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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

김진국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7일 별세했다. 오늘 발인한다. 3김 내외가 모두 떠났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손 여사의 내조(內助)를 모범 사례로 꼽는다.손 여사는 YS 재임 기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다른 영부인들과 달리 고위직 부인들 모임을 모두 없애버렸다. 옷의 상표도 모두 떼고 입었다. 대신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 여직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챙겼다.손 여사는 1951년 결혼 이후 평생 YS의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필요할 때는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83년 YS가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할 때 외신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전파한 사람이 손 여사다. 90년 3당 합당 때는 최형우 전 의원 등이 합류를 거부하자 설득한 사람도 손 여사다. 그런 위기를 제외하면 상도동 집에서 매일 100명 가까운 비서와 방문객에게 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며 조용히 내조했다.‘김영삼 회고록’에는 93년 2월 24일, 청와대로 들어가기 하루 전 가족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YS는 “가장 큰 걱정이 친·인척”이라며 “이상한 사람들이 속을 다 내어줄 듯이 접근해서 너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개석 대만 총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총통이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며느리가 밀수와 사치를 일삼자 보석상자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그 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살했다.그런 YS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들 현철씨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 중 아들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손 여사는 한 번도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은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영부인도 내조형에서 전문가형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영부인을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영부인은 성공할 수 없다.이 책이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은 매리 링컨(16대)은 장갑을 사 모으는데 몰두했다. ‘대통령 부인’(Mrs. President)이라는 서명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줄리아 그랜트(18대)는 사치스러운 오락과 환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음성적인 자금을 모았고, 영부인의 권력을 이용해 부패 방지조사를 막았다. 제인 피어스(14대)는 사고로 죽은 아들과 대화한다며 백악관에서 강신(降神)회를 열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의 정치적 운영을 공개적으로 간섭해 영부인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우리는 아직 영부인이 설치면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씨로부터 13억 원을 받아 수사받자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라오스에서 대통령을 앞질러 행진한 것 등으로 비난받았다.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특검을 추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양평을 방문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격했다.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가 총선 최대 악재가 될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사과 대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그대로 한 위원장이 물러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혜경궁김씨’ 논란이 있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직자에게 음식을 대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공무원을 개인비서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에 ‘배우자실’이란 조직을 만들고, 부실장을 단수 공천했다 번복하는 소동도 있었다.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선출된 배우자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남편의 공적 활동을 간섭하거나, 자기가 선출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모범을 보여야 다른 부인의 일탈도 막을 수 있다.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0

선거법을 의원들에게 맡겨놓아야 하나

김진국 고문 참 어이가 없다.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달 29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4·10 총선을 겨우 41일 앞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에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바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다.워낙 선거법 개정이 늦어 문제가 생기자 2015년 이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18대 총선(2008년) 때는 선거 47일 전, 19대 총선(2012년) 때는 선거 44일 전에 선거구가 정해졌다. 이 조항을 만든 뒤, 20대 총선(2016년)에는 42일 전, 21대 총선(2020년)에는 39일 전으로 더 늦어졌다.선거구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소선거구제로 갈지, 비례대표 선출을 준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선거법의 근본 틀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떻게 되든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된다. 지역구를 옮기든지, 없어져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정치 신인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연고를 끌어대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지역구가 바뀌면 의도하지 않게 ‘철새’ 꼴이 된다. 처음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잃는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선거구로 바뀌면, 돈만 들여 헛고생한 게 된다. 그렇다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다. 현역 의원들만 유리하다.가장 비겁한 것이 위성정당이다. 4년 전에는 촉박한 시간에, 처음 도입한 제도를 놓고 당황해 잘못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악한 짓인지 잘 알면서 저질렀다. 시간도 충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어떤 선거제도로 갈지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위성정당보다 더 위험한 선택을 했다.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때는 봉쇄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해하기 쉽게 ‘문턱조항’이라고도 한다. 일정 정도의 표를 얻지 못하면 의석을 주지 않는다. 극단주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는 독일은 문턱이 5%로 높다. 나치를 경험해 극우정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우리는 3%, 혹은 지역구 의석 5석이다. 2%를 넘으면 한 석 줘야 하지만 3%로 막아놓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 좌파들을 끌어모아 위성정당을 만들고, 비례 의석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도 단일화로 밀어준다. 민주당이 보증은 섰지만 어떤 후보가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책임도 안 진다. 애플에서 조악한 휴대폰에 아이폰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폰과 함께 팔아놓고, 성능도, 에프터서비스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그런데 이건 무책임정치 아닌가.선거구 획정 과정도 기가 막힌다.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은 서울·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씩 늘리게 돼 있었다. 나머지는 해당 시·도 안에서 조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전북 대신 부산에서 1석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버텼다. 결국 만만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 떼 전북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났다.지역구 국회의원 254명을 시·도별 인구 비율로 나눠보면 경기(-7석)·인천(-1)에서 8석을 빼 서울(+2석)·부산(+2석)·울산(+1석)·광주(+1)·전남(+1)·전북(+1석)에 나눠준 모양새다. 서울이 인구 19만5507명 당 의원 1명이다. 이것을 지수 100이라고 할 때, 경기는 116.2, 대구·경북은 100.8(19만7009명), 광주·전남·북은 90.9(17만7637명)이다. 서울이나 대구·경북보다 의원 10%를 더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면서까지 지역구를 지킨 전북은 89.7(17만5292명)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은 인구로 의원을 만든다. 서울보다 지수가 높은 건 경기(116.2)·인천(109.6)·제주(115.0)와 충청(101.4), 대구·경북(100.8)이다. 선거법을 의원들이 주무르게 하는 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03

국민을 버리면 의사도 없다

김진국 고문 살아가면서 의사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의사는 천사와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의사가 고맙기 짝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의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어 첫 번째 주거 조건으로 병원을 꼽겠는가.필자도 그동안 많은 의사를 만났다. 환자로서는 물론이고, 이웃으로, 친구로,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만났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훌륭했다. 어려운 사람을 잘 돕고, 보이지 않게 기부하시는 분이 많다. 매년 해외로 의료 봉사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분들은 하나 같이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특정 직업을 싸잡아 개념화하는 것은 무리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그런데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그 배후로 보이는 의사들의 발언은 내가 알고 있는 의사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혹스럽다. 의사들은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인재들의 집합체다. 요즘은 대학 입학 때 성적순으로 전국의 의대 정원부터 먼저 다 채운다고 한다. 그렇게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 다른 어떤 과정보다 오래, 힘들게 공부한다. 그런데 특권 의식에 절어 있는 집단으로 모니 얼마나 섭섭할까 싶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의사 증원에는 민주당이 더 강경하다. 보수 정권과 합리적 대화가 필요했다. 적어도 국민 여론을 살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일반 국민과는 다른 사람, 다른 집단으로 고립시켰다. 폐쇄된 엘리트 과정만 걸어와서 그런지 공감이 부족하다. 의사의 높은 소득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 스스로 여론과 멀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국민은 의사에게 최고 엘리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의사 대표들이 쏟아낸 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한 수재의 이미지만 남겼다.김택우 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면허 정지 경고에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도전했다니, “버릇없이 감히 의사에게 대드느냐”는 말로 들린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막말하더니, “아주 급하면 외국 의사를 수입하라”라는 말도 했다. 그는 자신들을 ‘매 맞는 아내’로 정부를 ‘폭력 남편’으로 비유하기도 했다.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좌훈정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는 박민수 제2차관을 겨냥해 “나이가 비슷하니 말을 놓겠다”라면서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되느냐”고 폭언했다. 전공의 발언은 더 나갔다. 원광대 산본병원 전공의는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라고 주장했다.전공의들이 주 80시간씩 일하며 힘들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힘들다면 인원을 늘려달라는 게 정상 아닌가. 대학병원에 전공의 아닌 교수를 더 늘리려 해도 의사가 더 있어야 하고, 전공의를 늘려 일을 나누려 해도 증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힘든데 몰라주느냐. 증원하지 마라”라고 한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하는 논리적인 말이라고 이해되나. 국민은 “우리가 힘들게 이 자리에 왔으니 이제 충분히 보상받도록 의사 수를 늘리지 마라”는 요구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다 그런 건 아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주 80시간씩 일하느냐”면서 “4~5억 벌다가 3억 벌면 죽느냐”고 꼬집었다. 천은미 교수도 “국민을 설득하려면 환자 곁에 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지도부가 문제다.사회 지도층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발전을 고려하고, 추구해야 한다. 힘이 세다고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거나, 머리가 좋다고 다른 사람 몫까지 뺏어가면 야만 사회다. 힘이 있어도 자제하고, 배려할 때 인정하고, 존경한다. 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부를 이길 수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25

