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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북 관계로 재미 볼 때는 지났다

김진국 고문 쌍방울이 북한에 수백만 달러를 몰래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쌍방울이 북한과의 통로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것을 ‘문재인 정부 차원의 대북 송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1원 한 장 준 적이 없다”라면서 “백번 천번 양보해 쌍방울이 검찰 주장대로 북한에 정말 돈을 줬다 하더라도, 그게 대체 왜 문재인 정부 차원의 ‘공작’이란 말이냐”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대표의 문제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항변으로 들린다.진실은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쌍방울이 아니라도 북한으로 달러가 흘러 들어가는 문제는 심각하다. 핵과 미사일이 되는 자금이기 때문이다. 한때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북한을 다녀오는 걸 통과의례로 여겼다. 대통령의 업적으로 가장 욕심을 낸 것도 남북관계다. 그럴수록 북한은 대가를 요구했다. 정치인뿐 아니다. 민간 접촉에도 돈을 요구했다. 북한 입국 비자가 달러였다.남북 화해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도 북한의 달러박스였다.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 세례를 받았다. 조건 없이 포용하면 상대도 우리 손을 잡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화해 정책을 이용해 핵 개발에 몰두했다. 입으로는 ‘비핵화’를 외치면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미사일은 미국 전역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했다.북한의 핵무기는 누구를 위협하나. 정말 자위용으로 갖고만 있겠다는 건가. 지난 4월 김정은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 없다”라고 천명했다. 체제 방어용이 아니라 한국을 향한 공격용이고, 적화통일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 핵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라거나,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주장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몽상에 불과했다.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때는 그 당시의 정세가 있었다. 북방정책은 우리의 외교 관계를 튼튼하게 했고, 화해 정책으로 대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었다. 선의를 악용한 건 북한 정권이다. 화해 제의를 핵 개발 자금과 시간을 버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생존을 위해서도 북한의 전쟁 준비 자금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정파를 뛰어넘어 생존의 문제다.올 한해 북한이 쏜 미사일과 핵 실험 비용을 1조 원 정도로 추정한다. 한국은행 기준 지난해 북한의 예산이 91.2억 달러다. 전체 예산의 10분의 1을 미사일로 쏜 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할 수 있는 전략물자 수입 의존도가 2018년 96%에 이르렀다는 한국국방연구원 보고가 있다.유엔 제재의 가장 큰 구멍은 중국이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해제를, 한국은 예외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엔 제재의 구멍이 중국·러시아 다음으로 우리라는 의미다. 물론 남북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탐욕을 위해 우리를 겨냥한 총알을 제공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유엔이 금지한 일이 계속됐다. 한국 유조선이 북한에 매각됐다. 해상에서 북한 배에 석유를 옮겨 실어준 한국 배, 북한 석탄과 선철을 바다에서 몰래 옮겨 실은 한국 배가 적발됐다.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거액의 통행세를 지급하고, 컴퓨터 등 수출금지 품목을 휴대 물품으로 들고 가 ‘분실’하고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코인의 해킹과 자금 세탁의 통로로 한국이 이용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10조 원에 이르는 수상한 해외 송금이 수사받고 있다. 북한이 연루된 건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대북 관계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무분별한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곤란하다. 남북관계로 재미 볼 때는 지났다. 생존의 문제다. 우리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돕는 것은 이적행위다. 달러는 전용될 게 뻔하다. 물품도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11

서해 공무원 피살, 인권 혹은 정쟁

김진국 고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마라”고 했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여부를 수사하는 데 대해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불만을 표시했다. 언뜻 보기에 문 전 대통령이 부하를 보호하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대인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그런 첫인상에 의심이 생긴다.2020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를 하루 뒤 북한군이 사살, 소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달아났고,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에 귀순했다. 죽었어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자기 의지로 죽을 곳을 찾아갔다. 이 씨 가족도 죄인이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월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라고 발표했다. 해경도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뒤집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적국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뻔한 이 씨가 정부의 부실 대응 탓에 희생된 억울한 국민이라고 인정받는다. 가족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사과와 위로, 보호와 보상을 받게 된다.이 사건은 정쟁의 대상이면서 인권 문제다. 두 가지 성격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얽혀 있다면, 국민의 인권, 생명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다. 국민 옆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부터 하지 않고, “도를 넘지 말라”며 정치적 반격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문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이 씨가 월북했는지, 표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단정할 수 없다면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게 하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보도를 보면 단순히 부족한 정보로 추정만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조작 가능성이다. 당시 조사 당국은 이 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다른 정황들도 모두 외면했다. 관련 첩보를 삭제한 흔적도 있다. 채무 등 이 씨 형편도 과장됐다.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의심된다. 국가 공권력이 힘없는 하위 공무원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다면 중대한 인권 범죄다.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월북’이라는 판단을 ‘최종승인’, ‘수용했다’라고 밝혔다. 판단을 잘못하고, 조작했다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이 ‘판단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와 판단을 ‘수용했다’라고 했다. 조작이나 오판은 부하들 책임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수용’한 책임밖에 없다.문 전 대통령은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증거를 확인하려면 수사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볼 수 없게 봉인했다. 유족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해놓고, 확인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풀어줄 수 있는 건 본인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서명 조사 요구에도 그는 “무례하다”라고 발끈했다.문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라고 비난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불가능한 판단을 억지로 내려 인권을 짓밟은 ‘공직자의 자부심’은 강조하면서, 확인하지도 못한 혐의를 씌워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도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감히 전직 대통령을 건드린다는 말인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황제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게 민주국가다. 국민의 편, 인권의 눈으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국민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것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04

정치가 국운을 가로막지 않게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관심 사업 예산을 모두 없애고 있다. 국회에서 169석이라는 절대다수를 장악한 힘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새 정부가 일을 못 하게 하라는 ‘정부완박’ 횡포”라고 분개했다. 그렇지만 속수무책이다.영빈관 신축 예산 497억4천600만 원 등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예산을 없애버렸다. 새 정부가 만든 법무부 내 경찰국의 기본경비와 인건비,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기본경비도 잘라버렸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민정수석을 부활하고, 청와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업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이런 식으로 윤 대통령의 관심 사업만 골라 칼을 들이대 1조2천억 원을 삭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약했던 사업은 8조6천억 원가량 예산을 늘렸다.물론 아직은 예비심사단계다. 민주당이 원하는 사업비를 받아내기 위해 협상카드일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답답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82개 법안은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는 입법 발목잡기에 이은 예산 발목잡기는 대선 불복에 가깝다”라고 주장했다. 선거로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쪽 정부다.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 나왔어도, 돈과 관련 법률은 민주당이 휘두르고, 정부와 공기업 곳곳에 민주당 사람이 알박기해 있다. 국정은 안 움직이고, 책임은 서로 떠넘긴다.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이런 무책임한 정치가 어디 있나.여소야대(與小野大)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그러나 그때 가장 많은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안 처리도, 청문회도,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정국을 슬기롭게 풀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많이 참고, 많이 양보했다. 야당 지도자 3김씨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다. 첫 야대(野大)였지만 요즘 정치인과 달리 절제할 줄 알았다. 지금은 정치력도 없고, 대화도 없다. 쓰레기 같은 천박한 말을 쏟아내며 이기려고만 한다. 국정이 안중에 없다.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정치가 실종된 상태에서 여소야대는 자칫 재앙일 수 있다. 언제든 국정이 마비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여대야소여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국회가 거수기로 전락할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정부·여당이 한패가 되어 국정을 몰아가고,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정치인에게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강제해야 한다. 극단적인 진영 대결과 국정 마비의 위험은 줄일 장치를 찾아야 한다. 그동안에도 이런 위험이 수없이 지적됐다. 특히 내각제론자들의 지적이다. 내각제라면 의회의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해, 정부와 국회가 극한 대립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연립정권을 구성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과 관용과 상생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소수 정당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국정 운영을 맡게 되면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대규모 감세로 파운드화가 폭락하자 취임한 지 45일 만에 사임했다. 신뢰만 얻는다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처럼 대통령 이상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나라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그렇지만 국민 여론은 내각제에 부정적이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행태를 보면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유권자들도 좋아하는 스타 정치인에게 연예인을 향한 팬덤 같은 지지를, 경쟁자에게는 비난을 보낸다. 새로운 정치문화다. 권력을 분산한 국회의원보다 한 명의 ‘정도령’을 원한다.대통령제에서도 임기나 권한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4년 중임제도 거론된다. 정치권의 부패를 감시할 독립적인 사법제도도 중요하다.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선거에서 무슨 짓을 해도 당선만 되면 끝이라는 낡은 생각을 부술 수 있다. 지금 정치를 보면 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본사 고문

