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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가 황교안’으로 지방선거 치를 수 있나

여야 정치권이 모두 내년 지방선거에 매달렸다. 이재명 정부의 전반기를 평가하게 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선거를 독재로 가는 것을 막는 ‘마지막 저지선’이라고 규정했다. 장 대표는 보수 세력을 끌어모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잇달아 터져나오는 극우 성향의 몸짓들이 선거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좌우 균형을 맞춰가며 원을 넓히는 전략적 행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이다’라는 말은 ○○○에게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말이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중심에 서 있다. 장 대표가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말한 것은 그 음모론에 100% 공감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장 대표가 말한 ‘우리’는 누구인가. 부정선거 음모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의 씨앗이 됐다. 따지고 보면 멀쩡한 정권을 조기에 끝내고, 민주당에 헌납한 원인이다. 비상계엄이 아니라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개는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비상계엄 직후 페이스북에 “부정선거 세력도 이번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한다”라면서 “강력히 대처하시라. 강력히 수사하시라. 모든 비상조치를 취하시라”라고 촉구했다. 더구나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라고 부추겼다. 황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한 것은 아니다. 내란죄로 수사하려는 특검을 이해할 수 없다. 내란죄에 대한 특검 수사를 이렇게까지 확대해야 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황 전 총리의 말은 분명히 반헌법적이다. 전직 국무총리가 한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히틀러의 수권법을 응원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황 전 총리는 “아무리 봐도 내란 자체가 없었다”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하는 것이 내란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조건 합헌인가. 그렇다면 굳이 탄핵 절차를 왜 만들어놓았나.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헌법의 틀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서라면, 계엄령을 발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헌법 절차를 밟지 않았다. 계엄령 발동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인 국회마저 무력화하려 했다. 계엄령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정족수’까지 챙겼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은 견제받는 권력이지, 독재자가 아니다. 헌법 질서를 파괴하면서 견제 기관을 무력화하고, 헌법이 부여한 이상의 모든 권한을 한 손 에 장악하려 했다. 명백히 친위쿠데타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도 면회했다. 이어지는 언행이 극우편향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윤 전 대통령은 보수 정권의 자살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다.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현재 상황의 출발이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재공천한 것부터 민심을 거슬렀다. 여론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독단이다. 총선 직전 전공의 파업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담화는 민심을 뒤집었다. 참모들이 말렸지만, 그는 사전 상의도 하지 않은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선거를 앞두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도피시켰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사건에 사과는커녕 내부 갈등만 일으켰다. 대통령 참모의 회칼 발언은 민심에서 유리된 오만한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했다.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물가고로 서민들이 고통받을 때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국회 다수당 독재를 만들어 준 건 윤 전 대통령이다. 더 큰 문제는 선거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비위를 맞춘 측근들도 문제다. 장 대표의 일련의 행보가 선거 필패의 윤 대통령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극우세력을 끌어안는 게 지지층 확장이 아니다. 극우를 안으면 더 많은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떠나는 걸 각오해야 한다. 정권을 다시 찾을 의지는 있는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16

정권이 끝난 뒤에 재판해야 하나

‘검수완박’이라는 말이 이렇게 그럴 듯하게 들릴 줄은 미처 몰랐다. 민주당은 일찍이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검찰은 지난 7일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1주일 전 1심 판결을 받은 다섯 명이다. 피고들은 모두 항소했다. 형사소송법상 ‘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형량이 더 높아질 수는 없게 됐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7886억원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고 파악했다. 공사에 끼친 손해도 4895억원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물린 추징금, 473억원이외에는 회수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돈은 그들 것이다. 형기를 마치면 떵떵거리며 쓸 수 있다. 그마저 항소심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 늘어날 수는 없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에 대해 1심이 ‘액수 산정이 불가능하다’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이를 다시 뒤집을 수는 없다. 김만배 씨는 징역 8년에 추징금 428억원, 유동규 전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징역 8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 공사전략실에 근무한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과 벌금 38억원 및 추징금 37억원을 받았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형이 더 늘어날 수는 없지만, 줄어들 수는 있다. 추징금도 줄어들 수 있다. 그것조차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에 감형이나 사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 때문이다. 검찰은 이 대통령이 이 사건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보고,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재판을 중단했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현직 대통령이 형을 받을 경우 유죄건, 무죄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배려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결정이다. 그 탓에 법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틀어막으려고 안간힘이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이 한 일이라고는 이재명 대통령 방탄 갑옷을 세 겹, 네 겹, 겹겹이 둘러싸는 일이 전부다.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 환송된 선거법 위반 재판을 막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다.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재판을 못하게 강제하는 법안을 준비했다. 거센 반발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민주당은 거기에 ‘국정 안정법’, ‘국정 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붙였다. 대장동 재판을 겨냥해 ‘배임죄’를 폐지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재명 대통령 수사를 막기 위해서다. 분리해야 한다던 수사권, 기소권을 이 정부가 임명한 특검에는 모두 부여했다. 강압 수사라고 항변하며, 목숨을 끊는 피의자가 나와도, 자체 조사로 덮었다. 외부 감사도, 견제도 할 수 없는 특검이다. 그 칼날은 모두 정치적 반대세력을 향해 있다. ‘항소 포기’는 그나마 남은 검찰의 기소권마저 빼앗은 셈이다. 수사 검사가 항소를 요구하고, 중앙지검장이 항소를 결정하고, 대검에서까지 항소하겠다고 법무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재판을 포기했다. 수사검사는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항소를 막았다고 폭로했다. 무죄가 자신있다는 이 정부가 정식 재판은 두려워한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 환송’ 같은 일을 미리 틀어막겠다는 속셈이다. 정진우 중앙지검장이 사의를 밝혔다. 항소 포기 하룻만이다. 그럴거라면 부당한 지시에 왜 맞서지 못했을까. 이게 법무부장관의 정상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인가. 항소 요건에 맞지 않다는 법무부의 항변이 야당 정치인에게도 적용될까. 일반 국민에게도 같은 기준을 들이댈까. 어차피 신뢰는 포기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는 정상적인 재판이 불가능하다. 이럴 바에야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동안은, 집권당 정치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무기한 정지시키는 건 어떤가. 정권이 교체된 뒤 수사고, 재판이고, 다시 하는 건 어떤가.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코웃음 치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09