‘이재명의 민주당’이 총선 목표인가

김진국 고문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52일 뒤면 총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마음이 급한지 급발진한다. 그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라고 말했다. 물갈이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어서다. 혁신하겠다는 것이니 박수를 받을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깝지 않은 사람은 자르고, 자기 계파를 내리꽂아 당을 장악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면 다르다. ‘비명’(非이재명)계는 그렇게 의심한다.민주당이 대선에서 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책임은 후보자 본인 몫이다. 국민은 후보를 보고 표를 찍었다. 민주당에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 대표 책임론은 없다. 몰래 만든 대선 백서에도 이 대표의 책임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후보를 제외하면 전임 정부 책임도 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투표에큰 영향을 미쳤다. 국정을 잘 운영했으면 국민의 다시 표를 줬을 테고, 정권을 재창출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그런데 최근 거론된 책임론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보가 될 기회를 왜 주었느냐고 따진다. 왜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임기 중 파면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나, 불공정, ‘내로남불’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책임을 따지는 게 아니다.윤 대통령이 여론 지지를 받았던 건 검찰총장이어서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불공정·내로남불과 대비돼 ‘공정’ 아이콘이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만든 ‘공로’ 내지 ‘책임’은 전 정부 인사 가운데 조국·추미애 전 장관에게 가장 많다. 유인태 전 의원이 지적한 대로다.그런데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먼저 꺼낸 사람은 바로 추 전 장관이다. 그는“석고대죄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두 비서실장(임종석·노영민)이 총선을 나온다고 한다”라면서 “책임감과 정치적 양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출마하지 말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문 전 대통령 책임까지 거론했다.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도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맞장구쳤다. ‘친명’ 진영의 의견인 셈이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을 방문해 “우리는 명·문(이재명·문재인)정당”이라는 말을 끌어냈다. 그러나 인사치레에 그쳤다. 공천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가고 있다.‘올드보이’를 밀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올드보이는 누구를 말하나. 임종석 전비서실장은 올드보이고, 박지원·정동영·추미애 전 장관은 ‘영보이’냐고 묻는다.여론조사도 의심받고 있다. 이 대표는 당 공식 조사 결과라며 문학진 전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문 전 의원은 “당 후보 측근을 점찍기 위한 조작”이라며 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워낙 미덥지 않지만, 조사기관 자체도 불투명하다. 하필 곳곳에서 이 대표의 측근들이 내리꽂히고 있다. 이 대표가 여기저기 직접 전화해 사퇴시킨 것도 말썽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처신이다.도덕성 문제는 더 큰 걸림돌이다. ‘새 술’을 찾는 명분은 혁신이다. 도덕성이다. 그러나 집에서 돈다발이 발견돼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은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 대표도 재판 중인데 출마한다. 노 의원을 포기하라고 설득할 명분이 없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없다.이언주 의원은 7년 전 친문 패권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갔다. 한때 극우성향까지 보였다. 이제 “함께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하자 이 대표가 받아들였다. 기준이 모호하다. 친문 부활을 막자는 건지,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건지.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한국 선거에서 양당의 공천은 당선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선 보증수표다. 진영대립 탓이다. 한 사람의 방탄, 대권욕을 위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18

결정장애인가, 노회한 전략인가

김진국 고문 총선이 65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 달 남짓이다. 그런데 선거법도 선거구도 준비가 안 돼 있다. 어디로 갈지 아직 모른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저울질만 하기 때문이다.공직선거법에는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해놨다. 당연히 그 틀인 선거제도도 그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다 이유가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이해관계가 분명해진다. 반발도 크다.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을 때 규칙을 정리해놓으라는 뜻이다.더구나 이번에는 개정 이유가 분명하다. 2020년 총선은 사기극이었다. 이유야 어떻건 법에서 정한 규칙의 취지를 거꾸로 뒤집었다. ‘준연동형’은 국민이 준 표의 비율에 가깝게 국회 의석을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원이 많으면 비례대표는 적게 주고, 반대의 경우 비례대표를 더 주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내세워 작은 정당들이 가져갈 의석까지 싹쓸이했다.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고쳤어야 했다. 연동형이 살아나도록 위성정당을 막든지, 아니면 연동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무엇이 유리한지 계산기만 두드렸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고수했다. 병립형(竝立形)이라는 뜻은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따로 간다는 말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얼마를 얻었건 비례대표를 결정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 정당투표에서 얻은 비율만큼 비례 의석을 배분한다. 연동형(連動型)은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서 지역구 의석만큼 빼고 비례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 의석을 적게 받고,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으면 비례 의석을 더 받는다.21대 총선에서 서울지역을 예로 들어 보자. 민주당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53.63%,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는 42.08%였다. 득표율대로라면 각각 26석과 21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41석(83.7%)과 8석(16.3%)을 얻었다. 민주당은 15석을 더 가져갔고, 국민의힘은 13석이나 손해를 본 셈이다.서울의 비례 의석을 20석이라고 가정하면 전체의석은 49석. 득표 비율대로라면 민주당은 37석, 국민의힘은 29석이다. 연동형으로 비례 의석을 나누면 민주당은 이미 41석을 얻었으니 한 석도 못 받고, 국민의힘은 20석을 모두 가져간다. 결과는 41대 28이 된다.문제는 위성정당이다. 위성정당 때문에 이런 의도가 빗나갔다. 국민이 투표한 결과에 가까운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연동형>준연동형>병립형>위성정당을 못 막는 연동형.그러니 준연동형을 도입한 명분이 오히려 후퇴했다. 병립형보다 못하다. 위 순서에서 뒤로 갈수록 거대 양당이 가져갈 의석이 많아진다. 개정 방향은 분명하다. 위성정당을 막는 조항을 추가해 연동형의 취지를 살리거나,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병립형을 고수한다. 군소정당에 의석을 나눠주면 결국 정의당 같은 민주당의 우당(友黨)만 생긴다는 생각이다. 이준석 신당도 반갑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을 막아 준연동형을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병립형으로 돌아가거나 위성정당이 가능한 현행법을 방치하는 것이다.사실 위성정당을 금지해도 비례 의석을 받을 민주당 우당(友黨)이 많다. 야권비례연합정당 제안도 있다. 군소정당과 비례연합을 하면 수도권 선거 등에서 공조해 진보 표를 결집할 수도 있다. 비례에서 양보하는 이상으로 지역구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보수진영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고민한다. 대선만 생각한다. 이낙연당이나 지난 대선에서 당락을 바꾸는 표를 잠식한 정의당에 의석이 가는 게 싫은 모양이다.선거법은 합의 처리가 불문율이다. 패스트트랙에 태울 시간도 없다. 국민의힘이 병립형을 고수하는 한 법 개정이 어렵다. 이 대표가 책임지고 결단해야 한다. 결정 장애인지, 못 이긴 척 더 많은 의석을 노리는 욕심인지 알 수가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04

