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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핵 이전에 내분으로 무너질 건가

김진국 고문 북한의 도발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 13일 밤 서해와 동해로 170여 발의 포격을 하고, 군용기 10여 대로 북방한계선 근처까지 위협 비행했다.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도 쐈다.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24차례, 순항미사일을 3차례 발사했다. 14일 오후에도 다시 동해와 서해로 390여 발, 포격했다.전쟁 직전까지 위협 수위를 끌어올린 셈이다. 외부의 위협이 있으면 단합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다. 그런데 우리는 내분이 더 커졌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 하락을 가리기 위해 안보 위기를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가 미국 쫄따구냐” “관심을 끌어보려고 미사일을 쏘는 건데, 북한을 비난하면 대화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따졌다.아픈 역사가 반복된다. 1950년 북한 탱크가 내려올 때 국군은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흑선(黑船)에 놀란 지 15년 만에 메이지유신에 성공하고, 열강 대열에 합류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조선은 세계정세에 눈을 감고, 일본과 중국·러시아 등 열강에 기댄 파벌싸움으로 갈팡질팡하다 나라를 빼앗겼다.더 이전 임진왜란 직전 조선통신사의 보고는 당파에 따라 달랐다. 아무 준비 없이 백성을 7년 전란에 몰아넣었다. 동인이나 서인이나 당쟁에 이용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정치권의 입씨름이 그 꼴이다. 정파에 따라 결론을 먼저 정해놓았다.말로만 초당 외교, 거국 안보다. 나라의 존망으로 도박한다. 진영으로 쪼개진 국민도 매한가지다. 북한의 핵 개발 소문에도 화들짝했던 민심이 실전 배치를 끝내고, 핵 위협을 쏟아부어도 강 건너 불구경한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2001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의 증거가 없다”(2003년)라고 장담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핵 보유가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 핵은 되고, 왜 북핵은 안 되나?”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하는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바라는 ‘비핵화’와 같다”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증’했다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태도가 왜 당신 얘기와 다르냐”라고 불평을 들었다.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모르는 체하면 멍청이다. 김정은은 “절대로 먼저 핵포기,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흥정물도 없다”고 못 박았다. 대남 핵선제타격까지 법제화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안킷 팬다는 “비핵화 고집은 실패이자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는 핵보유국끼리의 협상에 남쪽이 낄 자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평양에서 흥분할 정도로 접대한 직후 보낸 편지에서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친다.북한 핵무기가 자위용이라면 우리는 자위를 위해 가져도 되나. 필요한 것은 국민과 나라가 안전할 방도다. 평화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오른뺨을 때릴 때 왼뺨을 내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오판을 불러 전쟁으로 유도할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지만 무력 도발을 제압할 힘도 갖추어야 한다. 핵 보유건, 전술핵 재배치건, 원점 타격이건, 수괴 참수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올 초 북한이 넘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대화를 사정했지만, 북한은 참담한 욕설만 퍼부었다. 응징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종전선언, 평화협정은 그 약속이 깨졌을 때 대응 수단이 없으면 허망하다. 미 대륙이 핵 공격에 노출돼도 미국이 핵우산을 펼칠까. 남베트남은 파리평화협정에 직접 서명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미군이 철수하는 명분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0-16

국민은 진실 규명을 원한다

김진국 고문 지난 대선은 비호감 선거였다.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0.73% 이겼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은 민주당, 혹은 이재명 후보가 싫고,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은 국민의힘, 혹은 윤석열 후보가 싫었다는 말이다.왜 민주당 정부를 거부했나. 당시 최대 유행어가 ‘내로남불’이었다. 임기 절반을 질질 끈 조국 사태는 정의를 상대적 개념으로 추락시켰다. 극심한 진영 갈등으로 진실보다 누구 편이냐가 유무죄의 판단 기준이 됐다. 정치인에게는 공정보다 진영과 표가 중요했다.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 경험밖에 없다. 표를 던진 사람도 그에게 큰 기대를 한 게 아니다. 미워하는 문 정부의 대항마여서 선택한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공정과 정의의 실현’을 기대했다. 그 일은 검사가 적임자라 생각했다. 그가 잘하리라 기대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를 싫어한 사람도 많다. 정의를 실현한다며 보복의 칼을 빼 들어 정치는 사라지고, 국정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임기 초에 벌써 그런 국면을 마주했다.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의 기대와 협치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경제도 안보도 매우 어려운 시기다.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최근 드라마 ‘수리남’이 인기다. 드라마에서는 대통령이 뇌물을 받고 군대까지 동원해 마약상을 돕는다. 수리남 정부가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발끈했다. 90년대 수리남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다. 하지만 이제 마약을 구하기 어려운 나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범죄는 용납할 수는 없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라도 아니다. 과거 한 범죄자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無錢有罪)’를 외쳐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범죄는 밉지만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하나다. 마찬가지로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無權有罪)’도 안 된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범죄를 저질러도 건드리지 못한다면 나라가 아니다.그런데도 말이 많다. ‘검수완박’이느니 ‘감사완박’이느니 하는 말이 나온 것도 법 집행의 공정성 때문이다. 한쪽은 공정하지 않은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자고 하고, 다른 쪽은 그러면 범죄를 방치하자는 거냐고 반박한다. 한쪽이 그럼 그 권한을 경찰에 넘겨주자고 하자, 다른 쪽은 경찰은 공정하냐고 반문한다.권위주의 정부는 사정 기관을 정치에 이용했다. 야당 의원의 약점을 이용해 협박하고, 협조하게 했다. 선거 운동 중에 구속해 손발을 묶기도 했다. 공권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는 정치를 혐오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추석 직전 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이 51.4%였다. ‘정치 보복 수사’라는 답변은 41.2%였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도 64.5%가 찬성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불법이 있으면 차별 없이 수사하라는 게 국민의 다수 의견이다.정의 실현과 정치 보복은 어떻게 다른가.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만 중요하다. 무리한 몰아가기는 역풍을 맞는다. 요란을 떨고, 결과가 허망해도(泰山鳴動鼠一匹) 비난받는다. 그런 일로 국정과 협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의 ‘논두렁 시계’처럼 망신 주기나 시간 끌기는 정치 보복 의혹을 키우게 된다.특히 정치 수사가 어려운 건 ‘내로남불’이다.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척들을 특별 감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처삼촌부터 구속했다. 그런데도 동생 전경환 문제에 걸렸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아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남을 치려면 내 주변부터 단속해야 한다. 대통령과 영부인이란 자리보다 더 영예로운 게 있나. 박사가 뭔가. 논란이 된다면 먼저 던지는 게 방법이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털어버려라. 진실만큼 튼튼한 방패는 없다./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18