권력에 취한 관행, 그게 내로남불이다

지난 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열렸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경주에서 가장 조명을 받은 건 역시 이 사태를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김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세전쟁을 휴전했다. 한국에 대한 관세도 합의했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없던 문제를 만든 협상이니,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렇지만 힘이 좌우하는 국제 관계에서 더 이상 요구하기도 어렵다. 할 만큼은 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궁화대훈장과 천마총 신라 왕관 모조품을 선물 받고, “그 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만족감을 보였다. 왕관도,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도 흡족했던 것 같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아부했다고 조롱했지만, 광인을 흉내 내는 트럼프의 횡포를 막으려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APEC이 열린 경주는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다. 고려와 조선 500년. 최대의 제국으로 이름을 떨친 로마도 500년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도 이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라를 유지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신라는 여섯 부족의 연합체로 출발했다. 나중에 단일 왕조가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부족 간의 협력, 협치와 공동체 정신이 깔려 있다. 안정적인 권력체제와 유연한 외교가 힘이 됐다. 아집과 독단이 심한 군주가 등장해 국정을 흩트리고, 권력투쟁으로 자멸한 나라들과 대비된다.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이 천년만년 갈 것으로 착각한다.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고려 무신들은 그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죽고 죽였다. 정중부는 정변 동지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9년 만에 경대승에게 살해당했다. 경대승은 4년 만에 병사했다. 이의민이 정권을 독점했지만, 그 역시 최충헌에 게 살해당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탐욕이 더 무섭다. 필자가 청와대 취재를 담당할 때 한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창밖의 벚꽃을 가리키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권좌에 앉아서도 그 이후의 일을 걱정했다. 그런데 대개는 그 끝이 없는 줄 안다. 권불십년(權不十 年)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인들 그것이 삼일 천하로 끝날 줄 알았겠는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도 임기를 늘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그 권력의 끝이 없다고 착각한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서울의 민심이 흔들렸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32%로 민주당 31%보다 높다. 미디어 토마토가 서울시장 가상대결을 조사한 결과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주당 박주민·박홍근· 서영교·전현희 의원과의 일 대 일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다. 영호남에서는 큰 이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선거다. 가장 큰 전장이 수도권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가 승패를 가른다. 비상계엄이라는 패착으로 정권을 넘겨준 뒤 여론은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흐름을 바꾸는 건 민주당이다. 선거는 상대방 실수에 좌우된다. 민주당이 굴러온 복을 발로 차고 있다. 과욕이 참사를 빚고 있다. 국회에서 일당 독재가 뭔지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의 여유도 관용도 없다. 지독히 ‘못된 말’만 찾아내 쏟아낸다. 당 대표가 앞장섰다. 집권당은 국정의 책임자다.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다. 이념에 매달리다 망쳐도 자기 책임이다. 그런데 이념도 아니다. 내 편은 무조건 옳다는 사이비 진보를 ‘노무현 정신’이라고 한다. 서민이 서울 아파트 사는 걸 철저히 막았다. 그 정책을 입안한 경제 관료, 정치인들은 이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 피감기관이 벌벌 떠는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결혼식을 해놓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들이 맞서 싸운 과거 정부의 부패도 당사자들에게는 ‘관행’이었다. 민란을 일으킨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도 당시에는 만연한 ‘관행’이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부끄러운 줄은 알았다. 무엇을 위한 싸운 건지 잊어버렸다. 권력에 취했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02

다수결로만 처리하려면, 국회가 왜 필요하나

매주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지난주에는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조사가 많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 대책이 ‘적절하다’라는 응답이 37%, ‘부적절하다’라는 응답이 44%였다. 여론조사 공정의 조사에서는 김현지 부속실장이 국정 감사에 출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출석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56.3%로‘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응답 28.2%보다 갑절이나 많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렇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처리한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한다. 법사위에서 추미애 위원장은 야당 의원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야당을 대변할 간사 선임도 민주당 뜻대로 강요한다. 국회 운영에서 야당이 없다. 민주당의 일방 독주다. 그런데도 ‘다수결’이라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란 것이다. 정말 그런가. 플라톤은 다수결이 대중의 어리석음을 낳는 ‘중우(衆愚)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굳이 고대 철학자나 저명한 정치학자를 소환할 것도 없다. 여론조사는 어떤가. 여론조사에서 다수가 김현지 실장에게 국회에 출석하라면 출석할 것인가. 부동산 대책은 어쩔 건가.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훨씬 많으니, 취소할 건가.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면 그게 옳다. 국민의 다수보다 국회 의석의 다수가 더 우선이라고 주장할 건가. 아무리 따져봐도 국민 다수가 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국민은 주권 그 자체이지만, 국회의원은 위임받은 권력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참여 민주주 의’를 강조해 왔다. 요즘처럼 사회적 소통망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국회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국민에게 바로 물어보고, ‘다수결’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무 엇 하러 ‘국회’를 만드나. 수많은 혈세를 낭비하며, 저질 막말 경연을 참고 들어야 하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전부라면 국회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부터 모범국들이 모두 의회를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삼는 것은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나 아렌트도 다수의 지배는 “소수자를 제거해 버리는 것”으로 다수결의 타락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비판했 다. 다수결은 분명히 효율적인 의사결정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토론과 타협이다. 다수결이 오히려 이를 잠식하고, 훼손하고 있다.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질적인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최근 한국의 정치에서는, 이러한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강조된다. 다수의 표를 확보한 쪽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수의 목소리는 묵살된다. 다수결이 절대적인 기준인 양 착각하고, 정당성의 근거로 악용되면서, 정치는 점점 더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전쟁터로 변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세력이 ‘국민의 뜻’을 내세워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과연 그 ‘국민’은 누구인가?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는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승자가 모든 권한을 독식한다. 패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학자 월터 리프만은 “소수파의 합의를 얻지 못한 민주주의적 결의는 위선과 무법상태를 가져올 따름”이라고 경고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 서는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정치는 이러한 ‘합의의 정치’를 외면한 채, 수의 우위를 앞세운 ‘힘의 정치’로 변질됐다. 다수결은 최종적인 결정 방식일 수는 있어도, 그 이전의 과정—즉, 충분한 토론과 소수 의견의 존중—없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독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숫자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서 출발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26

특검이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할 해답인가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던 50대 공무원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양평군 5급 공무원인 그는 양평 군청에서 아파트 개발사업의 개발부담금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의 친정어머니가 하던 양평 공흥 지구 개발사업에 특혜를 주지 않았느냐고 추궁당했다고 한다. 숨진 공무원이 남긴 유서는 참담하다. 그는 “치욕을 당하고, 직장 생활도 삶도 귀찮다. 정말 힘들다”라고 적어놨다. 그는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특검이 기억에도 없는 진술을 받아 억지로 조서를 꾸몄다” “모른다고 해도 계속 다그친다.”라고 호소했다. 특히 그는 특검이 당시 양평 군수였던 국민의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9월 검찰은 없어진다.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으로 남는다. 검찰이 수사권을 마구 휘두르며 전횡해 왔다는 이유다.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최 상병 특검 등 세 가지 특검을 만든 것도 검찰 수사를 못믿겠다는 뜻이다. 수사를 경찰도 아닌 특검에 맡겼다. 모든 정부 조직을 장악한 집권당이 축하면 특검을 만든다. 야당마저 양평 공무원 죽음과 관련해 특검을 만들자고 하 니, 가히 특검 공화국이다. 특검은 본래 ‘국민 의혹 해소’와 ‘성역 없는 수사’라는 사법 정의의 ‘해결사’ 로 고안된 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은, 정쟁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극한 대립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단순히 수사 대상의 문제만 아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병폐인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 사법 화’가 악순환하게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는 수사기관이 정치적 의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무기력하고, 권력자의 정적을 표적 수사한다는 의심이 검찰 개혁의 명분이 되고 있다. 같은 행위를 해도 권력자는 무죄, 야당 정치인은 유죄로 몰아간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이런 의심에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특검은 정권의 지휘를 받는 검찰과 경찰이 할 수 없는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게 애초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오히려 거꾸로다. 정부의 수사기관이 할 수 있지만, 검찰에서 거세한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게 허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양평 공무원의 죽음은 그 흔적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 무리한 수사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특검에는 다 주어졌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해결할 문제를 사법에 떠넘기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던져버리고,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이다. 우리 편은 선이고, 정치적 경쟁자는 악이고,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뿔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가짜뉴스와 선동, 선전매체를 부추긴다. 검·경 등 수사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오직 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수사기관을 정치 투쟁의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일 사람을 요직에 앉혀, 그 조직을 장악한다. 이런 사법의 정치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특검이다. 원래 특검은 여야가 정치적 협상을 통해 만든다. 사법의 정치화를 비난하고, 검찰과 경찰조차 못 믿어 특검을 임명한다면, 그보다 더 중립적이라는 믿음을 주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오히려 정치적 색깔이 검·경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특검이 최근의 현상이다. 공수처도 검찰과 경찰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가정 위에 만들 었다. 고위공직자, 권력자의 비리를 수사할 때 ‘사법의 정치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검찰과 경찰보다 더 정치 중립적이었는지 의문이다. 이제 특검이 그 질문을 받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가 나쁘지, 사법, 수사 기관이 나쁜 건 아니다. 사법은 사법답게, 정치는 정치답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9

