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쯤 지난 얘기다. 한·일 대학생이 일본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가 독도였다. 첫날 토론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압도했다. 한국 학생들의 기세에 일본 학생들이 눌렸다. 둘째 날은 한국 학생들이 고전했다. 일본 학생들이 각종 고서와 샌프란시스코 조약 등을 꺼내놓고 따지는데, 한국 학생들은 모르는 자료가 많았다. 사흘째는 한국 학생들이 더 밀렸다.
당시 같이 다녀온 지도교수의 말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근거가 훨씬 풍부하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입증할 논리적 근거를 굳이 찾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에 분노가 넘쳐 오히려 논리적 설득에는 실패했다. 그 교수는 “공부를 너무 안 했다”라고 반성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끼리 ‘으샤으샤’만 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상대방 주장에는 귀를 닫았다. 모르니 반박이 어려웠다.
독도 문제를 대하는 요즘 젊은이의 자세는 매우 다르다. 훨씬 구체적으로 알고, 실천적 활동을 한다. 정부도 동북아역사재단(2006년 설립)을 세우는 등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때 그 토론회를 소환한 건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너무 남의 얘기를 안 듣는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지 무슨 소리야”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제3국의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일본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열정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속이 시원하게 고함질러봐야 자기만족뿐이다. 수치가 필요하고,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 중독성 강한 노래나 부르며 굿판을 벌여봤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잘못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치권이 더하다. 선동으로 지지세를 모으면 국내 정치에 유리하고, 힘으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다. 국민만 바보로 만든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광화문이 촛불시위로 뒤덮였다. 코믹영화 ‘파 송송 계란 탁’을 패러디한 ‘뇌 송송 구멍 탁’이란 기가 막힌 구호로 무장한 광우병 공포가 덮쳤다. 인기 연예인들이 “차라리 입에 청산가리를 털어 넣겠다”라며 아이들을 선동했다. 고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미국산은 물론 국산 쇠고기도 못 믿겠다며 먹지 않겠다고 울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소동이 벌어졌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했다. 방어용 미사일 배치를 무작정 거부하기 어려웠다. 지역주민의 불안감을 사드를 막을 방패로 삼았다. 정치인들이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전자파에 튀겨진다’라고 선동했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전자파는 측정 최댓값이 인체 보호 기준의 0.2%보다 낮았다. 성주 참외는 전자파에 튀겨지지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시끄럽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우리 수산물도 못 먹을 듯이 말한다. 그 탓에 소금을 사재기한다, 김·멸치·새우·미역·다시마 같은 건어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바다로 오려면 태평양을 완전히 돌아와야 한다고 국립해양조사원은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 필리핀, 대만 등을 거쳐 온다는 것이다.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 명예교수는 오염수의 방사선량이 X선에 노출됐을 때보다 적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로부터 ‘돌팔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과학을 좀 배우라”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를 거쳐 일본이 다음 달에는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방류를 막으려면 과학적 근거로 국제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는커녕, ‘과학과 숫자는 못 믿겠다’라는 답답한 소리만 한다. 논리가 없다. 그래서는 국제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류가 시간문제다. 그때 우리 수산물은 어떻게 하나. ‘뇌 송송 구멍 탁’처럼 수산물도 공포의 대상이 되나. 죽도시장 문을 닫아야 하나. 방류를 막을 과학적 근거를 찾기보다 여야 모두 국내 정치에만 열심이다. 그 피해는 꼬박 어민들의 몫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