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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 같은 제사상, 명절이 가벼워졌다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2-11 18:02 게재일 2026-02-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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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입맛대로 준비한 명절 음식.

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명절은 흩어진 가족이 모이는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해마다 반복되는 부담이다. 제사를 준비하는 일, 지켜야 할 관습,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이 한자리에 모이며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명절이 반갑지 않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지난 추석,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조카가 안동에 왔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수다를 떨다 온 녀석이 말했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소리는 사방의 베란다에서 가족들이 다투는 소리만 들렸다”고. 세대 간 정치 이야기, 제사 문제, 집안일을 두고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모양이다. 그나마 올림픽이나 월드컵, 국가대항 축구경기 같은 대형 이벤트라도 있으면 분위기가 한결 나을 텐데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몇 차례 엄마에게 “제사를 없애자”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된다.” 유서 깊은 문중의 막내딸로 자란 엄마다. 어려서부터 정성껏 조상을 모시는 모습을 봐왔으니, 그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제사 때마다 장거리 이동을 해야 했던 아들, 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주고 난 이후부터다. 그 뒤로 엄마는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어다오.”라고 당부하셨다.

코로나19 이후 결국 명절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형식은 없애고 가족이 먹을 음식만 장만하기로 했다. 명절에나 맛볼 전은 내가 맡았다. 동태전, 육전, 산적 대신 오징어튀김, 단호박전, 김말이, 달걀튀김, 야채튀김, 고구마전, 옛날 소시지가 올라갔다. 말 그대로 ‘분식집 같은 제사상’이었다. 모두 ‘살아 있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의 신조는 분명하다. 망자를 추억하되, 산 자는 즐거워야 한다. 나이 들수록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고 지켜야 하고 챙겨야 하는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온 가족이 명절에 모이면 윷놀이도 한 판 하고, 화투도 치고, 스케치북 들고 스피드 게임도 하며 각자의 삶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보자. 명절엔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제 추억은 올리고, 부담은 내려놓을 때다.

/백소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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