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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제하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것들 봐라? 한 달만 기다려라.”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을 뒤집고, 파기 환송한 지난 1 일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페이스북에 그렇게 썼다. 그런데 한 달도 못 기다렸다. 지난 14일 국회 법사위에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모두 증인으로 불렀다. 사법부는 삼권 분립의 중요한 한 축이다. 국회는 대법원장을 국회에 부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대법관들을 모두 불렀다. 대법관들이 모두 불참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탄핵해야 한다”라고 말했 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사건 항고심을 맡은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해 서는 룸싸롱에서 향응을 받았다는 제보가 있다며 직무 배제하고, 감찰하라고 연일 공세다. 판사가 지나친 향응을 받았다면 징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특정 판결에 대한 보복은 차원이 다르다. 지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을 ‘구속 취소’했다. 필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재판 결과를 보복하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이 연루된 재판을 하는 판사들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 주당이 노리는 것도 ‘알아서 기라’라는 협박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을 국회로 부른 것도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재판에 대한 노골적인 보복이다. 범죄자가 판사를 협박하고, 어르는 꼴이다. 일종의 인민재판이다. 이게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재명 후보는 중도층과 보수 세력에 게 공포감을 줬다.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자를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대선을 앞두고, 우클릭하며 양처럼 친화적인 이 미지로 화장했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가 그 화장을 씻어냈다. 이 후보는 경남 유세에서 “지금도 숨어서 끊임없이 내란을 획책하고 실행해 2·3차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다 찾아내서 법정에 세워야 한다”라면서 “그 법정은 깨끗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까지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일종의 관심법이다. ‘깨끗한 판사’라는 건 현재 판사들이 ‘더러운 판사’이고, 새 판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법부 장악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하자 사법농단으로 수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발탁해 사법 부를 뒤집어놓았다. 이제 현직 대법원장을 뒤집어놓겠다고 으름장이다. 지난 14일 법사위는 ‘조희대 특검법’을 상정했다. 대법관 수도 갑절 이상 늘 리겠다고 한다. 현재 14명에서 김용민 의원안은 30명, 장경태 의원안은 100명 으로 늘어난다. 늘어나는 대법관은 새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유죄 취지 파기 환송한 이재명 재판을, 대법관을 바꿔 뒤집겠다는 속셈이다. 그뿐 아니다. 이 후보가 피소된 선거법 조항을 지우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상정했다. 처벌 근거가 사라지면 자동 면소(免訴)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정지하도록 고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냈다. 노골적인 위인설 법(爲人設法)이다. 이 후보는 대법원판결 직후 “법도 국민의 합의이고,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라면서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라고 말했다. 국민의 투표권이 중요하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기초다. 그렇지만 절제가 필요하다. 정치인이 자신의 범죄를 다중의 힘으로 덮으려 하면 법치가 무너진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관료와 판사, 지식인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홍위병의 곤봉이 판사의 법봉을 대신했다. 그런 길로 갈 수는 없다. 국민의 뜻이 중 요하지만, 법의 테두리는 지켜야 한다. 더구나 특정인을 보호하려고, 법원을 개편하고, 법을 고칠 수는 없다. 민주당 내부에도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 만 드러내놓고 말을 못 한다. 압도적인 지지율 탓에 여론을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힘을 잃었다. 이러다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두렵다. 자제는커녕 충성 경쟁이 더 극심해질 게 뻔하다. 자제할 줄 모르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8

쿠데타 세력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김영삼 총재에게 집단지도 체제를내세운 이철승 의원이 도전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온건 노선인 이 의원을 지원했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20대 조폭 김태촌을 끌어들였다. 그의 조직원과 광주에서 고등학생 불량배들까지 불러올렸다. 수백 명이 각목을 들고 신민당사에 난입해 김 총재에게 “죽기 싫으면 당인을 내놓아라”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방관했다.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한덕수 후보는 어디서 왔나. 지난 4월 8일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그는 트럼 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흘렸다. 누군가 시중에 그의 출마설을 퍼뜨려놓았다. 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그날 시작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지지도가 미미했다. 이재명 37%, 김문수 9%, 홍준표 5%, 한 동훈 4%, 그리고 한덕수 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예비후보 등록을 한 것은 그보다 일주일 뒤인 4월 15일이다. 두 번의 예비경선을 거쳐 5월 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경선 과정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은 “한덕수와 단일화할 거냐”라는 질문과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다. 입당도, 예비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한덕수 후보가 예비경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 그의 존재감을 키워줬다. 정작 그는 당 밖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전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선된 국민의힘 후보가 양보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무엇을 믿었던 걸까. 많은 정치 분석가는 친윤 세력, 그 뒤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한다. 무리하게 후보 교체를 몰아간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친윤’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후보를 양보하지 않는 김문수 후보를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한심하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자리인가. 원내대표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사실 국민의힘 지도부나 한덕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요구한 ‘단일화’는 ‘양보’다. 10일 밤 당원 투표로 김문수 후보로 정리된 뒤에도 권영세 비대위원 장은 “단일화 못 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로 단일화는 단일화가 아니 었다. 김 후보가 경질을 요구한 이양수 사무총장에게 ‘단일화’를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겼다. 경쟁 후보 중 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칼자루를 맡긴 꼴이다. 김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 뒤 모두 잠든 새벽 3~4시에 단일화 후 보 등록을 마감했다. 새벽 2시 30분에 공고해, 한 시간 반 만에 32가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도 있다. 한 후보는 새벽에 입당하고, 하버드대 졸업증명서까지 준비했다.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자마자 바로 그날 ‘단일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다. 왜 한 후보를 바로 경선에 참여시키지 않았을까. 윤 전 대통 령이 싫어하는 한동훈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꼼수라고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 무리한 공작 탓에 시너지는커녕 갈등만 유발했다. 모든 경선 참여자가 반발했다. 한덕수 후보가 득표력이 더 있다는 근거는 중도 확장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해야 했다. 한동훈·유승민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줘야 했다.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라도 망치고, 당도 망쳤다”라고 비난했다.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한덕수 후보를 내세운 친윤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라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 운동 때 등장한 ‘윤 어게인’(윤석열 복귀)이 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쿠데타를 반복하는 세력부터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1