이재명, 떳떳하면 검찰에 가라

김진국 고문 “전쟁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관이 보낸 문자를 노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죄 없는 김대중(DJ)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으니 충성 경쟁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DJ에 비유하는 건 DJ를 욕보이는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모두 묶었다. 군사재판에서, 없는 죄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집권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법원이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데다 제대로 해명을 안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맡긴 권력은 민생을 챙기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수사하지 말라는 말이라면 지나치다. 민생을 챙긴다고 수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 큰 의혹이 드러나 있다. 이 대표를 위해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건 사법부에 미루고, 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쟁점화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정치를 더 위기로 몰아넣는다.민주당은 ‘왜 6일이냐’라고 항의한다. 추석 밥상 이야깃거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9일이라 더 미룰 수 없다는 검찰의 해명이 일리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었던 데다 이 대표도 보궐선거 후보로 나섰다. 바로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이 있었다. 그러니 검찰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인다. 제1야당 대표이니 서면 조사를 해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다. 검찰은 서면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접촉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이재명 대표는 “먼지털이 하듯이 털다가 안 되니까 엉뚱한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소환한 건 선거법 위반 혐의 세 가지다. 수사 중인 다른 혐의들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꼬투리’로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또 말꼬투리라기엔 범죄를 전면 부인하는 중요한 말이다. 정직은 정치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하나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준 특혜 의혹과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남시 주거환경과는 2014년 12월 국토부 질의를 거쳐 ‘단순 협조 요청’이라고 당시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보고했다. 용도 변경 신청을 계속 반려하다, 이 대표의 측근이 개발사에 참여한 뒤 이듬해 5월 요청보다 2단계 더 높여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두 번째는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9박 11일 해외 출장 때 수행한 사진이 나왔다. 세 번째는 대장동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한 이 대표의 지난해 국정감사 발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직원의 환수 조항 추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틀 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뒤집었다.정치 보복을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정치인의 범죄를 무조건 덮을 수는 없다. 가뜩이나 불신받는 정치권을 비리 덩어리로 방치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선거법은 엄격하다. 사소한 거짓말로 당선 무효가 된 판례가 있다.이게 끝이 아니다. 대장동·백현동 본안과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내복은 쌍방울을 잘 입고 있다”라는 말장난으로는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진실을 소명해야 국민도 안심한다. 무리한 정치 탄압이라면 그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04

임시변통으로 집권당 문제 해결될까

김진국 고문 참 가지가지 한다. 앞이 안 보인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석 달 만에 집권당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26일 국민의힘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시켰다. 당 대표는 당 윤리위에서 6개월간 직무를 정지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비대위원장은 무효가 됐다.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판사 탓을 했다. ‘우리법연구회’를 들먹였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 다시 망신만 했다. 헛발질이 한두 번이 아니니 한 번 더 했다고 부끄럽지도 않다. 판사를 원망하는 논리가 겨우 ‘정당 자율성 침해’란다. 어물쩍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사실 법으로 따지는 정치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 부재를 의미한다. 법으로만 재단한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나. 법조인이 정치권에서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요즘은 정도가 지나쳐 모든 정치 이슈를 법원에 넘겨놓았다. 직접 넘겼건 정치를 포기해 넘어갈 명분을 줬건 마찬가지다. 이제 와 법원의 간섭을 나무라는 게 기가 막힌다.국민의힘은 가처분 결정에 대해 바로 이의신청했다. 27일 의원총회에서는 당헌·당규를 바꾸어 다시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말이 재구성이지 기존 비대위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보완하되 정치적으로는 이제까지 해온 방향으로 직진하겠다는 말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당헌·당규까지 사후에 꿰맞추는 꼼수다. 대한민국의 집권당이 이 정도인지 정말 개탄스럽다.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꽉 막힌 집권 세력이 정권을 잡자마자 섣부르게 정적부터 제거하려다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치력은 하나도 없다. 자신들의 장기인 법으로 덤볐다 되치기당했다. 그런데도 직진이다.이의 제기하고, 항고하고… 당헌·당규를 고치고, 비대위를 또 구성하고, 가처분 신청하고, 소송을 끌고… 언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갈 건가. 이준석 대표가 복귀할 때까지 끝낼 수는 있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허둥대는지 알 길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다. 5년이 긴 시간도 아니다. 정적을 만들 필요가 뭔가. 하루하루가 황금 같은 시간이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다. 경제와 안보는 하루 앞을 모르게 격변하고 있다. 엄혹한 국제 환경과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며 민생은 바닥을 보인다. 여야 없이 모두 끌어모아 달려들어도 힘든 국면에 집권당 내부 쪼개기 정치로 시간을 보낼 건가.이준석 대표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집권당을 이 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내부 총질’이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이 대표의 책임을 물으려면 ‘윤핵관’도 피해갈 수 없다. 지금 당을 이끄는 게 ‘윤핵관’이고, 여론조사에서 가장 큰 불만 요인으로 드러난 집권 초기 인사를 주무른 게 그들이다.국민의힘 현 지도부는 중요 계기마다 딴 이슈를 만들어 망쳐왔다. 휴대폰 문자를 노출해 논란을 일으켰다. 수해복구 노력은 사라지고,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만 주목받았다. 집권당이 단합해 분발하자고 모인 연찬회는 ‘4 미인론’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숟가락 노래’로 사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가처분 기각을 공언하고, 우리법 출신 판사라는 가짜 뉴스에 낚여 망신만 당했다.하는 일마다 도움은커녕 사고만 치고 다닌다. 이 지도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건 무슨 쇠고집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임시지도부라 해도 완전히 다시 구성하는 게 옳다. 당장 원내대표부터 다시 선출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윤핵관’은 뒤로 빠져야 한다. 이 대표만이 아니라 그들부터 선당후사(先黨後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부담이 윤 대통령에게 간다. 윤 대통령이 사태를 정리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윤 대통령도 좀 더 크게 보아야 한다. 선거 당시의 소소한 감정은 빨리 털어야 한다. 표를 주었건 아니건, 좋건 싫건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국가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갈 책임은 모두 대통령의 어깨에 있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28

속고 피해 본 국민은 왜 외면하나

김진국 고문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말이다. 그는 또 “집을 분양했으면 모델하우스와 얼마나 닮았는지가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의) 모델하우스엔 금 수도꼭지가 (달렸고), 납품된 것을 보니 녹슨 수도꼭지가 (달렸다)”라고 말했다.국민이 속았다면 나도 속았다. 부질없다고 생각되지만, 차근차근 따져보자. “속았다”라는 건 속아서 잘못 투표했다는 말이다.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은 속아서 찍었다는 뜻이다. 지난 선거는 비호감 경쟁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니 ‘속지 않고’ 투표했어야 한다면 이재명 후보를 찍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 전 대표의 뜻이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나친 표현이다.이 전 대표는 또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란 말도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라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이나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던 적이 있다”라는 말도 했다.선거 과정에도 윤 후보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양고기’가 아니라 ‘개고기’인 줄 진즉에 알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전 대표가 ‘개고기’인 줄 알면서 ‘양고기’라고 국민을 속였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가 아니라 ‘내가 국민을 속였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개고기’인 줄 알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돕지 않고, 다시 ‘개고기’를 판 이유는 뭔가. 장사가 끝난 뒤 큰 이문을 남길 거라고 기대한 건가.집권당 내부 갈등을 지켜보면서 어느 쪽도 편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도긴개긴, 제대로 움직이는 쪽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본질은 ‘국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국민’을 반복하자는 게 아니다. 집권당 내부 갈등은 이준석 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공방이다. 여기에서 국민은 빠져 있다. 이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속은 것은 국민이고, 대통령을 잘못 뽑고, 국정이 표류하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인데, 논쟁은 정치집단 간에 피해자 코스프레 경쟁만 하고 있다.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이 전 대표 말대로 ‘개고기’라면 그것을 판 양측에 다 책임이 있다.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판 사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개고기’가 아니라면 정쟁으로 국정을 표류시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어느 쪽이건 ‘남 탓’이 아니라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문제다.‘금 수도꼭지’가 아니라 ‘녹슨 수도꼭지’라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아파트를 다시 지을 건가, 수도꼭지를 바꿔줄 건가. 피해를 본 국민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보상할 건가. 새로 산 자동차에 문제가 있다고 자동차 제작자와 판매자끼리 비난만 하고 시간을 끌면 그 차를 산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은 안중에 없고, 서로 정치집단끼리 권력투쟁만 하고 있다. 건설회사 내 사장과 전무가 싸워 누가 실권을 쥐느냐에 입주민은 관심이 없다. 빨리 물 새는 곳을 수리해주는 일이 급하다.결국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현장소장이 잘못해도 사장이 나서서 입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빨리 보상하고, 수리를 서둘러야 한다. 입주민 앞에서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고 있으면 분통이 터질 일이다. 당선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갓끈을 푸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선거 이후 지적하기도 힘들게 많은 실책이 있었다.일은 잘했는데 홍보를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까운 사람부터 근신해야 한다. 그것이 첫 단추다.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놓친 느낌이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시간을 끌지 않아야 한다. 범죄에 눈을 감을 수는 없지만, 가부간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전 대표는 사생결단이고,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제1야당을 진지로 구축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국정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김진국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21

