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 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24.1%)였다. 4명 중 3명은 국회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가 30%였다. 국민의힘 지지가 33%, 더불어민주당 32%, 정의당 5%다. 보수층의 72%는 국민의힘을, 진보층의 59%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도층은 25%가 국민의힘을, 32%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37%였다.
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제3당을 만들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 무당층이 50%를 웃돌 때도 제3당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 신화로 거론하는 사례가 88년 4당 체제다. 소위 ‘1노 3김’ 체제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분열한 양 김 씨(김영삼·김대중)와 김종필 총재까지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민당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김대중 고문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대 연구소 조사를 인용해 중산층·서민·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며 분당(分黨) 논리를 다듬었다.
그러나 그 체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역 할거였기 때문이다. 호남과 영남을 쪼개고, 영남을 다시 경남과 경북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핫바지’론을 들먹이며 충청도당도 만들어졌다. 독재와 반독재라는 구분을 보수와 진보, 지역대결로 바꾼 셈이다. 그 정도 강력한 구심력이 없는 한 쪼개기가 쉽지 않다.
4당 체제도 오래 가지 못했다. 3당 합당 탓만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최고목표는 집권이고, 대통령선거승리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보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찍는 양상이 벌어진다.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압도했다.
양극화된 증오 정치에서는 불만이 넘칠 수밖에 없다. 한때 ‘안철수 현상’이 풍미하고,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선택했던 것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기대와 차이가 있었다. 정치 혐오가 가득 찬 이 상황에는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유권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와 지연·혈연·학연이 얽힌다고 무조건 지지하고, 감싸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응원해서도 안 된다. 눈을 감고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 편도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건강해진다. 유권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과대 대표된다. 사회통신망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증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영향력은 더 부풀려진다. ‘킹크랩’ 사건이 그런 경각심을 던져줬다. 최근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도 그렇다. 국회의원조차 조직적인 온라인 테러에 꼼짝을 못 한다. 유권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선동가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4당 체제가 공고하던 시절, 호남에서는 김대중 총재가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다. 칠곡 출신인 이수인 영남대 교수를 전남 함평-영광에 공천해 당선시킨 일도 있다. 무조건 당선은 정치인을 타락시켰고, 지역 주민들은 당선시키면서도 불만이 커졌다. 무조건 지지의 당연한 결과다.
1등만 목표로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차악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는 양극적 양당제로 가게 된다. 당선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틈에 극단세력이 목소리를 높인다. ‘개딸’이나 조국 사태, 태극기 부대, 괴담…. 합리적 주장은 힘을 잃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선동이 설친다. 결국 부패하고, 쇠망으로 가는 길이다. 유권자가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어야 정치도 건전해진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