선거를 치르려면 돌팔매라도 맞아라

김진국 고문 국민 10명 중 7명(69%)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엠브레인 퍼블릭 조사다. 윤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도 63%가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는 뉴스가 터지자 보수층이 경악했다. 이러다 총선이 쫄딱 망하게 생겼다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도 되는 일이 없었다. 국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총선을 기대했는데, 그것마저 말아먹을 분위기다.바둑을 둘 때 훈수꾼이 되면 자기 급수보다 2, 3급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막상 돌을 쥐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욕심이 앞선다. 실수로 놓은 돌에 집착하게 된다. 이미 저질러놓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다. 어린아이는 본성에 따라 움직인다. 철이 든다는 건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 9단이 별 건가. 욕심과 집착, 사적 인연에 얽매여 사리 판단을 흐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 9단이다.이번 사태에서 가장 노발대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KBS에 나와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고 다니느냐는 말을 할 사람은 김 여사뿐”이라고 말했다. 친윤계 의원들이 “피해자에게 왜 사과하라고 하느냐”, “사과하면 민주당 공격을 받아 선거에서 불리해진다”라는 말을 흘릴 때도 김 여사가 떠올랐다. 이 바람에 그동안 사사건건 거론된 영부인 국정 개입설을 더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고 믿게 됐다.윤 대통령은 조만간 KBS와 대담하면서 ‘명품 백’에 대해 해명할 생각인 모양이다.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려 있던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규재TV’ 인터뷰가 생각난다. 박 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은 하지 않고 유튜브 방송과 대담한 건 참으로 엉뚱했다. 스스로 조롱거리가 됐다.기자회견을 거부한 것은 대통령의 답변이 궁색하다고 인정한 꼴이다. 유튜브 방송을 선택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고립됐음을 보여주고, 상황을 편협하게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런 지경에서도 귀를 열지 못하고, 극단적 지지자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셈이다. 그러니 사과를 제대로 못 했고, 그것도 여러 번 실기(失期)했다.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자회견 대신 방송 대담을 선택했다. 2019년 5월 KBS와 임기 2년을 정리했다. 그것마저 찬양 일변도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문빠’들은 인터뷰 기자를 공격했다. 퇴임 직전에도 JTBC의 손석희 사장과 대담했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은 문 전 대통령을 ‘별에서 온 사람’ 같다고 했다. 여론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탓이다.기자회견으로 정면 돌파하는 게 옳다. 현실에 눈감고, 칭찬만 들으면 행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옷 로비’ 때 ‘마녀사냥’이라며 화를 냈다. 그러다 보궐선거를 망쳤다.‘명품 백’ 사건은 대통령실이 지적한 대로 비열한 공작이다. 아버지까지 들먹이며 명품 백을 선물해놓고, 그걸 몰래 찍어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니 복장이 터질 일이다. 그러나 불법이냐 아니냐,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는 법정이 아니다. 지극히 공적인 대통령 부부와 국민 사이의 문제다.더구나 이 폭로가 없었다면 영부인은 최재영 목사에게 대북 강연도 시키고, 대북사업도 도와주었을 것 아닌가. 대통령 부인이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과 그렇게 긴밀히 접촉하고, 수상한 사람이 몰카를 들고 대통령 부인을 만나도, 방송할 때까지 몇 개월을 모르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아니면 더 큰 일이 터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대담이 아닌 기자회견이어야 한다. 그와 별도로 김 여사까지 직접 사과하면 더 좋다. 선거 이후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돌팔매를 맞지는 못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설명하고, 사과해야 국민의힘이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자신을 비우고 양보할 줄 아는 그런 영부인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28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김진국 고문 자기가 잘해 이기는 선거는 별로 없다. 경쟁상대가 실수해 당선되는 후보가 많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누가 더 비호감인가를 다투는 선거였다. 그러니 실수를 안 하는 게 중요하다. 말 한마디가 전체 판도를 뒤집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입단속을 한다.4월 총선 결과는 어떨 것 같으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수도권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한쪽으로 쏠린다. 조그만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그런데 전체 의석의 절반이 몰려 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바람 방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바람 방향은 늘 바뀐다. 가장 큰 변수는 실수로 만든 악재(惡材)다.슬픈 일이지만 지금 민심을 움직이는 변수도 이런 악재다. 지금 드러난 최대 악재는 ‘영부인 리스크’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명품 가방’도 그중 하나다.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이재명 리스크’다. ‘응급의료 헬기’가 특히 아프다.선거에는 언제나 악재가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악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악재도 잘 대처하면 오히려 호재(好材)가 되는 일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인의 좌익 전력을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말로 뒤집어버렸다. 사상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로 만들었다.거꾸로 악재를 덮고, 만회하려다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을 드러내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거짓으로 거짓을 덮으려다 점점 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성경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면 반전(反轉)이 없다. 노 전 대통령도 사실을 인정했기에 뒤집기가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2년 뒤 당선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테러당한 건 큰 사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처가 잘못돼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테러의 배후에 현 집권 여당이 있다는 틀을 짜놓고 몰아간다. 민주당은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선생 이후 초유의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너무 성급하다.더구나 이 대표가 응급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간 것이 악재가 됐다. 한국은 ‘특권’을 정말 싫어하는 사회다. 조그만 차별도 못 참는다. 보통 사람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응급실을 쇼핑하는 모양을 보여줬다. ‘피해자’가 순식간에 ‘특권층’이 됐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그대로 보여준다.민주당은 이것을 다시 반전시키려고 무리한다. 일반 국민은 이번 사건에서 백범이나 몽양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트 칼 테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경찰은 무엇이 두려워 정치테러 범죄의 진상을 축소하고, 은폐하느냐”고 주장했다. 혹시라도 다른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로 몰아가면 역풍만 일으킨다. 민주당은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단정했다. 사건 직후 문자로 사건 보고를 한 대테러종합상황실 공무원을 고발했다. 소방본부 보고 문서에 ‘목 부위 1.5센티미터 열상’이라고 적혀있는데 ‘1센티미터’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무슨 큰 차이인지…. 피의자의 당적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따지다 직접 공개했다. 공공장소인 현장을 물청소한것, 피습 당시 입었던 와이셔츠가 수술 폐기물과 함께 버려진 것도 은폐라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이재명 대표는 당무 복귀 직후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를 지목한 말이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도 이번 테러와 연결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응급헬기 비난 여론을 포함해 자기 잘못으로 야기된 여론도 ‘펜으로도 죽여보려는’ 정권의 의도라고몰아간다. 열성 지지자라면 몰라도 일반 민심은 따라가기 힘든 비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21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요?