차마 말 못 하고 있었는데…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론을 모으는 과정이다. 후보들의 차이점을 부각하면서도, 결국 수렴하게 만든다. 분명하지 않던 의견 차이가 경쟁 후보와 비교할 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유권자를 의식해 점점 경쟁 후보와 닮아간다. 왼쪽에 있는 후보는 조금 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오른쪽에 있는 후보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특히 양당제 구도를 가진 나라에서는 누 가 중도층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를 두고 경쟁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공을 들이는 게 그런 노력의 하나다. 이렇게 국론을 하나로 모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비슷해져 가면서도, 진영 대결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깊은 편 가르기가 병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선거 때만 사탕발림하는 거짓말이다. 특히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극단 세력이다. 도식적으로 극우와 극좌에 있는 집단이다. 오른쪽에 있는 후보가 중간 지대를 공략하려 해도 극우세력이 견제하면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자칫 중간에서 얻는 표보다 오른쪽에서 빼앗 기는 표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가 “아직도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40%는 북한으로 가라”라고 주장하는 게 그런 사례다. 왼쪽도 마찬가 지다. 6·3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 치른다. 비상계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심판했다.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으로 갈라져 세 대결을 펼쳤지만,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반탄’ 세력조차 쉽게 지지하지 못한다. 이런 국면에서 대선을 ‘찬탄’ 대 ‘반탄’ 대결로 몰아가면 ‘반탄’ 후보가 백전백패다. YTN 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지난주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 교체’ 여론이 54% 로 ‘정권 연장’ 36%보다 크게 앞섰다.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는 정권 교체 의견이 갑절로 많았다. 국민의힘이 탄핵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24일 정강· 정책 방송 연설에서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다”라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반민주적 정치에 순응한 것을 조목조목 반성했다. 처음, 이 연설을 들을 때 당내 분란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로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감을 표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반적인 취지에 동의한다”라면서 “건강한 당정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차마 말 못 하고 있었는데…”라는 느낌이다. 대신 물꼬를 터준 셈이다. 대선 경쟁에 의욕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정권 연장을 포기하고, 차기 당권이나 잡자는 분위기에서는 탄핵 반대가 유리하다. 다음 총선 공천을 걱정하는 의원도 함부로 ‘찬탄’ 목소리를 못 낸다. 당장 대선 당내 경선 후보들도 자세를 바꾸고 있다. 가장 탄핵에 반대했던 김문수 후보도 윤 원장의 발언을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간절한 목소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6일 ‘4강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사과는 당연히 할 때가 되면 하겠다”라면서 “민주당은 하나도 반성·사과하지 않고, 우리만 계속 사 과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는 “제가 최종 후보가 되면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기회를 보고 있을 뿐 사과할 뜻은 있다는 말이다. 이미 계엄 반대와 사과를 밝혔던 한동훈 후보는 “절대로 겪으셔서는 안 되는 일을 겪게 해드려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당 대표였던 사람으로서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안 후보는 “우리 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29일 국민의힘은 4강 대결 결과를 발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5월3일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 그 가운데 한덕수 총리와 단일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누가 후보가 되건 경쟁 후보들의 힘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탄핵에 대한 의견부터 먼저 하나로 모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27

대선마저 지난 총선 꼴로 만들 건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오랜 친구다. 전 전 대통령은 자기가 거친 자리 다섯 가지를 노 전 대통령에게 물려줬다고 회고록에 썼다. 구체적으로 열 거해 놓았다.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민정당 총재, 그리고 대통령이다. 대통령직을 넘겨준 뒤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회 고록 2권 후반부에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을 상당 부분 할애 했다. 6·29선언이 나오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친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 했다. 두 사람은 6·29선언을 서로 자기가 결단했다고 주장한다. 전 전 대통령 회고 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고 겁이 많으면서 무리하게 양보를 요구하는 친구로 묘사돼 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꿈 꾸고, 대통령직을 물려준 뒤에도 상왕이 되기를 노리는 권력욕이 넘치는 위험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대체로 전 전 대통령의 말이 정설로 돼 있다. 누구 말이 사실이든, 전 전 대 통령이 후계자에게 자신을 밟고 가도록 허락한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 다 물 러난 뒤에야 서로 공을 다퉜지만, 선거 때는 6.29선언이 완벽하게 노태우 후보 의 훈장으로 가슴에 달려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해, 양 김 씨(김영 삼·김대중)를 분열시켜 노 후보가 이기도록 구도를 짠 것도 전 전 대통령이다. 거기에 비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이후의 보 수정당에 대해 애정이 없다. 강력한 통치자였던 전 전 대통령도 ‘나를 밟고 가 라’고 했는데, 윤 전 대통령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지난해 총선 때도 앞 장서 표를 떨어뜨려 공룡 야당을 만들어줬다.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의대 증원 이 오랜 진료 차질로 여론이 나빠졌다. 총선 직전 담화에서 수습책을 제시할 것으로 다들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강경한 어조로 기름을 부었다. 굳이 선 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된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황급히 내보낸 것도 상식에 맞지 않았다. 탄핵 뒤 윤 전 대통령은 서초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왔다”, “3년을 하나 5년을 하나”(다를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상식만으로 해 석하기 어렵다.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거나 절제하는 모습 은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 위기 앞에서 보수 지지층이 뭉쳤다고 이 긴 게 아니다. 지난 17일 윤 전 대통령을 변호한 젊은 변호사들이 신당 추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4시간 만에 취소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일 저녁 식사를 함 께하던 변호사들이 “청년 지지층에 구심점이 필요하다”라면서 신당 계획을 꺼 내자, 윤 전 대통령이 “중요하지. 해봐”라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난리가 났다. 선 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은 힘을 하나로 합쳐 야 할 때”라며 보류하라는 뜻을 전달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이라는 말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이 아닌 ‘나중 어느 때’에는 신당을 만들 ‘때’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총선에서 ‘친박연대’처럼 ‘친윤’ 정당으로 나설 수도 있다. 대 선에서 지고, 국민의힘이 당권 싸움에 빠져도, 이 구상이 다시 떠오를 수 있 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새 길을 찾겠다”라며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 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었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말은 윤 전 대통령을 다시 권좌에 앉히자는 말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옥중 편지에서 처음 사용해 탄핵 반대 시위 자들의 구호가 됐다. 개헌해 다시 대통령이나 내각제 총리가 될 수도 있고, 보 수 집권 세력의 상왕이 되려 할 수도 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파괴했다. 형사재판 피의자 다. 그런데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한다. 지난 총선처럼 나서면 나설수록 보수세력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키고, 표를 깎 아 먹는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걸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20

