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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잘 달릴수록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힘이 세질수록 책임도 커진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거인의 힘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무심코 흔든 팔에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학교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서 10대 청소년의 총기 소지 허용 여부가 논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책임을 크게 진 좋은 사례다. 1년에 1만 섬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지 말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자손들에게 남겼다.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만 입게 했다. 며느리에게도 가훈을 몸으로 받아들일 시간을 준 것이다. 집안 어른이 잔소리를 한마디 하면, 그것이 전달될 때는 두 마디, 세 마디로 늘어난다. 시장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주무관에게는 엄청난 압력이 될 수 있다. 시장이 의논하려고 한마디 하면 그것을 결정 사항으로 받아들이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자리가 높을수록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하는 말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의견이 64%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은 21%에 불과했다. 덩달아 정당 지지도도 민주당이 43%, 국민의힘은 23%로 절반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에서만 국민의힘(41%)이 민주당(27%)을 앞섰을 뿐, 나머지 모든 시·도에서는 모두 민주당에 밀렸다. 부산·경남도 민주당이 우위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홈페이지 참조)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있다. ‘잘 나갈 때’, ‘가진 게 많을 때’ 절제해야 한다. 민주당의 기세는 국민의힘 덕분이다.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 국민의힘이 잘못한 탓이다. 자만할 때가 아니다. 그걸 알아서인지, 이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 전력을 다한다. 그는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연내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부산 시장 출마가 유력한 전재수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추경으로 전국민 소비쿠폰을 뿌린다. 그렇지만 정권을 장악했다는 자만심을 감추지 못한다. 언행이 거칠다. 민주당은 지난주 국회의 핵심 상임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선출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야당과 협의해 온 전례를 무시했다. 국회의장과 나누어 맡던 법사위원장도 일방적으로 차지했다. 예결위원장, 문체위원장, 운영위원장도 선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증인·참고인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끝냈다. 야당이야 뭐라건 이번 주에 임명할 태세다. 상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을 포함해 40개 법안을 모두 밀어붙일 예정이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다. 대통령도 같은 당이다. 거칠 것이 없다. 이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대통령실에 초청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에게 “젊은 비대위원장을 털면 안 나올 것 같냐”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요청에 대한 답변이다. 아무리 젊어도 국민의힘의 대표 자격이다. 대통령 말은 야당 의원이 하는 말과 다르다.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막강한 권력자다. “너도 한번 당해 볼래”라는 위협으로 들 릴 수밖에 없다. 김민석 후보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국민 검증 받으실 좋은 기회 얻으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과 비슷한 뉘앙스다. ‘너도 털릴 각오 해라’라고 주 의원을 위협하는 것으로 비친다. 주 의원도 그렇게 항의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대출 규제 방안을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과 금융위가 별개의 정부인가. 취임하는 순간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는 모두 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를 보면 모두 취임 이후 내리막이다. 취임 직후가 가장 인기를 누렸다. 내리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추락 정도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관건이다. 원인은 대부분 스스로 만들었다. 실언과 실책으로 점수를 잃었다. 경계할 것은 야당이 아니다. 자신의 오만과 무절제가 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29

청문회는 국민에게 겸허하게 소명하는 자리다

인사청문회의 뒷맛은 대부분 참담하다. 근엄하고, 고결한 척하던 고위 인사들이 한 꺼풀만 벗기면 왜 모두 그 모양인지…. 물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야당이 억지로 문제 삼는 일이 다반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싸고도 말이 많다. 국민의힘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보면 버는 돈보다 지출이 터무니없이 많다. 지난 5년간 최소 5억 원을 수입보다 더 많이 썼다고 한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중국 칭화대 학위를 취득이나 아들의 특수학교 전·입학, 유학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2억 원이 넘는 유학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교육 철학을 거슬러, 도덕적 문제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가 안고 있는 의문일 수 있다. 그 대응 과정이 더 문제다. 무엇보다 본인의 태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차분하게 설명하는 게 정도다. 그런데 정작 의혹에 대한 해명이 본질을 피하고, 구차하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 동정심을 구하려 한다. ‘표적 사정’은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굳이 비리를 들춰낸다는 뜻이다. 혐의를 사실이라고 믿게 한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부인했다. 세금 추징과 과징금 부과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세무 당국이 봐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탈세해도 눈감아주는 게 정상인가. 불평하기에 앞서 세금을 추징당했다면 국민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도리다. 그는 ‘노부부 투서 사건’을 “정치 검찰, 쓰레기 지라시 협잡 카르텔에 의한 허위 사실”이라고 비난했다. 노부부가 그런 내용을 유서에 남겨도, 검찰과 언론이 모른 체 했어야 하나.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자 “누가 질문했느냐?”, “어디 채널이냐?”라고 추궁했다. 정치적 공격이라는 다른 틀(프레임)로 의혹을 덮어버렸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청문회 증인·참고인을 모두 거부했다. 민주당은 처음에 ‘윤석열·한덕수·김문수’를 증인으로 요구했다. 그래 놓고 김 후보자를 검증할 증인은 모두 거부했다. 김 후보자의 가족과 전처까지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제외했는데도, 다른 증인들을 모두 거부했다. 자신이 있다면 해명할 수 있는 자리인데, 굳이 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아직도 특검을 밀어붙이는 김건희 여사 전례를 봐도,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은 통용되기 어렵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인사청문회법을 바꾸겠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개인 비리와 도덕성에 대한 청문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능력 위주로 공개 검증하자는 대안도 나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총리와 장관들 청문회를 앞둔 이 시점에 “빠르게 개정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속 보이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허위 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 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관련 조항을 아예 삭제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가 정당한 입법이라고 생각하겠나. 김 후보자는 자신을 가장 아프게 공격하고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윤재관 조국혁신당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검증받을 좋은 기회 얻기를 덕담한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주 의원에게 “70억 원 재산 형성 과정을 소명해 보라”라고 공격했다. 정당하게 모아도 자산이 많으면 죄악이고, 가난하면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청문회는 국민을 향한 검증이다. 의혹 해명은 국민을 향해 하는 것이다. 때 묻은 정치인끼리 짜고, 같이 해 먹는걸 ‘관행’이라고 덮을 일이 아니다. 김 후보자는 벌써 총리 행보다. 부처 보고를 받고, 재난상황실과 현장을 다닌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임명 동의안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선가 의혹 해소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망신 한번 당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나. 아무리 관행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사과는 사실 확인이 먼저다. 청문회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의심을 풀어주는 자리다. 아무리 총리 후보자라도 국민 앞에서는 좀 더 겸손하기를 기대한다.