김진국 고문 제3지대 창당이 한창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개혁신당’(가칭),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새로운미래’(가칭), 민주당 탈당파 의원들은 ‘신당미래대연합’(가칭)을 만든다고 한다. 빅텐트나 선거연대, 합당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도 나온다.4월 10일이 총선이다. 석 달도 안 남았다. 선거를 앞두면 신당들이 우후죽순 나온다. 그러나 이번 신당들은 선거용 뜨내기 정당이라기엔 비중이 크다. 당대표를 하던 사람들이 쫓겨나다시피 해서 새 당을 만든다.새 당이 파괴력은 있을까. 선거 판도에 미칠 영향은 크다. 몇백 표만 쪼개도 당선자가 달라진다. 그렇지만 과거 양김씨가 민한당(1980)에서 신민당(1985), 신민당에서 통일민주당(1987)을 만들어 기존 정당을 공중 분해한 사례와는 많이 다르다. 통일민주당에서 김대중 고문이 평화민주당(1987)을 만들어 분당한 것과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만한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에게 일정한 지지 세력이 있지만, 뚜렷한 지역 기반은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특정 선거구에서 1등을 해야 선출된다. 소선거구제라서 그렇다. 비례대표 의원도 소수정당에 돌아갈 몫이 없다. 현행대로 준연동형에 위성정당이 등장하면 거대 정당이 독식한다. 그 이전의 병립형으로 돌아가도 큰 차이가 없다.이낙연 전 총리도 호남 기반을 기대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전망이 밝지 않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과 갈라선 새천년민주당이 호남 기반이었다. 그러나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전남에서 5석, 비례대표 4석을 얻는 데그쳤다. 호남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에 익숙하다. 그나마 기대할 건 총선이 호남 안에서 민주당과의 경쟁이라는 점이다. 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어떻게 발전하느냐다. 총선은 몰라도 차기 대선은 시간이 많다.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들도 나중 일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선거법이 제3당의 설 자리를 결정한다. 선거법도 확정하지 않고, 예비후보를 등록하고, 공천기구도 출범했다. 앞뒤가 바뀌었다. 이런 중요한 규칙을 정리하지 않고 뭉개는 건 거대 정당의 횡포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서울지역 유효투표의 53.5%를 얻었는데 의석은 83.7%(41석)를 가져갔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41.9%를 얻었지만, 의석은 16.3%(8석)만 가져갔다. 경기도에서도 53.9%를 얻은 민주당이 51석(86.4%), 41.1%를 얻은 미래통합당이 7석(13.7%)을 가져갔다. 유권자의 뜻과 달리 더 이득을 보는 당과 손해를 보는 당이 생긴다. 소선거구제의 취약점이다.연동형은 이런 점을 보완하고, 각 정당이 얻은 표에 비례해 국회도 구성하려는 제도다. 소선거구제에서는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나머지 후보들에게 던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다. 당선을 뒤집을 순 없지만, 비례대표 후보까지 몰아주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후보까지 다 먹어 치웠다. 재벌급 부자가 위장 이혼해서, 재산이 한 푼도 없다고 주장하며 극빈자에게 돌아갈 구호 물품까지 싹쓸이 해 간 꼴이다.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을 반드시 금지하겠다. 피해를 본 정당들에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위성정당 방지조항을 넣은 연동형을 공약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 이 대표는 “이상적인 주장으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법 개정은 손 놓고 있다.지역구와 관계없이 정당투표만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병립형’도 아니고, 지난 총선처럼 역비례를 가져올 위성정당을 강행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거대 양당의 ‘탐욕’이다. 정치를 어떻게 탐욕으로 하나. 정치인에게 ‘공정’은 입에 발린 말이긴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탐욕을 드러내도 되는 건가. 우리 정치가 어디까지 추락하려는 건지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14

주가 조작이 아니라 명품백이 문제다

김진국 고문 ‘김건희 특검법’이 총선 쟁점으로 등장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부터 상대 당의 표적이었다. 정치판에서 가족은 좋은 공격 소재다. 역대 대통령들도 가족이 공격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버킷 리스트’ 의혹으로 비난받았다. 옷과 장신구도 구설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에 대한 수사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났다.부인이 근신해도 다른 가족이 표적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세 아들이 모두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권력자 가족의 사생활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가끔 드러난 단편적인 언행이 갖은 추측과 왜곡으로 부풀려져 전파된다. 그렇다고 국민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자 가족의 멍에다. 더구나 그들의 언행은 자칫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김건희 특검법’의 첫 번째 쟁점은 ‘선거용’이냐, 아니냐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반대해 늦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특검 기간은 4·10 총선 선거운동 기간과 정확하게 겹친다. 법안대로 야당이 추천한 특검이 수사하고, 공개 브리핑을 계속하면, 특검이 선거판을 압도할 게 뻔하다.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야당 후보 정치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공권력의 개입이 국민 선택을 왜곡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민감한 수사 내용을 연일 발표하면 후보는 보이지 않고, 피의자만 보이게 된다. 정책은 뒷전이고, 수사에서 드러난 가십이 술안주가 될 게 뻔하다. 공정한 선거라 말하기 어렵다.더구나 민주당은 재표결을 2월 이후에 하자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동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힘이 물갈이 공천을 방해하는 것이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러면 특검 수사를 받을 만한 일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 대통령이 결혼(2012년 3월)하기 전에 일어났다. 문 정부에서 2년간 수사했다. 윤 대통령이 ‘식물 검찰총장’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라 일방적으로 봐줬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조금의 의심마저 털어내려면 특검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선거 직전이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특검 찬성 여론이 높은 건 김 여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렇지만 주가조작에 큰 관심이 없다. 문제는 김 여사에 대한 불신이다. 언행이 너무 가볍다. 김 여사는 대선을 앞두고 2021년 9월 서울의 소리 기자와 전화로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22년 1월 그 녹취록이 보도돼 윤 후보와 선거캠프를 당혹하게 했다. 21년 12월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마저 무색해졌다.김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만인 22년 9월 또다시 서울의 소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다. 비열한 함정 취재다. 그렇다고 김 여사의 언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조작이건 아니건, 왜 명품 가방을 받았나. 더 기가 막힌 건 그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통일사업을 같이 하자”니. 영부인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정체도 의심스러운 사람과 사담(私談)으로 할 이야기인가.‘쥴리’라는 모욕적인 공격까지 받은 김 여사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언행은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 앞으로 어떤 언행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불안하다. 김 여사는 이미 사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개인이나 집권당뿐만 아니라 국가에 부담을 준다. 제2부속실을 당장 만들어, 김 여사가 공적 영역에서 투명하게 움직이게 도와야 한다.특검이 선거용이라고 의심하면, 선거 뒤에 하면 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언급했다 거둬들였지만 하나의 대안이다. 그래야 거부권 행사를 변명할 수 있다. 특별감찰관 임명도 미룰 이유가 없다. 대통령 가족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재난이 된다. 특히 김 여사가 스스로 자신을 던져야 길이 생긴다. 진심을 담아 사과부터 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07

지혜와 생명의 청룡처럼 도약하자

김진국 고문 새해 아침 동해에 해가 솟아올랐다. 갑진(甲辰)년의 시뻘건 해가 구름 낀 동해를 박차고 힘차게 떠올랐다. 2024년은 희망의 해다. 2023년까지도 절반은 코로나 팬데믹에 갇혀 있었다. 이제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은 뒤 처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가슴을 활짝 펴고, 일출을 볼 수 있게 됐다.갑진년은 푸른 용[靑龍]의 해다. 십이지 가운데 진(辰)은 용을 나타내고, 십간에서 갑과 을은 오행 중 청색이다. 동쪽과 나무를 상징한다. 나무는 오행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이 움트는 봄을 나타낸다.용은 용감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지치지 않는 추진력을 가진 전설 속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청룡은 살아 있는 나무와 생명, 봄의 기운을 안고 있어 창조적인 생각과 아이디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청룡의 기운을 받아 2024년에는 대한민국과 독자 여러분 모두 하늘 높이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물론 청룡의 기운만 믿을 수 없다. 모두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60갑자를 되돌려 보면, 1964년 갑진년에 한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전국이 들끓었다. 서울에는 계엄령이 내려졌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결정된 것도 이 해다.청룡은 도전적이고, 추진력이 강하지만, 그런 점이 독선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전쟁과 갈등의 화약 냄새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60갑자를 한 번 더 되돌리면 1904년. 그해에 러·일전쟁이 터졌다.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열강의 마지막 힘겨루기였다. 청·일 전쟁에 이어 또다시 이기면서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히 수중에 넣었다. 열정과 도전은 큰 성취를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잘못된 길을 걸으면 추락하는 원인이 된다.올해도 외부 환경이 밝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안보 위협은 여전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핵보유국이지만, 일부 지역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경제는 엉망이다. 드러내놓고 연평도에 포를 쏘는 무모한 정권이 어떤 도발을 할지 알 수 없다.국제 환경도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국내에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개혁 과제들이 쌓여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가적 과제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커녕 소모적인 정쟁에 몰두한다.다음 세대가 희망을 품으려면 가장 먼저 청년 취업률부터 개선해야 한다.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 세계 최저수준인 합계출산율 0.78명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인구가 소멸하고, 지방이 소멸한다. 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긴다. 그런데도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다행인 것은 올해가 포스트 코로나의 경제 활기를 만들어낼 기회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고, 고금리 기조에도 변화가 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잘 살리고 기회로 만드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링컨의 지적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다. 중요한 국가 어젠다를 선정하고, 여론을 만드는 것도 국민이다. 정치가 잘 되건 못되건 일정 정도 우리 책임이다. 우리가 비난하는 정치인을 선출한 것이 바로 우리다.국민이 정치에 개입하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수단이 선거다. 선거는 포퓰리즘에 휘둘릴 위험도 크지만, 이런 과제를 해결하고, 전진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과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도 올해 대통령선거가 있다. 우리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인기 없는 정치도 우리가 만들었다. 변화와 안정, 새로운 도약은 우리 손에 달렸다.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01

