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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해질 권리

등록일 2026-03-16 18:28 게재일 2026-03-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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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 변호사

헉슬리는 자신의 저서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성이 거세된 몬드 총통에게 야만인 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안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神)을 원합니다, 시(詩)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善)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원합니다” 1932년에 헉슬리가 집필한 대표적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기술, 과학, 쾌락, 통제가 결합 된 미래 사회를 통한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관한 본질을 질문한 책이다. 전쟁도, 빈곤도, 갈등도 없는 공동체는 모두가 똑같이 안정적이다. 모두가 모두를 위해 존재 하고,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행복 약 ’소마‘를 먹으면 된다. 우울도 권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필요하지 않다. 공포가 아닌 쾌락을 통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계. 결국은 통제까지도 사랑하게 만든다. 자유, 비판, 고통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가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하여 철학적 경고를 던진 책이다.


신세계의 미래는 어쩌면 현대판 기술주의의 세계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의 종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기술주의‘는, 사회 운영을 기존의 정치제도가 아닌 기술에 맡겨야 한다는 사상이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 엔지니어, 전문가가 사회의 운영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를 정치의 영역이 아닌 기술적, 합리적 관리 대상으로 보는 정치철학이다. 사회문제는 기술의 문제이며, 전문가가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기술주의는 20세기 초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후 1930년대에는 경제를 화폐 대신 에너지 단위로 계산하자는 소위 기술주의운동까지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충돌하면서 쇠퇴하였다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오늘날 다시 등장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알고리즘 정책, 인공지능 의사결정, 중앙은행의 기술관료 통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주의 가버넌스의 등장이 그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념, 선동, 분열, 감정에 의하여 파괴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였다. 기술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러한 비합리적 요소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과학적 합리성의 바탕에서 소모적 정치 논쟁을 뛰어넘어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인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최근 ’미국을 누가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 중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팔란티어의 피터 틸이 기술주의의 중심에 선 자들이다. 이들은 기술을 신봉한다. 특히 틸은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의심한다. 틸은 기술이 정치보다 중요하며, 현대 민주주의는 혁신을 느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권력으로, 데이터가 통치로, 알고리즘이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기술주의로 전 세계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보 권력의 집중과 알고리즘 통치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충돌하게 된다. 헉슬리의 신세계와 틸의 기술주의가 묘하게 겹치는 시대가 왔다. 기술주의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내면의 병든 곳을 치료하는 약은 소마가 아니라 고통이요, 슬픔은 기쁨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공봉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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