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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등록일 2026-04-19 18:10 게재일 2026-04-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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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환절기라 그런지 유난히 부고 소식이 잦다. 계절이 바뀌는 틈 사이에서 사람의 삶도 함께 흔들리는 것일까. 며칠 간격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문득 전화 한 통, 안부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 한 얼굴이 떠오른다. 달포 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공연을 함께했던 동생 같은 친구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웃던 그 평범했던 하루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경주의 작은 장례식장을 다녀오던 길, 그날의 공기와 풍경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먹먹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풍경을 마주한다. 무표정한 영정사진, 줄지어 놓인 삼단 화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위로의 말들. 너무도 익숙한 장면인데, 이상하게도 늘 낯설게 느껴진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곁에서 울고 있는 가족들에게 “곧 죽을 내가 더 슬프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야말로 죽음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남겨진 사람의 슬픔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의 두려움과 아쉬움에 대해서는 좀처럼 상상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면, 그 마음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슬픔이라는 것이 단지 남은 사람의 감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요즘 장례식장 현황판을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대부분이 90세 전후, 때로는 백 세에 가까운 나이들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긴 시간을 살아낸 죽음 앞에서는 ‘병마에 오래 고생하셨는데 잘 돌아가셨어’라는 말이 조심스럽게 붙는다. 그 말 속에는 오랜 돌봄의 시간과 기다림, 그리고 어쩌면 끝내야 할 시간에 대한 안도 같은 것이 함께 섞여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은 슬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딘가 허탈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요하게 비워진 분위기가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장례문화는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진다. 슬픔을 크게 드러내야 제대로 애도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영정사진은 왜인지 늘 굳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떠나는 사람은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할까. 만약 나에게 그날이 온다면, 나는 조금 다르게 남고 싶다. 가장 즐거웠을 때의 사진 하나, 내가 좋아하던 음악 몇 곡, 그리고 화환 대신 작은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 그곳이 단지 울음만 남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꺼내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함께 웃었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례가 단지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다시 꺼내보는 자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처럼 부고가 잦아지는 계절이 되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것은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함께 쌓아온 시간이라는 사실을.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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