다시 ‘이인제’를 만들 건가

신당 얘기가 계속 나온다. 집권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분당(分黨)과 신당(新黨)이 유행병처럼 퍼진다. 넉 달도 안 남은 국회의원 선거가 실감 난다. 선거를 앞두고는 정해진 순서처럼 신당 바람이 분다. 정당이 공천할 자리가 한정돼 있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떳다방’처럼 창당 바람이 분다.요즘 신당은 그보다 심각하다. 공천장을 받기 위한 대안 정당 정도가 아니다. 내부 갈등으로 양대 정당을 쪼개려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했지만, 선거판이 그렇다. 득표 비율로 의석을 나누는 정당 비례투표나, 연동형 선거라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대 정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다.피부에 확 와닿는 사례가 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출마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다. 이 전 지사는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그는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김대중 후보가 40.27%를 얻어 38.74%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이인제 후보는 19.20%, 492만여 표를 얻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이인제 전 지사가 경선에 승복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 표를 가져갔다.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들 김영삼·김대중, 양 김 씨가 단일화했으면 정권 교체했다고 믿는다. 또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를 0.73%(24만7천77 표) 차이로 눌렀다. 이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0.83%)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회의원 선거는 더 하다. 특히 수도권은 1천표 이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쪼개나가면 당선은 안 돼도, 떨어지게는 할 수 있다.민주당에서도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 창당, 진짜로 할 거냐’라고 묻자, “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방향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을 1인 체제로 굳혔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이낙연 전 대표의 기반을 깡그리 없애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쪽 사람은 총선에서 공천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죽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당이 몰아낸다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도 탈당은 주저하고 있다. 탈당하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일부 호남 의원들이 새천년민주당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사라졌다.호남 유권자들은 영남과 다르다. 전략적 투표에 익숙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이듬해 19대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를 더 밀어 당선시켰다. 2022년 대통령선거 때도 막판까지 안철수 후보에 미련을 가졌지만 결국 이재명 후보로 몰아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줄곧 영남 출신 후보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영남 정치인을 ‘호남 후보’로 만들었다.영남 유권자들은 직선적이다. 인구가 더 많다. 선거구도 더 많다. 그러나 아주 적은 표 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은 다르다. 대체로 보수정당이 열세다. 그런데 여기에 전체 의석의 절반이 걸려 있다. 자기 지역에서처럼 기분대로 하려면 정권을 넘겨야 한다. 집권하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처럼 전략투표까지는 아니라도 세력을 넓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비주류, 중도 세력을 끌어안는 건 기본이다.이준석 전 대표도 연말에는 신당을 만들 듯이 바람을 잡고 있다. ‘싸가지없다’고 진저리치는 사람이 많다. 대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집권당의 업보다. 선거가 코앞이다. 거저먹을 순 없다. 또다시 ‘이인제’를 보지 않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7

집권 후반기는 안정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국회의원 선거가 꼭 4개월 남았다. 내년 4월 10일이 22대 총선이다. 내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예비후보가 되면 합법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이제 현수막이 숨이 막히게 나붙게 된다.그런데도 아직 예비후보들이 출마할 선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5일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53개 선거구획정안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전체 지역구 수는 고정해놓고, 인구에 맞춰 조정한 정도다. 그런데 선거구가 줄어든 지역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관련 법 개정안을 내고, 법을 고쳐서라도 선거구 축소를 막겠다고 한다.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 획정 등 선거와 관련한 기본 규칙을 정하도록 공직선거법에 못 박아놨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선거 때마다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 선거법과 선거구를 확정했다. 그러니 예비후보 등록과 실제 출마 선거구가 바뀌기도 한다. 선거구는커녕 선거법의 큰 틀도 합의하지 못했다. 소선거구제로 한다는 원칙만 세웠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할지,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을지 논란만 벌인다.현행 선거법은 거대정당들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추한 경험을 안고 있다. 선거제도에서 ‘연동형’은 유권자의 투표와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이 비례하도록 배분하기 위해 고안됐다. 21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33.4%,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33.8%, 정의당 9.7%다. 그러면 국회에서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도 득표 비율에 비례하게 나누어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지역별로 1등과 2등의 표 차가 매우 다르다. 영호남처럼 1등과 2등의 차이가 큰 선거구가 있는가 하면, 서울·경기에서는 1천 표 이내의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갈린다. 당선자는 3분의 1 득표로 당선되고,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자기표의 가치를 얻지 못한다. 이런 경향이 비슷하다 보니 서울에서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민주당 53.5%,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41.9%였지만, 실제 얻은 의석수는 민주당 41석(83.7%), 미래통합당 8석(16.3%)이었다. 경기도에서도 민주당은 53.9% 득표로 86.4%(51석)의 의석을 얻었다.이 결과를 보면 어떤가. 국민의힘이 연동형을 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33.8% 대 33.4%)를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겼다. 완전한 연동형이라면 국민의힘이 원내 제1당이다. 그러나 비례 의석을 줄이고, 그 중에서도 연동되는 비례 의석은 더 줄여 ‘준연동형’으로 바꾸었다. 더구나 위성정당을 주도함으로써 사실상 제 발등을 찍었다. 탄핵을 몰아붙이는 3분의 2에 가까운 민주당 의석은 국민의힘이 만들어준 꼴이다.연동형은 군소정당이 목을 매는 제도다. 어떻게든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정작 선거법에 결정권을 가진 양대 정당은 부정적이다. 자기 의석을 줄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대 정당에서 목소리가 큰 텃밭 출신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압박 요인이 있는 연동형을 싫어한다. 연동형의 효과를 높이려면 비례 의석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구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사실상 개인적인 정치적 계산들이다. 포장만 그럴듯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가 곤욕을 치르는 건 선거법 협상에 실패한 결과다. 지금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환상을 판다. 소선거구제로, 비례 의석을 줄이고, 연동형을 배제한 병립형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선전한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선거법 협상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현행 준연동형으로 가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여지도 열어뒀지만, 그보다는 국민의힘과 손잡고 병립형으로 가자는 속셈이다. 20대 총선과 같은 제도다.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서울 판세는 21대 총선(41곳 중 8곳 당선)보다 더 어렵다(6곳 우세).위성정당을 막지 못하면 21대 총선꼴이 된다. 그러나 위성정당만 막는다면 윤석열 정부 후반기가 더 안정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과반을 얻어 독주한다는 환상보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않도록 막는 게 더 다급한 현재 판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0