야당이 못났다고, 여당을 무조건 용서하지 않는다

‘반동’이라고? 우리 현대사에서 이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하는 말일까. 동족상잔이라는 피와 한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단어다.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반동’이란 낙인을 찍었을까.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그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판하는 지귀연 판사를 겨냥해 “개혁에 저항하는 반동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저격은 지난 5월 1일 이후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날이다. 이번 주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정 대표는 ‘조희대의 난’이라고 주장한다. 표현이 적개심은 뚜렷하지만, 내용은 없다. 포장 기술만 비교 불가다. 처음에는 ‘4자 회동설’을 제기했다.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만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한다. 민주당도 이제 그 주장에서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아무 근거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제, ‘왜 그런 판결을 했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한다. 피고 측 패거리가 판사를 불러놓고, 재판을 따지겠다는 꼴이다. 언제부터 국회가 대법원 위의 제4심이 되었나.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언행은 2021년 10월 20일(“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요청했고, 응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과 12월 22일(“시장 재직 때는 김문기 처장 몰랐다”)에 발생했다. 이에 대한 고발은 같은 해 10월 27일과 12월 23일 이루어졌다. 공직선거법 270조는 ‘6-3-3 원칙’(1심을 6개월, 2심을 3개월, 상고심을 3개월 내 하라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법을 지키려면 2022년 말까지는 최종결론이 났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1심 판결이 2024년 11월 15일(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났다. 법정기한의 6배다. 항소심 결심은 2025년 3월 26일(무죄 선고)로, 4개월 12일이 걸렸다. 대법원은 36일 만인 5월 1일 판결했다. 공직선거법에 이 원칙을 규정해 놓은 건, 재판 지연이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당선만 되면 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역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선거법에서 정한 재판 시한을 넘겼다. 최근 10년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확정판결까지 평균 397일이 걸렸다. 이 대통령 사건은 그보다 3배가 넘는 1282일이 걸렸다. 그런데 서두른다고, ‘반동’이라고 한다. 사퇴하라고 몰아세운다. 혐의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다. 왜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판결했느냐고 따진다. 정치보복이다. 더군다나 ‘반동’이라는 단어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상처를 헤집는 말이다. 그것이 특정 정당이 떠받드는 최고 권력자를 옹위하기 위한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수당의 힘을 이용한 일방 독주가 전체주의 국가의 일당 독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이런 무리수로 노리는 게 뭔가. 입법, 행정, 사법, 구석구석 친위세력을 포석해, 50년 집권의 기반이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정청래 대표는 수시로 국민의힘 해산까지 들먹인다. 정권이 무너지는 건, 정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모두 스스로 무덤을 팠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이 심판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까. 합법을 가장하고, 야당을 모두 쓸어버리는 게 무슨 의미일까. 거기에 사법부까지 무릎 꿇게 만들면, 역사가 무어라 기록할까. 지금 국민의힘은 엉망진창이다. 계엄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버티는 건 정청래 대표가 잘해서가 아니다. 국민의힘 덕분이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엉망이라고, 민주당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건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12

힘 있는 자의 자제가 민주주의의 기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 덕담으로 이런 말을 해왔다. 하늘은 청명하고, 들판에 곡식은 익어 풍요로운 추석이다. 농경 사회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넉넉할 때가 있었을까. 그런데 한가위를 앞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배터리 하나에 온 나라가 마비다. 해킹 부대까지 운용하는 북한이 의도적으로 개입하면 어쩔 뻔 했나. 트럼프는 깡패다. 자유무역협정(FTA)을 깡그리 무시하고, 갑자기 25% 관세를 주장하더니, 3500억 달러(약 490조 원)를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 강도가 따로 없다. 우리 세대야 쌀독을 박박 긁어 끼니를 이어간다 해도,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공존을 설계하는 게 아니다. 너야 굶건 말건 내가 갖고 싶은 건 다가져야겠다는 요구다.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후 우리 경제는, 인재 양성은, 또 일자리는 어떻게 할 건가. 이제 우리 안위를 미·북 대화에 맡 겨야 하는 처지다.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대응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하는 꼴은 울화가 치민다. 여도 야도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논리도 없고, 체면도 품격도 다 던져버린 욕설 경쟁뿐이다. 집권 여당은 국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기에 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집권 후 최저 지지율을 보인 지난주 여론조사에 응답한 국민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외환위기가 오건 말건, 나라가 위기에 처하건 말건, 집권당은 재판 뒤집기에 만 골몰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만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를 유죄로 확정해 선거에 못 나오게 만들려 했다고 주장한다. 증거도 못 내놓는다. 당내에서도 “근거가 희박한 것 아니냐”라고 하자, 서영교 의원은 “제보자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말만 하지,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도 못한다. 법원을 못믿는다며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내놨다. 입맛에 맞는 판사로 재판하겠다는 거다. 검찰도 해체해 버렸다.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은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을 143명 신청했다. 조 대법 원장을 비롯해 대법관만 5명을 신청했다.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이유다. 명백한 보복이다. 대법관은 국회에 부르지 않는 것이 관례다. 더군다나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해 판사를 불러 추궁하 는 것은 재판을 국회가 하겠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거대해진 민주당 권력에는 자제도, 절제도, 원칙도 없다. 이 대통령이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들도 모두 증인으로 불렀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배상윤 KH그룹 회장 등이다. 민주당은 검찰이 이 사건을 조작해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법도 발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판사와 사건 관련자들을 불러놓고, 호통치고, 원하는 방향으로 답변을 요구할 게 뻔하다. 이미 유죄 판결이 난 사건까지 특검과 전담재판부도 모자라 국회에서 누르고, 뒤집겠다는 말이다. 사실상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꼴이다. 더군다나 대법원장까지 오라 가라 하면서, 대통령실의 일개 비서관은 못 부른다고 버티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못 나올 이유가 있는데, 지금은 말을 못 한다고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민주당 의원마저 출석해 해명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국민주권 정부의 원칙’이라 고 말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과 임명된 권력의 상하 관계를 언급했다. 자유 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무엇이 다른가. 당이 정부와 사법기관을 모두 통제 하고, 일당이 지배하는 게 독재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사람과의 거리가 권력의 크기가 되는 체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권력의 균형과 견제가 이루어져야 자유민주주의의다. 굳이 임명된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게 만든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말을 따라 할 참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말 모르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28