2022-11-27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법률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귀국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해외 순방으로 며칠씩 나라를 비우면서 내치 담당 장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158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론에 치우쳐 있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에서도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결백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적으로야 당연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가 안 와도 임금님 탓이었다.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님이 부덕해서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을 나라님 탓한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해도, 수자원 관리나 보건 위생은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책임 소관을 따지기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런 문제는 당한 사람만 억울한가. 사회의 그런 빈 곳을 찾아 메우고,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람이 불고,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유능한 정부라면 대비해야 한다. 하물며 군중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법 조항이 있든 없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다. 대비가 안 돼 문제가 생기면 정부 책임이다. 정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체제가 돼 있었다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실무자는 물론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큰 참사를 빚어놓고 일선 파출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 이번 참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다. 윤 대통령도 경찰을 향해 흥분하며 질타했다. 그 어이없는 행정력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안전 문제의 최고 행정책임자인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윤 대통령의 짐이 덜어진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길이다.이 장관은 여론에 불을 지른 책임도 있다. 참사 직후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기겁하게 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또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다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참담한 사고의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을 어떻게 ‘폼나게’라고 표현할 수 있나.윤 대통령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품이다. 사법시험 직전에도 조문을 가고, 친구 함 팔이를 갈 정도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 이 장관 같은 가까운 지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이 의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논란을 외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려다 정권을 넘겨줬다. 사적 의리에 얽매이면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조 전 장관 파문 때도 법률적 유무죄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는 법률적으로 죄를 묻기 어려워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운 때가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 인물인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 “기동대 추가 파견을 요청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 책임을 의식한 말이다. 형사사건으로만 보면 책임을 떠넘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앞장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밀려서 하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다.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20

지난 정부와 비교, 그만하라

김진국 고문 퇴임한 뒤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주 소환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여권 인사들은 조건반사처럼 문 전 대통령을 거론한다. “그때는 더했다.” 윤 대통령을 변호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논리다.윤 대통령도 조각(組閣)할 때부터 이 방법을 썼다. 도어스테핑에서 기자가 비판 여론을 전하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세요”라고 반박했다. 국회에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장관 임명에 대해서도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그렇게 임명한 장관이 31명”이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민주당이 홀대 논란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 논란을 들어 반격했다.김건희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논란이 되자 김정숙 여사의 의상으로 맞불을 놓았고,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동행과 지인의 전용기 동승을 비판하자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등 ‘버킷리스트’, 지인인 디자이너 딸의 청와대 근무를 꼬집었다. 알박기 인사에 대한 압박 감사·수사 논란에도 “문 정부는 청와대 캐비닛까지 뒤져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일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는 처음부터 논외다. 너도 한 일이니 입을 다물라니, 유치한 어린애들 싸움 같다.비판하는 사람에 아무래도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그러니 조건반사적으로 그런 논박이 튀어나오는 게 이해는 된다. ‘× 묻은 개’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진 사람의 말은 사사로운 언쟁과 다르다. 언쟁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런 대응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태원 참사처럼 거대한 비극을 두고 이런 입씨름은 더더욱 곤란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간부들을 지목해 “문재인 정권 퇴임 3개월 전 알박기 인사에서 영전된 인물”이라고 떠미는 식이다. 취임한 그 날부터 국정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령 실제로 알박기였다 해도 바로 잡지 않고, 지휘·감독을 제대로 못 한 윤 정부 책임이다.정권마다 업적도 있지만, 잘못도 있다. 집권하겠다고 표를 구하는 것은 그 모든 짐을 떠맡겠다는 약속이다. 영광의 역사, 오욕의 역사를 모두 짊어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역사의 한 토막을 잘라낼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부 탓만 하면 국정은 누가 이끌고, 책임을 지나.지난 8일 국회 운영위에서 주호영 위원장이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켰다.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에 민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윤 대통령도 이 일에 대해 ‘역정을 냈다’라고 보도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소설을 쓰시네” “어이가 없다”라는 발언을 소환하며 일부 여권 인사들도 주 위원장을 비판했다.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 이런 반박도 나무라기가 조심스럽다. 특히 ‘처럼회’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지만, 번번이 되잡혔다. 김의겸 의원의 청담동 술집 이야기는 젊은 남녀의 알리바이 만들기에 놀아난 것으로 보여 어이가 없다. 정말 국정을 걱정한 비판인지 꼬투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격투기를 보듯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이기면 보는 사람도 신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국정이다. 때려 부수고, 망가뜨려도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한다고 무조건 용인될 수 없다. 유치한 입씨름일 뿐, 국민에게 할 말이 아니다. 지난 정부가 한 일이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사과부터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을 지겨워 한 유권자가 만들었다. 같은 꼴을 보려고 정권을 바꾼 게 아니다. 당장은 미운 놈 혼내는 것만으로도 손뼉을 치겠지만, 결국은 불만이 되어 돌아온다. 욕하면서 배운다. 과거 정부를 소환하고, 비교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국정을 맡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과거의 적폐로, 누적된 부채로 힘들어도 그것을 해결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13