2025-06-22

개구리는 움츠려야 멀리 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폭락했다. 정치판에는 주식시장과 달리 서킷브레이커도 없다. 여기가 바닥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주보다 15%포인트나 떨어진 21%였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 오른 46%로, 국민의힘보다 두 배가 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불안하다.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이 차지한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TK 자민련’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를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은 99석밖에 얻지 못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그 런데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거기서도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TK에서도 크게 앞선 게 아니다. 국민의힘이 40%로 민주당 32%를 겨우 앞섰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60대(54%→25%)와 70대 이상(61%→30%)에서 한 주 만에 반토막 났다. 한국갤럽 조사만 그런 경향을 보인 것이 아니다. 4개 여론조사기관이 합동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23%로 갑절 차이를 보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가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심판이라면, 이번 조사 결과는 선거 이후 국민의힘의 사후 처리에 대한 실망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를 찾아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파산하고 남은 부스러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모습에서 회생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렇지만 이러고도 국민의힘이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선거 뒤 국민의힘이 한 일은 분란뿐이다. 선거 패배 책임을 서로 떠밀었다. 먹을 것이나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부도, 국회도 민주당 정권에 다 넘겨줬다. 사법부까지 넘어갈 위기다. 다 팽개치고, 알량한 당권에 목을 맨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선거에서 이긴 정당처럼 행동하는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쪽박을 찼지만, 그 쪽박을 두고 싸우는 모양새다. 선거에 졌으니, 당을 정비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권 경쟁에서 상대의 약점을 들추느라 정작 당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렸다. 국민의힘은 정권을 빼앗겼다. 무장 강도에게 빼앗긴 게 아니다. 임기를 절반이나 남긴 정권을 스스로 갖다 바쳤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을 시도했다. 그래 놓고는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탓한다. 탄핵 이후에도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유지하겠다고 고집한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들, 저항하는 시민은 어떻게 막을 건가. 발포라도 해야 했다는 건가. 시민과 무장 군인이 대치할 때 실수로라도 발포할까, 폭력이 발생할까, 가슴을 졸였다. 비상계엄에 성공한들 몇 년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런 체제로 다시 집권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그야말로 망상이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계속 탄핵 반대 활동을 해왔는데, 어떻게 당론을 무효화하느냐”라고 말한다. 이미 해온 일은 반성할 수도, 뒤집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선거도 계속 지겠다는 생각인가. 국민의힘이 “내가 잘못한 게 없다”라고 한다면, 선거는 왜 졌나.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국민더러 반성하고, 다르게 투표하라고 훈계하는 오만함과 다르지 않다. 좋건 싫건 선거는 국민의 심판이다.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을 물갈이할 수는 없다. 국민을 계몽해 투표 경향을 바꾸겠다는 건 독재자의 논리다. 왜 졌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방탄이 보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정치인도 잘못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개구리도 움츠려야 높이 뛸 수 있다. 물론 의원들의 지역구에 따라 여론이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원마다 자기 이익만 지키려 움직이면, 정권을 포기해야 한다. 여론이 추락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 자유당처럼 사라지느냐, 재건하느냐, 국민의힘이 기로에 서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15

어정쩡한 개혁 흉내로는 어림도 없다

선거가 끝났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그대로다. 변한 게 없다. 비상계엄이라는 기상천외한 바보짓으로 정권을 상납했다. 그것을 수습하고, 선거에 임하는 자세도 모두 헛발질이다. 선거에 이기겠다는 건지, ‘알량한’ 당권과 공천권에만 욕심을 내는 건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친한(한동훈)계와 친윤(윤석열)계가 다시 싸운다. 친한계가 친윤 지도부의 사 퇴를 요구했다. 결국 권성동 원내대표가 5일 사의를 표했다. 16일 차기 원내대 표를 새로 선출한다. 권 전 원내대표는 “책임을 회피할 생각도, 그리고 변명할 생각도 없다”라면서도 “선거 때 뒷짐 지고, 분열 행보에 나서고, 권력 투쟁을 위해 민주당 논리를 칼처럼 휘둘렀다”라며 친한계를 비난했다. 김문수 전 대통령 후보는 선대위 해단식에서 후보 교체 소동을 언급하며, “우리 당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신념, 그걸 지키기 위한 투철한 사 명이 없다”라면서 “깊은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재원 전 최고위원이 SNS에 김 전 후보가 턱걸이하는 동영상을 올리자, 당 대표 출마설이 나왔다. 그렇지만 김 전 후보는 “대표(직)에 아 무 욕심이 없다. 누구든지 할 사람이 하고,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부인했다. 그런데 그는 9일 현충원도 참배했다. 경쟁자들이 계속 의심하고, 견제한다. 이런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꼴에 분노가 치민다. 김 전 후보는 대선에서 41.15%를 얻었다. 이재명 후보의 49.42%보다 적지 만,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치르는 선거치고는 매우 높은 득표다. 이준석 개혁 신당 후보가 얻은 8.34%를 합하면 아슬아슬하지만, 더 많다. 그렇지만 산술적 합이 무슨 의미가 있나. 김 전 후보를 찍었다고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 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반(反) 이재명 유권자도 많다. 이번 선거도 비호감 선거다. 윤석열과 이재명, 누가 더 싫은지 경쟁이었다. 지역구별로 국회의원 선거로 계산해 보면, 국민의힘 의석이 99석에 불과했다고 중앙일보가 분석했다. 개헌 저지선(100석)에도 못 미친다. 이 대통령이 얻은 표는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런데, 의석은 3분의 2다. 표의 등가성이 무시되는 이런 선거제도를 고집한 건 국민의힘이다. 정권보다 당권과 자신의 공천에 더 매달린 현역 의원들 탓이다. 윤 전 대통령의 행태는 더 기가 찼다. 탄핵 반대 시위대의 표를 자기가 만들 어줬다고 착각한다. 윤 전 대통령이 아니면 그 표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갔을까. 오히려 영향받은 건 중간층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누가 더 싫은지 저울질하던 사람들이 돌아서게 했다. 보수 후보보다 윤 전 대통령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이, 이재명 후보는 우클릭해 산토끼 잡기에 열중했다. 친윤 당 지도부는 중도 확장보다 윤 전 대통령 보호에 매달렸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생긴 선거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과 선을 긋지 못하게 막았다. 심 지어 정치권에 뿌리가 없어 조종하기 쉬운 후보로 교체하려 했다. 김문수 후보는 다른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수단으로만 써먹으려 했다. 그렇게 당선된 후보를 자진해서 사퇴할 수밖에 없는 형편없는 후보라고 낙인찍어 놓고,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했으니, 이미 지고 들어간 선거다. 그렇다고 비윤(非尹)은 잘했나. 오십보백보다. 보수의 미래는커녕 집안싸움에 날을 샌다. 그러고도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겠나. 보수 지지층은 검은 고양이 건, 흰 고양이건, 쥐 잡는 고양이를 원한다. 친윤도, 비윤도 아니다. 지금 중진입네 하는 중견 정치인들을 모두 싹 물갈이하고 싶은 게 보수 지지층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미 물러난 전임 대통령 체면이 무슨 문제인가. 그들 내외의 지저분한 과거를 방탄하는 일이 어떻게 최우선 원내 과제가 되나. 거기에 집중하기 위해 반 성도, 개혁도 미뤄야 한다는 건 무슨 소린가. 국민이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 가혹하게 반성하고, 잘라내야 한다. 반성하고, 바꿀 수 없는 사람은 차 라리 물러서라. 완전히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없다면, 차라리 해체하고 다 시 시작하는 게 답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08