가짜뉴스? 민주당이 진원지다

민주당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짜뉴스에 대해 15~20배에 이르는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이다. 1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고 김영애 씨의 황토팩이 KBS의 ‘소비자 고발’ 오보로 파산했다. MBC의 광우병 보도는 정권을 무너뜨릴 기세로 전국을 뒤집어 놓았다. 스카이데일리라는 인터넷신문은 중국인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조작뉴스로 극우파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에 합당한 책임을 졌느냐 하는 문제 제기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다. 노골적인 사실 조작이 횡행하지만, 정치인이 앞장서 이를 이용한다. 내 편 가짜뉴스는 상을 주고, 상대편이면 ‘징벌’하는 식이라면, 언론자유를 핍박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이 크다. 청담동 룸살롱 폭로가 대표적이다. 김의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청담동 룸살롱 의혹을 터뜨렸다. 유튜브 채널 ‘더탐사’(옛 열린공감TV)가 한 첼리스트의 통화 녹음을 근거로 잇달아 의혹을 부풀렸다. 의혹의 당사자였던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해명, 첼리스트의 경위 설명으로 오보임이 확인된 이후에도 한동안 물고 늘어졌다. 지난달 1심에서 관련자들이 한 전 장관에게 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논란 속의 김의겸 전 의원을 이재명 대통령은 새만금개발청장으로 임명했다. 정치적 공격수로 오명을 감수하면 상훈이 있다는 전례를 만든 셈이다. 김어준, 전한길 유튜브가 논란의 중심이다. 최근에는 열린공감TV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와 비밀 회동했다고 보도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열린공감TV가 지난 5월 4인 회동의 녹음 파일을 들려줬다. 그 녹음에서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이어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법사위 청문회에서 이 녹음을 틀었다. 최근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대통령실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발표를 했다가 발을 뺐다. 그런데 이 영상 앞부분에 ‘해당 음성은 AI로 제작된 것으로, 특정인들이 실제 녹음한 것이 아님을 알려 드린다’라는 자막이 붙어있다. 그런데도 서 의원은 ‘제보자가 특검에서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라며 굽히지 않는다. 정청래 대표는 “억울하면 특검 수사 받고 결백을 밝히면 될 일”이라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유튜버와 욕받이 정치인 한 사람이 던지면,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가, 슬그머니 빠지는 행태가 반복된다. ‘사실이라면…’ ‘억울하면…’이라며 책임지지 않을 ‘…라면’식 흠집 내기다. 가짜뉴스를 징벌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민주당이 검찰을 비난하는 대표적 사례가 ‘논두렁 시계’다. 권양숙 여사가 받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수사 내용을 흘려 모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검찰을 대신해 수사하는 특검은 얼마나 달라졌나. 연일 확인되지 않은 추정까지 쏟아내지 않나. 문재인 정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사퇴시키고, 47개 죄목으로 기소했다. 그런데 5년 만인 지난해 1월 1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다. 오는 11월 항소심 판결이 있다. 무죄건 아니건, 대법원장은 불명예 퇴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2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조금도 같이 있기 힘든 모양이다. 정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법원장은 누구였나. 정청래 대표는 조 대법원장이 “계엄에 침묵하고 서부지법 폭동에 침묵했다”라면서 “깨끗이 물러나라”라고 요구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했을 때도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죄목 중 하나가 ‘재판개입’이다. 이제 와 대법원장이 하급심의 재판에 일일이 개입하라는 건가. 집권당인 민주당이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21

재판이 정치에 예속되어야 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했다. 진행이 서툴렀지만, 오히려 짜고 하는 문답이 아니라는 믿음을 줬다. 답변들이 대부분 솔직하고, 국정 현안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인의 주장대로 실용주의자라는 느낌도 반가웠고, 걱정한 것보다는 이념에서 벗어나 보여 좋았다. 그러나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그게 뭐가 위헌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건 입법부 권한”이라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상 정의된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사법부 구조를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훈시했다. 이러한 논리의 배경으로 그는 ‘직접 선출 권력’과 ‘간접 선출 권력’으로 구분했다.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해 주권을 위임한 공직자이고,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주권 위임자로부터 임명돼, 간접적으로 주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삼권분립이라도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직접 선출 권력-간접 선출 권력 순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위에 있고, 사법부는 그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어떨까. 그는 “국민 주권 의지가 발현되는 장치가 정치”라며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건데 어느 날 전도됐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사법에 종속”돼 “위험한 나라가 됐다”라는 것이다. 종속이란 게 뭔가. 불법 행위에 대해 재판하는 것이 종속이고, 반민주적인가. 임명된 권력은 선출된 권력을 수사하고, 재판하면 안 되는 건가. 불법을 저질러도 눈을 감아야 하나. 수사와 재판도 선출된 권력의 지시를 받아야 하나.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대통령, 혹은 일당 독재를 합리화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논리다. 정당한 수사와 재판은 정치를 종속시키는 게 아니다. 정치는 가장 부패하기 쉬운 부분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불·탈법을 다 저지른다. 공권력을, 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쓴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권력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사법의 역할이다. 그래서 삼권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 교과서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정치의 사법부 종속’이 위험하다면서, ‘사법의 정치 종속’을 주장하고 있다. 사법이 정치에 종속되면, 권력의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정권을 잡으면 반대 정파를 탄압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말은 국민이 집권 세력에게 이런 횡포를 부릴 권한까지 위임했다는 뜻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선출된 권력뿐 아니라, 국민이란 이름으로 동원된 홍위병이 모든 권력기관을 파괴하고, 휘저었다. 우리로 치면 입법부와 사법부도 모두 부수고, 자신들이 그것을 대신했다. 난데없는 폭도들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유일한 절대권력자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쿠데타 실패에서 태어났다.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권이 있다는데 매달렸다. 나치가 바이마르 헌법 48조의 긴급명령권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긴급상황에서 군대를 배치하고, 기본적 시민권을 통제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총리로 임명된 지 이틀 만에 이를 이용해 제국의회를 해산하고, 총선 뒤에는 공산당과 사민당을 불법화하고, 독일국가인민당까지 해산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는 국민투표로 대통령과 총리 직무를 통합해, 나치 독재를 완성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사실은 국민의힘조차 인정한다. 그 재판을 굳이 정치재판으로 끌고 가 좋을 것이 무언가. 오히려 극우세력에게나마 반발할 명분을 만들어줄 뿐이다. 그것이 또 다른 ‘비상계엄권’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절제·자제가 사법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특별재판부’는 민주당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재판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절제와 자제는커녕 적극적인 재판을 하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절제·자제하는 사법부를 원한다면 민주당부터 자제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14

이재명, 의외로 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선 후보 시절 “야당 대표를 가장 먼저 만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누구를 만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여야 대화도 끊어지고 너무 적대화 돼 있다. 대통령이라도 시간 내고 설득해서 여야 대표, 특히 야당 대표와 주요 정치인을 만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라는 게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잘되자고 하는 것”이라며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하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이제 실현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오늘(8일) 여야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다. 오찬 뒤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단독 회동도 할 예정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면 야당 대표를 불러 설명하는 게 관례였다. 야당 대표와 단독회동을 하자는 국민의힘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을 갖췄다. 의제도 국민의힘 주장대로 제한을 없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재명 야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이 대표가 ‘영수회담이든, 여야 지도부 면담이든 형식은 뭐라도 좋으니, 민생을 위해 일단 만나자’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참모들에게 이 전 대표의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내가 왜 이런 사람과 만나야 하느냐” “범죄 피의자 아니냐”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참패하고 나서야 갑자기 영수 회담을 했다. 그러나 4월 29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수 회담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야당과 대화를 거부한다. 그는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상식적으로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까?”라며 “나의 대답은 NO”라고 썼다. 야당 지도부를 만나면 악수는커녕 눈길도 피했다. 윤 전 대통령과 판박이다. 정 대표는 국회에서 독주한다. 무조건 다수결로 밀어붙인다. 모조건 다수결로 처리하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일방적인 정책을 당내는 물론 야당까지 찍어 누른다. 대통령이 다수표를 얻었다고 전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파시스트 정당이 써먹던 위험천만한 반민주적 발상이다. 법안 처리와 의사 진행뿐 아니다. 이제 야당의 견해를 대변해 협상하는 야당 간사마저 여당 입맛대로 정하겠다고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부러진다. 지금 국민의힘은 동네북 처지다. 약장수 같은 유튜버들의 선동이 당대표를 결정할 정도로 줏대 없이 휘둘린다.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도 당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유일한 응원군이 민주당이다. 절제라고는 모르는 민주당의 강성 모드가 극우세력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민주당의 유치한 선명 경쟁 탓에 말도 안 되는 극우적 주장이 합리적 근거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이라거나 “그래도 정청래를 응원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주장이 떠나던 보수 지지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의 극우화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할지도 모른다. 강성모드로 서로 자기 표를 깎아 먹어도, 전국적인 판세에서는 그래도 불리한 게 ‘윤 어게인’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긴개긴 극우화에 명분을 주고, 불씨를 지피는 언행은 역사에 죄를 짓는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스스로 무너질 ‘윤 어게인’이나 극우적 주장이다. 그런데 “민주당 하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극우 주장이 먹혀들도록 명분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범이다. 이 대통령은 양대 노총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편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민주당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로 인해 더 발전했느냐, 후퇴했느냐가 역사에 기록된다. 두려울 게 없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할 이유가 없다.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 대통령이 “의외로 잘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조금 더 포용과 관용을 발휘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07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다