예측 실패가 아니라 리더십 실패다

김진국 고문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가 충격을 주었다.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일을 놓치는 경우야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충격’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은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필자는 엑스포를 유치하지 못한 것은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유치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기대를 과도하게 부풀린, 그래서 엉뚱한 예측과 외교 활동에 헛심을 쏟은 정부의 행태가 더 걱정이다. 외교적 발언이 횡행하는 국제무대에서 정확한 예측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번 유치 활동은 역대급 헛발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는 표결 결과가 나오는 순간까지도 박빙이라고 주장했다. 이 바람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열심히 득표 활동을 했다. 소중한 자산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나섰다. 한국이 자랑할만한 문화예술인도 총동원했다. 지휘자 정명훈과 성악가 조수미, 그리고 아이돌 그룹들이 줄줄이 응원했다. 넷플릭스에서 세계적 반응을 받은 오징어게임도 이용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캠페인을 벌인 결과는 119 대 29였다.많은 민간 기업인들은 이미 판세를 뒤집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동분서주할 때도 외교력을 낭비한다고 우려했다. 너무 힘을 쏟아 실패했을 때의 낙담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걱정했다. 그런데도 정부 내에서는 1차 투표에서 70표 정도를 얻는다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2차 투표 전략’을 펼쳤다. 1차 투표에서 우리를 안 찍어도 2차에서는 찍어달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러나 예측과 전혀 다른 결과였다.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자본으로 국제행사를 오염시켰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그런 환경을 알고 도전한 경쟁이다. 그런데도 막판 뒤집기에 의욕을 보인 정부다. 이제 와 ‘석유자본’을 비난하는 건 책임회피밖에 안 된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훨씬 넘었다. 아직도 전 정부 탓을 하는 건 염치가 없다.올해 초에는 정부도 유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 최선을 다하자는 정도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이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힘을 쏟은 거야 칭찬할 대목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국제박람회기구 회원 182개국 정상을 대부분 만날 정도로 유치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부 내 전망도 바뀌었다. ‘초접전’, ‘역전’이란 말이 나오고, 2차 투표 전략도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했다.유치교섭 일선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경제인들의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확보한 표가 훨씬 부족하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올렸다. 그러자 “왜 사기를 꺾는 보고를 하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그러니 “2차 투표에서는 한국을 지지하겠다”라는 외교적 발언을 모두 한국 지지 내지 중도로 분류하면서 예측이 한참 어긋났다.엑스포는 2030년에만 열리는 게 아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만 이기려 할 수는 없다. 엑스포를 못 연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도전하면 된다. 문제는 정부 내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오류다. 예측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오판했다면 큰 문제다. 엑스포만이 아니라 다른 외교 문제, 다른 국정 현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윤 대통령은 예측이 빗나간 데 대해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사실 엑스포는 다시 도전하면 된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기울인 노력이 어떤 형태로 건 우리 자산이 되어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며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은 국정 운영 흐름이다.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보고서를 왜곡하는 관리자는 위험하다. 그런 관리자는 쓰는 것도, 자신의 기대와 판단을 과도하게 앞세워 바른말을 못 하게 부담을 주는 리더십도 곤란하다. 이 기회에 그런 부분을 반성하고 바로 잡는다면 엑스포를 유치한 것보다 더 큰 소득일 수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03

이러고도 나라가 안 망하나

김진국 고문 국회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암컷들이 설친다’라고 말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최 의원 발언이 최근 문제가 됐지만, 여(與)고, 야(野)고, 평소 쏟아내는 말들이 거칠기 짝이 없다. 국민대표로서의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다.이러니 정치가 잘될 리 없다. 정치는 ‘전부냐 빈손이냐’의 싸움이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의원도 일정한 유권자들이 선택했다. 모두 존중받아야 할 국민대표다. 그러니 정글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여 정리할 의무가 있다.그런데 요즘 국회는 자신이 대변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 심지어 국민도 짓뭉개고, 제거하는 것이 임무인 양 움직인다. 정치가 아니라 승리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사이버 전쟁터 같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한다. 나라의 미래는 보지 않는다.더구나 총선을 4개월여 남겨둔 요즘 온통 선거와 자리 이야기다. 용산이나 정부에서 출마를 노리는 사람, 출마하는 사람의 빈 자리를 노리는 사람…. 대화도 하마평뿐이고, 어수선하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소는 정말 누가 키우나.국회 예산 심의는 더 한심하다. 민주당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 심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발전 분야 예산 1천831억원을 깎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4천500억 원이나 늘렸다. 이 정부와 이 예산으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예산안을 던져놓고, 다수당인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정부도 대책이 없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어깃장을 놓는 야당도 답이 없다. 아무리 야당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만남을 거부하는 게 말이나 되나.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어도 그렇다. 국민감정이 나쁘다고, 일본 총리를 안만나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외면하지는 않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난다면 그게 무슨 정치인가.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해 국정을 이끌어야 할 수임자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법률안은 무조건 거부하고, 인사청문회는 무시하고 밀어붙였지만 이제 예산은 어떻게 할 건가.민주당이 깎아 놓은 예산도 기가 막힌다. 이율배반이지만 문재인 정부도 원자력 수출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도 직접 세일즈에 나섰다. 그런데 원전 수출 기반 구축 예산 1천112억 원, 원전 수출 보증 예산 250억 원을 깎아 버렸다. 당장 이집트·루마니아 등에서 따낸 원전 건설사업이 위험해졌다. 폴란드·체코 등에서 추진 중인 원전 수출 협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그뿐 아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예산 333억 원도 전액 없앴다. 민주당이 추진한 사업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전에는 무조건 윤석열 딱지를 붙여 삭감한 결과다. 원전만이 아니다. 청년 취업 지원 사업도 윤석열 표는 모두 삭감했다. 이재명 표가 붙은 지역화폐 예산, 재생에너지 투자, 새만금사업 등은 늘려놓았다.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다. 원전은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옳은 방향이다. 그렇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 필요 전력을 충당하기는 어렵다. 매우 조심스럽게 조율할 문제다. 그런데 전문가들마저 진영으로 쪼개져 있으니 이성적인 토론이 안 된다. 찬반과 상호 비난뿐이다. 자기 이익이 걸린 전문가도 많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선다.정치권은 더하다. 대화와 타협으로 미래를 논의한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변화가 제한적이어야 한다. 국가 미래 전략의 큰 방향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선거 한 번 할 때마다 정책이 180도 뒤집히는 정부를 어떤 나라가 믿고, 협상하겠나. 미래를 위한 장기 전략은 외면하고, 선거를 위해 과거 정부 정책은 무조건 뒤집어버리기를 5년마다 반복한다. 적성국의 이간책이라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까. 유권자라도 깨어있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26

윤핵관, 왜 여론이 외면하나

김진국 고문 험지(險地) 출마, 퇴진이란 말이 쏟아진다. 여야가 따로 없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동안 다져온 지역구를 포기하고 낯선 곳에 출마하는 건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험지 출마는 정계 은퇴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렇지만 정치신인은 아직 선거판에 명함도 못 내밀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는 게 굳이 늦은 건 아니다. 따뜻한 온실에 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들판에 나서려니 서러울 뿐이다. 이런 판 갈이가 낯설지는 않다. 카리스마가 있는 당 총재나 대통령이 흔히 밟아온 과정이다.선거 때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흔들었다. 3김 청산도 요구했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3김이 이끄는 정당에서 다른 목소리는 파묻혔다.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정(釘)을 맞았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줄 세우기,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여기에 반발한 젊은 정치인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했다.그렇지만 3김씨 가운데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다른 한 사람은 내내 이인자로서 힘을 유지했다. 이들은 지역주의 정치의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한편으론 지역의 정서, 한(恨)을 대변하는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기에 이루어낸 성과다.그들은 ‘대통령 병(病)’에 걸렸다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경쟁을 벌이느라 의정 활동을 독려하는 역할도 했다. 호남과 영남이라는 온실에서 편하게 당선된 의원들 가운데 나태하고, 지역민들의 원성을 받는 의원들은 과감하게 교체하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지역할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철승 전 의원처럼 지역에 뿌리가 깊은 거물 정치인들도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물갈이의 긍정 효과와 함께 비주류는 발을 못 붙이고, 총재에게 충성경쟁을 하는 비민주적 정당 문화를 뿌려놓았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권위가 그때만은 못하다 해도 극심한 진영화의 영향으로 양대 정당의 공천이 당락의 필수조건처럼 작용한다. 유권자보다 공천위원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의힘에서 나오는 ‘윤핵관’과 영남 다선 의원의 험지 출마론, 민주당의 86정치인 용퇴론, 친명(親明) 험지 출마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한 싸움판이 되고 있다. 사실 권력자와의 친소(親疏) 관계, 출신 지역이나 나이, 성별을 이유로 선거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건 옳지 않다.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고리타분한 인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아도 합리적이고, 활동적이며, 사고가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정치권을 취재하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절감할 때가 많다.문제는 ‘윤핵관’이나 86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말이 왜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모두 윤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 가까이에서 조언을 해온 ‘윤핵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소통이 막히고, 독단적으로 흘러간 임기 초반의 시행착오는 사실 정치를 모르는 윤 대통령보다 조언자들의 책임이 크다. 적어도 윤 정부의 정치 향방을 좌우할 요직에서는 물러나라는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평민당 의원들에 대한 호남의 불만이 팽배했었다. 평민당 공천만 받으면 말뚝을 꽂아놔도 당선된다고 하던 시절이다. 나를 안 뽑으면 누구를 뽑을 거냐는 오만하고 나태한 의정 활동이 지역민의 감정을 건드렸다. 김 전 총재도 과감하게 물갈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더 열렬한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남도 마찬가지다. 일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지역도 있지만 국민의힘 공천은 본선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변화가 생겼다. 선거가 가까워졌다는 절박감,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받은 충격, 지지부진한 여론 지지율 등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요인들이 많았다. 어떤 요인에 따른 것이든 바뀌는 만큼 지지율이 움직인다. 선거 전략은 따져봐야 하지만, ‘윤핵관’이건, 영남 지역 의원이건, 여론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주목하는 이유를 새기고, 반성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19