땀 흘린 훈련이 생명을 지킨다

김진국 고문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댄다. 대포는 수백 발씩 쏘고, 군용기 180대를 출동시켰다. 곧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된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공동성명에서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공포로 주저앉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의 일처럼 여기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은 안 된다.지난 2일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하루 미사일 25발을 쏜 날이다. 북한이 6·25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너머 울릉도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다행히 미사일은 속초 앞 바다에서 더 비행하지 않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실전 경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 민방위 훈련이거나 이태원 참사 추모 사이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하는 학교도 있었다. 울릉군도 우왕좌왕했다. 공습경보를 발령한 지 24분이 지나서야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100분이 넘어서야 공습경보 자막을 내보냈다. 정해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미사일이 실제로 육지까지 날아왔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2010년 연평도 포격에서 보았듯이 ‘설마’는 없다.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실전 배치 단계에 와서는 무신경하다. 북한이 연일 도발해도 전쟁은 없다고 믿는다. 왜 위기를 조장하느냐며 방어체계 구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서울 이태원에서는 아까운 젊은이 156명이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여기서도 ‘설마’ 하고 안이했다. 경찰은 훈련 없는 울릉도 주민만도 못했다. 관할지인 용산경찰서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난 밤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소방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경찰에 15번이나 지원을 요청했다. 요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기동대 배치 지시가 떨어졌다. 사전 예방은커녕 사후 긴급 요청에도 먹통이었다. 나사가 풀렸다.112치안종합상황실에는 사고 3시간 전부터 시민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상황실장은 참사가 난 뒤에도 1시간 24분이나 상황실을 비웠다. 집에 있던 서울경찰청장은 이때 상황실장으로부터 처음 보고받았다. 경찰청장은 서울이 아닌 제천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전화도, 문자도 연락이 되지 않다 다음날 0시15분에야 전화를 받았다.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고향인 의령 축제에 갔다 돌아와 이태원에 인파가 많다고 걱정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에게 알렸다. 구청이나 경찰, 소방 같은 공식 조직에 연락하고,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같은 당파끼리만 놀던 조선시대도 아니고….군의 준비 태세도 불안하다. 북한이 미사일 25발을 쏜 2일 대응 사격한 미사일 3발 중 2발이 실패했다. 패트리엇 1발은 발사에 실패했다. 천궁은 날아가다 자폭했다. 지난달 4일 밤에 대응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군부대에 떨어졌다. 그다음 날 쏜 에이태큼스 미사일 2발 중 1발은 표적으로 가지 못하고 추적 신호가 끊어졌다.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훌륭해도 실전연습만 못 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수도 키이우에 핵 공격용 특별방공호 425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피 훈련의 땀이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쓰러진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적어도 공습경보가 울릴 때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화생방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경북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두 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최선의 조치를 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평소 매뉴얼을 잘 익히고, 그대로 한 덕분이다. ‘징비록’에 일본 사신이 기생을 동원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준 상주 목사를 이렇게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늙은이는 여러 해 전쟁을 치르느라 수염과 머리가 다 하얘졌지만, 귀공은 기생들의 춤과 노래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머리칼이 왜 하얘졌소?” 서애(西厓)가 남긴 충고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1-06

과거 청산, 오래 끌지 마라

정치가 얼어붙었다. 여야 협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야당탄압, 보복 수사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민주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절대다수 정당이다.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선 어떻게든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혐의를 덮으라고 하는 것도 부당한 수사 개입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이 6주 만에 30%를 넘었다. 아직 지지율이 심각하게 바닥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윤 대통령에게 고무적이다. 지지 이유에 대해 ‘국방·안보’(10%) 외에 ‘공정·정의·원칙’(9%)과 ‘부정부패·비리 척결’(5%) 등을 꼽았고, ‘공정·정의·원칙’은 지난주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보수층에서 지지가 오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기대다. 그는 검사 이외에 다른 경험이라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도 외골수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력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수사에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수사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것이다.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맡아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 수사팀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수사로 정권과 부딪쳐 검찰총장에서 쫓겨났다. 이 바람에 이념과 관계없이 수사에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가 대선 당시 국민의 불만과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정권을 내놨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그만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그게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경제나 다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 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다른 분야를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겸손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정적을 수사한다고 무조건 정치보복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법을 정치 탄압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치자금도 집권 세력이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정치인 범죄라고 눈 감으면 권력형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정치보복인지 가릴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혐의들만 보면 지방정부의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여야를 떠나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대통령 중심제에서 임기 초는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어려운 일을 처리하기 힘들다. 그 황금기를 여야 대치로 허비하고 있다. 그 힘을 국가 비전이 아니라 과거 청산에 쏟는 것도 안타깝다. 굳이 피할 수 없는 수사라면 속전속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빨리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혐의가 명확한 것만 손대는 게 옳다. 사소한 트집 잡기나 부풀리기, 견강부회는 피해야 한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정치권 논란까지 끼어들거나, 전선을 확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내년 경제가 매우 어둡다. 야당 협조가 없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어차피 지지율이 바닥이니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수사를 끌고 가자는 유혹도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순간 수사는 역풍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적폐 청산’만으로도 지겹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는 것만으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박수가 야유로 변할 수 있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10-30

또 조국의 늪에 빠질 건가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서울 중심가. 광화문에서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까지 중심 도로가 인파로 꽉 막혔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구속을 요구하는 맞불집회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내 교통은 마비됐다. 필자의 시내 중심가 사무실 창문 너머로 함성이 탱크 소리처럼 몰려온다.한국 정치에서 지역갈등이 망국병이라고 했다. 옳고 그른 합리적인 판단보다 우리 지역 출신이냐 아니냐로 편을 갈랐다. 지역감정만 극복하면 국민 통합이 될 거라고 믿었다. 김 전 대통령은 “춘향이의 한(恨)은 이 도령을 만나면 풀어진다”라고 말했다.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여야의 국정 경험으로 책임정치를 하리라 기대했다.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집권의 단맛을 본 뒤 선거 불복을 반복했다. 대선이 끝난 지 5개월 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고성능 스피커 소리가 서울 하늘을 찢어놓았다. 수만 명이 촛불을 흔들었다.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한 제1야당 소속 국회의원 일부도 참석했다. 반대쪽 집회에는 더 많이 모였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이다.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졌다.불과 3년 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조국 사태 때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내건 집권당 지지 세력은 서초동에, 그 반대 세력은 광화문에 모여 세 대결을 벌였다.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진실은 진흙탕 속에 내팽개쳐지고, 진영의 구호를 복창하는 깃발과 완장만 가득하다.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사 사장마저 “딱 보니 100만 명”이라고 흥분했다.진실은 무시되고, 공정은 무너졌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화려한 수사는 공허했다. 그 대가는 분명했다. 배신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돌아섰다. 20년 집권론이 무너지고, 10년 주기 정권 교체의 흐름도 끊어졌다. 조국의 짐을 민주당이 대신 짊어지고 자멸했다.이제 다시 민주당이 이재명 수호대가 됐다.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표 경선 때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 안에는 불만이 있다. 조국 사태의 전철을 밟는다는 것이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시라”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의견이 소수가 아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압수 수색하도록) 민주당을 풀어줘야 한다”라며 “이런 생각이 민주당 의원의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주말마다 서울 시내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2020년 총선까지 매주 계속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호하지도 못했고, 민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소수 시위 세력끼리만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했다. 선거 결과는 허망했다. 태극기 세력이 참패했다. 집권당에 5분의 3 의석을 허용했다. 국민의힘이 무너지는 데도 일조했다.박 전 대통령이 받은 22년 형 가운데 15년은 뇌물죄다. 대기업이 공익스포츠 재단 출연하고, 최순실 씨의 딸이 대기업 소유로 등기된 말을 탄 것을 뇌물이라고 인정했다. 국민 다수가 그것까지 권력형 범죄라고 생각했다. 태극기 집회가 고립된 이유다.이재명 대표는 그보다 나은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김용 부원장 혐의는 최순실 씨의 혐의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사업권과 허가라는 명확한 이권 관계가 있다. 금전 거래가 있었다면 범죄 혐의가 더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면서 탄핵당하고, 수사받았다. 없는 죄로 야당 정치인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야당 대표라는 것이 무조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나 다나카 일본 총리의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민주당은 이번에도 대신 싸울 건가.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려면 결백을 밝혀야 한다. 진실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조국 사태 때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강경파의 선동에 휘말려 늪에 빠졌다. 선거를 치른 뒤에야 후회했다. 이제 대선에 이어 총선마저 망칠 수 있는 기로에 섰다. /본사고문