국민이 먹고사는 일, 이제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오늘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선거는 끝났다. 전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되면서 앞당겨 치른 선거다. 이런 헌정 중단 사태를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비상계엄이라는 터무니없는 조치를 내던진 윤 전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의 책임이 비교할 수 없게 크지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민주당을 포함해 정치권 전체가 져야 할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 그 내용을 간결하게 잘 정리했다. 선고 요지는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 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에게도 “국민의 대표인 국 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새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였듯이 비상계엄 사태의 정리가 시급하다. 비상계엄에 참여한 인사를 찾아내 징벌하는 것만 아니다. 사건 연루자는 검찰·경찰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정리될 것이다. 새 대통령이 할 일은 갈가리 찢어진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재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충돌이 아니라, 두 가지 권력을 모두 장악했을 때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걱정도 덜어줘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진영의 논리로 돌진하던 시간은 지났다. 선거 동안 후보들은 “반쪽에 의지해서 나머지 반쪽을 탄압하고, 편 가르는 반(半)통령이 아니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모두의 대통령이 반드시 되겠다”라고 약속했다. 열성적인 지지자의 환호에 취하지 말고, 극단적인 진영 정치를 통해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장, 자극적이고, 편향된 가짜뉴스로 선동과 분열을 꾀하는 유튜버와 선동가, 음모론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졌던 윤 전 대통령의 사례가 증명해 준다. 민 주주의는 절제와 자제다. 특권을 포기하고, 자기 손에 든 것을 내놓고, 나눌 때 대화도, 타협도 가능해진다. 정권을 뒤흔드는 민심의 흐름은 먹고사는 일에 달렸다. 수출도, 일자리도 위 기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우리 경제에 폭탄을 터뜨렸다. 5월 대미·대중 수출은 지난해 대비 각각 8% 이상 감소했다. 이재명 후보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생” 이라며 “내수 경기 진작을 포함해 경제를 살리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선거용이 아니길 바란다. 새 정부도 탄핵 이후 정부다. 문재인 정부처럼 인수위도 거치지 않고 취임한다. 사전투표 직전에야 공약집을 내놨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급조된 흔적이 많다. 선거용으로 급조한 선심 공약이라면 다시 검토하는 게 옳다. 이제 후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반미(反美)하면 안 됩니까”라 고 말했던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강정해군기지를 결정했다. 이재명 후보도 “김대중 정책이면 어떻고,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나. 유용하면 쓰고, 유용하지 않으면 버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한 축이 사법 체계다. 정치가 엉망이라도, 선출된 정치인이 부패해도,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믿음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가 만연하면서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가 사법 질서에 개입하면, 당연한 결과도 특혜와 꼼수로 비친다. 이 역시 정치권력의 자제가 절대 필요하다. 선거는 끝났다. 패배한 정당은 선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쟁 정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정 운영이고, 우리 자신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다. 그래야 다음에 집권했을 때 경쟁 정당의 협조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더구나 승자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패인을 분석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패배 정당에게도 미래가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04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는 무시당한다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최종투표율이 34.74%다. 2022년 대통령 선거 최종투 표율이 77.1%였으니, 절반 가까운 유권자가 이미 투표한 셈이다. 지역별로 사전투표 참여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대구가 25.63%로 가장 낮고, 전남이 56.5%로 가장 높다. 두 배가 넘는 차이다. 뒤이은 지역을 봐도 서고동저(西高東低)가 뚜렷하다. 부산(30.37%)·경북 (31.52%)·경남(31.71%)·울산(32.01%)이 대구에 이어 가장 낮았고, 전북 (53.01%)·광주(52.12%)가 전남에 이어 가장 높았다.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구의 사전 투표율(33.91%)이 낮았지만, 올해보다는 8.28%포인트 높았다. 전남은 그때도 51.45%로 가장 높았지만, 올 해는 5.05%포인트 더 높아졌다. 차이가 더 벌어졌다. 아무래도 부정선거 음모론의 영향을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1번과 2번 지지자의 사전 투표율 차이는 지역별 투표율 차이보다 더 클 것이 틀림없다. 사전투표는 유권자 편의를 위한 제도다. 거주지와 직장이 멀리 떨어진 유권자, 출장·질병 등으로 투표소 가기 어려운 사정이 생긴 유권자 등이 투표할 수 있게 해준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 처음 도입돼, 2014년 동시 지방선거 때 전면 실시됐다. 대통령 선거에 적용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선거다. 그 이전에도 부재자 투표가 있었다. 선거 당일 투표소에 가기 어려운 사람은 우편투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특정 조건에 맞아야 가 능했다. 그런데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지 할 수 있다. 투표자에게는 본투표보다 더 편리하다. 본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이용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사전투표를 꺼린다. 부정선거에 이용될까 두려워한다. 사전투표를 배제하면 아무래도 투표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같은 조건이라도 사전투표 이틀을 포함해 사흘 동안 투표하는 진영이 하루만 투표하는 진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부정선거를 비난한 윤석 열 전 대통령이나 음모론에 기울었던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도 직접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사전투표를 배제하면 불리하기 때문이다. 유튜버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면 이를 믿는 구독자들이 슈퍼챗을 쏠 수 있다. 음모론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그러나 후보로 서는 음모론을 주장할수록 지지자의 투표율이 떨어지고, 선거에서 불리하게 되는 모순이 생긴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 그렇지만 당장 선거에서는 불리하다. 선거가 시작됐는데도 음모론을 퍼뜨리는 건 선거의 승패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 측은 선거 부정을 잡아내겠다며, 투표소 앞에서 사전 투표자 숫 자를 세었다. ‘참관인 노트’에 바를 정(正)자를 썼다. 전 목사는 “모든 부정선거는 사전투표에서 다 일어난다”라면서 “민주당 의석 중 절반은 가짜, 이번 대 통령 선거도 무효”라고 주장했다. 물론 선관위의 관리에 문제도 많았다. 서울 신촌 사전투표소에서는 투표지를 들고 투표소 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에서는 선거 사무원이 남편 신분증으로 투표지를 받아 대리 투표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부천의 사전투표함에서 지난 총선 때 사전투표한 용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전 투표율은 서고동저였다. 최종투표율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본투표까지 포함하면 광주(81.5%)와 대구(78.7%)의 투표율 차이가 2.8%포인트에 불과하다. 본투표를 열심히 해 전체 투표율을 올렸다. 선거에 부정 소지가 있으면 안 된다.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제도적 결함이 있다면 보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음모론을 퍼뜨리 는 건 제 발등을 찍는 일이다. 사전투표는 이미 끝났다. 사전투표건, 본 투표건 중요한 건 투표하는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의 권리는 누구도 보장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건 표를 찍는 유권자다. 두 배가 넘는 사전투표율 차이를 메우려면 본투표를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01

비호감은 뒤로 숨는 게 후보를 돕는다

선거는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다. 그런데 모두 마음에 안 들어, 그나마 덜 미운 이를 고를 때도 있다. 최근 우리는 그런 선거를 많이 했다. 비호감 선거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민 주당 이재명 후보 모두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컸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일 유세에서 “정치는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진다.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라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국민의힘 당권파가 마음대로 후보를 만들려다 실패한 일을 꼬집었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는 무수하다. 2004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정동영 의장 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 고…”라는 말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전멸 위기였던 한나라당이 121석으로 살아났고, 200석을 넘보던 열린우리당은 152석에 그쳤다. 그 뒤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참패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두 번이나 다 이겼다고 생각한 대선을 망쳤다. 나중에 김대업이라는 사기꾼의 공작으로 결론이 났지만, 아들의 병역 회피 의혹이 만든 ‘비호감’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자유한국당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고, 정권을 갖다 바쳤다. 이재명 후보가 24일 비법조인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 진하는 데 대해 “섣부르다”라며 제동을 걸었다.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대법원을 공격하던 이 후보도 여론의 반발을 의식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수 있다. 최근 여론 흐름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50%를 넘어서던 지지율이 내려앉고, 김문수·이준석 후보가 상승세를 탔다. 이 후보의 방탄복이 테러에 대한 동정심보다 ‘방탄 입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했다. 삼권 장악과 독재 위험을 경고했다. 차기 요직을 둘러싼 입소문이 오만함으로 비쳤다. 그러자 이 후보도 긴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했다. 탄핵 이후 첫 공개 행보다. 그는 비상계엄의 명분 중 하나로 ‘부정선거’를 꼽았다. 이날 행보는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무언의 시위로 비쳤 다. 그의 옆에 이영돈PD와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 주장하던 전한길 전 역사 강사가 앉은 사진을 공개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엉거주춤한 국민의힘의 대선 전략에 비상계엄이라는 부담을 다시 한번 더해줬다. 그는 지난 11일 SNS에 “이제는 마음을 모아 주시라”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그가 움직이는 게 김문수 후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탄핵에 반대하던 시위대가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팬덤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들이 이재명 후보를 찍을까. 그가 입을 열수록, 대중 앞에 나설수록, 비상계엄의 트라우마만 생생해진다. 민주당 측에 선 방송 패널들이 이재명 후보의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그래도 비상계엄, 내란 세력만큼 나쁘겠느냐”라고 방어막을 친다. 윤 전 대통령 측의 착각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그랬다. 윤 전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라고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다. 강서구청장 후보를 마음대로 뒤집어도, 국민의힘 후보를 마음대로 조작해도, 수사받고 있는 피의자를 대 사로 임명해 출국시켜도, 선거 직전에 의정(醫政) 갈등에 기름을 부어도, 자기 표를 얹어준다고 착각했다. 표를 깎아 먹으면서 지원한다고 착각했다. 이재명 후보는 계산이 빠르다. 여론조사를 믿는다. 대법원 선고 직후 분개했던 마음도 스스로 자제할 줄 안다. 당내 충성 경쟁이 오히려 표를 깎아 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윤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여전히 착각 속에 산다. 어차피 보수 후보를 찍을 유권자를 자기 표라 착각한다. 어쩌면 알면서도 선거 이후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비호감인 사람은 뒤로 숨는 게 후보를 돕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25

