지만 중년을 지나오면서 왜 팥죽이 유독 그리워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시절 겨울은 엄마가 새벽부터 불 앞에 서 있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팥이 끓는 냄비에서는 김보다 먼저 오래된 평온이 부엌을 채웠다. 몇 년 전부터 엄마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오래 서 있을 힘이 없고 팥을 불리고 삶아 체에 거르는 반복의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팥이 타지 않게 저어 주었던 아버지의 손길조차 부재했다. 부재는 때로 가장 정확한 요청이 되었다. 여전히 팥죽은 먹고 싶었기에 마침내 혼자서 팥죽을 해보기로 했다. 기억을 따라 하는 요리는 늘 실패를 동반하지만, 실패마저도 한 시절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팥을 씻는 일부터 오래 걸렸다. 검붉은 콩알 하나하나가 제 몸의 먼지를 놓지 않으려는 듯 물 위에서 굴렀다. 몇 번이고 헹구며 깨달았다. 엄마의 팥죽에는 맛보다 시간이 먼저 들어 있었다는 것을. 팥은 오랜 시간을 삶아야 물러졌다. 엄마가 말하던 ‘기다림의 맛’이 이런 것일까 이해가 되었다. 팥은 붉은색으로 재앙을 막는 상징이었다. 동짓날 조상들이 팥죽을 먹는 풍습은 잡귀를 물리치고 새해의 기운을 맞이하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러한 상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팥죽은 주술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해마다 반복하던 어떤 기억의 몸짓, 믿음 대신 사랑을 남기는 행위에 가까웠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내기 삼킨 것은 재앙을 막는 붉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견뎌온 방식이었다. 새알은 이름처럼 새해의 알, 탄생의 은유다. 지역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먹는 수만큼 알을 세기도 했다. 나는 나이를 세지 않았다. 다만 하나하나 지나온 겨울과 건너갈 겨울을 포개어 넣었다. 엄마의 손에서 태어났을 알들을 대신해 서툰 내 손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질서는 능숙하지 못했다. 동일한 모양으로 들어갔던 알들은 익는 속도도 제각각이었고 어느새 일그러져 있었다. 그 불균형이야말로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고르게 익지 않았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가라앉았으며 또 어떤 기억은 끝내 형태를 잃지 않았다. 팥죽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던 새알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엄마가 매년 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은 액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힘겹고 흩어졌던 시간을 한데 모아 한 그릇으로 건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팥물에 간을 맞추는 순간,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을지 망설여졌다. 단맛은 이 음식에 익숙한 타협처럼 느껴졌고 소금은 어딘가 고집스럽고 불친절한 선택처럼 보였다. 엄마의 팥죽을 떠올려보니 달지도 않았고 무미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소금을 집어 들었다. 단맛으로 덮지 않고 팥이 가진 고유한 깊이를 남기고 싶었다. 삶을 지나치게 달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선언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처음 해보는 일은 늘 과해진다. 나는 그릇에 나누어 담아 이웃들에게 건넸다. 겨울 저녁의 문 앞에서 팥죽은 인사말이 되었고 안부는 숟가락보다 먼저 오갔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경계를 낮추는 일이었다. 팥죽이 잡귀를 막는다면 나눔은 고립을 막았다. 나눔을 끝내고 팥죽을 다시 데웠다. 혼자 먹는 그릇 앞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더 이상 엄마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어갈 수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며 엄마를 기억해 낼 수 있으니 괜찮다. 기억은 반복될 때가 아니라 변주될 때 살아남는다. 올해의 팥죽은 엄마의 것과 닮지 않았지만 엄마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동지가 지났다. 해가 길어졌다. 붉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팥죽은 그렇게 나의 겨울을 통과시키는 한 그릇의 문학이 되었다. 어떤 음식은 배를 채우지 않고도 사람을 살게 한다는 따뜻한 문장과 말로 하지 못한 엄마의 온기를 품은 문장이 되었다. /김경아 작가