2022-10-23

북핵 이전에 내분으로 무너질 건가

김진국 고문 북한의 도발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 13일 밤 서해와 동해로 170여 발의 포격을 하고, 군용기 10여 대로 북방한계선 근처까지 위협 비행했다.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도 쐈다.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24차례, 순항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다. 14일 오후에도 다시 동해와 서해로 390여 발, 포격했다.전쟁 직전까지 위협 수위를 끌어올린 셈이다. 외부의 위협이 있으면 단합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다. 그런데 우리는 내분이 더 커졌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 하락을 가리기 위해 안보 위기를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가 미국 쫄따구냐” “관심을 끌어보려고 미사일을 쏘는 건데, 북한을 비난하면 대화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따졌다.아픈 역사가 반복된다. 1950년 북한 탱크가 내려올 때 국군은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흑선(黑船)에 놀란 지 15년 만에 메이지유신에 성공하고, 열강 대열에 합류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조선은 세계정세에 눈을 감고, 일본과 중국·러시아 등 열강에 기댄 파벌싸움으로 갈팡질팡하다 나라를 빼앗겼다.더 이전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의 보고는 당파에 따라 달랐다. 아무 준비 없이 백성을 7년 전란에 몰아넣었다. 동인이나 서인이나 당쟁에 이용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정치권의 입씨름이 그 꼴이다. 정파에 따라 결론을 먼저 정해놓았다.말로만 초당 외교, 거국 안보다. 나라의 존망으로 도박한다. 진영으로 쪼개진 국민도 매한가지다. 북한의 핵 개발 소문에도 화들짝했던 민심이 실전 배치를 끝내고, 핵 위협을 쏟아부어도 강 건너 불구경한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의 증거가 없다”(2003년)라고 장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핵 보유가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 핵은 되고, 왜 북핵은 안 되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하는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바라는 ‘비핵화’와 같다”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했다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태도가 왜 당신 얘기와 다르냐”라고 불평을 들었다.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모르는 체하면 멍청이다. 김정은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흥정물도 없다”고 못 박았다. 대남 핵선제타격까지 법제화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팬다는 “비핵화 고집은 실패이자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는 핵보유국끼리의 협상에 남쪽이 낄 자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양에서 흥분할 정도로 접대한 직후 보낸 편지에서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친다.북한 핵무기가 자위용이라면 우리는 자위를 위해 가져도 되나. 필요한 것은 국민과 나라가 안전할 방도다. 평화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오른뺨을 때릴 때 왼뺨을 내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오판을 불러 전쟁으로 유도할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지만 무력 도발을 제압할 힘도 갖추어야 한다. 핵 보유건, 전술핵 재배치건, 원점 타격이건, 수괴 참수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올 초 북한이 넘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대화를 사정했지만, 북한은 참담한 욕설만 퍼부었다. 응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종전선언, 평화협정은 그 약속이 깨졌을 때 대응 수단이 없으면 허망하다. 미 대륙이 핵 공격에 노출돼도 미국이 핵우산을 펼칠까. 남베트남은 파리평화협정에 직접 서명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미군이 철수하는 명분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0-16

국민은 진실 규명을 원한다

김진국 고문 지난 대선은 비호감 선거였다.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0.73% 이겼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은 민주당, 혹은 이재명 후보가 싫고,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은 국민의힘, 혹은 윤석열 후보가 싫었다는 말이다.왜 민주당 정부를 거부했나. 당시 최대 유행어가 ‘내로남불’이었다. 임기 절반을 질질 끈 조국 사태는 정의를 상대적 개념으로 추락시켰다. 극심한 진영 갈등으로 진실보다 누구 편이냐가 유무죄의 판단 기준이 됐다. 정치인에게는 공정보다 진영과 표가 중요했다.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 경험밖에 없다. 표를 던진 사람도 그에게 큰 기대를 한 게 아니다. 미워하는 문 정부의 대항마여서 선택한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공정과 정의의 실현’을 기대했다. 그 일은 검사가 적임자라 생각했다. 그가 잘하리라 기대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싫어한 사람도 많다. 정의를 실현한다며 보복의 칼을 빼 들어 정치는 사라지고, 국정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임기 초에 벌써 그런 국면을 마주했다.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기대와 협치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경제도 안보도 매우 어려운 시기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최근 드라마 ‘수리남’이 인기다. 드라마에서는 대통령이 뇌물을 받고 군대까지 동원해 마약상을 돕는다. 수리남 정부가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발끈했다. 90년대 수리남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다. 하지만 이제 마약을 구하기 어려운 나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범죄는 용납할 수는 없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라도 아니다. 과거 한 범죄자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를 외쳐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범죄는 밉지만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하나다. 마찬가지로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無權有罪)’도 안 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범죄를 저질러도 건드리지 못한다면 나라가 아니다.그런데도 말이 많다. ‘검수완박’이느니 ‘감사완박’이느니 하는 말이 나온 것도 법 집행의 공정성 때문이다. 한쪽은 공정하지 않은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자고 하고, 다른 쪽은 그러면 범죄를 방치하자는 거냐고 반박한다. 한쪽이 그럼 그 권한을 경찰에 넘겨주자고 하자, 다른 쪽은 경찰은 공정하냐고 반문한다.권위주의 정부는 사정 기관을 정치에 이용했다. 야당 의원의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고, 협조하게 했다. 선거 운동 중에 구속해 손발을 묶기도 했다. 공권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는 정치를 혐오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추석 직전 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이 51.4%였다. ‘정치 보복 수사’라는 답변은 41.2%였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도 64.5%가 찬성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불법이 있으면 차별 없이 수사하라는 게 국민의 다수 의견이다.정의 실현과 정치 보복은 어떻게 다른가.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만 중요하다. 무리한 몰아가기는 역풍을 맞는다. 요란을 떨고, 결과가 허망해도(泰山鳴動鼠一匹) 비난받는다. 그런 일로 국정과 협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의 ‘논두렁 시계’처럼 망신 주기나 시간 끌기는 정치 보복 의혹을 키우게 된다.특히 정치 수사가 어려운 건 ‘내로남불’이다.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척들을 특별 감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처삼촌부터 구속했다. 그런데도 동생 전경환 문제에 걸렸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아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남을 치려면 내 주변부터 단속해야 한다. 대통령과 영부인이란 자리보다 더 영예로운 게 있나. 박사가 뭔가. 논란이 된다면 먼저 던지는 게 방법이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털어버려라. 진실만큼 튼튼한 방패는 없다./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18

