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 만큼 산 개다. 나의 주인은 중년을 살짝 넘은 나이의 남자다. 내 집은 주인집 대문 옆에 마련되어 있다. 딱히 집이라 할 것도 없다. 시중에서 파는 가장 싸구려 플라스틱 개 집이다. 타인의 관심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주인의 성품으로 보아 신분이 미천한 견공인 나에게 대궐 같은 집을 마련해 줄 리가 없다. 덩치에 비하면 공간이 협소하고, 비가 오면 빗줄기가 안으로 날아들어 몸을 더욱 웅크려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주인의 집은 대단하다. 목줄에 메이어 왼 종일 바라보는 주인집은 넓고도 상쾌하다.
주인의 하루는 나름 분주하다.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이웃들의 중얼거림을 나의 밝은 귀로 엿들은 바에 의하면, 시민들을 위하여 뭔가 큰일을 하는 듯하다. ‘정치인지 행정인지 뭐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은 비교적 일찍 집에서 나서는 때가 많다. 휴일도 없이 분주하게 다니는 것 같다. 귀가 시간은 대부분 늦은 밤이다. 절반 이상은 술에 만취하여 들어온다. 어떤 때는 대문 앞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붙들고 한참이나 무언가를 하소연하기도 한다.
주인이 술에 취하여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주인의 여자는 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주인을 대할 때가 많다. 거실의 창문이 조금만 열려 있어도 나의 대단한 귀는 부부의 으르렁거리는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들을 수가 있다. 대부분 주인의 지나친 행사 참여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가정의 유기를 문제 삼는다. 그때는 문득 나도 주인으로부터 버려지는 유기견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주인은 만취 상태로 귀가하였다. 그런데 거실에서의 으르렁거리는 행사가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주인이 여자의 손에 끌려 거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여자는 주인을 끌고 나와 나의 면전에 앉히고서는 뜬금없이 나를 겨냥해 손가락 질을 하고서는 주인에게 한마디 뱉었다. ‘얘는 술은 안 먹자나!’ 여자는 횡하니 집안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겨진 주인은 술에 취해 동공이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마누라 말이 맞아. 나는 사람들에게 중독된 사람이야. 누군가 부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 않아.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 사실은 ’정치 정‘자도 제대로 몰라. 그저 표를 좀 얻을 줄이나 알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사람들이 치켜 세워주는 분위기 속에서 나를 죽이고, 시간을 허비해. 매일 행사요, 술이니 가족을 돌볼 시간도 공부할 시간도 없어. 졸업하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어.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하고, 그들이 원하는 걸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전부 개소리야. 차라리 너가 나가서 짓는 것이 나을거야"
그러고 보니 주인의 고백은 진실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주인의 소포 중에 책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에게 소포가 온 적도 없었지만. 이웃 주민들의 수군거림에 의하면 주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개소리만 한다고 하던데, 이날 주인의 독백은 내가 짖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았다.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위 글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패러디 한 것임)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