대통령 후보들이 답해야 할 문제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결정됐다. 이제 겨우 51일 남았다. 민주당에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는 여러 사람이 혼전(混戰)이다. 여론조사에서 도긴개긴이다. 이번 선거는 탄핵 선거다.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다. 그때는 탄핵 극복이 시대 과제로 두드러졌다. 절대다수 국민이 탄핵을 지지했다. ‘촛불혁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바람에 문재인 후보가 너무 쉽게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해 죄인이 된 자유한국당이 힘을 쓸 수 없었다. 문 후보에 대한 검증도, 미래 구상도 따져볼 틈도 없이 바로 정권을 넘겼다. 그는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과거에 매달렸다. 임기 내내 ‘적폐 척결’을 했다. 보수 정부에 관계한 사람들을 정부에서 쫓아냈다. 자기편은 비리조차 감싸 ‘내로남불’이 유행어가 됐다. 지나친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 탈원전정책으로 원전 생태계를 와해시켰다. 사드 배치 지연, 대일 합의 번복 등으로 외교 축이 흔들렸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직접 대화의 길을 터주고,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완성을 방치했다. 일일이 나열하기 숨이 가쁘게 보수 정부 정책을 뒤집었다. 물론 탄핵이 이 선거를 있게 했다. 탄핵을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 후보들은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탄핵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런 사태를 다시 반복할 순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기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사저로 돌아가면서 개선장군처럼 행동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태도도 불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을 업고 나서겠다면 탄핵을 반대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임기를 못 마치고 물러난 것은 분명히 실패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면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를 포기한 정치권에 던진 준엄한 훈계다. 민주당 후보도 이 지적에 답해야 한다. 비상계엄의 가장 큰 책임이 윤 전 대통령에게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후보가 헌재의 지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국민 통합은 대통령의 최고 책무다. 갈라진 국민을 어떻게 통합할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 실종, 반복되는 헌정 중단 사태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해법을 내놔야 한다. 선거 이후의 상황은 산 넘어 산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거대 권력이 된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국민의힘은 108명에 불과하다. 개혁신당 3명을 합쳐봐야 111명이다. 180석을 넘으면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된다. 200석이 필요한 탄핵과 개헌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22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충성파를 제외하고는 노골적으로 정리했다. 무자비한 숙청이었다. 그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면 견제받지 않고, 폭주하는 기관차가 될 위험이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치에도 탄핵 반대파가 기세를 올린 이유다. ‘이재명 포비아’에 대한 이 후보의 이해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거대 야당에 직면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이 놓였던 바로 그 환경이다. 선거로 달궈진 대결 의식 속에 어떻게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낼지 관건이다. 여기에 실패하면 윤 전 대통령의 길을 걷거나, 아무 일도 못 하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된다. 나라도 스톱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0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후보마다 답을 내놔야 한다. 우리도 그 답을 듣고, 냉정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 또다시 나라가 거꾸로 달리게 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13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김진국 고문 처음 평양에 가본 건 1992년 2월이다.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판문점에서 자동차로 개성에 도착해, 평양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갔지만, 그때는 비행기로 바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쇼윈도 도시인 평양 이외에는 볼 수 없었다. 개성에서 출발한 기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달렸다. 60년대 우리 완행열차 같았다. 철로 변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덕분에 창밖으로 북한의 지방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게 산 모습이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말그대로 민둥산이었다. 보이는 산마다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락밭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나무를 때는 아궁이를 썼다. 어린아이들도 시간이 나면 소를 산비탈로 끌고 가 꼴을 먹이고, 산에서 나무를 잘라 땔감을 해왔다. 민둥산, 산사태, 홍수…. 초등학교에서부터 수없이 보고 들었다. 실제로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림이 우거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벌건 황톳빛이었다. 필자가 기차에서 본 북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그 풍경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경주 동대봉산에 대형산사태가 났을 때는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73년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여 10년 계획을 6년 만에 달성했다. 이때 29억4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생일 때는 식목일마다 전국의 학생들이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갔다. 79년에 시작한 2차 녹화계획도 1년 앞당겨 87년에 달성하고, 3차 산지 자원화 계획도 88년부터 97년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무라고는 보기 힘들던 산이 이제 길이 아니면 다니기가 어려운 울창한 숲이 됐다.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조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무는 많아도 정작 쓸만한 나무가 적다. 대부분 수입한다. 수종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조직이라며 산림청을 없애려 한 적도 있다. 대형산불이 휩쓸고 갔다. 어이없는 대량 인명 피해가 났다. 사망자만 30명이다. 특히 경북에서만 사망이 26명, 부상 33명이다. 전국에서 주택이나 공장, 문화재 등 5098곳이 불에 탔다. 경북 북부의 산불 피해 면적만 4만5000여㏊다. 땔감으로 쓰는 사람도, 화전민도 없는데, 경북의 산들이 북한의 산처럼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성묘 철이다. 조상의 묘소를 잘 관리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산에서 불씨는 금물이다. 잠시 방심한 틈에 사고를 친다. 불은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오래전 필자가 아는 한 노인도 산소 주변을 청소한 뒤 검불을 태우려 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씨가 날았고, 마른 나뭇잎에 옮겨붙었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불은 무섭다. 성냥불이 성냥불이 아니다.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산불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사고를 내는 사람은 항상 처음이다. 지난 경험을 잘 전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불 예방 수칙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도 책임 공방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장기 과제를 초당적으로 챙길 책임이 국회에 있다. 그런데 눈앞의 선거에 유불리를 따진 잔머리로 사탕발림만 내놓는다. 산림이 우거질수록 산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이 잘 붙고, 거세게 화염을 내는 나무가 있다. 어떤 나무 열매는 불이 붙으면 수백 미터를 튀어간다. 방화선을 설치하고, 소방로도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한다. 이번 산불 때 소방헬기 도움이 절실했다. 거센 바람에 미군 헬기 지원만 기다렸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이 4355세대 6849명이다. 경북만 6385명이다. 생활기반이 무너진 사람도 많다. 과수가 모두 타면 수년간 막막하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도록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30

모질고 악착같은 정치인은 위험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는 욕을 많이 먹는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서로 다른 주장을 절충하는 게 본질이다. 소리가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권력을 두고 경쟁할 때는 시끄럽지 않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는 건 명분 덕분이다. 이제는 달라졌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인이 되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분에 걸맞게 짐짓 점잔을 빼는 정치인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겉치레조차 던져버렸다. ‘동물 국회’가 심하게 싸울 때 잠시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일상적인 여의도 문법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다. 탄핵 사유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미룬 것, 비상계엄을 묵인·방조하고, 윤 대통령 지시를 하급자에게 전달했다는 문제를 제시했다.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 이를 무시한 조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게 탄핵사유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두드러진 행동이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과 차이가 없다. 이것으로 탄핵한다면 ‘대행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 국무위원을 모두 탄핵해야 한다. 더군다나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가 오늘(24일) 결정된다.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기각이 되건, 인용이 되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불과 며칠 앞두고 최 대행을 탄핵 소추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과잉대응이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보면 참담하다. 정말 탄핵할 필요를 느껴서 발의한 건지, 집권당을 겁박하고, 국정 운영을 방해하려는 건지 헷갈린다. 발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하거나,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고 대부분 폐기했다. 그나마 헌재로 보낸 탄핵소추안도 결정이 난 8건 가운데 8건 모두 기각됐다. 탄핵이 목적이 아니라 탄핵 소추가 목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탄핵 소추하면 우선 피청구인의 직무가 정지된다. 일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당해 직무가 정지된 처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 부담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과의 친분까지 자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게 국내 정치상황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이어 경제 사령탑까지 직무가 정지당하게 됐다. 대통령 부재라는 국가적 위기를 넘어가는 데 힘을 모아도 부족한 마당에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도구가 있다. 압정을 박으려고 망치를 쓸 수는 없다. 화분에 물을 주려고 살수차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정말 악착같다. 가장 독한 방법, 상상도 못 할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른다. 이렇게 몰아치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없고, 송사(訟事)만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탄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걸 어떻게 막느냐를 걱정했다. 탄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탄핵 심판보다 가장 빨리 결론을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엄 직후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아주 거세졌다. 왜 그럴까. ‘이재명 포비아’ 탓이다. 계엄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본인의 재판과 탄핵 심판을 묶었다. 시간 싸움을 벌였다. 조급하게 몰아치는 모습이 거부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 공천의 잔인한 숙청을 대선 이후에 투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민주당만 모르는 것 같다. 조급하고, 몰아칠수록 신뢰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줄탄핵’과 ‘줄기각’이 윤 대통령 탄핵마저 그르칠까 두렵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23