이재명, 떳떳하면 검찰에 가라

김진국 고문 “전쟁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관이 보낸 문자를 노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죄 없는 김대중(DJ)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으니 충성 경쟁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DJ에 비유하는 건 DJ를 욕보이는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모두 묶었다. 군사재판에서, 없는 죄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집권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법원이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데다 제대로 해명을 안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맡긴 권력은 민생을 챙기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수사하지 말라는 말이라면 지나치다. 민생을 챙긴다고 수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 큰 의혹이 드러나 있다. 이 대표를 위해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건 사법부에 미루고, 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쟁점화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정치를 더 위기로 몰아넣는다.민주당은 ‘왜 6일이냐’라고 항의한다. 추석 밥상 이야깃거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9일이라 더 미룰 수 없다는 검찰의 해명이 일리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었던 데다 이 대표도 보궐선거 후보로 나섰다. 바로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이 있었다. 그러니 검찰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인다. 제1야당 대표이니 서면 조사를 해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다. 검찰은 서면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접촉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이재명 대표는 “먼지털이 하듯이 털다가 안 되니까 엉뚱한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소환한 건 선거법 위반 혐의 세 가지다. 수사 중인 다른 혐의들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꼬투리’로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또 말꼬투리라기엔 범죄를 전면 부인하는 중요한 말이다. 정직은 정치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하나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준 특혜 의혹과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남시 주거환경과는 2014년 12월 국토부 질의를 거쳐 ‘단순 협조 요청’이라고 당시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보고했다. 용도 변경 신청을 계속 반려하다, 이 대표의 측근이 개발사에 참여한 뒤 이듬해 5월 요청보다 2단계 더 높여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두 번째는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9박 11일 해외 출장 때 수행한 사진이 나왔다. 세 번째는 대장동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한 이 대표의 지난해 국정감사 발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직원의 환수 조항 추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틀 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뒤집었다.정치 보복을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정치인의 범죄를 무조건 덮을 수는 없다. 가뜩이나 불신받는 정치권을 비리 덩어리로 방치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선거법은 엄격하다. 사소한 거짓말로 당선 무효가 된 판례가 있다.이게 끝이 아니다. 대장동·백현동 본안과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내복은 쌍방울을 잘 입고 있다”라는 말장난으로는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진실을 소명해야 국민도 안심한다. 무리한 정치 탄압이라면 그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04

임시변통으로 집권당 문제 해결될까

김진국 고문 참 가지가지 한다. 앞이 안 보인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석 달 만에 집권당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26일 국민의힘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시켰다. 당 대표는 당 윤리위에서 6개월간 직무를 정지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비대위원장은 무효가 됐다.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판사 탓을 했다. ‘우리법연구회’를 들먹였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 다시 망신만 했다. 헛발질이 한두 번이 아니니 한 번 더 했다고 부끄럽지도 않다. 판사를 원망하는 논리가 겨우 ‘정당 자율성 침해’란다. 어물쩍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사실 법으로 따지는 정치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 부재를 의미한다. 법으로만 재단한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나. 법조인이 정치권에서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요즘은 정도가 지나쳐 모든 정치 이슈를 법원에 넘겨놓았다. 직접 넘겼건 정치를 포기해 넘어갈 명분을 줬건 마찬가지다. 이제 와 법원의 간섭을 나무라는 게 기가 막힌다.국민의힘은 가처분 결정에 대해 바로 이의신청했다. 27일 의원총회에서는 당헌·당규를 바꾸어 다시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말이 재구성이지 기존 비대위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보완하되 정치적으로는 이제까지 해온 방향으로 직진하겠다는 말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당헌·당규까지 사후에 꿰맞추는 꼼수다. 대한민국의 집권당이 이 정도인지 정말 개탄스럽다.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꽉 막힌 집권 세력이 정권을 잡자마자 섣부르게 정적부터 제거하려다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치력은 하나도 없다. 자신들의 장기인 법으로 덤볐다 되치기당했다. 그런데도 직진이다.이의 제기하고, 항고하고… 당헌·당규를 고치고, 비대위를 또 구성하고, 가처분 신청하고, 소송을 끌고… 언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갈 건가. 이준석 대표가 복귀할 때까지 끝낼 수는 있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허둥대는지 알 길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다. 5년이 긴 시간도 아니다. 정적을 만들 필요가 뭔가. 하루하루가 황금 같은 시간이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다. 경제와 안보는 하루 앞을 모르게 격변하고 있다. 엄혹한 국제 환경과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며 민생은 바닥을 보인다. 여야 없이 모두 끌어모아 달려들어도 힘든 국면에 집권당 내부 쪼개기 정치로 시간을 보낼 건가.이준석 대표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집권당을 이 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내부 총질’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이 대표의 책임을 물으려면 ‘윤핵관’도 피해갈 수 없다. 지금 당을 이끄는 게 ‘윤핵관’이고, 여론조사에서 가장 큰 불만 요인으로 드러난 집권 초기 인사를 주무른 게 그들이다.국민의힘 현 지도부는 중요 계기마다 딴 이슈를 만들어 망쳐왔다. 휴대폰 문자를 노출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해복구 노력은 사라지고,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만 주목받았다. 집권당이 단합해 분발하자고 모인 연찬회는 ‘4 미인론’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숟가락 노래’로 사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가처분 기각을 공언하고, 우리법 출신 판사라는 가짜 뉴스에 낚여 망신만 당했다.하는 일마다 도움은커녕 사고만 치고 다닌다. 이 지도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건 무슨 쇠고집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임시지도부라 해도 완전히 다시 구성하는 게 옳다. 당장 원내대표부터 다시 선출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윤핵관’은 뒤로 빠져야 한다. 이 대표만이 아니라 그들부터 선당후사(先黨後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부담이 윤 대통령에게 간다. 윤 대통령이 사태를 정리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윤 대통령도 좀 더 크게 보아야 한다. 선거 당시의 소소한 감정은 빨리 털어야 한다. 표를 주었건 아니건, 좋건 싫건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국가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갈 책임은 모두 대통령의 어깨에 있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28

속고 피해 본 국민은 왜 외면하나

김진국 고문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말이다. 그는 또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와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의) 모델하우스엔 금 수도꼭지가 (달렸고), 납품된 것을 보니 녹슨 수도꼭지가 (달렸다)”라고 말했다.국민이 속았다면 나도 속았다. 부질없다고 생각되지만, 차근차근 따져보자. “속았다”라는 건 속아서 잘못 투표했다는 말이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은 속아서 찍었다는 뜻이다. 지난 선거는 비호감 경쟁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속지 않고’ 투표했어야 한다면 이재명 후보를 찍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 전 대표의 뜻이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나친 표현이다.이 전 대표는 또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란 말도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라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이나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던 적이 있다”라는 말도 했다.선거 과정에도 윤 후보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양고기’가 아니라 ‘개고기’인 줄 진즉에 알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전 대표가 ‘개고기’인 줄 알면서 ‘양고기’라고 국민을 속였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가 아니라 ‘내가 국민을 속였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개고기’인 줄 알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돕지 않고, 다시 ‘개고기’를 판 이유는 뭔가. 장사가 끝난 뒤 큰 이문을 남길 거라고 기대한 건가.집권당 내부 갈등을 지켜보면서 어느 쪽도 편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도긴개긴, 제대로 움직이는 쪽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본질은 ‘국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국민’을 반복하자는 게 아니다. 집권당 내부 갈등은 이준석 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공방이다. 여기에서 국민은 빠져 있다. 이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속은 것은 국민이고, 대통령을 잘못 뽑고, 국정이 표류하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인데, 논쟁은 정치집단 간에 피해자 코스프레 경쟁만 하고 있다.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이 전 대표 말대로 ‘개고기’라면 그것을 판 양측에 다 책임이 있다.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판 사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개고기’가 아니라면 정쟁으로 국정을 표류시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어느 쪽이건 ‘남 탓’이 아니라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문제다.‘금 수도꼭지’가 아니라 ‘녹슨 수도꼭지’라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아파트를 다시 지을 건가, 수도꼭지를 바꿔줄 건가. 피해를 본 국민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보상할 건가. 새로 산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고 자동차 제작자와 판매자끼리 비난만 하고 시간을 끌면 그 차를 산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서로 정치집단끼리 권력투쟁만 하고 있다. 건설회사 내 사장과 전무가 싸워 누가 실권을 쥐느냐에 입주민은 관심이 없다. 빨리 물 새는 곳을 수리해주는 일이 급하다.결국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현장소장이 잘못해도 사장이 나서서 입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빨리 보상하고, 수리를 서둘러야 한다. 입주민 앞에서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고 있으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당선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갓끈을 푸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선거 이후 지적하기도 힘들게 많은 실책이 있었다.일은 잘했는데 홍보를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까운 사람부터 근신해야 한다. 그것이 첫 단추다.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놓친 느낌이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시간을 끌지 않아야 한다. 범죄에 눈을 감을 수는 없지만, 가부간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전 대표는 사생결단이고,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제1야당을 진지로 구축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국정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김진국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21

