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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취한 관행, 그게 내로남불이다

등록일 2025-11-02 19:33 게재일 2025-11-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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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지난 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열렸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경주에서 가장 조명을 받은 건 역시 이 사태를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김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세전쟁을 휴전했다. 한국에 대한 관세도 합의했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없던 문제를 만든 협상이니,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렇지만 힘이 좌우하는 국제 관계에서 더 이상 요구하기도 어렵다. 할 만큼은 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궁화대훈장과 천마총 신라 왕관 모조품을 선물 받고, “그 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만족감을 보였다. 왕관도,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도 흡족했던 것 같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아부했다고 조롱했지만, 광인을 흉내 내는 트럼프의 횡포를 막으려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APEC이 열린 경주는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다. 고려와 조선 500년. 최대의 제국으로 이름을 떨친 로마도 500년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도 이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라를 유지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신라는 여섯 부족의 연합체로 출발했다. 나중에 단일 왕조가 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부족 간의 협력, 협치와 공동체 정신이 깔려 있다. 안정적인 권력체제와 유연한 외교가 힘이 됐다. 아집과 독단이 심한 군주가 등장해 국정을 흩트리고, 권력투쟁으로 자멸한 나라들과 대비된다.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이 천년만년 갈 것으로 착각한다. 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고려 무신들은 그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죽고 죽였다. 정중부는 정변 동지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9년 만에 경대승에게 살해당했다. 경대승은 4년 만에 병사했다. 이의민이 정권을 독점했지만, 그 역시 최충헌에 게 살해당했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탐욕이 더 무섭다. 

 

필자가 청와대 취재를 담당할 때 한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창밖의 벚꽃을 가리키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권좌에 앉아서도 그 이후의 일을 걱정했다. 그런데 대개는 그 끝이 없는 줄 안다. 권불십년(權不十 年)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인들 그것이 삼일 천하로 끝날 줄 알았겠는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도 임기를 늘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그 권력의 끝이 없다고 착각한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서울의 민심이 흔들렸다.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32%로 민주당 31%보다 높다. 미디어 토마토가 서울시장 가상대결을 조사한 결과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주당 박주민·박홍근· 서영교·전현희 의원과의 일 대 일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다. 영호남에서는 큰 이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선거다. 가장 큰 전장이 수도권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가 승패를 가른다. 비상계엄이라는 패착으로 정권을 넘겨준 뒤 여론은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흐름을 바꾸는 건 민주당이다. 

 

선거는 상대방 실수에 좌우된다. 민주당이 굴러온 복을 발로 차고 있다. 과욕이 참사를 빚고 있다. 국회에서 일당 독재가 뭔지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의 여유도 관용도 없다. 지독히 ‘못된 말’만 찾아내 쏟아낸다. 당 대표가 앞장섰다. 

 

집권당은 국정의 책임자다. 권한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다. 이념에 매달리다 망쳐도 자기 책임이다. 그런데 이념도 아니다. 내 편은 무조건 옳다는 사이비 진보를 ‘노무현 정신’이라고 한다. 서민이 서울 아파트 사는 걸 철저히 막았다. 그 정책을 입안한 경제 관료, 정치인들은 이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 피감기관이 벌벌 떠는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결혼식을 해놓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 

 

그들이 맞서 싸운 과거 정부의 부패도 당사자들에게는 ‘관행’이었다. 민란을 일으킨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도 당시에는 만연한 ‘관행’이었다. 그래도 과거에는 부끄러운 줄은 알았다. 무엇을 위한 싸운 건지 잊어버렸다. 권력에 취했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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