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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에 숨 불어넣기

등록일 2026-04-27 08:40 게재일 2026-04-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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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빈 상가가 늘고 발길이 줄어든 포항 원도심을 보면 우리는 습관처럼 ‘쇠퇴’라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나는 그 표현이 이 공간을 너무 쉽게 규정한다고 느낀다. 원도심은 사라진 곳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곳에 가깝다.
 

이곳은 단순한 상업 지구가 아니다. 항구에서 시작된 삶이 있고, 산업화의 시간 속에서 쌓인 노동의 흔적이 있으며, 시장 골목마다 사람들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간은 지금도 이곳에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지금의 감각으로 읽어내는 데 서툴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읽어낼 것인가”로.
 

이미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도시들이 있다. 일본의 일부 원도심은 한때 공동화를 겪었지만, 서브컬처(Subculture·단순한 취향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주류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하는 하위 문화)라는 흐름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과거를 지우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취향과 작은 공간들을 쌓아 올렸다. 

도쿄의 미야시타 파크 역시 그런 방식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찾아왔다. 그렇게 일상과 비일상이 섞이며 새로운 도시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의 기류는 포항에서도 조금씩 감지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원도심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빈 상가 활용, 청년 창업, 문화예술 기반 재생 등 방향도 다양하다. 원도심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개발’에서 ‘삶’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 가지가 걸린다. 이 공약들이 과연 이 공간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도심 재생은 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 쌓인 시간과 기억을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포항의 원도심은 부족해서 멈춘 것이 아니다. 아직 쓰이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여관이 작업실이 되고, 빈 상가가 공연장이나 전시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그곳으로 모여든다. 공간은 지어질 때가 아니라, 사용될 때 살아난다.
 

이 변화는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자체는 제도와 기반을 만들고, 건물주는 공간을 길게 바라봐야 하며, 문화 기획자는 그 안의 이야기를 읽어 사람을 불러들이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역할이지만, 그것들이 맞물릴 때 비로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나는 가끔 “시내 우체국 앞에서 보자”라는 말이 자연스럽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 말은 단순한 약속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던 시간의 기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그런 공간 아닐까. 이유 없이도 가고 싶고,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는 곳. 원도심의 미래는 거창한 개발 계획이 아니라, 다시 사람이 모이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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