이준석 대표도 멈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계를 넘었다. 지난 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지지율은 24%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순실 국정 개입 논란이 증폭됐던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4주간 평균 지지율과 같은 수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파동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던 때에 비견된다.빨리 수습하지 못하면 국정이 마비될 상황이다. 광우병 파동 때도 야당이 함께 불을 질렀다. 지금이 그때보다 못하지 않다. 그때는 가짜뉴스라는 외부 요인이었다. 지금은 집권 세력 스스로 분란을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과 내각, 집권당 지도부가 모두 화근이다.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초보 정치인이다. 본인도 “제가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했다. 측근 관리와 인사, 정책 등 불거진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학습 능력은 뛰어나지만, 중심을 잡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 모자란 부분을 보완해줘야 할 집권 세력이 권력 투쟁으로 문제를 더 키운다. 내부 갈등을 끝내지 않으면 어떤 노력을 해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를 놓고 법을 따진다. 정치적 유불리를 평가하고, 억울하고, 섭섭한 점을 거론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면 오십보백보다. 누가 더 잘했고, 못했는지를 떠나 꼴사나운 갈등을 빨리 끝내주기를 기다린다. 힘센 사람들의 권력 놀음에 국정이 마비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이 대표 문제는 이미 강을 건넜다. 이 대표 징계는 정당 내부 문제다. 정당원 다수가 교체를 원하면 그것이 정당의 뜻이다.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송해도 소용없다. 이제 와 이 대표 징계를 철회할 수 있나. 윤 대통령의 뜻이 실려 있어 징계 의견으로 쏠린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의 실패는 피하고 싶은 것 역시 당원들의 마음이다.지금 징계를 뒤집으면 당은 어떻게 될까. 6개월 뒤 이 대표가 대표직에 복귀하면 당이 정상적으로 굴러갈까.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갈등을 조기 수습하기를 바라는 당원이 다수일 것이다. 일반 국민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 대표가 국정과 당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당원들에게 빚을 남겨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는 길이다.이 대표는 두 번 도박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유세를 포기해 지지율이 뒤집히게 했다. 결국 윤석열 후보가 무릎 꿇었다. 결과가 윤석열 당선이었지만, 이 대표는 대선 패배를 감수하는 벼랑 끝 승부를 걸었다. 겨우 0.73% 이겼다. 보수진영의 대선 패배로 도박해 이 대표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이 대표는 5일 페이스북에 “내부 총질이라는 인식도 한심”하다고 썼다. ‘내부 총질’이라는 문자를 보낸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장재원 의원에게는 ‘삼성가노(三姓家奴)’라고 비난했다. ‘아비가 셋’이라는 욕설이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전 의지다. 이번에는 국정 마비를 걸고 벼랑 끝에 섰다.이 도박에서 이 대표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윤 대통령이 무릎 꿇기를 원하는 걸까. 이 대표의 문제 제기로 국민의 마음에 ‘윤핵관’에 대한 경계심은 이미 충분히 뿌리박혔다. 윤 대통령도 ‘윤핵관’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일단 뒤로 물려야 한다. 그들의 책임이 크고, 사태 수습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순서다. 이 대표도 그 정도로 명분을 얻고, 마무리했으면 좋겠다.정치의 명분은 국민에게 있다. 윤 대통령을 공격한다고 그 지지가 이 대표에게 바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보수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 정부가 중도 하차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좋으나 싫으나 5년 동안은 윤 대통령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 질책을 넘어 몽둥이를 들면 반발하게 된다. 소수 ‘팬덤’을 넘어 전체 보수의 지도자가 되려면 보수 지지자들의 희망을 담보로 도박해선 안 된다. 자기를 버리고,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일 때 미래가 있다.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정치인치고 오래간 사람이 없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07

양보할 줄도 아는 게 정치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부터 휴가다. 폭염과 짜증 나는 현실을 잠시 피해 머리를 식힐 시간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쳤다.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불만도 있지만 실망과 아쉬움도 많다. 지지 여부를 떠나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한다.20%대 지지율로는 국정 동력이 안 생긴다. 공무원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경찰의 항명도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다. 임기 초에는 대통령에게 힘이 집중된다. 누구나 두려워하며 눈치를 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벌써 얕보이고 있다. 힘은 공포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어느 조사에서나 인사 문제를 지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잘하는 사람을 누구든 쓸 수 있다. 이념과 지역도 장벽이 되지 않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반대 정당의 인재까지 쓸 수 있다. 다만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최적의 인재를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대가 꺾인 건 여기서부터다. 사적 인연의 좁은 지인 풀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인적인 오랜 인연에 모든 국정을 의지한다고 알려졌을 때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통령이 나눠준 그 자리는 ‘내 표’와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임의로 나눠줘도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검찰 이외 경험이 거의 없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그 좁은 우물에 자신을 가둬버리는 게 문제다.특히 검사가 너무 많다. 검사가 모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서울 법대 출신으로만 채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엘리트주의만이 아니다. 세상일은 유죄와 무죄로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법률가가 많은 정치는 옳고 그름만 따진다. 피고와 원고, 내 편 아니면 적이다. 야당도 전투적인 법률가들의 목소리가 크다. 서로 내 편이 옳다고 고함지르니 대화와 타협이 있을 리 없다. 정치가 실종됐다.집권당을 보면 더 한심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20%대로 추락하고서도 반성이 없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을 향해 손가락질했지만, 국민의힘도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노력 없이는 큰 세력이 될 수 없다.당장 이준석 대표 문제는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게 달려들었다. 이 대표는 대선 때 여러 차례 윤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 이 대표의 힘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인간적으로 섭섭한 앙금이 남았을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노출한 문자를 보면 이 대표를 향한 불편한 감정이 ‘윤핵관’들의 과잉 충성 탓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대표를 밀어낸 방법은 너무 속이 보인다. 그런 무리한 방법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나름의 세력이 있다. 아무리 얄미워도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 대표의 팬덤만이 아니다. 이 대표를 공격하는 전선에 극우 인사들을 배치해 집권 세력 스스로 극우의 틀에 갇혔다. 중도와 젊은 층을 모두 밀어내는 패착을 뒀다.아직 선거가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2년은 심각한 여소야대를 견뎌야 한다. 그동안 야당의 협조는 어떻게 얻을 것이며, 2년 뒤 선거는 왜소해진 정당으로 치를 것인가. 젊은 유권자는 현재의 그 숫자가 아니다. 점점 비중이 커지는 세력이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국정도 잘하는 건 아니다. 잡음이 많이 이는 게 그 부분이다. 가장 믿는 측근은 위기 때를 위해 아껴두는 법이다. 최고의 전문가를 앞세우고, 가까운 사람들은 잠시 뒤로 물리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윤 대통령은 검사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직진한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지킬 것과 내줄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하고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단호한 장악력도 필요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은 절제가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31