2025-12-23

내년도 경기도 비관적이라는 경제계의 경고

연말을 맞아 매년 일어나는 연말특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없다. 작년에는 계엄 여파로, 올해는 소비 부진으로 연말특수가 나타나지 않아 시중의 경기는 겨울 추위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모임 등으로 예약이 쏟아져야 할 시기임에도 조용한 연말 경기에 상인들의 속은 타들어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 경제단체가 내놓는 내년 경기전망마저 암울하다. 경제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경제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의 악재가 지속되는 영향으로 대·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가릴 것 없이 내년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6년 기업경영환경 인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 기업의 52%가 내년 경영여건이 어려울 것이라 답했다. 특히 매우 어렵다고 답한 기업은 18%이나 매우 양호는 3.4%에 불과했다. 경영환경이 악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업황부진과 경기침체 지속이 58%다. 대내리스크 요인도 내수부진과 회복 지연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대한상의가 전국 소매유통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유통산업 전망조사에서도 내년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은 0.6%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5년 내 가장 낮다. 성장둔화 요인으로는 소비심리 위축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중기중앙회가 도소매업 및 소상공인 6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조사에서도 원자재비 및 재료비 상승과 내수침체로 내년도 경영환경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악화될 것으로 본 응답이 가장 많았다. 우리 경제는 원달러 환율이 반년 가까이 오르면서 시중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수입원가 부담이 커지고 이 영향으로 생산자물가가 올라 결국은 소비자물가로 전가된다. 여기에 환율상승에 따른 기름값이 물가부담을 가증시키고 있다. 경제단체 실물경제 조사에도 나타났듯 고물가 고환율의 장기화가 내수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환율 안정에 대한 특단조치와 내수진작이 있어야 내년도 경제에도 희망이 보일 것이다.

2025-12-23

與 ‘영남특위’ 가동···TK정치 구도 변화올까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22일 ‘영남인재육성 및 지역발전특위’ 설치를 의결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험지’로 꼽히는 대구·경북(TK) 지역과 부산·울산·경남(PK)지역 민심 공략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영남권에 어떤 인재를 공천할지, 그리고 어떤 공약을 내걸지 주목된다. 특위 위원장은 4선 중진인 민홍철(경남 김해시갑) 의원이 맡았다. TK에서는 임미애(비례, 경북도당위원장) 의원과 허소 대구시당위원장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특위는 말 그대로 인재 발굴과 지역현안 해결, 비전 제시 등의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월 경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남 인재들이 민주당에 영입되는 구조가 막혀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빠른 시일 내 영남권 특위를 출범시키겠다”고 언급했었다. 이미 가동중인 ‘호남지역 발전특위’에 비해 시간적 격차가 나긴 하지만, 여권의 TK·PK지역 싱크탱크 역할을 할 구심체가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민주당은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TK 25개 지역구 중 7곳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인재영입을 등한시한 탓이다. 특위의 역할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영남권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특히 대구시장 선거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홍의락 전 의원, 구윤철 기재부 장관 등 중량급 인사들이 민주당 후보로 거론돼 벌써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캠페인 방식에 따라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홍 전 의원은 최근 대구언론인 모임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유력후보들과 경선에서 함께 겨뤄봤으면 한다”면서 선거흥행 방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보수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TK정치 구도는 도시경쟁력 차원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다. 도시는 정치적 다양성이 있고 광장처럼 열려 있어야 살길이 생긴다. 여당 프리미엄을 가진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TK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2025-12-23