요즘 집권 여당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전 이재명 대통령은 ‘반탄(탄핵 반대)파’가 국민의힘 대표가 돼도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악수는 사람과 한다”라면서 “헌법을 파괴하고 실제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 데 대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 있지 않고서는 그들(국민의힘)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에서 강경파 지지를 얻으려고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바뀌지 않는다. 지난달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바로 옆자리에 앉았으나, 악수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일단 내뱉은 말이 있으니 쉽게 물러서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는데도 바뀌지 않는다. 정 대표는 국회에서도 아예 야당은 배제하고, 일방적인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 검찰, 언론 등과 관련한 법안들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법안과 관련해 “민감하고 핵심적인 쟁점 사안의 경우 국민께 충분히 그 내용을 알리는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최대한 속도를 내더라도, 졸속이 되지 않도록 잘 챙겨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이 대통령을 만나 이달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도 “어떤 명령, 네이밍보다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안을 내놓는 게 좋다”면서 검찰 개혁과 관련한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런데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정성호 장관조차 검찰에 장악돼 있다”라며 직속상관인 정 장관을 직격했다. 최근 “중대범죄수사청·경찰·국가수사본부가 행정안전부 밑으로 들어가 면 1차 수사기관 권한이 집중된다”라고 한 정 장관의 말에 당내 강경파들이 반발한 연장선이다. 대통령 대변인은 방송법에 대해서도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송법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통령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6시간 만에 민주당은 방송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그날 저녁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이 대통령은 “(방송법 처리는) 내 뜻과 같다”라고 자기 말을 바로 뒤집었다. 대통령은 포용적이고, 너그러운 말만 하고, 손에 오물을 묻히는 궂은일은 정 대표가 하는 ‘굿캅, 베드캅’ 쇼라도 하는 건가. 지난주 29일에는 이 대통령이 워크숍을 마친 민주당 의원들을 모두 대통령실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가 다수당이기 때문에 강자가 너무 세게 하면 국민의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정청래 대표가 너무 강하게 나가지 않도록 걱정하는 말로 들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말이 백번 옳다. 이 대통령은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데, 정 대표가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건지, 두 사람이 역할을 나눈 건지 헷갈린다.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을 추동하는 것이라면 이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은 이재명의 역사이지, 정청래의 시대가 아니다. 정당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선택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이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강성 지지층의 의견과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라크 파병 부분을 회고하며 “지지층의 소망과 주장을 거역한 데 따른 정치적 손실과 배신자라는 비난을 각오했다”라며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 한미 공조를 이 대통령도 실천으로 보여줬다. 국내 정치도 누구에게 떠넘겨버릴 수 없다. 대통령은 당 대표와 달리 특정 정파의 유불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미래를 볼 수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31

정권만 잡으면 면죄부를 쥐게 되나

우상호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인 사면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데 대한 해명이다. 기세 좋던 지지율이 눈에 띄게 꺾이니 ‘피해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면의 피해자라니 어불성설이다. 정치는 권한과 책임이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진다. 이 대통령이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통치행위를 했어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이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구나 원하고, 부러워하지만, 그 책임을 나눌 수는 없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책임이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란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라니…. 우 실장은 “대통령 임기 중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정무적 판단을 먼저 했다”라면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임 초에 하는 것이,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사면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 전 대표는 형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가석방 요건도 안 된다.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다. 굳이 곧바로 꺼내주려고 결심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나온다. 우 실장은 사면하면 국정 지지율이 4~5% 하락할 것이란 대통령실 내부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면했다는 것이다. “무슨 이익을 보기 위해 (조 전 대표를) 사면한 게 아니고, 피할 수 없다면 사면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 대통령이) 고뇌 어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더 떨어졌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주만에 12.2%P가 추락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국민 여론은 사면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NBS조사에서 조 전 대표 사면에 대해 부정 의견이 54%로 긍정 평가(38%)보다 16%정도 높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부정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특별사면(21%)를 꼽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 뜻을 거스 른 ‘결단’이 무슨 영웅적 ‘고뇌’이고, ‘희생’인지 공감할 수가 없다. 사면은 사실 지극히 예외적인 조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권은 서로 존중하며 분립한다.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히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면 명단을 보고도 이런 명분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면 제도는 정치보복을 해소하고, 억압과 차별을 해소한다는 왕의 자비다. 왕은 관대함으로 존경받고, 정치적 반대자까지 왕의 통치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면에도 야당 정치인을 포함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들러리다. 더군다나 청탁 사실이 노출되면서 야당의 반대 목소리마저 군색하게 됐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배제했다지만 누가 믿겠는가. 같은 진영에 대한 대폭 사면은 정치적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전 대표,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등을 풀어주는 게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까. 이들은 본인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면 잡범 취급당하며 형기를 채워야 했을 범죄를 정치 탄압이라고 포장한다. 오히려 개선장군인 양한다. 죄를 지어도 권력만 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통을 만드는 꼴이다. 이 대통령도 야당 시절 “국민 통합에 저해되는 특혜 사면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이 정부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표적 수사로 몰았다. 검찰도 정치권에 줄을 서는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검찰도, 경찰도, 심지어 법원까지 신뢰가 무너졌다. 재판을 받아도 사법 정의를 믿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정의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차지한다. 재판이 아니라 권력만 잡으면 무죄가 되는 전통을 만들면 정의가 설 땅이 없다. 결국 가진 것 없는 사람만 감옥에 남고,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큰소리치게 된다. 대통령만 되면 수백 명, 수천 명의 재판을 무효로 만들고, 같은 패거리 정치인을 모두 풀어주는 이런 사면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24

이벤트 정치는 실용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정 운영의 철학과 비전의 중심에 언제나 국력의 원천인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임명식’이라는 행사에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너무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형식과 의미가 무엇인지 뜨악하다. 이 대통령의 이날 광복절 기념사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그는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정치가 꼭 그 상태다. 그는 이어서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매우 실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이념적 동지의 틀에 묶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의 이 제안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날 그가 남북 관계에 대해 지적한 말대로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행동’을 믿기에는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 특히 취임 초기 그의 인사는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민임명식도 실용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 어디에도 그것을 뛰어넘을 의미는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날 행사를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떠오르는 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그는 자칭 황제가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비오 7세 교황까지 참석시켰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렸고, 대관식을 통해 교회와 귀족들의 복종을 받아내려 했다. 황제는 이미 절대자지만, 정통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절대권력에 대한 찬가를 듣고 싶었던 셈이다. 이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대통령이 되었다. 과반에는 미치지 못해도 49.42%, 1728만7513표를 얻었다. 그 표보다 엄중한 임명장이 어디 있겠나. 선거 과정을 통해 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도 했다. 그런데 굳이 왜 ‘국민임명식’이라는 이벤트를 벌인 걸까. 문재인 정부야말로 이벤트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많았다. 재임 중에만 그런 게 아니다. 퇴임 후엔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라던 그는 정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벤트는 ‘실용’과 거리가 멀다. 그는 “그 모든 미래의 중심에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벤트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한 행사다. 임명장을 80장씩 받은 것도 이 대통령이다. 80명의 ‘국민 대표’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참석한 교황과 귀족들처럼 들러리일 뿐이다. 유신독재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처럼 선거했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다. 소속 정당도 없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대의원 후보는 나설 수도 없었다. 미국의 대의원과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효표 몇 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15일 참석한 국민의 대표는 다양하게 선발했다. 그렇지만 정색하고 국민 대표라고 할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줄 대표성도 없다. 결국 이벤트,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국민의 대표는 국회의원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라도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흔히 독재자는 정치적 파트너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한다. 국회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적 권위,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정통성을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이벤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답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7