자제하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것들 봐라? 한 달만 기다려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 환송한 지난 1 일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페이스북에 그렇게 썼다. 그런데 한 달도 못 기다렸다. 지난 14일 국회 법사위에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모두 증인으로 불렀다. 사법부는 삼권 분립의 중요한 한 축이다. 국회는 대법원장을 국회에 부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대법관들을 모두 불렀다. 대법관들이 모두 불참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탄핵해야 한다”라고 말했 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사건 항고심을 맡은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해 서는 룸싸롱에서 향응을 받았다는 제보가 있다며 직무 배제하고, 감찰하라고 연일 공세다. 판사가 지나친 향응을 받았다면 징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특정 판결에 대한 보복은 차원이 다르다. 지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을 ‘구속 취소’했다. 필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재판 결과를 보복하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이 연루된 재판을 하는 판사들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 주당이 노리는 것도 ‘알아서 기라’라는 협박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을 국회로 부른 것도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재판에 대한 노골적인 보복이다. 범죄자가 판사를 협박하고, 어르는 꼴이다. 일종의 인민재판이다. 이게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재명 후보는 중도층과 보수 세력에 게 공포감을 줬다.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자를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대선을 앞두고, 우클릭하며 양처럼 친화적인 이 미지로 화장했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가 그 화장을 씻어냈다. 이 후보는 경남 유세에서 “지금도 숨어서 끊임없이 내란을 획책하고 실행해 2·3차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다 찾아내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라면서 “그 법정은 깨끗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까지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일종의 관심법이다. ‘깨끗한 판사’라는 건 현재 판사들이 ‘더러운 판사’이고, 새 판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법부 장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하자 사법농단으로 수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발탁해 사법 부를 뒤집어놓았다. 이제 현직 대법원장을 뒤집어놓겠다고 으름장이다. 지난 14일 법사위는 ‘조희대 특검법’을 상정했다. 대법관 수도 갑절 이상 늘 리겠다고 한다. 현재 14명에서 김용민 의원안은 30명, 장경태 의원안은 100명 으로 늘어난다. 늘어나는 대법관은 새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유죄 취지 파기 환송한 이재명 재판을, 대법관을 바꿔 뒤집겠다는 속셈이다. 그뿐 아니다. 이 후보가 피소된 선거법 조항을 지우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상정했다. 처벌 근거가 사라지면 자동 면소(免訴)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정지하도록 고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냈다. 노골적인 위인설 법(爲人設法)이다. 이 후보는 대법원판결 직후 “법도 국민의 합의이고,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라면서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라고 말했다. 국민의 투표권이 중요하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기초다. 그렇지만 절제가 필요하다. 정치인이 자신의 범죄를 다중의 힘으로 덮으려 하면 법치가 무너진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관료와 판사, 지식인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홍위병의 곤봉이 판사의 법봉을 대신했다. 그런 길로 갈 수는 없다. 국민의 뜻이 중 요하지만, 법의 테두리는 지켜야 한다. 더구나 특정인을 보호하려고, 법원을 개편하고, 법을 고칠 수는 없다. 민주당 내부에도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 만 드러내놓고 말을 못 한다. 압도적인 지지율 탓에 여론을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힘을 잃었다. 이러다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두렵다. 자제는커녕 충성 경쟁이 더 극심해질 게 뻔하다. 자제할 줄 모르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8

쿠데타 세력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김영삼 총재에게 집단지도 체제를내세운 이철승 의원이 도전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온건 노선인 이 의원을 지원했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20대 조폭 김태촌을 끌어들였다. 그의 조직원과 광주에서 고등학생 불량배들까지 불러올렸다. 수백 명이 각목을 들고 신민당사에 난입해 김 총재에게 “죽기 싫으면 당인을 내놓아라”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방관했다.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한덕수 후보는 어디서 왔나. 지난 4월 8일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그는 트럼 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흘렸다. 누군가 시중에 그의 출마설을 퍼뜨려놓았다. 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그날 시작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지지도가 미미했다. 이재명 37%, 김문수 9%, 홍준표 5%, 한 동훈 4%, 그리고 한덕수 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예비후보 등록을 한 것은 그보다 일주일 뒤인 4월 15일이다. 두 번의 예비경선을 거쳐 5월 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경선 과정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은 “한덕수와 단일화할 거냐”라는 질문과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다. 입당도, 예비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한덕수 후보가 예비경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 그의 존재감을 키워줬다. 정작 그는 당 밖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전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선된 국민의힘 후보가 양보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무엇을 믿었던 걸까. 많은 정치 분석가는 친윤 세력, 그 뒤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한다. 무리하게 후보 교체를 몰아간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친윤’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후보를 양보하지 않는 김문수 후보를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한심하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자리인가. 원내대표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사실 국민의힘 지도부나 한덕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요구한 ‘단일화’는 ‘양보’다. 10일 밤 당원 투표로 김문수 후보로 정리된 뒤에도 권영세 비대위원 장은 “단일화 못 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로 단일화는 단일화가 아니 었다. 김 후보가 경질을 요구한 이양수 사무총장에게 ‘단일화’를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겼다. 경쟁 후보 중 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칼자루를 맡긴 꼴이다. 김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 뒤 모두 잠든 새벽 3~4시에 단일화 후 보 등록을 마감했다. 새벽 2시 30분에 공고해, 한 시간 반 만에 32가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도 있다. 한 후보는 새벽에 입당하고, 하버드대 졸업증명서까지 준비했다.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자마자 바로 그날 ‘단일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다. 왜 한 후보를 바로 경선에 참여시키지 않았을까. 윤 전 대통 령이 싫어하는 한동훈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꼼수라고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 무리한 공작 탓에 시너지는커녕 갈등만 유발했다. 모든 경선 참여자가 반발했다. 한덕수 후보가 득표력이 더 있다는 근거는 중도 확장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해야 했다. 한동훈·유승민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줘야 했다.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라도 망치고, 당도 망쳤다”라고 비난했다.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한덕수 후보를 내세운 친윤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라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 운동 때 등장한 ‘윤 어게인’(윤석열 복귀)이 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쿠데타를 반복하는 세력부터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1

