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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정치는 실용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등록일 2025-08-17 19:49 게재일 2025-08-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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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국정 운영의 철학과 비전의 중심에 언제나 국력의 원천인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국민 임명식’이라는 행사에서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편지’에 담은 내용이다. 너무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형식과 의미가 무엇인지 뜨악하다.

 

이 대통령의 이날 광복절 기념사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그는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정치가 꼭 그 상태다. 그는 이어서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매우 실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대통령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배경도 이념적 동지의 틀에 묶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의 이 제안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날 그가 남북 관계에 대해 지적한 말대로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행동’을 믿기에는 아직 신뢰가 부족하다. 특히 취임 초기 그의 인사는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민임명식도 실용과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 어디에도 그것을 뛰어넘을 의미는 없다. 그런 점에서도 이날 행사를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떠오르는 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다. 그는 자칭 황제가 됐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비오 7세 교황까지 참석시켰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렸고, 대관식을 통해 교회와 귀족들의 복종을 받아내려 했다. 황제는 이미 절대자지만, 정통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절대권력에 대한 찬가를 듣고 싶었던 셈이다.

 

이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대통령이 되었다. 과반에는 미치지 못해도 49.42%, 1728만7513표를 얻었다. 그 표보다 엄중한 임명장이 어디 있겠나. 선거 과정을 통해 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도 했다. 그런데 굳이 왜 ‘국민임명식’이라는 이벤트를 벌인 걸까.

 

문재인 정부야말로 이벤트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많았다. 재임 중에만 그런 게 아니다. 퇴임 후엔 “자연으로 돌아가 잊힌 삶을 살겠다”라던 그는 정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벤트는 ‘실용’과 거리가 멀다.

 

그는 “그 모든 미래의 중심에 국민을 두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벤트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한 행사다. 임명장을 80장씩 받은 것도 이 대통령이다. 80명의 ‘국민 대표’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참석한 교황과 귀족들처럼 들러리일 뿐이다.

 

유신독재 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처럼 선거했지만, 국회의원이 아니다. 소속 정당도 없다. 대통령을 반대하는 대의원 후보는 나설 수도 없었다. 미국의 대의원과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효표 몇 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15일 참석한 국민의 대표는 다양하게 선발했다. 그렇지만 정색하고 국민 대표라고 할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줄 대표성도 없다. 결국 이벤트,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국민의 대표는 국회의원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국회라도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흔히 독재자는 정치적 파트너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직접 상대한다. 국회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적 권위,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정통성을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이벤트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답지 않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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