장동혁의 ‘尹어게인 人事’···극우의 길 가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1야당 대표로선 헌정사상 첫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주자로 나섰지만, 당내 반응은 차가웠다. 그가 토론을 시작하자 여당 의원들은 단체로 의석을 떠났고, 국민의힘 의원들마저 20여 명만 자리를 지켰다. 장 대표의 이러한 당내 입지는 그가 최근 단행한 인사 탓이 크다. 그가 취임한 후 발탁한 사람은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과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김민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이다. 이들 세 사람은 ‘윤석열 어게인(again)’ 스피커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에 찬성하고 친한(한동훈)계 공격의 전면에 나서 당내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 이호선 위원장은 지난달 한동훈 전 대표 일가와 관련된 당원게시판 사건 조사에 착수했으며, 지난 16일에는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이란 중징계를 당 윤리위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나오자 그는 “들이받는 소도 임자도, 돌로 쳐 죽일 것”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이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온 인물이다. 최근 임명된 장예찬 부원장도 대표적인 친윤계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부산 수영)을 받았지만, 과거 있었던 막말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한 전 대표를 집중적으로 비난해왔다. 지난 15일에는 한 전 대표를 겨냥해 “당내 오래된 고름 같은 문제”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의힘 국민소통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민수 최고위원은 초강경 ‘윤어게인’ 인사다. 그는 지난 8·22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후 장 대표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도 했다. 장 대표의 이러한 인사에 대해 한 전 대표는 “윤 어게인 세력이 당 정체성을 더럽히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의 ‘윤 어게인 노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시장 출신인 권영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이 노선으로는 선거 못 치른다는 말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고, 여상원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은 “정당에서 말(언로)을 막으면 히틀러 중심으로 똘똘 뭉친 나치당처럼 된다”고 했다. 당내 최다선(6선)인 주호영(대구 수성갑) 국회 부의장은 “‘윤 어게인 냄새’가 나는 그런 방식은 맞지 않다”고 평가했다. 현재 장 대표의 강경행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 상태로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 40%, 국민의힘 26%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우세했지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양당(민주당 30%, 국민의힘 33%)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 중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최근 비대위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장 대표가 발탁한 ‘국민의힘 스피커’들이 거침없는 극우 목소리를 내면서 당 내분이 임계점을 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23

일본의 핵무장론

현재 세계에서 핵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소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을 손꼽을 수 있으나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 이후 국제적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핵보유국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핵무장론이 나온 배경도 트럼프 외교 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일본, 독일, 폴란드, 한국 등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등장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총리 관저의 안보정책 담당 간부가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밝힌데 이어 일본의 방위상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선택 사항을 배제하지 않고 논의한다”고 말해 일본의 핵 무장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능력 등 핵무기를 6개월 내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나라로 알려지면서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또 일본 수상 다카이치의 발언으로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핵무기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일본의 핵무장론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유일한 핵무기 피해국가다. 범국민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자국 안보를 위해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 시대적 이치다. 문제는 한국의 입장이다. 중국, 북한, 일본 등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가정할 때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하다. 만약 핵 경쟁력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치명적 위험에 빠질 게 뻔한 것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12-23

“단순하고 천천히”