이준석 대표도 멈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계를 넘었다. 지난 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지지율은 24%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순실 국정 개입 논란이 증폭됐던 2016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4주간 평균 지지율과 같은 수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파동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던 때에 비견된다.빨리 수습하지 못하면 국정이 마비될 상황이다. 광우병 파동 때도 야당이 함께 불을 질렀다. 지금이 그때보다 못하지 않다. 그때는 가짜뉴스라는 외부 요인이었다. 지금은 집권 세력 스스로 분란을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과 내각, 집권당 지도부가 모두 화근이다.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초보 정치인이다. 본인도 “제가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했다. 측근 관리와 인사, 정책 등 불거진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학습 능력은 뛰어나지만, 중심을 잡으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 모자란 부분을 보완해줘야 할 집권 세력이 권력 투쟁으로 문제를 더 키운다. 내부 갈등을 끝내지 않으면 어떤 노력을 해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를 놓고 법을 따진다. 정치적 유불리를 평가하고, 억울하고, 섭섭한 점을 거론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눈으로 보면 오십보백보다. 누가 더 잘했고, 못했는지를 떠나 꼴사나운 갈등을 빨리 끝내주기를 기다린다. 힘센 사람들의 권력 놀음에 국정이 마비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이 대표 문제는 이미 강을 건넜다. 이 대표 징계는 정당 내부 문제다. 정당원 다수가 교체를 원하면 그것이 정당의 뜻이다.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소송해도 소용없다. 이제 와 이 대표 징계를 철회할 수 있나. 윤 대통령의 뜻이 실려 있어 징계 의견으로 쏠린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의 실패는 피하고 싶은 것 역시 당원들의 마음이다.지금 징계를 뒤집으면 당은 어떻게 될까. 6개월 뒤 이 대표가 대표직에 복귀하면 당이 정상적으로 굴러갈까.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갈등을 조기 수습하기를 바라는 당원이 다수일 것이다. 일반 국민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 대표가 국정과 당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당원들에게 빚을 남겨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는 길이다.이 대표는 두 번 도박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유세를 포기해 지지율이 뒤집히게 했다. 결국 윤석열 후보가 무릎 꿇었다. 결과가 윤석열 당선이었지만, 이 대표는 대선 패배를 감수하는 벼랑 끝 승부를 걸었다. 겨우 0.73% 이겼다. 보수진영의 대선 패배로 도박해 이 대표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이 대표는 5일 페이스북에 “내부 총질이라는 인식도 한심”하다고 썼다. ‘내부 총질’이라는 문자를 보낸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장재원 의원에게는 ‘삼성가노(三姓家奴)’라고 비난했다. ‘아비가 셋’이라는 욕설이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전 의지다. 이번에는 국정 마비를 걸고 벼랑 끝에 섰다.이 도박에서 이 대표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윤 대통령이 무릎 꿇기를 원하는 걸까. 이 대표의 문제 제기로 국민의 마음에 ‘윤핵관’에 대한 경계심은 이미 충분히 뿌리박혔다. 윤 대통령도 ‘윤핵관’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일단 뒤로 물려야 한다. 그들의 책임이 크고, 사태 수습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순서다. 이 대표도 그 정도로 명분을 얻고, 마무리했으면 좋겠다.정치의 명분은 국민에게 있다. 윤 대통령을 공격한다고 그 지지가 이 대표에게 바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보수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 정부가 중도 하차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좋으나 싫으나 5년 동안은 윤 대통령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 질책을 넘어 몽둥이를 들면 반발하게 된다. 소수 ‘팬덤’을 넘어 전체 보수의 지도자가 되려면 보수 지지자들의 희망을 담보로 도박해선 안 된다. 자기를 버리고,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일 때 미래가 있다. 재승박덕(才勝薄德)한 정치인치고 오래간 사람이 없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8-07

양보할 줄도 아는 게 정치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부터 휴가다. 폭염과 짜증 나는 현실을 잠시 피해 머리를 식힐 시간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쳤다.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불만도 있지만 실망과 아쉬움도 많다. 지지 여부를 떠나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한다.20%대 지지율로는 국정 동력이 안 생긴다. 공무원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경찰의 항명도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다. 임기 초에는 대통령에게 힘이 집중된다. 누구나 두려워하며 눈치를 본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벌써 얕보이고 있다. 힘은 공포가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어느 조사에서나 인사 문제를 지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잘하는 사람을 누구든 쓸 수 있다. 이념과 지역도 장벽이 되지 않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반대 정당의 인재까지 쓸 수 있다. 다만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최적의 인재를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기대가 꺾인 건 여기서부터다. 사적 인연의 좁은 지인 풀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인적인 오랜 인연에 모든 국정을 의지한다고 알려졌을 때 국민은 배신감을 느꼈다. 대통령이 나눠준 그 자리는 ‘내 표’와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임의로 나눠줘도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검찰 이외 경험이 거의 없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그 좁은 우물에 자신을 가둬버리는 게 문제다.특히 검사가 너무 많다. 검사가 모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서울 법대 출신으로만 채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엘리트주의만이 아니다. 세상일은 유죄와 무죄로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법률가가 많은 정치는 옳고 그름만 따진다. 피고와 원고, 내 편 아니면 적이다. 야당도 전투적인 법률가들의 목소리가 크다. 서로 내 편이 옳다고 고함지르니 대화와 타협이 있을 리 없다. 정치가 실종됐다.집권당을 보면 더 한심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20%대로 추락하고서도 반성이 없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을 향해 손가락질했지만, 국민의힘도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끌어안는 노력 없이는 큰 세력이 될 수 없다.당장 이준석 대표 문제는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게 달려들었다. 이 대표는 대선 때 여러 차례 윤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 이 대표의 힘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인간적으로 섭섭한 앙금이 남았을 수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노출한 문자를 보면 이 대표를 향한 불편한 감정이 ‘윤핵관’들의 과잉 충성 탓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대표를 밀어낸 방법은 너무 속이 보인다. 그런 무리한 방법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나름의 세력이 있다. 아무리 얄미워도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이 대표의 팬덤만이 아니다. 이 대표를 공격하는 전선에 극우 인사들을 배치해 집권 세력 스스로 극우의 틀에 갇혔다. 중도와 젊은 층을 모두 밀어내는 패착을 뒀다.아직 선거가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2년은 심각한 여소야대를 견뎌야 한다. 그동안 야당의 협조는 어떻게 얻을 것이며, 2년 뒤 선거는 왜소해진 정당으로 치를 것인가. 젊은 유권자는 현재의 그 숫자가 아니다. 점점 비중이 커지는 세력이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 국정도 잘하는 건 아니다. 잡음이 많이 이는 게 그 부분이다. 가장 믿는 측근은 위기 때를 위해 아껴두는 법이다. 최고의 전문가를 앞세우고, 가까운 사람들은 잠시 뒤로 물리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윤 대통령은 검사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직진한다. 그러나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지킬 것과 내줄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하고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단호한 장악력도 필요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은 절제가 필요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31