왜 ‘비상계엄당’이 되고 싶어 하나

컨벤션 효과라는 게 있다. 큰 행사를 하면 사람도 모이고, 돈도 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효과에 더 자주 인용된다. 전당대회를 하면 정당 지지율이 상승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맞불을 놓았을 때 효과를 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2021년 11월 여야 대통령 후보가 결정됐을 때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0%가량 지지율이 올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오히려 조금 떨어졌다. 양대 정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는 최근 여론 흐름도 그렇다. 민주당은 누구나 짐작할 만한 두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컨벤션 효과라면 국민의힘에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여론은 거꾸로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참여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4%, 국민의힘은 16%로 나타났다. 거의 세 배에 가깝다. 추세도 민주당은 오르고, 국민의힘은 떨어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도 긍정 65%, 부정 24%다. 이 조사만 특별한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에 심각한 경고 신호다. 전 연령대에서 민주당에 밀렸다. 심지어 70세 이상에서도 뒤처졌다. 지역적으로 전국에서 민주당 우세다. 국민의힘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경북(TK)마저 민주당에 내줬다.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이 흐름대로라면 국민의힘은 전멸이다. 국민의힘은 갑자기 비상계엄이라는 뚱딴지같은 일을 저질러 정권을 넘겨줬다. 국민이 맡겨준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웠다. 2024년 총선 때는 표 떨어질 일만 벌여 필리버스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입법·행정부도 모자라, 이제 지방 정부까지 몽땅 내줄 처지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이재명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패배 의식과 상실감 때문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탓, 국민 탓만 한다. 국민의힘 책임은 없다. 길이 안 보인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 청문회로 시끄러웠다. 이춘석 법사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차명주식을 거래한 의혹으로 출당됐다. 정부·여당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그런데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이게 국민 탓일까. 더 큰 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는 게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에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 부부, 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윤미향 전 의원 등을 사면한다고 한다. 송언석 위원장은 “최악의 정치사면”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뒤로는 야당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을 청탁했다. 전략도 없고, 결기도 없다. 말썽이 나자 뒤늦게 “어떠한 정치인 사면도 반대한다”라고 말했지만, 무슨 망신인가. 호재를 악재로 바꾸는 기막힌 재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고 한다.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둔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았다. 2004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과 탄핵 역풍으로 50석도 못 건진다고 전망할 때,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당사에서 121석을 건져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디도스 공격 의혹 등으로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당명과 로고를 바꾸고,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독점하던 ‘경제민주화’ 아젠다를 선점했다. 정권 심판론에 매달린 민주당을 ‘과거 회귀 세력’, 자신은 ‘미래 지향 세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 짜기에 성공했다. 박정희 지키기만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에 맞춰 변해야 한다. 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70%를 넘었다. 윤 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제 와 “계엄으로 누가 죽었나”라고 반문한다. 어쩌자는 건가. 미래를 팔아 과거를 뒤집자는 건가. 폭주를 막지 못한 자들의 면죄부로 쓰자는 건가. 그런 세력에 아부해 잔해더미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우려는 건가. 이런 자해 소동이나 벌이려면, 해체하는 게 옳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0

증오를 버려야 실용주의가 성공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쓸 것”이라며 “진보의 문제도, 보수의 문제도 없다. 오직 국민의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전부터 그는 여러 차례 실용주의를 언급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를 기존의 어떤 이념적 틀로 묶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운동으로 보면 유도도, 태권도도 아니고, 잡초 같은 투지를 가진 싸움꾼의 싸움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자신을 ‘실용주의’라고 강조한 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가장 잘 포장한 표현이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길을 걸었다. 기존의 민주당 주류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경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혹독한 압박 속에 정치적 위기를 넘겼다. 정치생명이 끝날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정부 때도 어려웠지만, 문 정부 때가 더 위험해 보였다. 당권을 장악한 뒤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이재명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난다”라는 말로 과감하게 물갈이했다. ‘비명횡사’(이재명계가 아니면 죽는다)가 유행어가 됐다. 문재인 정부 때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호남 출신도 아니고, 이념 성향이 분명한 운동권 출신도 아니다. 지역 변호사로 싸우면서 시장, 도지사를 거치며 중앙당과는 다른 통로를 지나왔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이념 성향으로 특징짓기는 쉽지 않다. 최대 공통점은 그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고, 충성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과 위주로 움직이는 실용주의가 그에게는 적절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과거 대통령 중에 실용주의를 강조한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자기 철학이 더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예상치 못한 행보가 여럿 있다. 그의 행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특정 이념이나 지지 기반의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맥락은 이해하고, 따지고, 결정하려 들었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 한 예다. 그를 지지한 정당이나 유권자는 전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려 노력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의 회고록 ‘운명’에 기록해 놓았다. 그는 한·미FTA 체결을 결정한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미FTA에 반대한 진보주의자들의 이론과 견해를 나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분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방과 관련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라는 것이다. 그가 믿고, 강연도 했다고 밝힌 ‘외채 망국론’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 OECD 가입에 대해 “나도 야당 시절 안줏거리처럼 비판했다”라면서, “가입하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지금 민주당의 주류조차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다. 하지만 그는 실용을 취했다. 이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실현할 조건을 갖췄다. 과거의 다른 정치지도자에게 빚이 많지 않다. 지지 기반 내에서 카리스마를 갖췄다. 정부는 물론 당도 확실하게 장악했다. 습관처럼 방향을 정해버렸던 과거의 틀을 깨기 위해 지지자를 설득할 능력과 힘을 가졌다. 남은 것은 본인의 결심과 냉정한 판단이다. 우리와 수교할 1992년만 해도 중국이 매우 힘들었다. 반만년 역사에 한국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유일한 시기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이 홍(紅)·전(專) 투쟁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십 명의 명멸한 야심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라졌을 게 뻔하다. 실용주의가 성공하려면 증오를 버려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다시 선거를 치를 일이 없다. 남은 것은 역사의 평가다. 증오에 사로잡히면 모든 일을 진영으로 보게 된다. 우리 편은 무조건 감싸고, 상대는 타협이 아니라 척결 대상이다. 다시 ‘내로남불’로 갈 건가. 이 대통령은 다른 길을 선택할 능력이 충분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03