알람 소리에 깬다. 그러나 눈을 뜨지도 않고 몸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누운 채로 양손을 양쪽 귓속에 넣어 위아래로 당긴다. 뒷목에서 어깨까지 훑듯이 마시지 한 후 발끝 마주치기 30번. 이명 치료에 좋다는 운동이다. 그렇게 하면 몇 분 후 눈이 떠진다.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제일 먼저 물을 마신다. 공복에 마시면 좋다는 게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들기름도 먹어 보고, 미지근한 음양수도 마시다가 최근엔 거기에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라고 해서 아예 정수기 옆에 작은 소금통을 가져다 놓았다. 이조차도 자주 잊으니 아직 몸에 배려면 멀었다. 두유기에 콩을 계량해 넣어 버튼을 누르면 32분 후에 두유가 만들어질 거다. 그 사이 다시 방으로 가서 TV를 켜기도 한다. 아니면 냉장고에서 몇 가지 채소를 꺼내 씻고 썰고, 빵 한 조각을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아침 식사 준비는 거의 다 된 셈이다. 그즈음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한다고 예고를 한 후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나는 남편을 부른다. 은퇴하고 4년 정도 지나니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들은 이렇게 어느 정도 정돈이 된 듯한 루틴이다. 4년 전, 은퇴 후의 삶을 꽤나 거창하게 계획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었고, 메모해 두고 실행하려고 애썼다. 주위에도 알리고 칼럼까지도 썼다. 스스로의 다짐을 공표하여 실천력을 높이려는 얄팍한 의도였겠다. 가끔씩 메모를 체크해 보기도 하는데, 실천한 것도 많고, 변경한 것도 있고, 추가한 것도 있으나 포기한 것도 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니 스스로 변명하고 위안하며 토닥인다. 인생이 목표를 정하고 아등바등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성취도 좋고 만족감도 짜릿하긴 하다. 그러나 거창하지도 별스럽지도 않은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 매일매일의 아침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순간의 평온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본의 93세 할머니의 하루를 손자가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이불 털고 점심 만들어 먹고 밭에서 일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또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잠자리에 드는 기노에 할머니의 하루는 마치 할머니 자신을 위한 경건한 의례 같았다. 할머니의 일상에서 감명을 받은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최고의 예의라는 인상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쓴 좌우명이 생각난다. “여전히 나답게 살자.” 아마도 ‘나다운 나’에 집중하는 한 해를 살아보자고 한 다짐이었다. 매사에 열심히 살며 충실하자는 의미였을 텐데, 이제 일 년 지나 되돌아보니 글쎄다 싶다. 어떤 제안도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새로운 계획도 즉흥적인 약속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겹친 일정을 조정하고 헤쳐 나가면서 야릇한 쾌감마저 느꼈다. 성취도 있었으나 그러다 보니 몸에 부쳤는지 난치성 이명을 얻게 되었다. 얻은 만큼 잃었다. ‘여전히 나답게’ 살았을진 몰라도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음을 깊이 뉘우친다. “단순하고 천천히.” 내년을 위한 새로운 좌우명으로 정했다. 그렇게 일 년을 살아보자. 나의 일상을 바지런한 기노에 할머니처럼 충만하게 꽉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23

조직문화와 관계 원리

조직 문화 혁신의 본질은 ‘제도‘가 아니라 ‘관계의 균형‘이다. 수많은 기업이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부터 고치고, 평가제도를 손보고, 회의 방식을 바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왜일까? 조직문화는 제도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방식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기업 대부분은 50:50의 조직 문화로 운영된다. 회사는 급여를 지급하고, 직원은 상응한 일을 한다. 정해진 만큼만 책임진다. 이는 공정성과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하지만, “제 역할이 아닙니다. 규정에 없는데요“ 등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50:50의 문화는 조직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지, 조직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아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는 60:40의 온도가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항상 조금 더 내어주는 관계가 존재한다. 리더가 먼저 책임지고, 조직이 신뢰하며, 말 한마디에 배려가 묻어난다. 이것이 바로 60:40의 문화이고, 손해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선투자다. 사람은 계산보다 태도에 반응한다. 그래서 60:40의 조직에는 말이 적어도 사람이 남는다. 가령, 콩 하나를 두 조각으로 쪼개면 어느 한쪽이 작을 수 있다. 이때 내가 40, 상대가 60이 될 때 내 주위로 사람이 다가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60:40을 적용하면 성실한 사람만 지치고, 모든 관계를 50:50으로 관리하면 조직은 냉각된다. 성숙한 조직문화는 50:50 원칙, 60:40 태도의 원리가 존재한다. 원칙과 평가는 공정하게, 소통·기회·존중은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제조업 조직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제조 현장은 말보다 관계의 체감 온도가 중요하다. 불합리한 지시는 규정이 아니라 신뢰 부족에서 반발이 나오고, 개선 제안은 제도가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나온다. 현장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현장의 관계 공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S사는 연초부터 긍정조직 문화를 조성하고자 ‘조직문화 개선‘ TFT를 구성하고, 제도 개선, 본사 스텝 전원이 솔선활동에 참여하는 등 많은 시도를 해왔다. 교대실, 휴게실, 운전실에 ‘디지털 S뉴스’로 회사 소식을 실시간 전하고,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직책보임자 1인 1 프로젝트 수행으로 성과도 있었지만, 긍정 조직 현장의 온도는 미미했고 변화된 제도만 남았다. 조직 문화 혁신은 슬로건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회의에서 누가 먼저 책임을 졌는가, 문제 발생 시 누구를 보호했는가, 성과보다 태도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등의 선택이 쌓여 조직문화가 된다. 조직 문화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운영방식’이다. 50:50은 조직을 공정하게 유지하고, 60:40은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공정함으로 조직을 지키고, 배려로 조직을 성장시킨다. 어디서 공정해야 하고, 어떤 때 내어줄 것인가를 리더가 분명히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조직 문화의 시작이고, 공정과 배려의 균형 있는 조직문화가 좋은 기업문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23

