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불과 80일 앞둔 국민의힘 모습이 점입가경이다. 의원총회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결의하며 이른바 ‘절윤(絶尹)’ 노선을 선언했다. 하지만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태도는 종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절 윤’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접수 기간을 연장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접수를 거부했다. 혁신선대위를 구성하라는 요구다.
장 대표는 “공천은 공정이 생명”이라며 오 시장의 요구를 일축했다. 여기에 강성 보수 성향의 유튜버 전한길씨가 반발하고, 이정현 공관위원장마저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심은 차갑게 식어간다.
국민의힘이 방향을 잃었다. 선거를 앞둔 정당의 최우선 가치는 ‘승리’다. 그런데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패거리 싸움’에 매몰돼 있다.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3월 2주 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7%, 국민의힘은 20%다. 지지율 차이가 갑절을 넘겼고,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70%에 달한다. 민주당은 39%다. 비호감도는 거꾸로 국민의힘이 갑절이다. 이대로라면 광역단체장 17곳 중 15곳을 민주당이 휩쓸었던 2018년 지방선거의 참패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단순한 기우로 들리지 않는다.
위기의 근원은 명확하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노선과 특정 지역에 고립된 ‘TK당’으로의 퇴행이다. 문제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TK)조차 예 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전국적으로 66%를 기록 중이다. 보수 세가 강한 TK에서도 49%, 부산·울산·경남(PK) 은 57%에 이른다. 특히 TK 지역의 무당층 비율은 31%로 전국 평균(28%)보다 높다. 이는 전통적 지지층마저 국민의힘에 실망해 등을 돌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맹목적 지지’가 아닌 ‘냉철한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결국 ‘장동혁 노선’은 실패했다. 양대 정당 체제에서는 어차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절대적 지지층’이 있다. 승부는 중도층에서 난다. 그런데 중도층 지지율에서 민주당(51%)과 국민의힘(12%)의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장 대표의 간판으로는 지금의 국면을 타개할 동력이 없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최 소한 선거 기간만큼이라도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얼굴과 전략으로 경쟁해야 한다.
이런 국면이 계속되면 중도층마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고, 보수 지지층 가운데도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에 실망해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선거 이후에 다시 내부 경쟁을 하더라도, 지금은 ‘간판’을 바꿔 달고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할 때다. 극우 층에서 얼마나 더 표를 얻으려는 것인가. 어차피 이길 지역에서 이긴 정도로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후안무치한 일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은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 처절한 성찰 끝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전국 모든 광역단체장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지금 보수 정당이 본받아야 할 것은 당시 그들이 보여준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기득권을 움켜쥔 채 입으로만 쇄신을 외치는 것은 지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나만 살고 당은 죽어도 좋다’는 식의 아집이다. 중앙정부를 포기한 대구·경북만의 고립된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일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경제와 시도민에게 돌아온다.
오세훈 시장의 요구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보수 유권자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 선거에서 완패한 뒤 지도부가 물러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선거 전 일시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보수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선거 결과를 보기 전에는 못 물러난다는 고집은 결국 ‘다 같이 망하자’는 소리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나보다, 내 패거리보다, 국민과 지역의 미래를 먼저 생 각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던지는 용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