선거 불복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서 품격이 사라졌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공격만 난무한다. 인터넷 단문의 영향이 크다. 정치 팬덤과 진영정치의 당연한 결과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잘하는 정치인이 설치는 세상이다. 민주당에서 ‘탄핵’, ‘촛불’, ‘레임덕’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계속 나온다. 지난주에는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서 ‘레임덕’과 ‘탄핵’을 공개 거론했다. 직접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말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탄핵할 수도 있다’라는 위협이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등 무소속 의원 7명도 민주당 출신들이다. 국민의힘 115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민주당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탄핵도 할 수 있다.선거 때는 지지 후보에 따라 유권자도 갈라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게 국민은 다시 하나가 된다. 공약이 서로 충돌하고 대결을 벌이지만 선거 때와 달라진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긴 후보를 계속 공격하는 건 그러한 선택을 한 유권자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취임 직후에는 대개 지지도가 오른다. 선거 때 찍지 않은 사람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 새 정부가 일을 잘 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는 시기다. 역대 대통령을 봐도 집권 중반기가 돼서야 부정적 여론과 긍정적 여론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각종 여론조사마다 지지율이 30%를 겨우 넘는다. 부정 평가는 60%를 넘는다. 뭘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 지지율이 위기에 빠졌다.물론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공정’ 가치의 상징으로 당선됐다. 조국 사태 등으로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취임 초 인사 문제와 관련해 잡음이 계속되면서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겸손한 자세로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불만의 원인이 된 가족과 측근들을 자제시키고, 대통령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그렇더라도 야당의 흔들기는 지나친 점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윤 대통령의 정책을 선택했다. 그러면 최소한 체계를 갖추고 정책을 추진할 시간은 주는 게 민주주의의 금도(襟度)다. 서투른 국정에 조언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탄핵과 촛불을 이야기하는 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하다.윤 대통령은 허니문 기간이 없었다. 당선되자마자 지방선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이어진 선거를 위해 전투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그때까지야 어쩔 수 없는 시간표 탓이라 해도 그 이후에도 ‘탄핵’과 ‘촛불’이란 말까지 꺼내며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아무리 많이 싸우는 정치라 해도 절제가 필요하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위기를 겪었다. 광우병을 왜곡·과장한 TV 보도 이후 민주당과 연예인들이 앞장선 촛불집회가 온 나라를 흔들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20% 아래로 떨어지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 동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광우병은 근거 없는 선동이었다.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SNS로 당시의 경험을 반복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정당이 여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선거를 뒤집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윤 대통령도 야당과 야당 지지자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여고, 야고, 대통령은 모두 손을 잡아야 할 상대다. 원인이 무엇이든 국정 실패의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온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나로 뭉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선거가 나라를 쪼개고, 선거가 끝나도 승복하지 않고, 바로 다음 선거전을 시작한다면 나라가 위험하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선거 불복은 용납할 수 없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24

지지율이 무너지는 다섯 가지 이유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불안하다. 한국갤럽이 15일 발표한 지지율은 32%다. ‘잘못한다’는 53%다. 심지어 다시 투표하면 이재명을 찍겠다는 사람이 50.3%이고, 윤석열 후보는 35.3%라는 여론조사 결과(미디어토마토)도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취임 2분기에 20%대로 급락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광우병 파동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1년도 안 돼 20%대로 떨어졌다. 취임 초 지지율 급락은 국정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이때를 놓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다행히 이 전 대통령은 곧 지지율을 회복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비주류 대통령으로 고생했다. 두 대통령 시절 집권당이 불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북 송금 수사로 민주당 주류였던 호남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당을 쪼갰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박근혜 대표와 긴장 관계였다. 여야 대립은 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당내 갈등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그래서 국민이 불안하다. 지난 선거는 비호감 선거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가 싫어 윤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가 대부분이다. 뽑아놓고는 걱정이다. 국정 운영 능력에 반신반의한다. 믿음을 주는 게 관건이다.그런데 첫째, 집권당 꼴이 말이 아니다. 대표가 자격정지다. ‘윤핵관’끼리도 관계가 묘하고, 어수선하다. 장관과 청와대 인사에 대해 말이 많다. 일부는 탈락했다. 누가 추천했느냐를 두고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인사 불만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국민을 향해 “이전 정부와 비교해보라”라고 윽박지른다. 반성이 없으니 더 나아질 희망도 없다.둘째, 정부가 과거로 달린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지겨웠던 ‘적폐 청산’의 후속편이다. 문재인 정부 때 윤 대통령이 그 일을 했다. 정의가 뒤집힌 일들이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만 매달리기에는 미래가 너무 엄중하다. 빨리 끝내야 한다. 전문가에게 맡겼으면 대통령만이라도 민생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셋째, 정권을 교체한 건 ‘빠 정치’가 싫어서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고, 공격하는 정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욕설로 소음 테러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용되는 판”이라고 부추기는 건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선과 악으로 갈랐다. 상대편에 친일파, 토착 왜구란 딱지를 붙였다. 국제 정세도 현실이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가공의 세계를 그렸다. 이런 흑백논리가 반복되면 곤란하다. 토착 왜구의 대척점에 빨갱이, 간첩이 있다. 정책도 문 정부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탈원전 등을 절대 선으로 놓고 비타협적으로 밀어붙였다. 반작용으로 반대 방향으로만 돌격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넷째, 대통령은 많이 들어야 한다. 대통령 말이 너무 길다고 한다. 회의하면 대통령 혼자 말하고, 끝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혼자 다 아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들어야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다섯째, 가족과 측근 프레임을 빨리 벗어야 한다. 전임 대통령들도 모두 가족 리스크가 있었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후보 시절부터 많은 구설을 겪었다. 공격적인 음해가 지금도 계속된다. 인사 때마다 김 여사 이름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절제되고 투명한 활동이 필요하다. 공식조직의 지원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윤핵관’ 프레임도 빨리 벗어야 한다. 몇 사람이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을 즐기는 동안 대부분 사람은 멀어진다. 공조직의 힘이 빠진다. 점을 쳐서 맞힐 확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결과는 0% 아니면 100%다. 우연히 맞힌 그 절반 때문에 미신에 빠진다. 윤 대통령의 기적적인 승리를 예측한 사람도 많다. 자랑할 일도 아니다. 국정에는 입을 못 대게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의혹만으로도 민심이 흔들린다. ‘○○법사’, ‘○○사랑’ 같은 비선과 팬클럽을 차단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섭섭해도 단호해야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 /본사 고문