선거 불복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서 품격이 사라졌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공격만 난무한다. 인터넷 단문의 영향이 크다. 정치 팬덤과 진영정치의 당연한 결과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잘하는 정치인이 설치는 세상이다. 민주당에서 ‘탄핵’, ‘촛불’, ‘레임덕’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계속 나온다. 지난주에는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서 ‘레임덕’과 ‘탄핵’을 공개 거론했다. 직접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말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탄핵할 수도 있다’라는 위협이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등 무소속 의원 7명도 민주당 출신들이다. 국민의힘 115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민주당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탄핵도 할 수 있다.선거 때는 지지 후보에 따라 유권자도 갈라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게 국민은 다시 하나가 된다. 공약이 서로 충돌하고 대결을 벌이지만 선거 때와 달라진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긴 후보를 계속 공격하는 건 그러한 선택을 한 유권자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취임 직후에는 대개 지지도가 오른다. 선거 때 찍지 않은 사람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 새 정부가 일을 잘 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는 시기다. 역대 대통령을 봐도 집권 중반기가 돼서야 부정적 여론과 긍정적 여론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각종 여론조사마다 지지율이 30%를 겨우 넘는다. 부정 평가는 60%를 넘는다. 뭘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 지지율이 위기에 빠졌다.물론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공정’ 가치의 상징으로 당선됐다. 조국 사태 등으로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취임 초 인사 문제와 관련해 잡음이 계속되면서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겸손한 자세로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불만의 원인이 된 가족과 측근들을 자제시키고, 대통령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그렇더라도 야당의 흔들기는 지나친 점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윤 대통령의 정책을 선택했다. 그러면 최소한 체계를 갖추고 정책을 추진할 시간은 주는 게 민주주의의 금도(襟度)다. 서투른 국정에 조언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탄핵과 촛불을 이야기하는 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하다.윤 대통령은 허니문 기간이 없었다. 당선되자마자 지방선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이어진 선거를 위해 전투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그때까지야 어쩔 수 없는 시간표 탓이라 해도 그 이후에도 ‘탄핵’과 ‘촛불’이란 말까지 꺼내며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아무리 많이 싸우는 정치라 해도 절제가 필요하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위기를 겪었다. 광우병을 왜곡·과장한 TV 보도 이후 민주당과 연예인들이 앞장선 촛불집회가 온 나라를 흔들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20% 아래로 떨어지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 동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광우병은 근거 없는 선동이었다.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SNS로 당시의 경험을 반복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정당이 여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선거를 뒤집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윤 대통령도 야당과 야당 지지자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여고, 야고, 대통령은 모두 손을 잡아야 할 상대다. 원인이 무엇이든 국정 실패의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온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나로 뭉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선거가 나라를 쪼개고, 선거가 끝나도 승복하지 않고, 바로 다음 선거전을 시작한다면 나라가 위험하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선거 불복은 용납할 수 없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24

지지율이 무너지는 다섯 가지 이유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불안하다. 한국갤럽이 15일 발표한 지지율은 32%다. ‘잘못한다’는 53%다. 심지어 다시 투표하면 이재명을 찍겠다는 사람이 50.3%이고, 윤석열 후보는 35.3%라는 여론조사 결과(미디어토마토)도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취임 2분기에 20%대로 급락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광우병 파동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1년도 안 돼 20%대로 떨어졌다. 취임 초 지지율 급락은 국정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이때를 놓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다행히 이 전 대통령은 곧 지지율을 회복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비주류 대통령으로 고생했다. 두 대통령 시절 집권당이 불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북 송금 수사로 민주당 주류였던 호남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당을 쪼갰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박근혜 대표와 긴장 관계였다. 여야 대립은 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당내 갈등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그래서 국민이 불안하다. 지난 선거는 비호감 선거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가 싫어 윤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가 대부분이다. 뽑아놓고는 걱정이다. 국정 운영 능력에 반신반의한다. 믿음을 주는 게 관건이다.그런데 첫째, 집권당 꼴이 말이 아니다. 대표가 자격정지다. ‘윤핵관’끼리도 관계가 묘하고, 어수선하다. 장관과 청와대 인사에 대해 말이 많다. 일부는 탈락했다. 누가 추천했느냐를 두고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인사 불만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국민을 향해 “이전 정부와 비교해보라”라고 윽박지른다. 반성이 없으니 더 나아질 희망도 없다.둘째, 정부가 과거로 달린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지겨웠던 ‘적폐 청산’의 후속편이다. 문재인 정부 때 윤 대통령이 그 일을 했다. 정의가 뒤집힌 일들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매달리기에는 미래가 너무 엄중하다. 빨리 끝내야 한다.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대통령만이라도 민생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셋째, 정권을 교체한 건 ‘빠 정치’가 싫어서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고, 공격하는 정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욕설로 소음 테러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용되는 판”이라고 부추기는 건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선과 악으로 갈랐다. 상대편에 친일파, 토착 왜구란 딱지를 붙였다. 국제 정세도 현실이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가공의 세계를 그렸다. 이런 흑백논리가 반복되면 곤란하다. 토착 왜구의 대척점에 빨갱이, 간첩이 있다. 정책도 문 정부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탈원전 등을 절대 선으로 놓고 비타협적으로 밀어붙였다. 반작용으로 반대 방향으로만 돌격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넷째, 대통령은 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 말이 너무 길다고 한다. 회의하면 대통령 혼자 말하고, 끝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혼자 다 아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들어야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다섯째, 가족과 측근 프레임을 빨리 벗어야 한다. 전임 대통령들도 모두 가족 리스크가 있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후보 시절부터 많은 구설을 겪었다. 공격적인 음해가 지금도 계속된다. 인사 때마다 김 여사 이름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절제되고 투명한 활동이 필요하다. 공식조직의 지원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윤핵관’ 프레임도 빨리 벗어야 한다. 몇 사람이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을 즐기는 동안 대부분 사람은 멀어진다. 공조직의 힘이 빠진다. 점을 쳐서 맞힐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결과는 0% 아니면 100%다. 우연히 맞힌 그 절반 때문에 미신에 빠진다. 윤 대통령의 기적적인 승리를 예측한 사람도 많다. 자랑할 일도 아니다. 국정에는 입을 못 대게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의혹만으로도 민심이 흔들린다. ‘○○법사’, ‘○○사랑’ 같은 비선과 팬클럽을 차단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섭섭해도 단호해야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 /본사 고문