차마 말 못 하고 있었는데…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론을 모으는 과정이다. 후보들의 차이점을 부각하면서도, 결국 수렴하게 만든다. 분명하지 않던 의견 차이가 경쟁 후보와 비교할 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유권자를 의식해 점점 경쟁 후보와 닮아간다. 왼쪽에 있는 후보는 조금 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오른쪽에 있는 후보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특히 양당제 구도를 가진 나라에서는 누 가 중도층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를 두고 경쟁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공을 들이는 게 그런 노력의 하나다. 이렇게 국론을 하나로 모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비슷해져 가면서도, 진영 대결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깊은 편 가르기가 병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선거 때만 사탕발림하는 거짓말이다. 특히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극단 세력이다. 도식적으로 극우와 극좌에 있는 집단이다. 오른쪽에 있는 후보가 중간 지대를 공략하려 해도 극우세력이 견제하면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자칫 중간에서 얻는 표보다 오른쪽에서 빼앗 기는 표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가 “아직도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40%는 북한으로 가라”라고 주장하는 게 그런 사례다. 왼쪽도 마찬가 지다. 6·3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 치른다. 비상계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심판했다.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으로 갈라져 세 대결을 펼쳤지만,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반탄’ 세력조차 쉽게 지지하지 못한다. 이런 국면에서 대선을 ‘찬탄’ 대 ‘반탄’ 대결로 몰아가면 ‘반탄’ 후보가 백전백패다. YTN 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지난주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 교체’ 여론이 54% 로 ‘정권 연장’ 36%보다 크게 앞섰다.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는 정권 교체 의견이 갑절로 많았다. 국민의힘이 탄핵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24일 정강· 정책 방송 연설에서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다”라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반민주적 정치에 순응한 것을 조목조목 반성했다. 처음, 이 연설을 들을 때 당내 분란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로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감을 표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반적인 취지에 동의한다”라면서 “건강한 당정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차마 말 못 하고 있었는데…”라는 느낌이다. 대신 물꼬를 터준 셈이다. 대선 경쟁에 의욕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정권 연장을 포기하고, 차기 당권이나 잡자는 분위기에서는 탄핵 반대가 유리하다. 다음 총선 공천을 걱정하는 의원도 함부로 ‘찬탄’ 목소리를 못 낸다. 당장 대선 당내 경선 후보들도 자세를 바꾸고 있다. 가장 탄핵에 반대했던 김문수 후보도 윤 원장의 발언을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간절한 목소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6일 ‘4강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사과는 당연히 할 때가 되면 하겠다”라면서 “민주당은 하나도 반성·사과하지 않고, 우리만 계속 사 과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는 “제가 최종 후보가 되면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기회를 보고 있을 뿐 사과할 뜻은 있다는 말이다. 이미 계엄 반대와 사과를 밝혔던 한동훈 후보는 “절대로 겪으셔서는 안 되는 일을 겪게 해드려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당 대표였던 사람으로서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안 후보는 “우리 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29일 국민의힘은 4강 대결 결과를 발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5월3일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 그 가운데 한덕수 총리와 단일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누가 후보가 되건 경쟁 후보들의 힘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탄핵에 대한 의견부터 먼저 하나로 모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27

대선마저 지난 총선 꼴로 만들 건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오랜 친구다. 전 전 대통령은 자기가 거친 자리 다섯 가지를 노 전 대통령에게 물려줬다고 회고록에 썼다. 구체적으로 열 거해 놓았다.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민정당 총재, 그리고 대통령이다. 대통령직을 넘겨준 뒤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회 고록 2권 후반부에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을 상당 부분 할애 했다. 6·29선언이 나오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친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 했다. 두 사람은 6·29선언을 서로 자기가 결단했다고 주장한다. 전 전 대통령 회고 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고 겁이 많으면서 무리하게 양보를 요구하는 친구로 묘사돼 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꿈 꾸고, 대통령직을 물려준 뒤에도 상왕이 되기를 노리는 권력욕이 넘치는 위험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대체로 전 전 대통령의 말이 정설로 돼 있다. 누구 말이 사실이든, 전 전 대 통령이 후계자에게 자신을 밟고 가도록 허락한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 다 물 러난 뒤에야 서로 공을 다퉜지만, 선거 때는 6.29선언이 완벽하게 노태우 후보 의 훈장으로 가슴에 달려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해, 양 김 씨(김영 삼·김대중)를 분열시켜 노 후보가 이기도록 구도를 짠 것도 전 전 대통령이다. 거기에 비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이후의 보 수정당에 대해 애정이 없다. 강력한 통치자였던 전 전 대통령도 ‘나를 밟고 가 라’고 했는데, 윤 전 대통령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지난해 총선 때도 앞 장서 표를 떨어뜨려 공룡 야당을 만들어줬다.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의대 증원 이 오랜 진료 차질로 여론이 나빠졌다. 총선 직전 담화에서 수습책을 제시할 것으로 다들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강경한 어조로 기름을 부었다. 굳이 선 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된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황급히 내보낸 것도 상식에 맞지 않았다. 탄핵 뒤 윤 전 대통령은 서초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왔다”, “3년을 하나 5년을 하나”(다를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상식만으로 해 석하기 어렵다.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거나 절제하는 모습 은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 위기 앞에서 보수 지지층이 뭉쳤다고 이 긴 게 아니다. 지난 17일 윤 전 대통령을 변호한 젊은 변호사들이 신당 추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4시간 만에 취소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일 저녁 식사를 함 께하던 변호사들이 “청년 지지층에 구심점이 필요하다”라면서 신당 계획을 꺼 내자, 윤 전 대통령이 “중요하지. 해봐”라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난리가 났다. 선 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은 힘을 하나로 합쳐 야 할 때”라며 보류하라는 뜻을 전달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이라는 말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이 아닌 ‘나중 어느 때’에는 신당을 만들 ‘때’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총선에서 ‘친박연대’처럼 ‘친윤’ 정당으로 나설 수도 있다. 대 선에서 지고, 국민의힘이 당권 싸움에 빠져도, 이 구상이 다시 떠오를 수 있 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새 길을 찾겠다”라며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 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었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말은 윤 전 대통령을 다시 권좌에 앉히자는 말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옥중 편지에서 처음 사용해 탄핵 반대 시위 자들의 구호가 됐다. 개헌해 다시 대통령이나 내각제 총리가 될 수도 있고, 보 수 집권 세력의 상왕이 되려 할 수도 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파괴했다. 형사재판 피의자 다. 그런데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한다. 지난 총선처럼 나서면 나설수록 보수세력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키고, 표를 깎 아 먹는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걸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20