2022-07-17

선거는 쇼지만 국정은 현실이다

김진국 고문 우리 정치가 많이 바뀌고 있다. 옛날 문법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세대와 젠더 갈등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59초 쇼츠’나 ‘도어스테핑’도 전혀 짐작 못한 새 흐름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즉석 문답하는 ‘도어스테핑’을 보면 ‘59초 쇼츠’가 떠오른다.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이 불편을 이야기하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 윤 후보가 “좋아. 빠르게 가!”라며 신나게 밀어붙이는 영상이다. 도어스테핑에서도 윤 대통령은 흥분된 목소리와 제스처로 자신 있게 단정적인 답을 한다.도어스테핑은 대환영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5년 임기 동안 신년 기자회견, 취임 기념 회견을 다 합쳐봐야 8번 남짓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대통령과 기자가 각본 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신선하다. 그 질문은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던지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다.그런데 지난주 잇달아 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다. 지난 5일 인사 실패와 부실 검증을 묻자, 윤 대통령은 “전(前)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라”고 버럭 말한 뒤 들어가 버렸다.그전에도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이 여러 번 입길에 올랐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 그는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검사들이 정·관계에 많이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고도 말했다. “지지율에 신경 안 쓴다”, “대통령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뒷말이 무성했다.도어스테핑은 사전 각본 없는 게 매력이다. 그렇지만 너무 거칠다. 생각을 감추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엄중하다.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참모들과 먼저 정리해놓아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참모들이 예상 문답을 준비해줘도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듣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도 한다. 입을 열 때마다 참모들이 해명하러 다니는 일이 반복되면 국민이 불안하다.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하기 전에 지하 서재에서 수십 번씩 원고를 다듬고, 연습했다. 1987년 양김이 갈라져 평민당을 만들기 전에도 수개월째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걸 들었다. 그 논리를 주변 의원들에게 세뇌하듯 퍼뜨렸고, 결국 분당했다.평생을 방송인으로 산 봉두완 씨가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미클럽 송년회에서 할 사소한 말까지 두툼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들고 진행하는 걸 봤다. 말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준비는 그렇게 철저했다.윤 대통령은 소탈하다. 사적인 자리라면 나무랄 게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인간적이다. 그렇지만 기자에게 하는 말은 기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은 TV를 통해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말한다고 느낀다. 국민은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걸로 받아들인다.취임하는 순간 국정의 모든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 정권이 어떤 일을 했건, 우리 역사가 어떠했건, 모든 과거가 집적된 국정을 끌고 가겠다고 맡은 자리다. 과거 정권의 잘못은 국민이 이미 선거에서 심판했다. 또 국정은 상대 평가가 아니다. 비판받을 때마다 과거 정권을 들먹이면 무책임해 보인다.윤 대통령 말은 자신감이 넘친다. 답변이 시원시원하다. 그는 오만해 보이는 서울법대 출신의 대선 징크스도 깼다. 정치 경험도 없이 짧은 시간에 바로 대통령이 됐다. 모든 게 쉬워 보일 수 있다. 이 길을 조언한 사람만 믿고 싶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쪽에는 귀를 닫게 된다. 이런 모습이 자칫 국정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네가 뭘 알아’ 하는 식의 안하무인으로 비칠 수 있다.선거는 끝났다. 선거는 흥분 속에 치른다. 그러나 잔치 뒤의 경제와 안보는 현실이다. 좀 더 진지한 고민과 중장기 구상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비호감의 경쟁이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맡길만하다는 믿음을 줄 시간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7-10

정치적 낙하산은 임기제의 위선 버려야

김진국 고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논의도 많이 하는 데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 말하면 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1년 남은 임기를 다 채우겠다고 한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350개 공공기관장 가운데 약 70% 정도가 윤 대통령과 1년 이상 함께 일해야 한다. 공기업 36곳 중 30곳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절반이 2년 이상 남았다.이 문제는 처음으로 정권 교체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민한 것 같다. 곽해곤 대한한의사협회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각각 일하고, 청와대 근무도 했다. 실무자가 김대중 당선자에게 “공공기관장들 사표를 모두 받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대중 당선자가 되물었다.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했어요?”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과거 정부 출신 인사들이 일제히 사표를 인수위에 제출했습니다.” “관행인가?” “불문율이었습니다.”김대중 당선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민주 정부에서 과거처럼 법을 무시하고 사표를 내라고 할 수 없으니, 임기가 올해 안에 끝나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임기가 내년 이후에 계속되는 사람은 올해 안에 사직서를 내는 방향으로 의논하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관행을 세워 다음 정권에서도 이렇게 처리해 주면 좋지 않겠는가.” 역시 어느 정도 말미를 주고 정리했다.정권을 승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2004년 5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제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1년여 말미를 주고 사퇴시켰다. 이명박 정부 때는 53%를 교체했다. 문재인 정부로 넘어가면서도 37%가 물러났다. 이때 사퇴를 강요한 것이 범죄가 됐다. 산하기관장에게 사퇴 압박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지난 1월 대법원이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했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공공기관장 임기제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 측근과 선거 공신들의 포상용으로 전락하는 걸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자리를 가장 정치적인 인물들이 차지해왔다. ‘늘공’(직업공무원)도 정무직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장은 위선적으로 운영된다. ‘외부 공모’도 미리 내정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더구나 새 정부의 핵심 정책에 반대 견해를 보인 사람도 임기를 지킨다고 버틴다. 선거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는데, 일부 공공기관은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거다. 세금으로 대통령 발목 잡는 일을 시키는 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지난 2월 탈원전의 핵심인사를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알박기했다. 대선 때 여야 후보가 모두 비판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입안한 측근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대못으로 박아놨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 정책, 외교정책을 현 정부와 정반대 방향으로 추진해온 인사들이 관련 기관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새 정부와 너무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2년 넘게 유지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가 망하라고 방해하는 꼴이다. 새 정부는 구조 조정해 관련 기관을 없애버리거나, 평가를 통해 물갈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먼지 털이식 비리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불법과 편법을 줄타기하고, 비효율을 반복해야 하나.이 기회에 공공기관장과 정권의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위선을 버리고 타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같은 처지다. 정무적으로 임명할 자리와 중립성이 필요한 자리를 구분해 임기 문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당장 정부의 방향과 관련된 자리, 정치성이 심한 낙하산 인사는 교체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03

정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은 없다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6·25전쟁 제72주년이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켰다.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 건 눈부신 경제 발전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최근에는 우리와 싸우거나, 싸운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있다. 피아가 뒤섞인 전쟁 통에 비무장 민간인으로 이리저리 동원돼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밝혀주려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외면해도 될 만큼 하찮은 생명은 없다.전쟁의 폐허에서, 보릿고개를 넘어 경제 개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다. 어떤 이념이나 국가주의도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럽다. 민주화운동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기에 더욱 그렇다.사건의 진실은 조사해 밝히면 된다. 그렇지만 생각의 기본 틀은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급한데 이게 왜 현안이냐.” 우 위원장의 발언은 개발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던 논리와 너무 닮았다.왜 민주화를 했나.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생을 내세워 입을 막을 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민주화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해명해야 한다.우 위원장은 또 “해당 공무원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월북(越北)’을 ‘삼팔선 또는 휴전선의 북쪽으로 넘어감’이라고 풀이해놨다. 말 그대로 이대준 씨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됐으니 ‘월북’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월북’보다 본인의 ‘의지’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인가.우리 사회에서 ‘월북’은 북한으로의 귀순을 의미한다. 전쟁 상태인 적국에 투항한 것이고, 대한민국을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6·25전쟁 시절 월북자 가족은 연좌제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고 해도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눈으로 본 우 위원장이 할 말은 아니다.월북이 첩보 판단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더구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발적인 월북은 유죄 판결보다 더한 ‘낙인’이기 때문이다. 과거 간첩 사건을 재심하면서 고문이나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를 배제하면서 뒤집었다. 적어도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있는 문제라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정리하는 게 옳다. 편의에 따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돼도 좋을 만큼 하찮은 인권은 없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유족에게 편지를 보내 “진실이 밝혀져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행정법원은 관련 서류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관련 서류를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분류해 15년간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인해버렸다.고 이대준 씨는 도박 빚이 부풀려지고,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인격파탄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 가족은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굴레를 써야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이 없고, 문서도 감췄다. 북한은 범죄자가 탈북해도 송환을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대준 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북한 측이 이 씨를 발견한 것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 6시간여 뒤 총격하고, 소각했다. 그 사이에 정부의 조치는 알려진 게 없다. 국민이 위험한 처지인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피해자만 비난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적어도 잘못이 있다면 사후에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본사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26