탄핵 반대 세력을 키운 건 이재명 대표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에도 거리는 소란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비롯한 서울의 거리 곳곳은 물론 구미 등 지방 도시에서도 수만, 수십만 인파가 몰려 아우성쳤다.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업무로 복귀하거나. 양단간에 결정이 난다. 그러고 나면 조용히 끝날까. 탄핵당하면 60일 내 다음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 경쟁으로 관심이 쏠릴까. 탄핵이 기각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지금 거리에 쏟아져 나온 군중은 집으로 돌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군중이 더 흥분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그 결정을 반대하는 군중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흥분하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보지 못한 일이다. 그때도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도록 시위가 이어졌다. 토요일마다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서울 시청과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행진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보다 혐의가 작았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책임졌다. 그런데 왜 지금 더 폭발했을까. 흥분한 보수 인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보수세력은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비상계엄보다 더 두려워한다. 이런 식이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바로 공산화된다”,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논리를 비약하고, 비약해서 쏟아내는 억지를 일일이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이 대표가 뿌린 씨앗들이다. 이 대표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지금도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로 세력을 끌어모은다. 탄핵 반대 세력을 모아준 1등 공신이 이 대표다. 뒤늦게 놀란 이 대표가 광화문 앞에서 연 최고위원 회의에도 빠졌다. 이 대표는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최근 대선이 가깝다고 생각해선지, 우클릭 행보를 했다. 그러고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다시 좌클릭했다. 이 대표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다. 가벼운 말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최근 사법 리스크를 대처하면서도 상식과 다른 해명들이 신뢰를 흔들었다. 지난주 헌재는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 건을 줄줄이 기각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밀어붙인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반부패2부장에 대한 탄핵 심판이다.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탄핵 근거들을 모두 배척했다.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소추였음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소추안을 29번 발의했다. 13건을 강행 처리했다. 역대 모두 합쳐서 16건인 탄핵소추 가운데 3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 정부에서 민주당이 한 것이다. 지난주까지 그중에 8건이 기각됐다. 탄핵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을 기각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탄핵 심판하는 동안 해당 고위공직자의 손발을 일하지 못하게 묶어놓게 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이유로 지적했을 정도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고 한다. 너무 궁지에 몰지 말라는 경구다. 그런데 이 대표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이 대표는 대통령 관심 예산을 모조리 칼질했다. 윤 정부의 국정 방향과 충돌하는 법안을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 내외를 특검으로 몰아세웠다. 당내 정치도 그렇게 했다. 지난 총선 공천이 전형적이다. ‘비명횡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용진 전 의원 낙천 과정은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이 대표와 갈등을 빚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집권하면 상대 정당에도 같은 보복을 할 것 같은 공포를 심었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진 책임의 상당 부분을 이 대표가 떠안아야 하는 이유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16

모두 원하는데 왜 개헌 못하나

김진국 고문 난리다. 비상계엄령에, 탄핵에, 내란죄까지…. 21세기의 한복판,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왜 연이어 터졌을까.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고령 1호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명령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비상계엄은 특별한 환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를 상정한 대목이다. 법원의 일부 권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은 의회에 대해서만은 어떤 조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독재자를 막는 안전장치다.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가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 (헌법 제77조 제5항)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뒤집으려 했다. 윤 대통령의 불만도 이해는 간다. 이 정부 들어 민주당은 29번이나 탄핵안을 발의해 13건을 헌법재판소에 보냈다. 헌정사상 탄핵 심판이 모두 16건인데, 13건이 이 정부에서 벌어졌다. 대통령 관심 예산은 무조건 깎였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특검법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관심 법안, 예산안은 반복해서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됐지만 아무일도 못 하는 신세다.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싶었을 법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처음도 아니다. 총선을 망친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권위주의 시절의 군인 출신 대통령도 여소야대에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일방안을 만들면서 세 야당 총재가 모두 자기 의견대로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랬기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으로 남아 있다. 취임하고 나면 모든 국정이 대통령 책임이다. 야당이 치어리더가 되는 건 일당독재나 가능하다. 의견이 달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달래고, 설득해야 한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아무리 정치 초보라도 윤 대통령은 너무 정치와 담을 쌓았다. 윤 대통령만큼 야당을 무시하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래도 제대로 굴러가는 제도여야 한다. 윤 대통령 사태를 봐도 제도가 중요하다. 개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대에 모여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을 분산할 수 있도록 통치 구조를 개편할 개헌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데만 집중했다. 3김 씨와 같은 정치력이 사라지면서 피로가 누적됐다. 대통령과 의회가 극단으로 대립했다. 한쪽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의회 독재’라고 한다. 권력의 분산과 효율적인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치인도, 학자도 공감한다. 그런데도 개헌론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도록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개헌 논의가 자신의 임기를 허비한다고 싫어한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경쟁에서 앞선 후보가 반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위기를 맞아서야 개헌을 제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여야가 모두 개헌하자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침묵이다. 사실상 반대다.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핑계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개헌할 수 있다. 대통령 자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대세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이다.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는 거북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장을 포용하는 제도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하는 제도다. 한 사람, 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편일 때 메시아다. 반대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투표에서 50.56%를 얻은 민주당이 175석(58.3%), 45.08%를 얻은 국민의힘이 108석(36%)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이 고집한 승자독식 탓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답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09