사법 절차 보호해야 부패 정치 막는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불안한 제도다. 주권자가 맑은 눈을 가져야 제대로 작동한다. 눈을 감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도 눈이 밝은 사람이 더 많다는 믿음 위에 민주주의가 서 있다. 그래도 위험은 찾아온다. 집단적인 편견이 있다. 숫자는 적어도 목소리가 커 과대 대표되는 세력도 있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비극으로 끝났다. 집단 편견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덮친다. 오랜 숙제인 지역감정도 그런 것이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추종하는 문화의 확산도 영향을 미친다. 열성 팬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냉정하게 비교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는 무조건 1등이다.축구·야구팬이 1등 팀에만 몰리지는 않는다. 팬의 사랑을 받는 다양한 가수와 팀이 무대에 올라 다양성을 유지한다. 거기까지가 정상이다. 그러나 상대팀을 공격하는 훌리건으로까지 나가면 스포츠와 문화·예술을 파괴한다. 더구나 정상적인 숫자로만 비교되는 것도 아니다. 앨범 사재기가 있다. 소수라도 목소리가 큰 악착같은 세력이 있다. 억지를 부리는 세력이 과대 대표된다면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민주주의의 중심은 의회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문제는 부패다. 가장 부패하기 쉬운 곳이 정치권이다. 주권을 위임한 것은 국민의 이익을 지켜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이 권한을 사익을 추구하는 데 쓰는 정치인이 많다.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법제도가 막아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공수처를 만든 명분도 그런 것이다. 부패 정치인의 눈에는 이것이 눈엣가시다. 정치가 사법 질서를 흔들면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 사법의 신뢰도도 추락한다.1976년 2월 4일 미국 상원 공청회에서 록히드사가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일본 정계에 뿌린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에게 5억 엔(약 50억 원)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총리이던 74년 자기 가족 기업 땅에 건설성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땅값이 수십 배 폭등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 사임한 상태였다. ‘청렴한 미키’라는 별명이 붙은 후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다수파였던 다나카파는 ‘표적수사’, “너무 까분다”라고 비난했다.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를 체포해 정치부패를 막는 보루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6개월 수감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다나카는 여전히 정계의 배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83년 1심 재판에서 다나카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상고가 진행 중이던 93년 사망하면서 재판이 끝났다. 최대의 파벌을 형성한 다나카는 ‘금권정치’, 파벌정치의 한계를 보여줬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정적에 대해 불법 침입·도청을 한 ‘워터게이트사건’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려 했다. 그러나 해임을 지시받은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차례로 이를 거부하며 사임했다. 결국 장관 직무대행인 차관보를 통해 특검을 해임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사법 방해행위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민주당은 9일 이재명 대표 수사를 총괄하는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10일 공수처에도 고발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해 표결이 무산되고, 자동 폐기될 처지였는데, 이를 철회하고, 30일 본회의에서 꼼수로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편법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법 방해다. 이 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판 전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때까지는 ‘쌍방울 대북송금 대납’ 의혹, ‘경기도청 법인카드 사적 유용 묵인’ 의혹 등 이 대표 수사가 모두 중단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사법 방해다. 민주당이 탄핵 이유라고 적시한 의혹을 보면 처가 고용인 범죄기록 조회, 스키장 리조트 이용 청탁, 처가 운영 골프장 부정 부킹, 위장전입 등이다. 이게 국회가 나서서 검사를 탄핵할 이유가 되나. 팬심에 매달리면 극단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눈을 뜨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12

서울공화국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로 정가가 어수선하다. 경기도 분도(分道) 시민공청회에서 이런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김포시민이야 서울 편입을 원할 수 있다. 그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 교통 대책 시민 간담회에서 김포시민이 의견을 모은다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김 대표는 “생활권·통학권, 직장과 주거지 간 통근 등을 봐서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이라면 행정 편의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원칙적으로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은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김포뿐 아니라 고양·부천·광명·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모두 들썩인다.김 대표 논리대로라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중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콘크리트 아파트 한 채에 30억~40억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편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전국을 서울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집중도를 낮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경기(京畿)’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다. 고려 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왕도(王都) 주위 오백 리에 ‘적현(赤縣·京縣)’과 ‘기현(畿縣)’을 설치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경기라고 부른 것이다.경기도는 원래 서울과 한덩어리다. 조선 시대 이후 서울 중심이 더 강화됐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국토교통부 균형발전현황판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6%다. 1960년 20.8% 수준이었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80년 35.5%, 90년 42.8%으로 치솟더니 2019년 말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면적은 서울이 전체 국토의 0.6%, 인천 1.1%, 경기 10.6%로, 합쳐서 11.8%, 10분에 1에 불과하다.그런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이 4만9천680원으로 대구(2만 5천543원)의 두 배에 이른다. 수도권은 4만703원, 비수도권은 3만9천212원이다. 청년 실업률도 수도권이 4.67%인데, 비수도권은 6.36%다. 그러니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뭘 더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은 선거용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체절명의 고비다. 레임덕이냐, 힘 있는 임기 시작이냐를 가르는 선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에서 지난 총선 결과인 103 대 16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안간힘을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대계를 좌우할 문제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수도 이전을 구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꼼수를 부렸을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공약으로 선거 때 ‘재미 좀 봤다’라고 말했다.좋은 구상이라도 선거에 연결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지역 특성과 전체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나누어 먹기가 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거래,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이용되면서 표류하고 있는 새만금은 전형적인 득표 미끼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코로나 지원금도 선거 전 현금 살포에 이용됐다.선거를 계기로 기발한 정책들이 발굴된다.평소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뚫기 힘든 과감한 정책도 선거를 계기로 실현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선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당장 기존의 지역 발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전은 없고, 잔꾀만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05