김건희 여사의 외출을 허하라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일 입길에 오른다. 한 마디로 “조용히 내조만 한다더니 왜 나서느냐”고 한다. 김 여사의 사생활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문제라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전례를 봐도 윤 대통령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민주당 소속인 한 방송 토론자는 “내조만 한다더니 과거 영부인들은 왜 예방하느냐”라고 비난했다. 김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까지 차례로 찾아갔다. 김정숙 여사도 만났다. 같은 자리를 경험한 원로는 찾아 뵙는 게 예의고, 그분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모범으로 삼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이것까지 선거 때 발언을 들먹이며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모는 데는 “꼴 보기 싫으니 보이지 마라”는 날 선 감정이 느껴진다.아무리 근신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이 골방에 갇혀 있을 순 없다. 외국 정상 부인이 왔는데 일도 없이 안 만나는 건 실례다. 상식에 맞고, 예의에 맞는 일을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시비하는 건 옹졸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김 여사에게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헤아린 게 아닐까.물론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불안한 구석도 있다. 윤호중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건 예의가 아니다. 윤 전 위원장을 궁지로 몰았다. 이런 식으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윤 전 위원장의 ‘잇몸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대통령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등을 팬카페에서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사과하는 게 옳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라오스 공항에서 대통령보다 앞장서 카펫 위를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 선거 뒤 “경인선 가자”라고 한 말이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 없이 혼자 공식 외교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하고,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애 시절 ‘새마음 운동’에 앞장선 일이 있다. 최태민 목사가 영애를 앞세워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영향력을 휘둘렀고, 여러 가지 의혹과 구설을 낳았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보기관까지 나서 단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다. 모두 되새겨보아야 할 선례다.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꼬인다.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모리배가 더 많다.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많이 봤다. 본인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정의감과 애국심에 이름만 얹어놓았다 이용당하기 일쑤다. 본인이 청탁하지 않아도 이름을 팔고, 명함 한 장으로 호가호위하는 세상이다.세간에는 벌써 ‘김 여사 줄을 잡아 영전했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권양숙 여사가 “(윤 대통령) 뒤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도 너무 잘하셨다”라고 한 칭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리 몸을 사려도 지나치지 않다.김 여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당장 정리해야 한다. 첫째 보좌조직을 둬야 한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여야가 다 동의하는데 후보 시절 내뱉은 한 마디에 매달릴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핵심은 ‘최순실’이라는 ‘비선’이다. 어릴 때부터 도와준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투명한 공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투명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둘째, 외부의 사적 지원 조직은 정리해야 한다. 야당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무속인 문제는 최태민 목사를 연상시킨다. ‘건희사랑’이라는 팬클럽은 회장의 욕설로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을 돕는다는 게 부담만 되고 있다. 코바나컨텐츠는 사기업이다. 그 직원에게 공적인 업무를 맡길 순 없다. 적어도 대통령 임기 동안은 이런 사적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억울한 일을 각오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19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김진국 고문 양산 평산마을이 시위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증오와 쌍욕만을 배설하듯 외친다”라면서 “이게 과연 집회인가? 총구를 겨누고 쏴대지 않을 뿐 코너에 몰아서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라고 비난했다. 마을 주민들도 욕설과 소음으로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시위를 이어온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렇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허용 범위 안에서 집회를 진행해 경찰도 단속이 쉽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비난하고, 평산마을에서 시위를 못 하도록 막는 집시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말했었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미”라며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고양이·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했다. 평산마을 사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시설들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생활 공간만 따지면 그리 다르지 않다. 봉하마을이 커진 건 부엉이바위와 묘소 등 추모 시설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퇴임 생활에 성공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대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수시로 시위대를 만난다. 청와대 앞쪽 광화문에서 용산에 이르는 거리는 상설시위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국회와 대기업 본사 앞에도 플래카드와 확성기 소리를 항상 보고 들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 이전 퇴임한 대통령들도 시위대를 피하지 못했다.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민주화 과정에 우리 사회는 시위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 시위는 힘없는 사람이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이고, 이것을 막는 것은 독재 정부나 하던 시민 탄압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화염병 같은 위험한 장비를 사용한 과격한 시위마저 정당한 시위로 감쌌다.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 시위대는 의인으로 보호되고, 경찰은 문책당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법을 어기지 않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요구사항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시선을 집중시키려 과격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집회와 시위는 법으로 보장되고, 시위가 아니라도 의견을 전달할 수단이 많아졌다. 소셜미디어는 넘쳐난다. 물론 대면 다중 집회로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들의 힘을 눈으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스피커 볼륨이 세력의 크기는 아니다. 법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경찰이 불법을 수수방관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집단의 힘으로 억지를 부려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용한 다수가 피해를 본다.권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찰의 법 집행이 많이 위축됐다. 정당한 법 집행도 과잉 진압 시비를 피하지 못했다. 모르는 척 불법을 눈감아주는 게 습관이 됐다. 적극적으로 나서다 징계받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집회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혀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변질해왔다.그동안 각종 시위를 무조건 감싸왔던 민주당이 시위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세 건이나 국회에 제출했다. 윤영찬 의원은 1인 방송이 원색적 욕설 방송으로 수익을 올리는 ‘1인 시위’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골프장까지 쫓아가 카메라를 들이댄 방송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비슷한 방송을 많이 봤다.표현의 자유가 남을 괴롭히는 자유는 아니다.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이 기회에 집시법을 보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법을 손질도 하지 않고 ‘법대로’만 외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을 위한 법 개정이어서는 안 된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바로 보인다. /본사고문

2022-06-12

오만한 정치, 국민의힘도 경계해야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시끄럽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뒤끝이다. 4년 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14곳을 모두 차지했다. 이번에는 경기·제주와 호남, 5곳에 그쳤다. 기초단체장도 145 대 63, 절반도 안 된다. 서울에서만 서초구청장을 제외한 24개 구청장을 싹쓸이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17 대 8로 완패했다.이게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정당 지지도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4월까지만 해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런데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6월 첫째 주 전국지표조사를 보면 48% 대 27%로 벌어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선거 패배의 책임을 놓고 서로 손가락질이다. 크게는 친 이재명파와 반 이재명파로 갈라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선거에서 참혹하게 패배하고도 그 원인을 찾고, 반성하기는커녕 네 탓 공방이다. 당권 욕심이 앞선다. 먹을 것이 거덜 난 집에서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다투는 꼴이다.대선에서 국민은 분명히 민주당을 심판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 다시 심판받았다. 2년 전 총선에서 183석(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얻은 뒤 오만했다. 민주당 강경파는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국회 원 구성부터 독식하며 압박했다. 여론조사는 반대하는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응원했다. 국정은 동화 속 이념의 포로가 됐다. 민생 현장보다 ‘우리 정책’은 무조건 옳다고 우겼다. 지난 5년만큼 국민이 분열하고, 진영대결이 극심했던 때가 없다. 조국·추미애 전 장관의 오만이 대통령까지 만들었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받은 지지율은 38.77%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표는 33.35%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얻은 33.84%보다 적다. 여기에 열린민주당(5.42%)을 합쳐야 겨우 조금 더 많다. 그래봐야 40%가 안 된다.그런데도 민주당에 감당 못할 많은 의석을 몰아준 건 엄청난 사표를 만들어내는 선거제도, 위성정당을 이용한 속임수다. 그런 자기 속임수에 스스로 넘어가 오만의 길을 걸었다. 제도의 허점 덕에 다수 의석을 확보해놓고, 적은 대선 표 차이는 인정하지 못하고, 불복하는 듯한 행보를 해왔다. 대선 뒤 하루도 허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정권을 넘기는 순간까지 대못질을 계속했다. 여론은 분명히 반대했다. 그런데도 2차 ‘검수완박’ 법을 밀어붙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기 직전 못을 박았다. 물러나는 순간까지 임기 2년, 3년의 공직을 ‘내 권리’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것이지 개인의 권리가 아니다. 퇴직금은 더욱 아니다. 정부를 ‘머리 따로, 손발 따로’로 만드는 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잘못된 행태를 사과했지만, 비난 폭탄만 맞았다. 강경파 의원들은 조롱을 반복한다.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다. 정치를 게임처럼 한다. 진심은 보이지 않고, ‘작전’만 있다. 국민은 대상이지 상전이 아니다. 이런 식의 정치가 전투력은 강하다. 정치의 팬덤화가 대중화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인정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톨레랑스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이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 의석수는 크게 차이 난다. 인구와 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아주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미풍만 불어도 선거 결과에는 태풍이 된다. 이번 승리로 오만하면 국민의힘도 회초리를 맞는다. 대선이건, 지선이건,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져 얻은 승리다. ‘하고 싶은 대로’하면 또 뒤집힌다. 역대 선거를 봐도 승부는 지는 쪽이 결정한다. 2년 뒤 총선, 또 그다음 선거는, 바람이 어디로 불지 모른다. 겸손해야 한다. 권력을 쥐었을 때 더 잘해야 한다. /본사 고문

