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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

등록일 2026-03-08 15:23 게재일 2026-03-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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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인구감소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변화다. 한 가정에 한 아이가 자연스러운 시대, 집 안은 조용해졌고 형제자매 사이에서 부딪치며 배우던 양보와 타협의 기술은 점점 희미해졌다. 세대 간 공감하는 간극은 넓어져, 각자의 논리는 분명해지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 듯 보인다.

내복이 잠옷이던 추운 겨울밤을 떠올려 본다. 구들장 밑으로 연탄 불길이 지나가고 나면 가장 먼저 따뜻해지는 자리가 있었다. 검게 그을린 바로 아랫목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아랫목으로 모였다. 두툼한 이불을 펴고 온 가족이 둘러앉거나 누워 발을 맞댔다. 서로의 발이 닿는 것과 이불속 더운 공기와 어울린 발 냄새 또한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닿은 그 체온이 하루의 피로를 녹여 주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밖에서 들은 소식, 부모의 걱정과 식구들의 투정이 그 자리에 풀어졌다. 아랫목은 단순히 따뜻한 자리가 아니었다.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함이 모이는 곳, 그래서 마음도 모이던 자리였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의 이치를 배웠고, 아이의 말을 들으며 어른은 세상의 변화를 체감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좋았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같은 천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온돌방 아랫목은 늘 가족의 마음을 먼저 데워 주었다. 지금, 우리의 집은 더 넓고 효율적인 구조이다. 하지만 함께 둘러앉을 아랫목은 사라졌다. 꾸며진 거실은 설렁하게 비어 있고, 각자 방의 휴대전화 화면은 또 다른 세상이다. 한 공간 아래 살지만 서로 다른 시간과 취향 속에 머문다. 대화는 짧아지고, 표정 대신 메시지가 오간다. 가족은 함께 있으되, 동시에 각자의 공간은 따로 있다.

편리함과 독립성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아랫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식탁에서, 거실 소파에서, 혹은 동네 작은 모임에서라도 우리는 서로 공감한다면 다시 함께 머무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표정을 읽고, 침묵까지 공유하는 시간 말이다. 관계는 멀리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데워지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어도 우리라는 관계까지 함께 줄어들 필요는 없다. 아랫목의 정신은 공간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가장 따뜻한 자리를 서로에게 내어주고, 그 자리로 기꺼이 모이는 마음이 곧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비록 오늘의 사회가 각자의 방과 화면 속으로 흩어져 전통적 공동체를 말하기 어려운 구조일지라도, 아랫목의 따뜻함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회복하자는 제안이다. 자리를 조금 내어주고, 대화의 속도를 늦추는 작은 배려가 모일 때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형태는 달라져도 좋다. 온라인이든, 작은 모임이든 그 안에 따뜻함을 나누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하다. 인구는 줄어도 우리의 온기만은 줄지 않는 사회, 서로의 발을 다시 맞댈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 또 같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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