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대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시내 중심가는 물론 대전, 인천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가까운 거리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대구에서는 동성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집회와 탄핵하라는 집회가 차례로 열렸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광장 민주주의가 득세하면 대한민국도 남미처럼 나락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윤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오시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좌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주문했다. 역사 강사 전한길 씨도 집회에서 “지역·세대·성별·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국민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동화면세점 앞 국민변호인단집회에 참석한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양 진영이 모두 국민 통합을 주장한다. 그럴수록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방향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5일을 마지막 변론기일로 잡았다.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도 시간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의 전례를 참고하면 내달 중순쯤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기각된다, 주장이 팽팽하다. 예단은 일단 접어두자. 탄핵을 인용하면 탄핵 반대파가 수용할까. 전국에서 규탄 집회가 벌어질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와 같은 난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이는 탄핵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다. 지금처럼 날을 세워서는 격분한 군중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탄핵이 기각되면 또 어떨까.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항의 집회, 하야 운동이 벌어진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상대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기각 결정을 수용할까. 윤 대통령에게 협조할까. 오히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국무위원 탄핵공세로 몰아붙이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도 나라가 두 쪽 날 판이라 걱정이다. 그래도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 선거가 정국을 압도하게 된다. 그 대선에서도 탄핵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겠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더 큰 숙제가 뒤따른다. 윤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비상계엄이 합법이라고 공인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카드를 다시 꺼내지 않을까.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대응수단으로 비상계엄 카드를 빼어 들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비상계엄이 국회를 통제하는 상시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때 비상계엄은 이번과는 다를 것이다. 예행연습을 해봤다. ‘재수(再修)’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할 수 있다. 리스트에 있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이는 데도 성공할 것이다. 그 뒤에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당 대통령도 비상계엄으로 국민의힘을 무력화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하지 않을까. 그때는 보수세력이 저항운동을 벌이겠지만, 계엄이 일상화하고, 나라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대표 사례로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오르내릴 것이다. 어느 쪽이건 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은 쉽지 않다. 탄핵 반대운동 세력을 세대별로 확산하는 건 진영 내 결속일뿐, 국민통합은 아니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떠나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국민의힘은 한 주 전보다 10% 떨어져 22%, 민주당은 5% 올라 42%였다. 거의 갑절차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 감싸기가 선을 넘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조국 사태 때 이미 경험했다. 지금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건 무엇일까. 홍 시장 주장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국민 통합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23

스스로 물러날 시간은 조금 남았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일 10차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열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요구해 열리는 추가 변론기일이다. 더 이상 변론기일을 지정하지 않으면 3월 15일 전후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모두 마지막 변론기일 2주일 뒤에 이루어졌다. 법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전례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으로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보는 법학자가 많다. 옳고 그르고는 잠시 옆으로 밀어놓자. 탄핵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예측은 냉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파 진영에서부터 윤 대통령의 자진 사퇴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자진 사퇴를 반대한다. 탄핵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자진 사퇴 의견이 있었다. 사과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탄핵으로 갔다. 사과했지만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일부 강경파가 사과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사과에 인색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적기를 놓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 효과도 보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번번이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야당에 총리 추천을 제안하는 것도, 대국민 사과도 언제나 뒷북을 쳤다. 자진 사퇴는 엄두도 못 내보고 탄핵으로 끝났다.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스스로 물러날 기회가 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비상계엄이 실패했을 때 사퇴해야 했다. 그게 국가 지도자다운 처신이다.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통령 부재는 국정 마비를 의미한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국제 관계가 격랑 속이다. 우리만 손 놓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좋은 기회다. 여론 흐름이 좋아졌다. 보수가 결집했다. 비상계엄 전 20%대에 머물렀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에는 50%를 넘긴 조사까지 나왔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호전이다. 이런 결집 현상이 국민의힘에는 딱히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개인에게는 무척 고무적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바닥을 치던 윤 대통령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앞으로도 이런 지지율이 계속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물러나는 게 지도자의 품격에도 맞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원인이 야당 횡포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우더라도 법의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난 사람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부하들과 그 책임을 다투는 모습은 너무 군색하고, 애처롭다. 스스로 물러난다면, 그동안의 언행을 모두 정리하고, 지도자답게 책임을 안고 갈 수 있다. 마지막 기회다. 윤 대통령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면 생각이 가벼워지고, 설득력도 커진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은 다시 ‘명태균 특검’을 꺼냈다. 형사재판과 특검이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 내외에게는 고통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탄핵 직전 사퇴했다. 제럴드 포드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승계한 직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혐의에 대해 기소 전 특별사면한다”라고 선언했다. 닉슨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포드는 이 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사임해도 닉슨처럼 곧바로 사면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정상참작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심과 역사의 심판이다. 국민의힘은 더 문제다. 당 공식 입장이 아니라지만, 윤 대통령과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수 결집 효과는 있겠지만, 중도 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 이제 돌아서기도 어렵다. 가능성은 작지만, 윤 대통령의 결단이 가장 쉬운 길이다. 지도자다운 뒷모습은 국민의힘과 보수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보답이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16

이재명 대표의 적은 이재명이다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기세다.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39%, 더불어민주당이 37%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당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율도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참패했다. 그런데 ‘친윤’(친 윤석열)은 기세다. 심지어 이달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인 여론조사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대개 20%대를 저공비행하다 비상계엄 직후 1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면회하려고 줄을 서 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에 이어 7일 윤상현·김민전 의원이 면회했다.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찾아간다. 같은 NBS 조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55%)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많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50%)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의견(41%)보다 많다. 비상계엄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더 높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뒤집어진 건 아니다. 비상계엄은 온 국민이 눈으로 지켜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차기 정권은 민주당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여론이 묘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뜨지 않는다. 대체로 ‘정권교체’ 의견이 50% 근처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 이 대표 지지율은 30% 근처다. 정권이 바뀌긴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 대표는 더 싫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은 비호감 경쟁이었다. 윤석열 후보 지지가 많은 게 아니라,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제 윤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다. 여론조사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건 이 대표 책임이다. ‘이재명 포비아(공포)’라고 한다. 보수세력에 이 대표 집권은 공포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적대 세력을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이재명 포비아’는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이 대표의 꼼수도 ‘신 스틸러’다. 이 대표 재판과 윤 대통령 탄핵이 시간 경쟁을 벌인다. 이 대표는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탄핵하고,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선거가 시작되면 처벌이 어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되자 검찰이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니 보수층 유권자는 탄핵보다 이 대표 재판을 먼저 끝나야 한다고 매달린다. 탄핵하더라도 당장은 지연시켜야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게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6-3-3원칙(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라 2023년 9월 끝났을 재판이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 탓에 아직도 2심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4일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위헌이라고 제소했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한 조항이다. 누가 봐도 지연 꼼수다. 그는 항소심 통지서 수령도 계속 회피했다. 변호인 선임을 두 달 이상 끌었다. 추가 증인도 13명이나 신청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이 법률 조항을 없애는 개정을 추진한다. 이 재판만이 아니다. 대장동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 148명을 법정에서 모두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재판이 빨리 진행되면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 칩거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정치인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9

