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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Shorts)

등록일 2026-03-15 17:21 게재일 2026-03-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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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점심 후 차 한잔을 위해 커피숍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는 고개 숙여 손안의 작은 화면에 빠져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휴대전화 화면으로 향한다. 손가락 하나로 화면을 위로 밀어 올리면 다음 영상이 나타난다. 길어야 2~3분 남짓한 짧은 영상들, 이른바 ‘쇼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출근 준비를 하며 잠깐 본 영상이 이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에도 또 하나의 영상이 재생된다.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 “이 영상 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다음 영상을 이어 붙인다. 그렇게 10분 또 30분이 되고 어느 순간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우리는 분명 많은 것을 본 것 같지만, 막상 무엇을 보았는지 떠올리려 하면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어느 때보다 바쁘고 쫓기듯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강한 인상도 받지만 정작 마음에 오래 남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쇼츠는 즉각적인 재미와 반응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은 쉽게 내면에 남지 않는다. 화면은 빠르게 전환되고 자극은 계속되지만, 생각이 머물 여유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웃고 놀라고 반응하지만, 영상이 끝나고 나면 묘한 공허함이 남는다. 짧은 시간 감정은 소진되었지만, 삶의 의미는 충분히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할 시간 없이 이어지는 정보들은 기억으로 남기보다 금세 사라지는 잔여물이 되기 쉽다.


미국의 기술 철학자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인터넷 환경이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터넷이 정보를 빠르게 찾는 능력은 키워주지만 깊이 읽고 오래 집중하는 능력은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따라 화면을 넘기는 습관 속에서 우리의 뇌는 점점 빠르게 훑어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 결과 한 문장에 오래 머물며 의미를 곱씹는 능력, 복잡한 생각을 차분히 따라가는 능력은 점차 약해진다.


이 빠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독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독서는 쇼츠와 정반대의 속도를 요구한다. 문장은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않고 의미는 천천히 드러난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며 멈추고 되돌아가며 타인의 생각 속도를 따라 걷는다. 이 느린 과정속에서 주의력은 다시 우리 것이 되고 기억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결국 인문학적인 삶이란 더 강한 자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의미를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 쇼츠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화면을 끄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속도에서 내려와 자신의 삶에 맞는 리듬을 다시 찾는 일이다. 모두가 더 빠르게 달려가는 시대에 잠시 멈추어 생각하고 산책하며 사색하는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지만 분명한 삶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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