정치 팬덤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김진국 고문 정치인이 고약한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의 고향이라는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어디로 갔나. 민주주의의 전범처럼 들먹이는 미국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에서 선거가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선거 결과에 불복(不服)하고,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를 난입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개딸’이니, ‘문빠’니, ‘태극기’니 하는 극단 세력들이 정치판을 휘젓는다. 비타협적인 ‘탈레반’ 세력이다. 무조건 자기편만 드니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 빠지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원시 시대부터 작동해온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다. 힘이 센 자가 이기고, 이기면 무조건 다 갖는 게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사기다. 합의해놓고 뒤집고, 규칙에 따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렵다.근본적인 대변혁이 필요하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가능한 것 하나라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원내대표들이 국회 회의장에 비난 팻말을 붙이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작지만 칭찬할 만하다.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주 월요일(23일) 먼저 제안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우선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된 모습을 보인다”라며 국회 회의장 분위기부터 개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서 팻말을 부착하거나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라고 공개했다.그동안 국회를 보면 기가 찼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모두 말이 열려 있는 공간이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소위 면책특권이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모든 회의가 생중계된다.그런데도 회의장 책상 앞에 피켓을 줄줄이 세워놨다. 국회 참관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한국을 선진국으로 아는 외국인에게도 창피하다. 본회의장, 상임위 회의장을 놔두고, 국회 본관 계단에 서서 학생들처럼 팔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피켓이나 집단 시위는 자기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특권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국회의원 몫이 아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른다.상대를 비난하는 팻말을 붙여놓고,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처음부터 국회를 싸움판으로 만드는 짓이다. 복잡한 현안을 단순한 구호로 압축해 공영 방송에 지속해서 노출하는 것은 여론을 왜곡한다. 일부 의견을 과다 대표하고,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 더구나 겨우 팻말이나 들고, 구호나 외치라고 국회로 보내준 게 아니다. 유권자에 대한 모욕이다.일부 과격파 의원은 이를 무시한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 수석 부대표는 방송인터뷰에서 “솔직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 참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조금 지나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야당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정쟁(政爭)성 현수막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문제 현수막들을 철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비난성 문자 폭탄을 “민주주의를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일이 있다. 당장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민주주의 파괴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아이돌의 열성 팬 문화에서는 지지하는 가수 외에 다른 가수는 없다. 우호 세력은 물론 반대 진영의 정치적 경쟁자마저 인정하고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역사적으로 정치에서 가장 적극적인 팬덤은 나치였다. 팻말과 고성, 야유 등 돌출행동은 카메라의 주목을 받는다. 나쁜 짓을 즐기는 이유다. 적어도 책임 있는 언론만이라도 이런 행동을 외면하면 안 될까.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9

민생 현장만 다니면 소통이 될까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 모드다. 그는 19일 충북대에서 “저보고 소통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분이 많아,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7일 저녁에는 국민통합위원회·국민의힘 지도부 등을 청와대로 불러 “얼마나 정책집행으로 이어졌는지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라면서 ‘반성’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직진만 해온 윤 대통령으로선 매우 낯선 모습이다.그러면서 그는 민생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8일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19일도 다시 참모들에게 “나도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라며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라고 지시했다. 당 지도부와 참모만이 아니라 스스로 바뀌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은 왕이다’라고 늘 새기고 받드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생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칫 “선거에 졌다고 윤 대통령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행동이 중요하다. 과거 정치인들도 좋은 말은 많이 했다. 멋진 말, 대중에게 인기 있는 표현에 욕심을 내고, 자기 이미지를 포장하려 했다. 그러면서 행동은 거꾸로 하는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소통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해야 한다”라며 실행을 강조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평가는 아직 이르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를 방문해 투자와 고용을 부탁하면서 이재용 회장을 구속하고, “기업의 노력을 확실히 뒷받침하겠다”라며 ‘반도체 특별법’을 약속하고는 실제로 만든 법에서 ‘반도체’라는 단어를 쏙 빼버렸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 사태는 반전이었다.윤 대통령도 멋진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다. 실제로 앞뒤 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 취임 초에 무리하다고 주변에서 말리는 ‘도어 스테핑’을 실행한 것도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빈말은 아니라고 믿는다.윤 대통령은 단임이다. 본인이 다시 선거에 나설 일이 없다. 그는 인기가 없는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대일(對日) 외교나 긴축 재정 등은 박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의대 증원 추진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런 것을 추진한다고 선거에 손해를 보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시기도 한다”라며 “그러나 우리는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그러면 윤 대통령은 정권이 넘어가건 말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걸까. 물론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결국 민심을 얻는다는 믿음이다. 보수진영으로선 윤석열 정권의 성공 이상으로 차기 정권 창출이 중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면 윤 정부에서 했던 정책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국가 간 약속인데도 뒤집혔다.내년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았다. 총선에서 지면 야당은 물론 여당도 차기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공무원도 태도가 달라진다. 바로 레임덕이다. 더구나 그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에 보낸 경험이 있다. 정권을 넘겨주면 퇴임 이후도 불안하다. 윤 대통령도 남의 일일 수 없다.그런데 윤 대통령 발언에는 대통령과 측근 참모, 그리고 국민의 관계만 있다. 민생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민생 현장만 뛰어다닌다고 불통이 해소될까. 과거 독재자들은 정치적 경쟁자 대신 국민을 직접 상대하려 했다. 대통령은 민생을 위해 애쓰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자기 생각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요즘처럼 진영정치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반쪽 소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민주주의의 본질인 관용의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권력자가 정성을 다해도 정치가 풀리지 않을 때 그 책임이 야당으로 넘어간다. 눈과 귀를 조금은 더 열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2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김진국 고문 직접 당해봐야 아는 사람은 하수(下手)다.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은 하지하수(下之下手)다. 지난주 서울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예상했던 결과다. 보수 지지자들도 “용산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13일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내년 총선에서 정부 견제론(48%)이 정부 지원론(39%)보다 9%포인트 더 많다.그런데도 국민의힘 선거 전략이나 인사청문회 대응은 따로 놀았다. 자신만만한 것을 넘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참사를 예견하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렇지만 사후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 하지하수는 면해야 하지 않나.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던진 충격은 전국선거급이다. 서울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야가 모두 나서 전국적 선거로 키웠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하나의 시험대로 여겼다. 윤석열 정부를 일차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구청장 선거지만 진교훈 후보나 김태우 후보는 뒷전이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결이었다. 앞장서 의미를 키운 건 윤 대통령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태우 후보가 유죄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잃으면서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관으로서 민간인 불법 사찰, 여권 인사 비리 묵인 의혹 등을 폭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하고, 사실상 강서구청장 후보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그를 공천하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보궐선거를 앞두고 복권한 그의 의도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공익 제보에 가까운 김 후보의 폭로 야기된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려는 윤 대통령의 뜻이 충분히 이해된다.하지만, 정치에서 정답과 오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을 떠나서는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지도자들에게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라고 한 이유다. 강서구는 국민의힘에 불리한 ‘험지(險地)’라고 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따져보면 험지라는 말로 털어버릴 문제는 아니다. 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46.97%, 이재명 후보는 49.17%였다. 이재명 후보가 이기기는 했지만 2.2%에 불과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56.09%를 얻어 송영길 민주당 후보(42.10%)를 14% 차이로, 김태우 구청장 후보는 51.3%로 김승현 민주당 후보(48.69%)를 2.61% 차이로 이긴 곳이다.이번 득표율, 56.25%(민주당)대 39.19%(국민의힘)는 20년 4월 21대 총선과 비슷하다. 당시 강서 갑·을구를 합친 득표율은 민주당이 55.40%,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39.95%였다. 그때 서울 4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8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는 51석 대 7석, 인천에서는 11석 대 1석으로 수도권에서만 103석 대 16석으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강서구가 험지건 아니건, 수도권 민심이 21대 총선과 비슷하다는 건 확인됐다. 그대로 대입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지역구 의석의 44.3%인 서울·인천·경기에서 103 대 16에 가깝게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는 말이다. 그 뒷일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레임덕이 시작되고,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 단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가장 힘이 세다. 그런데도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가로막혀 쩔쩔맸다. 총선 참패 이후의 모습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뒤늦게 후회했다. 중앙일보 인터뷰를 보면 측근들의 비리를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고,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 꼬이게 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