진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김진국 고문 아직도 진실이 살아 있을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려운 시대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2017년에 쓴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라는 책은 한국에서까지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때 이미 미국에서도, 진실이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그렇다. 매킨타이어는 “과거에도 진실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는 존재”했지만, “현실을 정치적 상황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런 위기를 대놓고 전략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진실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는…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매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주장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꾼은 허위사실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그것을 믿는 상황이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진실을 찾기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게 관심이다. 정말 진실을 찾아내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거짓’(대안적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진 사회에서는 진영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보수건 진보건, 모든 주장이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라도 자기 진영과 다른 말을 하는 순간 ‘반대편’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린다. 모두 홍길동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믿어버린다. 조국 사태가 그랬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대안의 진실’ 속에 살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 왜 조국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하나. 조국 수호(혹은 타도)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 사명이라도 된다는 건가. 정말 고약한 세상이다. 요즘 기준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친윤’ 아니면 ‘반윤’이다. 윤 대통령이 언제부터 보수의 중심이었나.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기준이다. 그에게 유리한 말을 해야 진보고,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손님들에게 “요즘 신문과 방송은 너무 편향돼 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저 주변에서 시위하는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언론 대신 유튜브에 빠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유튜브 냄새가 난다. 개인 미디어가 전통 미디어를 뒤집기 시작한 것은 팟캐스트 ‘나꼼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이던 2007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조롱으로 반이명박 세력의 배설 욕구를 만족시켰다. 이제 진보 진영을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들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큰절을 했다. 보수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인데도 개인 유튜버만 골라 인터뷰했다. 김건희 여사가 유튜버에게 그렇게 당했는데도, 윤 대통령도 유튜브만 본다.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 보고보다 극단적인 일부 유튜버의 주장을 더 믿는다. 기자 활동을 시작할 때 복잡한 문제는 돈의 흐름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복잡한 민·형사 사건뿐만 아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과거 복잡한 파벌정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도 돈이었다. 탄핵 국면에서 한 유튜버는 ‘슈퍼챗’으로 하루 만에 3천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자극적인 말을 할수록 돈이 쏟아진다. 서부지원 난동 때도 유튜버가 앞장서서 돌격했다. 갈등이 심하고, 민주주의가 무너질수록 흥분한 구독자가 돈을 쏜다. 진영마다 다른 ‘대안의 세상’에 산다. 민주주의가 위기다. 답이 없다. 유튜버는 돈을 벌려고 떠들어도, 유권자는 냉정해야 한다. 대안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알 일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윤 대통령이 재판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은 상대편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는 거울로 써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2

남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에 자만하지 마라

김진국 고문 여론조사가 이상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오차 범위 안이니까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당장 망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한 건 의외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9%, 민주당은 36%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 국민의힘이 24%로 바닥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48%였던 민주당은 12%포인트가 떨어졌다.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는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주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35%, 민주당은 33%였다.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가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실수는 순식간에 저지른다. 선거는 그 한번의 실수가 결정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거부감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은 유권자도 많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비호감을 피하려고 떠도는 표다.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찍은 사람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유권자가 많다. 비상계엄의 중심은 윤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비상계엄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뚱딴지같이 터졌다. 법리 다툼을 벌이고는 있지만, 국민 마음속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이 내려졌다.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민주화 성과를 한꺼번에 허물었다. 한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뒤 윤석열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 대상이 옮겨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압도적 1위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조급한 언행, 절제하지 않는 발언, 집권당이 다 된 것 같은 오만함이 그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이 대표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계엄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느냐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좋으냐 싫으냐로 여론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열성 지지자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어느쪽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상황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을 호감도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탄핵의 강’을 건너느라 고생했다. 민주당은‘조국의 강’을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리’, ‘배신’ 논란도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성공해 조국의 강이 옳은 길인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결집은 강력하지만, 강성 지지자만으로는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반성과 혁신보다 ‘의리’를 선택했다. 책임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몫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여야가 협력해 가능했다. 보수·진보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쓰겠다”고 선전했지만, 가장 폐쇄적으로 인선했다. 함께 촛불혁명에 성공했는데, 보수 세력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리품을 독식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대 세력은 몰아냈다. 대법원장까지 ‘적폐’로 몰았지만 모두 무죄였다. 진영정치의 골을 깊이 팠다.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았다. 검찰총장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동이 이번 탄핵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저하게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후보 때보다 더 크다. 남의 실수로 얻은 표는 내 표가 아니다. 여도 야도 돌아보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남의 실수로 얻은 득점에 자만할 때가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9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파고드는 표현을 잘했다. 그는 여러 유행어를 남겼다. 가장 유명한 게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그 이전 ‘로맨스와 스캔들’이라는 비유가 있었다. 이문열의 ‘구로아리랑’(198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는 ‘내로남불’ 정부라 불렸다. 검찰총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만 본다. 성경에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적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야당의 입법 독주로 이재명 정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화가 난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고, 독재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도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해, 이재명 대통령은 탄핵소추되고, 수사받게 됐다.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비상계엄이 성공했기를 바랄 건가. 그래야 나라가 잘 됐을까. 그게 민주주의인가. 나훈아 식으로 “니는 잘했나”라고 빈정댈 건가. 물론 이 기회에 잇속을 챙기려는 민주당 태도도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표 재판과 속도 경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정략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수사가 어려워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야당 총재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당선 이후 모두 취소됐다. 그러니 오히려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보수 세력도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건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40~50년 뒤로 돌렸는데도, 이대표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옮겨가면서 여론이 뒤집힌다. 보수 세력은 민주당이 탄핵을 서두는 이유가 선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의심한다. 진보 세력은 윤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서 탄핵과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의심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선거를 앞당기는 게 목표겠지만, 야당 지지자가 모두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중도층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길이 열릴까 봐 두려워한다. 헌법재판소 심리 정족수는 7명이다. 한때 국회 몫 3명을 임명해 주지 않아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없었지만, 헌재 스스로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면서까지 심리를 이어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6명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추천 2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9명 중 8명을 채웠다. 그런데 4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한다. 두 사람은 대통령 추천 몫이다.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돼 후임 임명이 어렵다. 헌법재판관 6명이 남는다. 다시 심리 정족수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2명이 퇴임하면 남은 6명이 모두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기각된다. 최근 국민의힘이 추천한 재판관까지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추천 2명과 국회 추천 몫 1명은 공석이다. 국회 몫 한 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역지사지해 보자. 탄핵을, 수사를,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를 오래 끄는 건 국정에 큰 타격이다. 그렇더라도 논란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재명 포비아’ 때문에 탄핵 심판과 수사 자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권은 수시로 교대한다. 그때 민주당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마비시켰을 때를 생각하라. 역사는 반복된다. ‘내로남불’을 생각하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2