사라진 문명에서 배우는 웰니스의 지혜

어제, 나는 마추픽추의 가파른 돌계단을 묵묵히 올랐다. 안데스 산맥의 심장부, 짙은 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대 도시의 흔적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발 2400미터, 태양의 신전에서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은 숨 막힐 듯 고요하고 장엄했다. 잉카인들이 이곳을 ‘신의 집’이라 칭송하며 신성시했던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하는 순간, 문득 뇌리를 스치는 질문이 있었다. “왜 그토록 찬란하고 위대했던 문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한때 지구에는 잉카, 마야, 아스텍과 같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문명들이 존재했다. 철기 문명의 도움 없이도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어 농사를 지었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시대를 구현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했던 제국은 이제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그 몰락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단순한 탐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구조적인 균열 때문이었을까? 잉카 사회의 근간은 ‘아이유(Ayllu)’라는 독특한 형태의 공동체였다. 혈연과 깊은 신뢰로 굳게 묶인 그들은 사적인 이익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도왔다. 그들은 땅을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숭배하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했다. 마야인들은 정교한 천문 관측을 통해 별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 리듬에 맞춰 농사를 지었으며, 천상의 질서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의 세계관 중심에는 언제나 ‘조화(調和)’라는 핵심 가치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조화는 문명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문제는 바로 ‘성공의 함정’이었다. 잉카는 뛰어난 군사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안데스 산맥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은 점차 소수 엘리트 계층에게 집중되고 공동체의 정신은 점차 약화되었다. 정복 전쟁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마야 문명 역시 고도의 천문학과 수학을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제례 의식과 과도한 토목 공사는 사회 전체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끊임없는 전쟁과 환경 파괴는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했고, 결국 외부의 침략은 이러한 내부의 균열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제국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공 편향(Success Bias)’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도취된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맹신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갇혀 새로운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는 외부의 강력한 적에 의해 강제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오만과 경직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어떤 문명보다 훨씬 강력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손 안의 작은 기기 하나로 전 세계와 소통하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며, 유전자 기술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우주 탐사는 인류의 지평을 넓혀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불안정하고 위태로워지고 있다. 심각한 환경 오염,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 질환 등, 눈부신 기술 발전의 뒤편에는 어둡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전만으로는 결코 지속 가능한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 인간 내면의 균형을 잃고 자연과의 조화를 파괴한다면, 아무리 위대한 문명이라도 결국에는 쇠퇴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 웰니스는 단순한 신체적 건강 이상의 훨씬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몸과 마음,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잉카인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갔던 이유, 마야인들이 천체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며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 조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잉카의 현자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희는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너희 문명의 중심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너희는 진정으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웰니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다. 그것은 멈춤의 지혜, 성찰의 여백, 그리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경쟁과 끝없는 효율성 추구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린 내면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잉카와 마야의 비극적인 몰락은 우리에게 과거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가 속한 문명을 깊이 성찰하고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멸망이 아닌 성숙으로, 붕괴가 아닌 지속적인 성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2-23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무섭다