대통령 후보들이 답해야 할 문제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결정됐다. 이제 겨우 51일 남았다. 민주당에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는 여러 사람이 혼전(混戰)이다. 여론조사에서 도긴개긴이다. 이번 선거는 탄핵 선거다.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다. 그때는 탄핵 극복이 시대 과제로 두드러졌다. 절대다수 국민이 탄핵을 지지했다. ‘촛불혁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바람에 문재인 후보가 너무 쉽게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해 죄인이 된 자유한국당이 힘을 쓸 수 없었다. 문 후보에 대한 검증도, 미래 구상도 따져볼 틈도 없이 바로 정권을 넘겼다. 그는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과거에 매달렸다. 임기 내내 ‘적폐 척결’을 했다. 보수 정부에 관계한 사람들을 정부에서 쫓아냈다. 자기편은 비리조차 감싸 ‘내로남불’이 유행어가 됐다. 지나친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 탈원전정책으로 원전 생태계를 와해시켰다. 사드 배치 지연, 대일 합의 번복 등으로 외교 축이 흔들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직접 대화의 길을 터주고,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완성을 방치했다. 일일이 나열하기 숨이 가쁘게 보수 정부 정책을 뒤집었다. 물론 탄핵이 이 선거를 있게 했다. 탄핵을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 후보들은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탄핵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런 사태를 다시 반복할 순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기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사저로 돌아가면서 개선장군처럼 행동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태도도 불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을 업고 나서겠다면 탄핵을 반대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임기를 못 마치고 물러난 것은 분명히 실패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를 포기한 정치권에 던진 준엄한 훈계다. 민주당 후보도 이 지적에 답해야 한다. 비상계엄의 가장 큰 책임이 윤 전 대통령에게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후보가 헌재의 지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국민 통합은 대통령의 최고 책무다. 갈라진 국민을 어떻게 통합할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실종, 반복되는 헌정 중단 사태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해법을 내놔야 한다. 선거 이후의 상황은 산 넘어 산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거대 권력이 된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국민의힘은 108명에 불과하다. 개혁신당 3명을 합쳐봐야 111명이다. 180석을 넘으면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된다. 200석이 필요한 탄핵과 개헌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22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충성파를 제외하고는 노골적으로 정리했다. 무자비한 숙청이었다. 그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면 견제받지 않고, 폭주하는 기관차가 될 위험이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치에도 탄핵 반대파가 기세를 올린 이유다. ‘이재명 포비아’에 대한 이 후보의 이해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거대 야당에 직면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이 놓였던 바로 그 환경이다. 선거로 달궈진 대결 의식 속에 어떻게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낼지 관건이다. 여기에 실패하면 윤 전 대통령의 길을 걷거나, 아무 일도 못 하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된다. 나라도 스톱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0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후보마다 답을 내놔야 한다. 우리도 그 답을 듣고, 냉정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 또다시 나라가 거꾸로 달리게 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13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김진국 고문 처음 평양에 가본 건 1992년 2월이다.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판문점에서 자동차로 개성에 도착해, 평양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갔지만, 그때는 비행기로 바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쇼윈도 도시인 평양 이외에는 볼 수 없었다. 개성에서 출발한 기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달렸다. 60년대 우리 완행열차 같았다. 철로 변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덕분에 창밖으로 북한의 지방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게 산 모습이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말그대로 민둥산이었다. 보이는 산마다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락밭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나무를 때는 아궁이를 썼다. 어린아이들도 시간이 나면 소를 산비탈로 끌고 가 꼴을 먹이고, 산에서 나무를 잘라 땔감을 해왔다. 민둥산, 산사태, 홍수…. 초등학교에서부터 수없이 보고 들었다. 실제로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림이 우거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벌건 황톳빛이었다. 필자가 기차에서 본 북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그 풍경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경주 동대봉산에 대형산사태가 났을 때는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73년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여 10년 계획을 6년 만에 달성했다. 이때 29억4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생일 때는 식목일마다 전국의 학생들이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갔다. 79년에 시작한 2차 녹화계획도 1년 앞당겨 87년에 달성하고, 3차 산지 자원화 계획도 88년부터 97년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무라고는 보기 힘들던 산이 이제 길이 아니면 다니기가 어려운 울창한 숲이 됐다.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조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무는 많아도 정작 쓸만한 나무가 적다. 대부분 수입한다. 수종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조직이라며 산림청을 없애려 한 적도 있다. 대형산불이 휩쓸고 갔다. 어이없는 대량 인명 피해가 났다. 사망자만 30명이다. 특히 경북에서만 사망이 26명, 부상 33명이다. 전국에서 주택이나 공장, 문화재 등 5098곳이 불에 탔다. 경북 북부의 산불 피해 면적만 4만5000여㏊다. 땔감으로 쓰는 사람도, 화전민도 없는데, 경북의 산들이 북한의 산처럼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성묘 철이다. 조상의 묘소를 잘 관리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산에서 불씨는 금물이다. 잠시 방심한 틈에 사고를 친다. 불은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오래전 필자가 아는 한 노인도 산소 주변을 청소한 뒤 검불을 태우려 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씨가 날았고, 마른 나뭇잎에 옮겨붙었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불은 무섭다. 성냥불이 성냥불이 아니다.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산불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사고를 내는 사람은 항상 처음이다. 지난 경험을 잘 전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불 예방 수칙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도 책임 공방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장기 과제를 초당적으로 챙길 책임이 국회에 있다. 그런데 눈앞의 선거에 유불리를 따진 잔머리로 사탕발림만 내놓는다. 산림이 우거질수록 산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이 잘 붙고, 거세게 화염을 내는 나무가 있다. 어떤 나무 열매는 불이 붙으면 수백 미터를 튀어간다. 방화선을 설치하고, 소방로도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한다. 이번 산불 때 소방헬기 도움이 절실했다. 거센 바람에 미군 헬기 지원만 기다렸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이 4355세대 6849명이다. 경북만 6385명이다. 생활기반이 무너진 사람도 많다. 과수가 모두 타면 수년간 막막하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도록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30

모질고 악착같은 정치인은 위험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는 욕을 많이 먹는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서로 다른 주장을 절충하는 게 본질이다. 소리가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권력을 두고 경쟁할 때는 시끄럽지 않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는 건 명분 덕분이다. 이제는 달라졌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인이 되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분에 걸맞게 짐짓 점잔을 빼는 정치인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겉치레조차 던져버렸다. ‘동물 국회’가 심하게 싸울 때 잠시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일상적인 여의도 문법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다. 탄핵 사유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미룬 것, 비상계엄을 묵인·방조하고, 윤 대통령 지시를 하급자에게 전달했다는 문제를 제시했다.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 이를 무시한 조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게 탄핵사유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두드러진 행동이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과 차이가 없다. 이것으로 탄핵한다면 ‘대행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 국무위원을 모두 탄핵해야 한다. 더군다나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가 오늘(24일) 결정된다.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기각이 되건, 인용이 되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불과 며칠 앞두고 최 대행을 탄핵 소추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과잉대응이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보면 참담하다. 정말 탄핵할 필요를 느껴서 발의한 건지, 집권당을 겁박하고, 국정 운영을 방해하려는 건지 헷갈린다. 발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하거나,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고 대부분 폐기했다. 그나마 헌재로 보낸 탄핵소추안도 결정이 난 8건 가운데 8건 모두 기각됐다. 탄핵이 목적이 아니라 탄핵 소추가 목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탄핵 소추하면 우선 피청구인의 직무가 정지된다. 일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당해 직무가 정지된 처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 부담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과의 친분까지 자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게 국내 정치상황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이어 경제 사령탑까지 직무가 정지당하게 됐다. 대통령 부재라는 국가적 위기를 넘어가는 데 힘을 모아도 부족한 마당에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도구가 있다. 압정을 박으려고 망치를 쓸 수는 없다. 화분에 물을 주려고 살수차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정말 악착같다. 가장 독한 방법, 상상도 못 할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른다. 이렇게 몰아치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없고, 송사(訟事)만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탄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걸 어떻게 막느냐를 걱정했다. 탄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탄핵 심판보다 가장 빨리 결론을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엄 직후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아주 거세졌다. 왜 그럴까. ‘이재명 포비아’ 탓이다. 계엄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본인의 재판과 탄핵 심판을 묶었다. 시간 싸움을 벌였다. 조급하게 몰아치는 모습이 거부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 공천의 잔인한 숙청을 대선 이후에 투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민주당만 모르는 것 같다. 조급하고, 몰아칠수록 신뢰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줄탄핵’과 ‘줄기각’이 윤 대통령 탄핵마저 그르칠까 두렵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23