O. J. 심슨은 돈도 명예도 다 잃었다

김진국 고문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는데 1차 실패했다. 윤 대통령이 경호처와 경호부대를 동원해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계엄이나 마찬가지로 TV로,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해외에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한남동 일대를 시위군중이 점령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나라 망신이다. 1994년 미국 LA 경찰이 한 살인 혐의자가 차로 도주하는 것을 추격하는 상황이 중계됐다.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은 물론 지상파 방송들도 생중계했다. 방송국은 헬기까지 동원했다. 한국 TV도 CNN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속도로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서 곧 그를 체포해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O. J. 심슨이다. 그와 이혼한 전처와 식당 종업원이 피살된 채 발견됐고, 혈흔을 비롯한 여러 증거가 그를 지목하고 있었다. 검찰이 소환한 날 친구에게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이틀 뒤 경찰이 그를 찾아냈으나 도주극을 펼쳤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건 그가 무죄 평결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는 300만~600만 달러(약 44억~88억 원)로 쟁쟁한 변호인들을 고용했다. 통계와 확률까지 동원해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다. 뒤에 그는 탈세로 체포되기도 하고, 강도 혐의로 33년 형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다. 심슨이 떠오른 것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말 때문이다. 그때 비싼 수임료를 챙긴 변호인들이 온갖 요설로 배심원을 헷갈리게 했다. 이번 사건은 온국민이 TV로 지켜봤다. 수사당국이 발표한 것이라면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국회를 포위하고, 정치인을 체포하기 위해 나섰던 특수부대 사령관들이 직접 TV에서 증언했다. 변호사들의 현란한 법 논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으로 판단할 때 헌법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위기 시 나라를 보호하라고 계엄령을 발동할 권한을 부여했다. 국회에는 해제권을 주어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런데 무력으로 국회를 무력화해 헌법상 권한인 해제를 막았다. 헌법 질서를 파괴했고, 무력으로 국민이 위임한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했다. 명백한 친위쿠데타다. 그런데도 물리력에 막혀 법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심슨보다 더한 사례로 인용될 게 뻔하다. 당당하다면 법정에서 다투는 게 옳다. 부하를 희생시키고, 국론과 국민을 쪼개고, 국정과 국법 질서를 마비시키고… 그런다고 없는 일이 될 수 있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를 보는 것같아 낯이 뜨겁다. 수사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어이가 없다. 특정인을 위해 졸속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다 이런 꼴이 됐다. 그렇지만 혼선이 생기면 결국 누가 정리해야 하나. 법원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도 법원의 영장마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물리력으로 집행을 막았다.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의 예외로 했다는 부분이다. 보안시설 책임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이다. 관저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 본인이다. 법원이 영장에 예외를 명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체포할 수 없다. 말장난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출두해 조사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힘없고, 불쌍한 국민만 법을 지켜야 하나. 그게 나라냐. 기묘사화 때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을 써놓고, 조광조를 모함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반복하면, 믿고 싶은 사람은 빠져든다.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이 뒤집어놨다. 이제 와 부정선거 탓으로 돌려 그때의 행동을 칭찬이라도 받을 건가. 부정이라는 핑계로 선거 결과를 투표가 아닌 총칼로 뒤집으려는 건가. 선거 부정이 있었다면 법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더 큰 불법행위를 한다는 건 명분이 되지 못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법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불법으로 무장 군인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이번 사태도 숨어서 큰소리칠 게 아니라 법정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포기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05

‘반민주세력’ 간판이라도 걸고 싶은가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가 보낸 서류를 계속 거부한다. 지난 주말까지 다섯 차례다. 수사기관들의 출석 요구서도 받지 않는다. 대통령 비서실도, 관저의 경호원들도 ‘수취’를 거절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란 직위 때문에 경호의 벽을 넘지 못한다. 계엄 해제 직후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고 한 약속은 팽개쳐 버렸다. 당당하지 못하다. 쪼잔한 잔꾀로 배달원을 돌려보내는 분이 우리 대통령이라는 게 창피하다.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쓰는 게 왜 나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만 가진 특권을 활용해 꼼수를 부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공정’을 실현할 대통령으로 기대했던 국민으로서 허탈하다. 법적 소송만 해결하면 끝나는 일인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신뢰다. 국민이 믿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끝난다. 윤 대통령의 처신도 개인적으로 초라하고 궁상맞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를 지지한 국민까지 참담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내란죄 소송이 걸려 있다. 말을 아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TV카메라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았나. 그 많은 말 가운데 정작 국민이 기대한 사과는 없었다. 계엄 모의자를 제외한 온 국민이 충격받았다. 역사가 다시 1960년대, 80년대로 역주행했나 당황했다. 무장한 군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는 없었다. 반성하는 말도 없었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정직하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의 지시를 받은 지휘관들의 증언과는 전혀 상반된 변명만 늘어놨다. 모든 책임을 정적에게, 부하에게 떠넘겼다. 5천만 국민이 TV로,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다 지켜봤다. 이제 와서 그것을 어떻게 뒤집겠다는 건가. 국민의힘은 또 어떤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데 동참한 동료의원을 ‘색출’하겠다고 한다. 다시 군사 독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인가. 스스로 쿠데타 세력이라고 자복하는 꼴이다. 그 입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나.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윤상현 의원은 그래야 의리 있다고 하고, 표도 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게 의리로 따질 문제인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흔들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릴뻔했다. 아무리 자기 편이라도 감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데…. 근대화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 체제를 뒤집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보수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비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보수라야 지킬 가치가 있다. 무조건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왕조시대나 북한, 조폭들이 더 잘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먼저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줄 건가. 당장 우리 편의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면 쓰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곪은 것은 짜고,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래야 건강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 어느 정당이나 연상되는 상징이 있다. 보수 정당에 쿠데타 정당, 군사정부 정당, 반의회주의 정당이라는 낙인이라도 찍고 싶은가. 야당을 외면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당 대표는 모두 쫓아냈다. 쿠데타를 위한 준비로 보지 않겠나. 선거 부정 의혹이 있다면 헌법 질서 속에서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 부정선거가 있었던들 무력으로 탈취한 서버는 증거로 쓸 수도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게 제정신인가.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폭락했다. 이제 국민의힘 지지율마저 민주당의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여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직도 모를까. 내 국회의원 배지만 지키면 된다는 건가. 소수 극우세력끼리 의리로 똘똘 뭉쳐 봐야 무엇을 할 수있나. 어차피 곧 치러야 할 대선은 어떻게 할 건가. 이러다가 다음 총선은 개헌선까지 내주기 십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22