2022-06-06

독주하려는 게 아니라면 합의 지켜야

김진국 고문 어제 박병석 국회의장 임기가 끝났다. 지난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전반기 의장단의 역할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후반기 원 구성은 보류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김진표 의원과 김영주 의원을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합의를 번복해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전반기 원 구성을 하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민주당 당적을 버려야 하는 김진표 의원은 “내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라고 주장했다. 중립성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미뤄두고 있을 뿐, 선거만 끝나면 큰 소리가 날 수 있다.1988년 13대 원 구성부터 국회 상임위는 여야가 의석 비례로 나누어왔다. 그 이전에는 제1당이 모두 가졌다. 노태우 정부 때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수결로 하면 야 3당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갈 형편이었다. 이 바람에 의석 비례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나누어 맡기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로다.국회 법사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주목받았다. 탄핵소추의 검사 역할을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법사위는 그 밖에도 법원·헌법재판소와 법무부·법제처·감사원·공수처 등 사법 관련 정부 기관은 물론 다른 상임위에서 만든 법률의 체계·형식·자구를 심사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붙들고 있거나, 수정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상임위의 상전, 상원 역할을 해왔다.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후폭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제1당과 제2당이 나누어 맡는 관행을 만들어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를 보장했다. 행정부 견제가 아니라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생겼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등을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고 버텼다. 이 바람에 합의가 어려워졌고, 민주당은 그 핑계로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몽땅 독식해버렸다.지난해 7월에서야 국민의힘에 7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은 올해 후반기 원 구성할 때 넘겨주겠다고 미뤘다. 이제 그 약속마저 뒤집겠다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 2차 ‘검수완박’ 관련 법률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다. 법사위원장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후반기도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해 합의와 상관없이 국회를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법사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담당하고 있다.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려면 국회의장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사위원장을 가져봐야 다수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방어적 역할이다.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 견제보다 국회 독주를 위한 독식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국회에서 다수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옳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합의제 운영의 전통을 쌓아왔다. 민주당의 대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장서 세운 전통이다. 모든 책임을 제1당이 지는 완전 다수결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면 중요 길목을 나누어 맡는 전통은 살려야 한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협상이 필요 없다.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다수의 독재가 된다. 독주에는 역풍이 따른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대통령 탄핵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라면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는 합의는 지키는 게 옳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29

검찰개혁, 말 잘 듣는 검찰 만들기 아니다

김진국 고문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 만들어졌다. 그해 13대 총선 결과 출범한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정치개혁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이 폭로되고, 실상이 드러나는데 검찰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곧바로 사체를 화장하고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부장검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흘려 기사화했고, 사체를 보존해 부검토록 했다. 이런 배경 속에 평민당 등 야당과 대한변협이 임기제를 밀어붙였다.그때는 검찰총장이 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도 비판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장관으로 기용됐다.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한 데 대한 보은으로 비쳤다. 비판 논리의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하관계로 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검찰총장이 재임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영전을 노리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만들어냈을 정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한 음절씩 조롱하듯 강조해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취임 하루 만에 검찰 인사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가까웠던 검사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며 인사권을 휘두른 걸 생각하면 왜곡됐던 검찰을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한 장관은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 시절 검찰 인사에 대해 언론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윤석열 사단 학살 넘어 전멸’이라는 제목들을 달았다. 박범계 법무 때도 ‘윤석열 사단 거리두기와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라는 제목이 나왔다. 윤석열 총장도 “나는 식물총장”이라고 했다.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나쁜 선례를 쌓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한꺼번에 냉탕과 온탕으로 보직을 바꾸게 되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게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그것이 검찰이건 아니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또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검찰에 대해 우려하는 이상으로 위험하다.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도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의 힘을 수평적으로 국회에, 수직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다. 의회 중심 정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게 부패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넘기려면 정치인의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줄이지 못하면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라는 식으로 조롱을 듣는 한 정치보복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윤석열 정부는 검찰이나 수사기관을 잘 안다. 검찰 권력을 되찾는 작은 조직의 이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패를 막을 수사제도 전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진정한 ‘검찰 개혁’, ‘경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사고문

2022-05-22

김대중의 길, 이회창의 길

김진국 고문 보름 뒤 지방선거다. 그런데 무슨 선거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 안철수 후보도 나섰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같이한다. 이 상임고문은 “권력은 집중되면 부패한다는 명확한 진실이 있다”라며 윤석열 견제론을 재등판 명분으로 삼았다.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오늘로 겨우 일주일째. 그런데 민주당 공격이 윤 대통령에게 집중했다. 취임사도 비판 대상이다. 새 정부의 출범부터 부정했다. 이 상임고문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그 선봉에 섰다. 선거 불복(不服)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선거 불복은 많았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1963년 대선에서 역대 가장 적은 15만 6026표 차이로 떨어진 뒤 “나는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71년 선거에 대해 “나는 선거에서 이기고, 투·개표에서 졌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87년 선거도 “명백한 부정선거였다”면서, “단일화했어도 (선거 부정을 막을 수 없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라고 ‘김대중 자서전’에 적었다. 단일화 책임론을 그렇게 뒤집었다. 그러나 선거에 불복해 이익을 본 예는 없다. 국민의 눈이 차갑다.이재명 후보 출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대통령 선거에서 졌으면 반성하고, 자숙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근거지이고, 성남 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거치며 정치적 뿌리를 박은 분당갑에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에 유리한 인천 ‘계양을’을 선택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DJ가 13대 총선에서 전국구 11번, 15대 총선에서 14번을 자청한 것과 비교된다. ‘대장동 비리’ 등 수사를 막을 불체포 특권 갑옷을 입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켜내겠다”라고 외친 게 이런 의심을 굳혀준다.선거가 끝나도 대결 구도를 풀지 않고, 바로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면 국민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집권한들 국민의힘 지지자가 승복할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이라 믿고 싶다.대선을 재수하는 길이 여러 가지다. DJ는 대통령 선거 뒤 곧바로 정계 은퇴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선거가 국민의 심판이라면,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DJ와 이 상임고문은 다르다. DJ가 세 번째 떨어진 뒤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져 단일화 실패 책임까지 모두 떠안을 처지였다. 또 권위주의 시대의 끝자락이라 정치보복을 피하려면 불체포 특권만으론 불안했다. 해외 피신 경험도 있었다. DJ도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뒤에는 당권 장악을 시도했다. 대선 한 달 뒤에 있었던 총선 때 진산 파동이 터졌다. 이를 이용해 총재 대행을 맡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87년 대선에서 졌을 때도 평민당 총재로 여소야대 정국의 중심이 됐다. 97년 말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도 이듬해 당권을 장악했다.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전임 정부 실패가 정권교체에 큰 변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당내 경쟁 후보 진영을 온전히 끌어안지 못해 고전했다. 확실한 당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을 것이다. 정당과 국회 경험이 없는 점도 큰 약점이다. 불복만 아니라면 자리와 사람은 일치하는 것이 좋다. 권한과 책임이 일치해야 정상이다. 박완주 의원 문제 대응이 흔들리는 것도 자리와 사람이 일치하지 않은 탓이다.97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총재는 원내 과반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을 이끌며 총리 임명안을 비롯해, 새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반대만 했다. 새 정부에 기대하는 민심과 멀어졌다.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다음 대선도 실패했다. 따라갈 만한 길이 아니다.어차피 지방선거는 곧 끝난다. 윤 대통령은 이 상임고문의 경쟁자가 아니다. 법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법대로 장관을 임명했다. 이 ‘법대로’가 대화와 타협을 막고, 정치를 실종시킨다. 책임 있는 사람이 나서야 결단하고, 협치할 수 있다. 그런 성숙한 여야 관계로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기를 기대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15