그럴듯한 포장이 인사 혁신은 아니다

말 한번 시원하게 한다 싶었다. “문재인 같은 인간은 무능하다.” 그뿐 아니 다. “문재인은 비열한 사람”, “문재인이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흉이다.” 최동석 신임 인사혁신처장이 과거에 했다는 발언이다. 그의 평가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표현이 너무 거칠다. 야당의 반발은 약과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윤건영 의원은 SNS에 “화가 많이 난다”라며 “치욕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비판했다. 최 처장의 말에도 새길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그는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보은 인사’ 비판이 일자, “인사는 ‘코드인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명권자와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기용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완전히 부정만 할 수는 없다. 그는 “문재인 정부 장·차관들 명단을 쭉 봐라. 다 문재인 같은 무능한 인간들”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4년 단식 농성 중단을 설득하러 광화문에 갔다가, 갑자기 자신도 동조 농성을 시작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다른 행동을 하는 일이 잦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연이은 타운홀 미팅에서 현장 민원을 단호하게 잘랐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일선의 개별 민원을 처리할 권한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SPC 사고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추궁했다. 프레스에 팔이 낀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매정해 보이고, 당사자는 섭섭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맞다. 지도자가 가질 태도다. 이런 두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최 처장의 언행은 너무 나갔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 원천 배제 7대 원칙’을 “아주 멍청한 기준으로 나라를 들어먹었다”라고 비난했다. 위장전입, 병역 기피, 불법 재산 증식, 탈세, 연구 부정행위라는 기존 원칙에 성범죄와 음주 운전을 더한 것이다. 그는 “일꾼이 몸 튼튼하고, 일 잘하면 되지”라고 했다. 이게 단순히 도덕성으로만 치부할 문제들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해치고, 법을 어길 수 있는 사람에게 공직을 맡겨도 되나. 도덕성이 없으면서 유능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그는 특히 성 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다. 문 정부가 성범죄를 인사 원칙에 추가한 걸 비난했다. “예쁜 여자는 얼굴값 한다”라면서 “된장끼 있는 여자가 명품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해 기획’됐다며, “점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했다. 당시는 안희정 충남지사·오거돈 부산시장까지 민주당에서 성추행 사건 연거푸 터질 때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반성문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비굴한 짓”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조 전 장관에게는 “정치하라. 재능을 썩힐 필요가 없다”라고 부추겼다. 그러다 조 전 장관이 조국혁신당을 만들자 태도가 돌변했다. “조국은 이론도 없고, 과거도 숨기고 있다”, “금수저의 ‘있어빌러티’ 때문에 속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단한 철학이 아니다. 이재명에게 유리하면 선(善)이고, 그와 적대하면 악(惡)이라는 이분법이 뚜렷하다. 그는 이 대통령이 “하늘이 내린 민족의 축복이자 구원자”라며, “5년은 짧다. 10년, 20년은 해야 한다”라고 찬양가를 불렀다. 왜 발탁됐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강선우 의원에 관한 질문에 “TV도 없고, 신문을 안 본다”라면서 피하고, “도덕성 관련된 것을 공개적으로 청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교육정책의 기본도 모르는 교육부 장관,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나. ‘코드인사’를 인정하더라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진영주의라면 곤란하다. 몰(沒) 도덕이 대한민국의 공직자상일 수는 없다. 더구나 그의 역할이 공직을 전리품으로 나누는 것을 인사 혁신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27

자정능력을 잃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지난 한 주 많은 국민이 분노와 허탈을 경험했다. 서민들에게는 너무 낯선 사람들을 장관 후보로 만났다. 성실한 사람은 넘을 수 없는 선을 ‘이 정도는…’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뻔뻔함을 보았다. 증인도 모두 거부하고, 자료도 내지 않고,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배짱을 부렸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은 서민들의 서러운 기억을 소환했다. 대부분의 서민은 을(乙)로 산다. 갑질을 하고도 ‘뭐가 문제냐’라는 민주당 태도에 ‘을지로위원회’가 사기라고 깨닫는다. 눈을 똑바로 뜨고, 끝까지 거짓말하는 장관 후보에 질려버렸다. 을을 보호하는 장관이 아니라, 을에게 갑질해본 장관이다.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불법 조기유학이나 논문 표절만 문제가 아니다. 기본 교육정책에 대한 구상은커녕, 개념조차 없었다. 오죽하면 ‘모르면 동문서답하라’는 쪽지를 앞에다 붙여놓고 답변했을까.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어떻게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변을 못 하나. 굉장히 실망스럽다”라고 분개했다. 더 화가 치미는 건 국민의힘이다. 국민은 속이 터지는데, 야당 청문위원은 남의 다리만 긁는다. 언론에 공개된 내용에서 한발도 더 나간 게 없다. 그것도 중언부언, 우물쭈물, 요령부득이다. 준비를 한 건지 의심이 든다. 오히려 여당 의원, 친여 시민단체의 후보 사퇴 요구가 신선하게 들린다. 한국이 1.5당 체제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해적인 비상계엄이 국민의힘 입지를 부숴버렸다. 의석만 적은 게 아니라 싸울 줄도 모른다. 전략은 없고, 고함만 지른다. 아니 고함도 지를 줄 모른다. 혼자 흥분할 뿐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여당에는 할 말도 못하면서 당권 다툼은 피를 튀긴다. 극단적인 선동이 난무한다. ‘공천=당선’이라는 안일함에 젖은 의원들은 정권보다 당권이 관심이다. 이성은 사라지고, 선동가가 설친다. ‘윤 어게인’으로 뭘 하자는 건가. 다시 쿠데타라도 해 복귀시키겠다는 건가. 비상계엄은 실패했으니, 무장 폭동이라도 하자는 건가.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길로 몰아간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찬양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같은 일을 부추기는 꼴이다.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닌가.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다. 국민의힘이 소멸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절대 권력이 되는 건 민주당은 물론 민주주의에도 위기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인 존 달버그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당이 행정권은 물론 입법권까지 압도적으로 장악했다. 검찰과 법원을 겨냥해 사법권까지 쥐려 한다. 진영화는 우리 편을 무조건 옹호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왜곡했다. 조국 사태가 그 전형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부패한 아첨꾼들이 설치는 판이 깔린다. 견제받지 못한 권력은 안으로부터 곪기 마련이다. 견제할 야당이 없으면 집권당이라도 스스로 정화 작업을 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은 내부 정화 장치를 가동했다. 대통령의 친인척, 고위공직자, 여당 정치인부터 감시하고, 단속했다. 권력기관끼리도 견제시켰다. 서정쇄신(庶政刷新) 등으로 서민의 불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절대 권력을 건드리지는 못하지만, 장기 집권을 이어간 기반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하게 결격에 이를 문제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부담을 이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고백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도려내지 않으면 종양은 번지기 마련이다. 원칙 없는 인사는 이재명 호 밑바닥에 썩은 나무를 까는 꼴이다. 회생불능인 국민의힘에게는 유일한 반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강득구·김상욱 의원은 “윤 정권과 달라야 한다”라며 이진숙·강선우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두 후보가 ‘자질 미달’이라며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친여 시민단체들이 진영의 틀을 벗어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선하다. 그만큼 문제가 많은 후보자라는 뜻이겠지만, 야당이 구실을 못 하니, 그렇게라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20

