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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침묵’ 프랑스는 ‘분노’ ... 정년, 연금을 둘러싼 불편한 대비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5-12-20 07:41 게재일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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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0일 프랑스 정부가 강행한 연금개혁법에 반대하는 노조원들과 시위대가 파리 외곽 라데팡스 그란데 아르슈(신개선문) 앞에 집결해 시위하는 모습. 라데팡스. /AFP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요즘 정년(停年) 연장이 최대 현안이다. “아직 일할 수 있다”는 개인의 의지와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구조적 현실이 맞물려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 55세 이상 고령층이 희망하는 평균 근로 연령은 73.4세다. 75~79세 응답자는 82.3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놀랍지만 낯설지 않다. 노후를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서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요인도 작용한다. 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국민성, 사치와 게으름을 죄악시해온 분위기, 그리고 ‘쉬는 노인’을 불편해하는 시선(視線)까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연금이다.

 한국의 평균 연금은 66만 원. 이 돈으로는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년은 60세인데 연금 수령은 65세부터다. 이 5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여겨진다. 

프랑스는 정반대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개혁에 프랑스 사회는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시위가 이어졌고, 야당은 의회 결의안으로 맞섰다. 결국 정부는 연금개혁을 2027년 대선 이후로 중단했다. 정년을 2년 늘리는 문제로 총리가 바뀌고 국가 예산안까지 흔들리는 모습은 한국인의 눈에는 낯설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요인은 연금의 수준이다. 프랑스의 평균 연금은 1626유로(약 279만원)이다. 최소 보장 연금도 153만 원 수준.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 ‘연금으로 사는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들과, 1년이라도 더 일해야 노후가 유지되는 한국인의 태도는 여기서 갈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들의 정년 연장 거부감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다. 그들은 ‘기술 발전으로 더 적게 일해도 충분히 부유해질 수 있는데, 왜 더 오래 일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노동은 연옥(煉獄)이고 은퇴 이후가 비로소 인생이라는 인식은 오랜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매달 급여의 20% 이상을 사회보험료로 납부해온 대가(代價)이기도 하다.

 물론 프랑스 역시 현실의 벽 앞에 서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연금 지속 가능성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연금은 적립금이 없는 부과(賦課) 방식이다. 현재 근로자가 낸 보험료로 곧바로 은퇴자를 부양하는 구조다. 근로자 1.7명이 은퇴자 1명을 떠받치는 구조에서 정년 연장은 재정 논리상 가장 손쉬운 해법이다. 개혁을 미룬 선택이 미래 세대에게 어떤 부담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년을 65세로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면 정년 연장은 고령층 실업 기간만 늘릴 수 있다. 연금 개혁 없는 정년 연장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연금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점거했고, 한국은 연금이 부족해 스스로의 노후를 연장하고 있다. 정년을 둘러싼 두 나라의 온도 차는 결국 국가가 책임지는 노후의 깊이 차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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