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2022년 마지막 주가 시작됐다. 정말 큰 일이 많았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고, 정권이 바뀌었다. 북한은 도발을 계속하며 미국을 사정권에 넣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 정세를 흔들어놓았다. 여기에 코로나 후유증까지 겹쳐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어제는 크리스마스다. 기쁨과 희망의 축제다. 그런데 여느 해보다 침울하다. 천주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가 대림 시기다. 회개와 속죄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기간이다. 종교가 있든 없든, 무엇이든 간에, 해가 가기 전에 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시간이다.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과이불개’(過而不改)로 선정했다. 『논어』에 나오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같은 책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말도 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마라’는 말이다.돌아보면 올 한해도 후회투성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 저지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해 저질렀다. 교만해서다. 번번이 후회하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권당을 돌아봐도 올 한해는 내분으로 얼룩졌다. ‘윤핵관’이란 단어부터 배타적이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당 대표 사이의 갈등은 집권 세력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던져버렸다.탐욕이 넘쳤다. 나라도, 국민도 보이지 않는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이 설쳐댔다. 재판까지 해봐야겠지만 쏟아지는 비리 혐의들이 기가 막힌다. 집권당은 야당을 정당한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야당은 허니문 기간도 주지 않고 새 정부 발목을 잡았다. 자신들이 주장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도 다수 의석을 내세워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선거 기간 국민의 심판을 받은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검수완박’도 낙선자 공약대로 고수했다. 법안도 밀어붙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 됐다. 어느 쪽으로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표류 국가가 됐다.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선거가 끝나면 숨 쉴 틈도 없이 다음 선거 전략을 밀어붙이는 타락한 정치다.핼러윈 참사는 고통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유족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책을 찾기보다, 집권 세력을 곤경에 몰아넣으려고 안간힘이다. 집권 세력은 정치 역학만 따지며 무엇이 무서운지 방어적으로 움직인다. 법적 책임만 주장하고, 사과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진심 어린 사과가 그렇게 어렵나. 법의 한계를 뛰어넘은 틈새까지 책임지는 것이 정치인이다. 정무직은 법적 책임만 지는 게 아니다.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공자는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하라고 가르쳤다. 혼자 있을 때마저 긴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말이 편해지고, 수위를 넘나들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외교 행사 직후 공개 장소에서 품위를 잃은 말을 뱉은 건 분명히 실수다. 사과하고 넘어가면 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다. 자신의 실수에는 입을 다물고, 언론의 책임 문제만 따지는 것은 옹졸하다.장관은 행정부의 일원이다. 국회의원이 질의하는 것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다. 의원의 질의를 본질은 외면하고, 말꼬투리만 잡고 반격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관계 설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이 번번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반성하지 않는 것 역시 ‘과이불개’다.올해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지난 정부의 ‘내로남불’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국민만 후회하고, 반성했을 뿐, 정치권은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 칼날로만 이용한다. 집권당은 ‘너희 정권 때는 더 심했다’라며 자기 잘못을 변명하고, 야당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표를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한다. 대화도 타협도 없다. 어정쩡하게 합의한 예산안은 시간에 쫓겨 양쪽 주장을 한 조각씩 떼어 붙여 던져놓았다. 나라 살림인데 철학도, 비전도, 희망도 없다. 며칠 남은 시간만이라도 되돌아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다시 희망을 그려보자./본사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