이 지경이 되도록, 많이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러나 그 실수가 반복되면 문제다. 더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최악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수시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를 외친다. 신부에게 ‘고해(告解)’라는 것도 한다. 죄를 짓고, 용서만 빌면 해결이 되나. 자기 잘못을 성찰해 통회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이 앞서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43%, 국민의힘은 19%로 나타났다.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19%로 비슷하게 나왔다. 70대 이상을 포함해 모든 세대에서 민주당이 앞섰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한국갤럽조사는 대구·경북(TK)에서도 민주당 34%, 국민의힘 27%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찍은 유권자가 이민을 한 게 아니다. TK 주민의 정치적 성향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갑자기 예뻐서도 아니다. 국민의힘이 실망하게 한 탓이다. 정치를 하다 잘못할 수도 있다. 수많은 당원 중에 이상한 사람이 몇 명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수습할 생각도 없는 집단이라면 희망이 없다. 12·3 비상계엄 직후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한다’라는 의견이 70%, 탄핵 찬성이 74%였다. 아무리 내가 표를 준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다수 의원은 비상계엄을 막지 않았다. 그런 판단을 한 당 지도부에 항의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감쌌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명확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윤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 행동에 동조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반성은커녕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의원도 많다. 오히려 ‘친윤’ 핵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을 좌지우지했다. 윤 전 대통령 비판을 오히려 ‘배신’으로 몰아 비난했다. ‘의리’라고 포 장했다. 국민의힘이 조직폭력배 집단인가. 국민, 공익보다 의리가 중요한가. 국민의힘의 목표가 뭔가. 정강·정책을 국정에 반영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것 아닌가. 그러려면 집권해야 한다. 정당의 최고 목표는 집권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고, 당의 정책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국회 다수 의석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간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반대하는 길을 가는 이유는 뭘까. 나머지 3명이 그 정당에서는 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집권이나 보수 정책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당권 장악, 재선을 통한 개인적 영달을 노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TK에서마저 뒤집히고 있다. 부자 살림을 다 거덜 내고, 쪽박을 놓고 다툴 건가. 당의 주인은 누구일까. 파면된 대통령인가, 중진의원인가, 당원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당의 목표가 집권인가. 아니면 쫓겨난 대통령 경호인가. 중진의원들의 자리보전인가. 전체 국민을 반으로 나누면 오른쪽 반쪽에서는 30%만 해도 절대다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집권할 수 없다. 그래도 제2당으로는 살아남을 거라고 자위하는 걸까. 정당도 불멸의 조직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할 수 없는 불임 정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어물쩍 덮어도 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놓인 처지가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으면 잘 풀릴 것 같은가. 고통만 길어지고, 멸망으로 가는 길만 재촉한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김문수 대선후보에게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치는 본인의 영예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 봉사의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훈계했다.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이미 많이 하지 않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13

공공기관장 임기 재정리할 때다

공직자 물갈이가 쟁점이 된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4·19나 5·16으로 정권이 뒤집히면 집권 세력 자체가 바뀌었다. 신군부가 등장한 12·12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로 넘어간 때나, 다시 김영삼 정부로 바뀐 때도 고위 공직자가 대거 물갈이됐다. 그렇지만 개인의 영락으로 받아들였다. 김대중 정부는 달랐다. 1961년 5·16 이후 한 번도 여야 정권 교체가 없었다. 36년 만의 정권 교체다. 공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정권에게 새로운 선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이었던 한 인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공공기관장들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은 어떻게 해왔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일괄 사표를 받는 게 관례”라고 보고하자, 김 전 대통령은 “임기가 1년 미만으로 남은 사람은 임기를 마치게 하고, 그 이상 남은 사람은 사표를 받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전 공공기관장들에게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며 안심시켰다.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공공기관장 45.8%가 교체됐다. 한국방송공사(KBS) 등 24개 주요 공공기관장 가운데 1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같은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26명 중 6명(21.3%)이 물러났다. 다시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이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각계에 남아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추종 세력’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정부 기관장과 공기업 사장은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받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 권력이 언론계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독재로 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정권 교체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운 후유증이 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출범 초 공공기관장은 일괄사표를 냈다. 재신임과 교체 절차를 밟았다. ‘노무현 정부 사람은 써도 이명박 정부 사람은 안 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히 물갈이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 사람들을 국정농단 세력으로 몰아 쫓아냈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했다. 언론·문화계는 물론 심지어 법조계도 손을 댔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 혐의로 구속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파격 발탁했다. 사법부가 특정 연구단체 중심으로 재편됐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임기제 산하단체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넣은 것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그 이후 공공기관장들이 임기를 내세우며, 버티는 일이 반복됐다. 그뿐만 아니다. 퇴임을 며칠 앞둔 대통령이 임기 3년의 공공기관장을 ‘알박기’했다. 연봉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했다. 비행기에 역추진 로켓을 붙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59명이라고 국민의힘은 주장했다. 특히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방송통신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문제 됐다. 국정 방향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그런 윤석열 정부도 임기 말 알박기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도 공공기관장 54명을 ‘알박기’했다고 민주당은 파악했다. 공직의 정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정했다. 검찰총장의 임기도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정작 새 대통령의 공약을 추진해야 할 공공기관장이 전임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도 있다. ‘알박기’와 어깃장 놓기와 불법 물갈이를 주고받고 있다. 이참에 공공기관장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존중되어 마땅하다. 그 방향으로 공직자도 개편돼야 한다. 당장은 민주당이 국회도 장악하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럴수록 여야가 제도화에 합의할 기회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06

잘 달릴수록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힘이 세질수록 책임도 커진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거인의 힘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무심코 흔든 팔에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학교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서 10대 청소년의 총기 소지 허용 여부가 논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책임을 크게 진 좋은 사례다. 1년에 1만 섬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지 말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자손들에게 남겼다.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만 입게 했다. 며느리에게도 가훈을 몸으로 받아들일 시간을 준 것이다. 집안 어른이 잔소리를 한마디 하면, 그것이 전달될 때는 두 마디, 세 마디로 늘어난다. 시장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주무관에게는 엄청난 압력이 될 수 있다. 시장이 의논하려고 한마디 하면 그것을 결정 사항으로 받아들이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자리가 높을수록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하는 말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의견이 64%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은 21%에 불과했다. 덩달아 정당 지지도도 민주당이 43%, 국민의힘은 23%로 절반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에서만 국민의힘(41%)이 민주당(27%)을 앞섰을 뿐, 나머지 모든 시·도에서는 모두 민주당에 밀렸다. 부산·경남도 민주당이 우위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홈페이지 참조)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있다. ‘잘 나갈 때’, ‘가진 게 많을 때’ 절제해야 한다. 민주당의 기세는 국민의힘 덕분이다.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 국민의힘이 잘못한 탓이다. 자만할 때가 아니다. 그걸 알아서인지, 이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 전력을 다한다. 그는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연내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부산 시장 출마가 유력한 전재수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추경으로 전국민 소비쿠폰을 뿌린다. 그렇지만 정권을 장악했다는 자만심을 감추지 못한다. 언행이 거칠다. 민주당은 지난주 국회의 핵심 상임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선출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야당과 협의해 온 전례를 무시했다. 국회의장과 나누어 맡던 법사위원장도 일방적으로 차지했다. 예결위원장, 문체위원장, 운영위원장도 선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증인·참고인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끝냈다. 야당이야 뭐라건 이번 주에 임명할 태세다. 상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을 포함해 40개 법안을 모두 밀어붙일 예정이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다. 대통령도 같은 당이다. 거칠 것이 없다. 이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대통령실에 초청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에게 “젊은 비대위원장을 털면 안 나올 것 같냐”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요청에 대한 답변이다. 아무리 젊어도 국민의힘의 대표 자격이다. 대통령 말은 야당 의원이 하는 말과 다르다.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막강한 권력자다. “너도 한번 당해 볼래”라는 위협으로 들 릴 수밖에 없다. 김민석 후보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국민 검증 받으실 좋은 기회 얻으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과 비슷한 뉘앙스다. ‘너도 털릴 각오 해라’라고 주 의원을 위협하는 것으로 비친다. 주 의원도 그렇게 항의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대출 규제 방안을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과 금융위가 별개의 정부인가. 취임하는 순간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는 모두 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를 보면 모두 취임 이후 내리막이다. 취임 직후가 가장 인기를 누렸다. 내리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추락 정도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관건이다. 원인은 대부분 스스로 만들었다. 실언과 실책으로 점수를 잃었다. 경계할 것은 야당이 아니다. 자신의 오만과 무절제가 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