탄핵 반대 세력을 키운 건 이재명 대표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에도 거리는 소란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비롯한 서울의 거리 곳곳은 물론 구미 등 지방 도시에서도 수만, 수십만 인파가 몰려 아우성쳤다.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업무로 복귀하거나. 양단간에 결정이 난다. 그러고 나면 조용히 끝날까. 탄핵당하면 60일 내 다음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 경쟁으로 관심이 쏠릴까. 탄핵이 기각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지금 거리에 쏟아져 나온 군중은 집으로 돌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군중이 더 흥분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그 결정을 반대하는 군중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흥분하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보지 못한 일이다. 그때도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도록 시위가 이어졌다. 토요일마다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서울 시청과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행진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보다 혐의가 작았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책임졌다. 그런데 왜 지금 더 폭발했을까. 흥분한 보수 인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보수세력은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비상계엄보다 더 두려워한다. 이런 식이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바로 공산화된다”,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논리를 비약하고, 비약해서 쏟아내는 억지를 일일이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이 대표가 뿌린 씨앗들이다. 이 대표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지금도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로 세력을 끌어모은다. 탄핵 반대 세력을 모아준 1등 공신이 이 대표다. 뒤늦게 놀란 이 대표가 광화문 앞에서 연 최고위원 회의에도 빠졌다. 이 대표는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최근 대선이 가깝다고 생각해선지, 우클릭 행보를 했다. 그러고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다시 좌클릭했다. 이 대표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다. 가벼운 말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최근 사법 리스크를 대처하면서도 상식과 다른 해명들이 신뢰를 흔들었다. 지난주 헌재는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 건을 줄줄이 기각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밀어붙인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반부패2부장에 대한 탄핵 심판이다.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탄핵 근거들을 모두 배척했다.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소추였음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소추안을 29번 발의했다. 13건을 강행 처리했다. 역대 모두 합쳐서 16건인 탄핵소추 가운데 3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 정부에서 민주당이 한 것이다. 지난주까지 그중에 8건이 기각됐다. 탄핵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을 기각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탄핵 심판하는 동안 해당 고위공직자의 손발을 일하지 못하게 묶어놓게 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이유로 지적했을 정도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고 한다. 너무 궁지에 몰지 말라는 경구다. 그런데 이 대표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이 대표는 대통령 관심 예산을 모조리 칼질했다. 윤 정부의 국정 방향과 충돌하는 법안을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 내외를 특검으로 몰아세웠다. 당내 정치도 그렇게 했다. 지난 총선 공천이 전형적이다. ‘비명횡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용진 전 의원 낙천 과정은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이 대표와 갈등을 빚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집권하면 상대 정당에도 같은 보복을 할 것 같은 공포를 심었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진 책임의 상당 부분을 이 대표가 떠안아야 하는 이유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16

모두 원하는데 왜 개헌 못하나

김진국 고문 난리다. 비상계엄령에, 탄핵에, 내란죄까지…. 21세기의 한복판,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왜 연이어 터졌을까.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고령 1호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명령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비상계엄은 특별한 환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를 상정한 대목이다. 법원의 일부 권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은 의회에 대해서만은 어떤 조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독재자를 막는 안전장치다.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가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 (헌법 제77조 제5항)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뒤집으려 했다. 윤 대통령의 불만도 이해는 간다. 이 정부 들어 민주당은 29번이나 탄핵안을 발의해 13건을 헌법재판소에 보냈다. 헌정사상 탄핵 심판이 모두 16건인데, 13건이 이 정부에서 벌어졌다. 대통령 관심 예산은 무조건 깎였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특검법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관심 법안, 예산안은 반복해서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됐지만 아무일도 못 하는 신세다.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싶었을 법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처음도 아니다. 총선을 망친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권위주의 시절의 군인 출신 대통령도 여소야대에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일방안을 만들면서 세 야당 총재가 모두 자기 의견대로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랬기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으로 남아 있다. 취임하고 나면 모든 국정이 대통령 책임이다. 야당이 치어리더가 되는 건 일당독재나 가능하다. 의견이 달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달래고, 설득해야 한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아무리 정치 초보라도 윤 대통령은 너무 정치와 담을 쌓았다. 윤 대통령만큼 야당을 무시하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래도 제대로 굴러가는 제도여야 한다. 윤 대통령 사태를 봐도 제도가 중요하다. 개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대에 모여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을 분산할 수 있도록 통치 구조를 개편할 개헌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데만 집중했다. 3김 씨와 같은 정치력이 사라지면서 피로가 누적됐다. 대통령과 의회가 극단으로 대립했다. 한쪽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의회 독재’라고 한다. 권력의 분산과 효율적인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치인도, 학자도 공감한다. 그런데도 개헌론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도록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개헌 논의가 자신의 임기를 허비한다고 싫어한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경쟁에서 앞선 후보가 반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위기를 맞아서야 개헌을 제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여야가 모두 개헌하자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침묵이다. 사실상 반대다.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핑계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개헌할 수 있다. 대통령 자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대세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이다.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는 거북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장을 포용하는 제도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하는 제도다. 한 사람, 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편일 때 메시아다. 반대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투표에서 50.56%를 얻은 민주당이 175석(58.3%), 45.08%를 얻은 국민의힘이 108석(36%)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이 고집한 승자독식 탓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답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09

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대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시내 중심가는 물론 대전, 인천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가까운 거리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대구에서는 동성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집회와 탄핵하라는 집회가 차례로 열렸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광장 민주주의가 득세하면 대한민국도 남미처럼 나락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윤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오시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좌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주문했다. 역사 강사 전한길 씨도 집회에서 “지역·세대·성별·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국민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동화면세점 앞 국민변호인단집회에 참석한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양 진영이 모두 국민 통합을 주장한다. 그럴수록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방향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5일을 마지막 변론기일로 잡았다.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도 시간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의 전례를 참고하면 내달 중순쯤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기각된다, 주장이 팽팽하다. 예단은 일단 접어두자. 탄핵을 인용하면 탄핵 반대파가 수용할까. 전국에서 규탄 집회가 벌어질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와 같은 난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이는 탄핵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다. 지금처럼 날을 세워서는 격분한 군중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탄핵이 기각되면 또 어떨까.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항의 집회, 하야 운동이 벌어진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상대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기각 결정을 수용할까. 윤 대통령에게 협조할까. 오히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국무위원 탄핵공세로 몰아붙이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도 나라가 두 쪽 날 판이라 걱정이다. 그래도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 선거가 정국을 압도하게 된다. 그 대선에서도 탄핵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겠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더 큰 숙제가 뒤따른다. 윤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비상계엄이 합법이라고 공인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카드를 다시 꺼내지 않을까.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대응수단으로 비상계엄 카드를 빼어 들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비상계엄이 국회를 통제하는 상시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때 비상계엄은 이번과는 다를 것이다. 예행연습을 해봤다. ‘재수(再修)’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할 수 있다. 리스트에 있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이는 데도 성공할 것이다. 그 뒤에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당 대통령도 비상계엄으로 국민의힘을 무력화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하지 않을까. 그때는 보수세력이 저항운동을 벌이겠지만, 계엄이 일상화하고, 나라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대표 사례로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오르내릴 것이다. 어느 쪽이건 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은 쉽지 않다. 탄핵 반대운동 세력을 세대별로 확산하는 건 진영 내 결속일뿐, 국민통합은 아니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떠나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국민의힘은 한 주 전보다 10% 떨어져 22%, 민주당은 5% 올라 42%였다. 거의 갑절차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 감싸기가 선을 넘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조국 사태 때 이미 경험했다. 지금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건 무엇일까. 홍 시장 주장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국민 통합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23