퇴임하는 대통령, 취임하는 대통령

김진국 고문 오늘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그는 취임하면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임기를 마친 오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 나올까. 5년 전 그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닷새 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 자부하고 있다”는 그의 자평은 진심일 것이다.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지금 국민은 유례없이 갈라져 있다. 옳고 그름도 없다. 누구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는 또 “승자도 패자도 없다…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퇴임 직전에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는데…그 역사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문 대통령 말처럼 적어도 취임 초에는 새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정상이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다. 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윤 당선인을 ‘0.73%포인트짜리’라고 깎아내렸다. 적은 표 차로 당선됐다는 말이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33.4%)은 미래통합당(33.8%)보다 적었다. 지역구 득표율도 과반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대선 직후 다수의 힘을 더 휘두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가로막고, ‘검수완박’ 법안을 온갖 꼼수로 밀어붙이고, 법사위원장 배정 합의도 뒤집으려 한다. 민주당 정부 총리였던 한덕수 후보까지 발목을 잡아, 내각 없이 취임하고, 한동안 그렇게 굴러갈 판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소금을 뿌리고 있다.윤석열 당선인도 굽히지 않는다. 당장 급한 건 당선인이다. 그런데도 강수로 밀어붙인다. 마주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당장 한미 정상회담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핵 도발을 어떻게 대처하며, 빅스텝 파도는 견뎌낼 수 있을까. 결국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시행령 정부, 공안 정국이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민주주의는 상생이다. 상대에 대한 인정,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이다. 나만 옳다면 정당이 여러 개 있을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일당 독재의 승리 지상주의, 독선에 빠졌다. 모의법정의 변호사와 검사처럼 이기는 데만 몰두한다. 정말 민주주의가 걱정이다.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내에 생각이 달라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진영논리와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내 편을 챙기는 온정주의가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조문, 부동산 등 대선 패배 책임론, 최강욱 의원 성적 비속어 발언…. 곳곳에서 내 편 감싸기를 보였다. 20대 위원장의 쓴소리에 기성 정치인 반응은 시큰둥하다. 나잇값을 못 한다.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겨야 한다. 그래야 소수도 숨을 쉴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요즘 정치가 두렵다. 정치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청산, 박멸, 척결하자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독일의 나치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스탈린의 대학살에서나 보던 태도다. 유일사상에 대한 신앙이다.지금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정부와 국회 정부, 국민의힘 정부와 민주당 정부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대선에서) 졌을지라도 국민께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야 하지 않나.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 물러나는 날까지 ‘남 탓’했다. 부동산도, 경기도, 고용도 이전 정부, 야당, 국민 탓이다. 남 탓의 유효 기간은 짧다. 잘못이 쌓여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자세는 그래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08

끝까지 ‘내로남불’인가

김진국 고문 결국 난장판이 됐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욕설이 오갔다. 민주당은 숫자로 밀어붙여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국민의힘은 악을 썼다. 국가 공권력이 전리품인가. 차기 행정부와 의회 권력의 힘겨루기가 막장극을 연출했다. 전문가들과 숙의도 공론화도 없다. 꼼수와 편법이 야바위꾼 뺨친다. 이게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검수완박’이 뭔가.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고 한다. 검찰 권력이 너무 커서 횡포를 부린다는 이유다. 다른 견제 수단은 없는 걸까. 수사와 기소를 어느 정도 분리하는 게 효율적인가. 검찰이 하던 수사는 모두 누가 하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계속된다. 아직도 혼란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판단뿐이다. 이미 대부분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다. 공수처도 출범했다. 1차 수사권 조정에 따라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 적응도 하기 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두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동원된 편법들이 ‘사사오입 개헌’과 ‘10월 유신’ 등 혼란스럽던 헌정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하기 전에 공포 절차까지 마치려고 한다. 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게 그렇게 중대한 사안일까.‘검수완박’에 반대한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지은 죄가 많아선가. 아니면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해서인가. 어느 쪽이든 정권 교체 이후 안전이 문제인 건 틀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억도 있다.그렇지만 검찰만 수사하는 게 아니다. 검찰은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라도 있다. 다른 수사기관은 윤석열 정부가 직접 통제한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한다. 더 어이가 없는 일은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후보자가 지명되자 개정안에서 중수청 설치 조항까지 넣었다 뺐다 촌극을 벌였다. 다른 사람이 지명되면 윤석열 정부 각료가 아닌가. 이럴 참이면 아예, 검찰과 경찰을 모두 없애는 정부조직법을 만들어버리는 건 어떤가.원안과 법사위안과 본회의안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렇게 중대한 법안을 이렇게 조령모개(朝令暮改)하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정상이다. 몰아치는 모양이 선거 패배의 분풀이 같다. ‘윤석열=검찰’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제도의 횡포는 검찰이 아니라 국회가 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를 쪼갰다. 국회 선진화법과 필리버스터 제도가 무력해졌다. 중수청도 없이 검찰 수사권부터 없앴다. 정상적인 법체계를 짜는 게 아니라 검찰 수사권 해체가 목적이다. 안건 조정위를 무력화하는데 민주당 출신 무소속을 활용해왔다. 양향자 의원마저 ‘검수완박’을 반대하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을 거짓 탈당시켜 무소속 의원으로 위장했다. 비례대표용 가짜정당을 만들어 선거법을 우롱하더니, 이제 가짜 탈당으로 국회법을 조롱한다.문 대통령 임기 안에 공포하려고 국무회의 시간까지 변칙으로 바꿨다. 민주당 단독으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결의안도 통과했다. 히틀러는 민간 돌격대(SA)를 이용해 테러로 합법을 가장한 권력 장악을 했다. 그리고는 친위대(SS)를 이용해 돌격대를 제거했다. 독립적인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일당 독재에 걸리적거리자 반역죄를 전담하는 인민재판소, 정치범을 처벌하는 특별재판소를 따로 설치했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히틀러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피아(彼我) 구분으로 존폐를 판단했다. 지금이 그 꼴이다.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청산할 때는 검찰 특수수사를 강화했다가, 그 칼날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되자 그 칼을 빼앗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마구 휘두르면 나도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 처지가 바뀌면 자기가 뱉은 말과 싸워야 한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본사고문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