‘세상에 안 오르는 건 월급 뿐’이란 샐러리맨의 하소연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를 반영하고 있다. 점심 한 끼가 1만원을 넘어선 건 이미 오래전이고, 저녁에 동료 서너 명이 삼겹살이라도 구워 술자리를 가지려면 최하 10만원은 필요하다. 이제는 한국인이 숭늉처럼 마시게 된 커피 값도 갈수록 만만치가 않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한계점 없이 올라갔다. 특히 18~24세 젊은이들과 25~39세 직장인이 그 상승을 견인했다. 국제커피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405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미국인(400잔)의 커피 소비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좋은 향과 고급스런 맛을 강조하는 고가의 커피도 한국에선 잘 팔린다. 그러나, 그건 일부 호사가들의 경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만 개에 육박한다는 커피전문점 가운데 비교적 가격이 낮은 곳을 찾아다니곤 한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 나선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앞으론 커피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돈을 주고 사도록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컵 가격은 100~200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저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대략 1500~2000원쯤임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커피 값 상승률은 10%가 넘는다. 이래저래 마음 편히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부담되는 세상이 온 것인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22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하려면

집행권력(정부)과 입법권력(국회)이 폭주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집권세력의 ‘권력도취병’이 재발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이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집단 퇴정한 검사들에 대해 감찰을 지시하고, 정부는 ‘내란 청산’을 명분으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핸드폰 조사를 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위헌 소지와 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내란을 빙자하여 ‘정의를 독점하는 정치’로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나는 정의, 너는 불의’라는 권력의 독선은 ‘정의를 수호하는 정치’가 아니라 ‘힘으로 정의를 포장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정부여당이 사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삼권분립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으니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장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 되며, 괴물이 된 권력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이러한 권력의 폭주를 누가,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야당의 역할이다. 정부여당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야당에게 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극우 팬덤들에 휘둘리고 있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은 지난 6개월 동안 20%대(민주당은 40%대)에 멈추어 있으며, 장외투쟁으로 여론에 호소해보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하고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국민과 함께해야 권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한편 언론의 역할과 책임 또한 무겁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보수 또는 진보 정권에 관계없이 정론직필(正論直筆)해야 한다. 언론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한다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겠는가? 보수정권이 잘못하면 보수언론도 비판하고, 진보정권이 잘못하면 진보언론도 비판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상식이 아닌가?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지지 또는 비판하는 ‘정파적 해바라기 언론’은 결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국론의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이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주권자는 시위·청원·캠페인 등 조직화된 압력으로 권력의 폭주를 저지할 수 있으며, 선거를 통해서 권력 자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시민의 각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주권자는 진영논리에 빠지거나 편파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깨어 있는 시민’이란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다. 전 정권의 계엄을 거부했던 것처럼,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도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정의롭고 공정한 주권자의 이성적 판단만이 권력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12-22

‘전기료 인하’가 철강산업 정상화의 선결과제

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열고 석유화학 및 철강 산업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이대로 두면 관련 중소업체를 시작으로 도산 도미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철강도시인 포항으로선 지역경제의 충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회는 지난달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탄소중립 전환 특별법)을 통과시켜 구조조정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협의회에서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일자리 감소나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보면, 우선적인 구조조정 대상 품목은 철근이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 없는 철근의 경우, 현재 중소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어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고부가 품목인 특수강·전기강판 등에 대해선 과감한 선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생존 가치와 가능성이 있는 품목을 중점 지원해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정부의 기본적인 구조조정 원칙이다. 정부의 철강산업 구조조정과 지원 방향에 대해 철강업계는 수긍하는 분위기다. 업계에도 기업 자율에 맡기는 구조조정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철근 가격을 더 받을 것이냐, 덜 받을 것이냐의 문제를 기업들끼리 협상해서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문제가 이날 당정협의회에서도 논의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최근 3년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70% 가까이 인상됐다. 중국의 경우 산업용 전기를 정부가 보조해줘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에 더 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하루빨리 시행해 철강회사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simct12@kbmaeil.com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