2022-07-17

선거는 쇼지만 국정은 현실이다

김진국 고문 우리 정치가 많이 바뀌고 있다. 옛날 문법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세대와 젠더 갈등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59초 쇼츠’나 ‘도어스테핑’도 전혀 짐작 못한 새 흐름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즉석 문답하는 ‘도어스테핑’을 보면 ‘59초 쇼츠’가 떠오른다.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이 불편을 이야기하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 윤 후보가 “좋아. 빠르게 가!”라며 신나게 밀어붙이는 영상이다. 도어스테핑에서도 윤 대통령은 흥분된 목소리와 제스처로 자신 있게 단정적인 답을 한다.도어스테핑은 대환영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5년 임기 동안 신년 기자회견, 취임 기념 회견을 다 합쳐봐야 8번 남짓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대통령과 기자가 각본 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신선하다. 그 질문은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던지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다.그런데 지난주 잇달아 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다. 지난 5일 인사 실패와 부실 검증을 묻자, 윤 대통령은 “전(前)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라”고 버럭 말한 뒤 들어가 버렸다.그전에도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이 여러 번 입길에 올랐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 그는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검사들이 정·관계에 많이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고도 말했다. “지지율에 신경 안 쓴다”, “대통령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뒷말이 무성했다.도어스테핑은 사전 각본 없는 게 매력이다. 그렇지만 너무 거칠다. 생각을 감추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엄중하다.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참모들과 먼저 정리해놓아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참모들이 예상 문답을 준비해줘도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듣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도 한다. 입을 열 때마다 참모들이 해명하러 다니는 일이 반복되면 국민이 불안하다.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하기 전에 지하 서재에서 수십 번씩 원고를 다듬고, 연습했다. 1987년 양김이 갈라져 평민당을 만들기 전에도 수개월째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걸 들었다. 그 논리를 주변 의원들에게 세뇌하듯 퍼뜨렸고, 결국 분당했다.평생을 방송인으로 산 봉두완 씨가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미클럽 송년회에서 할 사소한 말까지 두툼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들고 진행하는 걸 봤다. 말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준비는 그렇게 철저했다.윤 대통령은 소탈하다. 사적인 자리라면 나무랄 게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인간적이다. 그렇지만 기자에게 하는 말은 기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은 TV를 통해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말한다고 느낀다. 국민은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걸로 받아들인다.취임하는 순간 국정의 모든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 정권이 어떤 일을 했건, 우리 역사가 어떠했건, 모든 과거가 집적된 국정을 끌고 가겠다고 맡은 자리다. 과거 정권의 잘못은 국민이 이미 선거에서 심판했다. 또 국정은 상대 평가가 아니다. 비판받을 때마다 과거 정권을 들먹이면 무책임해 보인다.윤 대통령 말은 자신감이 넘친다. 답변이 시원시원하다. 그는 오만해 보이는 서울법대 출신의 대선 징크스도 깼다. 정치 경험도 없이 짧은 시간에 바로 대통령이 됐다. 모든 게 쉬워 보일 수 있다. 이 길을 조언한 사람만 믿고 싶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쪽에는 귀를 닫게 된다. 이런 모습이 자칫 국정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네가 뭘 알아’ 하는 식의 안하무인으로 비칠 수 있다.선거는 끝났다. 선거는 흥분 속에 치른다. 그러나 잔치 뒤의 경제와 안보는 현실이다. 좀 더 진지한 고민과 중장기 구상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비호감의 경쟁이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맡길만하다는 믿음을 줄 시간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7-10

정치적 낙하산은 임기제의 위선 버려야

김진국 고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논의도 많이 하는 데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 말하면 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1년 남은 임기를 다 채우겠다고 한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350개 공공기관장 가운데 약 70% 정도가 윤 대통령과 1년 이상 함께 일해야 한다. 공기업 36곳 중 30곳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절반이 2년 이상 남았다.이 문제는 처음으로 정권 교체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민한 것 같다. 곽해곤 대한한의사협회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각각 일하고, 청와대 근무도 했다. 실무자가 김대중 당선자에게 “공공기관장들 사표를 모두 받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대중 당선자가 되물었다.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했어요?”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과거 정부 출신 인사들이 일제히 사표를 인수위에 제출했습니다.” “관행인가?” “불문율이었습니다.”김대중 당선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민주 정부에서 과거처럼 법을 무시하고 사표를 내라고 할 수 없으니, 임기가 올해 안에 끝나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임기가 내년 이후에 계속되는 사람은 올해 안에 사직서를 내는 방향으로 의논하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관행을 세워 다음 정권에서도 이렇게 처리해 주면 좋지 않겠는가.” 역시 어느 정도 말미를 주고 정리했다.정권을 승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2004년 5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제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1년여 말미를 주고 사퇴시켰다. 이명박 정부 때는 53%를 교체했다. 문재인 정부로 넘어가면서도 37%가 물러났다. 이때 사퇴를 강요한 것이 범죄가 됐다. 산하기관장에게 사퇴 압박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지난 1월 대법원이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했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공공기관장 임기제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 측근과 선거 공신들의 포상용으로 전락하는 걸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자리를 가장 정치적인 인물들이 차지해왔다. ‘늘공’(직업공무원)도 정무직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장은 위선적으로 운영된다. ‘외부 공모’도 미리 내정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더구나 새 정부의 핵심 정책에 반대 견해를 보인 사람도 임기를 지킨다고 버틴다. 선거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는데, 일부 공공기관은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거다. 세금으로 대통령 발목 잡는 일을 시키는 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지난 2월 탈원전의 핵심인사를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알박기했다. 대선 때 여야 후보가 모두 비판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입안한 측근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대못으로 박아놨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 정책, 외교정책을 현 정부와 정반대 방향으로 추진해온 인사들이 관련 기관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새 정부와 너무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2년 넘게 유지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가 망하라고 방해하는 꼴이다. 새 정부는 구조 조정해 관련 기관을 없애버리거나, 평가를 통해 물갈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먼지 털이식 비리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불법과 편법을 줄타기하고, 비효율을 반복해야 하나.이 기회에 공공기관장과 정권의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위선을 버리고 타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같은 처지다. 정무적으로 임명할 자리와 중립성이 필요한 자리를 구분해 임기 문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당장 정부의 방향과 관련된 자리, 정치성이 심한 낙하산 인사는 교체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03

정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은 없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6·25전쟁 제72주년이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켰다.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 건 눈부신 경제 발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최근에는 우리와 싸우거나, 싸운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있다. 피아가 뒤섞인 전쟁 통에 비무장 민간인으로 이리저리 동원돼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밝혀주려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외면해도 될 만큼 하찮은 생명은 없다.전쟁의 폐허에서, 보릿고개를 넘어 경제 개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어떤 이념이나 국가주의도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화운동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기에 더욱 그렇다.사건의 진실은 조사해 밝히면 된다. 그렇지만 생각의 기본 틀은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이게 왜 현안이냐.” 우 위원장의 발언은 개발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던 논리와 너무 닮았다.왜 민주화를 했나.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생을 내세워 입을 막을 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화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해명해야 한다.우 위원장은 또 “해당 공무원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월북(越北)’을 ‘삼팔선 또는 휴전선의 북쪽으로 넘어감’이라고 풀이해놨다. 말 그대로 이대준 씨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됐으니 ‘월북’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월북’보다 본인의 ‘의지’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우리 사회에서 ‘월북’은 북한으로의 귀순을 의미한다. 전쟁 상태인 적국에 투항한 것이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6·25전쟁 시절 월북자 가족은 연좌제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고 해도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눈으로 본 우 위원장이 할 말은 아니다.월북이 첩보 판단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더구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인 월북은 유죄 판결보다 더한 ‘낙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간첩 사건을 재심하면서 고문이나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를 배제하면서 뒤집었다. 적어도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는 문제라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정리하는 게 옳다. 편의에 따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좋을 만큼 하찮은 인권은 없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유족에게 편지를 보내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행정법원은 관련 서류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관련 서류를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해 15년간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인해버렸다.고 이대준 씨는 도박 빚이 부풀려지고,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인격파탄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가족은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이 없고, 문서도 감췄다. 북한은 범죄자가 탈북해도 송환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대준 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북한 측이 이 씨를 발견한 것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6시간여 뒤 총격하고, 소각했다. 그 사이에 정부의 조치는 알려진 게 없다. 국민이 위험한 처지인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피해자만 비난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적어도 잘못이 있다면 사후에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본사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