스스로 물러날 시간은 조금 남았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일 10차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열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요구해 열리는 추가 변론기일이다. 더 이상 변론기일을 지정하지 않으면 3월 15일 전후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모두 마지막 변론기일 2주일 뒤에 이루어졌다. 법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전례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으로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보는 법학자가 많다. 옳고 그르고는 잠시 옆으로 밀어놓자. 탄핵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예측은 냉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파 진영에서부터 윤 대통령의 자진 사퇴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자진 사퇴를 반대한다. 탄핵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자진 사퇴 의견이 있었다. 사과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탄핵으로 갔다. 사과했지만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일부 강경파가 사과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사과에 인색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적기를 놓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 효과도 보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번번이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야당에 총리 추천을 제안하는 것도, 대국민 사과도 언제나 뒷북을 쳤다. 자진 사퇴는 엄두도 못 내보고 탄핵으로 끝났다.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스스로 물러날 기회가 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비상계엄이 실패했을 때 사퇴해야 했다. 그게 국가 지도자다운 처신이다.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통령 부재는 국정 마비를 의미한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국제 관계가 격랑 속이다. 우리만 손 놓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좋은 기회다. 여론 흐름이 좋아졌다. 보수가 결집했다. 비상계엄 전 20%대에 머물렀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에는 50%를 넘긴 조사까지 나왔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호전이다. 이런 결집 현상이 국민의힘에는 딱히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개인에게는 무척 고무적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바닥을 치던 윤 대통령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앞으로도 이런 지지율이 계속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물러나는 게 지도자의 품격에도 맞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원인이 야당 횡포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우더라도 법의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난 사람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부하들과 그 책임을 다투는 모습은 너무 군색하고, 애처롭다. 스스로 물러난다면, 그동안의 언행을 모두 정리하고, 지도자답게 책임을 안고 갈 수 있다. 마지막 기회다. 윤 대통령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면 생각이 가벼워지고, 설득력도 커진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은 다시 ‘명태균 특검’을 꺼냈다. 형사재판과 특검이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 내외에게는 고통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탄핵 직전 사퇴했다. 제럴드 포드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승계한 직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혐의에 대해 기소 전 특별사면한다”라고 선언했다. 닉슨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포드는 이 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사임해도 닉슨처럼 곧바로 사면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정상참작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심과 역사의 심판이다. 국민의힘은 더 문제다. 당 공식 입장이 아니라지만, 윤 대통령과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수 결집 효과는 있겠지만, 중도 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 이제 돌아서기도 어렵다. 가능성은 작지만, 윤 대통령의 결단이 가장 쉬운 길이다. 지도자다운 뒷모습은 국민의힘과 보수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보답이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16

이재명 대표의 적은 이재명이다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기세다.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39%, 더불어민주당이 37%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당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율도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참패했다. 그런데 ‘친윤’(친 윤석열)은 기세다. 심지어 이달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인 여론조사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대개 20%대를 저공비행하다 비상계엄 직후 1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면회하려고 줄을 서 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에 이어 7일 윤상현·김민전 의원이 면회했다.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찾아간다. 같은 NBS 조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55%)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많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50%)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의견(41%)보다 많다. 비상계엄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더 높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뒤집어진 건 아니다. 비상계엄은 온 국민이 눈으로 지켜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차기 정권은 민주당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여론이 묘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뜨지 않는다. 대체로 ‘정권교체’ 의견이 50% 근처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 이 대표 지지율은 30% 근처다. 정권이 바뀌긴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 대표는 더 싫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은 비호감 경쟁이었다. 윤석열 후보 지지가 많은 게 아니라,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제 윤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다. 여론조사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건 이 대표 책임이다. ‘이재명 포비아(공포)’라고 한다. 보수세력에 이 대표 집권은 공포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적대 세력을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이재명 포비아’는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이 대표의 꼼수도 ‘신 스틸러’다. 이 대표 재판과 윤 대통령 탄핵이 시간 경쟁을 벌인다. 이 대표는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탄핵하고,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선거가 시작되면 처벌이 어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되자 검찰이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니 보수층 유권자는 탄핵보다 이 대표 재판을 먼저 끝나야 한다고 매달린다. 탄핵하더라도 당장은 지연시켜야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게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6-3-3원칙(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라 2023년 9월 끝났을 재판이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 탓에 아직도 2심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4일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위헌이라고 제소했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한 조항이다. 누가 봐도 지연 꼼수다. 그는 항소심 통지서 수령도 계속 회피했다. 변호인 선임을 두 달 이상 끌었다. 추가 증인도 13명이나 신청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이 법률 조항을 없애는 개정을 추진한다. 이 재판만이 아니다. 대장동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 148명을 법정에서 모두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재판이 빨리 진행되면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 칩거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정치인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9

진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김진국 고문 아직도 진실이 살아 있을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려운 시대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2017년에 쓴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라는 책은 한국에서까지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때 이미 미국에서도, 진실이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그렇다. 매킨타이어는 “과거에도 진실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는 존재”했지만, “현실을 정치적 상황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런 위기를 대놓고 전략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진실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는…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매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주장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꾼은 허위사실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그것을 믿는 상황이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진실을 찾기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게 관심이다. 정말 진실을 찾아내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거짓’(대안적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진 사회에서는 진영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보수건 진보건, 모든 주장이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라도 자기 진영과 다른 말을 하는 순간 ‘반대편’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린다. 모두 홍길동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믿어버린다. 조국 사태가 그랬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대안의 진실’ 속에 살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 왜 조국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하나. 조국 수호(혹은 타도)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 사명이라도 된다는 건가. 정말 고약한 세상이다. 요즘 기준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친윤’ 아니면 ‘반윤’이다. 윤 대통령이 언제부터 보수의 중심이었나.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기준이다. 그에게 유리한 말을 해야 진보고,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손님들에게 “요즘 신문과 방송은 너무 편향돼 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저 주변에서 시위하는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언론 대신 유튜브에 빠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유튜브 냄새가 난다. 개인 미디어가 전통 미디어를 뒤집기 시작한 것은 팟캐스트 ‘나꼼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이던 2007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조롱으로 반이명박 세력의 배설 욕구를 만족시켰다. 이제 진보 진영을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들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큰절을 했다. 보수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인데도 개인 유튜버만 골라 인터뷰했다. 김건희 여사가 유튜버에게 그렇게 당했는데도, 윤 대통령도 유튜브만 본다.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 보고보다 극단적인 일부 유튜버의 주장을 더 믿는다. 기자 활동을 시작할 때 복잡한 문제는 돈의 흐름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복잡한 민·형사 사건뿐만 아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과거 복잡한 파벌정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도 돈이었다. 탄핵 국면에서 한 유튜버는 ‘슈퍼챗’으로 하루 만에 3천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자극적인 말을 할수록 돈이 쏟아진다. 서부지원 난동 때도 유튜버가 앞장서서 돌격했다. 갈등이 심하고, 민주주의가 무너질수록 흥분한 구독자가 돈을 쏜다. 진영마다 다른 ‘대안의 세상’에 산다. 민주주의가 위기다. 답이 없다. 유튜버는 돈을 벌려고 떠들어도, 유권자는 냉정해야 한다. 대안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알 일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윤 대통령이 재판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은 상대편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는 거울로 써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