잘못된 한 사람을 따라가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 대통령이 잇달아 탄핵 심판을 받는다. 보수 유권자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믿고 뽑아 놓았더니 보수 세력을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러다 차기는커녕 차차기도 기대를 접어야 할 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가까운 사람을 너무 믿은 탓이다. 직접 돈을 착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본인이 자초했다. 비상계엄 상황을 만들어 선포했다. 법에 정해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국회를 폐쇄하려 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고, 정치인들을 감금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조국 전 의원은 12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심각한 상태다.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는 10년 동안 공직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엉뚱한 일을 벌여 모든 걸 망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보수인사도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미국 검찰은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모두 취소했다. 이런 큰일을 저질러놓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평균적인 국민 정서와는 공감하지 못한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도는 11%였다. 85%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수 세력의 기반인 대구·경북만 놓고 봐도 지지도가 16%에 불과하다. 비상계엄이 내란이라는 의견이 71%, 탄핵하라는 응답도 75%였다. 대구·경북에서도 62%가 탄핵에 찬성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하야(下野)는 없다며, 차라리 탄핵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85%가 잘못한다고 답하는데, 탄핵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라고 요구하는데, 누구와 싸우겠다는 건가. 윤 대통령은 14일 저녁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고도 소송으로 이기려는 생각이 기가 막힌다. 개인적인 망상을 위해 보수 세력을 궤멸시키려는 꼴이다. 그런데도 이에 동조하고, 부추기는 정치인들은 또 뭔가. 목적이 옳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 믿지 않아도 그렇게 합리화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엄창록 씨를 모델로 한 ‘킹메이커’란 영화가 그런 내용이다.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할 만큼 대단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자기가 권력을 쥐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로 무엇을 하려 했나. 선거를 하면 국민이 표를 줬을까. 선거가 없는 정치체제를 국민이 용납할까. 철부지 같은 망상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 있다. 판사들은 확실한 증거라도 그것을 얻는 과정이 잘못됐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번거롭고 불편해도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쉽게 부서진다. 법조용어에 ‘별건(別件)수사’라는 말도 있다.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다른 혐의를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방식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그런 식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세우려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법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참고, 대화해야 한다. 그는 탄핵소추 뒤 담화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헛웃음이 났다. 그가 취임 초, 아니 그 뒤 어느 한순간이라도 ‘숙의와 배려의 정치’를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 여당 정치인도 피의자 보듯 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 충성하고, 그 외 인물을 논 속의 피 취급해 모두 뽑아버리면 미래가 없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보수정당 후보가 된 것은 후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또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가는 한 사람에게 끌려다니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15

닉슨을 따라가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산됐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해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한때 탄핵안이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일단 탄핵을 저지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결과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대통령 선거가 촉박하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앞으로 5개월 정도면 확정판결이 나온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만 확정되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기록을 남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염치가 없다. 표를 달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백전백패다. 국민의힘 계산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버텨서 해결될 일인가.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정치인의 당리당략에 있지 않다. 국민의 이익,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손익으로 따져보면 윤 대통령의 명분이 너무 밀린다. 북한 위협이라느니, 야당의 폭주라느니 하는 건, 국회를 봉쇄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헌법이 그렇게 막아 놨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비상계엄’은 너무 즉흥적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밀 유지를 해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격노’, ‘폭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듣는다. 정신적 불안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면서 일을 도모하는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하다. 군 통수권자의 심리적 불안은 정말 위험하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나라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과거 독재자들이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잘 써먹던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계엄을 발동한 데 불쾌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인 16%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계엄 발령 뒤 조사한 표본은 지지도가 13%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력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를 총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후진국 독재자에게나 있는 행태다. 민주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는 자폭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법과 예산을 틀어쥐고, 발목을 잡아 왔다. 이제 민주당의 그런 무리수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라를 이런 꼴로 2년 5개월 방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망쳐야하나. 무슨 낯으로 다음 정권을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집무실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 야당이 반대해도 설득해 국정을 이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득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건 핑계다. 잠시 탄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건가. 왜, 무엇을 위해.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 탄핵에 앞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닉슨의 길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면받았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다. 국회도 함께 조기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8

정치권의 치킨 게임, 책임은 안 지나

김진국 고문 미친 짓이다. 여의도에 정치는 없다. 상대를 죽이려는 전쟁만 있다. ‘치킨게임’이 있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마주 달린다. 그대로 달리면 두 자동차 운전자가 모두 죽는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운전자가 옆으로 피하면 ‘치킨’(겁쟁이라는 뜻)이 된다. 둘 다 버티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런 미친 게임은 없어졌다. 학술용어로나 쓰인다. 그런 치킨게임이 여의도에서는 벌어진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타협과 양보가 미덕이다. 여의도는 완전히 거꾸로다. 공멸뿐이다. 문제는 국민이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을 한 사람이 책임진다. 정치인들의 치킨게임에서는 본인들이 멀쩡하다. 마주 달리는 건 정치인들인데, 피를 흘리는 건 국민이다. 무슨 나라 꼴이 이 모양인가. 솔로몬의 재판에서는 자기 욕심보다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진짜 부모다. 여의도와 용산에서 국민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법대로’가 문제다. 상앙과 이사가 한국 정치를 장악했다.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여당 대표도 모두 법률가다. 법은 정치를 풀어가는 마지막 수단이다. 정치로 풀 것을 법에 넘기면 직무 유기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오기다. 양보하느니 함께 죽겠다는 무모함이다. 법은 최소한이 규칙이다. 법으로 다 풀 수 없다.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 ‘내 권한’만 내세운다.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건 말건, 후보가 부적격이라고 하건 말건, 임명장을 준다. 대통령이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절대다수 야당도 아무 고민 없이 무조건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견을 들어보려고도 않는다. 법안을 결정하고, 청문회를 결정하고, 증인을 소환하는 일은 혼자서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배짱이다. 미국 대통령은 배짱이 없어 야당 의원에게 전화하고, 백악관으로 초청해 밥을 먹나.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법률과 예산도 통과하지 못한다. 애먼 국민만 피해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논란이다. 언제는 대통령이 당무에서 손을 뗐었나. 민주당 정부라고 달랐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여론도 무시한다. 지지율이 바닥을 쳐도 모르쇠다. 야당은커녕 국민에게 사과도 해명도 거부한다. 탄핵하려면 해보라는 배짱이다. 국민의힘 대표들을 줄줄이 쫓아냈다. 권위주의 시절 당총재를 능가한다. 민주당은 한술 더 뜬다.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무더기로 탄핵 소추하더니, 이제 감사원장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입에 올리는 것도 조심하던 탄핵이 감초 다루듯 한다. 21대 국회에서 13건, 22대 국회 들어 11건을 소추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그렇지만 국회가 소추만 해도 직무가 정지된다. 엄연한 사법 방해다. 감사원이 지난 정부가 벌인 일들을 감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제통계 조작, 사드 배치 지연, 북한 GP 철수 부실 검증, 탈원전정책…. 감사원의 국정 바로잡기에 제동을 걸려고 또 탄핵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핑계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일을 하기도 전에 임명하자마자 바로 탄핵을 추진했다. 이제 직무대행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2인 방통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국회몫 방통위원은 추천하지 않는다. 방통위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다. MBC 등 공영 방송의 운영체계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유지하겠다는 욕심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대통령비서실·검찰·경찰·감사원 특활비를 모두 삭감했다. 정부 예비비도 절반인 2조 4천억 원을 깎았다. “헌법이 보장한 대로” 심사했다고 한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의 임원들이 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이 지나도 버티고 있다.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가는데, 공공기관은 왼쪽으로 간다. 정부가 마비되면 대통령 책임이다. 법대로만 하면 책임이 없나.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안이 줄줄이 헌재에서 기각됐다. 정부 기능이 마비된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목숨을 건다. 국민을 걸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정치인은 비겁하다. 무모한 탄핵이 기각돼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